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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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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박상철 교수 scpark@snu.ac.kr
  • -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 (전) 삼성종합기술원 웰에이징연구센터 센터장
    - (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 [박상철 100투더퓨처] 노화의 근본 원인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다

    생명체의 노화를 밝히기 위한 노화 학설의 전제조건은 다양한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노화는 생명체의 보편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이면서 대립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노화의 원인 측면에서 제기되는 필연적인가 우연적인가의 문제, 노화의 다양한 현상이 보여주는 구조적 측면에서 제기되는 부분적인 변화의 누적인가 총체적으로 초래되는 결과인가의 문제, 목적적 측면에서의 번식과 생존의 문제 등 상호 대척적일 수밖에 없는 본질적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분자, 세포, 개체 및 환경 수준에서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대부분은 노화현상의 일부분만을 설명하는 양상설(Aspect Theory of Aging)에 그치고 있다. 노화 학설의 분류에서 원인적으로 대립되는 명제는 우연과 필연 개념의 연장선에서 노화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필연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과 환경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의하여 생체 구성물질들이 손상을 입은 결과로 초래된다는 이론이다. 필연적 프로그램설에는 수명프로그램설, 내분비노화설, 면역노화설 등이 있다. 수명프로그램설은 노화되면서 초래되는 다양한 변화가 결국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가설로서 노화유전자의 규명이 가장 중요한 조건인데 노화를 직접 유도하는 특정유전자를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동안 직접노화유전자로 기대되었던 조로증인 프로제리아의 유전자나 워너증후군의 유전자가 모두 정상유전자가 돌연변이되어 노화를 초래하는 간접노화유전자로 밝혀졌다. 다만 텔로미어 가설이 등장하여 증식에 따라 줄어들 수밖에 없는 텔로미어가 수명한계를 결정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어 일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내분비노화설은 내분비선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퇴화하여 호르몬 분비가 감소되어 노화가 초래된다는 가설이지만 내분비선의 퇴화조건이 밝혀져 있지 못하다. 면역노화설도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면역계의 기능이 저하되어 생체 방어기능이 약해져 노화된다는 가설로 특히 흉선의 퇴행에 따른 T세포 생성 저하가 노화를 초래한다는 가설이지만 흉선의 조기 퇴화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다. 한편 우연적 요인에 의하여 노화를 유도한다는 손상과오설에는 마모설, 활동률설, 교차결합설, 유해산소설, 체세포돌연변이설 등이 있다. 마모설은 주위 환경에서 닥쳐오는 제반 위해요인들에 의하여 세포 내 물질들이 손상되고 수선 복구기능이 한계가 있어 마모된 물질이 누적되어 노화가 초래된다는 가설이다. 각종 손상물질, 폐기물질들의 누적이 강조되고 있다. 지질단백질이 산화되어 응고된 리포푸신, 뇌, 췌장 등의 조직에 침착되는 아밀로이드 물질 등이 그 예이다. 활동률설은 생체가 활동하면 할수록 생체손상이 초래되므로 활동률을 조절하여야 한다는 가설이다. 교차결합설은 생체 내 분자들이 서로 교차결합하게 되어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하여 제거되지 못하여 생체 기능을 제한하고 형태를 변형시켜 노화를 초래한다는 가설이다. 유해산소설은 생체는 산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고 대사되는 과정에서 사용된 산소의 2~5%가 유해산소로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해산소가 부득불 주변 생체물질들에 산화를 초래하여 세포손상의 주요인으로 작동한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유해산소가 생체에 위해만 가하는 것이 아니라 증식 등의 생명활동에 필수적임이 밝혀지고 항산화물질의 투여가 수명연장이나 노화 제어에 결정적 역할을 하지 못함이 밝혀져 가설 자체가 재검토되고 있다. 체세포돌연변이설은 살아가면서 여러 요인들에 의하여 돌연변이가 초래되어 유전자 발현뿐 아니라 유전자 자체가 원래의 정상적 조절과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 노화된다는 가설이다. 노화에 따른 조직별 돌연변이율과 노화상태가 일치되지 못하고 있으며, 부분적 돌연변이가 총체적으로 일정한 노화현상을 초래하는 기전 등이 알려져 있지 못하여 아직 가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기되는 구조적인 문제는 부분과 전체의 역할 분담이다. 노화가 세포의 부분적 변화에 기인하는가 또는 생체의 특정부위 노화가 결정하는가 아니면 여러 변화들이 연계되어 세포 전체의 노화로 이어져 나가는가 또는 생체 전체가 동시적으로 늙어져 가는가의 문제도 노화를 설명해야 하는 데 중요한 걸림돌이다. 부분을 주장하는 측은 세포에서는 미토콘드리아, 리소솜, 세포막의 노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각각 미토콘드리아 노화설, 리소솜 노화설, 막노화설 등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생체조직에서는 뇌의 해마, 뇌내분비선 특히 송과선, 뇌시상부, 뇌하수체 등의 노화가 궁극적으로 노화를 유발한다고 하였다. 반면 생체 전체 노화설을 주장하는 가설은 여러가지 변화가 누적되어 세포가 총체적으로 노화된다는 가설, 생체도 호르몬 또는 면역인자와 같은 생체인자가 전체에 영향을 미쳐 노화가 일어난다는 가설들이 주창되면서 서로간의 융합점을 찾으려 하였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노화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적 측면에서의 대립은 생식과 생존의 갈등이다. 동물의 진화는 생식으로 계대(繼代)하면서 선택과 적응의 과정을 수천 번 수만 번을 거듭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생식이 끝나면 대부분의 동물은 죽게 된다. 