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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대법 파기 환송이 정말 사법 쿠테타인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에는 ‘사법 정의 실현’,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 선거법 사건 파기 환송에는 ‘사법 쿠데타’. 더불어민주당이 두 사건 심판 결과에 보인 반응이다. 똑같은 사법부 판결인데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판결은 ‘정의’ 라고 치켜세우고, 불리한 판결은 ‘쿠데타’라고 깎아내린다. 유·불리에 따라 상반된 주장을 하는 더불어민주당 행태는 놀랄 일이 아니다. 늘 그래 왔다. 그러나 상식을 가지 국민이라면 민주당식 언행에 동의도, 공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 1일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깨는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6부(최은정 이예슬 정재오 부장판사) 의 무죄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반박의 핵심 기준이 상식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한 게 명백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잘못’ 이라는 표현을 18회나 썼다. ‘오해’와 ‘왜곡’도 각각 8회, 2회 썼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이런 용어를 쓴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서울고법 무죄 판결이 문제 투성이라는 뜻이다. 대법, 상식에 기초해 2심 무죄 판결 파기 이 후보는 성남시 백현동 부지 용도를 4단계나 상향 조정한 이유를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고 했다.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걸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서’라고 했다. 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토부가 그런 협박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져 보면 된다. 법정에 나온 성남시 공무원 등 증인 22명 중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공문에는 ‘성남시가 적의 판단해서 하라’고 적혀 있었다. 성남시가 ‘알아서 판단해서’ 하라는 뜻이다. 이쯤 되면 ‘국토부가 협박해서’라는 이 후보 발언은 거짓임이 명백하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상식을 따라 이 후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인 서울고법은 온갖 법리를 펴며 무죄를 선고했다. ‘협박 받았다’는 말은 어떤 사실을 말한 게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는 의미의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의견 표현이기 때문에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어떻게 의견 표현인가? 대법원은 의견 표현이 아니라 허위 사실 공표라며 유죄라고 판결했다. 이 후보는 과거 뉴질랜드에 출장 가서 고 김문기씨와 사진도 함께 찍고 골프를 쳤다는 의혹에 대해 골프를 함께 친 일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혐의도 받고 있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 측이 당시 골프 멤버 여러 명이 찍힌 사진 중 자기와 김문기씨 사진을 확대해서 공개하자 이렇게 주장했다.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는데, 제가 확인해 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의 일부를 떼내 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지요.” 일반 국민들은 ‘조작’이라는 발언을 이 후보가 김문기씨와 골프 친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은 이 부분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조작’이라는 발언의 의미는 사진의 일부 내용을 확대해서 원본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취지 등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며 김문기씨와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의미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게 상식에 맞는 판단인가? 대법원은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허위 사실 공표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민주당, '사법 쿠데타' 맹비난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직 즉각 사퇴를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판결이다.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며 판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대법원이 1심 유죄 판결과 똑같은 판결을 했기 때문에 파기 환송심의 형량도 1심 형량(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재명 후보는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 출마 자격이 없어진다. 다만 재판 절차에 걸리는 법정 시간 상 대선일 이전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법적으론 유죄가 확정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유죄’이다. 그런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선 출마가 정당한지,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하는 논란으로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고 나라는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법원을 향해 비상식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사법 쿠데타, 대선 개입’ ‘이것들 봐라? 한 달만 기다려라’ ‘조희대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 등등. 심지어 ‘사법부를 없애야 할지도 고민해야’ '사법 내란'이라는 말까지 한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을 향해서는 '(오는 15일로 예정된) 이 후보 공판일을 대선 이후로 바꿔라, 안 하면 재판 막을 것이다'라고 했다. 일부 의원들은 서울고법에 '경고한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민주당 비난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지만 모두 법과 상식에 어긋난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심리 두 번 만에 선고하는 등 졸속 재판을 했다고 비난한다. 6만 쪽에 이르는 재판 기록을 언제 다 읽어 봤느냐고도 한다. 이는 막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을 소리다. 대법원 재판 시스템을 전혀 모르거나 모르는 척해서 하는 소리다. 대법원 재판은 사실심이 아니라 법률심이다. '이재명 피고인이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 같은 사실 관계를 따지는 게 아니다. 