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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칼럼] 추 영장 기각 ... 여야 모두 차분히 판결 지켜봐야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정치권에서는 영장 기각 시, 발부됐을 때보다 파장이 작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영장이 발부될 경우,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내란 혐의를 법원이 인정했다고 주장하며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정부에 강력히 요구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그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낙연 전 총리는 유튜브 방송에서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시 역풍이 만만치 않아 쉽게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란에 대한 민주당의 기존 입장을 고려하면, 역풍을 감수하고라도 추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위헌 정당 해산 청구가 실행될 경우, 일반 유권자들은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과 무관하게, 국민의힘을 '사라질 정당'으로 인식할 개연성이 높다. 구속되면 유죄로 간주하는 것과 유사한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영장 기각으로 그러한 시나리오가 일정 부분 제어되는 국면을 맞이했다. 구속을 면했다고 기소가 안 되는 것도, 영장 기각이 곧 무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반 유권자들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영장 기각을 민주당의 과도한 내란 공세에 대한 제동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영장이 기각된 지금,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제2의 사법 쿠데타’라고 언급했다. 현재의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른바 사법 개혁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 최우선으로 추진할 것은, 내란 특별 재판부 설치로 예상된다. 내란 특별 재판부 설치안은 이미 민주당 주도로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내란 특별 재판부 설치가 위헌적 요소를 내포한다는 입장이지만, 위헌 여부는 필자의 전문 영역이 아니므로 여기서 판단하지는 않겠다. 다만 국민의힘이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갈 경우, 사안이 상당히 복잡해질 것이라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내란 특별 재판부 설치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경우, 인용 여부에 따라 상황이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기존 재판부가 당분간 재판을 진행하므로 즉각적 혼란은 제한적일 것이다. 반대로 기각될 경우, 새로 구성되는 내란 특별 재판부가 일단 재판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때는 재판 지연이 불가피하다. 기존 재판 과정 전반을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헌법재판소가 가처분은 기각하되 본안 심사에서 국민의힘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재판 결과의 정당성 문제까지 대두될 수 있다. 즉, 내란 특별 재판부에 의한 판결이 무효라는 주장이 법리적으로 성립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재판이 중단되거나, 헌법소원 결과 위헌 결정이 나오면 기존 내란 재판의 결과들이 무효화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내란 특별 재판부 설치 문제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이 활용할 수 있는 추가 카드로는, 법 왜곡죄와 법원행정처 폐지 추진을 들 수 있다. 법 왜곡죄로 불리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서 법관이나 검사가 고의로 법리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조작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 등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이지만, 독일에서도 법 왜곡죄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법 왜곡죄를 도입한다면 다양한 논란이 예상된다. '고의'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 '사실 조작'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법리 왜곡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 없이 판검사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사법권 침해 논란을 넘어 삼권분립 위반 문제로 확대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 전담 재판부나 법 왜곡죄 등에 대해 사법부는 물론 법무부 차관까지도 위헌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해당 법안 및 개정안을 강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사안이 있다. 바로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국가 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와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배제를 담은 법안의 재입법 추진 상황을 질문하며 "속도를 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 영원히 살아 있는 한 형사 처벌하고 상속 재산의 범위 내에서 상속인들까지 끝까지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란 척결에 반대하는 국민은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과 민주당이 언급하는 '2차 종합 특검', 그리고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 등의 사법부 ’변화 추구‘를 연결해 생각하면, 내란 정국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연좌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상속인까지 책임지게 한다'는 부분이나 '영원히 살아 있는 한 형사 처벌'이라는 표현은, 내란 수사를 장기간 지속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도 개편까지 결합되면, 그러한 예상은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내란 수사가 장기화되면 국민들이 '내란 피로증'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이런 피로증은, 정치와 무관해야 할 내란 척결을 정치적 사안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여권(與圈)은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영장 기각 이후에도, 정치인 관련 법원 결정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됐다. 여야가 법원의 결정을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입장을 발표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대한민국 법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수호해야 하는 것이 정치권의 당연한 의무임에도, 자신들의 시각으로 사법부의 결정을 재단하려는 시도는 법치의 토대를 흔드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3권 분립 관련 논란이 제기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행태는 자제돼야 한다. 구속을 면했다고 무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야 모두 차분히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분명한 것은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 속도가 빠르면, 이런 논쟁적 태도도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법부는 이런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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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보내는 단상 : 분열과 갈등 속에 시작된 야만의 통상시대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2025년 달력도 이제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글로벌 통상의 관점에서 봐도 올해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30여 년 국제 무역을 관통해 온 규범이 지배하는 ‘이성의 통상시대’가 끝나고 분열과 대립 속에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야만의 통상시대’가 새롭게 시작된 원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야만’이라는 용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도 초강대국의 일방적인 불공정한 행위가 기존의 무역 질서를 허물어버리는 상황에서 전 세계는 입을 다물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이성이나 합리는 전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러니 야만이란 표현이 결코 무리가 아니다. 야만의 통상시대를 연 것은 분명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광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1월 20일 ‘미국 우선 무역정책’을 발표하면서 관세 광풍을 예고했다. 그리곤 2월 1일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을 대상으로 펜타닐 관세 부과를 발표, 실제 행동에 옮김으로써 관세 부과가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관세 광풍의 정점은 아마도 ‘미국 해방의 날’을 선포하면서 발표한 상호 관세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대상으로 최소 10% 이상의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였다. 세계를 대상으로 초강대국인 미국이 관세의 칼을 휘두르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미국을 주요 수출시장으로 둔 국가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상호 관세 압력 속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미국과의 양자 관세 협상에 나섰다. 결국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상호 관세 발효일인 8월 1일을 전후로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였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 말 미국과 구두로 합의한 다음 10월 말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협상 결과를 공식 문서화함으로써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종결하였다. 