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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1 SUN
브랜드칼럼
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dslee@globalpeace.org
  •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글로벌피스재단에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고 있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새것만 짓다 어제를 철거한 사회

    작년 겨울, 광주의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일흔이 넘은 형틀 목수 한 분을 만났다. 점심을 먹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던 그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평생 짓기만 했지, 무엇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그 말을 오래 잊지 못했다. 그가 세운 거푸집 안에서 굳어진 콘크리트는 누군가의 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집을 지은 사람에게는 자기 삶을 설명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의 한숨을 한 개인의 쓸쓸함으로만 듣기는 어렵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지는 부지런히 셌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이 어떤 시간을 살아냈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다. 준공된 건물에는 이름이 붙어도 그 벽을 세운 손의 이름은 좀처럼 남지 않는다. 성과는 사회의 것이 되고 피로는 개인의 것이 되는 동안 한 사람의 생애는 어디에 기록되는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할 때도 우리 시선은 흔히 순위에 머문다. 누가 더 많이 수출하는가, 어느 기업이 더 앞섰는가를 묻는다. 올해 우리나라는 수출액이 일본을 능가할 거라고 한다. 솔직히 뿌듯하다. 그러나 경제 성적표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더 빨리 달리는 사회가 반드시 더 안전한 사회인가.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 나라에서 사람은 자기 삶을 더 소중하게 느끼는가. 성장의 자부심과 삶의 존엄은 저절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과 ‘개선’이라는 두 말을 생각해 본다. 혁신이 새로운 길을 여는 힘이라면 개선은 이미 걷고 있는 길의 턱을 살피고 고치는 힘이다. 물론 둘은 비슷하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에도 거듭되는 수정이 필요하고, 작은 수정이 쌓여 작업 방식 전체를 바꿀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새로 시작하는 일에 비해 오래 다듬는 일을 얼마나 존중해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어로 개선을 뜻하는 ‘가이젠’은 도요타 생산방식에서 모든 구성원이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점진적 개선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변화의 크기보다 변화의 주체다. 일하는 사람은 지시받은 동작만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일을 관찰하고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판단에 쓰일 때 노동은 단순한 반복을 넘어 축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을 혁신의 나라, 일본을 개선의 나라로 나누고 한쪽의 우월함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숙련공에게도 평생을 다듬어 온 기술이 있고, 일본의 일터에도 바꾸어야 할 관행이 있을 것이다. 배워야 할 것은 어느 국민의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경험을 듣고 수정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개선이 오직 비용을 줄이고 노동의 속도를 높이는 수단이라면 그것 역시 사람을 소모시키는 또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미장 일을 하다 보면 한번에 매끈하게 끝내려는 마음이 오히려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바탕의 상태를 살피고, 반죽의 되기를 맞추고, 흙손에 주는 힘을 조절해야 한다. 같은 벽처럼 보여도 손이 받아들이는 감각은 다르다. 어제 익힌 동작을 오늘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숙련은 아니다. 어제의 경험으로 오늘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손을 바꾸는 것이 숙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선은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니다. 경험을 버리지 않되 경험에 갇히지도 않는 일이다. “늘 이렇게 해 왔다”는 말로 새 의견을 막는다면 그것은 개선이 아니라 고집이다. 오래 일한 사람의 감각과 새로 들어온 사람의 질문이 만날 때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위험도 모습을 드러낸다. 축적의 가치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변화하는 데 있다. 이러한 시간의 감각은 노년을 대하는 태도와도 이어진다. 우리는 나이 든 사람에게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묻곤 한다. 일을 더 할 수 있는가, 새로운 기계를 다룰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가. 필요한 질문이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다. 무엇을 견뎠고 누구를 돌보았으며 어떤 일을 배워 남겼는지도 물어야 한다. 노년의 빈곤과 고립을 마음가짐이나 성찰의 부족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면 먼저 그 여유를 허락하지 않은 노동과 생활의 조건을 살펴야 한다. 소득과 주거, 의료와 돌봄은 감상적인 위로로 대신할 수 없다. 삶을 돌아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오늘을 견딜 조건부터 함께 마련해야 한다. 존엄은 자신의 생애를 긍정하라는 주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 토대 위에서 우리가 더 보태야 할 것은 노년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다. 사람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기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다. 지난날을 말할 때마다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로 취급받는다면 그는 자기 경험을 어디에 놓아야 할까. 반대로 과거의 경험만으로 젊은 사람의 어려움을 재단해서도 안 된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것은 한쪽이 가르치고 다른 쪽이 듣기만 하는 일이 아니다. 일본의 시바타 도요는 아흔을 넘겨 시를 쓰기 시작해 아흔여덟에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냈다. 이 이야기를 일본 사회 전체가 노년을 잘 보듬는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늦은 나이에도 자신의 시간을 자기 언어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지나온 생애를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생애가 새 표현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모든 노인이 시집을 내거나 특별한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남에게 보여 줄 작품이 없어도 한 사람의 생애는 존중받아야 한다. 자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동료에게 전하는 작업 요령, 오늘 하루를 적은 짧은 문장도 자기 시간을 되찾는 길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쉬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 존엄의 조건을 다시 생산성과 성과에 묶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 기술도 이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무인 주문기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배우라는 재촉만이 아니다. 글자를 알아보기 쉬운지, 설명을 되짚을 수 있는지, 필요하면 사람에게 물을 수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기술을 되돌리자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놓친 사람을 살피자는 것이다. 개선은 가장 익숙한 이용자의 속도만 측정하는 대신 이용을 포기한 사람의 이유를 묻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도 다르지 않다. “이 작업대가 좀 흔들리는데, 먼저 확인하고 합시다.” 이 말을 꺼낼 수 있는 현장인가를 나는 묻고 싶다. 안전을 위한 설비와 규정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위험을 느낀 사람이 입을 다문다면 그 감각은 공동의 판단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문제를 알아차리는 능력만큼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조건이 중요하다. 위험을 말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지금 바쁜데 그런 것까지 따지느냐”라면 다음에는 침묵하기 쉽다. “지금껏 사고가 없었다”는 말로 불편함을 눌러 버리면 무사했던 과거가 안전한 미래를 보장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반대로 작업을 잠시 멈추고 함께 확인한다면 그 한마디는 동료를 지키는 지식이 된다. 안전문화는 벽에 붙은 문구보다 이런 응답 속에서 드러난다. 그렇다고 법과 감독을 줄이고 노동자의 자율성에 맡기자는 뜻은 아니다. 안전한 작업대와 추락 방지시설을 갖추고, 적정한 인력과 공기를 확보하는 것은 사업주와 관리체계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위험의 발견과 해결을 모두 노동자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규정은 최소한의 바닥을 만들고, 현장의 참여는 그 바닥 위에서 놓친 위험을 찾아내야 한다. “위험하면 멈추라”는 말에는 멈춘 뒤의 대책도 따라야 한다. 확인과 보수에 필요한 시간은 누가 보장하는가. 작업이 늦어졌다는 이유로 임금이나 다음 일자리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가. 작은 개선을 요청한 사람에게 오히려 책임이 돌아가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용기 있게 말하라고만 한다면 안전은 또다시 개인의 희생에 기대게 된다. 개선의 절차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위험하다는 의견이 나오면 누가 확인할지 정하고, 고칠 때까지 무엇을 멈출지 판단하며, 조치한 내용을 제안한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오늘 발견한 문제가 내일 다른 작업조에도 전달되어야 한다. 의견을 듣는 것으로 끝나는 참여와 실제 작업조건을 바꾸는 참여는 다르다. 작은 목소리가 변화를 만들었다는 경험이 쌓여야 다음 목소리도 나온다.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던 아찔한 순간도 마찬가지다. “운이 좋았다”며 넘길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함께 살피고 같은 위험을 줄여야 한다. 다만 잘못을 고백한 사람을 찾아 혼내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고가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 현장이 더 위험해졌다고 판단해서도 곤란하다. 이전에는 말하지 못했던 일이 비로소 드러나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숙련공의 경험을 존중하는 일도 안전의 예외를 인정하는 일과는 다르다.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보호조치를 생략할 수는 없다. 경험은 위험을 더 일찍 발견하는 데 쓰여야지 위험을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증명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선배가 감지한 흔들림을 후배가 함께 확인하고, 후배가 제기한 의문을 선배가 가볍게 넘기지 않을 때 숙련은 공동의 자산이 된다. 돌아봄은 바로 이런 자리에서 시작된다. 나는 관조를 거창한 철학의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을 잠시 멈추어 살피는 태도로 이해하고 싶다. 오늘 어디에서 무리했는가. 동료가 말하려던 것을 내가 끊지는 않았는가. 내 손이 지나간 자리는 다음 사람에게 안전한가. 하루가 끝날 때 이런 질문 하나를 남기는 일도 자신과 현장을 다듬는 실천이다. 그 시간은 생산이 끝난 뒤 남는 자투리여서는 안 된다. 작업을 검토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일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 바쁜 사람에게 퇴근 후 혼자 성찰하라고 요구하면서 작업 중에는 한순간의 멈춤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회가 사람의 경험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은 그 경험을 나누고 반영할 시간을 보장할 때 비로소 구체적인 뜻을 얻는다. 우리는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낡은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다만 무엇을 새롭게 하든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을 함께 보았으면 한다. 한·일 양국이 서로에게 배울 지점도 승패의 확인보다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위험을 말할 수 있는 방식, 노년의 경험이 다음 세대와 만나는 자리, 기술의 편리함에서 밀려난 사람을 다시 맞아들이는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 광주의 그 형틀목수에게 내가 건네지 못했던 말은 이제 우리 사회를 향한 질문으로 남았다. 평생 일한 사람이 자신이 지은 것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나는 오늘 바른 벽을 한 번 더 살피듯 내가 보낸 하루도 잠시 돌아보고 싶다. 더 많이 해냈다는 말에 앞서 동료와 무사히 마쳤고, 어제의 불편 하나를 오늘 고쳤다고 말하고 싶다. 돌아볼 어제가 있는 삶, 그 어제를 지워 버리지 않는 사회. 우리가 다음으로 지어야 할 것은 어쩌면 그런 집일 것이다.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새것만 짓다 어제를 철거한 사회
  • [이두수의 절차탁마] 결국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신뢰다

