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 논설주간
gjgu7749@ajunews.com
- 아주경제 논설주간
- (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지국장)
- [박승준의 지피지기] 중국 내정간섭 DNA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anuk). 캄보디아 근대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1922년 10월에 출생해서 90년을 살고 2012년 10월에 사망했다. 그의 일생은 태평양 전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를 점령했던 일본의 시각으로 볼 수도 있고, 1887년부터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통치하던 프랑스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으며, 1970년 론 놀 정권을 세워 시아누크를 실각시켰던 미국의 시각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1979년 캄보디아를 침공했던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 이웃 나라들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다. 여기서는 1970년 론 놀 정권 수립으로 소련 수도 모스크바 여행 중에 실각한 그의 망명을 받아들인 중국의 시각에서 보기로 하자. 1970년 3월 18일 미국이 획책한 론 놀 정권의 쿠데타로 국왕 자리에서 폐위된 시아누크는 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하던 중에 프놈펜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 당초 프랑스, 소련, 중국 3개국 순방을 떠난 길이었으므로 일단 베이징(北京)까지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 지도자들에게 폐위 소식을 들은 시아누크는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갈 곳이 없어진 신세를 생각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3월 19일 오전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린 시아누크를 기다리고 있던 인물은 놀랍게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였다.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예젠잉(葉劍英)과 리셴녠(李先念)도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베이징에 주재하는 46개국 대사들도 공항에 나와 있었다. “시아누크 국왕의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국왕께서는 여전히 캄보디아의 국가원수이십니다. 우리는 영원히 국왕이심을 승인합니다.” 저우언라이 총리의 그런 말로 시작된 환영의식을 본 시아누크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우언라이와 두 차례 회담을 한 시아누크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민족통일전선과 연합정부를 반드시 구성할 것입니다. 중국이 도와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국가주석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 총리의 배려로, 시아누크와 부인은 9개월간 베이징 국빈관 댜오위타이(釣魚臺)에 장기 투숙할 수 있었다. 1970년 12월 시아누크는 거처를 베이징 시내 한복판 톈안먼 광장 바로 동쪽의 둥자오민샹(東郊民巷) 13호에 독립가옥을 마련해서 이사했다. 시아누크가 입주하는 날에는 저우언라이 총리 부부가 찾아와 축하해 주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건물 이름을 캄보디아 국가원수부(元首府)로 정했다”는 말도 했다. 시아누크는 이런 답례의 말을 했다. “내가 중국에 장기 체류하게 된 원인은 중국이 미국의 캄보디아 침략에 반대하는 우리를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위대한 영수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총리를 우리의 좋은 친구로 존중합니다.” 시아누크는 국빈관 댜오위타이와 이 독립가옥에서 1975년 4월까지 5년 넘게 거주했다. 중국 외교부 당국은 저우언라이 총리 지시에 따라 베이징에 머무는 시아누크가 답답해 할 때는 평양을 방문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서우두 공항을 오갈 때는 빨간 카펫을 깔아주는 등 국가원수에게 하는 예우를 다해서 모셨다. 이후 캄보디아에는 베트남의 침공, 크메르루주 정권 수립, 헹 삼린 정권 수립 등 혼란이 이어졌고, 1988년 7월 1일 중국 외교부는 ‘캄보디아 문제 해결을 위한 4개 항의 제의’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 4개 항의 핵심 내용은 “베트남 철군 이후 캄보디아에는 시아누크를 중심으로 하는 4개 정파의 연합정부가 탄생하기를 희망한다”는 부분이었다. 1996년 3월 23일 대만에서는 대만이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 50년 만에 처음으로 총통 직접선거가 실시될 예정이었다. 총통 직접선거에는 국민당에서 리덩후이(李登輝) 후보가 출마하고, 대만 독립을 공개 주장하는 민주진보당에서 펑밍민(彭明敏) 후보가 출마했다. 총통 직접선거를 15일 앞둔 3월 8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부근 해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해서 대만은 물론 미국과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미사일은 3월 13일까지 모두 4발 발사됐고 중국군은 관영 중앙TV와 신화통신을 통해 “미리 고지한 4개의 해상 좌표에 명중했다”고 발표했다. 중국군은 사전에 “4개의 좌표 부근 해역에 선박과 항공기의 통행을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3월 15일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18일부터 25일까지 대만해협 중북부 해역에서 육·해·공 합동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신화통신은 “훈련 실시 해역이 북위 25도 50분·동경 119도 50분, 북위 25도 30분·동경 120도 24분, 북위 25도 12분·동경 119도 26분, 북위 24도 54분·동경 119도 56분의 4각형 해역”이라고 타전했다. 중국 관영 중앙TV는 방영한 도면을 통해 핑탄(平潭)도를 적시함으로써 이 훈련이 지난 8∼15일 실시된 미사일 발사훈련과 지난 12∼15일 실시한 해·공군 합동 실탄훈련에 이은 상륙 훈련이 대만 상륙을 가상한 핑탄도 훈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군의 미사일 발사와 미국 항모 니미츠의 대만해협 출동이라는 분위기에서 치러진 대만 최초의 총통 직접선거 결과는 국민당 리덩후이 후보가 54.00%, 민주진보당 펑밍민 후보가 21.13%를 얻어 국민당 리덩후이 후보의 승리로 집계됐다. 당시 중국군의 미사일 발사와 가상 대만 섬 상륙 훈련의 견제 목표가 리덩후이였는지, 대만 독립을 공개 주장하던 민주진보당 펑밍민 후보였는지 중국공산당은 밝히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대륙에서 건너온 장제스(蔣介石), 자칭궈(蔣經國) 총통의 시대가 두 사람의 사망으로 막을 내리자 최초의 대만 섬 출신 국민당 후보 리덩후이 후보의 대만독립노선을 사전에 차단하고, 대만 독립을 공개 주장하던 민진당 후보의 당선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두 가지 목표를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882년 조선에서 보수파로 분류할 수 있는 흥선대원군을 대표적인 배경 세력으로 한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청나라는 군대를 파견해서 흥선대원군을 톈진(天津)으로 납치해감으로써 사태를 진압했다. 당시 작전을 주도한 청나라 군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25세의 위안스카이(袁世凱)였다고 우리 근세사는 기록하고 있다. 청은 1876년 일본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조선이 대원군의 며느리 민씨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개화파가 조선 정치를 주도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있다가 임오군란이 나자 군대를 파병한 것이다. 청이 조선에 파병한 군대의 일원이었던 젊은 위안스카이는 대원군을 톈진으로 납치하는 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이후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노골화했다. 위안스카이는 조선에서 출세하기 시작해서 나중에 중화제국 황제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지난 6월 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관저로 초청해서 만난 자리에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한국 일각이 미국의 승리에 베팅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상황은 우리 정치가 대단히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을 중국의 인근 국가에 대한 내정간섭 역사에서 알 수 있다. 평소에 한국어 실력을 과시하며 준비된 원고 없이 즉석 연설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싱하이밍 대사가 A4용지에 준비한 원고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는 것은 그 원고를 싱하이밍 대사 본인이 준비한 것은 아니라는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한국어 발음을 별로 틀리지 않게 하는 싱하이밍 대사는 ‘베팅’이라는 용어는 발음도 제대로 못한 점을 보면 그 원고가 베이징 외교당국이 준비해서 보내준 원고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날 원고를 낭독한 후 이어진 비공개 대화에서 싱하이밍 대사는 이재명 대표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측은 싱하이밍 대사의 행동에서 위안스카이 이름을 소환해서 비난했지만 상황은 그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해진 게 아닐까. 이번에는 중국 외교부가 싱하이밍 대사의 입과 A4용지 원고를 통해 한·미 동맹으로 기울어지는 한국 정부에 경고했지만 만약에 중국 외교부가 공식 성명을 통해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한·미 동맹으로 기울어진 윤석열 대통령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대중국 외교와 조선과의 평화를 중요시하는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그런 날이 금방 오지는 않겠지만 국외 여행 중에 망명한 시아누크를 5년간 잘 모시다가 캄보디아로 귀국한 뒤 “우리 중국은 시아누크를 수반으로 하는 4개 정파의 연립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낸 1988년 7월 1일을 되새겨보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는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에 반대한다는 평화공존 5원칙을 내세우면서도 유사시 필요할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내정간섭의 속내를 보여주는 중국의 감추어진 DNA를 우리는 미리미리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2023-06-23 14:39:17
- [광화문 토크] "우주항공산업 절반 이상이 경남에 있어 …컨트롤타워 자신감" 아주경제신문 대표 논설위원들이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을 인터뷰해서 독자들이 이슈와 팩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새 기획 ‘광화문 토크’는 두번째 순서로 박완수 경남도지사를 인터뷰를 싣습니다. 아주경제는 본사를 서울 광화문 지역 중심부에 두고 있습니다. 아주경제는 광화문 토크를 통해 정치, 경제, 산업, 문화계 뉴스메이커를 직접 찾아가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소멸 위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지방시대를 열자>라는 주제로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역 전문가 인터뷰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박승준 논설주간이 박완수 경남지사를 창원 도청에서 만나 ‘우주강국 시대를 열 우주항공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난해 5월 서울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공동선언문에는 뉴스의 주목을 받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우주협력의 전 분야에 걸쳐 한미동맹을 강화하기로 약속하였고,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한국의 기존 공약을 토대로 양 정상은 우주탐사 공동연구를 촉진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2021년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서 바이든 대통령과 발표한 정상 공동선언에도 그대로 들어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민간 우주 탐사, 과학, 항공 연구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약속하고, 한국의 아르테미스 협정(Artemis Accords) 서명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라는 부분이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문재인과 윤석열 두 대통령에 걸쳐 한국과 합의한 ‘아르테미스 협정’이란 무엇일까. ‘아르테미스 계획(Artemis Program)’이란 2017년에 시작된 NASA, 유럽 우주국, JAXA, 대한민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영국, 아랍에미리트, 우크라이나, 뉴질랜드 등이 참여하는 유인 우주탐사 계획이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2024년까지 우주인을 달에 보내고, 4차인 2026년 이후 5차에서 8차 또는 그 이상 순차적으로 달에 지속가능한 유인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의 이름은 미국의 우주탐사 계획 아폴로 계획에 맞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로의 쌍둥이 누이이자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에서 따왔다. 아르테미스 1호는 2022년 11월 15일 미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기지에서 발사 예정이었다가 액체수소탱크에서 누출이 수차례 발견되어 연기된 임시 무인 달 궤도선이다. 