협상 결과는 어땠을까? 나라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미국 상품 사주기와 미국이 원하는 산업에 투자하기가 핵심이다. 기존 무역 질서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이와 같은 불공정에 강력히 항의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 미국과 제법 겨룰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국가도 자국의 이해와 직접 관계되지 않는 이상 고개를 돌리며 말을 아낀다. 오히려 미국이 쓰는 불공정한 보조금을 슬쩍 가져와 자국의 산업 보호를 위한 방패로 사용하기도 한다. 한술 더 떠 미국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 미국 이외 국가로부터 수입을 제한하는 데 활용하는 나라도 있다. 이쯤 되면 나타날 법한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끼리 뭉쳐 대항하는 연합전선은 기색조차 없다. 연합해서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말만 많지, 누구 하나 총대를 메는 나라가 없다. 그리고선 우리의 협상 결과가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 낫다느니 하면서 이상한 논리로 자위적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라고 만든 것이 바로 세계무역기구(WTO)이다. 그러나 많은 회원국이 모여 제 아무리 많은 논의를 한들, 어느 한 나라 대놓고 미국을 비난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간혹 뒷담화로는 미국을 비난한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그랬는지 찾으면 다들 자기는 아니라고 뒤로 내뺀다. 회원국 대부분은 미국이 자기 나라 상품을 사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묵언수행을 한다. WTO에도 다수결이라는 의사 결정 제도가 있어 다수결로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시도해 본 적조차 없다. 어떤 안건이건 미국이 반대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WTO 안에서도 미국을 견제할 만한 힘을 가진 나라들이 더러 있다. EU나 중국, 인도 등이 그러한 국가(지역)이다. 그러나 그 힘을 미국 비난에 쓰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해가 되는 의사 결정을 막는 데 사용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WTO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규범에 기초한 통상분쟁 해결은 중단된 지 오래다. 상소심을 판단할 위원들이 한 명도 없는 상태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렇다면 세계 무역의 실제 흐름은 어땠을까? 올해 세계 무역의 분절화는 더욱 심해졌다. 특히 러-우 전쟁 이후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한 민주-시장경제 블록(bloc)과 러시아-중국 중심의 사회-국가자본주의 블록이 대립하면서 이들 사이의 무역과 투자가 현저히 감소하였다. 소위 지정학적 공급망이 나타나 세계 무역은 더욱 분절화되는 한 해였다. 이것이 올 한해를 포함, 최근 2~3년 사이 국제통상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이렇듯 분열과 갈등 속에 힘을 앞세운 불공정한 강압 행위가 규범이 지배한 기존의 무역 질서를 혼란에 빠뜨렸으니 이성이 아닌 야만의 통상시대가 시작되었다는 표현은 과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무역과 화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소용도 없으며 울림도 없다. 이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은 결과이다. 야만의 통상시대에는 그에 어울리는 통상정책이 필요하다. 남들이 각종 보조금과 보호조치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으니 우리도 따라 불공정 행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상대방의 불공정으로 인해 국내 기업이 받는 불이익만큼은 상쇄해 주거나 줄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만의 통상시대 원년이 지나가고 있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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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지피지기] APEC 이후의 한중관계 어디로 가나
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⑬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11월 1일 회담이 끝난 다음 날 오전 8시 20분 회담 내용을 정리해서 온라인 인민망(人民網)에 올렸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공산당 당원 숫자는 1억27만1000명이다. 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전달되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이재명 대통령의 회담 내용에 대한 인식의 기본은 인민망이 전하는 내용이다. 인민망은 전날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다음의 4가지를 건의했다고 전했다. 중국어로 ‘사점건의(四点建議)’로 정리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전략적 소통(溝通)을 강화하고, 상호 신뢰의 바탕(根基)을 충실히 다지자. 이는 한중관계를 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공동발전을 해나가고, 구동존이(求同存異 : 서로의 견해차를 인정하는 가운데 같음을 추구한다는 중국 외교의 기본 책략)를 추구하면서 상호 윈윈의 협력을 해나가자. 서로의 사회제도와 발전 과정을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간의 핵심이익과 관심사를 인정하자. 우호적인 협상으로 상호간의 모순과 견해차이를 처리하고, 두 나라 사이의 대화 채널과 교류 시스템을 잘 활용해서 양국 관계의 발전역량을 모아나가자. ‘사점건의’의 두 번째는 서로간의 이익추구를 위한 협력을 심화하고, 이익 연결끈을 팽팽하게 만들어, 이웃이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잘 이해하자는 건의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협력을 비롯한 각종 과학기술 협력과 수사협력이 포함된다. 세 번째는 국민감정을 높이고 민심이 잘 소통될 수 있도록 촉진하자. 여론과 민의를 잘 인도해서 긍정적인 정보를 늘이고 부정적인 움직임은 억제하자. 네 번째의 건의는 다방면 협력으로 평화발전을 촉진하고, 무역체제의 다변화를 지켜나가자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정리한 이재명-시진핑 회담의 요점 ‘네가지 건의’에 대해 관영 신화통신은 2일 오후 ‘제1관찰’이라는 해설기사를 통해 “네 가지 건의(四点建議)는 11년 전인 2014년 시진핑 주석의 박근혜 대통령 시절 방한(訪韓) 당시의 ‘네 가지 동반자 관계(四個伙伴)’가 변화한 것으로, 중국의 대한(對韓)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실현되어 중국이 주변국들과 상호 윈윈하는 관계를 잘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신화통신은 11년 전의 ‘네 가지 동반자 관계’는 공동발전, 지역평화, 아시아 진흥, 세계번영 촉진이라고 정리했으나, ‘네 가지 건의’와 ‘네 가지 동반자 관계’가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11년 전의 ‘네 가지 동반자 관계’가 ‘네 가지 건의’로 변화한 것이 양국관계의 발전이 아니라, ‘쌍방향의 대등한 관계’에서 ‘한쪽 방향으로의 의사전달’로 퇴행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뒤집어보면 11년 전의 중국의 위상과 현재 중국의 위상이 달라진 점을 난해하게 표현한 것은 아닌지 잘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1일자에서 이번 APEC에서 나타난 한·미·중 관계에 대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국과 ‘깊은 관계(strong ties)’를 맺고 있는 한국은 갈수록 강화되는 두 나라 사이의 경쟁관계 때문에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논평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의 APEC 참석을 계기로 한·중관계를 개선하고, 양국간 경제협력을 강화해보려 했으나, 오랜 동맹관계인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과의 관계도 강화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복잡한 상황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고 진단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발표를 함으로써 한국을 워싱턴의 안보체계 안으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에 새로운 쟁점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제조 허용을 발표한 핵추진 잠수함은 중국과 북한 근해를 수색하는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핵추진 잠수함 한국 제조허용 발표는 한국 관리들에게도 놀라움을 안겨주었다고 이 신문은 아울러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APEC에서 한국은 안전보장은 미국과, 경제협력은 중국과 하겠다는 한국의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지(tricky) 깨닫게 해주었다”고 진단했다.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한국 정부가 이번 APEC에서 알게됐을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11년 만에 경주에서 이뤄진 이재명-시진핑 회담의 결과에 대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일 한·중 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는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정부의 국익과 실용에 기반한 대중외교를 통해 한·중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성숙한 발전을 추진하고, 양국 경제협력 구조 변화를 반영한 ‘수평적 협력’에 기초한 호혜적인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APEC 이후 앞으로의 한·중 관계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칠 요소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허용을 우선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9년 전인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발표한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ce · 고고도 미사일 방어망)의 한반도 배치에 중국이 보여준 거부감과, 2023년 4월 27일 42년 만에 부산항에 입항한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에 대해 중국당국이 보여준 반응을 보면 앞으로의 한·중 관계에 일어날 파고(波高)는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016년의 THAAD 한반도 배치나, 2023년 4월의 미 핵잠수함 켄터키함 방한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고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중국측은 과도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와 교류 중단, 한류(韓流)봉쇄 등 조치를 취했다. 