    폐허 위에 세워진 질문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라이베리아를 다녀왔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경제와 교육,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나라다. 그러나 1980년의 피의 쿠데타와 1989년부터 14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25만명이 희생되고 행정과 전력, 도로와 학교 같은 국가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했다. 지금은 아프리카 전체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11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가슴속에는 안타까움과 무거운 의문이 함께 휘몰아쳤다. 농촌 마을과 도시 변두리, 그리고 정부 기관들을 둘러보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비어 있는 땅이었다. 도시 주변에도 시골 집 주변에도 개간되지 않은 채 묵혀 있는 땅이 수두룩했고, 텃밭이나 과수원을 일궈 자급자족하려는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풍경을 성실함의 문제로 읽었다. 그 판단이 틀렸음을 아는 데 열하루가 걸렸다. 길가에는 수많은 국제협력단체(NGO)가 세워놓은 화려한 사업 표지판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표지판이 가리키는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흔적만 남은 채 표지판마저 녹슬어 가고 있었다. 보고서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감동적인 사진과 함께 투입(Input)에서 활동(Activity), 산출물(Output), 성과(Outcome), 최종목표(Impact)로 이어지는 PDM 논리모형과 성과지표(Indicator), 검증수단(Means of Verification), 외부전제조건(Assumptions)이 표 안에 빈틈없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사업은 끝났고, 남은 것은 표지판이었다. 표지판은 크게 남았지만 사업이 남긴 행위는 보이지 않았다. 현지 정부 관료들을 만나보아도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열정이나 비전은 느껴지지 않았다. 교사 월급을 정상화하고 학교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에도 주민들은 시큰둥했다. 14년의 내전은 건물만 부순 것이 아니었다. 지식인과 관료, 경영진 같은 엘리트 계층이 죽거나 떠나면서 국가를 설계할 손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장기적인 발전 전략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하려면 막대한 정치적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세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관료들은 5년, 10년 뒤의 국가 비전을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자리에 있는 동안 외부 원조 예산과 이권을 나누어 갖는 정치적 생존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제시해도 소용이 없다. 수십년간 부패와 배신을 경험한 국민들에게는 그것을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정권이 바뀔 텐데", "어차피 자기들 배만 채울 텐데"라는 냉소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오래 쌓이면, 남는 것은 약속을 믿지 않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나도 이 모든 상황이 현지인들의 나태함이나 오랜 내전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리의 지난 역사를 반추해보며, 마지막 날 방문한 전혀 다른 공간을 마주하면서 문제의 본질이 사람의 성품이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에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미장 일을 하는 사람은 무너진 벽을 보면 표면부터 보지 않는다. 안이 어떻게 비어 있었는지를 먼저 본다. 라이베리아에서 내가 본 것도 무너진 표면이 아니라, 오래 비어 있던 그 내부였다. 수탈의 구조와 보상의 부재 왜 그들은 빈 땅에 채소를 심지 않고, 왜 외부 지원으로 만든 농장을 방치했을까? 그 답은 그들이 처한 불확실한 환경 속에 있었다. 라이베리아의 토지 소유권은 대단히 불분명하다. 애써 땅을 개간하고 작물을 심어도, 땅의 가치가 올라가면 관습법상 토지를 소유한 족장이나 부패한 권력자, 혹은 지역 실권자에게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 울타리를 칠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방목되는 동네 가축들이 싹을 뜯어먹기 일쑤이고, 건기와 우기의 극단적 기후 속에서 물을 대는 노동의 기회비용은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이나 소매상 노동보다 훨씬 크다. 오랜 내전, 부패한 행정, 불분명한 토지 소유권, 노력의 결실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속에서 주민들은 "애써 일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지금 라이베리아 주민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구한말 조선의 농민들이 처했던 상황과 너무나 닮아 있다. 19세기 말 조선을 답사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조선의 농민들을 무기력하고 게으르며 길거리에 누워 빈둥거린다고 적었다. 그러나 같은 여정에서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을 만난 그는, 그들이 그 어떤 민족보다 부지런하고 유능한 농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했다. 같은 관찰자의 눈에 두 개의 조선인이 보인 것이다. 달라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놓인 제도였다. 조선의 농민들은 탐관오리의 가혹한 수탈 속에서 많이 일할수록 더 많이 빼앗기는 구조를 겪으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만을 선택했고, 수탈이 없는 땅으로 건너간 뒤에는 거듭났다. 인간의 근면함은 민족성이나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노력과 보상이 정직하게 연결되는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베리아 안에서 학교, 보건소, 우물 같은 기초 인프라는 비록 낡았을지언정 작동하고 있었다. 매일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체 불가능한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설들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유지될 뿐 단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현지 사회가 현재를 겨우 '유지'할 여력만 있을 뿐, 미래를 향해 '투자'할 자본과 사회적 신뢰가 마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담장 하나의 두 세계 방문 마지막 날 찾은 파이어스톤(Firestone)의 하벨(Harbel) 농장은 이러한 구조적 명제를 완벽하게 증명해 주는 공간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고무농장인 이곳은 담장 밖의 잿빛 라이베리아와는 전혀 다른 '별세상'이었다. 농장 외부의 라이베리아 사회는 전기도, 깨끗한 물도, 도로도 없어 정체되어 있지만, 담장 안의 하벨 농장은 자체 수력 발전소, 전용 병원, 학교, 마트, 골프장까지 갖춘 완전한 자급자족형 '문명의 섬'이었다. 이는 라이베리아의 자원과 노동력이 외부 대자본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 혜택은 국부로 환원되지 못하는 구조적 착취 시스템의 단면으로 볼 수도 있다. 파이어스톤은 1926년 라이베리아 정부와 100만 에이커의 땅을 에이커당 6센트에 99년간 빌리는 계약을 맺고 들어왔다. 그 계약은 원래 지난해 만료되어야 했다. 그러나 내전 직후의 과도정부는 2005년 새 계약에 서명했고, 2008년 재협상을 거쳐 임대료가 조정되고 기한은 2041년까지로 정리되었다. 100년 전 흑인 해방 노예들이 세운 나라가 맺은 계약을, 그 나라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스스로 유리하게 바꿀 힘을 갖지 못했다. 미주 출신 해방 노예들이 세운 라이베리아라는 나라에서, 정작 수십년간 흑인 현지인들은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관리직과 부는 백인 외국인들이 독점했던 역사적 아이러니가 그 농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제국주의적 플랜테이션 농장이자 착취의 상징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실용적인 눈으로 바라본 그곳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하벨 농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정규직 4천여 명과 협력업체 인력을 합쳐 6천명에 이르는 현지인 노동자들은 외부 마을 사람들과 달리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매우 부지런히 일했다. "정당한 노동을 제공하면 정해진 날에 확실한 대가가 지급된다"는 시스템이 작동하자, 그들 역시 세계적인 생산성을 내는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관건은 담장 안에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담장이 낮아질 수 있느냐다. 이익이 현지에 재투자되고, 인가된 직업교육과 고용이 연결되고, 소유의 일부가 현지로 넘어가는 설계라면 문명의 섬은 착취의 요새가 아니라 신뢰의 실험장이 된다. 이 모습은 라이베리아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국가적 무정부 상태라 할지라도, 완결형 인프라와 명확한 보상 체계를 갖춘 '거점 개발 모델(Growth Pole Model)'을 구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하는 대규모 기업형 농장 거점, 풍부한 희귀 광물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스마트 광산촌, 아름다운 대서양 해안가를 활용한 리조트 타운과 같은 몇 곳의 성공한 거점을 늘려간다면, 이것이 곧 라이베리아를 바꿀 새로운 산업화의 동력이 될 것이다. 신뢰라는 자산 귀국길에 오르며 가슴속을 채운 것은 라이베리아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향한 위기감이었다. 라이베리아를 무너뜨린 것이 14년의 내전이었다면, 지금 우리를 잠식하는 것은 총성 없는 대립이다. 분단국가라는 조건 속에서 정치적 이념의 차이는 상대를 국정의 파트너가 아닌 타도해야 할 적으로 만든다. 자산 격차는 벌어지고 AI가 일자리의 지형을 바꾸는 사이 생존의 불안은 커지는데, 그 불안은 서로를 향한 적대로 손쉽게 번역된다. 라이베리아에서 냉소가 사회의 기본값이 되는 데 수십년이 걸렸다. 우리가 그 길에 얼마나 들어섰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높은 아파트 단지와 세계를 호령하는 반도체 공장을 보며 대한민국이 견고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국가를 진짜 지탱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공장이 아니다. 열하루 동안 내가 본 라이베리아의 텅 빈 내부를, 이제 나는 우리 쪽으로 돌려 본다. 그 내부의 이름은 사회적 신뢰다. 그리고 신뢰는 선언으로 생기지 않는다. 하벨 농장의 노동자들이 부지런해진 것은 임금이 후해서가 아니었다. 정해진 날에 약속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제도란 결국 약속을 반복해서 이행하는 일이고, 신뢰는 그 이행이 쌓여 만들어진 자산이다. 반대로 수십년간 이행되지 않은 약속은 냉소를 남기고, 냉소는 "애써 일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 판단으로 굳는다. 지금 우리의 갈등은 너무나 많은 경우 관념과 언어의 싸움에서 비롯된다.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만든 반향실 안에서 서로를 향해 자극적인 언어를 쏟아내며 가상의 적을 만든다. 나는 이번 방문을 국제개발협력 단체의 대표로서 다녀왔지만, 도착 다음 날 다시 건설현장으로 출근했다. 그 하루가 알려준 것이 있다. 몸을 쓰는 정직한 노동의 현장에는 거짓이 없다. 미장 칼을 잡고 벽을 바르는 일, 묵직한 자재를 함께 나르는 일은 정직한 물리 법칙을 따르며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우리는 상대의 정치적 신념을 묻지 않는다. 내 앞에서 함께 땀 흘리고 손을 맞추는 동료가 있을 뿐이다. 자재를 함께 든다는 것은 상대가 놓지 않으리라 믿는다는 뜻이고, 그 믿음이 어긋나지 않은 경험이 하루씩 쌓이는 것이다. 국가의 제도가 하는 일도 규모만 다른 같은 일이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낸 뒤에는 상대를 '악마'가 아닌 '노동하는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라이베리아의 폐허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하나다. 정당한 노력이 보상받는 정직한 제도를 지키는 일과, 일상의 노동 속에서 타인을 인정하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가 아니다. 둘 다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가 거대한 관념의 싸움을 멈추고 손을 맞잡는 현장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라이베리아가 겪은 비극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결국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신뢰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내 명함에는 노동자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대부분의 사회생활은 명함 한 장을 건네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명함에는 나의 소속, 직함, 연락처, 회사 로고까지, 이 사회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다. 명함을 내민다는 것은, 상대에게 신분을 증명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도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는 행위다. 그런데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대부분은 자기 명함이 없다. 어느 회사에도, 어느 부서에도, 어느 직함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처럼 취급된다. 자신을 소개할 상징물이 없다는 것은, 곧 '나는 이 사회의 어디에 서 있는가'를 확인할 수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을 그냥 '막노동꾼'이라고 부르며, 사회의 저변, 언제든 교체 가능한 층에 속한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일정하게 소속된 회사가 없으니 내 명함에는 회사 로고 대신 내가 그린 그림이 들어가 있고, 직함란에는 '할석미장공'이라고 적혀 있다. 그냥 '일용직 건설노동자'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대신, 나는 내 일을 구체적으로 부르고 싶었다. 나는 오늘도 현장에서 할석과 미장을 하는 사람이고, 그 일에 나름의 기술과 자부심을 가진 노동자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명함을 건넬 때마다 느낀다. 이건 단지 연락처를 적어놓은 종이가 아니라, '나는 이 일을 하는 자유인이다'라고 말하는 작은 선언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직원, 누군가의 밑에 붙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과 기술을 가진 인간으로서 나를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을. 그러므로 명함은 상징자본의 한 형태다.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속한 장(field), 즉 세상의 어느 판 위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가 농축돼 있다. 건설노동자가 자기 이름과 직업이 적힌 명함을 갖는다는 것은, '나는 그냥 막노동이 아니라, 이 현장이라는 장(場)에서 이런 기술과 역할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는 일이다. 현장은 오늘도 사람을 갈아 넣듯 돌아가지만, 그 속에서 노동자가 자기 이름과 자기가 하는 일을 당당히 적은 명함을 내밀 수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사회 저변'이 아니라 '인간(人間)',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 당당한 자기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작은 종이 한 장에서 시작된 물음 명함은 90밀리미터에 50밀리미터의 크기로 손바닥보다 작다. 그 안에 한 사람의 이름과 소속과 직함이 들어간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 작은 종이가 언제 우리에게 왔는지, 그리고 왜 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물음 앞에 서게 된다. 명함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야 하는 사회에서만 필요한 물건이다. 마을 공동체에서는 얼굴이 곧 신원이므로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 유럽에서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방문카드가 폭발적으로 퍼진 것도 도시화로 낯선 사람과의 접촉이 일상이 되고 신분 상승 이동이 가능해진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 시절 명함 사용 규칙을 아는지 여부 자체가 신분의 신호였다. 명함은 사람을 관계망에서 떼어내 휴대 가능한 단위로 만드는 기술이다. 집과 문중과 마을에 붙박여 있던 이름이 주머니에 넣어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된다. 이 분리가 근대적 개인의 조건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근대식 명함은 1883년 보빙사로 미국에 건너간 민영익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서 대통령의 주선으로 유럽을 순방하던 중 영국에서 청나라 공사에게 건넨 것으로, 지금은 연세대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명함이 널리 퍼진 데에는 인쇄가 결정적이었다. 손으로 쓴 명자(名刺)는 한 장뿐이지만, 인쇄된 명함은 나를 수백 장으로 복제해 뿌릴 수 있다. 자기를 유통 가능한 정보로 만드는 것. 근대적 자기 표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여기에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태어난 신분이 아니라 획득한 직함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직함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 변동과 인쇄 기술의 발전, 이 두 가지를 명함 사용이 급증한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명함의 '무엇'과 '누구' 한국과 일본의 명함은 회사가 먼저, 직함이 다음, 이름이 마지막이다. 활자 크기도 종종 이름보다 소속이 크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명함이 아니라 귀속의 증명서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말한다.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고 바로 넣지 않고 잠시 들여다보는 의례도, 실은 상대의 조직 서열을 읽고 존댓말 등급을 결정하는 절차다. 