이러한 현상에서 생식과 죽음이 교환(trade off)한다는 수명대가설이 등장하였다. 생식을 통한 종의 번식을 위해 생식 후 희생하는 대부분의 동물은 따라서 생식기 이후의 삶이 짧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생식을 하지 않는 경우 수명연장의 사례는 많이 있다. 즉 생식과 생존이 서로 대척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생식 후에도 생존하는 동물에게는 신체적 기능의 퇴화가 초래된다. 따라서 생식기 이후의 기간을 노화시기로 정의하기도 한다.인간의 경우는 생식기 이후의 생애가 점점 길어져 가면서 수명의 길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 초래되는 노화는 인간에게 부과된 크나큰 생물학적 업보이다. 이와 같이 노화 학설은 원인적으로는 우연이냐 필연이냐의 갈등, 구조적으로는 부분이냐 전체냐의 논쟁, 목적적으로는 생식이냐 생존이냐의 선택이라는 대립적이며 상호 배제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 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설들을 통합한 범통일노화학설(Unified Theory of Aging)의 등장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100투더퓨처] 노화의 근본 원인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다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바이오경제의 원리는 효율의 극대화와 유통의 지속성이다

    인간 사회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경제 원칙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들이 있었고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에 따라 온전한 생명현상을 유지하여야 하는 생명체가 운용하는 바이오 경제의 원리를 되새겨보는 일도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바이오경제 원리의 첫째는 효율성 극대화다. 생체는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대사를 진행하고 물질의 과잉공급을 철저하게 제한한다. 생체에 불필요한 물질은 신속하게 체외로 배설해 잔류하지 않게 한다. 아울러 생명현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불순물이나 쓰레기 생성을 극소화한다. 생명현상을 위해서는 수천 가지 대사적 변화가 일어나서 각종 산물들이 생성되고 소멸되지만 항상 균형을 이루는 대사 반응이 연계되어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대사 반응은 모두 효소라는 생체분자에 의하여 100% 완벽하게 촉매되어 불량품이나 불순물 생성을 제한한다. 대사적 쓰레기를 제로화 함으로써 항상 청정하고 위생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생체 기능 극대화와 효율성 제고를 기한다. 최근 사회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과잉·중복 투자에 의한 잉여물 또는 쓰레기들의 축적이다. 공산물뿐 아니라 음식물, 생활용품 등 쓰레기는 사회적·환경적으로 엄청난 재앙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경제가 보여주는 효율성의 극대화는 투자의 낭비를 피하고, 폐기물을 극소화함으로써 얻어진다. 일찍이 노자는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끼는 것(治人事天莫如嗇)'이라 하였다. 낭비하지 않고 알뜰한 살림이 바로 바이오경제의 참 모습이다. 이러한 바이오경제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조건은 효소를 통한 대사반응의 조절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돈이 필요하듯이 생체분자들의 활동에도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 생체분자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단위 화폐는 ATP라는 에너지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각종 효소들 중에서 오직 대사계의 특정 위치에서 반응계의 개폐 조절이나 생합성 등 중요한 반응을 조절하는 극히 한정된 경우에만 ATP를 이용토록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일반 반응계 효소들은 ATP를 이용하지 않고 생체분자들의 자체 능력으로 반응을 촉매토록 하고 있다. ATP를 소모하지 않는 효소들은 오로지 반응물의 농도와 생산물의 양에 의하여서 반응률이 조절되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하고 편리한 운명체계를 가지고 있다. 대사 산물의 공급량과 수요량의 양적 균형에 의하여 반응률이 결정되는 평형 효소들이 생체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명을 영위하는 데 기본 요건이 단위 구성 분자들 간 조화로운 어울림에 있음을 밝혀 주고 있다. 물론 생체는 분자들의 욕심을 견제하기 위하여 추가적으로 효소의 생성과 활성을 조절하는 여러 가지 안전장치와 규제 장치를 갖추고 있음을 볼 때 바이오경제의 운용에 있어서 제어와 조절의 중요성을 새삼 엿본다. 중요한 제어장치들은 주로 대사계의 첫 번째 부위에 자리하는 길목 효소들에 집중적으로 작동하여 전체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현상은 사회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첫 단계부터 세밀하게 조율하는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바이오경제의 둘째 원리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이고 원활한 유통에 있다. 물자와 돈의 유통이 막히게 되면 기업은 도산하고 연쇄적으로 사회는 혼란에 이르게 된다. 생체에서는 분배와 유통 과정을 완벽하게 하기 위하여 생체를 구성하는 조직과, 세포 그리고 생체분자들 간에 상호보완적인 서로 다른 의무를 부과시켰고, 서로의 균형을 위하여 적절한 통제를 한다. 세포 내 소기관 간에도, 조직 내 세포들 간에도, 그리고 각 조직 간에도 영양 물질과 신호전달 물질들이 항상 원활하게 교류되어야만 생명현상이 유지된다. 생명현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유통 시스템은 혈관이다. 혈관을 통한 각종 생체 필수 물질들의 원활한 수송과 각 세포들에서 적절하게 흡수·배출하는 기능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통 과정은 멈춤이 없어야 한다. 언제나 가동되어야 하며, 생체 유통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생명이 중단된다. 혈관 외에도 림프관이나 세포 외 공간들도 유통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소극적이고 지엽적일 수밖에 없다. 