특히 사드(THAAD) 배치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이루어진 조치였지만, 중국측은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서 몇 차례 한국과 미국 당국을 비난하는 일까지 있었다. 중국군 당국은 자신들도 사드에 대응하기 위한 러시아제 방공망을 산둥(山東)성과 지린(吉林)성에 배치하면서도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을 거두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취할 대중(對中) 외교정책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우선 안보는 미국과, 경제교류는 중국과 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정책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기본전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안미경중’이 ‘안중경미’로 바뀐다거나, ‘안미경미’, 또는 ‘안중경중’으로 우리 전략이 변한다면 우리는 정체성 상실과 생존위기로 몰릴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대결이 강화되더라도 과거 1970~80년대처럼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는 역사적 변화가 없으리라는 법이 없을 것이므로, 우리의 전략이 ‘안미경중’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견지하면서 워싱턴과 베이징에 끈질기게 설득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무리하게 벌인 글로벌 관세전쟁으로 앞으로 수십년간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최근 개최된 제20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통해 2026~2030년 제15차 5개년 계획을 확정하고 Made in China 2035와 Made in China 2049로 글로벌 경제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의 역사에서 동아시아에 미국의 영향이 미치지 않던 명조(明朝)와 청조(淸朝)시절에 조선왕조가 겪었던 고난과 핍박의 시대를 되돌아보면,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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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지피지기] 'Made in China 2049' …제조 패권 향한 위대한 세걸음
중국은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 세계 최강국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23년 7월 중국 헤지펀드 환팡퀀트(幻方量化)가 개발해서 공개한 AI ‘Deep Seek(深度求索)’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는 등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급변하고 있다. 아주경제는 중국의 오늘과 내일을 심도있게 분석해보는 ‘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시리즈 칼럼을 마련했습니다. 본지는 국내 최고의 중국 전문가들과 현지 특파원의 약 3주에 걸친 기획 칼럼을 통해 21세기 우리의 최대 시장인 중국의 변화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 주) 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1> ‘Made in China 2035’와 ‘Made in China 2049’가 바꿔놓을 세계 중국공산당 정치국은 지난 9월 29일 관영 신화(新華)통신과 중앙TV를 통해 “제20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오는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의에서는 국민경제와 사회발전에 대한 제15차 5개년 계획의 중대 문제를 연구해서 제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이 같은 결정은 중앙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이 주재한 회의에서 결정됐다”고 아울러 공지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10월 9일호에서 중국공산당의 4중전회 개최 사실을 전하면서 “시진핑이 중국의 새로운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오는 2027년으로 세 번째 5년 임기가 끝나는 시진핑이 2026~2030년에 걸친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함으로써 2027년 이후까지도 당권을 장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시사를 한 것이라는 뜻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제1차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은 마오쩌둥(毛澤東)주석이 1953년부터 실시한 계획이었다. 70여 년이 흘러 이번 4중전회에서 제14차 5개년 계획 제정을 위한 회의를 할 예정이지만, 이 계획과 별도로 ‘중국제조(Made in China) 2025’ 계획을 수립한 것은 리커창(李克强) 총리였다. 2년 전 상하이(上海)에서 사망한 리커창 전 총리는 2015년 5월 19일자로 ‘중국제조 2025에 관한 국무원 통지’를 각 성(省)과 자치구, 직할시 인민정부와 행정부 각 부로 보내면서 “성실하게 집행할 것”을 당부했다. 이 문서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내용으로 시작한다. “제조업은 국민경제의 주체요, 입국(立國)의 근본이다. 흥국(興國)의 도구이며, 강국의 바탕이다. 18세기 중엽 공업문명이 시작된 이래 세계 강국들의 흥망성쇠와 중화민족의 분투역사는 증명한다. 강대한 제조업이 없이는 국가와 민족의 강성은 없다. 국제경쟁력을 겸비한 제조업을 건설해야 나라의 종합국력이 상승할 수 있고, 국가의 안전과 세계의 강국 건설에 필수적인 길이 제조업을 건설하는 길이다. …‘중국제조 2025는 제조업 강국을 건설하기 위한 첫 번째의 10년 행동강령이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목표를 3단계로 나눈 ‘세 걸음(三步走) 전략’을 수립해서 제시했다. ‘제1보(第一步)’는 2020년까지 공업화의 기본을 실현하고, 2025년까지 제조업의 전반적인 소질(素質)을 대폭 제고하고, 혁신 능력을 현저히 증강하며, 노동생산율을 제고한다. 공업화와 정보화를 융합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중요한 공업단위들의 에너지 소모와 물질재료 소모, 오염물질 배출을 세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가진 다국적 기업과 산업그룹, 글로벌 산업 분업 구조에서 중국기업들의 지위를 뚜렷하게 높인다. ‘제2보(第二步)’는 2035년까지 중국 제조업의 수준을 세계 제조업 강국 진영에서 중등수준이 되도록 한다. 혁신 능력을 대폭 제고하고, 중점 영역의 발전에서 중대한 돌파(Breakthrough)를 확보해서 제조업 전반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중국의 우세한 업종들이 글로벌한 혁신능력을 리드하도록 해서 전면적인 공업화를 실현한다. ‘제3보(第三步)’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이 제조업 대국의 지위를 더욱 확고하게 해서 세계제조업 강국의 앞줄에 진입한다. 제조업의 중요 영역들의 혁신능력의 경쟁력 우세를 확보해서 전 세계의 기술체계와 산업체계를 리드한다. ‘국가 행동강령’으로 분류된 ‘중국제조 2025’ 계획은 전체 구조를 ‘일이삼사오오십(一二三四五五十)’으로 설정했다. ‘一’, ‘제조업 대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변화시킨다. ‘二’, 정보화와 공업화 두 가지를 융합시킨다. ‘三’, ‘세걸음(三步走)’ 전략으로 10년씩 30년간 추진한다. ‘四’, 4개항 원칙으로, 첫째는 시장원칙이 주도하고 정부는 인도한다, 둘째는 장거리 목표를 설정한다. 셋째는 전면적으로 추진하고 중점적인 부문에서 돌파를 이룩한다, 넷째 자주적으로 발전하되 윈윈하는 협력을 추구한다. ‘오오(五五)’, 두 쌍의 5원칙으로 한 쌍은 혁신, 품질우선, 녹색 발전, 우수한 결합, 인재 중시, 다른 한 쌍은 5대 공정으로 제조업 혁신, 기초 강화, AI활용 제조, 녹색 제조와 고수준 장비 공정이다. 마지막 ‘十’은 10대 영역으로 정보기술 산업, 디지털 컨트롤과 로봇산업, 우주산업, 해양산업, 철도교통장비,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생산장비, 농기계 장비, 신재료 공학, 생물의약과 고성능 의료기술 등 10개 영역이 대상이었다. 최근 들어 ‘중국제조 2025’가 이끈 중국 제조업의 성공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영국의 권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9월 23일자에 “메이드 인 차이나 계획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도널드 트럼프는 중국이 제조업의 슈퍼파워로 떠오르는 것을 저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제조업이 전 세계 제조업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제조업은 미국, 독일, 일본, 한국의 제조업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고 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 중국어 뉴스 방송은 올해 초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는 어떻게 중국을 떠오르게 했나(「中國製造2025」如何讓中國崛起)”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AI Deep Seek가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드론에서 전기자동차를 포함한 과학기술 영역에서 점차로 주도자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 10월 2일 “메이드 인 차이나 2035로 중국은 미국의 하이테크를 누른 다음 10년 이내에 군수공업에서도 미국을 추월할까”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SCMP는 중국과학원 원사 루융샹(路甬祥)의 논문을 인용해서 “세계의 제조업은 ‘새로운 시대(New Era)’로 진입하고 있으며, 2035년이면 중국 제조업이 미국을 초월해서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과학원 원장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루융샹 원사는 지난해 11월 5일 발행된 ‘기계공정학보’ 제60권 21기에 “세계의 제조업은 새 시대로 진입했다, 중국 제조업은 새로운 경계를 열고 있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루 원사는 이 논문에서 “미국은 첨단 과학기술과 첨단 군수공업 영역에서 여전히 세계를 리드하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미국은 정보혁명에서 승리한 이후 전통제조업과 첨단제조업, 제조서비스업 분야의 글로벌 분업 네트워크에서 노동집약형 저부가가치 제조업을 발전도상 국가들에게 넘겨주었고, 미 국내에서는 첨단기술 산업의 연구개발(R/D)을 보류하고, 주식과 증권, 금융투자 등 실질이 없는 사이버 경제 발전에 집중해왔다”고 분석했다. “금융투기가 과도하다 보니 국제간 충돌과 국내 민주, 공화 양당 간 정치투쟁이 격렬해져서 미국 제조업은 실질을 벗어나 가상을 지향하는 ‘탈실향허(脫實向虛)’ 현상을 가속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루 원사는 “미국 국내 기초 산업의 설비는 노후화하고, 제조업은 젊은 세대를 흡인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미국 제조업의 위축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분석했다. 