아르테미스 2호는 2024년 5윌 이후에 발사 예정으로, 우주 비행사 4인이 탑승해 지구 궤도에서 실험을 수행한 뒤 달 주위 자동 귀환 궤도로 진입한 뒤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아르테미스 3호는 2025년에, 아르테미스 4호는 2027년에 발사 예정인 유인 우주선 계획이다. 아르테미스 5~8호도 추가적인 발사 계획에 따라 추진 중이다. 그런 아르테미스 계획에 박완수 경상남도 지사가 반응을 보여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4년 만에 경남도지사 자리를 민주당에서 국민의 힘당으로 되찾아온 박 지사는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로 선정된 '항공우주청 경남 설립' 실현에 도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박 지사는 "'한국형 NASA(미 항공우주국)'라고 할 수 있는 항공우주청 조기 설립을 추진하고 항공우주 산업을 경남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공고생 출신의 행정학 박사로, 3선의 창원시장에, 재선 국회의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을 지낸 박 지사를 창원으로 찾아가 만나 우주강국의 꿈 실현 방안을 물어보았다. 지난 15일 창원에 있는 경남도청을 찾아갔을 때 정문에 우주로켓 모형이 세워져 있고 몸체에는 ‘우주 강국’이라는 한글이 새겨 있었다. - 우주 산업분야에서도 중국이 너무 빨리 추격해오니까 미국과 유럽이 협력해서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아닙니까. 인간이 외계에 가서 살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연관 산업들 그걸 함께 협력해서 하자. 이런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경남도가 담당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윤석열 대통령께서 우주 경제 비전에 대해서 열망이 굉장히 강하더라고요. 최상목 경제수석 이야기는 윤석열 정부 5년 내내 가장 중요한 기제가 우주 경제 비전이며, 대통령께서 이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는 겁니다.” - 우주 발사 기지는 전남 나로도에 있는데 우주항공청은 경남도에 두겠다는 겁니까. “윤 대통령께서는 우주 경제 비전을 발표하면서 3개의 특화지구 구상을 말씀하셨지요. 우주항공산업을 위한 3각 특화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나로도에는 발사체 특화지구를 설치하고, 경남도에는 우주항공청을 설치하고, 대전 대덕에는 우주항공산업 연구개발 특화지구를 설치해서 우주 경제 비전의 핵심으로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 도지사 임기 중에 우주 강국에 대한 계획을 어떻게 구현하실 생각인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에 우주 경제 비전에 대해서 중앙 정부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우리 도의 입장에서 보면 우주 항공 산업의 거의 절반 이상이 경남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남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우주 경제 비전에 맞추어서 경남에 우주 항공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앞으로 우주항공청이 금년 내에 우리 경남 사천에 설치되면 우주 경제 비전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경남이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경남이 대한민국의 우주 경제 비전을 열어가는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의 산업도 육성시키고 또 우주 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기술 개발도 자체적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 우주항공청은 설립이 된 상태입니까? “국회에 법률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제가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청래 위원장하고 조승래 민주당 간사 그리고 국민의힘의 박성중 간사 다 만나 이야기했는데 모두 다 사천에 설치한다는 데는 동의를 했습니다. 대덕의 조승래 간사도 이왕 설치하려면 우주항공청의 위상과 기능을 확대하자 그런 생각이더라고요. 정청래 과방위원장이 5월 중에 통과시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 테슬라 얘기를 좀 하시죠. 테슬라 전기차 기가팩토리 공장을 창원에 유치할 전망은 어떻습니까. “일론 머스크 CEO가 대통령 미국 방문 때 대통령 만났지 않습니까? 만나서 한 이야기가 ”한국에 대한 투자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있다“고 했고, 최근에 나온 보도를 보면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하고도 만나서 반도체 자율주행 기술 협약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눈 걸로 보고 있습니다. 일단은 대한민국 투자를 테슬라가 결정하게 되는 것이 1차적인 과제이지 않겠습니까? 제가 볼 때는 일론 머스크의 여러 가지 행보나 이야기 내용을 보면, 대만을 포함해서 아시아권의 기가팩토리 공장 후보지를 생각하고 있을 텐데, 대한민국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봅니다. 구체적인 입지를 어디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 산업자원부가 대통령 미국 방문 전에 각 시도로부터 후보지를 받았습니다. 우리 경남도는 진해 진영과 가까운 곳에 30만 평의 부지를 제공한다고 했고, 부지를 비롯해서 몇 가지 후보지를 아마 대통령께서 미국 방문 때 테슬라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도 입장에서는 완성차 공장이기 때문에 항만과 가까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이제 인센티브로 저희들은 30만 평 부지를 그냥 50년 동안 무상 사용 조건으로 제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투자되는 투자비의 50% 정도를 정부와 우리 도가 비용을 부담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창원이 원래 한국의 공업적 기반이 시작된 곳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의 공업 기반을 옮겨오려고 여기 창원을 조성한 거고, 창원에는 정밀공업의 기반도 있고 해서 중국 상하이보다도 훨씬 조건이 좋지 않습니까. "부산항이 가까이에 있고 또 신공항도 건설되고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분이 유리하다고 봅니다. 제가 볼 때는 수도권과 부·울·경의 경쟁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품도시의 창조’라는 책을 쓰셨는데… “도정이나 시정이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국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도시든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도시나 지역들을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역의 산업적인 기반이 튼튼합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빠져나가지 않아야 하고, 둘째는 그 도시의 품격 문제입니다. 환경, 문화, 복지, 교육, 의료 이런 쪽에 관련된 품격이 다른 도시보다도 잘 돼 있어야 명품 도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경남의 경제 지표들은 최근 7~8개월 동안에 모두 다 상승 국면으로 돌아섰습니다. 실업률은 최근 5년 최하 수준이고, 취업자 수도 최근 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와 있고요. 무역 수지는 작년 10월부터 계속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국가 무역 수지는 적자입니다만 우리는 흑자를 보이고 있고, 최근에 방산이라든지 우주 항공 산업이라든지 원자력 산업이라든지 조선 산업이 다 회복하고 있거든요.” - 지사님은 통영시 출신인데 통영은 세계가 알아주는 음악의 도시 아닙니까. ‘동양의 나폴리’라고도 하고, 통영 출신 윤이상 작곡가의 명성 때문에 통영 국제음악제에는 베를린 필을 포함한 전 세계의 필하모니들이 다 기꺼이 초청에 응하는 국제음악제 아닙니까. 진짜 동양의 나폴리를 통영에 조성하면 어떨까 그런 평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영이 내세우는 음악제 통영국제음악제는 진짜 굉장히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제 제조업만으로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젊은 아이들한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곳은 저는 서비스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제조업만 신경 쓸 게 아니고 제조업도 물론 지역 산업도 키워야 하고, 거기 못지않게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남해안 관광에 대해서는 전남도와 함께 협의하고 있습니다.” / 정리= 박연진 아주경제 부산경남 취재본부장, 손충남 기자 / 사진= 손충남 기자 아주경제신문 대표 논설위원들이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을 인터뷰해서 독자들이 이슈와 팩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새 기획 ‘광화문 토크’는 두번째 순서로 박완수 경남도지사를 인터뷰를 싣습니다. 아주경제는 본사를 서울 광화문 지역 중심부에 두고 있습니다. 아주경제는 광화문 토크를 통해 정치, 경제, 산업, 문화계 뉴스메이커를 직접 찾아가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소멸 위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지방시대를 열자>라는 주제로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역 전문가 인터뷰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박승준 논설주간이 박완수 경남지사를 창원 도청에서 만나 ‘우주강국 시대를 열 우주항공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 물었습니다. 2023-05-22 06:00:00
- [박승준의 지피지기] 한미일 동맹으로 외교 중심이동 …역사를 통해 미래를 보자 “각하, 우리 외교의 중심을 중국 쪽으로 조금 옮기시죠.” 1994년 3월 26일 중국 상하이(上海) 신진장(新錦江) 호텔. 김영삼 대통령과 정종욱 외교안보수석, 황병태 주중 대사가 마주 앉은 자리에서 황 주중 대사가 그런 말을 꺼냈다. 정 수석이 황 대사 말을 가로막았다. “대사께서는 주재국에 관한 말씀만 하세요. 외교 전반에 관한 사항은 대사 소관이 아닙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3월 26일부터 4박 5일간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막 상하이에 도착했다. 김 대통령은 3월 23일 서울을 떠나 26일까지 3박 4일간 일본 방문을 마치고 도쿄(東京)~상하이 항로인 ‘상하이 코리도(Shanghai Corridor)’를 통해 상하이에 도착했다. 대통령 앞에서 정종욱 외교안보수석과 황병태 주중 대사 사이에 벌어진 이 날의 해프닝은 당시 이 자리에 배석했던 주중 대사관 외교관이 나중에 전해준 상황이다. 1940년생인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은 1975년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76년 귀국해서 서울대에서 중국 정치 강의를 맡고, 1980년 ‘마오이즘과 발전(Maoism and Developmet)’이라는 책을 출간한 중국 전문가였다. 1935년생으로 다섯 살 위인 황병태 대사는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에서 ‘유교의 전통과 한국정치-한·중·일 유교 비교연구’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 전문가였다. 두 중국 전문가 간 날카로운 암투에 불편함을 느낀 김 대통령은 “나는 그만 방에 가서 쉬겠다”며 자리를 떴다. 정 수석에게 “주재국에 관한 말만 하라”는 제지를 받은 황 대사는 대통령이 자리를 뜨자 정 수석을 향해 “당신은 대통령의 꼬붕(부하)이지만 나는 대통령의 친구”라는 막말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1993년 2월에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외교안보수석과 주중 대사를 중국 전문가로 기용한 것은 당시 미국이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면서 외교적으로 접근하는 외교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을 베이징(北京)으로 보내 세기의 비밀회담을 통해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중국과 화해를 추구하는 외교 정책 발상의 대전환을 한 때문이었다. 1976년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수하던 마오쩌둥(毛澤東)이 죽고 권력을 이어받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 경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구축을 통해 빠른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개혁과 개방’ 정책을 15년째 추진 중이었다. 한국과 중국은 김영삼 대통령 전임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 추진으로 1992년 8월 중국과 수교했다. 한·중 수교 공동선언은 2300년 한반도 역사에서 대륙 정권과 처음으로 체결한 주권국가와 주권국가 간 평등조약이었다. 1992년 한·중 수교는 1905년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으로 일본제국에 외교권을 박탈당한 뒤 87년 만에 다시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교류를 열어 놓았다. 