그러므로 한국의 명함은 개인이 해방되었음을 보여주는 물건이 아니라, 신분제가 사라진 자리에 조직 서열이 들어앉았음을 증명하는 물건에 가깝다. 귀속의 단위가 문중에서 회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렌트의 구분을 빌리면 명함에 적힌 것은 전부 '무엇(what)'이다. 직업, 직위, 소속, 학위.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구(who)'인지는 말과 행위 속에서만 드러난다. 명함은 개인을 특정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체 가능한 기능적 속성들로 사람을 요약해 버린다. 개인주의를 촉진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고유성을 가리는 물건인 셈이다. 이렇게 명함이 사회적 개인의 증명이라면, 명함이 없는 사람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는 명함을 주고받지 않는다. 이름 대신 "미장 아저씨", "오야지", "그 형님"으로 불린다. 근대적 개인주의가 명함이라는 사물을 통해 확산되었다면, 그 확산은 처음부터 선별적이었다. 19세기 유럽에서 명함이 상류층에서 중산층으로 내려오다 멈춘 것처럼, 한국에서도 명함은 사무직의 물건으로 남았다.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는 사람은 책임의 주체로도, 발언의 주체로도 서기 어렵다. 안전 문화가 노동자의 발언에서 출발한다면, 그 발언의 전제는 "나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다. 명함은 그 자리가 제도적으로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작은 표본이다. 명함에서 프로필로 오늘날 명함은 온라인 프로필로 옮겨 가고 있다. 매체는 바뀌었지만 요구는 남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종이 명함은 만나는 순간에만 필요했지만, 온라인 프로필은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거기 서서 나를 대리한다. 두 가지가 달라졌다. 하나는 누적성이다. 명함은 한 장의 요약이지만 프로필은 이력의 층위다. 지난 게시물, 옛 직함, 삭제하지 않은 흔적까지 함께 읽힌다. 요약이 아니라 시간이 쌓인 기록이라는 점에서 '무엇'에서 '누구' 쪽으로 조금은 이동한 셈이다. 다른 하나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함은 인쇄하면 끝이지만 프로필은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자기 표상이 한 번의 소개가 아니라 상시적 노동이 되었다. 자기를 보여주는 일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으로 바뀔 때, 존재의미를 찾는 일은 존재를 변명하는 일이 된다. 자기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은 존재의미를 아직 붙잡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하나를 구별해야 한다. 표상할 수 없는 것과 표상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30년 미장일을 한 사람에게 프로필 양식은 회사명과 직함을 묻는다. 그 칸에 넣을 말이 없는 것은 그의 삶에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양식이 그 삶을 담을 그릇을 갖고 있지 않아서다. 돌봄, 오래된 우정, 매일 새벽 현장에 나가는 성실 같은 것들은 어떤 프로필 칸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를 보여줄 수 없다는 감각이 들 때, 그것이 내 삶의 결핍인지 양식의 결핍인지 한 번은 물어야 한다. 명함이 요약이라면 서사는 시간이다. 명함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언한다면, 서사는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를 보여준다. 아렌트가 말한 '누구(who)'가 오직 말과 행위의 이야기 속에서만 드러난다면, 진짜 프로필은 프로필 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기록일 것이다. 일기, 그림, 하루가 끝났을 때 그가 작업한 벽 같은 것. 보이지 않는 뒷모습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지식인이든 노동자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거창한 직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역설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각 사람의 어깨 너머에 다이몬이 앉아 평생 그를 따라다니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볼 수 없고 마주 선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여겼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가장 보기 어려운 것이다. 거울로는 얼굴만 보이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확인은 순수한 독백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어떤 응답하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동료든, 글을 읽는 독자든, 기도의 상대든. 매일 일기를 쓰는 일도 실은 독백이 아니라 미래의 자기를 증인으로 세우는 일이다. 명함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답변의 형식이다. 그런데 인간은 답변이 아니라 물음이다. 그러니 어떤 자기 소개도 원리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렇게 생긴 존재이기 때문이다. 명함 한 장으로 그 사람을 다 읽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그 앞에 선 심연을 놓친다. 직함으로 사람을 대접하고 직함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거기서 나온다. 그리고 명함이 없는 사람들. 이름 대신 기능으로 불리는 사람들. 그들이 표상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담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양식이 너무 좁아서다. 그렇다면 명함이란 결국 초라한 대용품일 뿐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명함을 반대 방향에서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응답이라는 말을 조금 더 밀고 가 보자. 라틴어 respondere는 되돌려 답한다는 뜻이고, 여기서 책임을 뜻하는 responsibility가 나왔다. 책임이란 본래 능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부름에 답할 수 있음이다. 한국 교회에서 "응답받았다"는 표현은 대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 즉 하늘에서 나에게 오는 방향으로 쓰인다. 그러나 더 원형적인 것은 반대 방향이다. 부름이 먼저 있고 사람이 답한다. 히브리어로 히네니(Hineni),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뜻이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이 한마디를 자기 윤리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서구 철학이 오랫동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나를 중심에 두었다면, 레비나스는 타자가 먼저 있다고 말한다. 타자가 내미는 무방비한 얼굴 앞에서 비로소 나에게 응답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이다. 주체성이란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면서 완성된다. 어려운 말 같지만 현장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비계 위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를 때, 아래에서 자재를 올려 달라고 소리칠 때, 신호수가 손을 들 때. 거기서 "예" 하고 답하며 몸을 돌리는 것. 그것이 히네니다. 기존의 명함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지위와 소속을 앞세워 나를 상대에게 주입하는 나 중심의 도구였다면, 히네니로서의 명함은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나를 부르십시오, 내가 응답하겠습니다"라는 타자를 향한 약속의 증표다. 그래서 명함을 건네는 행위는 단순히 내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당신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여기 서 있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일이 된다. 이것은 주체의 대상성 회복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정체성은 명함에 적힌 화려한 직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명함을 매개로 앞으로 형성될 관계와 책임에서 나오는 셈이다. 서로의 안전과 생명을 맡기는 건설현장의 절박한 부름에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며 다가가 손을 내밀고, 숙련된 기술과 책임감으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현장의 노동이 지닌 진정한 윤리이자 가치다. 이제 명함은 "나는 이런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며, 당신이 부를 때 안전하고 완벽하게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묵직한 약속이 되는 셈이다. 내 명함에는 노동자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뒷모습만 봐도 그의 하루가 어땠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굳이 묻지 않아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그림 문자다. 앞모습은 미소로, 표정으로, 화술로 나를 꾸며낼 수 있다. 하지만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노동을 마친 건설 노동자의 굽은 등, 땀에 젖은 작업복, 먼지 묻은 어깨는 그가 오늘 하루 현장의 요구나 동료의 요청과 같은 타자의 부름에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며 자신의 온몸을 바쳤는지를 웅변한다. 그 뒷모습 자체가 "저는 오늘 하루 당신들을 위해 여기 있었습니다"라는 증거다. 이 땅의 모든 건설 노동자에게 이런 명함 하나 만들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내 명함을 조용히 건네고 싶다.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내 명함에는 노동자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수직과 수평을 이루어야 건물도 사회도 무너지지 않는다

    전통적인 우리 건축물에는 그 이름만 들어도 건축물의 계급이 보인다. 전통 건물의 각 이름에는 건물의 크기와 용도, 그리고 누가 머무느냐에 따라 철저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를 흔히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순으로 부른다. 건물의 서열을 이렇게 나눈 것은, 단순히 "크기가 크면 전(殿)"이라는 식이 아니라 '그 건물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의 성격'과 '주인의 신분'이 철저하게 결합한 결과다. 1등급인 전(殿)은 가장 높은 격식으로 왕과 왕비, 대비의 공식 활동 공간이다. 인간 세상이 아닌 신(神)의 세계에서도 이 '전'을 썼다. 절의 중심인 '대웅전(大雄殿)', 성균관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 저승의 염라대왕이 있는 '명부전(冥府殿)'이 그렇다. 즉 '전'은 인간 세계의 왕이나 신령스러운 존재에게만 허락된 절대적인 성역이었다. 2등급인 당(堂)은 전(殿)에 준하는 격식으로 왕의 일상 집무나 세자의 공간이었다. 3등급인 합(閤)과 각(閣)은 전이나 당을 보좌하는 부속 건물, 또는 관청 건물에 해당한다. 4등급인 재(齋)와 헌(軒)은 주로 독서, 휴식, 일상생활을 하는 개인적인 공간이다. 5등급인 루(樓)와 정(亭)은 풍류를 즐기거나 휴식을 취하는 오픈형 누각을 말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건축물의 당호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을 부르는 존칭으로 그대로 쓰였다는 것이다. 감히 지엄한 윗분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없으니 "당신이 머무는 거대한 건물의 저 아랫자리(下)를 통해서 말씀드립니다"라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래서 폐하(陛下)는 황제가 오르는 '섬돌 아래'에서 뵙는다는 뜻이고, 전하(殿下)는 '전(殿)'에 머무는 왕이나 왕비에게 올리는 칭호이며, 저하(邸下)는 왕세자가 머무는 '저택(邸)' 아래라는 뜻으로 세자에게만 썼다. 합하(閤下)나 각하(閣下)는 '합(閤)'이나 '각(閣)'에 머무는 정1품 정승이나 판서, 혹은 고위 관료를 부르던 말이다. 이 가운데 각하는 광복 이후 권위주의 정권기를 거치며 대통령의 전유물처럼 굳어졌다가, 1990년대 이후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 속에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내가 부르는 호칭의 높낮이가 곧 상대방이 머무는 건물의 등급과 정확히 일치했던 셈이다. 요즘 아파트 이름 이야기 과거의 조상들이 기와집의 당호로 신분을 나누었던 문화가, 수백 년이 지난 2026년 현재에도 'OO캐슬', 'OO팰리스'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언어와 건축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과시욕을 담아내는 가장 좋은 그릇이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사는 공간'으로 신분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현대의 건설사들도 이 '공간의 계급화'를 마케팅에 치밀하게 활용하고 있다. 캐슬(Castle·성)이나 팰리스(Palace·궁전)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차별화된 상류층의 성벽이다"라는 은밀한 우월감을 자극한다. 본질적으로는 "이곳에 사는 당신의 신분은 남다르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에는 나라에서 "너는 신분이 낮으니 당(堂)까지만 지어라" 하고 규제했다면, 자본주의 사회인 지금은 '분양가와 집값'이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 곧 성벽 역할을 하고 있다. 씁쓸하면서도 곱씹게 되는 지점이다. 수직과 수평의 의미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땅이나 방바닥은 평평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둥근 지구 위에 살고 있다. 수직(垂直, Vertical)이란 지구의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 즉 지구 중심(핵)을 향해 똑바로 떨어지는 선이다. 옛 목수들은 실 끝에 무거운 추를 매단 '다림줄'을 내려 이 수직을 찾았다. 추가 가리키는 끝이 바로 지구의 중심이다. 수평(水平, Horizontal)은 그 수직선과 직각(90도)을 이루는 방향이자, 지구 중심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점들을 연결한 선이다. 엄밀히 말하면 수평선은 평평한 직선이 아니라 지구의 곡률을 따라 미세하게 휜 '거대한 원의 일부분'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목수들이 건물을 지을 때 가장 공을 들인 것도 바로 이 수평과 수직을 맞추는 일이었다. 기둥이 수직으로 서지 않으면 벽이 휘고, 기단과 들보가 수평을 이루지 않으면 건물이 비틀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 시대는 철저한 '수직적 사회'였다.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중력처럼, 왕(전하)을 정점으로 정승(각하)과 판서, 그리고 백성에 이르기까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전·당·합·각·재·헌·루·정이라는 당호의 격식은 바로 이 수직적 계급을 시각화한 수단이었다. 반면 현대 사회는 모든 인간이 법 앞에 평등한 '수평적 사회'를 지향한다. '지구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연결'이 수평이듯, 누구 하나 더 높거나 낮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연결되는 관계를 뜻한다.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거대한 수직 건물이다. 높은 층으로 갈수록 탁 트인 전망을 갖게 되고 가격도 더 비싸진다. 즉 아파트는 수직적 위계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높은 성벽 같은 아파트 브랜드를 소유함으로써,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나도 저 상류층과 '수평'을 이루고 싶다"는 신분 상승의 갈망을 표출한다. 한국인들의 아파트 선호는 남들보다 아래에 있고 싶지 않은 마음, 곧 수직적 열세에 처하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불안이 아파트라는 거대한 수직 콘크리트 덩어리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투표: 1인 1표라는 완벽한 수평의 순간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뼈아픈 단면을 드러냈다. 