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여왕의 귀환…전도연 “2년의 공백,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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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2-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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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으로 가는 길’ 통해 전도연의 가치 재확인

전도연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전도연이 돌아왔다. 정재영과의 영화 ‘카운트 다운’ 이후 2년 만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역시 전도연!’이라는 탄사를 절로 뱉게 한다.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인정받은 ‘밀양’(2007)의 여우 전도연이 아니라 그저 대서양 외딴섬에 갇힌, 나라도 버린 여인 송정연이 되어 우리 곁에 섰다.

‘밀양’을 넘어서는 날것의 연기력은 ‘용의자 X’로 실망감을 안겼던 방은진의 부진을 잊게 하고, 못난 가장 김종배가 되고자 부단히 애쓴 고수의 노력을 값어치 있게 만들었다. 한없이 찬사를 전하고픈 배우 전도연을 지난 9일 서울 통의동 카페에서 만났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네요, 원래 다작 배우는 아니고 1년에 한 편 정도 해 왔는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보다는 충무로에 남자 중심의 영화들이 많았어요, 의도치 않은 공백이 생긴 거죠. 하지만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연기가 제게 얼마나 절실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달았고, 공부라고 할 순 없지만 한 발 떨어져 제 연기와 한국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요.”

돌아보면 전도연의 연기는 늘 진짜 같았다. 친구의 연인을 짝사랑하는 영화 ‘접속’(1997)의 수현, 첫사랑에게서 젊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유부녀 ‘해피엔드’(1999)의 보라,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늦깎이 학생 ‘내 마음의 풍금’(1999)의 홍연, 9년간 수절했으나 마음을 훔치려 덤벼드는 사내에게 흔들리고 마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숙부인, 우체부에게 마음을 뺏긴 풋풋한 섬처녀 ‘인어공주’(2004)의 연순, 젖소를 키우는 노총각과 새로운 출발을 꿈 꿔 보지만 어두운 과거와 질병 앞에 무너지는 ‘너는 내 운명’(2005)의 다방 아가씨 은하, 떼인 돈 350만원을 받아 내겠다고 헤어진 남자친구와 불편한 하루를 자처한 ‘멋진 하루’(2008)의 희수, 그리고 재벌가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며 그들의 욕망에 전염된 ‘하녀’의 은이. 한 배우가 세상에 내놓은 인물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스펙트럼이 광폭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나락에 빠진 가정과 딸을 지키겠다고 마약 운반의 덫에 걸린 실존인물을 맡아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토해 내듯 연기했다.
 
전도연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엄마가 됐기 때문에 정연을 더 실감 나게 연기한 게 아니냐고 하세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미혼의 몸으로 딸을 잃은 신애를 연기해야 했던 ‘밀양’은 어떤 콤플렉스를 줬어요. 엄마가 아닌 내가 모성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요. 이번에 그런 우려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연기가 되지는 않아요. 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바로 그 인물이 돼야 해요. 누구의 엄마 전도연이 아니라 배우 전도연으로서 임한다는 거죠. 또 상대 배우의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상대의 액션에 리액션하죠. 결국 연기는 그 인물, 또 상대 배우와의 대화이자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도연은 송정연을 "현실적으로 연기하고 싶었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영화이기는 하지만, 관객이 영화적으로 감성적으로 빠져 들면 송정연의 상황과 마음에 공감할까에 대해 많은 주안점을 두었어요. 현실적으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어디에 있을 법한 아줌마로 보이길 바랐고, 정연에 앞서 내가(관객이) 먼저 화내 주고 걱정해 주길 바랐어요. 그래야 영화에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정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친구, 나라… 무엇으로부터도 보호 받지 못하는 한 여인이 어떻게 살아 남느냐의 문제였어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해 보여야 관객의 마음이 정연 쪽으로 움직일 것이고, 그 몸부림은 결국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 거죠.”

실제로 영화 내내 생존을 위한 정연의 몸부림은 밀도 있게 전해진다. 그 중에서도 대서양 한복판의 작은 섬 마르트니크 감옥에 갇혔을 때, 다른 죄수들의 방해로 끼니를 굶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린 배를 물로 채우고 감방 동료가 흘린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장면은 처절함의 정점을 찍는다. 더러운 철창 안, 흙과 모래와 오물이 뒹구는 바닥의 부스러기에 손을 뻗치는 정연의 모습은 '전도연이 아니어도 가능했을까'를 생각하게 할 만큼 리얼하다. 연기적 눈속임으로 대충 먹는 척하다 컷 소리와 함께 뱉어 냈을 장면이 아니다.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가녀린 짐승의 생존 본능이 스크린 위에 선명하다.

"감독님도 촬영이 끝난 뒤 어쩜 그리 잘 주워 먹냐고 놀라시더라고요(웃음). 어찌 보면 현실적 장면이라기보다 굉장히 에피소드적인 구성이고 영화적인 장면이죠, 사실. 그렇지만 정연의 수년간 삶을 다 보여 줄 수 없는 영화적 상황에서, 배우인 저는 이 작은 에피소드 하나로 정연의 고통과 처절함을 관객께 전달해 내야 했어요.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나는 돌아가서 가족을 만나야 한다, 정연 입장에서 생각하니 절로 작은 빵 부스러기가 커 보이고 손을 뻗게 되고 흙이나 모래가 입안으로 함께 들어오는 건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 아닐까요?"

지난 2004년 발생한 실화를 다룬 ‘집으로 가는 길’은 외교적 공분을 일으키려는 사건영화가 아니다. 누군가의 부인이자 엄마였던 한 여인의 험난했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가족드라마로 감동을 선사한다. 전도연이기에 가능했다. 여왕의 귀환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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