북한은 한·중 수교에 대한 반발로 1993년 3월 13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핵무기 개발 추진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에 벌어진 북한의 NPT 탈퇴와 핵무기 개발 착수는 김 대통령이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담판을 통해 해결해야 할 최대 현안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과 마주 앉은 장쩌민 주석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를 제시했고,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가 아닌 ‘남북한의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선문답(禪門答)만 늘어놓았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발뺌도 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장쩌민이 제시한 “한반도의 비핵화가 중요하다”는 입장에 동의를 표하는 대답 외에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북한 핵문제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을 거치면서 중국 측이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해왔고 이제는 워싱턴에 닿을 수 있는 사정거리 1만5000㎞ 미사일 화성17호 발사실험을 목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반도에서는 조선왕조 이래로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 청일전쟁(1894년), 러일전쟁(1905년), 한국전쟁(1950년) 순서로 모두 다섯 차례 전쟁이 발발했다. 임진왜란은 조선이 서쪽의 명나라만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동쪽의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사무라이(侍) 무신(武臣)계급의 일본 천하통일 여세를 몰아 조선에 ‘정명가도(征明假道·명을 공격하기 위한 길을 열어 달라)’를 요청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선조는 일본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2년 전인 1590년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하는 통신사를 파견했다. 하지만 서인 황윤길과 남인 김성일은 요즘 말로 진영 논리에 빠져 서로 다른 보고를 했다. 결과는 일본이 바다를 건너 전쟁을 도발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지도 못하고, 전쟁 대비도 하지 못해 7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당시 선조는 외교의 중심을 서쪽의 명에 두고 있었다가 한양을 탈출해서 명으로 망명하기 위해 신의주까지 도망가는 참상을 보여주었다. 1636년에 발생한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아이신쥐에루오(愛新覺羅·금(金)이라는 뜻의 만주어) 누르하치가 1616년에 여진족을 통일해서 건국한 금나라가 1636년 청(淸)을 건국해서 명을 대체해나가는 과정에서 만주족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친명배금(親明排金) 노선의 조선을 침공한 전쟁이었다. 당시 조선을 침공한 청 황제 아이신쥐에루오 황타이지(皇太極)가 직접 4만5000의 병력을 이끌고 한양을 공격해서 인조를 굴복시키고 수많은 노예와 부녀자들을 포로로 끌고 간 전쟁이었다. 현대 중국에서 ‘병자노란(丙子虜亂·많은 노예를 포로로 획득한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의 명칭을 우리는 지금도 ‘병자호란(丙子胡亂·병자년에 오랑캐들이 침공한 전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던 조선의 친명배금 논리가 현재까지 이어져 명·청에 대한 인식 전환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호(胡)’란 중국 한족(漢族)들이 대륙의 서쪽에 사는 오랑캐 소그디언(Sogdian)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황타이지의 침공 387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대륙 정권에 대한 사고의 중심을 명에서 청으로 옮기지 않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우리가 병자호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 중국 지식인들은 “그럼 청 왕조를 승계한 우리도 호(胡)란 말이냐”고 말하는 아이러니를 빚었다. 1894년에 발생한 청일전쟁의 기본 성격은 1년 만에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맺어진 시모노세키(下關) 강화조약 제1조를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일본 내각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청 흠차전권대신 리훙장(李鴻章)이 1895년 3월에 서명한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1조는 “중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하며 조선이 그동안 중국에 대해 해오던 조공의 전례는 폐지한다”고 돼 있다. 청일전쟁의 목적이 전통적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해오던 중국에서 조선을 떼어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한 조약이었다. 러일전쟁의 결과 역시 일본의 승리로 귀결됨으로써 1905년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에서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의 제2조도 러일전쟁의 목적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벌어졌던 전쟁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조약의 제2조는 “러시아제국 정부는 조선에 대해 일본제국이 정치·군사·경제적인 이익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데 동의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을 중국에서 분리시킨 다음 러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확보한 것이다. 이 두 전쟁의 결과 조선왕조는 일본제국과 한 판의 전쟁도 치르지 않고 자주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치욕을 겪게 된다. 1950년 6월에 발생한 한국전쟁은 북한·중국과 한국·미국·유엔군 간 전쟁이었다. 중국은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지 1년 만인 1950년 10월 25일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 전쟁의 결과 형성된 동북아의 냉전(Cold War)은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마오쩌둥의 중국과 손을 잡음으로써 소련의 몰락과 미국의 승리로 귀결됐다. 그러던 국제정치 구조는 다시 50년이 흐르는 사이에 2022년 2월 러시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러시아·중국과 미국·유럽이 대치하는 신냉전으로 변질됐다. 동북아시아에서는 북한·중국·러시아와 한국·미국·일본이 대치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지난해 5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사드(THAAD) 배치를 유보시키고 중국을 ‘높은 산’이라고 부르면서 다소 중국으로 추가 기울어져 있던 외교의 중심을 미국과 일본 쪽으로 끌어당기는 중심 이동을 추진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워싱턴을 공식 방문한 윤 대통령은 만찬 때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라는 미국적인 노래를 부르고 유창한 영어로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등 미국 중시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그늘에서 지난 40여 년간 취해온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외교노선에 따라 중국에 진출했던 삼성 시안(西安)과 우한(武漢)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공장들은 인질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국은 두 공장이 첨단 기술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미국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시장이 닫혔을 때 삼성 시안 반도체 공장과 SK하이닉스 반도체 제품이 중국 시장을 메우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는 FT(파이낸셜타임스) 보도도 있었다. 외교의 중심을 옮기는 것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판단이라 하더라도 외교의 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인질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미국 측과 보다 적극적인 협상을 벌여 구제 방법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인 조치가 아닐까. 그렇게 못한다면 과거 조선시대에 외교 중심의 이동에 실패해서 빚어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에 수많은 백성들에게 인명 상실과 포로의 비참함을 겪게 한 선조와 인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2023-05-08 06:00:00
- [광화문 토크] "실사단, 輿野 통합결의안에 호감 …부산엑스포 지지국 증가세"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국제박람회기구(BIE·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의 부산 현지 실사 열흘 뒤인 지난 18일 오전 부산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났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성공 여부는 오는 6월 BIE 총회에서 진행되는 4차 프레젠테이션과 11월로 예정된 171개 BIE 회원국 투표 결과에 달려 있다. BIE 공식 웹에는 4월 23일 이탈리아 로마, 4월 6일 대한민국 부산, 3월 24일 우크라이나 오데사, 3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등 24일 현재까지 실사를 받은 4개 후보 도시가 올라 있다. 투표 결과에 대한 예상부터 물어봤다. -2030 부산엑스포 주제를 ‘Transforming Our World, Navigating Toward a Better Future(세계의 대전환, 공존의 미래로 향하는 대항해)’라고 제시했습니다. 11월 투표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는지요. “실사를 받은 이후에 굉장히 긍정적인 분위기들이 많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아직 정확히 입장을 밝히지 않은 국가들이 절반 이상이거든요. 현재로서는 지지 국가 숫자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은 지지 국가 숫자가 지금 계속 늘어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존에 지지를 표명한 국가에서 그렇게 크게 늘지 않은 상황입니다. 작년 이래로 우리가 꾸준히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는 11월까지 중앙정부와 기업, 지방정부가 총력을 다해서 역할 분담을 통해 개별 국가들과 지지 교섭을 하면 11월 말 총회에서는 저희에게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최경림 외교부 국제박람회기구 협력대사는 현재 중남미 카리브해 국가들을 돌고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폭적으로 지지하지요.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이 힘이 붙게 된 것은 대통령께서 대선 때 ‘국운을 걸고 유치하겠다’는 말씀을 부산에 와서 했고, 인수위 때도 ‘엑스포 특위’를 만들어서 취임 후 국정과제로 채택했습니다. 대통령실에는 엑스포 전담 수석급 기획관을 두었고, 지금도 꼼꼼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엑스포 유치에 대해 대통령의 의지와 열정이 대한민국 전체의 엑스포 유치 활력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들도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할 것 없이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170년 전 1851년 5월부터 10월까지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제1회 엑스포는 당시 런던에서 망명 중이던 카를 마르크스도 참관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엑스포를 참관한 뒤 ‘자본의 문명화(The Civilization Trend of Capital)’라는 말을 남겼고, ‘자본의 문명화’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는 중국이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주최하는 명분으로 활용됐다.) 당시 세계 최강 자본주의 국가 영국이 하이드파크에 세계의 산업과 예술을 다 집결시켜서 제1회 엑스포를 개최했는데 2030 엑스포가 부산에서 개최되면 부산이 어떻게 바뀔 것으로 생각합니까. “부산이 바뀌는 것을 얘기하기 전에 그동안 엑스포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먼저 얘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런던 박람회 이후로 전 세계에서 엑스포가 20세기 내내 열렸는데, 그 엑스포에 시대의 문명을 주도하는 기술과 상품, 문화가 모두 전시됐습니다. 엑스포 역사를 보면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우리가 어떤 문명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파리 엑스포는 에펠탑을 세웠는데, 그 에펠탑은 당시 19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소재인 철강을 이용해서 높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거든요. 이후 전화, 텔레비전, 자동차, 심지어 코카콜라도 다 엑스포를 통해서 나온 것들이지요. 그런 걸 보여주는 플랫폼으로서 엑스포가 기능했는데, 그게 20세기 후반부터는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21세기에 와서는 기술과 상품의 엑스포에서 문명의 지향성과 비전, 그리고 그에 따른 솔루션을 보여주는 엑스포로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 엑스포는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상품이 강조되다 보니까 선진국들이 주로 플랫폼을 장악해왔습니다. 많은 발전 도상국들은 사실은 보여줄 게 별로 없어 참여 기회가 그렇게 충분치 않은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1세기에 우리 인류가 마주친 여러 가지 챌린지(도전)들, 기후변화에서 디지털 기술까지, 발전 도상국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려운 그런 시대란 말이죠. 