그가 한 말이 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느냐 아니냐 하는 법률적 판단을 하는 곳이다. 사실 관계는 이미 1심과 2심을 통해 다 드러났고 정리됐다. 대법관들의 심리에 앞서 수십명의 재판연구관들이 1, 2심 재판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법률적 쟁점을 정리한다. 대법관들은 이를 토대로 심리해서 결론을 내린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관들이 모여서 하는 심리는 일반적으로 한두 번이 전부다. 그동안 가만있다가 유죄 나오자 절차 시비 이재명 후보의 다른 사건 재판 때도 그랬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시키려 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혐의로 재판 받았다. 2심은 이 후보 말이 거짓이라며 벌금 300만원의 당선 무효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2020년 7월 전원합의체 재판을 열어 이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로 인해 이 후보는 기사회생했다. 이때 전원합의체는 딱 한 번 심리하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번에 두 번 심리했다. '심리를 딱 두 번 하고 선고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민주당 주장은 이 후보 사건 전례에 비춰 봐도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이 졸속 주장을 들고 나온 시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이 후보 2심 무죄 재판 기록을 지난 3월 28일 접수했다. 4월 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겨 첫 번째 심리를 하고 4월 24일 두 번째 심리를 했다. 그리고 4월 29일에 '5월 1일 선고하겠다'고 공지했다. 이런 과정은 언론 보도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음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었다. 민주당은 이때까지만 해도 대법원 재판 진행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왜 그렇게 서두르냐'고 하지 않았다. 아마 2심 무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자기들 예상과 달리 유죄 취지 판결이 나오자 졸속 재판 주장을 들고 나왔다. 졸속이라면 왜 진작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나? 무죄 판결이 나왔더라도 졸속 재판이라고 주장했을까? 민주당 주장이 얼마나 정략적인지 보여준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려면 판결 내용의 비합리성을 납득할 수 있게 지적하면 된다. 비합리성은 한마디도 지적하지 못하고 졸속 재판이라는 비난만 하고 있다. 민주당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에 이 후보 공판 기일을 대선 이후로 늦추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대놓고 법을 무시하는 처사다. 공판 기일 연기 신청은 피고인만이 할 수 있다. 이 후보가 선거운동 등의 관계로 연기 신청을 하면 된다. 물론 받아들일지 여부는 재판부가 결정한다. 피고인이 아닌 민주당이 공판 기일을 늦추라고 주장할 법적 근거는 없다. 이는 법을 떠나 상식의 문제다. 민주당의 공판 기일 연기 강요는 사법부 겁박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탄핵 결정' 승복한 국민 법치 의식 못 따라가 민주당의 비상식적인 사법부 겁박 행태는 윤석열 탄핵 사태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높은 의식 수준에 맞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놓고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몇 달이나 두 쪽으로 갈려 싸웠다. 갈등과 분열이 하도 심해서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해도 나라가 두 쪽이 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헌재가 윤석열 파면 결정을 하자, 거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하고 차분해졌다. 탄핵 반대파들은 더 이상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탄핵 반대자들은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난입할 정도로 극렬했었다. 그런데도 헌재의 탄핵 결정에는 모두 승복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때도 헌재가 재판을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비판이 많았다. 여론조사에서 헌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이 40%나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결정이 나오자 모두 승복했다.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고 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는 상식을 따른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 국민의 높은 상식 수준과 법치 의식 수준이다. 대법원을 향해 온갖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민주당 행태는 국민 상식 수준을 못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성숙한 법치 의식을 조롱하는 일이기도 하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민주당의 비상식적 사법부 겁박이 국회 다수당의 힘으로 사법부를 무력화하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깨뜨리는 일임을 다 안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층 표심으로 나타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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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정치에서 상식적 언행의 엄중함 보여준 대법원 판결
대법원이 1일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깨는 판결을 했다. 법 절차상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하게 되지만 하급심은 대법원 판결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서울고법에서도 유죄 판결이 나올 게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이 주는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치에서 ‘상식적 언행'이 갖는 엄중함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 후보에 대한 서울고법의 무죄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반박의 핵심 기준은 상식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한 게 명백하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성남시 백현동 부지 용도를 4단계나 상향 조정한 이유를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고 했다.