[인터뷰] 래퍼 파로(PHAROH), 서른 둘 그가 노래하는 인생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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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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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파로 [사진=마피아 레코드 제공]


아주경제 김아름 기자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어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꿈을 위해 9년을 참고 인내하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에 가장 가까이 닿았다. 그리고 세상 달콤한 열매를 물었다. 지난 25일 싱글 앨범 ‘서울 살롱(Seoul Salon)’을 발표한 래퍼 파로(본명 윤석준)의 이야기다.

“‘서울 살롱’으로 컴백인지 데뷔인지 모를 시작을 하게 된 파로입니다. 과거 윤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렇다. 모두들 예상했듯이 그는 85년생이다. 그래서 활동명을 ‘파로’로 지었다. 과거 윤대장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활동한 실력파 래퍼다. 그런 그가 최근 가수 스테파니 소속사 마피아 레코드와 계약하고 이제 메이저 무대 위로 올라와 활동을 시작했다.

“윤대장으로 활동할 당시 어두운 음악을 하면서 어둡게 살았어요. 그래서 계속 어두운 길만 가는 것 같아서, 마지막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 소속사와 계약하게 됐어요. 제가 비오는 날 CD 들고 돌아다니는 걸 지금 대표님께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사실 파로라는 이름은 매우 낯설다. 과거의 활동명 윤대장 역시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그는 3~40명 정도의 관객이 지켜보는 공연부터 시작한 배고픈 힙합퍼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4월 ‘선셋 비치’ 발매 후 이렇다할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만에 신곡을 발표했다. 올해 두 번의 앨범을 더 낼 생각이다. 올해 파로의 목표는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래퍼 파로 [사진=마피아 레코드 제공]

힙합이 지금이야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 중에 하나로 성장했지만, 사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 음악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래서 ‘배고픈 음악’ 중에 하나였으며,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그랬다. 파로의 신곡 ‘서울 살롱’은 그 힘든 시절의 이야기가 담긴 곡이다.

“‘서울 살롱’이라는 이태원 경리단길의 단골 맥주집이 있어요. 제가 이래뵈도 술은 별로 안 좋아하고 못 마시거든요.(웃음) 제가 어두웠고 배고팠던 시절에 자주 갔는데 ‘서울 살롱’은 맥주 한 잔을 시키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아요. 경리단길이 예전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하는 분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에요. 그래서 ‘서울 살롱’을 지금 찾아보면 과거가 생각나기도 하죠. 그때의 기억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제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만든 음악입니다.”

그가 힙합을 접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이다.

“고1때 선배의 권유로 학교 힙합부에 들었어요. 선배가 ‘학교 생활 편하게 하고 싶으면 힙합부 들어와라’고 했죠. (웃음) 그래서 얼떨결에 오디션을 보고 힙합부 공연 팀에 들어가고 공연을 하게 됐죠. 그리고 고3때 까지만 해도 힙합은 취미 생활에 불과했어요. 공부도 못하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를 가야 하니까 공부에 매진했고, 스포츠 경영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사실 스포츠 경영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대학교를 가자마자 저와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느 순간부터 꿈이 아닌 직업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걸 해야겠다고 느꼈죠. 군대를 가서 그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어요.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니 예전부터 제가 뭘 끝까지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과거를 더듬다 보니 제일 좋아했던 게 고1때 힙합 공연을 했던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군대에서 6개월간 고민하다가 가장 친했던 후배인 그레이에게 전화를 했고, 그레이가 제게 CD 100장을 보내줬어요. 한 2~3년 랩을 쉬니까 랩 실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래도 좋았어요. 앞으로 딱 10년 정도만 해보고 안 되면 접자고 했었는데 올해가 9년째네요. (웃음)”

스스로 정해놓은 마지노선 10년까지 딱 1년이 남은 상태. 후배 그레이의 권유와 함께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9년만에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간 음악 활동을 하면서 파로에게는 여러번의 좋은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YG에서 세 번이나 캐스팅이 되는가 하면, YG의 메인 프로듀서 테디에게서 직접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파로는 ‘YG는 아이돌 그룹 소속사’라는 편견이 강해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죠”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국내 대형 기획사 중 하나인 YG에서 파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캐스팅할 정도로 그는 힙합씬에서는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 닦은 숨은 보물이었다.
 

래퍼 파로 [사진=마피아 레코드 제공]


많은 아티스트들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듯, 파로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연을 하면 돈을 받지 못하는 일은 다반사였고,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하는 아픔도 있었다. 앨범을 내기 전까지는 돈을 벌기 위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의 생계형 뮤지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이 가요계 대세 장르가 된 것에 대해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힙합이 가난하고 배고프고 돈이 없는 음악이라는 건 지극히 현실적이죠. 하지만 힙합은 돈이 되는 음악이에요. 미국 음악이 힙합이고, 그걸 보면서 자라왔잖아요. 외국의 힙합 뮤지션들은 돈도 많고, 비싼 차를 몰기도 하고 항상 예쁜 여자들을 끼고 살죠. 저 역시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음악을 했어요. 하하하. 잘 살고 싶기 때문에 힙합을 하는거에요. 지금 이렇게 힙합이 대세가 된 게 ‘쇼미더머니’ 덕분이죠. 저는 그게 ‘쇼미더머니’의 유이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줬잖아요. 방송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힙합 음악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에 저 역시 힘이 되고 보탬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파로도 ‘쇼미더머니3’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팀 선택 단계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맛봤다. 끊임없이 도전했던 그다.

여러 번의 장애물도 다가왔었고, 어두웠던 시기도 맛봤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를 다시 단단하게 붙잡은 것 역시 힙합이었다. 그에게 힙합은 가장 행복한 삶이다. 그래서 그는 어렵게 올라온 지금의 자리가 소중하기만 하다.

“제가 딕플로우를 정말 뮤지션으로서 존경해요. 앞으로 정규 앨범이 나오면 CD를 들고 가장 먼저 찾아가서 90도로 인사도 할 수 있는 분이죠. 그리고 딕플로우 형처럼 되고 싶어요. 뮤지션으로서나 사람으로서나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올해 두 장의 앨범을 더 낼 예정인데, 그때 정규 앨범을 내면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큰 라이브 음악 방송에 나가고 싶어요. 그 곳에서 제 가치를 알리고, 저와 함께하는 크루 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요. 제가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잘 되더라도, 제가 챙겨야 할 사람들은 꼭 챙기고 싶은 게 제 목표입니다.”

파로는 서른 두살에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또래보다 조금은 늦었지만, 천천히 봉우리를 터트린 만큼 만개할 준비도 마쳤다.

이제 서른 둘의 파로가 노래하는 인생 예찬(禮讚)을 함께 즐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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