그런 면에서 부산 엑스포는 많은 발전 도상국들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그런 솔루션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그것이 우리 부산 엑스포의 정신이고, 그걸 우리는 ‘부산 이니셔티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를 전 세계를 돌면서 전하고 있고, 거기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부산 출신인 제가 1960년대 초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뒷산에서 부산항을 내려다보면 부산항에 한국전쟁 직후 미국이 PL480 식량원조 법안에 따라 제공하는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저장하는 사일로가 탑처럼 늘어서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악수하는 그래픽이 그려져 있었죠. 그래서 그걸 ‘악수표 밀가루’ ‘악수표 옥수수 가루’라고 불렀는데, 그런 부산에서 엑스포가 열리면 감동적일 것 같은데요. “아직도 그 사일로가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실사단에 그 사일로를 보여줬어요. 그 사일로를 우리는 발전 도상국들을 위한 특수 기념관으로 만들어서 일종의 데이터센터 역할을 하게 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새로운 솔루션을 상징하는 플랫폼의 장소로 활용하고, 또 그걸 일종의 레거시로 만들겠다는 생각이거든요.” -파리 엑스포는 에펠탑을 남겼고, 시애틀 엑스포는 스페이스 니들을 남겼는데 부산 엑스포를 상징하는 건축물 건립 계획은. “각 엑스포마다 각 나라가 일종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만들게 됩니다. 영구 보존할 건물을 당연히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엔 해비타트가 전 세계 기후변화 난민을 위해서 제시한 플로팅 아일랜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지로서 부산을 선택한 데 착안했습니다. 부산은 플로팅 아일랜드를 바로 그 엑스포가 열리는 북항에 건축할 계획입니다.” -지금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둘로 쪼개져 있는데, 2030 부산 엑스포가 세계를 단합시키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요. “엑스포의 목표도 인류 공동 번영과 평화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 지금 부산 엑스포도 결국 그런 국제사회의 신냉전적인 갈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셔야 하는데 혹시 현재 진영에 따라 반반으로 쪼개진 한국 사회가 2030 부산 엑스포를 계기로 내부 분열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이번에 실사단도 놀란 것은, 실사단은 한국 정치가 내부에서 많이 다툰다고 얘기를 듣고 왔는데 2월 국회에서 여야가 만장일치로 엑스포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국회로 실사단을 초청해서 결의안을 전달했거든요. 실사단은 그 점이 신기했나 봐요. 국내 정치적으로 늘상 다툼이 많다고 얘기를 듣고 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여야 의견이 일치될 수 있느냐고 물어서 ‘그게 대한민국의 저력’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 정치적 이념이나 논리에 관계없이 힘을 합치는 것이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부산시장으로서 행정을 하시는 동안 부산이라는 도시가 상하이나 홍콩, 뉴욕 같은 도시와 비교해서 어떤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까.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지도를 제대로 보고 허브를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도 하나의 허브로 만들어서 여기를 홍콩이나 싱가포르, 두바이 같은 국제 자유 관문 도시로 만들었다면 그게 대한민국을 위해서 얼마나 큰 축복이겠나 생각해 봅니다. 부산이 현재 세계 2위 환적항인데, 세계 2위 환적항이라는 건 그만큼 지리적인 위치가 좋다는 것이거든요. 그런 물류가 있는 곳에 원래 금융이 함께 가줘야 하고, 신산업이나 새로운 관광·문화 콘텐츠들이 축적돼야 사람과 돈, 기업이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쪽으로 이제 도시 발전 방향을 잡고 지금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덕도 공항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가덕도 공항은 지금 정부 차원에서 이미 결정을 내려서 지금 부산시는 가덕도 공항을 신속히 건설하기 위한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인허가 절차를 앞장서서 빨리빨리 진행할 것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토목 기술이 워낙 발전해 있어서 턴키 방식으로 발주를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수도권도 이제 GTX 체계로 바뀌고 있지만,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울·경과 대구·경북, 그리고 호남 쪽도 남부권으로 묶어 남부권을 위한 광역 교통망을 조밀하게 신속하게 구축해주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래서 우선 가덕도 공항에서 수소 전동차로 엑스포가 열리는 북항까지 15분 만에 도달하고, 기장까지는 25분 만에 도달하는 BuTX를 건설하면 거기서부터 대구까지는 KTX 노선을 조금만 연결하면 40분 거리이고, 울산이나 순천, 여수까지도 1시간 내로 연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경제 전체가 역동적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게 될 것입니다.” 정리=박승준 논설주간·박연진 부산경남취재본부장·손충남 기자 부산 앞바다에 세계 첫 해상도시 …에펠탑처럼 부산엑스포 랜드마크로 2030년 엑스포를 준비하는 부산은 지난해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UN-HABITAT·인간정주계획) 원탁회의에 참석해 ‘지속 가능한 해상도시’ 추진을 공표했다. 부산시는 2030 부산 세계박람회 개최 예정지인 북항 앞바다에 유엔 해비타트와 함께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모두를 위한 도시’ 플로팅 아일랜드, 즉 ‘오셔닉스 부산’을 2030년까지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오셔닉스 부산’은 바다 위에 초대형 해상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위에 토목 인프라와 ICT 기반 스마트 운용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융합해 다양한 기능으로 활용 가능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 거주, 연구, 숙박 등 목적으로 설계한 각 플랫폼에는 3만∼4만㎡ 규모 복합 프로그램이 배치되며, 1만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하는 세계 첫 해상 부유형(floating) 도시가 될 전망이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고 있는 부산은 풍력·수력 터빈, 태양광 패널 같은 재생 애너지 자원을 활용해 해상도시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생산하고 물을 포함한 자원을 자급자족하게 된다. 또한 해수면 수위가 낮아질 때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동성도 갖추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각각 기본계획 용역과 추진전략수립 용역을 시작했다. 총 사업비 6억 달러(약 7200억원)가 투입되는 ‘오셔닉스 부산’ 구축 사업은 2024년 실시협약과 인허가 관련 절차를 완료하고 2025년 기본·실시설계를 시작해 2030 세계박람회 전인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연진 부산경남취재본부장 2023-04-24 21:17:40
- [박승준의 지피지기] 실권없던 '2인자'의 퇴장 ... 막오른 시진핑.리창 新체재 중국 남쪽 지방은 요즘 꽃 천지다. 딱딱한 뉴스를 주로 전하는 관영 중국중앙TV 신원롄보(新聞連播·Network News)도 남쪽 지방에 핀 붉은 홍매화, 노란 산수유, 하얀 모란을 보여준다. ‘봄이 돌아온 대지(春回大地)’라는 제목을 달아서. 베이징(北京)은 잿빛 도시다. 도시 한가운데 황제가 사는 쯔진청(紫禁城)만 황금빛으로 보이게 색깔 설계를 해 놓았다고 베이징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겨울의 베이징은 칙칙하고 답답하다. 그런 베이징에 매년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리면 대륙 곳곳에서 모여든 56개 민족의 컬러풀한 옷차림으로 갑자기 화려해진다. 그때쯤이면 중국 남부 장강(長江) 유역 장쑤(江蘇)성, 저장(浙江)성과 주강(珠江) 유역 광둥(廣東)성에서 올라오는 꽃 소식이 베이징 사람들 마음을 풀어주곤 한다. 마르크스 레닌이즘을 바탕 이론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정치를 주도하는 베이징에서도 봄날 경칩 무렵에 열리는 전인대는 시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5일 개막한 제14기 1차 전인대는 지난해 10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가 3연임에 성공한 이후 처음 열리는 것이다. 시진핑과 함께 시·리(習·李) 체제를 구축했던 리커창(李克强) 총리로서는 마지막으로 정부공작보고를 하는 전인대다. 오는 11일 전인대는 리창(李强) 신임 총리를 선출해서 중국 경제 지휘권을 맡길 예정이다. 상하이(上海) 당 위원회 서기 출신인 리창은 작년 가을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다음인 서열 2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70세인 시진핑보다 여섯 살 아래인 리창은 시진핑이 2003~2007년 저장성 당 위원회 서기를 하던 시절 비서장을 지냈다. 당시 인연은 리창을 상하이 당 위원회 서기를 거쳐 서열 2위인 정치국 상무위원 겸 총리 내정자로 올려놓았다. 물러가는 리커창 총리는 5일 마지막 정부공작보고를 통해 “국무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은 5% 좌우, 실업률은 5.5% 좌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좌우로 억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실제 업무 수행은 후임자인 리창 신임 총리 몫이다. 한마디로 “온(穩·안정)을 목표로 하고, 안정 속에 성장을 모색하는 ‘온중구진(穩中求進)’을 견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리커창 총리의 이 같은 경제 목표는 지난가을 중국공산당 정치국 전원회의에서 통과시킨 내용이다. 중국 경제의 흐름은 사실상 가을의 당 정치국 회의에서 확정해 놓고 다음 해 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추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리커창 총리는 후임 리창 총리가 이끄는 국무원의 경제활동 목표가 첫째 소비 회복과 확대, 둘째 현대화 산업체계 건설 가속화, 셋째 국영기업 경쟁력 강화, 넷째 외자 도입 확대, 다섯째 금융 리스크 완화, 여섯째 식량 생산 안정화 등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리커창 총리는 그러나 중국 정부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reopenig·復蘇)을 추진하면서도 “시진핑 동지의 강군(强軍) 사상과 시진핑 신시대의 군사전략 방침을 관철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건군(建軍) 100년을 맞아 분투 목표로 경제성장과 전쟁 준비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상호 모순적인 국가전략을 밝혔다. 과거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19세기 세계 최강 영국, 20세기 세계 최강 미국과 한판 싸워보겠다는 ‘초영간미(超英赶美)’를 국가전략으로 내세웠다가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00위 부근인 빈국(貧國)으로 전락한 과거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려는 시진핑의 전략을 수정할 힘이 리커창 총리에게는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드러냈다.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 발전은 “강대국과 전쟁을 불사한다”는 마오쩌둥의 전략을 버리고 “평화를 추구하고 경제 발전에 전념하겠다”는 덩샤오핑의 ‘화평발전(Peaceful Development)' 전략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시진핑이 간과하고 있으나 리커창으로서는 이렇다 할 수정 방법이 없는 것이다. 리커창 총리는 정부공작보고 끝머리에 짤막하게 밝힌 외교정책 설명에서 “화평발전의 길을 굳건하게 걸어가야 할 것이며, 평화공존 5원칙을 바탕으로 각국과 우호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최근 시진핑이 추구하는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대국(大國) 외교’나 우리에 대한 내정간섭적 대외 군사정책에 비추어보면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5일 전인대 개막과 리커창의 정부공작보고 행사에는 인민 대표 2948명(재적 2977명 중 29명 결석)이 참석했다. 3000명에 가까운 인민 대표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사전에 PCR 검사를 받은 뒤 마스크를 쓰고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시진핑 당 총서기와 리커창·리창 신구 총리를 포함해 대회장 전면 주석대(主席臺)에 앉은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30여 명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 지휘로 ‘제로 방역(淸零)’을 한다고 환자 한 명만 발생해도 몇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도시를 완전 봉쇄하던 것이 불과 5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16일에 폐막한 20차 당대회 당시 상황이었다. 중국 전역에서 코로나19는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일까.