루 원사의 논문은 “미국도 2022년 10월 미 대통령 과학기술정책실이 ‘국가 선진제조업 전략’이라는 정책을 마련하고 제조업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미국의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떨어져서 미국 제조업의 무역적자가 확대돼왔다”고 지적했다. 20세기 1950년대 미국 자동차 제조업의 상징 도시 디트로이트는 미국 내 4대 도시의 하나로 인구가 180만명까지 늘어났으나, 2013년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이 파산 지경에 이르러 인구가 70만명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루 원사는 소개했다. ‘Made in China 2025’가 올해 마무리되고, 10년 후에 ‘Made in China 2035’가 실현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1949년에서 100년이 흐른 뒤 보게 될 ‘Made in China 2049’가 이루어진 세계의 변화는 어떤 것일까. 세계은행(World Bank)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말 현재 미국의 GDP는 29.18조 달러(전 세계 GDP의 26.2%), 중국은 18.74조 달러(16.8%), EU는 19.42조 달러(17.5%), 일본 4.03조 달러(3.6%), 한국 1.71조 달러(1.5%) 정도다. 그러나 앞으로 10년이 흐른 뒤 ‘중국제조 2035’가 완성되면 이 수치는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거기서 다시 14년이 흐른 뒤 ‘중국제조 2049’가 성공하면 GDP 순위가 뒤바뀌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시진핑의 말대로 ‘중화민족의 부흥’이 이루어져 당(唐)제국, 청(淸)제국이 부활하기라도 해서, 국제질서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한 뒤 한반도의 대 중국 외교전략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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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지피지기] 이재명·시진핑 첫 만남 …무슨 말 오갈까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은 언제 어디에서 이뤄질까. 현재까지는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1박 2일간 경주에서 열리는 APEC을 계기로 이·시(李·習)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진핑 주석이 경주 APEC에 참석할 것이라는 중국 측의 공식발표는 없다. 그러나 지난 19일 시진핑과 전화 통화를 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다음 달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때 사이드 라인에서 만날 것(to meet Chinese leader Xi Jinping next month on the sidelines of the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Summit in South Korea)”이라고 썼다. 미국 대통령이 확인해 준 만큼 적어도 시진핑이 APEC에 참가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사이드 라인’이란 예를 들어 야구경기장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 경기장이 아닌 바깥쪽에서 내리는 경우 여기를 사이드 라인이라고 한다. 따라서 트럼프와 시진핑은 APEC의 정규 행사가 아닌 비정규 미팅 기회를 만들어 만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이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한국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는 중국 측에서 발표할 내용”이라고 조건을 붙였다. 조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경주 APEC 참석을 계기로 서울도 방문할 것이며 한·중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 일행이 머무를 곳이 신라호텔이 될 것이며 이와 관련해 호텔 측이 해당 기간의 결혼식 예약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시진핑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 다섯 번째 방문이 된다. 첫 한국 방문은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 당서기이던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진핑은 당시 KOTRA 초청으로 방한해 푸저우시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저장(浙江)성 당서기이던 2005년 7월에는 기업인 투자유치단 150여 명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 삼성, LG, SK, 효성 공장 등을 둘러봤다. 국가부주석이던 2009년 12월 14일부터 22일까지 한국, 일본, 캄보디아, 미얀마 4개국 순방 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고 경상북도를 방문해 한국 자동차부품 산업 경쟁력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주석에 오른 1년 뒤인 2014년 7월 3~4일에는 서울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뒤 서울대에서 “중국은 평화를 애호한다”는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내에서 ‘지한파(知韓派)’로도 분류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시 주석이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원래 중국 영토였다”고 했다든가, 당내에서 “한국전쟁은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말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널리 알려져 있다. 개혁·개방 시대에 연안 개방 지역의 지방 당서기, 성장(省長) 시절부터 한국 경제를 공부했고, 부주석 시절에도 한국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던 시진핑 주석이 이번에 서울에 와서 반중(反中) 시위대와 만난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6·3. 대선에서 당선된 일주일 후인 6월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과 통화하기에 앞서 당선 이틀 뒤인 5일에는 이시바 일본 총리와, 다음날인 6일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과 통화했다. 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통화 내용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상세하게 전했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 오래 교류를 해왔으며, 경제무역과 문화적 관계가 밀접하다”고 말하고,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지도 아래 위대한 발전을 이룬 점을 강조했다(정확한 번역은 이 대통령의 시 주석에 대한 언급이 중국의 정치 체제상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어 인용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이어서 “나는 한·중 관계를 고도로 중시하며 두 나라 간 우호관계가 깊이 발전하고 양국 국민들 간 감정이 개선되고 증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이 이 대통령 말에 앞서 길게 인용한 시진핑 주석의 말은 이런 내용이었다. “이 대통령의 당선을 다시 축하한다(시진핑 주석은 이 대통령의 당선 확정 직후 축전을 보내 당선을 축하한다는 뜻을 전했다). 중국과 한국은 서로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다. 두 나라는 의식형태와 사회제도의 차이를 넘어 각 영역에서 교류와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공동 발전을 성취해야 한다. (중략) 중국과 한국은 (1992년) 수교 당시의 초심을 견지하고, 이웃 간 우호를 견실하게 하며, 서로 간에 윈윈하는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중국과 한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양국 인민들의 복지를 증진하고, 변란(變亂)으로 얽힌 지역과 국제형세에 안정성을 증가시키고, (중략) 국제적 다자(多者)주의와 자유무역을 공동으로 지켜내며, 글로벌 산업공급망을 확보하자.”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강조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보여주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만들어내는 고립주의와 보호무역 성향을 비난한 것이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Global Times)는 시 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을 통해 국익을 중시하는 실용외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서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를 설명하면서 “이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대북 정책이 (전임 윤석열 정권과 다른) 조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환구시보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윤 전 대통령 당시 수교 이후 가장 낮은 골짜기(低谷)를 거쳤으며, 특히 윤 전 대통령은 대만 문제에 대해 잘못된(錯誤) 언행(2023년 11월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 “대만해협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을 해서 한·중 관계에 손해를 입혔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것은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의 AI 답변 시스템에 ‘안미경중(安美經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입력하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왔다는 점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은 한국이 장기적으로 봉행해 온 외교 책략으로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노선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평형을 추구한다는 책략이다. 그러나 이재명 한국 대통령은 지난 8월 ‘안미경중 노선은 이미 지속할 수 없게 된 노선’이라고 명확히 했다. 이는 한국 외교정책에 중대한 전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안미경중 정책을 버린다면 어떤 정책을 선택하게 될까. 