한 시간 반이 넘는 대기를 견디다 못해 생업으로, 일상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유권자들의 포기는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명백한 참정권의 침해다. 국민투표가 위대한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수직적 조건이 완전히 지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타워팰리스에 살든 단칸방에 살든, 박사 학위가 있든 글을 모르든, 자산이 수백억이든 빚만 가득하든, 투표소 안에서는 누구나 정확히 '반지름의 길이가 같은 수평선 위의 점'처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선언이 활자가 아닌 실체로 증명되는 유일한 순간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수직의 공간(청와대, 도청, 구청, 시의회)'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순이 시작된다. 선출된 대리인들은 자신이 주권자에게서 권한을 잠시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조선 시대에 급제하여 어사화를 쓰고 가마에 올라타던 옛 선조들의 습속처럼, 그것을 수직적 계급 구조 안에서의 '신분 상승'으로 여긴다. 이러한 수직적 권력 의식이 내면에 깔려 있기에, 선거철에만 고개를 숙일 뿐 막상 일상에서는 주권자를 지극히 가볍게 여기는 행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투표지 몇 장 부족했다고… 뭐, 어쩌라고…"라는 안일함 속에는 유권자의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수직적 오만이 숨어 있다. 우리는 아직도 수직적 제도와 습관에 익숙해서, 수평적 관계의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 같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백년 동안 단 한번도 수평적인 사회를 스스로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서구의 민주주의라는 수평적 제도를 급격하게 이식받았다. 머리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제도는 배웠지만, 몸과 습관은 여전히 "누가 더 높고 낮은가"를 따지는 수직적 관계 맺기에 더 익숙하다. 아파트 이름에 '캐슬'과 '팰리스'를 붙이며 이웃과 나 사이에 선을 긋는 심리, 나보다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을 하대해도 된다고 믿는 문화, 국민이 준 권력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인들의 태도. 이 모든 것이 결국 '제도는 수평인데 의식은 수직인 상태'에서 오는 괴리다. 할석(割石·斫石): 비틀어진 수직과 수평을 바로잡는 일 나는 건설 현장에서 매일 거친 먼지와 소음 속에 무거운 장비를 들고, 콘크리트의 비틀어진 뼈대를 깎아내며 수직과 수평을 잡으려는 할석공이다. 건물을 지을 때 기둥이나 벽이 거푸집의 밀림이나 콘크리트 타설 오류로 기준선에서 벗어나면, 건물은 보기에도 흉할 뿐 아니라 붕괴위험에 처한다. 인간 사회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 사태처럼 권력이 유권자 위에 군림하려 들며 수직의 선이 비틀어질 때, 사회라는 건물은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대등해야 할 인간관계, 곧 수평이 갑질과 대접받으려는 습속으로 일그러질 때, 공동체의 안정과 아름다움은 무너지고 만다. 건물의 뼈대가 틀어지면 할석공이 투입되어 깎아내야 하듯,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위계의식과 비틀린 수평적 관계의식 역시 그냥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주권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부조리한 선거 절차를 바로잡으려는 2030 젊은이들의 연대야말로, 우리 사회의 수직과 수평을 맞추는 '할석' 작업이 아닐까. 우리가 광복을 맞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문을 열고 백성(百姓)에서 시민(市民)으로 거듭난 지 이제 겨우 80년 남짓이다. 수천 년의 절대왕정과 식민 지배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수평적 제도를 운영해 온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른 나라들이 수백 년에 걸쳐 피 흘리며 다져온 그 무거운 제도의 틀을, 우리는 불과 수십 년 만에 압축적으로 이식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건물의 외벽, 곧 외형적 민주주의는 세계가 놀랄 만큼 빠르게 올렸지만, 그 내부의 콘크리트가 단단하게 굳고 내면화되는 시간, 곧 수평적 관계의식이 자리 잡는 데에는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 할 때 가장 거대하게 부딪히는 벽은, 바로 과거의 습속에 갇힌 이들과의 마찰이다. 이들은 여전히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가"를 따지는 수직적 질서 속에서만 안도감을 느낀다. 나이, 직급, 재산, 혹은 선거로 얻은 한 줌의 권력으로 계급을 나누고 군림하려 든다. 수평적으로 대등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주권자가 목소리를 내면 '감히 아랫사람이 대든다'며 권위의식이라는 옛 칼을 빼 든다. 선거 관리 부실이나 주권자를 가볍게 여기는 행정 역시, 제도는 최첨단 수평인데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내면은 여전히 '관청이 백성을 통치한다'는 수직적 관성에 머물러 있기에 빚어지는 마찰이다. 서구의 민주주의 역사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권위주의로의 퇴행, 피비린내 나는 마찰을 겪으며 다듬어졌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제도를 연구하며 각자의 분야에서 성실히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먼저 겪은 붕괴와 부실시공의 역사를 우리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가 현재 마주하는 끊임없는 마찰과 갈등은 사회가 무너지는 징조가 아니라, 오히려 비틀어진 과거의 습속을 깎아내고 올바른 수직과 수평을 찾아가는 불가피한 '할석의 과정'일지 모른다. 정치인이 권력을 신분 상승으로 착각할 때 유권자가 엄중히 책임을 묻고, 일상에서 수직적 갑질을 마주할 때 수평적 존중을 당당히 요구하는 그 모든 실천이, 우리 사회의 뼈대를 곧게 펴는 할석작업이 되는 것이다. 8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에게는 노년일지 몰라도, 한 국가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깊이로 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단단해지기 시작한 '청년의 시기'다. 비록 지금은 과거의 습속과 거칠게 부딪치며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단단한 철학을 품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실천하는 시민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외형만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내부의 수직과 수평이 완벽하게 맞물린, 가장 원숙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 국가를 향해 우리는 지금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수직과 수평을 이루어야 건물도 사회도 무너지지 않는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米래를 파먹는 먹사니즘

    오늘도 나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건설 현장으로 향한다. 매일 일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단한 일용직 노동자이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내 몸의 피로보다 더 깊은 씁쓸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선거철마다 그러하듯 우리 사회 전체가 '내일'을 잊은 채 눈앞의 달콤한 재화를 나누어 먹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러한 '내일 망각증'은 비단 정치권만의 일이 아니다. 당장의 결과와 이익만을 쫓느라 미래의 안전을 지워버리는 조급함 역시 똑같은 뿌리에서 자라난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대형 사고가 터졌다. 서소문 고가차도 해체작업 중 관리자 3명이 구조물 붕괴로 사망한 사고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전에 신경 쓴다고들 했다. 그러나 또다시 이런 중대사고가 일어났다. 이것은 우리에게 안전이라는 말이 몸에 체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언어가 되지 못한 채 그저 몸 밖에서 윙윙거리는 구호로만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먹사니즘의 자리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먹사니즘'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돈다. 먹고사는 것이 곧 최상의 이념이 된 사회다. 일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말은 결코 낯설지 않다. 하루 일당이 들어와야 다음 날 작업화 끈을 다시 묶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먹고사는 것만이 전부가 된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150여 년 전 일본의 한 작은 마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1870년(메이지 3년) 보신전쟁(戊辰戦争)에서 패배한 니가타현의 나가오카번(長岡藩)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7만4000석이었던 영지는 패전 후 2만4000석으로 줄었고, 성은 불탔으며, 사무라이와 그 가족들은 끼니를 굶었다. 그러던 차에 분가(分家)인 미네야마번(三根山藩)에서 구휼미로 쌀 100가마(米百俵)를 보내왔다. 굶주린 번사들은 환호했다. 한 줌이라도 좋으니 어서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당시 대참사(大参事)였던 고바야시 도라사부로(小林虎三郎)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이렇게 설파했다. "백 가마의 쌀도 먹어버리면 그뿐이지만 교육에 쓰면 만 가마, 백만 가마가 된다." 그러고는 그 쌀을 팔아 국한학교(国漢学校)를 세웠다. 격분한 사무라이들이 칼을 빼들고 그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고바야시는 굽히지 않았다. 그 학교의 정신을 이은 나가오카에서 훗날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의 인재가 배출되었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는 취임 소신표명연설에서 이 일화를 인용하며 "지금의 고통을 참고 내일을 위해 투자하자"고 했다. 그 후 '米百俵의 정신'은 일본 사회의 화두가 되었고, 나가오카시는 매년 6월 15일을 '米百俵の日'로 기념하고 있다. 2026년 봄, 분배의 풍경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정확히 그 반대다.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금성 공약이 쏟아진다. 정부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소득 하위 70%에게 1인당 10만원에서 25만원이 풀린다. 그 위로 광역·기초 지자체장 후보들의 '묻고 더블로'식 경쟁이 얹힌다. 어느 도지사 후보는 전 도민에게 1인당 200만원을, 어느 군수 후보는 4년간 100만원을 약속했다. 통영과 김해 같은 곳에서는 여야 후보가 30만원 대 33만원, 10만원 대 20만원으로 액수를 두고 호각을 다툰다. 경남 고성군에서는 정부와 도와 군의 삼중 지급으로 군민 한 사람이 최대 100만원을 손에 쥐게 되어 있다. 한 지방지 사설은 이를 두고 '현금 살포 공약, 미래 세대와 공존의 다리 끊는다'고 표현했다. 개별 공약은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이 모두를 종합해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엘 모키어의 말을 빌리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축적 가능한 자원을 소진성 소비로 전환하는 선택'이다. 더 무거운 사실은 이 돈이 지자체의 여유 자금이 아니라 빚으로 조달되는 부채라는 점이다. 정치인이 인심 쓰듯 발행하는 수십만 원의 현금은 결국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하는 청구서다. 모키어가 보여준 역사적 사실은 단호하다. "오늘 다 나누는 사회는 내일 나눌 것이 없어진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시기 다른 사회들이 잉여를 궁정 사치와 전쟁과 구휼로 소진할 때 영국은 그것을 공장과 기계와 도제교육으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당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 돈은 결코 작지 않다. 수도권 일반 가구가 받는 10만원이라 해도 4인 가족이면 40만원이다. 며칠치 일당이고 한 달 생활에 보탬이 되는 돈이다. 그러나 그 돈 안 받아도 나는 먹고살 수 있다. 정작 그 돈이 필요한 것은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고 앞으로 사회에 나올 청년들이다. 우리는 그들 몫의 쌀을 지금 우리가 나눠 먹자고 하고 있다. 왜 우리는 '나누자'에 호응하는가 분배 요구에 즉각 호응하는 성향 자체가 하나의 아비투스(habitus)다. 그것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오랜 사회·경제사가 우리 몸에 새겨놓은 체화된 시간 감각이다. 한국 사회는 식민지와 전쟁과 압축 근대화를 거치며 '내일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경험을 누적해왔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 '지금 받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받아야 한다'는 행동양식은 합리적 적응이었다. 농민의 보릿고개 기억, 노동자의 체불 임금 경험, 서민의 부동산 박탈 경험이 모두 현재화된 시간감각을 강화해왔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자식들 입에 먼저 밥을 떠넣어 주던 그 손길의 다급함이 바로 이 시간 감각이다. 반면 나가오카의 사무라이들은 '번(藩)'이라는 200년 이상 지속된 시간공동체의 성원이었다. 고바야시의 '백 가마→만 가마' 논리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세대를 잇는 시간'을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노포(老鋪) 기업의 평균 수명이 길고 가업 승계가 자연스러운 것도 같은 아비투스의 표현이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아 있는 몸(le corps vécu)'은 과거를 퇴적하고 미래를 투기(投企)하는 시간적 존재다. 그런데 한국 노동자의 몸은 '오늘 일하지 않으면 오늘 굶는다'는 일당제의 시간을 너무 오래 살아왔다. 건설 현장의 일당, 자영업자의 오늘 매출, 정치권의 이번 선거 — 이 모든 것이 '하루 단위의 시간 지평'으로 수렴된다. 시간의 신체적 지평이 좁을수록 미래에 대한 투자는 손실로 체감된다. 서소문 고가에서 본 같은 구조 지난 5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상판이 무너졌다. 1966년에 지어진 이 60년 된 구조물은 2019년 이미 안전등급 D등급을 받았다. 그날 새벽 절단 작업 중 2.9㎝의 단차가 생겼고 작업을 중단한 채 안전을 점검하던 관리자들 위로 거더(girder)가 끊어지며 상판이 떨어졌다. 사망자 3명은 모두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시공사 현장소장, 감리단장, 구조기술사였다. 한국 건설안전 체계의 최상위 점검 라인이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조급한 시간 감각'이 정확히 그대로 비친다. 첫째, 압축 근대화의 유산이다. 1966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한복판에서 이 고가도로를 세운 사람들은 60년 뒤 후손들이 이것을 어떻게 안전하게 해체해야 할지 그 비용과 시간을 계산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미래 세대에게 비용을 미루는 방식이었다. 둘째, 현장을 지배하는 조급증이다. 사고 당시 공정률은 87%를 넘었고 6월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종착이 코앞인 상황에서 새벽에 단차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는 '여기서 더 멈추면 공기(工期)가 늦어진다'는 무의식적인 압박과 신체적 계산이 작동했을 것이다. 셋째, 안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그날 사망한 세 사람은 위험을 감지하고 '점검'이라는 미래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들어간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신중함조차 노후 구조물의 예측 불가능성과 당장 서둘러야 한다는 현장의 관행 앞에서는 무력하게 꺾이고 말았다. 시스템이 허락한 시간의 여유가 너무나 좁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안전의식 전환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정확히 여기에 있다. '오늘 안전조치를 위해 멈추는 30분'을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오늘 일당 30분의 손실'로 받아들이는 신체적 계산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국 건설업의 산재 사고율이 일본의 3.6배에 달하는 것은 개인의 무지 탓이 아니다. 