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근시안적 법안과 처분'…"제재가 능사는 아니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6-05-30 00:0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생활경제부 정영일 부장]


아주경제 정영일 기자 = 프랑스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이며 소설가 겸 극작가로 활동했던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 그가 남긴 유명한 장편소설 가운데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을 조카에게 먹일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이 수형생활을 했던 장발장의 이야기를 다뤘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개인적인 탐욕을 떠나 잘못된 양형기준과 억울함에도 발버둥 칠 수조차 없었던 억압의 시대를 대변했다. 죄지은 자를 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지만 이에 따른 폐해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우리나라에도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눈에 띄는 것이 김영란법 시행 예고와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의 롯데홈쇼핑 제재를 들 수 있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지난 9일 입법예고된 이 법 시행령에는 금품 등 수수 금지, 외부강의 등 사례금 수수 제한, 부정청탁 금지, 위반행위의 신고 및 처리, 신고자의 보호 및 보상 등에 대한 세부사항이 담겨 있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금품 수수와 사례금 수수 규정이다.

금품에는 음식물과 선물, 경조사비 등이 포함된다. 시행령은 상한액을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로 설정했다. 음식물과 선물을 함께 받은 경우에는 가액을 합산하며 기준은 5만원 이하다. 경조사비와 선물 또는 음식물을 동시에 받은 경우에는 합산 기준 10만원 이하다. 외부강의 등의 대가로 받는 사례금도 제한된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약 18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공무원과 언론인, 교원 등이며 이들이 음식 대접이나 선물, 경조사비 등을 받을 경우 이 기준을 초과하게 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제는 이 법의 실효성과 역효과가 분명히 예측되고 있다는 것이다. 편법을 쓸 여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법 시행으로 외식업계와 국내 농축수산물, 화훼업계는 매출 급감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실제로 지난 24일 열린 이 법 시행령 입법예고안 공정회에서 농축수산업계와 화훼업계 등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김영란법의 개정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해당 업계 종사자들은 법의 제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현실을 고려해 소상공인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품 허용 액수를 상향 조정하거나 국내산 농축수산물을 금지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구했다. 시행령 제정안의 항목, 금액 등이 현실과 괴리돼 소상공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우려도 제기했다.

근시안적인 정부기관의 갑질 행정 처분도 있다.

미래부는 지난 27일 롯데홈쇼핑에 오는 9월 28일부터 6개월 동안 황금시간(프라임타임) 대인 오전 8~11시와 오후 8~11시 등 1일 6시간 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번 제재는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채널 재승인 과정에서 비위 임직원 8명 중 2명을 누락해 신청서를 제출했고 미래부가 해당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재승인 허가를 내준 것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롯데홈쇼핑 측은 이번 제재로 685억원 규모의 영업이익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개월 동안의 취급고 기준 매출이 2조2562억원이고 이 중 프라임타임 비중은 절반 수준인 1조934억원이며 올해 상승분을 감안해 나온 수치다.

문제는 이번 미래부의 처분으로 롯데홈쇼핑만이 ‘정부의 매운맛’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롯데홈쇼핑의 프라임타임 방송 횟수는 2718회였는데 이 중 중소기업 협력사 제품은 65%인 1757회나 편성돼 롯데홈쇼핑과 단독으로 거래하는 173개 중소 협력사들은 당장 물건을 판매할 방법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단독 브랜드나 자체브랜드(PB) 상품의 경우 타 유통업체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미 올해 가을과 겨울 상품 준비를 위해 원자재 구입이나 생산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중소기업의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뻔하다.

롯데홈쇼핑의 경우 영업이익 중 3~5%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금액을 협력업체 상품대금, SO 수수료 등으로 지급된다. 롯데홈쇼핑의 매출 감소는 바로 협력업체의 피해로 전가되는 구조다.

게다가 롯데홈쇼핑의 설명처럼 프라임시간대 정지로 인해 다른 시간대나 온라인, 카탈로그 매출 감소와 상품기획자(MD)를 비롯해 PD와 쇼호스트, 방송기술 직군의 직원 이탈도 우려된다.

물론 롯데홈쇼핑은 2014년 제재를 받을만한 납품과 뒷돈비리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재승인 유효기간 2년 단축이라는 징계로 받았다.

미래부는 이번 처분과 함께 롯데홈쇼핑에 중소기업 제품을 업무정지 이외의 시간대와 데이터홈쇼핑(채널명:롯데원TV) 채널에 우선적으로 편성해 중소기업 납품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권고했다.

또 업무정지에 따른 롯데홈쇼핑 비정규직 등의 고용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부당해고와 용역계약의 부당해지를 금지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해 3개월 이내에 제출할 것을 롯데 측에 권고했다.

납품업체들이 대체판로를 확보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TV 홈쇼핑, 데이터 홈쇼핑사들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롯데홈쇼핑 납품 중소기업의 입점을 주선할 예정이라는 방안도 내놨다.

이를 위해 TV홈쇼핑협회와 데이터홈쇼핑 협회, 한국홈쇼핑상품공급자협회 등에 홈쇼핑 납품 상담창구(대표번호 부여)를 개설해 주기적으로 진행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래부는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보유한 사업자의 편의점, 대형마트 등을 통한 재고 소진 기회 마련을 위해 관련 사업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식 이런 권고가 당장 판로가 막힌 수많은 롯데홈쇼핑 협력업체 종사자와 직원들에게 얼마나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