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걸 문제삼겠다고 협박해서’라고 했다. 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토부가 그런 협박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져 보면 된다. 법정에 나온 성남시 공무원 등 증인 22명 중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공문에는 ‘성남시가 적의 판단해서 하라’고 적혀 있었다. 성남시가 ‘알아서 판단해서’ 하라는 뜻이다. 상식과 동떨어진 2심 무죄 판결 이쯤 되면 ‘국토부가 협박해서’라는 이 후보 발언은 거짓임이 명백하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상식을 따라 이 후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인 서울고법은 온갖 법리를 펴며 무죄를 선고했다. ‘협박 받았다’는 말은 어떤 사실을 말한 게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는 의미의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이게 어떻게 의견 표현인가? ‘사실’ 여부는 객관적 자료로 그 존재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발언이다. ‘의견’은 주관적 판단이다. 객관적 자료로 검증할 수가 없다. 국토부가 협박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는 객관적 자료로 증명할 수 있다. 증인들의 증언과 국토부 공문이 그 자료다. 그럼에도 서울고법은 의견 표현이기 때문에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는지 기괴할 따름이다. 대법원은 이를 허위사실 공표라고 판결했다. 상식적 판결이다. 이 후보는 과거 뉴질랜드에 출장 가서 고 김문기씨와 골프를 쳤는데도 그런 일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 측이 당시 골프 멤버 여러 명이 찍힌 사진 중 자기와 김문기씨 사진을 확대해서 공개한 것을 두고 ‘사진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일반 국민들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이 후보가 김문기씨와 골프 친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은 이 부분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조작됐다’는 이 후보 발언의 의미는 사진의 일부 내용을 확대해서 원본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취지이지, 김문기씨와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의미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허위사실 공표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역시 상식적인 판단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사법 쿠테’ ‘내란의 연속’이라고 비난했다. 뻔히 예상된 일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직 사퇴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이재명 후보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판결이다.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판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국민의 뜻이 확인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후보 사퇴는 없다는 뜻이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대선 전에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대선 출마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볼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후속 재판은 중단될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재명 '신뢰' 위기 현실로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 후보는 ‘신뢰’에 치명상을 입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는 이 후보의 최대 리스크가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신뢰 리스크라는 말들이 많았다. 이 후보의 신뢰성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하니 정말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 후보가 하는 말은 뭐든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감을 널리 펴지게 했다. 이 후보가 ‘기업을 살리겠다’,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저걸 믿을 수 있나’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후보가 대선 후보에 선출된 직후 국립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모습을 보고도 ‘정말로 두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해서 그랬을까’ ‘쇼하는 거지’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법원은 이번에 이 후보 발언이 허위 사실, 즉 거짓말이라고 확정했다. 이 후보의 신뢰성과 진정성을 의심하는 국민들에게 ‘역시 그렇지’ 하는 확신을 심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도층 유권자들이 이 후보 지지를 철회하게 할 수도 있다. 정치판에서는 상식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 나아가 거짓말을 하는 게 당연시되기도 한다. 그런 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을 유능한 정치술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판이라도 억지 주장, 거짓말은 통할 수 없음을 대법원 판결은 보여준다. 정치인의 발언이 억지 주장인지, 거짓말인지는 복잡하게 따질 필요 없이 보통사람들의 상식적 판단에서 보면 된다는 점도 보여준다. 이번 판결이 아니더라도 정치에서 상식적 언행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모든 정치인들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심판을 받게 된다. ‘상식의 심판’이다. 일부 판사가 아무리 기교를 부린다고 해도 결국 상식의 벽을 넘어설 수는 없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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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상식적 판결로 갈등 잠재운 헌재, 대법원도 이재명 재판에서 따라야