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지난해 12월 24일 돌연 “우리 중국의 백신 접종률이 90%를 초과했으며 전국 백신 접종 횟수는 연인원 34억6000만명에 이르렀고, 각각 86.6%와 66.4%인 60대와 80대 이상 노인들만 접종률을 올리면 된다”는 보도를 한 이후 중국 정부는 돌연 제로 코로나 정책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5일 전인대 개막 행사에 참석한 3000명에 가까운 인민 대표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은 과연 중국 내 코로나 확산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 자신으로서는 마지막 정부공작보고를 하면서 특별한 감회를 표하지 않고 담담히 준비된 보고서를 읽어 내려 갔다. “금년은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강력한 영도 아래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지도 방침으로 해서 20차 당대회 정신을 관철하고 ‘중국식 현대화’를 착실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시진핑 주도로 만들어진 당의 방침에 특별한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보고 끝머리에도 “우리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단결해서 경제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정부공작보고를 끝맺었다. 시진핑 당 총서기는 이번 전인대를 통해 오는 11일 세 번째 국가주석으로 선출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10월 16일 폐막한 20차 당대회를 통해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이후 11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통해 갈수록 거칠어지는 미·중 갈등 국면을 유화적으로 풀어보려 했으나 화상 회담은 공동성명을 못 내고 끝났다. 지난 40년간 중국의 개혁·개방과 빠른 경제성장을 지켜본 대만의 중국 경제 전문 언론인 셰진허(謝金河)는 지난해 10월 27일 ‘변조된 중국의 꿈(變調的中國夢)’이라는 책을 아마존에 올려 미국과 대만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변조된 중국의 꿈’이란 중국이 현재의 미·중 갈등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미국에 기술과 금융 봉쇄를 당하면 당초 시진핑이 제시한 “2050년 미국 GDP를 넘어 세계 1위의 강국이 되겠다”는 꿈은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셰진허가 ‘변조된 중국의 꿈’에서 전망한 내용이 맞아떨어지면 1980년에 시작해서 43년간 지속돼온 중국의 빠른 경제 발전은 ‘화양연화(花樣年華·꽃 같은 날들)’의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화양연화는 2000년에 처음 상영된 홍콩 영화로, 홍콩이 가장 번영하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홍콩 유명배우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장만위(張曼玉)가 남녀 주연을 맡아 열연한 슬픈 사랑 이야기다. 홍콩의 화려하던 한때를 그린 화양연화라는 영화가 제작됐듯이 미국과 충돌하는 중국의 잘못된 국가전략 선택으로 중국의 꿈 대신 중국을 배경으로 한 화양연화가 또 한 편 만들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대만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은 박스] 퇴장하는 리커창과 3연임 성공한 시진핑의 운명 리커창은 1955년생으로 베이징(北京)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이고, 시진핑은 두 살 위인 1953년생으로 칭화(淸華)대학 법학 박사 출신이다. 리커창은 5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정부공작보고를 하고 10년간 앉아 있던 총리직에서 떠나게 된다. 리커창은 전인대 개막 일주일 전 베이징대 경제학과 박사지도 교수였던 스승 리이닝(勵以寧) 교수가 93세로 별세하는 슬픔을 겪었다. 리이닝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경제이론가였다. 리커창은 당 총서기직을 놓고 시진핑과 경합을 벌이다 총리라는 2인자로 밀리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인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하는 바람에 중국 개혁·개방 정책이 찬 바람을 맞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낳게 됐다. 리커창과 시진핑은 2012년 당서기와 총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다 장쩌민(江澤民)의 선택으로 운명이 결정됐다. 장쩌민은 시진핑이 푸젠(福建)성, 저장(浙江)성과 상하이(上海) 등 동부 연안의 개혁·개방 지역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점이, 효율 낮은 국영기업이 몰려 있는 허난(河南)성과 랴오닝(遼寧)성에서 행정 경험을 쌓은 리커창보다 개혁·개방 정책 견지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오판했다는 것이 중국공산당 내부의 전언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2023-03-07 06:00:00
- [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의 '집체학습'서 등장한 경제ㆍ군사력 주동권 확보란? 지난해 10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習近平)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과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에 이어 세 번째로 장기집권 태세를 갖춘 시진핑(71)은 1억에 가까운 당원 수를 자랑하는 중국공산당을 어떻게 끌고가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공산당은 다음 달 5일 개최 예정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우리의 정기국회에 해당)를 앞두고 있다. 전인대에서는 행정부인 국무원을 이끌 총리와 각 부 장관 인사가 확정될 전망이다. 중국공산당의 1당 통치가 헌법에 보장된 중국에서 총리는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서열 2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선임되는 관례를 갖고 있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20차 당대회에서 서열 2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는 리창(李强·64) 전 상하이(上海)시 당위원회 서기가 선출됐다.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이 앞으로 중국공산당을 어떻게 끌고강 생각을 하고있는지는 1월 31일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정치국 제2차 집체(集體·집단)학습에 나가서 한 연설에서 그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집체학습은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뒤 두 번째로 당 총서기에 오른 후진타오(胡錦濤·81)가 2002년에 만든 정치국원 학습 프로그램이다. 후진타오의 후임 시진핑도 꾸준히 집체학습을 이어왔다. 집체학습은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던 덩샤오핑 자신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잘 모르면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려니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덩샤오핑은 자본주의 국가인 프랑스로 14세 때 유학을 가서 자본주의 사회를 학습하고 왔고, 덩샤오핑의 오른팔이던 당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198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중국으로 초청해 자본주의 개인 교습을 받았다. 자오쯔양의 후임 총서기 장쩌민은 1993년 프리드먼을 초청해서 자본주의 공부를 했다. 그런 분위기를 이어받은 장쩌민의 후임 총서기 후진타오는 2002년 16차 당대회 이후 정치국원들에 대한 집체학습 프로그램을 당의 재교육 기관인 당교(黨校)에 만들어 상설화 하는 작업을 했다. 후진타오는 중앙당교 교장이던 1993년 프리드먼을 초청해서 자본주의 강좌를 들었다. 2002년에 상설화 된 첫 번째 정치국 집단학습의 주제는 “법치사회와 샤오캉(小康) 사회의 건설”이었다. 샤오캉 사회란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건설에 성공해서 실현할 GDP 중진국 사회의 콘텐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 중국공산당은 “학습을 중시하고, 학습을 열심히 하며, 학습을 좋아하는 마르크스 주의 정당”이라고 자부해왔다. 시진핑은 2012년 당 총서기로 처음 선출된 뒤 5년 임기 동안 모두 43차례의 집체학습을 실시했고, 2017년 이후의 두 번째 5년 임기 동안에는 모두 31회의 집체학습을 실시했다. 시진핑은 지난해 10월 16일 세 번째 당 총서기로 선출된 이후 10월 25일 제1차 집체학습을 실시했다. 1월 31일 시진핑 총서기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중국공산당 핵심 코어그룹 25명으로 이루어진 정치국의 학습 주제는 “새로운 경제 발전 국면과 발전에 대한 안전적 주동권(主動權) 증강에 대하여”였다. 시진핑이 처음으로 제기한 ‘주동권’이라는 용어가 어떤 개념을 가진 단어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날 정치국원 집체학습에서 시진핑이 강조한 연설내용을 분석해보자. “새로운 경제발전의 국면을 조속히 조성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분투해서 달성할 목표들을 실현할 근거를 확보합시다. 경제발전과 군사적 안전을 통괄할 수 있는 전략적 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미래 발전의 주동권을 확보하는 전략적 배치가 될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던가. 시진핑의 말을 풀어서 헤쳐보면 “중국의 꿈의 내용인 경제강국과 군사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제나 안보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 잡힌 정책들을 만들어나가자”는 정도가 될 것이다. 시진핑이 그 다음에 한 말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새로운 발전국면을 조성해나가야만 국가경제 발전의 펀더멘털을 충실하게 다질 수 있다. 경제발전의 안정성을 증강해나가야만 예견되는 각종 광풍(狂風)과 폭우(暴雨)와 파도 속에서 국가의 생존력, 경쟁력, 지속성을 증강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달성할 수 있으며, 우리 의사와는 관계없이 지체되거나 중단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과학기술 봉쇄정책을 펴고있는 데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학기술의 자립과 자강을 확보하는 걸음을 보다 빨리 하고, ‘외국이 우리의 목을 누르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형 거국적 체제를 수립해서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국가전략을 확립해야 한다.” 시진핑의 말에서 주목해야 할 용어는 ‘외국이 우리의 목덜미를 누르는(卡脖子) 문제’라는 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이란 미국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목덜미를 누르는 문제’란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분야 기술의 발전을 차단하기 위해 네덜란드 ASML에게 중국에 노광기 수출을 못하도록 국제적 압박을 가하는 문제 같은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25명의 정치국원들과 진행한 집체학습에서는 지난 당대회에서 지방의 중요지역 당서기로 지명된 인리(尹力) 베이징(北京)시 당서기, 류궈중(劉國中) 산시(陝西)성 당서기,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장궈칭(張國淸) 랴오닝(遼寧)성 당서기, 천지닝(陳吉寧) 상하이(上海)시 당서기, 황쿤밍(黃坤明) 광둥(廣東)성 당서기 등의 정치국원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와 지방의 현황 등에 대해 의견을 발표하고 의견교환을 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앞으로 베이징, 상하이, 광둥성 등 중국 경제발전의 핵심축을 이루는 성(省)과 특별시의 책임자들이 곧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행정의 중심인물들이 될 것이라는 예고를 한 셈이다. 시진핑은 코로나19에 대한 제로방역의 피로감 때문에 발생한 공산당과 자신에 대한 인민들의 거부감 표시 이후 당에 대한 장악력이 느슨해지는 것을 우려한 듯 2월 1일 공개된 당 이론지 구시(求是) 기고문을 통해서는 “당의 자아혁명(自我革命)”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이 기고문을 통해 당의 중앙집중적 영도 견지, 전면적인 종엄치당(縱嚴治黨) 견지, 당의 정치 건설 견지, 당의 기조 견지, 당의 작풍(作風) 건설 견지, 반부패 노선 견지, 부정부패와 손 끊기 견지, 중요한 소수 당원에 의한 솔선수범 견지, 국가 감독제도 견지 등 ‘아홉 가지의 견지’를 제시했다. 시진핑은 지난 가을의 당대회 직후 여섯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이끌고 옌안(延安)의 중국공산당 혁명 유적들을 돌아보며 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게 현재의 중국공산당이 마오쩌둥 시절 초기 공산당의 초심을 잃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상무위원들에게 거듭 강조했다. 이번 정치국원들에 대한 집체학습에서는 경제발전과 군사력 확보가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수레의 두 바퀴임을 분명히 했다. 다음 달 5일 개최되는 전국인민대표 대회를 앞두고 지난 겨울 동안 많이 흔들린 중국공산당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과 중국공산당의 국내정치 장악력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정신점검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 정치국원들에 대한 집체학습은 개혁개방 초기의 덩샤오핑 시대에는 사회주의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모임이었으나, 시진핑 시대에 와서는 거꾸로 당의 국내정치 장악력과 자신의 3연임 체제 굳히기를 위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미니 박스> 시진핑 집권과 덩샤오핑 개혁개방 정책의 운명 시진핑은 1월 31일 정치국 집체학습을 통해 1980년대부터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 정책의 운명에 대해서는 학습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개혁개방을 진일보 심화시키고, 국내와 국외 쌍순환의 동력과 활력을 증강하자. 시장화 개혁을 심화시키고, 높은 수준의 시장시스템을 건설하며, 전국 통일 대시장을 구성하자. 지적 재산권 보호정책을 완비하고, 공평한 경쟁과 시장경제 기초제도를 확립하고, 독점과 부정당한 경쟁을 지양하자. 자본의 건강한 발전과 경영주체들의 창업을 보장하기 위해 양호한 투자환경을 보호하고,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추진한다.” 이번 집체학습에서도 경제발전과 안보를 병행하는 ‘주동권’ 확보가 우선 강조되고, 개혁개방에 대한 강조가 후순위로 밀린 점이 주목된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 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2023-02-03 06:00:00