당장의 결과만 쫓는 사회의 조급한 시간 감각이 만들어낸 구조적 사고다. 일본 현장의 견습 도제 문화, 신체화된 안전 루틴, 위험예지의 집단 의례는 모두 '오늘의 시간을 미래의 안전자본으로 전환하는 신체적 제도'다. 한국 현장에 결여된 것은 안전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신체에 축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제도적 인내다. 현장에서의 먹사니즘이 산업재해를 낳듯이 사회에서의 먹사니즘은 미래의 불안정을 낳는다. 안전과 안정. 두 단어는 한 뿌리에서 자란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 분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분배 요구는 존재한다. 한국 노동자의 임금 몫은 충분하지 않고, 자영업자의 절벽은 깊으며, 비정규직의 처지는 위태롭다. 고바야시 도라사부로가 위대했던 것은 쌀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쌀을 받았다. 다만 그 쌀의 용도를 바꾸었다. "받은 쌀을 즉시 소비할 것인가, 자본으로 전환할 것인가." 한국 정치에 결여된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질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배를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분배의 형식을 바꾸는 일이다. 10만원의 고유가 지원금을 청년의 직업훈련과 주거사다리로 전환할 수 있는가. 성과급 일부를 R&D와 안전 인프라로 돌릴 수 있는가. 1966년에 지은 콘크리트가 2026년에 무너졌듯이, 2026년에 우리가 하는 선택은 2086년의 누군가에게 청구서로 돌아갈 것이다. 청년의 내일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당장의 생존과 소비에만 파묻혀 있다. 단기 실적과 표를 좇는 이들이 자기 자녀세대에게 물려줄 성벽을 쌓는 사이 국가의 미래라는 공공의 곳간은 빠르게 비어가고 있다. 우리가 오늘 '쌀 백 가마'를 다 먹어 치우면 내일 태어날 아이들은 그 청구서를 감당하는 노예로 살아야 한다. 지독한 초저출생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청년들이 아기를 낳지 않기로 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회에 내 자식을 태어나게 해 고통받게 하지 않겠다는 가장 슬프고도 강력한 '거부권 행사'다. 국가도 미래도 없이 '나만 잘 먹고 잘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는 나라에 어떻게 미래를 맡기겠는가. '돌아볼 어제가 있는 삶'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양보할 수 있다. 米百俵의 결단은 1870년 나가오카만의 일이 아니다. 2026년 봄, 일당 받는 자의 자리에서 새벽 현장으로 향하며 나는 다시 그 굶주린 사무라이들과 칼을 빼든 그들 앞에 굽히지 않은 한 사람을 생각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고유가 지원금 10만원의 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선거 공보물에 적힌 200만원, 100만원이라는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성과급 배분율 협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어느 현장에서는 누군가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묵묵히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한번쯤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이 쌀을 우리가 먹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세울 것인가.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米래를 파먹는 먹사니즘
  • [이두수의 절차탁마] '노동' 프레임에 갇힌 노동절, 투쟁을 넘어 '행위'를 짓자

    올해부터 5월 1일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바뀌었다. 단순한 휴일을 넘어 국가 기념일이 된 것이다.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자는 의도는 좋으나, 명칭 변경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일용직 노동자인 나로서도 다소 과잉되어 보인다. 지난해 국회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고 법률 명칭은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다. 그동안 한국의 헌법과 법률은 오랫동안 '근로'라는 표현을 주로 써왔다. 국가 주도 경제성장기에 '부지런히 일하는 국민'의 이미지를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일하는 사람의 주체적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에서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가 오래 이어져 왔고 마침내 그 결과가 5월 1일 명칭 변경으로 매듭지어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싸워온 주체들이 스스로를 '근로자(부지런히 일하는 사람)'가 아닌 '노동자(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주체)'로 명명한 점, 국제기구 ILO와 현대 인권 담론에서도 노동을 '상품'이 아닌 '인권'의 영역으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점, 그리고 우리 헌법 제33조에서도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 권리'를 법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즉 ‘노동'이라는 단어 속에는 '나는 단순히 시키는 대로 일하는 부품이 아니라 내 삶의 조건을 스스로 결정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격체'라는 선언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근로를 버리고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은 일제의 흔적을 지운다고 하는 말이 들리는데 ‘근로’나 ‘노동’이나 둘 다 일본에서 빌려온 말이다. 서구의 'Lavor'를 '勞動'으로 번역한 사람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지만 이는 19세기 말 근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던 일본의 번역어 창출 과정에서 'Labor'가 '노동(勞動)'으로 정착되었고 우리말로 사용한 것은 구한말 지식인들이 일본 서적을 통해 이 번역어를 받아들이면서부터다. 한국에서 쓰는 노동은 그냥 움직일 동자를 쓰지만 일본에서는 '노동'을 쓸 때 '사람 인(人)' 변이 들어간 '일할 동(働)' 자를 사용한다. 일본인들은 단순히 물체가 움직이는 것(動)과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일하는 것(働)을 구분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주체적 권리와 인간 존엄의 상징이 된 배경에는 마르크스(Karl Marx)의 노동 가치설과 소외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르크스 이전의 노동이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고통스러운 '고역'이었다면 마르크스는 노동을 인간의 유적 본질(Species-being)로 보았다. 동물은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만 인간은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행복을 느낀다고 보았다. 따라서 노동은 누군가에게 예속된 '근로'가 아니라 내 의지를 세상에 실현하는 주체적인 행위여야 한다는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생산물, 노동 과정, 심지어 동료들에게서 격리되는 현상을 '소외'라고 불렀다. 시스템의 부품처럼 일하며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가 '근로'의 부정적인 단면이라면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의지가 담긴 단어가 '노동'이다.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고 사회의 주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강력한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근로'라는 말이 관용적으로 쓰이다가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 및 노동 운동이 격렬해지면서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비판 사회학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때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은 '근로자'라는 수동적인 용어를 거부하고 마르크스적 관점이 투영된 '노동자'라는 용어를 의식적으로 선택했다. 즉 우리가 현재 '노동'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투쟁, 권리, 주체성'의 이미지는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한국 노동 운동의 역사와 결합되며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철학적 유산은 현재 어떤 현실을 만들었는가. 마르크스는 자본가(부르주아)가 생산수단을 독점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소외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산수단을 '국가'나 '공동체'가 소유하면 소외가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자본가만 사라졌을 뿐이며 그 자리를 거대 국가 관료(Apparat)가 차지했다. 노동자는 이제 개별 기업주가 아닌 거역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국가 권력에 종속되었다.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기계 부품으로의 전락'이 국가적 규모로 일어난 셈이다. 현실은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구호는 현실 정치에서 노동자를 위로하는 슬로건이 아니라 노동자를 끊임없이 일터로 내모는 채찍이 되었다. 노동은 '권리'라기보다 국가 건설을 위한 '신성한 의무'로 강조되었고, 오직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성실한 근로'만이 강요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이 흐름이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패한 체제를 따르자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유산을 가장 잘 보존하며 주체적으로 발전시킨 북한은 단어의 '수사적 정의'와 '실제적 현실' 사이의 처참한 괴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단어의 수사적 정의와 실제적 현실 사이의 괴리를 우리는 역사에서 충분히 보았다. 그러므로 단어를 바꾸는 일은 시작일 뿐이며 단어가 보장해야 할 실질적 삶의 질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허상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적 현상을 보자. '노동'이라는 용어에 과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실제 일터의 생산성이나 경제적 현실보다는 대립적 노사관계나 이념 과잉을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단어만 바꾼다고 해서 일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단어 자체가 아니라 그 단어가 보장하는 실질적인 삶의 질이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의로움에 취해 정작 노동 시장의 유연성, AI 시대의 일자리 변화, 세대 간 갈등 같은 실제적 문제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허상'을 쫓는 일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할 때 그 '주인'의 성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마르크스가 말했던 '주인'의 본질은 집단이나 국가의 부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노동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이 만약 노동조합이나 국가가 개별 노동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전체(조직)를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예속'이다. 주인은 권리만 갖는 것이 아니라 책임도 함께 진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기술의 숙련을 스스로 높이며, 동료와 함께 공적 공간을 짓는 사람. 나는 이 자리를 '장인-시민(artisan-citizen)'이라 부르고 싶다. 주인은 익명의 집단에 흡수되는 단위가 아니라 동료들과 말을 나누며 공적 공간을 함께 짓는 한 사람의 행위자(actor)여야 한다. 아렌트가 말한 Action은 본질적으로 복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복수성(plurality) 속의 한 사람이다. 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1958)에서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을 세 층위로 구분했다. Labor(노동)는 인간이 자연과 맺는 물질대사에 묶인 생존 활동이다. 먹고 자고 입는 일, 매일의 생계가 여기에 속한다. Work(작업)는 도구와 사물을 만들어 인공세계를 짓는 제작 활동이다. 다리와 건물, 책과 그릇이 이 영역에서 태어난다. Action(행위)은 타인과 말과 행위를 나누며 공적 영역에서 자유를 실현하는 가장 고차원적 활동이다. 정치, 약속, 시작이 여기에 속한다. 아렌트는 근대가 Labor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점을 우려했다. 사회 전체의 역량이 정치적 행위나 창작이 아니라 오직 먹고사는 문제에 매몰될 때 우리는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의 사회'에 도착한다. 마르크스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꿨다면 아렌트는 그 꿈이 Labor의 차원에 갇힐 때 사회가 활력을 잃는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한 가지 자기 점검이 필요한 지점이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만들어 낸 성과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를 어떤 자리에 놓고 있는가. '투쟁하는 무산자' 프레임에만 갇혀 있다면 그것은 결핍을 정체성으로 삼는 일이 된다. 일의 가치를 높이는 것보다 더 많은 배분만을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Labor 중심적 사고다. 노동조합과 정치권 모두가 개별 노동자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거대 조직으로 비대해진다면 그것은 단어를 바꾼 보람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이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전문가(Worker)'의 길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며 '투쟁하는 무산자'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힘으로 더 많은 배분을 요구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전형적인 'Labor 중심적 사고'다. 스스로 혁신할 능력을 상실한 집단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시스템을 장악하려 할 때 사회는 활력을 잃고 경직된다. 비계 위에 올라가 안전벨트를 채우는 그 짧은 순간을 두고도 나는 가끔 묻는다. 이 동작은 해나 아렌트가 말한 노동(Labor)인가, 작업(Work)인가, 행위(Action)인가. 안전벨트가 단지 내 몸의 추락을 막는 도구일 때 그것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노동(Labor)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이 동료의 안전을 함께 점검하는 약속이 될 때 그것은 작업(Work)이 되고, 작업중지권을 동료들과 함께 행사하는 결단이 될 때 그것은 행위(Action)가 된다. 같은 안전벨트가 셋 다 될 수 있다. 결국 '누가 주인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주인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생존 본능에 충실한 'Laborer'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책임지는 'Actor'가 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근로에서 노동으로 이름을 변경한 것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시험은 그 다음에 온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수사로만 소비될 것인가, 아니면 비계 위에서 안전벨트를 채우는 한 사람의 무게를 실제로 떠받칠 것인가.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노동 프레임에 갇힌  노동절, 투쟁을 넘어 행위를 짓자