중국은 한국 정부가 ‘안중경중(安中經中·안보도 경제도 중국에 의존)’ 정책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10월 말 서울에서건 경주에서건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을 한다면 시 주석은 한국이 안미경중에서 탈피해서 안중경중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표현하게 될까. 시진핑이 만약 “한국이 제3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외교노선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안중경중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조선시대 명·청(明淸)과의 관계사에 제3국(미국)이 없는 한반도와 대륙의 관계는 유사시 한반도가 대륙 왕조의 강요를 거부할 수 없는 관계였다는 사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시진핑은 2032년 80세까지 최고 권좌(權座)에? 시진핑(習近平·72)은 중화인민공화국(PRC·People’s Republic of China)의 당·정·군(黨政軍) 최고위직 세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국가주석(President), 중국공산당 중앙 총서기(General Secretary), 중앙군사원회 주석(Chairman) 등 세 최고권좌에 시진핑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국가주석은 2013년부터 12년째, 당총서기와 군사위 주석에는 각각 2012년부터 13년째 권좌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미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가 발행하는 온라인 계간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ror) 2025년 가을호는 CIA와 NSC에서 중국 분석관을 지낸 조너선 친(Czin)의 기고문을 통해 시진핑이 2027년 가을에 열릴 제22차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계속 집권할 가능성에 대해 진단했다. 친은 시진핑이 제22차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4연임에 성공하면 80세가 되는 2032년 가을 제23차 전당대회 때까지 집권하게 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조건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우선 시진핑 자신은 예외로 만들어 3연임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당과 정부의 첫 번째 인사원칙으로 살아 있는 ‘7상8하(67세까지는 새로운 직위에 임명될 수 있지만 68세 이후에는 인사 임명 대상에서 제외)’에 따라 2027년 가을에는 함께 일해온 정치국 상무위원 대부분과 많은 정치국원들이 퇴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7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딩쉐샹(丁薛祥·63·국무원 부총리)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6명 모두 퇴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시진핑 자신의 3연임 기간에 시행했던 정책들의 계속성 유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위원 24명으로 구성돼 있는 정치국에서도 중국 외교의 중추 왕이(王毅·72)를 비롯해 미국과의 관세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던 허리펑(何立峰·70) 등 10명에 가까운 국원들이 연령 문제로 퇴임해야 한다. 과연 75세인 시진핑이 측근들이 대부분 퇴임하는 가운데 임기 종료 때 80세가 될 4연임을 강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진핑 본인도, 중국공산당도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 언급이 없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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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지피지기] 전승 80년, 텐안먼 위 3지도자의 동상이몽(同床異夢)?
9월 3일 오전 10시 중화인민공화국 수도 베이징(北京)시 중심 톈안먼(天安門) 위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나란히 설 예정이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 훙레이(洪磊)가 지난 28일 ‘중국 인민 항일전쟁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활동 뉴스센터 첫 기자회견에 나와 밝힌 행사 참가자 명단은 모두 26명이다. 푸틴과 김정은에 이어 캄보디아 국왕 시하모니, 베트남 국가주석 루옹꾸옹(梁强), 라오스 국가주석, 인도네시아 대통령, 말레이시아 총리, 몽골 대통령, 카자흐스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이란 대통령, 콩고 대통령, 쿠바 국가주석 등이다. 훙레이는 평소 중국이 북한보다 훨씬 중요시하는 국가수반들을 모두 제쳐두고 푸틴에 이어 두 번째로 김정은을 호명했다. 행사 기간에 중국 외교당국이 김정은을 어떻게 접대하는지를 보면 앞으로 중·북 관계를 짚어볼 수 있을 전망이다. 중국공산당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반파시스트 전쟁’이라고 부른다. 독일 히틀러의 나치스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일본의 군국주의자, 이들 세 나라가 1931년 9월 18일 일으켜서 1945년 9월 2일까지 계속된 전쟁이다. 일본군이 만주를 공격한 만주사변이 시작된 날부터 일본 왕을 대신한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외무대신이 도쿄(東京)만에 정박한 미군 전함 미주리 갑판 위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까지다. 중국공산당 공식 문서에는 “항일전쟁은 1937년 7월 7일 일본군이 베이징 서남쪽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을 일으키면서 시작됐고, 일본군이 8월 13일 상하이(上海)를 침공하자 9월 하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 국공합작을 통해 민족적인 항전을 전개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마오쩌둥(毛澤東)이 톈안먼 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은 제2차 대전 종전 4년 후인 1949년 10월 1일이었다. 일본이 1945년 9월 2일 맥아더 장군 앞에서 종전 항복문서에 서명할 때 중국 대표로 참석한 사람은 중화민국 쉬융창(徐永昌) 중장이었다. 2차 대전은 유럽 쪽에서는 1945년 5월 8일 오전 10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오늘 밤 자정으로 독일군의 적대행위가 공식적으로 끝난다”고 방송함으로써 종전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5월 9일을 전승절로 기념하고 붉은광장에서 열병식을 거행한다. 지난 5월 9일 블라디미르 푸틴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나란히 러시아군 열병식을 참관했다. 중국공산당에게 전승절은 '중국 인민들이 모두 나서서 일본과 싸워 이긴 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군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1945년 9월 2일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는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주도하는 중화민국 정부였지만 중국공산당은 이미 1937년 9월 하순부터 국공(國共)합작을 한 뒤 일본군과 전쟁 상태에 돌입해서 항전을 해왔기 때문에 '전 인민과 함께 항일전쟁을 전개한 것'으로 정리했다. 그럼, 2차 대전 승리의 주역이었던 미국과 유럽이 하지 않는 승전 기념행사를 왜 중국과 러시아는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을까. 이에 대해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 소속 카이난 가오 (메릴랜드 대학) 교수와 마거릿 피어슨 연구원은 '군사 퍼레이드와 전쟁의 기억 : 중국과 러시아는 역사의 기억을 통해 국제 질서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는 논문을 최근에 내놓았다. 2차 대전 이후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특히 나토(NATO)와 유럽연합(EU)의 세력 확장이 두드러진 데 대해 전승절 기념 군사퍼레이드를 통한 무력 과시로 재편된 국제질서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중국과 러시아는 2차 대전이라는 역사의 의미를 재조정하기 위해 세 가지, 즉 첫째는 파시즘을 패배시키는 데 중국과 러시아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공헌이 컸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둘째는 2차 대전 후 전후 국제질서 재편에 중요한 역할을 한 카이로 협정과 포츠담 협정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공정하지 못했으며, 현재의 영토적 질서나 전략적 질서에 중국과 러시아가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셋째로 앞으로 전후 국제질서에 대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행사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러시아의 전승절 기념식 퍼레이드를 참관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 관영매체에 이렇게 밝혔다. “국제질서는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어 유엔의 권위를 잘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엔헌장에 먼저 서명한 국가로서 그리고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으로서 중국은 결코 세계가 ‘강권(强權)이 곧 공리(公理)’인 밀림의 법칙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반파시스트 전쟁의 성과를 잘 지키고, 다변(多邊) 주의를 견지해서 평화를 통해 인류가 밝은 미래를 쟁취할 수 있도록 하겠다.” 