혈관이 차단되어 유통이 차단되면 그 혈관이 영양 물질을 공급해 주는 조직은 수분 이내에 세포들이 죽어 가고 조직이 괴사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관상동맥 혈전에 의한 심근경색이나 뇌 미세혈관의 혈전에 의한 뇌신경의 마비뿐 아니라 사지 근육 혈관이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봉쇄되면 바로 괴사가 초래된다. 멈춤 없는 철저한 유통의 원리는 '하늘이 온전하려면 스스로 힘써 멈춤이 없어야 한다(天行健 自强不息)'는 이치를 따르고 있으며 바이오경제의 근원이다. 바이오경제는 유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물질의 원활한 흐름이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임을 밝혔다. 생명현상에는 어제의 영광이 그대로 지속되는 법은 절대 없다. 언제나 현재뿐인 것이다. 바이오경제의 핵심은 현재성(現在性)이다. 어제는 어제일 뿐 오늘을 보장하지 못한다. 오늘은 오직 오늘도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있다. 생체 조직 중에서 운동을 주관하는 근육과 뼈조직을 살펴보면 이들 조직은 사용하지 않으면 이내 불용성 위축이 초래되어 버린다. 항상 사용하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제를 받고 있는 조직이다. 근육조직 중에서도 심장근이나 위장관 또는 혈관을 이루는 불수의근인 평활근과 달리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수의근인 골격근은 불용성 위축이 빠르게 유도된다. 따라서 최고의 선수나 연주가가 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면 모든 근육이 최고의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완벽한 현재 상황이 계속되어야만 한다는 점이 바이오경제에 활력을 부여하고 살아 있다는 생명체의 자긍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결코 흔들림 없이, 언제나 변함없이 계속되어야만 하며 그러하기 위하여 사람은 끊임없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기업은 항시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에 안주하다 보면 아무리 세계적인 기업이라도 망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움직임을 통한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내일을 준비하여야만 살아남는다. 이와 같이 바이오경제는 적절한 조정에 의한 효율성의 극대화와 유통의 완벽화 그리고 지속적 현재성의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바이오경제의 원리는 효율의 극대화와 유통의 지속성이다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장수사회를 대비한 의료혁명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간과해서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인구 고령화에 따라 비례적으로 노인 환자가 급증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 노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증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경노인종합연구소에서 수행한 노화종적관찰연구에서 1970년대의 70대의 건강상태가 2000년대의 80대 후반과 같다는 연구결과이다. 그만큼 시대발전에 따라 나이든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평균수명이나 건강수명 척도보다 고령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지표는 실제로 사망하는 연령 지표인 최빈사망연령 (Modal length of life span)이다. 최빈사망연령은 지난 2세기 동안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미 90세에 이르렀지만 아직 정점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없다. 더욱 최빈사망연령의 표준편차 범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초고령자 사망연령이 실제로 비슷해져 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인간의 장수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장수가 특수한 계층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일반인들에게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로서 환경적 문화적 사회적 발전이 실제로 수명연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건강노인의 증가추이는 의료체계가 환자중심의 치료의료에서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의료로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장수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은 바로 의료제도이다. 일본의 나가노현은 기존의 대표적 장수지역인 오키나와대신 새로운 최고장수지역으로 부상하였다. 높은 장수도에도 불구하고 의료비 지출이 일본에서 최저라는 사실은 인구고령화가 반드시 높은 질병이환율을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나가노현이 건강장수지역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나가노현의 특별한 의료제도에서 답을 찾아본다. 나가노현의 험난한 지형적 제한으로 환자들이 병원을 쉽게 찾아 올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 지역 의사들이 환자를 찾아가는 왕진의료를 시작하면서 가족, 주거환경, 생활양식, 식습관 등을 모두 주시하고 그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간단하고 경제적인 방법을 개발하여 독특한 나가노 의료가 비롯되었다. 주민들 대상으로 일찍 생활교육을 실시하면서 주민위주의 의료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결과, 주민들의 건강상태는 물론 지역사회의 장수도가 점차 개선되어 결국 일본 최고의 건강 장수지역을 이루었다. 고령사회에서는 의료에 대한 수요도 크게 변화되고 있다. 