- [박승준의 지피지기] 2023년의 중국 : 조심스러운 시진핑, 파이팅 넘치는 외교팀 2022년 12월 31일 발표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2023년 신년사는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어렵다는 뜻인 ‘난(難)’이라는 글자가 9개나 들어갔다. “기업들의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紓難解困)···” “인민들의 급한 어려움과 근심을 해결해주기 위해(急難愁盼)···” “전에 없던 곤란(困難)과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자연재해와 안전사고는 견디기 어려워서(令人難過)···” “보기 드문 곤란(困難)···” “내가 늘 말하던 간난신고(艱難辛苦)는···”. 시진핑은 내일의 중국을 말하면서도 북송의 시인 소식(蘇軾·蘇東坡)의 시구(詩句)를 인용했다. “어려움과 마주하는 것은 멀리 가기 위함이요(犯其至難而 圖其至遠)···” “길이 아무리 멀고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路雖遠 事雖難)···”. 시진핑은 10년 전인 2012년 가을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당선된 이후 벌써 10번이나 신년사를 발표했지만 올해처럼 조심스러운 표현에 조심스러운 표정을 보여준 일은 없었다. 지난해 신년사만 해도 ‘난(難)’이라는 글자는 2개에 불과했다. 올해 신년사에는 지난가을 20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두 개의 옹호(兩個維護·시진핑 총서기를 당의 핵심으로 옹호하고, 당 중앙의 권위와 통일적 리더십을 옹호)’라든가, 공동부유(共同富裕)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다. 공동부유는 1978년에 시작된 개혁·개방 시대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선부론(先富論·누구든 부자가 되면 경제 발전을 선도한다는 이론)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강화한다는 개념을 제시한 것이었다.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한다”든가 “중국식 현대화 추진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위대한 청사진을 구현한다”는 말은 들어갔지만 마르크스(馬克斯)라는 이름은 인용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해 11월 20일부터 12월 18일까지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 때문에 눈이 띈 14억 중국 인민들이 상하이(上海)를 비롯한 전국 도시 곳곳에서 “공산당 물러가라(共産黨下臺)" "시진핑 물러가라(習近平下臺)”고 외치는 소리를 또렷이 담은 동영상을 시 주석이 보기라도 한 것일까. 비록 견디기 힘들기는 하지만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중국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시 주석의 ‘둥타이칭링(動態淸零·제로 방역)’을 따르다가 TV 중계로 본 카타르 월드컵에서 선수도 관중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중국만 왜?”라는 깨우침을 얻게 돼 A4 흰 종이 한 장씩 들고 인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소리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일까. 시 주석 신년사에는 “중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요구를 하고, 한 가지 일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보기 드문 내용도 포함됐다. 방역의 방법론에 대해서 시 주석은 “현재 방역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으며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모두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노력을 하면 앞날에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말해 지난 3년간 유지해오던 “적극적인 제로 방역 견지(堅持動態淸零)”라는 말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지난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의 실현이 양안(兩岸) 동포들의 공통된 마음”이라는 표현을 대폭 누그러뜨려서 “해협 양안은 서로 한 집안 친척(一家親)이니 함께 손을 잡고 중화민족의 복을 창조하자”고 표현했다. 시 주석은 중국 경제 현황에 대해서도 “세계 2위 경제 규모의 지위는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경제는 온건한 발전을 지속하고 있고, 전 세계가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식량 현황은 19년째 풍년을 실현해서 중국인 밥그릇이 점점 단단해져 가는 중”이라는 판단을 제시했다. 시 주석 신년사에서 특이한 점은 지난해 11월 30일 세상을 떠난 장쩌민(江澤民) 전 당 총서기의 죽음을 언급한 부분이다. 시진핑은 “2022년 장쩌민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그의 공적과 그가 남긴 보귀한 정신적 재산을 귀하게 여겨 그의 유지를 계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덩샤오핑이 이끈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이끈 빠른 경제성장을 넘어서 공동부유의 세상으로 가겠다고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3연임을 추구하던 기개는 잠깐 내려놓은 것일까. 그는 “역사는 파란만장한 것이어서 한 세대, 한 세대의 사람들이 분투한 노력이 오늘의 중국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볼 수 없었던 조심스러운 신년사를 발표한 것과는 달리 연말 12월 30일에 단행한 외교팀 구성에서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차 당대회 과정에서 1950년생으로 72세가 된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퇴진시키고 1953년생인 왕이(王毅) 중앙위원 겸 외교부장을 정치국원으로 끌어올려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맡겼다. 외교부장에는 주미 대사를 지낸 전랑(戰狼) 외교의 상징 친강(秦剛)을 중앙위원으로 끌어올리고 12월 30일 외교부장으로 발탁했다. 1966년생인 친강은 1988년 외교부에 입부했기 때문에 1986년 외교부에 들어온 러위청(樂玉成·1963년생) 전 부부장과 1987년 외교부원이 된 마자오쉬(馬朝旭·1963년생) 전 부부장을 제치고 발탁됐다. 2005년 외교부 대변인, 2018년 외교부 부부장을 거쳐 2021~2022년 주미 대사를 지낸 친강은 스스로를 “전랑(戰狼·늑대) 외교의 상징”으로 자처하는가 하면 “내가 전랑 외교의 상징이라면 유럽과 미국 외교관들은 악랑(惡狼·나쁜 늑대) 외교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서슴지 않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친강은 지난해 1월 미국 NPR 라디오와 인터뷰하면서 “미국과 유럽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중국이 인종학살(genocide)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조작된 거짓말이며 가짜뉴스”라고 담대하게 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외교부 대변인 시절에는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종이와 화약, 나침반, 인쇄술 등 고대 중국의 4대 발명품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해서 미국과 유럽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친강보다 외교부 선임으로 러시아통이던 러위청은 지난해 2월 14일 푸틴이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한계없는(no limit) 협조체제를 만들자”는 합의 문구를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장본인이다. 러위청은 이 때문에 외교부 부부장에서 중국 라디오TV 총국 부국장으로 좌천된 기록을 남겼다. 중국 외교부 서열 3위이던 친강은 지난해 12월 6일 워싱턴에서 열린 중국과 미국 무역위원회 송년 파티에 참석해 “그동안 나를 전랑 외교의 상징이라고 평가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는 코멘트를 해서 자신이 외교부장으로 발탁될 것임을 과시한 것으로 홍콩 신문들에 보도됐다. 주일 대사를 지낸 왕이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판공실 주임과 주미 대사를 지내고 중앙위원으로 승격된 친강이 올해부터 보여줄 중국 외교의 인상은 전랑(늑대)의 모습이 될 전망이다. 전임 양제츠 정치국원 겸 중앙외사공작판공실 주임과 왕이 중앙위원 겸 외교부장으로 구성된 외교 사령탑의 인상은 왕이·친강 카드로 바뀌어 한층 강한 이미지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올 한 해 중국의 표정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조심스러운 표정과 왕이·친강이 보여줄 전랑 외교의 스핑크스의 두 얼굴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는 새로 외교부장에 발탁된 친강이 유창한 영어로 보여줄 ‘중국식 논리’ 사이에서 다소 혼란스러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신년사에서 보여준 조심스러운 표정도 시 주석이 인용한 소식의 시구의 본뜻이 “어려움과 마주하는 것은 멀리 가기 위함”이라는 전술적 조심스러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니박스] 친강(秦剛) 신임 중국 외교부장 겸 당 중앙위원 프로필 1992~1995년 외교부 서유럽 담당 3등 서기관 1995~1999년 주잉글랜드·아일랜드 서기관 2005~2010년 외교부 대변인 2014~2017년 외교부 의전국장 2017~2018년 외교부 부장조리 2018~2021년 외교부 부부장 2021~2022년 주미 대사 2022년 12월 30일 외교부장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 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2023-01-05 06:00:00
- [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3기'의 9갈래 인맥 …'중국식 현대화' 어떻게 이끌까 “중국에서 한 시대가 이제 막 끝났다(An Era Just Ended in China).” 뉴욕 타임스는 지난 10월 26일 미시간 대학의 중국 정치경제학자 위엔 위엔 앙(Yuen yuen ang· 중국어 이름 洪源遠)의 칼럼에 그런 제목을 달아 프런트 페이지(1면)에 소개했다. 이날은 10월 16일 개막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23일 오전 제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열어 시진핑(習近平)을 세 번째의 5년 임기 당총서기로 선출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위엔 위엔 앙은 싱가포르 출신 여성 정치경제학자로, 미 스탠퍼드 대학에서 중국 정치경제 연구로 박사를 받았다. 앙의 대표 저작은 ‘중국은 어떻게 가난에서 벗어났나(How China Escaped Poverty)’, ‘중국의 황금시대(China’s Gilded Age)’ 등이 있다. 시진핑의 당총서기 3연임 성공으로 “중국에서 한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한 위엔 위엔 앙 박사의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44년 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시대를 시작했고, 가난하고 자급자족 경제의 나라 중국을 떠오르는 글로벌 파워의 국가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지난 주 시진핑 주석은 그 시대를 종결시켰다. 그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도전받지 않을 권위를 가지고 통제와 안전에 대한 집착을 향해 나아갈 것임을 밝혔다. 그의 그런 계획은 경제를 해치게 될 것이다.…” 위엔 위엔 앙 박사의 결론은 이런 것이었다. “덩샤오핑이 이끈 중국의 위대한 자본주의 혁명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시진핑이 이끈 첫 10년 동안은 그래도 중도층이나 충성분자가 아닌 관리들에 의한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이 있었다.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과 소련은 절대 독재는 중국을 번영하고 강한 나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오와 소련은 나라를 가난에 빠뜨리고, 안전보장에도 실패했다. 시진핑은 앞으로 몇 년 내에 그런 교훈을 또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중국어를 원어민처럼 잘 구사하는 호주의 전 총리 케빈 러드(Kevin Rudd · 중국어명 陸克文)는 11월 9일 발행된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붉은 중국의 귀환 – 시진핑이 마르크시즘을 되살려냈다(The Return of Red China – Xi Jinping Brings Back Marxism)”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글의 앞머리에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정치에 결정적인 폐쇄 선고를 했으며, 시진핑은 전례 없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에서 시장을 중시하는 관리들을 제거했다”고 단정했다. 러드 전 호주 총리는 “시진핑의 이데올로기 드라이브가 시작될 것이며, 시진핑은 진정한 마르크스 레닌이즘의 신봉자이다.” 지난 1일 스탠퍼드 대학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e)가 간행하는 온라인 계간 중국연구 전문지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or)’에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자 출신의 우궈광(吳國光)의 소논문이 실렸다. 우궈광은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결과 이루어진 중국공산당 리더십의 변화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그의 소논문 제목은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지도자들, 새로운 파벌 역학(New Faces of Leaders, New Factional Dynamics)’이었다. 