①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이후 거리는 예상과 달리 차분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갈등과 분열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여론조사에서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도가 높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런 우려가 가시는 분위기이다. 왜 이렇게 상황이 변했을까? 헌법재판소의 공이 크다. 헌재는 이번에 법과 제도를 통한 갈등 해소라는 사법부 본래 역할을 잘 보여줬다. 사법 절차가 갖는 중요성과 가치를 국민 마음속에 심어줬다. 이제 다음 차례는 이재명 선거법 최종심을 맡은 대법원이다. 대법원이 이 판결을 통해 갈등과 혼란을 해소할 차례다. 헌재 탄핵 선고 이유는 탄핵 반대 측이 보기에도 설득력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헌재는 탄핵 결정문에서 계엄과 탄핵 사태에 얽힌 여러 쟁점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이 쟁점들은 탄핵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근거가 됐다.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중단된' 계엄이라도 탄핵 사유가 되는지였다. 윤 대통령 측은 '계엄이 단시간 안에 해제됐고 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도 않았으므로'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헌재는 '계엄 선포로 인해 탄핵 사유는 이미 발생했다'고 했다. 계엄 선포 그 자체만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계엄을 선포한 의도 또는 목적도 뜨거운 쟁점이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실행에 옮기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야당의 전횡과 국정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경고성’ 또는 ‘호소형’ 으로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계엄 선포에 그치지 않고 군경을 동원해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는 등의 행위로 나아갔으므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 '경고성 계엄'주장 합리적 반박 '경고성' 또는 '호소형' 계엄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헌재의 판단은 계엄 선포 당일 국회에서 벌어진 일을 TV중계방송을 통해 생생히 기억하는 국민들의 상식적 판단과 배치되지 않는다. 당시 국회 본관 앞 잔디 광장에는 특전사 병력을 태운 헬기들이 줄지어 착륙했다. 무장 군인들이 국회의사당 내 유리창을 깨뜨리며 국회로 진입했다. 이런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경고성’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주장은 통하기 어렵다. 실제로 ‘경고성 또는 호소형이라면 왜 군경을 투입했지’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헌재 결정문이 설득력을 높인 가장 큰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지적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헌재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야당의 탄핵 소추 남발과 그로 인한 여러 고위공직자들의 권한 행사 정지, 헌정 최초로 2025년도 예산안 증액 없는 삭감 후 단독 의결,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 일방 통과 등의 사례를 열거했다. 헌재는 “그 과정에서 피청구인(윤 대통령을 지칭)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도 했다. 탄핵 선고가 나오기 전까지 탄핵 반대 측은 민주당의 줄탄핵과 입법 독주 등 국정 방해만을 내세워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탄핵 찬성 측은 민주당 행태에는 눈을 감은 채 계엄 선포라는 결과만을 갖고 윤 대통령을 비난했다. 탄핵 반대 측은 목적의 정당성을 앞세워 탄핵 반대를 정당화하려 했고, 탄핵 찬성 측은 목적의 정당성 내지 불가피성 여부는 따지지 않고 수단의 불법성만으로 탄핵 찬성을 정당화하려 했다. 야당 '국정 방해' 문제점 지적으로 공정성 더해 이에 대해 헌재는 ‘윤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감’ ‘윤 대통령 판단의 정치적 존중’ 등의 표현으로 비상계엄 선포 배경에는 야당의 잘못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며 헌법 절차와 국민 설득으로 사태를 해결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고 비상 계엄 선포라는 국가긴급권을 남용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했다. 헌재의 판단에는 어떤 행위를 평가할 때 목적이나 의도의 정당성 또는 행위의 불가피성 여부를 따져 봐야 하고, 설사 목적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이 정당한지를 따져 봐야 한다는 함의가 들어 있다. 계엄 선포는 대통령으로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그렇다고 해서 계엄 선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은 합리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정하기 어렵다. 탄핵 찬성 측이든 반대 측이든 마찬가지다. 특히 여당이나 야당에 속하지 않는 중도층 국민들 생각이 바로 이럴 것이다. 그만큼 설득력이 높다. 한 시민은 방송 인터뷰에서 “헌재가 조목조목 판단한 것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고 했다. 헌재 선고 이후 거리가 차분해진 데는 이처럼 헌재의 설득력 있는 판정이 큰 역할을 했다. 사법기관의 역할은 법과 제도를 통한 평화적 갈등 해결이다. 이를 위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사법부 판단의 공감력과 설득력이다. 공감력과 설득력이 있어야 판결 결과가 자기 뜻과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따르게 된다. 그 결과 갈등과 혼란이 사라지게 된다. 이재명 재판 선고 시점과 내용, 정국 최대 변수 이제 사법 절차에서 남은 가장 큰 문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대법원 재판이다. 이 대표는 1심에서는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지난 3월 26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판결은 앞으로 실시될 대통령 선거 판도는 물론 정국 전반을 뒤흔들 최대 변수이다. 대법원이 언제 선고할지와 유죄일지 무죄일지가 핵심이다.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2심 무죄 판결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판결 이유가 상식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이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백현동 부지 용도를 사업자에게 특혜가 되도록 변경한 이유를 묻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용도 변경을 안 하면 국토부가 직무유기 이런 걸 문제 삼겠다며 협박해서’ 변경했다고 말했다. 1심은 국토부가 협박한 사실이 없다며 이를 거짓말로 보고 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직무유기’ ‘협박’ 발언을 ‘백현동’이 아닌 다른 공공기관 부지에 관한 것이라며 무죄 이유로 삼았다. 당시 국회가 백현동 사건을 다룬 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백현동이 아닌 다른 부지에 관한 것이라고 했으니,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는가. 대법원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판결로 이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 선고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선고 시점이다. 