고령화와 더불어 질병패턴의 변화는 물론, 삶의 패턴, 경제상황, 환경생태, 사회문화, 과학기술 등이 복합되어 실제 주민에 있어서의 의료 수요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은 개인의 질병치료가 위주였으며, 일부 지역사회 질병 이환율을 저하시키고 예방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여왔으나, 미래 고령사회에서는 질병예방은 물론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인간 존엄성 고양을 위한 노력을 능동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본다. 미래고령사회의 의료개혁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세 가지 방향을 검토하여야 한다. 장애가 없는 의료, 와상 환자가 없는 의료,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는 의료이다. 장애가 없는 의료(Barrier free medicine)란 환자들의 의료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또는 의료시설 내에서 접근은 물론 사이버공간에서의 접근도 편리하여야 하며, 환자의 이동 통로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치료도 전문과목 위주가 아니라 팀 접근을 통하여 환자의 다양한 질병 패턴이 평가되어 치료될 수 있는 협동체계의 구축이 중요하다. 교육훈련은 물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다양한 문화가 수용될 수 있는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와상 환자가 없는 의료(Bed-ridden free medicine) 란 어떠한 환자도 와상상태로 방치되어 있지 않도록 보장하는 의료이다. 스칸디나비아 의료의 핵심이 바로 욕창환자 없는(Bedsore free) 노인병원이다. 장기 입원해야 하는 노인환자들이 스스로 또는 곁에서 도와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최우선적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에 맞추어 실천적 방안을 구축하고 이에 필요한 과학기술은 물론 지역친화적이고 고령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삶의 질 향유를 위한 의료(QOL Longevity-ensured medicine)는 의료의 안전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의료시스템이다. 효율적인 응급 치료, 적절한 의료, 의료 부작용 최소화, 질병 예방 보장 등이 우선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미래의 병원 구성은 기존의 병원과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우선 삶의 질 향상 의학 분과가 독립되어야 한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인간존엄성을 보장하는 의료를 담당하여 관리 감독하는 역할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의료 분과들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통합의료 위원회를 구성하여 의료시혜의 종합적 노력을 통한 전인적 의료가 보장되도록 관리 감독하여야 한다. 재활센터가 강화되어 기능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다면적인 복합 센터의 운영이 필요하다. 한편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 센터를 강화하여야 한다. 자원봉사자를 동원하고 교육 훈련시키고 활용하는 일은 미래병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첩경이다. 따라서 지역협력센터를 설립하여 지역사회 주민에 대한 교육과 봉사를 지속적으로 하는 체계를 구축하여 주민 친화적 환경을 구축하여야 한다.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의료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바람직한 의료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 환자의 주 대상이 고령인이 되어 가면서 미래의료가 강조하여야 할 점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의료이다. 또한 보다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한 사회 개혁에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동참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소극적으로 찾아오는 환자에 대한 의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의료, 그리고 치료만이 아닌 예방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교육과 사회 개혁에 앞장을 서야 한다. 그러하기 위하여 장애가 없는 의료, 와상환자가 없는 의료, 삶의 질 향유의 장수의료가 꽃피울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정립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의학교육의 개혁이 시급하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장수사회를 대비한 의료혁명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고려장이 아니고 '오바스테'이다

    한국의 백세인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놀라운 변화는 백세인의 독거비율이다. 20년 전에는 10%가 독거노인이었으나 현재는 장수지역인 구곡순담(구례군 곡성군 순창군 담양군) 같은 농촌지역 사회에서도 독거 비율이 25%로 늘었으며 이 비율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초고령자의 경우는 독거생활이 삶의 질을 크게 낮출 것이 분명하다. 그 해법으로 등장한 요양원과 같은 시설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가족들의 태도이다. 늙은 부모를 요양원에 맡겼다는 것에 자위하고 찾아보지도 않고 잊어버리며 사는 가족이 의외로 점점 많아진다는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하기만 하였다. 10년째 면회를 한 번도 안 온 가족도 있고, 연락하면 서로 다른 형제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고 하였다. 그대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주면 찾아와 장례식은 요란하게 하는 집들을 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는 요양원장들의 현장 경험 이야기는 노인부양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백세인 조사과정 중에 남의 집 마당에 컨테이너를 놓고 혼자 살고 있는 98세 독거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스스로 식사를 챙기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며, 장날이면 혼자 이십리가 넘는 읍에 다닌다고 하였다. 