우궈광은 이번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중국공산당에서 “과거의 파벌은 사라지고, 새로운 파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이번 대회 기간 중에 시진핑의 지시에 따라 대회장에서 강제로 퇴장당한 후진타오(胡錦濤) 전 당총서기를 중심으로 하는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과, 5일 베이징 시내 서쪽 팔보산(八寶山)에서 화장해서 재로 변한 장쩌민(江澤民) 전 당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상하이방(上海幇)은 해체되고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9개 그룹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우궈광은 중국공산당에 새로 형성된 9개 그룹은 ▷푸젠(福建) 그룹 ▷저장(浙江)그룹 ▷신(新) 상하이(上海)그룹 ▷산시(陝西) 그룹 ▷군산(軍産)그룹 ▷칭화(淸華)그룹 ▷공안(公安)그룹 ▷펑리위안(彭麗媛) 그룹 ▷당교(黨校) 그룹이다. 이 그룹들은 시진핑이 1969년 16세 때 문화혁명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산시(陝西)성 옌안(延安) 부근 농촌으로 지식청년(知靑) 하방의 길을 택하면서부터, 칭화(淸華) 대학을 졸업하고, 허베이(河北)성 지방 당간부로 시작해서 2012년 가을 제18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르기까지 43년간 푸젠-저장-상하이를 전전하며 각급 당간부와 행정부 중요 직위를 거치는 동안 자신이 접촉한 인사들을 결집시켜 형성한 광범위한 인맥을 바탕으로 한 그룹들이다(표1 참조). 우궈광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의 과거 파벌들은 이번 시진핑의 3연임 성공과 자연적인 수명의 종결로 사라지게 됐으며, 시진핑 주변의 여러 파벌 그룹들도 아직 분명하게 구분이 지어지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시진핑의 3연임 임기 5년 동안 이들 파벌의 구분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궈광이 분류한 9개 그룹의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푸젠 그룹 =정치국 상무위원 차이치(蔡奇), 국가발전개혁위 주임 허리펑(何立峰), 정치국원 황쿤밍(黃坤明) 등이 대표적이고 ▷저장 그룹 = 총리 내정 정치국 상무위원 리창(李强), 중앙군사위 부주석 허웨이둥(何衛東), 충칭시 당서기 천민얼(陳民爾) 등 ▷신 상하이 그룹 =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내정자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내정자 딩쉐샹(丁薛祥), 정치국 상무위원 리시(李希) 등 ▷산시 그룹 =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 내정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장여우샤(張又俠), 정치국원, 산시성 당서기 류궈중(劉國中) 등 ▷군산(軍産)복합 그룹 = 정치국원 마싱루이(馬興瑞), 저장성 당서기 위안자쥔(袁家軍), 랴오닝성 당서기 장궈칭(張國淸) 등 ▷칭화대 그룹=상하이시 당서기 천지닝(陳吉寧), 산둥성 당서기 리간제(李干杰) 등 ▷공안 그룹=중앙서기처 서기 천원칭(陳文淸) 등 ▷펑리위안 그룹= 베이징 당서기 인리(尹力)와 신장위구르 자치구 당서기 마싱루이는 특히 시진핑의 부인과 가까워서 발탁됨 ▷당교 그룹= 중앙서기처 서기 스타이펑(石泰峰), 중앙서기처 서기 리수레이(李書磊) 등이라고 한다. 이들 그룹은 당대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파벌을 제대로 형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연과 혈연, 학연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 정치의 구조 때문에 앞으로 서서히 파벌의 특성을 나타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 총서기도 그런 점이 걱정이 되어 20차 당대회 개막 다음날인 지난 17일 오전 광시(廣西) 당대표들과 토론회에 나가 “전당과 전국의 각 민족 인민들은 당의 깃발 아래 ‘한 덩어리의 단단한 강철(堅硬的鋼鐵)처럼 단결하라”는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이번 20차 당대회 개막 당일 정치보고를 통해 자신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앞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두 번째 100년이 시작되는 2049년까지 ‘중국식 현대화’를 이루기 위해 분투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시진핑이 이번 당대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제시했다고 할 수 있는 ‘중국식 현대화’에 대해 “중국식 현대화란 중국공산당이 리드하는 사회주의 현대화”라고 규정하고, 중국식 현대화한 첫째 인구 규모가 거대한 나라가 이루는 현대화이며, 둘째 전체 인민이 공동부유해지는 현대화이고, 셋째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서로 조화로운 현대화, 넷째 사람과 자연이 화해 공생하는 현대화라고 설명했다. 시진핑이 제시한 중국식 현대화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중국공산당이 많은 설명회를 개최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시진핑은 이 당 대회 개막 보고를 통해 중국이 “지난 40여 년간 덩샤오핑이 이끄는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완비와 개방형 경제 체제의 기본을 형성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간단히 언급하기는 했으나 ‘중국식 현대화’란 개념에 가려 제대로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번 20차 당 대회로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시대가 끝났다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의 판단이나 시진핑이 중국에 마르크시즘을 되살려냈다는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의 포린어페어즈 기고가 맞아떨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이번에 3연임에 성공하면서 7상8하라는 은퇴연령 폐지나 후계자 지정 방식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점이 중국공산당의 앞날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우궈광의 전망은 주목해야 할 듯싶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 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2022-12-07 06:00:00
- [박승준의 지피지기] '서열 2위' 리창이 이끌 中경제 미리보기 지난달 23일 낮 12시 5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금색대청(金色大廳). 오전에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선출된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이 기다리고 있던 내외신 기자 600여 명 앞으로 걸어나왔다. 시진핑(習近平), 리창(李强), 자오러지(趙樂際), 왕후닝(王滬寧), 차이치(蔡奇), 딩쉐샹(丁薛祥), 리시(李希). 시진핑은 3연임 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선출됐다. 내년 3월 5일 개최될 예정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3연임 국가주석에도 선출될 예정이다. 리창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는 내년 3월 전인대에서 총리로 선출될 예정이다. 제19기 중앙위에 이어 두 번째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자오러지는 내년 전인대에서 상무위원장에 선출되도록 되어 있다. 역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재선된 왕후닝은 내년 3월 4일 전인대에 앞서 개최되는 전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서 주석으로 선출될 예정이다. 차이치 베이징(北京)시 당위원회 서기는 당의 선전 부문과 이념 문제를 관장하는 서기처 서기로 선출됐다. 시진핑의 ‘영원한 비서’ 딩쉐샹 당 중앙판공청 주임은 내년 3월 상무부총리를 맡을 예정이다. 리시 광둥(廣東)성 당위원회 서기는 시진핑을 도와 반부패 드라이브를 담당할 당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선출됐다. 시진핑 바로 뒤에 두 번째로 걸어 나온 리창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일 “친(親)기업 성향의 현실주의자인가, 시진핑의 충성분자인가(Pro-business pragmatist, or Party Loyalist?)”라는 의문을 던졌다. 리창은 그동안 장강(長江) 하류인 저장(浙江), 장쑤(江蘇), 상하이(上海) 행정수장과 당위원회 서기를 두루 역임하면서 친기업형 현실주의자로서 굵직굵직한 업적들을 남겼다. 그러나 리창의 ‘헬리콥터형’ 출세와 업적이 대부분 시진핑이 2002년 저장성 당위원회 부서기와 성장 대리로 부임해온 이후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점에서 시진핑에 대한 충성분자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리창은 저장성 성장이던 2014년 국제 인터넷 콘퍼런스를 주최해서 서방 기업들에 대한 중국 인터넷의 방화벽(Firewall)을 풀어주었고, 장쑤성 당위원회 서기 시절이던 2016년에는 중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창시자 알리바바의 마윈(馬云)을 만나 투자를 유치하는 실적을 남겼다. 리창은 상하이시 당워원회 서기이던 2019년에는 20억 달러 규모인 최초의 테슬라 해외 공장을 유치하는 업적을 남겼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뒤에는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따르는 중국의 백신 대신 미국과 유럽의 mRNA형 백신 제조를 지지하는 몇 안 되는 중국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시진핑 당 총서기 방침에 따라 상하이시 일원에 대한 제로 방역 도시 봉쇄를 밀어붙여 2500만 상하이 시민들에게 원성을 샀다. 리창이 이번에 서열 2위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된 것도 시진핑의 뜻에 따른 제로 방역과 도시 봉쇄를 밀어붙인 덕분이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알리바바와 마윈에 대한 리창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었다. 2014년 시진핑에 대한 충성분자들이 마윈에 대한 찬사를 경쟁적으로 발표할 때 리창도 저장성 성장으로서 국제 인터넷 콘퍼런스에 나와 “더 많은 알리바바와 더 많은 마윈이 나와야 한다”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2020년 10월 마윈이 상하이에서 “중국의 금융 시스템은 전당포 수준”이라고 비난했다가 당 기율검사위원회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이후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실종 상태에 빠진 이후에는 같은 저장성 사람인 마윈에 대해 아무런 구조나 보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이다. 리창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자세에는 한계가 있으며 시진핑에 대한 충성분자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평가인 것이다. 전 세계 차이나 타운에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홍콩의 중국어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호는 리창이 ‘장강 삼각주 지역에 첨단 과학기술 기지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리창은 저장·장쑤성·상하이시 당서기와 행정 책임자를 지내면서 양자(量子·Quantum) 컴퓨터 개발, 인공지능(AI), 반도체 집적회로와 바이오 산업,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 연구개발을 선도하는 행정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상하이 당서기 시절 ‘상하이시 경제일체화 계획’을 추진한 경력도 있는 인물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1959년 7월 저장성 루이안(瑞安)현 출생으로 시진핑보다 여섯 살 아래인 리창은 전기배관공 출신이다. 우리 고교 시절에 해당하는 기간에 루이안 현 농기계 제작 제3공장 직공이었고, 19세 때 저장성 농업대학 닝보(寧波)분교에서 농업의 기계화를 전공했다. 24세 때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하고 이어서 공산당에 입당하면서 리창은 당 관료로서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저장성 민정청 농촌구제처 간부가 됐고, 29세 때 처장, 33세에 저장성 민정청 부청장을 거쳐 37세 때 인구 50만명 정도인 융캉(永康)시 당위원회 서기가 됐다. 리창이 파이낸셜타임스에서 표현한 ‘헬리콥터형’ 수직 상승을 시작한 것은 2002년 시진핑이 저장성 당위원회 부서기 겸 성장 대리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당원 재교육 기관인 당교에서 간부 육성반을 1년간 다닌 그는 시진핑에게 발탁돼 일약 ‘중국의 유대인’이라는 말을 듣는 원저우(溫州)시 당위원회 서기가 됐다. 원저우는 한국에서 신발 산업을 넘겨받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발을 제조하는 신발왕국이었다.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패션 명품 산업을 원저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국 BBC 취재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후 리창은 시진핑을 보좌하는 저장성 당위원회 비서장을 거쳐 2013년에 저장성 당서기, 2016년에 장쑤성 당서기, 2017년에는 중앙당 정치국원 겸 상하이시 당서기로 날아올랐다. 