대선은 6월 3일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5월 10~11일 대선 후보 등록과 함께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된다. 5월 29~30일 사전 투표가 실시된다. 후보 등록일 전까지 대법원이 선고하고 2심대로 무죄를 확정한다면 이 대표 대선 출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유죄 취지로 2심을 파기하는 판결을 한다면 사정이 복잡해진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파기 판결을 하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유죄 확정 판결을 받게 된다. 그 판결이 대선일 이전에 나오기는 시간 상 쉽지 않다. 그 경우 이 대표는 사실상 유죄인 상태에서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 이는 민주당 내부는 물론 일반 유권자들에게도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대법원에서 사실상 유죄 판결을 받은 후보가 대선에 출마하는 게 옳으냐, 대선 후보 자격은 있느냐 하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대법원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이 대표 판결을 조기에 하지 않고 마냥 미룰 가능성도 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러 여론 조사에서도 지지율 1위를 차지한다. 그런 이 대표이니 대법원이 조기에 판결을 하는 것에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대법원이 제1당 대선 후보 눈치를 보느라 판결을 미룰 것이라는 얘기들이 벌써부터 항간에 나돌고 있다. 그럴수록 대법원은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법원, 정치적 고려 말고 법과 원칙대로 민주당과 이 대표는 대법원에서 대선일 전에 설사 유죄 취지 판결을 하더라도 이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후속 재판이 정지될 것이라고 볼 것이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 대표는 기소된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유죄 피고인 대통령’이라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을 책무가 대법원에 있다. 최선은 대법원이 후보 등록일 이전에 확정 판결을 하는 것이다. 2심 무죄 판결이 맞는다면 그대로 무죄를 확정하고, 2심 판결이 잘못됐다면 2심에 다시 넘기는 파기 환송을 하지 말고 대법원이 직접 유죄 결론을 내리는 파기 자판을 하면 된다. 파기 자판은 전례가 드물기는 하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와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라면, 그리고 법적 요건에 문제가 없다면 파기 자판을 못할 이유가 없다. 재판을 미뤄 유무죄가 어정쩡한 상태로 두는 것보다 매듭을 분명히 짓는 게 공익을 위하는 길이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대선 시간표에 맞춰 내려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은 지금 대법원이 국가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다.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처럼 공감력과 설득력을 갖는 판결을 하지 못하면 권위와 신뢰도에서 헌법재판소에 뒤질 수밖에 없다. 2류로 전락하게 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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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신뢰 잃은 헌법재판소, 갈등 해소는커녕 더 불붙일까 걱정
헌법재판소는 지금 최대의 위기 상태에 놓였다. 신뢰의 위기다.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나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탄핵 심판을 진행하는 헌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0%를 넘나든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52% 전후이다. 헌재가 정치권으로부터 자기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반발과 비난을 산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민 다수에게 불신을 받은 적은 없었다. 아무리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다고 하더라도 국민 40%가 불신한다는 사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다수 국민이 헌법재판소를 불신하는 이유는 헌재가 중립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심판 절차와 내용 모두에서 그렇다. 우선 내용을 보자. 대표적인 사례가 감사원 감사 대상 기관에 대한 결정이다. 헌재는 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할 권한이 없다고 결정했다. 선관위가 헌법상 행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라 독립기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관위를 감사 대상에 넣으면 선관위 업무인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감사원법 규정과 어긋난다. 감사원법 제24조 ③항은 감사 대상 예외 기관으로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3개만을 규정했다. 선관위는 없다. 그러나 헌재는 이 규정은 열거 규정이 아니라 예시 규정이라고 해석했다. 감사 대상 예외 기관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규정에 선관위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서 선관위가 감사 대상 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아가 선관위를 감사 대상 기관으로 넣는 쪽으로 감사원법을 개정하는 것도 위헌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헌재 결정은 숱한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헌재 결정에 법적 논란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헌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공정성·중립성 논란 자초 헌재 결정은 법적 논란을 떠나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감사 내용은 선관위의 채용 비리이다. 선관위 고유 업무인 선거 관리에 관한 게 아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선관위 간부 자녀와 친·인척 특혜 채용이 잇따라 벌어진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전국 17개 시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10년간 291차례 경력직 채용에서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878건에 달했다. 시도 선관위를 감독해야 할 중앙선관위는 감독하기는커녕 ‘우리는 헌법기관이니 법령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불법·편법 채용을 부추겼다. 선관위 내에서는 중앙·지역 선관위 인사 담당자들이 “선관위는 가족회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헌재는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이 설사 법 형식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결정을 누가 옳다고 여기겠는가? 