소문에는 할아버지가 일흔여덟에 예순살 된 새 신부를 얻었는데 며칠도 안 되어 헤어지고 여든이 되도록 술집 출입을 하였다고 하였다. 일흔살이 넘은 딸이 한 분 있는데 어쩌다 한번 들를 뿐이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아흔여덟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건장하였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니 악취도 심하지만 한여름인데도 히터를 켜서 실내온도가 찜통 같았다. 냉장고와 부엌에는 식기들 어느 것 하나 세척되지 않은 채 지저분한 상태로 쌓여 있었다. 마치 쓰레기장에서 먹고 사는 삶이었다. 백세인 조사 다니면서 별의별 모습들을 볼 수 있었지만 이 경우만큼 처참한 정황은 없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수행하던 지역담당자에게 독거노인들에 대한 지역에서의 지원체계가 없냐고 묻자 이 경우는 자식이 있어 행정체계상 지원대상이 아니어서 관심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다른 사람 집 마당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혹시 주인집에서라도 살펴주는 일이 있을까 물었더니 주인 식구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웃들은 이 할아버지가 건장하여 모든 일을 스스로 잘 처리한다는 핑계로 도움을 회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시골의 전통적 생활이 상부상조의 삶이었기에 지금껏 만난 수많은 독거노인들의 삶이 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왜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물론 할아버지의 탓도 없지는 않은 듯하였다. 보살피는 자식 하나 제대로 없다는 점은 상당부분 본인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계속 책임을 미루고 말아야만 할까?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명목에 사로잡히지 않고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소지가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민족 분단의 냉엄한 현장에서 가까운 산속의 별장 집에서 102세 되는 할머니를 찾았다. 공직에서 갓 은퇴하였다는 손자 분이 맞아 주었다. 나름대로 노인문제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고, 고향에 새로운 개념의 노인복지시설을 건설하고 싶은 꿈을 표현하였다. 새로운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자 “노인을 살게만 도와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살도록 하여야 해”라고 대답하였다. 기본 취지는 공감이어서 좋은 의견이라고 맞장구쳐주었다. 할머니에게 안내를 부탁하였더니 별장 뒤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보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지금도 스스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식사도 하고 목욕도 한다고 부언하였다. 102세 된 할머니의 자립적 생활이 궁금하여 별채를 돌아 찾아갔다. “아!” 우리 일행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늙은 할머니가 기어서 나오는데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얼굴에는 핏기조차 없었지만 눈빛은 형형하였다. 몸에 묻은 때며, 냄새가 풍기는 옷을 보고 조사에 앞서서 우선 목욕이라도 시켜드리자고 서둘렀다. 마치고 나오면서 문간에 기다리고 있는 손자에게 노인을 어떻게 모시느냐고 다시 물었다. 할머니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할머니 때문에 가족들이 많이 희생 되었다는 둥, 시집간 딸만 생각하고 다른 가족은 무시한다는 둥, 그래서 지금은 보름에 한번 정도 반찬만 가져다 주고 만다는 둥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였다. 면담하면서 열어 보았던 냉장고에는 아무런 반찬도 남아있지 않았고, 갈아입을 옷 한 벌 걸려 있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 안 오나요?” “불러도 아무도 안 와” 그러면서 면담하고 있는 조사단의 젊은 여성팀원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정말 색시 손이 따뜻해”. 한여름인데도 사람의 손에서 따뜻함을 느껴야 하는 할머니의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 돌보지 않으면 노인의 모습은 저리 될 수밖에 없구나 라고 탄식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늙은 부모를 산속에 버렸다는 풍속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된 책은 우리나라를 한번도 찾은 적이 없는 미국 선교사 그리피스가 일본인이 한 이야기를 듣고 1882년에 쓴 책 <은둔의 나라 한국>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고려장 이야기는 일본인 미와타바키가 1919년에 쓴 <전설의 조선>에 언급된 이래 마치 한국의 전통인 양 오도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일본에는 늙은 부모를 버리는 ‘오바스테(姨捨, おばすて)’라는 풍속이 있었다. 나가노 지역의 장수조사를 갔을 때 명칭 자체가 늙은 어머니를 버리는 산이라는 오바스테야마 (姨捨山)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라는 영화에서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칠십이 넘은 가족을 산에 버리는 처절한 풍습을 실감나게 재현하였다. 그런데 이런 오바스테가 마치 우리의 전통인 양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근자에 새롭게 부각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사익의 '꽃구경'이라는 노래 구절이 귀에 거슬렸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서 꽃구경 가요 --- 한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버려질 줄 알면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긴 하였지만 우리 전통사회에 이러한 풍습은 없었다. 고려장이라는 용어를 버려야 할 때이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고려장이 아니고 오바스테이다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노화에도 목적이 있는가?