  • [이두수의 절차탁마] 지울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일본 도미오카(富岡) 제사 공장을 다녀왔다. 사실은 쿠사츠 온천으로 가는 길에 들른 곳이지만, 의미 깊은 곳이었다. 메이지 초, 일본은 개항과 함께 서양 자본주의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일본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약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박람회 일원으로 다녀온 시부사와 에이이치(涉澤栄一) 같은 젊은 지사들은 일본의 전통 공예품 수준으로는 세계와 상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돌아와 내놓은 해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근대식 기계제사 공장"이었고, 국가 정책으로 탄생한 관영 모델공장이 도미오카 제사공장이었다. 프랑스 기술자를 초빙해 1872년에 지어진 이 공장은, 일본 자본주의의 출발선에 선 상징 같은 존재였다. 한때 생사(生糸) 생산 세계 제일을 자랑하며 일본 근대화의 얼굴이었던 그 공장은 이제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공장이 멈추자 도시도 함께 시들어, 지금의 도미오카는 활력 넘치는 곳이라 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공장을 철거해 흔적을 지운 것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기계 소리는 멈췄지만, 공장은 또 다른 모습으로 도시의 중심에 남아 있었다. 1987년 도미오카 공장이 115년의 조업을 멈춘 것은 생사의 세계적 가격 경쟁 심화와 화학섬유의 대두 때문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섬유산업 부흥도 그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 한국의 근대화도 섬유산업이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역시 이제는 섬유산업을 굴뚝산업이라 부르며 퇴물 취급을 하고, 공장 대부분은 동남아나 해외로 이전했다. 그러나 도미오카 주민들은 이 "낡은 시설"을 버리지 않고 "늙은 유산"으로 품어 안았다. 방적 공장과 누에 창고, 기숙사 건물은 더 이상 돈을 벌지는 않지만,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이 나라가 어떻게 산업화의 문턱을 넘었는지"를 보여 주는 기억의 장소로 살아 있었다. 늙었지만, 낡은 것으로 버려지는 공장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일하는 광주에는 금호타이어 공장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금호그룹의 모체는 광주여객에서 시작된 광주고속이지만, 금호타이어 역시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제조업의 얼굴이었다. 1960년 삼양타이어공업으로 출발해, 1974년 광주 소촌동 공장을 세우며 이 도시는 본격적인 공업도시의 궤도를 밟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공장에서 일했고, 그 임금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금호는 광주를 딛고 세계 시장으로 나간 기업이었고, 광주는 그런 기업을 키워 낸 도시였다. 그런데 지난해 5월 17일, 광주 금호타이어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났다. 광주 북구에 위치한 건설현장에서도 검은 연기와 불기둥이 보일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화재였는지 며칠간 진화가 이어졌다. 화재 후 생산은 전면 중단되었고, 노후한 설비와 반복된 화재 문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회사는 복구와 동시에 전남 함평 신공장, 폴란드 신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국내외 생산거점을 재편한다는 말이 있다. 동시에 이 공장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거세다. 광주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남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 것인가. 물론 금호타이어의 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광주 공장은 노후 설비와 안전관리 부실로 이미 여러 차례 화재를 겪어 왔고, 이번에는 공장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탔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럽 현지 생산 거점이 꼭 필요했고, 폴란드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며 공장을 유치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광주를 올드한 거점으로 붙들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공장을 둘러싼 시선은 회사만의 것이 아니다. 인근 주민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상당수가 "공장 이전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유를 보면 환경·냄새·소음, 화재 위험 같은 생활 불편 해소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역세권 개발"이다.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문화시설, 상업공간, 주거단지가 들어서면 삶의 질도 좋아지고 부동산 가치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공장 유지로 얻는 '간접적 지역경제 효과'보다, 공장 이전과 재개발로 얻게 될 '직접적인 생활·자산 이익'이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도미오카 주민들은 공장이 멈춘 뒤 "이 공장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물었다. 광주에서는 아직 "누가 이 공장의 비용을 치를 것인가"를 묻고 있다. 반면 노동자와 노조의 시선은 다르다. 화재 직후 노조는 "수천 명 노동자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회사가 고용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광주 공장을 완전히 정리하고 해외로 빠질 가능성을 경계하며, "광주 생산능력 복원과 국내 신규 공장(함평) 건설을 통해 최소한의 일자리와 생산규모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에게 공장은 지켜야 하는 대상이자, 자신의 삶터를 붙들어 주는 기반이었다. 어쨌든 광주 송정역 일대가 "살 만한 곳"이 된 데에는 공장의 공(功)이 크다. 공장이 없었다면 이만큼 인구가 모이고, 상권이 형성되고, 역세권이 주목받는 도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면서 한때 외곽이던 공장이 도심이 되었고, 그 공장 때문에 지금의 일상이 힘들어진 사람들도 있다. 둘 다 사실이다. 여기에 재난 국면의 노사관계라는 층위가 하나 더 얹힌다. 화재로 공장이 멈추고 복구가 한창인 상황에서, 노조는 임단협에서 기본급 인상, 성과급과 상여금, 통상임금 재산정, 복리후생 확대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사측은 "화재 복구·함평 신공장 건설·해외 투자까지 겹쳐 재무 여력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재난 앞에서 서로 한 발 물러서기보다, 오랜 불신이 다시 확인되는 장면이었다. 언론에서는 "화재 복구 한창인데 성과급 타령"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었고, 그 뒤로 "이럴 바에야 해외 이전이 낫다"는 경영진의 마음이 굳어졌다는 말도 따라붙었다. 그래서 이 사태를 "노조가 과도한 상여금을 요구해서 공장이 해외로 갔다"거나,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려 해외로 도망갔다"는 식의 한 줄 설명으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반복된 구조조정과 파업, 통상임금 소송으로 쌓인 노사 불신, 노후 설비와 잦은 화재, 유럽 현지 생산 거점에 대한 경영 전략, 재난 국면에서도 양보하지 못하는 임단협 문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재난 앞에서조차 사회적 연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한국식 노사관계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사건에 가깝다. 결국 하나의 공장을 두고 벌어진 논쟁 속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두려움이 겹친다. 기업은 미래의 경쟁력과 비용을 계산하며, "지금 떠나지 않으면 더 늦는다"고 말한다. 주민은 당장의 환경과 생활, 그리고 재개발이 가져올 이익을 생각한다. 노동자는 과거의 파업과 구조조정을 떠올리며 "여기서 물러서면 다음엔 공장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두려워한다. 이 다른 시간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공장은 점점 "버려야 할 대상"이 되어 간다.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향토기업이, 결국 지역 주민의 외면과 노사 불신, 글로벌 전략이 겹친 끝에 광주를 떠나려는 기업이 된 셈이다. 광주는 원래부터 "제대로 된 큰 기업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 도시다. 대기업 본사가 없고, 공장과 하청, 판매망 정도만 드문드문 자리 잡은 구조 속에서, 새로운 투자나 복합쇼핑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광주는 반기업 정서가 심해서 기업이 안 온다"는 말이 반복된다. 이번 금호타이어 사태를 두고도, "이래서 기업들이 광주를 떠난다"는 한탄이 뒤따른다. 하지만 광주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5·18 이후 광주는 국가폭력과 개발독재에 저항해 온 도시였고, 그 기억 위에서 형성된 시민사회는 대형 개발과 기업 유치에 대해 질문을 던져 왔다. 한편으로는 기업의 책임 없는 철수와 환경 파괴, 비정규직 확대를 비판해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일자리는 필요하다"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늘 갈등해 왔다. 반기업이냐 친기업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업을, 어떤 조건으로, 누구의 비용을 치르며 받아들일 것인가"를 둘러싼 긴 논의가 이어져 온 것이다. 금호타이어를 둘러싼 이번 사태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반복된 매각과 구조조정, 해외 이전 위협을 겪으며 "양보하면 공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를 몸으로 배웠다.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조금만 버티면 해외 투자가 더 낫다"는 계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시민들은 "광주는 기업이 오면 반대부터 한다"는 자기비하와 "그래도 이런 조건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가"라는 의심을 동시에 품고 산다. 화재 이후 재해복구 국면에서조차 노사와 지역사회가 서로를 향해 한 발도 물러서지 못한 것은, 결국 이 오래된 불신이 폭발한 결과처럼 보인다. 쉽지 않겠지만 광주는 5·18의 아픈 상처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이 도시를 산업도시로 키우고 근대화로 이끌어 준 기업들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금호그룹은 분명 광주의 근대 역사와 함께 걸어온 기업이다. 이 회사가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가질 수 있었고, 젊은이들이 학비를 마련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으며, 그 위에 작고 큰 가정들이 세워졌다. 금호는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간 기업이다. 광주는 이런 기업을 키워 낸 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는가. 그래야 이곳의 젊은이들도 "광주에서도 세계를 향해 갈 수 있다"는,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광주에 필요한 것이 "반기업 정서의 청산"이나 "친기업 정서의 주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떠나도 남는 도시, 공장이 문을 닫아도 기억과 기술과 사람이 붙어 있을 수 있는 도시, 재난이 닥쳐도 노사와 시민이 함께 복구의 원칙을 정할 수 있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도미오카가 그랬듯이, 공장 부지의 일부라도 이 도시가 어떻게 산업화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기억하는 장소로 남길 수는 없을까. 전부를 철거하고 아파트와 상가를 올리는 것만이 "발전"은 아닐 것이다. 도미오카에는 늙었지만 낡지 않은 공장이 있다. 광주에는 늙어가는 공장과 도시, 그리고 그 속에서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있다. 늙음은 피할 수 없지만, 낡음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업을 내쫓듯 떠나보내는 것도, 상처만 안고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공장과 도시, 기업과 노동, 시민이 서로의 늙어감을 인정하면서도 낡지 않을 길을 함께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산업과 도시의 시작이 아닐까.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지울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 [이두수의 절차탁마] AI는 벽돌을 쌓고 장인은 생명을 쌓는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과거 산업혁명 초기, 기계를 파괴하며 저항했던 러다이트 운동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거대한 기술의 조류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로봇이 벽돌을 쌓고 인공지능이 도면을 검토하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이미 건설 현장에도 깊숙이 밀려오고 있다. 이제 인간의 노동은 '효율과 정확성'이라는 차가운 잣대 위에서 기계와 경쟁해야 한다. 생산성의 논리 앞에서는 머지않아 인간이 현장에서 축출될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려는 역설적인 지금, 우리가 다시 벼려내야 할 무기는 바로 ‘장인정신’이다. 이는 결코 낭만적인 복고 취향이 아니다. 효율에 밀려 무너져 내리는 건설 현장의 참사를 끊어내고, 기계의 알고리즘이 결코 계산해 낼 수 없는 ‘생명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우리의 가장 절박한 생존 전략이다. 왜곡된 ‘몸의 습관’이 안전을 삼킨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의 몸에 밴 무의식적인 습관과 성향을 ‘아비투스(Habitus)’라 불렀다. 우리가 현장에서 흔히 목격하는 ‘안전 불감증’은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다. 수십년간 우리 사회가 강요해온 ‘빨리빨리’와 ‘비용 절감’이라는 구조적 압박이 노동자의 몸에 고착화된, 일종의 ‘왜곡된 습관’이다. 아무리 정교한 AI 안전 센서를 부착해도, 노동자의 몸에 새겨진 이 파괴적인 습관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은 단순히 외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계적 작업(포에시스, Poiesis)을 넘어, 노동자 스스로의 내면적 가치와 전문성을 형성하는 실천적 행위(프락시스, Praxis)로 나아가야 한다. 기계가 효율을 높인다면, 장인은 그 효율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넘어선 ‘장인의 자부심’ 해외의 선진 사례들은 안전이 단순히 ‘감시’와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자율적 주체성’에서 기인함을 보여준다. 독일 건설 현장의 핵심은 마이스터 제도다. 이들에게 안전은 별도의 수칙이 아니라, 숙련된 기술의 완결성을 증명하는 필수 요소다. 마이스터들은 자신의 작업 결과물에 자신의 이름을 거는 자부심을 가지며, 후배 도제들에게 ‘기술보다 먼저 도구를 다루는 태도’를 가르친다. 이들에게 부실 시공과 안전 위반은 곧 장인으로서의 ‘사회적 사망’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형 건설사들은 ‘사고 제로’를 위해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단순히 장비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가족처럼 돌보는 ‘관계의 안전’을 강조한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노동자와 맥을 같이 한다. 노동자가 현장의 위험을 발견했을 때 침묵하지 않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어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권력, 즉 ‘말하는 주체’가 될 때 안전 시스템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일본의 ‘쇼쿠닌(장인)’ 전통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쇼쿠닌은 기술적 수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기질은 정교한 손놀림만이 아니다. 