어떻게 헌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선관위 공무원의 채용 비리를 감사한다고 해서 어떻게 선거 관리의 공정성이 침해될 수 있는가? 선관위 고유 업무인 선거 관리는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더라도 일반 행정 업무는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헌재는 국민의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했다. 헌재는 절차 측면에서도 신뢰를 잃는 일을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아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소한 사건에서다. 헌재는 당초 이 사건을 지난 2월 3일 선고하려 했다. 그런데 선고 예정 2시간을 앞두고 돌연 선고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예정된 선고를 불과 2시간 전에 연기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자체가 헌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선고 연기 이유였다. 지난 1월 22일 열린 재판에서 최 권한대행 측이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의결 없이 단독으로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심판 청구한 것은 부적법해 각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지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다. 그러나 헌재는 최 대행 측 요구를 각하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선고를 하려 했다. 그러다 ‘졸속 재판’ ‘절차적 흠결’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선고를 연기하고 지난 2월 10일 다시 변론을 열었다. 이날 변론에서 또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국회 측이 “이번 심판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보완하겠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국회 측은 “국회에서 (사후) 의결할 준비”라고 답했고, 문 권한대행은 “본회의 의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되물었다. 이후 나흘 뒤인 지난 2월 14일 국민의힘 불참 속에 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마은혁 임명 촉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결국 헌재는 지난 2월 27일 마은혁 재판관 임명 보류는 잘못이라고 국회 측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과 '짜고' 한다는 의심까지 ‘마은혁 임명 보류’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헌재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는 헌재가 ‘국회 의결 필요 여부’라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을 놓친 채 변론을 끝내고 바로 선고를 하려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국회 의결 필요 여부가 핵심 쟁점임을 진작에 파악했다면 선고 일정을 잡기 전에 그 문제를 심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 대행 측 문제 제기를 계기로 논란거리가 되자 뒤늦게 다시 재판을 열어 이 문제를 심리한 것이다.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가 뭔가 허술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 하나는 문형배 소장 대행이 ‘사후 국회 의결’로 국회 측 절차상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이다. 이는 헌재가 국회 측과 ‘짜고’ 했다는 의심을 사게 할 수 있다. 그런 의심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헌재는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빼는 과정에서도 중립성과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 측 변호인은 ‘내란죄 삭제하겠다. 그게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인은 논란이 되자 ‘권유’라는 표현은 잘못이라고 취소했다. 그러나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한 말이 실수로 나왔는지, 변호인이 마음속으로 그렇게 인식해서 나왔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후자라면 적어도 국회 측이 듣기에 헌재가 민주당 측에 내란죄를 빼는 게 좋겠다고 힌트를 준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다. 제3자 지위에 있는 심판관인 헌재가 어느 한쪽에 유리한 듯 여겨지게 한 모습 자체가 헌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 밖에도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리 과정에서 신속한 결정을 앞세워 절차를 너무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증인 한 명당 질문·답변 시간을 일률적으로 90분으로 제한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했다는 지시가 사실인지는 국헌 문란 목적 여부를 가리는 핵심 쟁점이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에 대해 충분한 심리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 심판에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 재판처럼 증거를 엄격히 살피고 당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헌재는 과연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나? 헌재 심리 과정에 공정성이나 중립성에 실질적인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 심리 절차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지면 공정성과 중립성을 의심받기 쉽다. 재판은 실제로도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겉모습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은 사법 윤리의 기본이다. 탄핵 찬반 흥분과 열기, 더 폭발할 수도 헌재를 비롯한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린다.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나 행정부와 다른 점이다. 선출된 권력은 국민에 의해 선출됐다는 사실 그 자체로 정당성을 확보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는 국민이나 다른 국가기관이 사법부의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고자 할 때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사법부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려면 무엇보다 사법부 결정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헌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헌재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르게 되기가 어렵다. 