    박상철 교수] 노화의 원인을 밝히고 설명하려는 노력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명에 플러스(+)적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인 마이너스(-)적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화현상은 생물학적 패러독스(paradox)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노화를 설명하는 이론은 가히 백화난만이다. 조레스 메드베데프가 1990년대에 정리한 바에 의하면 이미 300여 가지가 넘는 가설들이 제기되어 있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노화 가설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도 학계가 공인하는 노화 학설은 없다. 왜 늙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 중에서 노화의 생물학적 목적에 중점을 둔 흥미로운 이론들이 있다. 목적적 노화 이론으로 종의 이익설(good of the species theory), 생명활동속도설(rate of living theory) 그리고 노화의 진화설(evolutionary aging theory)이 대표적이다. 종의 이익 이론은 생명현상이 보편적으로 무언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간다는 가정하에 노화가 비록 개체에게는 아니더라도 종 전체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으리라는 가설이다. 노화와 죽음을 통해서 새로운 유전자조합에 의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이론은 노화와 죽음을 혼동하고 있고 개체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반드시 종에 이익이 되지 않으며 대립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개체의 무한 증식이 집단인 종의 자원 확보에 한계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는 정상세포와 암세포와의 관계이다. 암세포의 무한 증식이나 불로장생이 개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론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생명활동속도이론은 에너지 소비 속도(대사 속도)와 그에 따른 생화학작용의 속도가 노화를 일으키고 조절한다는 이론으로 생명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생화학적 결함이 있어 자기제한적이며 파멸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이다. 막스 루브너가 동물의 에너지 사용 패턴을 알면 성장과 노화 속도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동물을 대상으로 측정하여 체중과 수명 간의 상관관계를 보았다. 450g의 기니피그와 450㎏의 말 간에는 체중이 1000배 차이가 나나, 조직의 그램당 에너지 소비는 거의 유사하였다. 그래서 대사 속도를 제한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조지 사커는 포유류의 체중, 대사 속도, 수명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이들 상호간의 연관관계를 구명하여 체중 증가와 함께 수명이 증가하는 요인은 대사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반면 클라이브 맥케이는 노화 속도가 대사 속도보다 성장 속도에 기인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적게 먹여 성장을 지연하게 하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지견을 발표하였다. 그의 소식가설은 이후 체중, 식사량, 수명, 대사 속도가 연계되어 노화를 설명하는 주류 학설로 발전하게 되었다. 더욱 덴함 하먼 박사는 대사가 증가하면 부작용으로 유해산소가 많이 발생하여 생체 조직이 손상되어 노화가 초래된다는 제안을 하여 생체활동속도이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한 반증들이 쏟아져 나왔다. 간단한 예로 유대류(有袋類)의 대사 속도는 같은 크기 포유류의 70~80%에 불과하지만 수명은 짧으며, 동일한 체중을 가진 포유류인 쥐와 박쥐의 수명 차이가 10배 이상 나며, 조류는 대사 속도가 포유류의 두 배 이상이 되지만 수명은 같은 체중의 포유류에 비하여 보통 세 배 이상 된다고 보고 되어 생명활동속도이론은 가설에서 학설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진화에 의한 노화이론의 시작은 오거스트 와이즈만이 시작하였으나 존 버든 샌더스 할데인이 체계화하였다. 불완전한 유전자의 영향력이 헌팅턴병 유전자처럼 중년이 되어서야 드러난다면 일생 동안 생식에 적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유전자를 제거하는 자연선택의 효력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노화에 적용한 피터 메다워는 늦게 작용하는 유전자가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두 가지 가능성으로 설명하였다. 하나는 생애 후반에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은 자연선택의 영향을 적게 받으므로 유해한 유전자일지라도 자연선택에 의하여 제거되지 않을 것이며, 생애 후반에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선택 영향이 강한 생애 초반에는 유익한 영향을 미치나 자연선택이 약한 노년에는 해로운 영향을 미치더라도 이를 자연선택이 제거하지 못할 것을 제안하면서 노화의 진화설을 부각시켰다. 조지 윌리엄스는 한 단계 발전시켜 유전자의 길항적 다면성(antagonistic pleiotrpy)을 발표하면서 노화 이론을 새롭게 하였다. 어떤 유전자가 생애 초기 생체에 유익한 작용을 하나 노년에는 유해한 작용을 하는 등 동일한 유전자라도 생애주기에 따라 생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더욱 마이클 로즈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세대를 거듭하면서 늦게 생산된 알에서 다음 세대가 태어나도록 12세대 이상을 지속하자 보통초파리에 비하여 수명이 10% 이상 길어진 개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노화의 진화이론을 강하게 부각해주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이론들에도 불구하고 노화의 특성을 설명하기에는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근자에는 적응과 선택이라는 진화적 개념에 종에 따른 개체의 내재된 구조적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노화가 발생한다는 다네이드설(Danaid theory)과 같은 변형된 이론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후생학적 변화가 규명되면서 유전체 자체의 진화만이 아닌 유전체의 측면적 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주목을 받게 되어 노화이론의 새로운 활로가 모색되고 있다. 모든 생명현상은 무의미한 것이 없으며 일정한 합목적적 이유가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노화현상도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그에 합당한 적절한 이론이 아직 정립되자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늙는다는 것이 어떤 목적이 있는지 아닌지 아직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노화에도 목적이 있는가?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반인반기(半人半機) 시대, 인간의 본질은