자신이 만드는 건축물이 사회 구성원의 안녕에 기여해야 한다는 엄격한 윤리적 책임감이 그 중심에 있다. 이러한 장인 정신은 AI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기계는 벽돌을 똑바로 쌓을 순 있지만, 그 건물이 담아낼 이웃의 삶까지 걱정하며 정성을 쏟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건설 현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최첨단 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동료의 생명을 자신의 예술적 완결성으로 받아들이는 노동자의 주체적 태도다. 건설 안전의 새로운 문법, ‘절차탁마(切磋琢磨)’ 교육 모델 기술이 인간을 추월하는 시대에 건설 노동자가 생존하는 법은 기계보다 빨라지거나 정교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적 숙련'의 깊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양의 고전적 지혜인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현대적 안전 교육의 틀로 새롭게 풀어 쓸 필요가 있다. 이 모델은 노동을 단순한 '기능(Skill)'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윤리가 결합된 ‘장인적 실천(Praxis)’으로 재정의한다. 안전 사고를 막는 것은 머리로 외운 수칙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올바른 습관이기 때문이다. 절차탁마 교육 모델은 다음의 단계적 성장을 지향한다. 1단계: 절(切) - 끊어내기, 왜곡된 습성의 해체 첫 번째 단계는 ‘끊어냄’이다. 건설 현장에는 오랜 세월 퇴적된 ‘왜곡된 아비투스(습속)’가 존재한다. “어차피 우린 막노동꾼이야”, “사고는 운이야”라는 패배주의와 안전불감이 그것이다. ‘절(切)’의 과정은 노동자가 스스로를 ‘위험을 감수하는 말단 인력’으로 비하하는 인식의 사슬을 끊어내는 공정이다. 자신의 존재를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체’로 새롭게 인식하는 의식의 전환이 모든 교육의 시작이다. 2단계: 차(磋) - 깎아내기, 타성적 습관의 재구성 두 번째는 일상 속에 굳어진 위험한 작업 습관을 ‘깎아내는’ 과정이다. 장인은 스승의 몸짓을 수만 번 관찰하고 모방하며 자신의 나쁜 버릇을 깎아낸다. 이 모델에서의 ‘차(磋)’는 강의실 교육이 아니다. 현장에서 동료와 서로의 작업 자세를 피드백하고, 미세한 불량의 징후를 잡아내는 ‘손의 지식’을 몸에 새기는 과정이다. 타성에 젖은 손길을 깎아낼 때 비로소 안전한 숙련이 드러난다. 3단계: 탁(琢) - 쪼아내기, 장인적 전문성의 심화 세 번째는 자신의 일에 담긴 가치를 보석처럼 ‘쪼아 만드는’ 단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르곤(Ergon, 고유한 기능)’의 회복이다. 내가 쌓는 벽돌 한 장이 누군가의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노동은 단순한 돈벌이에서 숭고한 책임으로 격상된다. 숙련된 기술에 윤리적 자부심이 더해지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단순 기능공을 넘어선 ‘장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4단계: 마(磨) - 갈고닦기, 함께 만드는 안전 공론장 마지막 단계는 나만의 숙련을 넘어 동료와 함께 현장의 문화를 ‘갈고 닦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강조한 ‘행위(Action)’의 영역이다. 노동자가 현장의 위험 요소를 발견했을 때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동료와 함께 안전 규범을 만들어가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단계다. 혼자만 안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책임지는 공동체의 문화를 함께 문지르고 닦아내며 빛내는 과정이다. 반복과 책임의 수련인 모델의 저변에는 일본 쇼쿠닌 전통의 ‘반복·관찰·모방·책임’ 원리가 흐른다. 쇼쿠닌들에게 안전은 별도의 공부가 아니라, 매일 도구를 닦고 바닥을 쓰는 반복적인 행위 속에 깃든 경건함 그 자체다. 절차탁마 교육 모델은 노동자를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피교육자'로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몸에 새겨진 낡은 습관을 스스로 점검하고 수정하며, 동료와 함께 안전이라는 '공동의 작품'을 빚어가는 장인적 주체로 대우한다. "무엇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와 책임으로 하느냐"를 묻는 이 교육 모델은, AI 시대 건설 현장이 나아가야 할 가장 인간적이고도 강력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절차탁마(切磋琢磨) 교육 모델이 현장에 뿌리내린다면 우리는 세 가지 차원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수동적인 안전 준수를 넘어 노동자가 스스로 위험을 알리고 동료를 지키는 ‘안전 참여 행위’가 활성화될 것이다. 둘째는 노동자 개인의 삶의 질이다. 자신의 일을 ‘막노동’이 아닌 ‘장인의 실천’으로 재인식할 때, 노동자는 비로소 직업적 자부심과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는 건설 노동자를 ‘도시의 안전을 떠받치는 장인’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의 압박이다. “당장 오늘 작업량을 채우기도 바쁜데 언제 교육을 하느냐”는 현장의 냉소는 뼈아픈 현실이다. 또한, 현재의 산업안전보건관리비(OSHE) 체계가 하드웨어(시설·장비) 중심에 치우쳐 있어, 절차탁마와 같은 ‘인간 중심의 소프트웨어 교육’에 예산을 투입하기 어려운 법적 경직성도 해소해야 할 숙제다. 일본의 쇼쿠닌 모델을 차용함에 있어서도 비판적 수용이 필요하다. 일본 특유의 경직된 위계 문화를 그대로 이식하기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민주적 소통 방식을 결합한 ‘한국형 장인 모델’로 재구성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안전은 ‘비용’이 아닌 ‘투자’다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일부 현장을 대상으로 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이 모델의 사고 감소 효과를 정교하게 검증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관리비 항목에 ‘문화 및 참여형 교육비’를 명시적으로 포함하는 등의 법제 개선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모바일 앱이나 VR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디지털 절차탁마 모듈’을 개발해 바쁜 현장에서도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안전은 단순히 사고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에 긍지를 느끼고, 동료와 함께 안전이라는 가치를 갈고 닦는 과정 그 자체다. AI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현장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장인의 마음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절차탁마 교육 모델이 단순한 이론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건설 현장을 ‘존엄한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가는 실천적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이두수의 절차탁마] AI는 벽돌을 쌓고 장인은 생명을 쌓는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인공지능'은 있어도 '인공지성'은 없다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는 예견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 기술적 변화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말이 갈린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많은 기능을 대신하게 되겠지만, 인간은 여전히 유한한 몸과 감각을 가진 존재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슈퍼리치와 기술 격차는 새로운 “종 구분”에 가까운 계층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전망의 마지막에서 그가 꺼내든 해법은 의외로 소박하다. 생각을 멈추고, 잠시 호흡에 머무르며, 자기 마음을 관찰하는 명상이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몸’이다. 명상은 머릿속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몸으로 돌아가는 연습이다. 몸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건설 현장에서 공구를 들고 골조를 오르내리며 날마다 체감해 온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노동하는 자만이 몸의 중요성을 더 깊게 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육체노동자는 '오늘의 몸 상태'에 대해 거짓말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무거운 자재를 들다 삐끗한 허리,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생긴 무릎의 묵직함, 콘크리트 양생 속도를 가늠하는 손가락의 감각. 이런 계산은 엑셀도, 챗봇도 대신할 수 없다. 반대로, 현대인은 몸으로 느끼는 시간보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스마트폰과 플랫폼 알고리즘은 사람의 주의를 붙잡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고, 짧은 영상과 무한 스크롤은 사용자의 신체 감각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하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용자가 알고리즘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이때 육체노동은 오히려 인간다운 삶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몸을 쓰는 노동은 화면에서 떨어져 나온 시간 속에서 다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게 한다. 어쩌면 머리로 관념과 개념을 다루는 지식인은 AI로 빠르게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몸의 경험으로 익혀 온 성품과 노동의 감각은 쉽게 AI로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면서 자주 떠올리는 질문이 있다. AI의 인텔리전스(Intelligence)를 한국어로 옮길 때, 우리는 왜 여전히 ‘지능’이라고 부를까. 왜 ‘인공지성’이 아니라 ‘인공지능’일까. 이것은 단순한 번역의 습관이 아니라,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대비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인간의 지성(intellect)이다. 지능은 주어진 문제를 잘 풀고, 많이 기억하고,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이라면, 지성은 그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묻는 성품에 가깝다. 말하자면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하는가”의 문제다. 디스커션(discussion)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말이 더 논리적인가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을 지향하는 토론은 지능이 아니라 지성의 영역이다. AI가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을수록, 인간은 오히려 이런 지성의 자리를 더 분명히 요구받는다. 디지털 시대의 토론 역시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소셜미디어와 댓글 창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논의(discussion)’는 사실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싸움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토론은 “누가 옳으냐”를 겨루는 싸움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지능이 상대를 이기기 위한 논리를 쌓는 능력이라면, 지성은 한 박자 늦춰 “정말 이게 더 나은 답인가”를 되묻는 힘이다. 논의(論議)의 한자 ‘議’는 言과 義의 합성어다. 義의 기원을 풀어내는 설명 가운데 하나는, 양(羊) 머리를 창(戈)에 꽂아 하늘에 바치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 형상을 그린 글자라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정답’을 받아 적는 톱다운 방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큰 질서 앞에서 자기 이익을 잠시 내려놓는 행위를 가리킨다. 지성은 머리의 영리함이 아니라,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태도와 이어져 있다. 종교 전통도, 인간의 모순을 지성의 문제와 연결해 설명해 왔다. 전통적 기독교 신학에서 타락(Fall)은, 인간이 하느님을 떠난 결과로 죄와 죽음, 고통뿐 아니라 ‘지성의 어두워짐’을 겪게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타락으로 인해 “지성이 흐려지고, 무지와 혼란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옳은 것을 아는 능력 자체가 손상되었거나 왜곡되었다는 진단이다. 불교에서 무명(無明, avidyā)은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현실을 잘못 보는 근본적인 ‘착각’이나 ‘오인’을 가리킨다. 사성제, 연기, 무상·무아 같은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 즉 세계와 자기에 대한 인식 자체가 뒤틀려 있는 상태가 무명이다. 이 무명이 번뇌와 업, 괴로움의 사슬을 돌리는 최초의 고리로 제시된다. 두 전통 모두 인간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지적 차원, 곧 intellect의 결함을 언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단순한 공부 부족이 아니라 존재와 관계, 세계 전체를 보는 눈이 구조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진단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를 현대적 언어로 묶어 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인식의 왜곡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종교란 그 왜곡을 직면하고 바로잡으려는 각각의 시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때 intellect는 정보 처리 능력이라기보다는 세계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지성의 방향과 깊이에 대한 내용이 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덕’이라는 동아시아의 오래된 개념이 떠오른다. 한자 德(덕)을 파자해서 彳(걸음·행동), 直(곧음), 心(마음)으로 보아, 곧은 마음이 올곧은 길로 드러난 상태를 가리킨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어떤 해석은 彳을 두 사람의 걸음으로, 直 안의 십자를 하나됨의 상징으로, 目을 사위를 보는 눈으로 읽어, 덕을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타자와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으로 풀어낸다. 문자학의 정설이라기보다, 덕을 관계적 존재론 속에서 다시 읽어낸 창의적 해석이다. 그러므로 덕은 고정된 성격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배우고 조화를 익히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라는 말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남의 흠결을 들어 그 사람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흠결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비추어 보고, 공은 계승하고 과는 경계함으로써 자기 덕을 키우는 태도다. 어느 시대의 위인이나 예술가에게도 흠결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그 흠결이 드러났을 때, 그 사람의 존재 전체와 공헌을 통째로 없애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공과 과를 분리하여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이다. 요즘 미당 서정주 논쟁은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한국 현대시의 형식과 언어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국민적 시인이면서도, 일제 말기 친일 작품과 해방 이후 군부 권력에 대한 협력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교과서에서 그의 작품을 통째로 삭제하는 흐름은, 친일을 단죄하려는 의지일 수 있지만 동시에 복잡한 역사와 모순을 피하고 싶은 사회의 편의주의일 수도 있다. 친일 행적을 분명히 비판하면서도 문학사적 공헌을 함께 가르치고, 학생들이 스스로 공과를 토론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덕을 키우는 교육일 것이다. 