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 메이커 존 흄, 그리고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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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한 주아일랜드 한국대사
입력 2020-08-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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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기환 주아일랜드 한국대사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핵심 설계자로 존경받아 온 존 흄 북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 전 총재이자 1998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북아일랜드 평화의 업적을 뒤로하고 지난 3일 83세의 삶을 마감했다.

북아일랜드의 평화과정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는데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설계자인 흄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 흄은 정치적 해결을 통한 평화달성을 위해 대화 상대방을 적대시하지 않고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인내를 가지고 끈질기게 대화와 소통을 유지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북아일랜드에는 친아일랜드 구교파를 대변하는 무장세력인 아일랜드공화국군(PIRA)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는데 흄은 1980년대 후반부터 PIRA의 정치 세력이던 신페인당 지도부와 대화를 지속하면서 무장투쟁이 아닌 정치적 해결을 통해 북아일랜드의 문제 해결 필요성을 일관되게 설득해 나갔다. 당시 금기시되던 신페인당과 비밀리에 대화를 시도하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평화달성에 온전히 헌신했던 것이다.

둘째 모든 관계를 아우르는 해결방안, 소위 '관계의 전체성'을 염두에 두고 문제 해결을 추구했다.

흄은 북아일랜드 문제가 북아일랜드 이외의 변수가 중첩된 것으로서 북아일랜드 시민의 힘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며 영국, 아일랜드, 미국의 도움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이들과 신뢰를 유지하면서 긴밀한 의사소통을 했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은 크게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구성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관계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라는 3개의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미국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중재자로 끌어들여 영국과 아일랜드 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적극 활용했고 북아일랜드 경제회복 및 평화과정을 위한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셋째 남북 아일랜드 통일을 사람 중심으로 사고해야 하며 남북 아일랜드 주민의 합의와 동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지속 천명했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체결 전 아일랜드 헌법 제2조 영토조항(영토는 아일랜드 섬 전체, 부속도서와 영해로 구성된다)은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 국민투표를 통해 개정됐는데 '아일랜드 섬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아일랜드 국민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사람 중심의 내용으로 바뀌었다.

또한 1998년 개정헌법 3조에는 통일 아일랜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북 아일랜드 양쪽에서 동시에 실시되는 별도 국민투표를 통해 양쪽 모두 다수 국민이 동의할 경우에 가능하다고 적시돼 있다.

이는 남북아일랜드의 문제를 영토의 통일에 앞서 사람의 통일로 인식한 흄의 생각이 적극 반영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흄은 다양성과 상호존중에 바탕을 두고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유럽연합(EU)을 국제분쟁 해결의 대표적인 모델로 여겼다.

즉 그는 역사적으로 적대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가 다양성과 이견을 존중하는 EU 내에서 경제협력을 통한 상호이익 창출을 통해 더 이상 전쟁을 상상할 수 없게 됐으며 이는 북아일랜드를 포함 국제분쟁 해결의 방향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1998년 12월 10일 흄의 노벨평화상 수상소감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모든 분쟁은 인종이건 종교건 국적이든 차이로부터 발생하며 차이는 위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 EU의 비전이다. (중략) 차이에 대한 답은 상호존중에 있으며 평화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다양성의 존중에 있는 것이다.”


 

권기환 주아일랜드 한국대사. [사진=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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