    최근 오픈AI라는 회사가 개발한 챗GPT가 등장하면서 일반사회뿐 아니라 학계 산업계를 포함하여 온통 시끌벅적해졌다. 그동안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사용하여 자료를 확보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혁신이 일어난 탓이다. 종래는 질문하려는 내용에 대한 자료나 논문들을 수집하는 것은 AI의 지원을 받아왔지만 이들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평가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인 인간의 몫이었다. 그런데 챗GPT의 등장은 제기된 질문에 대하여 AI가 독자적으로 종합분석하여 정리한 결과를 제공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지능을 별도로 사용하지 않고도 오로지 기계적 수학적 방법으로 누적된 자료들을 분석하여 답을 제공하는 일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으로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편리와 효율을 추구하기 위하여 개발되어 온 AI가 이제는 인간의 고유활동이라고 여겨져왔던 영역을 침해하고 대체할 수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인류의 미래에 밝지만은 않은 우려를 빚고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AI의 활용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조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게 되었다. 실제로 AI의 꽃으로 지목되는 로봇은 개발되면서부터 많은 우려를 가져왔다. 로봇의 개념적 근거는 중세 연금술에서부터 시작된다. 연금술의 목적 중에 하나가 무결점무오류 인조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 결과 골렘, 툴파, 호문쿨루스 등이 등장하면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인조인간의 형태가 창안되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전승되어 자신들을 대신할 인조인간인 골렘을 구체화한 대표적인 사례가 메리 셀리의 작품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이다. 로봇이라는 용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체코어로 부역을 뜻하는 로보타(robota)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소개한 ‘로슘의 유니버설 로봇’에 처음 등장하였다. 로봇은 인간 대신 일을 해주는 존재로 등장하였지만 결국 인간에게 반란을 시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인조인간인 로봇은 등장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인간에게 편리를 제공할 수 있으나 언젠가는 인간을 거부하고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스러운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우려를 바탕으로 공상과학소설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에 관한 저서인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에서 로봇이 지켜야 할 세가지 법칙(Three laws of robotics, Asimov’s law)을 제안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첫째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 첫째와 둘째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주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실제로 유명한 공상과학영화인 ‘터미네이터’에 이 내용이 소개되어 인구에 널리 회자되게 되었다. 나아가 아시모프는 <로봇과 제국>이라는 저서에서 앞에 언급한 세 가지 법칙을 선행하는 보다 중요한 법칙인 0번째 법칙(zeroth law)으로 로봇은 인성을 해쳐서는 안 되며, 행동을 하지 않아 인성에 위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항을 추가했다. 이어서 케사로브스키는 <제5의 법칙>이라는 저술에서 다음을 추가하였다. 넷째, 로봇은 자신이 로봇임을 일반인들에게 밝혀야 한다. 다섯째, 로봇은 자신의 의사결정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대칭적 신원확인과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로봇뿐 아니라 인간이 사용하거나 만들어 낸 모든 기계와 도구에 확대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로봇에 의하여 인간세상이 위협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공상과학에서 시작된 로봇 윤리는 20세기 내내 당연한 결론으로 묵시적으로 수용되어왔고 크게 문제화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로봇에 대한 인간의 지배구조가 명확했고, 인간의 능력이 충분히 로봇의 능력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가 되면서 AI와 반도체 집적기술이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되면서, 로봇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특이점 시간이 예고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더 이상 인간이 AI를 확실하고 압도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상황으로의 진행이 예측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율성을 강조하는 AI의 발전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주체를 달라지게 할 수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거론되면서 인간과 로봇의 구별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로봇이 인간적인 감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상상은 세상을 또 다른 지평으로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인간형 로봇의 사례로 아시모프 원작의 ‘바이센테니얼맨’이라는 판타지 영화가 있다. 로빈 윌리엄스가 주인공으로 AI를 탑재한 로봇인 앤드류로 등장하여 인간인 여성을 사랑하여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법정소송을 제기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재판이 오래 지속되는 탓에 여자는 늙어버렸지만 앤드류는 늙지 않고 그대로 있어 아무리 인간과 로봇이 진실로 사랑하였다고 하더라도 로봇은 법정에서 인간으로 인정 받지 못하게 되어 패소하였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인간 티토노스의 불운한 사랑 이야기가 이제는 인간과 로봇의 사랑으로 변질되어 각색되었지만 AI 로봇이 인간적 감성을 가질 수 있음을 상상하고 있다. 아직은 AI가 인간의 감성까지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가능성이 열리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하여야 하고 인간과 로봇의 공존에 대한 대처를 심각하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화시대부터 인간은 공간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능력을 확대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존재를 상상하였고, 무한한 능력과 불멸의 삶을 희구하여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반인반신(半人半神)의 존재를 유추해냈다. 이제는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트랜스휴먼, 판단인지 능력까지 대행하기 위한 포스트휴먼의 존재를 구체화하면서 새로운 개념인 반인반기(半人半機)의 생성체를 등장하게 하고 있다. 반인반기의 인간과 AI로봇이 공존하는 시대를 맞아 인간의 본질을 견지하면서 삶의 질을 증대할 수 있도록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반인반기(半人半機) 시대, 인간의 본질은
  •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젊음 뛰어넘는 '창조적 노인' 시대가 온다