리창은 이미 2016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소속 중국 전문가 청 리(Cheng Li)가 쓴 ‘시진핑 시대 중국 정치(Chinese Politics in Xi Jinping Era)’에 시진핑 후계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리창이 시진핑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니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시진핑의 당총서기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평가를 받던 천민얼(陳敏尒)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이번 20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지 못하고 정치국원으로 남은 점을 생각해보면 시진핑의 용인술(用人術)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천민얼과 함께 그동안 중국 안팎에 시진핑 후임 당총서기로 거론되던 후춘화(胡春華)는 이번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에서 중앙위원으로 강등된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당총서기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은 자신의 후계자로 떠오르는 리우링허우(六零後·1960년대생)들을 내친 것을 보면 1959년생인 리창을 시진핑 후계자로 평가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2012년 18차 당대회와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두 전임자가 발탁한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이번에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에서 빠진 사실은 리창이 정치적으로 시진핑에게서 독립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8월 중순 리커창 총리가 중국 고위 지도자들의 해변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마친 직후 남부 광둥성 선전(深圳)을 방문해 덩샤오핑(鄧小平) 동상에 헌화함으로써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지속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했지만 상무위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리창 총리 내정자는 리커창 총리 수준의 독립성을 확보하기에도 어려운 처지이며 따라서 중국 경제의 큰 흐름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는 종결되고 시진핑의 공동부유론과 중국식 현대화의 길로 좌회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 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호서대 초빙교수 2022-11-08 06:00:00
- [박승준의 지피지기] 中은 앞날은? …7중전회 '公報'에 힌트 있다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회의(7중전회) 공보(公報)가 12일 오후 8시 발표됐다. 중앙위원회는 중국공산당의 중심 조직이다. 지난 9일 개회해서 12일까지 나흘간 열린 이번 7중전회에는 정위원 119명, 후보위원 159명 등 모두 278명의 중앙위원들이 참석했다. 중앙위원들의 임기는 5년이며 이번 7중전회에 참석한 중앙위원들은 지난 2017년 10월에 개최된 제19차 당대회(전국대표대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들이다. 중앙위원들은 5년 임기 동안 대체로 7차례의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중전회)를 개최한다. 이번 19기 7중전회에 참석한 중앙위원들은 이번이 마지막인 회의에서 오는 16일 개최될 20차 당대회의 기조(基調)를 정해주고 임기를 마치게 된다. 19기 중앙위원들은 20차 당대회의 기본 흐름을 담은 ‘공보(公報)’를 발표하고 중국공산당 운영의 바통을 오는 16일 개최되는 20차 당대회에서 선출될 300명 안팎의 20기 중앙위원들에게 넘겨주게 된다. 중국공산당의 회의 방식은 회의가 개최되면 토론을 벌여 결론을 도출하는 우리의 정치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회의 개최 이전에 물밑 회의와 모임을 통해 결론을 만들어놓고, 결론이 만들어져야 회의를 개최하는 형식이다. 이른바 ‘민주집중제’에 따른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19기 7중전회의 회의 결론을 담은 7중전회 공보에는 오는 16일 개막될 20차 당대회의 흐름을 미리 읽어볼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 담겼다고 볼 수 있다. 12일 오후 8시(중국시간 오후 7시) 중국관영 신화통신과 중앙TV를 통해 발표된 7중전회 공보는 중국공산당이 16일 개막되는 20차 당대회에서 내릴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의 내용을 미리 짚어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첫째는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의 3연임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럴 것이다”는 결론을 시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둘째는 중국이 지난 40년 동안 유지해온 덩샤오핑(鄧小平)식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유지될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도 “대체로 그럴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진핑이 지난 5년간 시도해온 중국경제의 ‘좌향좌(左向左)’, 즉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사회주의로 복귀시키는 흐름은 어느 정도 멈출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시진핑의 당총서기 3연임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과 “두 개의 옹호(兩個維護)”가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7중전회 공보는 “당은 시진핑 동지를 당 중앙의 핵심이자, 전체 당의 핵심이라는 지위라는 방침을 확립해야 하며,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영도적 지위를 확립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혀놓았다. “전체 당원들은 ‘두 개의 확립’의 결정적 의의를 심각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표현도 붙여놓았다. ‘두 개의 옹호’에 대해서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 주위로 보다 긴밀하게 단결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전면적으로 관철해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단결분투를 전면적으로 추진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개의 확립’과 ‘두 개의 옹호’는 지난해 11월에 개최된 제9기 6차 중앙위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채택된 ‘역사 결의’를 통해 채택된 방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7중전회 공보는 시진핑이 당총서기와 함께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 세 개의 자리에도 모두 3연임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7중전회가 개막한 다음날인 10일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두 번째로 온 것(Xi Jinping is the second coming of Mao Zedong)”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오피니온 페이지에 커다랗게 실었다. 이 기고에서 중국경제 전문가인 피터 코이(Peter Coy)는 “시진핑은 16일 개막되는 20차 당대회에서 당총서기직 3연임을 달성하고, 나머지 두 자리인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모두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 당대회를 통해 결정되는 것은 당총서기와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 3연임일 뿐,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국가주석과 행정부의 군 통수권을 쥐고 있는 국가중앙군사위 주석 자리의 3연임은 내년 3 월5일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때 가서야 확정되는 것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미지수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번 당 대회에서 시진핑의 당 총서기 3연임이 확정된 이후 중국의 경제시스템은 시진핑이 지난 5년간 해온 것처럼 민간부문보다 국영 부문을 계속 강화해나가게 될까.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들인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두 명의 전임 당 총서기가 지난 1989년부터 2012년까지 30여 년간 구축해놓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버리고 국영 부문을 강화해서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되돌아가는 좌향좌를 하게 될까. 7중전회 공보를 보면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닌 듯하다’는 쪽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7중전회 공보가 시진핑이 이끌어온 지난 5년간을 회고하면서 “19차 당 대회 이후 지난 5년간은 극히 심상(尋常)치 않은 5년이었으며, 극히 불평범한 5년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중요사상인 ‘3개 대표이론’과 후진타오 총서기의 과학발전관을 견지하는 가운데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해나가자”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샤오캉(小康) 사회의 건설을 전면적으로 추진해나가자”고 요구했다. 특히 “샤오캉(小康) 사회의 건설”은 1980년대에 덩샤오핑이 제시하고, 장쩌민과 후진타오 두 총서기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전략적 정책 목표였다. 이 흐름은 시진핑이 지난 1년간 강조해온 ‘공동부유(共同富裕)’라는 구호가 이번 7중전회 공보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시진핑이 당 총서기 3연임 달성이라는 정치적 목표지점에는 도달 가능하지만, 지난 40년간 추진되어온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결합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을 넘어 ‘공동부유’라는 사회주의적 구호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던 발걸음은 멈추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7중전회 공보에서는 지난 2020년 1월 이래 중국에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시진핑 특유의 방역 정책인 ‘제로 방역(動態淸零)’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방역정책에 대한 반대 주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7중전회 공보는 특히 대외정책 면에서 그동안 시진핑이 주장해오던 ‘인류 운명 공동체’ 같은 구호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가 하면, 그동안 중국 관영 미디어들이 통용어로 만들어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행동’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라는 표현 대신 “우크라이나 위기가 가져온 위험과 도전”이라는 표현을 채택했다. 대외 전략적인 측면에서 미국과의 대결을 전제로 하는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를 적극 추진한다”는 표현은 들어갔지만, 미국이라는 국명은 어디에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중국의 대미 외교의 방향을 잘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의 3연임이 이뤄지더라도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중국 권력구조에서 리더십의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본인은 3연임을 하지만 중국공산당 권력 구조의 상층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과 정치국원 25명의 물갈이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야 중국 인민들에게 변화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공동부유를 언급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40여 년간 추진해온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강조한 7중전회의 공보는 시진핑 체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유지의 보루로 여겨져오던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주목하게 하는 흐름을 담고 있다. 1955년생으로 올해 67세라 덩샤오핑 시대 중국공산당 내의 내부 합의이던 ‘칠상팔하(七上八下)’에 저촉이 되지 않는 리커창 총리가 상무위원직을 유지하면서 중국공산당 내 권력 서열 3위로 평가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경우 중국 정치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이 주도하는 시리(習李)의 갈등구조는 앞으로 5년간 연장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다음의 총리로 리창(李强) 상하이 당 위원회 서기로 대표되는 시진핑 인맥이 선택될 것인지, 아니면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 계열의 후춘화(胡春華)나 현재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왕양(汪洋)이 선택될지도 당 대회 이후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미니박스] 중국공산당 당 규약 개정 중국공산당이 중심인 중국 정치는 헌법보다 당규약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20차 당 대회 기간에 이뤄질 당규약 개정의 주요 내용은 시진핑 3연임을 넘어 이후까지도 보장할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과 ‘두 개의 옹호(兩個維護)’에 대한 당규약 삽입이 주요 내용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중국공산당원들의 진급 아니면 퇴임이던 인사 원칙을 바꾸어 직급과 직위 강등도 가능하게 할 ‘능상능하(能上能下)’가 당규약에 삽입될 것인지도 관찰 포인트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현 최종현 학술원 자문위원 ▲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 호서대 초빙교수 2022-10-14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