시진핑을 수행했던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도 중국이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를 벌이는 데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80년 전 중국은 소련을 포함한 전 세계의 진보 역량들과 함께 거대한 민족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반파시스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중국은 반파시스트 동맹의 중요한 구성원의 하나로 유엔을 성립시켰으며, 유엔헌장의 공동 제정을 통해 각국이 평화와 발전의 역사를 여는 데 기여했다. 2차 대전의 아픈 교훈은 강권과 패권은 평화의 길이 아니라는 것이며, 제로섬 게임과 승자독식의 길을 버리고 전 세계가 공동으로 유엔헌장을 중심으로 한 전후 국제 체계와 국제질서를 잘 지켜가야 할 것이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와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가 지난 28일 한국 언론에 공동기고문을 보내 주장한 것도 시진핑 국가주석과 왕이 외교부장의 말과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올해는 중국 인민 항일 전쟁, 소련의 위대한 조국 수호 전쟁 승리 80주년이자 한국 광복 80주년이다. …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위대한 승리 80주년이 지난 오늘에 일부 사람들이 지정학적 정치 목적으로 시대를 거스르고, 일부러 2차 대전의 역사를 왜곡하고 전쟁의 결과를 수정하려는 시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부 국가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정글 법칙과 패권 논리를 펼쳐 정치적 제로섬 게임을 선동하고… 러시아와 중국은 일부 국가에서 신형 나치주의가 회복되어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시설을 참배하고 역사가 왜곡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 … 100년 만에 대변국(大變局)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제 질서가 심층적으로 조정되면서 인류는 또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 측의 전승절 기념식 초청에 직접 가는 대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관토록 했다. 이 대통령의 선택에 대한 시진핑과 왕이 외교부장의 심사는 어떤 것일까. 우원식 의장은 오는 3일의 전승절 참석을 전후해서 베이징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오게 될까.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통령 특사단은 지난 26일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만났다. 한·중 수교 33주년 기념일인 지난 24일 베이징에 도착한 특사단은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 왕원타오(王文濤) 상무부장, 한정(韓正) 국가부주석 등을 잇달아 만났고, 자오 위원장은 특사단이 만난 최고위급 인사였다. 자오 위원장은 "중국과 한국은 흔히 '옮길 수 없는 이웃, 떼어놓을 수 없는 협력 파트너'라고 말한다"고 전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한 관계가 좋으면 양측이 이익을 얻고, 반대로 좋지 않으면 양측이 손해를 본다'고 강조했다"면서 "이것이 바로 지난 33년간 중·한 관계 발전 과정이 양측에 남긴 중요한 교훈과 경험"이라고 말했다. 자오 위원장이 전한 시진핑의 말 가운데 “중국과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라는 말은 시 주석이 한국에 대해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만 뒷부분 “관계가 좋으면 양측이 이익, 좋지 않으면 양측이 손해”라는 말은 처음 인용되는 말이다. 박병석 전 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이번 특사단이 시진핑을 못 만난 것은 지난 다섯 번의 한국 대통령 특사가 중국 국가주석을 모두 만난 기록에 비하면 앞으로 한·중 관계가 걱정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시진핑이 베이징에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자오러지 위원장이 특사단을 만난 날 오전에 시진핑은 러시아 두마 위원장과 만났고, 캄보디아 시하모니 국왕 부부를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함께 부부 동반으로 만난 것으로 중국 관영 TV에 톱뉴스로 보도된 점 또한 앞으로 한·중 관계에 걱정이 되는 대목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중국군 퍼레이드가 진행될 때 톈안먼 누대 위 중앙에 설 시진핑에게서 얼마나 떨어진 위치에 서게 될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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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지피지기] 9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이 천안문 위에 선다면…
필자는 10년 전인 2015년 7월 5일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시사주간 주간조선에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천안문 위에 서야 한다”는 글을 썼다. 당시 필자는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로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자격으로 그 글을 썼다. 10년이 흐른 2025년 7월 22일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9월 3일 천안문 위에 선다면…”이라는 글을 쓰려고 한다. 오는 9월 3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 겸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일’ 군사퍼레이드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10년 단위가 꺾어지는 해에 하는 행사를 중요시하는 중국인들의 관념에 따라 중국 정부는 10년 만인 오는 9월 3일 천안문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 겸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일’에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을 초청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 마오닝(毛寧) 대변인은 지난 2일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해당 행사에 이재명 한국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해당 행사에 외국 지도자들을 초청했으며 각국과 의사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은 왜 9월 3일을 전승절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군사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을까. 1945년 9월 2일 오전 9시 일본 도쿄만(東京灣)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있었다. 20분 정도 진행된 항복문서 조인식에는 미국 대표로 일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MacArthur) 장군이 목 양쪽 옷깃에 별 다섯 개를 달고 나왔고, 일본 측에서는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외무상이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대신해서 나왔다. 항복문서 일어본에는 히로히토 일왕과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王) 총리대신 이하 14명의 내각이 연명으로 서명했다. 미주리 함상에서 영어본에 서명한 사람은 외무상 시게미쓰였다. 당시 항복문서 조인식 광경을 녹화한 미국 유나이티드 뉴스(United News) 동영상을 보면 미주리 함상에는 먼저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미국·중국·영국·소련·프랑스·네덜란드·호주·캐나다·뉴질랜드 대표가 갑판에 올라와 있었고, 일본 외상 시게미쓰는 나중에 작은 연락선을 타고 미주리 함상으로 올라왔다. 미주리함 갑판에 올라선 시게미쓰 외상은 지팡이를 짚고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게미쓰가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데 대해 유나이티드 뉴스 앵커는 “시게미쓰 외무상은 몇 년 전 상하이에서 ‘Korean patriot(한국인 애국자)’에게 공격을 당해…”라고 설명했다. 시게미쓰의 다리를 절게 만든 ‘한국인 애국자’가 누구일까. 윤봉길 의사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현 루쉰<魯迅>공원)에서 열린 일왕 출생 기념일 천장절 기념식에 참석한 일본 군인들에게 폭탄을 던져 많은 일본 장성을 죽인 그 현장에 시게미쓰는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로 참석했다. 그랬다가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오른쪽 다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로부터 13년 후 도쿄만에서 열린 항복문서 조인식에 오른쪽 다리를 의족으로 하고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것이었다. 시게미쓰는 1887년생 도쿄대 법대 출신으로 일 외무성에 들어가 외무상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오른쪽 다리를 잃고 58세에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미주리 함상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중국 측은 국민정부군(국부군) 군사위원회 군사령부장 쉬융창(徐永昌) 장군이 참석했다. 1945년 9월 2일 당시는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은 일본 제국주의에 힘을 합쳐 대응한다는 뜻의 ‘국공합작’ 기간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것은 4년 뒤인 1949년 10월 1일이었다. 1946년 4월 중국국민당은 중앙상무위원회 결정으로 항복문서 조인식 다음 날인 9월 3일을 승전기념일로 공포해서 휴일로 지정했다. 중국공산당이 수립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49년 12월 23일 승전기념일을 8월 15일로 반포했다가 1951년 8월 13일 정무원령으로 승전기념일을 9월 3일로 변경했다. 그랬다가 2014년 2월 27일 승전기념일로 확정 발표하면서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 겸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일’로 지정해서 9월 3일부터 6일까지 나흘간을 연휴로 지정했다. 중국이 말하는 ‘반(反)파시스트 전쟁’이란 2차 대전의 다른 말이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정부가 파시스트(Fascist·전체주의자)들이며, 세 나라의 파시스트들이 일으킨 전쟁을 미국·영국·중국·소련·프랑스 등이 맞서 싸워 패배시킴으로써 2차 대전이 종결됐다고 본다. 1945년 9월 2일 미주리 함상에서 있었던 일본 군국주의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연합국 대표들이 참석한 것도 바로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다. 중국은 국부군 대표인 쉬융창 장군이 중국의 국민대표로 조인식에 참석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항복문서 조인식 다음 날인 9월 3일을 승전기념일로 지정했다.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중국에서 힘을 합해 항일전쟁을 벌인 것을 우리 한국인들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24세의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져 한민족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와 중국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게 깊이 각인시킨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윤봉길 의거로 더 이상 상하이에 주재하지 못하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항저우(杭州)를 비롯한 여러 중국 남부 도시를 전전하다가 충칭(重慶)까지 옮겨 갔다. 