    아직도 노화 현상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돌이킬 수 없고 기능이 저하되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세상에 만연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생물학적 차원의 판단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측면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어 미래장수사회에 암울한 장막을 드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생물학적 개념과 다르게 노화가 다양하며 복원가능하고 적응적이며 보호적 현상으로 새롭게 주장되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선 거론되는 주제는 신체의 기능적 퇴화와 인지의 퇴행적 변화이다. 신체기능 문제는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다양한 방안이 개발되어 상당 부분 해결되어 가고 있다. 인지능 문제는 아직 명확한 해법이 없지만 가까운 장래에 적절한 방안이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쟁에서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는 본질적 문제는 고령자의 창조성에 대한 의문이다. 기존의 노화개념은 창조적 능력을 대척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창조는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이지만 노화는 수동적이고 대응적인 행위에 그치기 때문에 고령자의 창조적 능력을 일반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령인이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보면 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고령의 나이에도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어낸 사례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는 명작 ‘파우스트’를 여든살이 넘어 완성하였고, 조지 버나드 쇼는 아흔이 넘어서 희곡을 썼고, 주세페 베르디는 여든살이 넘어서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파블로 피카소는 아흔살이 넘어서도 그림붓을 놓지 않았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와 레비 스트로스는 백살 넘게 활발하게 연구한 철학자이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드와 피터 드러커도 아흔 후반까지 활동한 경제학자들이며, 백살이 되어도 대기업을 직접 운영한 데비드 머독이 있다. 또한 백살의 나이에도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미국 NIH의 허버트 테이버와 같은 과학자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황희, 송시열, 허목, 강세황 등과 같이 여든살 넘어서도 정치를 이끌고 예술과 학문을 완성해 나간 분들이 있다. 최근에는 백살이 넘어서도 강연과 저술을 열심히 하는 김형석 교수와 같은 분과 학계의 원로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조완규 교수와 같은 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분들은 모두 백살에 가깝거나 이미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특별한 사람인가?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부단한 열정과 집념 그리고 창조적 능동성이다. 평생 전공해 온 분야에서 완성을 추구하고 보다 더 발전적 방향으로 외연을 확대해나가는 집요한 노력을 계속하는 모습이 공통적인 특성이다. 연령과 전혀 상관없이 연령의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항상 새롭게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령자의 창조적 능력이 새롭게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관점에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정신심리학자인 코헨(Gene Cohen)은 고령자도 충분히 창의적 행동과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노화를 질병으로 취급함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고령자에게 예술활동과 같은 창의적 활동을 독려함으로써 노화에 따른 질병의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음을 규명하였다. 고령인이 얼마든지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고령자 당사자뿐 아니라 학계에도 고령인과 고령사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신선한 희망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그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에너지-질량방정식인 E=mC2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를 모방하여 고령자의 창의성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즉 창의성과 누적된 경험과의 관계를 정리하여 C=me2 (C는 창의성, m은 경험질량함수, e는 각각 내면적 정서적 경험과 외부적 사회적 경험)라는 창의성-경험방정식을 제안하였다. 창의력은 정서적 경험과 사회적 경험이 복합되어 서로 교차작용하였을 때 작동한다고 보여주면서 고령자의 누적된 경험이 창의력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나이가 들수록 창의성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증대될 수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창의적 능력이 정서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노력을 통하여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나이든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잠재력과 창의력을 발굴할 수 있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코헨의 제안은 실제로 고령자들의 창의성을 증진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비록 전문적인 업종에 종사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 온 일반인이더라도 창의적 활동을 새롭게 시작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낼 수 있음을 밝혀주었다. 미국의 한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일흔이 넘어 회화를 배우기 시작하여 백살이 넘도록 살면서 미국에 새로운 미술화풍을 이루어내어 ‘그랜마 모지스’로 사랑을 크게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옥희님이 아흔이 넘어 뇌경색 후 뒤늦게 회화를 배워 98세인 최근 개인전을 열었으며, 남궁전님은 아흔살에 사진촬영법을 습득하여 노을빛포토동우회라는 야외출사모임에 가입하여 95세에 히말라야를 가는 등 세계를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백살이 된 최근 ‘백세의 반란’이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일본의 시바다 도요는 92살에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98세에 시집 ‘약해지지마’를 발간하여 전 세계적으로 15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백세인이 되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더라도 평범한 일반인이 얼마든지 창의적인 일을 시작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작하는 데 결코 늦는 법은 없다’는 삶의 진리가 노화를 극복하고 연령차별을 해결하는 원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덧붙여서 창의적 활동을 시도하면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다. 우선적으로 고령자들에게 음악, 미술, 무용, 게임과 같은 예술적 활동을 독려하여 창의적 능력을 부양할 필요가 있다.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미심쩍어했던 고령인의 창의적 소양이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으며, 평생 삶에서 축적한 정서적 사회적 경험들이 창의성 개발에 상승효과를 가질 수 있다. 단순한 예술적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분야에서도 고령인의 참여를 독려하여 노화에 따른 자기보호 외부 거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개방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증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수사회가 단순수명증가사회가 아니고 창조적 노년의 시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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