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덕현]시진핑 주석 방한의 의미와 동북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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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8-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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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지난 7월 3일부터 4일까지 양일 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박 2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하였다. 이번 시 주석의 방한은 형식적으로는 지난 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에 대한 답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추진 중인 미국과 ‘유소작위(有所作爲)’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 간의 경쟁이 점차 심화되고, 일본 아베 정부의 헌법 재해석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선포 등으로 동북아 정세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 시점에서 맞춰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방한은 예전 중국 지도자들의 방문보다 더 큰 무게감을 갖고 다가오는 것 같다. 이하에서는 이번 시진핑 주석 방한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전개될 동북아 정세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전망해보고자 한다.
이순신과 등자룡, 그리고 임진왜란
이번 시 주석 방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7월 4일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강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이날 강연에서 시 주석은 장기인 고전인용을 통해 한중 양국 간의 강한 유대감을 강조하였다.
시 주석은 강연 첫 머리에서 한국인들에게도 생소한 허균의 시구 ‘간담매상조(肝膽每相照, 간과 쓸개를 꺼내어 서로 비추니), 빙호영한월(氷壺映寒月, 차가운 달이 얼음 항아리를 비추는 듯하다)’을 인용하며 현재 양국 국민 간의 우의는 이처럼 투명하고 숨김없는 정도로 깊다고 설명하였다. 또 강연 말미에는 당대(唐代) 시선(詩仙) 이태백의 시구 ‘장풍파랑회유시(長風破浪會有時, 거센 바람이 물결을 가르는 때가 오면), 직괘운범제창해(直掛雲帆濟滄海,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 헤쳐나가리라)’를 인용하면서 우호협력의 돛을 함께 달고 상호 윈윈의 방향으로 항해한다면 양국 모두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시 주석의 언급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해진 한중 양국 관계를 평가한 의례적이고 외교적인 언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것은 시 주석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려 400여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까지 이례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앞에서 언급한 허균의 시구 인용에 이어 임진왜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400년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전쟁터로 같이 향했다’고 하였다. 이에 덧붙여 ‘명나라 등자룡(鄧子龍) 장군과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함께 전사했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 장군 진린(陳璘)의 후손은 오늘까지도 한국에 살고있다’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임진왜란 언급’은 이번 시 주석 방한의 중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현재 미국은 ‘아시아 회귀’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을 전략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본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 역시 이러한 선봉장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이를 활용하여 미국으로부터 팽창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고 점차 약화되고 있는 지역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반면 급속하게 신장된 국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에 상응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국은 자국에 대한 미일의 전략적 압박 형세에 대해 상당히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압박 형세를 완화시키고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지해 줄 역내 조력자 내지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를 고려해보면 시 주석의 ‘임진왜란’ 발언은 중국이 역내 조력자 또는 파트너로써 한국을 깊이 염두해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 주석은 강연에서 ‘20세기 상반기에 일본 군국주의가 한중 양국에 대한 야만적 침략을 해 한반도를 병탄하고 강점했으며 그로 인해 양국 모두 큰 고난을 겪었다’라는 언급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이 400년전 사건인 ‘임진왜란’까지 구태여 끄집어낸 것은 일본에 대한 한중 양국의 공조 및 대응 필요성이 오늘날 갑자기 화두로 떠오른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역사적 당위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사항들을 정리해보면 이번 시 주석 방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중국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내년은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인 바 이를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안한 사실은 방한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의 세 가지 선물
시 주석은 이번 방한 기간 중 이러한 방문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한국 정부와 공유하는 성과는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시 주석은 한국에 대해 몇 가지 선물도 준비하였다.
첫 번째는 과거 중국 지도자들이 평양을 먼저 방문한 이후 서울을 방문하는 관례를 깨뜨리는 파격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이 강조하는 것처럼 지리적, 역사적 특수성이 있는 북중 관계가 이러한 파격행보 한번에 그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 주석의 선택은 그 동안 유지해 온 남북간 등거리 외교정책이라는 균형관계가 변화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북한에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향후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에서 한국측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를 행동으로 보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이는 북한에게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두 번째 선물은 바로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 강화이다. 방한 기간 중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지난 해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 북핵을 ‘심각한 위협’이라고 평가했던 것보다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북한 핵에 대한 확실한 반대입장을 최초로 문서화하였다.
물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했고, 또 ‘북한 핵’이라는 명확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이 핵개발을 추진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표현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북핵’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위와 같은 성과를 굳이 저평가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된다.
세 번째 선물은 한중 FTA이다. 양국 정상은 ‘높은 수준의 한중 FTA를 연내 타결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는 데에 대해서도 합의하였다. 물론 한국 내에서 한중 FTA 체결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13년말 기준으로 한국이 세계 1위의 대중 수출국이라는 점과 대중 수출 비중이 전체의 26.1%에 달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한중 FTA 체결의 속도를 높인다는 것은 분명 한국에게 좋은 측면이 더 많은 뉴스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기존 역내 구도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
이번 시 주석의 방한으로 한중 양국 간의 관계가 한층 더 깊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이로 인해 그 동안 유지되어 왔던 ‘북중 대 한미일’의 동북아 구도에 당장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국내에서도 북한과의 전통적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지의 여부에 대해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고 북중 관계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경색되어 있지만, 지난 수십년간 지속되어 온 북중 관계의 지리적, 역사적 특수성이 한중 관계의 순풍으로 인해 갑자기 소멸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북중 관계와 같이 역사적 특수성을 갖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역시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 행보로 인해 최근 불협화음을 내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협력틀의 해체나 변화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 주석의 방한은 이러한 기존의 동북아 구도 속에서도 양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상호 신뢰와 우의를 다질 수 있는 충분한 길과 공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의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에서는 시 주석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간 경쟁구도 속에서 한국이 양국으로부터 모종의 선택을 강요당하게 될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 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밝힌 것처럼 ‘중국이 평화를 추구하는 대국’이라는 점을 실천을 통해 확인시키고, 또한 한국이 수교 이후 줄곤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양해해온 것처럼 한미 관계의 특수성과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해준다면 이러한 일각의 시각은 기우에 그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고:배덕현 KAIST 인문사회과학과 초빙교수(법학박사)

*본 기고문은 월간중국 8월호에 개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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