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Talk]'한국 미술계 이단아' 안창홍 "이젠 자연 그릴정도로 철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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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1-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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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중미술작가로 유명. "맨드라미 보며 생로병사 느껴" 60세에 첫 꽃 풍경화전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화가들은 꽃에 빠진다. 피해갈수 없는 주제일까.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으면 '꽃 그림'을 그린다. 화려하거나, 세밀하거나, 단순하게…. 대부분 '예쁘다'.

60이 넘어 민중미술작가 안창홍도 결국 꽃에 빠졌다. 하지만, 다르다. "꽃이긴 한데 동물적인 느낌이 있다".

그림 속 맨드라미는 때로는 화려한 자태를 뽐내다가도 때로는 시들어 있기도 하고 심지어 처절하게 꺾여 있기도 하다. "맨드라미는 정육점에서 살코기를 잘라다 옮겨 놓은 것 같다"는 그의 말을 들어서일까. 붉게 물든 꽃술이 고깃덩어리같다.

 자주색 핏빛과 절규하듯 강렬한 맨드라미는 그의 삶과 닮았다. 그는 '한국 미술계의 이단아'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모든 체제와 제도에 반대해왔다. 1973년 동아고등학교를 졸업 후, 정형적이고 수직적인 대학의 교육방식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가난때문이었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살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이미 규칙적인 생활과 제도가 안 맞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공사판, 부산 자갈치 시장 등을 전전하며 생생한 삶을 체험했다.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인 그는 현실비판적 작품을 만든 민중미술가로도 손꼽힌다.

 벌거벗고 까발린듯한 인물 그림이나 오래된 흑백사진으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겨냥해왔다. "진실은 언제나 밝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안창홍만의 회화방식으로 풀어냈다. 사진 속 인물의 눈과 귀에 구멍을 내고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파고 들었고 아름다울 수 있는 남녀의 인체에 가식을 벗어 던지라는 듯 중요부위를 드러낸 극단적인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보기에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그림, '화분이 채 감당하지 못하는 강한 식물'같은 작가다. 그의 예술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타협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신념으로 작업한다. 간혹 나는 화랑이나 비평가와 싸움도 하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보루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보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우울해도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진정한 예술 아닌가?" 이런 고집때문일까. 그의 예술은 더욱 권위를 찾고 있다. 2009년 이인성 미술상과 2013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안창홍의 꽃 그림'이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선보인다.'안창홍의 뜰'을 타이틀로 20여점의 작품이 걸렸다.

안창홍은 "2014년은 나에게 가혹한 해였다"며 "국내외 사건을 접하면 고통스러워서 작업에 몰두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환갑의 나이, 주름이 늘어도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다. 그는 "무심코 바라본 작업실 바깥 뜰에서 세상사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떠올렸다"며 "비록 작은 터의 꽃밭이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생태는 거칠고 완고하면서도 섬세하고,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공평했다"고 읊조렸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온 작가인생에서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풍경화를 그려냈다.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긴 덕분이다. 지난 2∼3년간 작업실 앞마당에서 꽃밭을 가꿔 왔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철마다 피고 지는 꽃들의 영고성쇠"를 지켜봤다. 그리고 꽃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작업 도중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학살, 여객기 피격, 이라크 내전, 에볼라 확산까지…. 안창홍은 "2014년은 나에게 가혹한 해였다"며 "국내외 사건을 접하면 고통스러워서 작업에 몰두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견디기 힘든 슬픔과 우울함은 "맨드라미 꽃밭에 검은 비가 내리는" 풍경 등으로 치환됐다.

그런데, "왜 꽃을 그렸냐고"?

"자연은 깊고 넓기 때문이다. 내가 자연을 그리는 것은 가령 누드회화가 그냥 벗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사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자연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했다. 이제는 자연을 그릴 정도로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원초적 느낌의 현란하고 강렬한 붉은빛, 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다양한 모양의 억센 줄기와 다양한 색의 잎들, 온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듯이 시들어 갈 때의 망연자실…. 화폭의 맨드라미는 처절하다.

"나의 맨드라미는 색깔도 살인적 핑크색이다. 식물인데도 동물 같다. 거름을 주면 정말 왕성하게 자라고, 꽃잎을 부러뜨리면 살점처럼 뚝뚝 뜯어지고, 시들 땐 참혹하게 진다. 꽃의 향기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그 향기를 발산하기 위하여 꽃이 진력한 에너지는 목숨까지 건 것이다. 난 맨드라미를 활용해 ‘심상풍경’을 그린 것이다."

생로병사가 녹아있는 듯한 그의 맨드라미가 묻는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전시는 28일까지, (02)3447-0049.

 

▶안창홍=1989년 프랑스 카뉴 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009년 이인성 미술상, 2013년 이중섭 미술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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