완전한 친일청산과 적폐청산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의 과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새로운 사람(New Man)”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사람은 남보다 뛰어난 초인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과거의 폭력과 오류를 외면하지 않으며,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이다. 덕을 “나다움이 성숙해 가는 힘”으로 볼 때, 새로운 사람은 곧 자기 덕을 키워가는 사람, 어제의 자신보다 조금 더 인간다운 자신을 향해 걸어가려는 사람이다. 2026년 새해를 시작하며 나는 올 한 해를 “새희망 새출발”의 해로 삼고자 이 말을 올해의 표어로 정했다. 그리고 첫 그림 전시회 제목을 “노동이 사람을 만든다”로 정해 1월에 진행했다. 이것은 AI 시대의 노동자이자 국제구호 시민활동가로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겠다는 자기 선언이다. 인공지능이 지능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몸으로 세계를 느끼고,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를 통해 덕을 키우고, 과거의 모순과 마주하며 더 나은 사람을 향해 나아가려는 지성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공구를 들고 현장에 서는 몸,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세계를 해석하려는 손, AI를 도구로 쓰되 그 지능의 방향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마음. 이 세 가지가 함께 갈 때, 노동과 지성, 덕과 새로운 사람이라는 오래된 말들은, 혼돈과 갈등에 묻힌 오늘의 일상 속에서 다시 현재형이 될 것이다. AI가 다 해 줄 수 있다고 인간이 자기 계발 노력을 멈춘다면, 즉 덕을 쌓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자기 존립 기반을 잃을 수 있다. 덕은 자기 가치를 높이고 키우려는 자기 노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덕을 쌓기 위해서는 우선 욕망이 필요하다. 자기 삶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싶은 야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뭔가 더 알려고 하는 호기심은 도전을 낳고, 도전은 경쟁이며 모험이고, 싸워 이기는 과정이다. 면역력을 높인다고 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환경을 접했을 때 싸워 이기는 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무균실의 환경에서는 면역력도, 창의성도 만들어질 수 없다. 인간의 삶은 결국 기억과 기록이다. 몸으로 겪은 일을 기억하고, 머리로 그 기억을 기록하며 되짚어 보는 과정 속에서 지성은 자란다. 지성이란 타고난 머리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경험을 언어와 이미지로 가다듬어, 삶의 방향과 의미를 길어 올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인공지능은 있어도 인공지성은 없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명함에 박사 타이틀 더해져도 결국…노동이 사람을 만든다

    2026년 새해를 맞으며 올해의 표어를 하나 정했다. '새희망 새출발'. 작년의 표어가 ‘정리정돈’이었다면 올해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 겹쳐 있는 해다. 내 나이 만 60세가 되는 해다.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 대표로서 공식적인 일을 시작하고, 그동안 지방에서만 하던 건설노동도 수도권으로 현장이 바뀐다. 예정대로라면 8월에는 박사 학위도 받게 된다. 겉으로만 보면 책상 앞에서 하는 일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은 책상이 아니라 공사장의 비계와 삽자루였다. 건설 현장에 나가기 전까지 나는 머릿속에서만 오래 맴도는 사람에 가까웠다. 책과 기획서를 붙들고 '노동과 인권, 교육의 가치란 무엇인가,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시간을 즐겼다. 글로만, 머리로만 싸우는 사변의 시간도 분명 소중했다. 그러나 실제로 안전모를 쓰고 먼지와 소음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 전까지 노동은 내게 어디까지나 개념이었다. 몸이 아니라 문장으로만 아는 단어였다. 현장에서 미장칼과 모르타르를 들고 갱폼 위를 오르내리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 있다. 노동은 단지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빚는 학교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 말투와 손동작, '이건 이렇게 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몸의 기억, 위험을 눈치채고 서로를 챙기는 눈빛이 내 사고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론적으로 타당한가’를 먼저 물었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실제로 가능한가, 몸으로 버틸 수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노동을 하면서 나는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든 '구체적으로' '책임 있게' '끝까지'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태도는 사무실이 아니라 공사장에서 몸에 밴 습관이다. 현장에서는 대충 넘긴 작은 틈이 나중에 큰 하자로 돌아오고, 오늘 대충 한 안전조치가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꼼꼼함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대충대충 시간이나 때우는 허술한 태도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장인의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노동을 통해 배웠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몸은 더 건강해지고, 생각은 더 단단해졌다. 책상 앞에서만 고민할 때보다 현장에서 땀을 흘릴 때 더 선명한 인사이트가 떠오르는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내 삶은 거창한 명분이나 비전만을 추구하는 목적 지향의 삶은 아니다. 높은 산 하나를 정복하기보다는 산을 오르내리며 주변 풍광을 즐기는 재미가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성취욕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성취에 이르는 과정을 결코 생략할 수 없다는 뜻이다. 흔히 인생의 ‘에르곤(ergon)’을 거창한 목표나 비전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로 한 사람의 삶을 형성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작은 실천과 소소한 기쁨들이다.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본질을 비켜난 주변부의 ‘파레르곤(parergon)’처럼 보이는 이 일상의 조각들이야말로 우리 삶이 어떤 방향과 의미를 갖는지를 드러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예전에 군대에 가면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놓아도 돌아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흐르고, 어떻게든 제대 날짜는 다가온다는 뜻이다. 국방의 의무니까 어쩔 수 없이 군대에 왔고, 그러니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체념이 숨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자리, 자기 안에서 동기가 생기지 않은 일을 할 때 그 환경을 외면하거나 최소한으로만 견디려는 마음이 생긴다. 노동 현장도 비슷하다. 이쪽 일은 원래 힘들고 거칠다. '내가 원해서 온 게 아니고,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부정적 시각은 일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하루하루를 ‘시간 때우기’로 느끼게 하고, 결국 삶 전체를 부정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 역시 그 시선을 그대로 반사해 막노동꾼으로 보는 것이다. 건설노동자를 '잠시 거쳐 가는 사람, 실패해서 밀려난 사람, 언젠가는 떠날 사람, 불결하고 거친 말을 일삼는 사람' 정도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앞으로 거칠고 힘든 일은 휴머노이드로 대체될 거라고 말한다. 지식 중심의 일자리도 빠르게 AI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가트너는 2028년부터 매년 일자리 수천만 개가 AI에 의해 재편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많은 일자리에서 '전통적 업무' 대신 AI와 협업하는 형태가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분석들은 2030년경이 되면 전체 노동의 최대 30% 이상이 자동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하며, 일부는 그 비율이 70%에 이를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지금까지는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구조가 개인의 정체성, 하루의 리듬, 사회복지 시스템까지 모두 떠받치고 있다.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 단순 사무와 계산, 운송·물류·제조의 상당 부분은 AI·로봇·휴머노이드로 빠르게 대체되거나 '사람+기계 협업'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더 이상 내 몸을 어디에 팔아야 하나' '임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경제적 질문과 함께 '일이 없으면 나는 누구인가' '일하지 않는 인간은 가치가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 동시에 떠오를 수 있다. 낙관적인 전망에서는 AI가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을 대신하면서 인간이 창의성·공감·판단·돌봄·공동체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관적인 전망에서는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대량 실업을 촉발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를 가진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어느 쪽이든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아질 것이다. “일을 ‘생존 수단’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고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로 다시 정의할 수 있는가?” AI와 로봇이 임금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하더라도 '노동'과 '행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각한 것을 바깥으로 꺼내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임금노동과 인간의 행위는 다르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주로 '지정된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으로서의 노동'이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에는 생존을 넘는 차원, 즉 '내가 무엇을 의미 있다고 느끼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행위의 차원이 있다. 이 차원에서는 결과물이 돈이 되든 안 되든, 생각하고, 설계하고, 몸을 움직여 뭔가를 만드는 활동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만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함께 쓰기 위해, 누군가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만들기 위한 노동은 그 자체로 관계를 맺는 행위다. 건물을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삶을 상상하고, 그 삶을 위해 무언가를 빚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숭고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제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미장을 너무 열심히 했는지 지금도 손목이 욱신거린다. 이 통증이 오히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준다. 라오스의 빈곤층 가정에서 자란 한 아이가 ADRF의 지원으로 지금은 대학에 다니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를 읽으며 오늘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다른 빛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읽고, 생각하고, 쓰고, 그리고, 일하는 것을 내 삶의 기본 리듬으로 삼으려 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일하고, 책상에서 글을 쓰고, 화폭 위에 장면을 옮기는 이 과정을 일상 속에서 반복하는 것, 나에게 이것이 노동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사유하고 명상하면서 수많은 상징과 은유, 비전과 개념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체 세계를 견인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우선 그것을 생각해 내고, 다시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 내는 일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질문하는 것이며, 인간의 호기심과 의문을 풀어 가는 과정에서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질문에서 출발해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 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넓은 의미에서 ‘노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은 세계를 만들 뿐 아니라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우게 하는 하나의 학교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인간과 다른 생물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이다. 바로 선다는 것은 땅에만 매달린 삶에서 벗어나 하늘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어떤 욕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특질은 이처럼 눈앞의 현실적 삶을 넘어 보이지 않는 추상적 삶을 추구하는 데 있으며, 어쩌면 바로 그 힘이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 인간이 직립보행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유를 지향하는 존재라는 점을 함께 놓고 보면 노동은 단순한 ‘동물적인 생존 행위’가 아니라 생각을 몸과 세계에 새겨 넣는 행위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노동은 ‘육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둘을 잇는 다리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이 인성 안에 깃든 유일한 사건이라면 인간의 노동은 그 인카네이션의 길을 따라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믿음과 사유가 몸과 세계 속에 구체화되는 작은 성육신의 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성인이나 위인을 신성과 인성이 조화를 이룬 완성된 인간의 모습으로 본다면 노동이야말로 그 신성을 내면에 새기고 실천 속에서 드러내어 점점 더 온전한 인간이 되어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 명함에 ADRF 대표이자 박사, 신문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이 더해진다고 해도 그 이름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먼지 속에서 보낸 하루의 노동일 것이다. 2026년 새해, 나에게 새희망과 새출발을 허락한 것도 결국 노동이라는 선생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이렇게 적어 본다. ‘노동이 사람을 만든다.’ 필자 주요 이력 idoosoo@naver.com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에서 빈곤지역 교육지원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명함에 박사 타이틀 더해져도 결국…노동이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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