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안 나오면 임산부 아닌가요?"… 임산부도 못앉는 '임산부 배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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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1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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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임산부 배려석을 보다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석 뒤쪽 벽과 좌석, 바닥색을 분홍색으로 디자인했다. [사진=조득균 기자]



아주경제 조득균 기자= # 임신 3개월차인 엄모씨(34)는 최근 지하철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일명 핑크석으로 불리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려는 순간, 중년의 한 남성이 갑자기 끼어들어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것이었다.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엄씨는 자신이 임산부라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그 남성은 듣는 둥 마는 둥 모른 체했다. 최근 임산부를 위한 각종 배려 정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정작 '임산부 배려석'을 마음 편히 이용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늘고 있다.

보통 임신 초기의 경우 육안으로 배가 많이 나와 보이지 않아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까지 눈치를 보고,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에게 밀려 좌석을 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임신 5개월차인 김모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신 초기에 불편함이 없을 거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여성은 임신한 것 자체만으로 몸에 큰 변화가 생겨 기력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어지럼증까지 발생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수도권 지하철에 차량 1대당 2석씩 총 7100개의 임산부 배려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마치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임산부 배려석을 떡하니 차지하는 '얌체족'들이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건의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임산부 배려석을 보다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석 뒤쪽 벽과 좌석, 바닥색을 분홍색으로 디자인했다. 또한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도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고 양보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임산부들 사이에선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임산부 배려석에 써 있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임산부를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2014년 임산부 2399명과 일반인 2070명을 대상으로 임산부 배려 인식 실천수준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임산부 44.2%가 '배려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임신 3개월차인 정모씨는 “얼마 전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데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자리에서 비키라는 식으로 역성을 내고 지나갔다”면서 "배가 불룩하게 나와야만 임산부인가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배려문화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배려문화에는 분명 한계성이 존재한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는 칩이 내장된 신용카드처럼 임산부 전용카드를 만들고, 임산부 배려석에 이 카드를 대면 좌석 일부분에 '나는 임산부입니다'라고 확인할 수 있는 불이 들어오는 장치를 만들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도시철도관리팀 관계자는 10일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코자 노력하고 있지만, 시스템 장치 마련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일반 시민들이 앉는다고 해서 '자리에서 비키세요'라는 식의 강요를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지속적인 캠페인 활동을 통해 배려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고 근본적 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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