충칭에 번듯한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는 데에는 마오쩌둥의 지시를 받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상당한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상하이 중국 학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9월 3일 베이징(北京) 천안문광장에서 열리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와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일’ 퍼레이드 때 천안문 위에 올라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사열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윤봉길 의사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왕 생일 기념식에 폭탄을 던져 미주리 함상의 항복문서 조인식에서 서명한 일본 외무상 시게미쓰의 다리를 불구로 만든 윤봉길 의사의 넋을 위로하는 뜻에서라도 중국 정부가 준비한 9월 3일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천안문 위에 올라 시진핑을 포함한 전 세계 지도자들과 함께 사열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그동안 1945년 8월 14일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 방송을 한 다음 날인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하고 기념해 왔다. 당시 일본 왕의 항복 방송은 다소 슬픈 어조로 방송돼 일본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일본 왕의 슬픈 항복 방송 음성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윤봉길 의사가 다리를 부러뜨린 시게미쓰 마모루 일본 외상이 미주리 함상에서 절뚝거리며 항복문서에 조인하는 광경을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오는 9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은 천안문 위에 서서 중국군의 퍼레이드를 다른 승전국 대표들과 함께 사열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야 윤봉길 의사의 의거도 완성되는 것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다. 10년 전 전승절 70주년에는 49개국 국가원수와 대표들이 천안문 성루에 올랐고, 한가운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 오른쪽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다음이 박근혜 대통령, 세 사람 건너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 오른쪽 끝에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 위원이던 최룡해가 서고, 시진핑 왼쪽에는 중국공산당 상무위원들이 서는 대열이 형성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현 국제정세에서 결정적으로 중국 곁에 서게 되는 형세를 만든다는 국내의 우려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으로 중국을 글로벌 패권국가의 대열에서 탈락시키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중국이 주도하는 전승절 군사퍼레이드를 천안문 망루 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서서 사열한다는 것은 모양상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판단을 우리 외교당국은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기념하는 전승절은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다. 전승절은 80년 전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군과 연합군이 거두었던 항일전쟁 최종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라는 점을 다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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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칼럼] 시진핑 4연임 가능할까
요즘 우리나라 유튜브 네트워크에 올라오는 중국 국내 정치 관련 OTT의 제목들을 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은 이미 정치적 권력과 영향력을 상실하고 2선으로 쫓겨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진핑 축출 임박했다…곧 대륙이 갈갈이 찢어진다.' '시진핑을 향하는 원로들의 칼…시진핑의 비참한 최후.' '시진핑의 후임자, 왕양(汪洋)인가, 후춘화(胡春華)인가.' '드러난 리커창(李克强) 암살 전모…시진핑의 작품이었다.' '시진핑의 정치적 운명이 이미 끝장났다'는 무시무시한 시나리오에 군불을 때는 우리 유튜버들 중에는 전직 정보기관원도 있고, 현직 대학교수도 있으며, 재중(在中) 한인 동포도 있다. 이른바 ‘대륙 정치 전문가’라는 유튜버가 등장하는 대만 유튜브 OTT들은 우리 유튜브들보다 더욱 그럴싸하게 시진핑이 폭망했다는 시나리오를 엮어댄다. 이들은 “오는 8월 말에는 중국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 즉 4중전회가 열려 시진핑의 실각 또는 2선 후퇴가 발표될 것”이라는 예언을 풀어댄다. 20기 3중전회가 작년 7월 15~18일 개최됐으니까 4중전회가 오는 8월 27~30일 개최된다는 개최 시기 예상은 상당히 그럴듯하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관례에 따르면 중앙위 전체회의 개최 여부는 대외비이며 실제로 개최된다고 해도 회의 마지막 날에 ‘공보(公報)’가 발표돼 회의 내용과 결론을 알려줄 뿐이다. 중국공산당은 아직 20기 4중전회 개최를 공지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5년마다 한 차례씩 개최하는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는 공개하지만 중전회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우리나라와 대만 유튜버들이 “시진핑이 끝장났다”고 주장하는 시나리오는 대체로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인민해방군 최고 통수권자인 시진핑이 중앙군사위 주석으로서 군 인사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2년 전 2022년 10월 22일 개최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폐막식 도중 인민대회당에서 강제 퇴장당한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가 영향력을 회복해 시진핑에게 정치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나 제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달리 군인 출신이 아닌 시진핑이 인민해방군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는 실제로 발생한 인사 사고들이 증거로 제출된다. 2년 전 리위차오(李玉超) 로켓군(Rocket Army) 사령관이 부패 혐의로 숙청된 데 이어 지난해 6월 웨이펑허(魏鳳和)와 리상푸(李尙福) 두 국방부장(장관)이 7개월 간격으로 잇달아 당적을 박탈당했다. 로켓군은 원래 ‘제2포(第二砲)’로 불리던 화력지원 부대였는데 시진핑이 2012년 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취임하면서 국제 흐름에 맞춰 로켓군으로 편제를 확대했다. 그 로켓군 초대 사령관 저우야닝(周亞寧)도 숙청돼 종적을 감췄으며, 심지어는 인민해방군 최고 지휘부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인 먀오화(苗華) 해군 상장도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설상가상으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2명 가운데 정치공작을 담당하던 허웨이둥(何衛東)도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이후 실종 상태다. 더구나 허웨이둥의 전임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치량(許其亮)도 지난 2일 심장마비로 사망해 시진핑은 군부 문제를 의논할 상대를 잃었다. 쉬치량 빈소에는 시진핑과 리창(李强) 총리를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이름이 새겨진 조화가 세워졌는데, 이들 7개 조화 끝머리에 2년 전 당대회 폐막 때 강제 퇴장당했던 후진타오(胡錦濤) 이름이 새겨진 조화가 세워져 중국 안팎에 화제가 됐다. 대만 유튜버들은 후진타오의 영향력 회복을 불쏘시개로 해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를 비롯한 당 원로들이 지난 4월 25일 개최된 정치국 확대회의에 나와 시진핑의 과오를 비난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원로들 가운데 108세인 쑹핑(宋平) 전 조직부장까지 확대회의장에 나와 시진핑의 과오를 비난했다고 대만 유튜버들은 주장했다. 우리나라와 대만 유튜버들은 오는 8월에 열리는 4중전회에서 시진핑은 실권을 잃고 2선으로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생전에 마오가 후계자로 지명한 화궈펑(華國鋒)이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목숨과 지위는 유지한 채로 실권을 상실하는 방식을 시진핑도 겪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중국 관영 중앙TV는 16일 시진핑이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의 상하이협력기구 회의 참석을 위해 아스타나 공항에 도착해서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영 미디어들은 시진핑이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하고, 10일에는 한국 대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과 당선 축하 전화통화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중국 관영 미디어들의 보도 태도는 2년 전 2022년 가을 제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하고, 2027년 가을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제21차 당대회에서 임기 5년의 4연임을 예약해 놓은 시진핑의 운명이 바뀔 것이라는 어떤 단서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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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칼럼] 미국을 초월하라…시진핑의 '중국의 꿈'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13일 오전 베이징(北京) 중심부 인민대회당에서 ‘천윈(陳云)동지 탄신 120주년 기념 좌담회’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시진핑(習近平)을 비롯, 리창(李强) 총리, 왕후닝(王滬寧)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차이치(蔡奇)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판공청 주임, 딩쉐샹(丁薛祥) 부총리, 리시(李希)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 당 최고 지휘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모두 참석했다. 사회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 자오러지(趙樂際)가 보았다. 3000여 명을 수용하는 인민대회당에는 당정군(黨政軍) 수뇌부가 대부분 참석했다. 