종국에는 ‘이런 헌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생겨날 수 있다. 헌재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갈등 해소라는 본연의 역할도 할 수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탄핵 찬성과 반대로 쫙 갈라져 있다. 친구나 직장 동료 사이는 물론 가족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찬반 양쪽 모두 흥분과 열기에 가득 차 있다. 이 흥분과 열기를 가라앉히려면 헌재가 갈등 해소라는 제 기능을 다해야 하고 그러자면 무엇보다 국민 신뢰를 받아야 한다. 헌재에 대한 높은 불신을 지켜보면서 탄핵 심판 결정이 흥분과 열기를 식히는 게 아니라 더 뜨겁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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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윤석열 수사로 드러난 법의 허점들…재정비 안 하면 사법 신뢰는 요원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현행 법 곳곳에서 허점과 구멍이 드러났다. 이 허점과 구멍은 윤석열 대통령 수사와 체포 및 구속 과정에서 숱한 적법절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라 전체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치르지 않아도 될 홍역을 치르게 했다. 그 허점을 보완하고 구멍을 메워 온전한 법 체계를 이루는 게 우리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허점과 구멍이 가장 많이 드러난 법은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대표적인 게 검찰과 공수처의 업무 관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번에 서울중앙지검은 공수처로부터 윤 대통령 내란 혐의 사건을 넘겨 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에 윤 대통령 구속 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을 기소하려면 공수처 수사 자료만으로는 부족하고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법원은 구속 기간 연장 신청을 기각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그랬다. 공수처와 검찰 업무 분담 모호 법원은 기각 이유로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는 명시적 규정이 공수처법에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법원이 공수처법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이 생긴 이유는 공수처법 규정의 허점과 구멍 때문이다. 공수처법 제26조는 공수처 검사가 사건을 수사한 뒤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지체 없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송부하고, 이 경우 서울중앙지검은 ‘공수처장에게 해당 사건의 공소 제기(기소를 의미) 여부를 신속하게 통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소 제기 여부를 신속하게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의 의미다. 법원은 이 규정을 검찰이 보완 수사 과정 없이 공수처 수사 자료에 근거해 기소 여부를 신속히 결정한 뒤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반면에 검찰은 필요하면 보완수사를 하고 그걸 토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한 뒤 그 내용을 공수처에 신속히 통보하면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검찰의 보완 수사권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처럼 현행 공수처법은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 검찰에 보완 수사권이 있는지 없는지가 모호하다. 이는 경찰의 경우와 대비된다. 경찰도 공수처처럼 범죄 사건을 수사한 뒤 검찰에 넘긴다. 이 경우 검찰은 넘겨받은 사건을 자체적으로 보완 수사할 수 있고 필요한 때는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게 형사사소송법의 규정이다. 그런데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자체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는지, 공수처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것이다. 검찰과 공수처의 보완 수사에 관한 애매한 관계가 문제된 것은 윤 대통령 경우뿐이 아니다. 공수처는 15억8000만원 뇌물 수수 혐의로 감사원 3급 공무원을 수사해 2023년 11월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2024년 1월 ‘수사가 불충분하니 추가 수사하라’며 사건을 공수처에 다시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공수처는 ‘검찰이 자체 보강 수사를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하라’며 사건 받기를 거부했다. 이 바람에 공수처와 검찰 간 ‘사건 핑퐁’이 300일 넘게 이어졌다. 결국 검찰은 ‘언제까지 사건을 방치할 수 없다’며 직접 보완 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불구속 사건이라 구속 기간 연장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서울중앙지법 해석대로 공수처가 넘긴 사건에 대해 검찰의 보완 수사권이 없다면, 검찰은 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셈이 된다. 공수처 수사권 범위 어디까지 공수처 수사권도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공수처법에는 각각 경찰, 검찰, 공수처의 수사 대상 범죄가 규정돼 있다. 경찰은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검찰은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 중 특정 범죄(직권남용, 뇌물 등등)만 수사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내란죄 수사는 경찰만 할 수 있다. 검찰도, 공수처도 할 수 없다. 다만 검찰이나 공수처는 각자 법에 정해진 범죄를 수사하다가 그와 밀접히 관련된 범죄가 드러나면 이를 수사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번에 공수처는 이 규정을 근거로 윤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수사하다가 그와 관련된 범죄인 내란죄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은 내란과 외환죄를 빼고는 재직 중 소추할 수 없게 헌법에 규정돼 있다. 소추란 엄밀히 말하면 기소를 뜻하지만 넓게 봐서 수사도 포함한다는 해석도 많다. 즉 현직 대통령은 내란, 외환죄를 빼고는 기소는 물론 수사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수처가 애초 윤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수사한 것은 불법이고, 직권남용죄와 관련된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한 것도 당연히 불법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 수사권을 거부하면서 경찰이 수사한다면 응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비상계엄 직후 윤 대통령 내란 혐의를 수사하다가 공수처의 이첩 요구에 따라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다. 