시진핑은 개막 연설을 통해 “천윈 동지는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이자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창시자로, 마오쩌둥(毛澤東)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제1세대 집단지도체제의 핵심이자, 덩샤오핑(鄧小平)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제2세대 집단지도체제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천윈 동지는 제1차 경제 5개년 계획을 짜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경험을 중시하고 우리의 국정에서 출발해서 사회주의 공업화와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중국공산당은 천윈(1905~1995) 당시 부총리의 기본계획 입안으로 한국전쟁이 휴전이 된 1953년부터 제1차 경제 5개년계획에 착수해서 2006~2010년에 제11차 5개년 계획, 2011~2015년에 제12차, 2016~2021년 제13차, 2021~2025년에 제14차 5개년 계획을 진행했고, 내년인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제15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한다. 시진핑은 지난달 19일 허난(河南)성을 시찰하면서 15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기본 사고방식과 목표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제조업은 국민경제의 중요한 기둥이며, 중국식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제조업의 합리적인 비중을 유지해야 한다. 현대 제조업은 과학기술과 분리할 수 없으며, 15차 5개년 계획 기간에 우리의 현대 제조업 발전의 중요 영역은 첨단화, AI화, 녹색화를 3대 목표로 삼고 나가야 한다.” 경제 5개년 계획과는 별도로 중국 국무원은 2015년 5월 리커창(李克强 · 1955~2023) 당시 총리의 지휘 아래 2025년까지 중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10년 계획을 짜서 ‘중국제조 2025(中國製造 2025 · Made in China 2025)’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중국이 생산하는 상품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큰 것에서 강한 것으로의 변화(大變强)’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리커창 총리는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를 필두로 장강(長江) 하류 해안지대의 쑤저우(蘇州), 난징(南京) 닝보(寧波) 등 도시들을 시범 도시로 선정해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의 품질 개선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들은 이른바 ‘짝퉁’이라는 오명을 벗고 괜찮은 품질임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내 TV들이 이들 지역에 대한 르포 화면을 보여주는 제조 공장 내부는 말 그대로 우리가 괄목상대해야 할 밝고 청결한 상태에서 로봇을 동원한 자동화가 진행 중임을 과시한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인 것은 ‘중국제조 2035’ 프로젝트다. 내년부터 2035년까지 진행될 중국 제조품의 품질 고도화의 목표 Made in China 2035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중국 AI 딥시크(Deep Seek)에게 물어보자 “초월미국(超越美國 · 미국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전 세계 신형 에너지 차량의 60%가 메이드 인 차이나가 될 것이며, 중국차 BYD가 테슬라를 누르고 정상에 오르는 한편, 반도체 자급률은 3년마다 2배로 높아질 것이고, 5G를 기본으로 한 AI 네트워크는 대폭 확장되는 데다가 양자(量子)컴퓨팅 비밀 코드는 우주산업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거침없는 답을 내놓는다. 15차 5개년 계획이나 ‘중국제조 2035’는 모두 2012년 중국공산당 제18차 전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의 꿈(中國夢 · China Dream)’이라는 지도사상과 집권 이념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중국공산당의 공식 입장이다. ‘중국의 꿈’의 정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꿈’이 처음 제시됐을 때 미국과 유럽의 중국 관찰자들은 “중국의 꿈이란 중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던 청나라 초반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중국 제조 2035’의 목표가 “미국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중국공산당의 목표설정은 “화평발전(Peaceful Development)”이라는, 미국과 전쟁 없는 평화를 내세웠던 덩샤오핑의 목표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을 세계가 잘 인지해야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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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 칼럼] 미·중 관세전쟁 중국의 득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워싱턴 시각으로 지난 11일 오전 SNS를 통해 이렇게 발표했다. “중국과의 딜(협상)은 끝났다. 중국과 우리의 관계는 우수하다. … 영구 자석과 희토류(rare earth)를 중국이 우리에게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 이에 따라 우리는 중국 유학생들이 우리의 대학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희토류와 하버드 유학 비자.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에서 희토류는 미국에게 아킬레스건이었고, 하버드 유학 비자는 중국에게 아킬레스건이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何立峰) 국무원 부총리 겸 중국공산당 정치국원은 12일 런던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결론은 지난 4월부터 불붙었던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이 90일간의 휴전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두 나라가 각각 상대방 상품에 부과하기로 했던 관세를 115% 낮추기로 합의한 배경에는 희토류와 하버드 유학 비자라는 아킬레스건을 서로 허용하기로 한 결정이 있었음을 전날 트럼프가 공개한 것이었다. 뉴욕 타임스 베이징(北京)지국장으로, 2009년부터 16년째 희토류 기사를 쓰고 있는 케이스 브래셔(Bradsher)는 런던에서 미·중 관세전쟁 휴전이 이루어진 12일 NYT 뉴욕판 1면에 ‘관세전쟁 휴전 뒤에는 중국의 교묘한 일처리(finessing)가 있었다’는 기사를 썼다. “미국에 대한 지렛대(leverage)인 희토류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과도하게 보이지 않도록 조심했다”는 것이었다. 브래셔는 미·중 관세전쟁 휴전이 발표된 11일 장시(江西)성 간저우(贛州)의 최대 영구자석 생산업체 JL Mag Rare Earth Co.(金力永磁稀土公司)가 “국무원 상무부로부터 미국, 유럽과 동남아 국가들에게 비(非)군사용 자석 수출을 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았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혔다고 전했다. 브래셔는 중국이 2021년부터 전 세계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정부의 정책으로 시장을 조절하는 오랜 관행을 갖고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희토류 전문가로 US Critical Material Co. 대표인 짐 헤드릭(Hedrick)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생산업은 미국보다 30년 앞서서 시작했으며, 앞으로 미국은 적어도 5년간은 중국 희토류 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희토류로 제조하는 영구자석은 자동차와 드론, 미사일, 전투기 제조에 필수적이며,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스티어링 제어에는 약 100종의 소형 희토류 영구자석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군용 장비에 필수적인 희토류 사마리움(Samarium)은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저가 공세로 가격이 폭락한 상태. 브래셔에 따르면. 중국의 저가공세로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말레이시아에 있던 일본 희토류 생산공장은 1992년에 문을 닫았고, 프랑스는 1994년에 가공공정을 포기했다.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에 운영 중이던 미국 희토류 생산 라인은 1998년에 멈춰섰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지난 2010년 대만 근해의 센가쿠(尖閣 중국명 釣魚島) 제도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빚어졌을 때 중국 정부는 2개월 대일 수출금지 조치를 내려 일본 기업들이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지난 11일 ‘미국의 군사력이 얼마나 많이 중국의 희토류에 의존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그래픽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69.2%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은 11.5%, 미얀마 7.9%, 태국 · 나이지리아 · 호주가 각 3.3%, 인도와 러시아 마다가스카르가 0.5~0.7%를 차지하고 있다. 매장량은 2024년 현재 중국이 4400만 톤, 브라질이 2100만 톤, 인도가 690만 톤, 러시아 380만 톤, 미국이 190만 톤, 그리고 베트남, 그린란드, 남아공, 탄자니아가 소량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희토류가 관세전쟁에서 미국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대학에 대한 중국 유학생 비자 발급권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널리 알려졌다. 마코 루비오(Rubio)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중국 공산당 관련자들이 포함된 중국 유학생이 미국 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비자를 폐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트럼프의 승인을 받은 발표였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따르면 지난 2019~2020년 중국 유학생들에 의해 미국 대학에 흘러 들어온 달러는 15조9000억 달러였다. 디플로맷은 “이전에는 중국 학생들의 미국 유학은 문화교류 차원이었지만 무역전쟁 시대에 들면서 철강에 대한 관세나 반도체에 대한 수출입 통제와 같은 차원의 관리수단으로 바뀌어 관세전쟁 협상테이블에 오르게 됐다. 유학비자 가운데 특히 STEM(과학기술과 공학, 수학)분야는 미국정부의 무역 관리 대상이 됐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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