내란죄 수사권 시비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뜨거운 감자’라 여겨 공수처 요구에 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는 수사권 논란 우려를 예상하지 못한 채 이번 사건을 현직 대통령을 구속해 공수처 위상을 높일 기회로 여겨 사건을 넘기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 경찰에 맡겼다면 적법절차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든 공수처이든 ‘관련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좀 더 명확하게 고칠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내란죄와 관련해 수사권 논란이 불거졌지만,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검찰과 공수처 사이의 업무 관계나 공수처 및 검찰 수사 대상의 애매성 같은 문제는 문재인 정부 때 검수완박을 내세워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인 탓이 크다. 지금껏 없던 국가 수사기관을 만들면서 검찰 권한을 줄이는 데만 급급해 졸속으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졸속 입법의 후유증을 지금 겪고 있는 것이다. 구치소 수감 피의자 강제 구인 가능한가 구치소 수감 피의자의 강제 구인 문제도 논란이 됐다. 공수처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 대통령이 공수처 소환 요구에 불응한다고 몇 번이나 구치소로 찾아가 윤 대통령을 강제 구인하려고 했다. 공수처 수사실로 강제로 끌고오려 한 것이다. 공수처가 수사를 거부하는 피의자를 굳이 강제 구인하겠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강제 구인할 권한이 있느냐이다. 공수처는 과거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구속된 피의자를 구치소에서 강제 구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강제 구인할 수 있는지에 관한 명시적 법 규정은 없다.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을 두는 게 적법절차 논란을 없애기 위해 필요하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과정에서는 판사가 특정 법 조항의 적용을 임의로 배제할 권한이 있는지가 논란이 됐다. 형사소송법 제 110조와 111조는 ‘군사상·공무상 비밀 장소는 책임자 또는 기관 승낙 없이는 수색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서부지법 영장 담당 판사는 공수처가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이 두 개 조항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영장에 기재했다. 이 때문에 판사가 월권을 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사위 현안 질의답변에서 “그 당시 영장판사는 주류적인 견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 처장은 “형사소송법 주석서를 비롯해 다수 학설도 ‘물적 압수수색과 인적 체포 수색을 달리 취급하는 것이 맞다’는 견해로 알고 있다”며 이같이 답했다. 증거물을 압수수색하는 경우와 달리 피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할 때는 군사상·공무상 비밀장소라도 책임자 또는 기관의 승낙 없이도 압수 수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판사가 영장에 이런 취지의 내용을 기재했다고 해서 월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판사의 특정 법 조항 적용 배제 월권 논란 그렇다면 이런 해석을 법 조항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게 옳다. ‘군사상·공무상 비밀 장소라도 피의자를 체포하기 위한 목적일 때는 영장에 기재가 있으면 책임자 또는 기관 승낙 없이도 압수 수색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런 예가 있다. 형사소송법 제126조는 ‘압수수색 영장에 야간 집행을 할 수 있다는 기재가 없으면 야간에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야간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판사가 영장에 ‘야간에도 집행할 수 있다’고 기재하면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법에 명시하면 적법절차 논란을 피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논란이 된 법적 문제는 많다.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할 때 헌법 상의 대통령 권한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는지, 국정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도 범위 내에서 행사해야 하는지가 그 하나이다. 국회가 대통령 대행 국무총리를 탄핵 소추할 때 의결 정족수가 대통령과 같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인지, 일반 공무원대로 2분의 1인지도 논란이 됐다. 국회의장이 국회를 대표해 정부나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때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지도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이라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헌재 결론은 ‘무엇이 위헌이다 또는 위헌이 아니다’를 결정하는 것이지, ‘무엇이 최선이다’라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나오든 합헌 결정이 나오든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는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다. 윤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현직 대통령이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후진국가인 것처럼 세계에 비쳤다. 정치적 혼란과 갈등이 극에 달했다. 사법부는 물론 법 자체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했다. 이 모든 일이 법 규정의 허점과 구멍으로 인한 적법절차 논란에서 빚어졌다. 이대로 가면 사법 불신, 법치 불신은 피할 수 없다.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위상도 되찾을 수 없다. 하루 속히 법 정비에 나서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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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탄핵 인용도 기각도 설득력이 문제
지금 한국을 통치하는 기관은 헌법재판소이다. 대통령 운명을 비롯해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많은 일들의 향방이 헌재 결정에 달려 있다. 헌재가 지금처럼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떠맡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헌재 결정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탄핵 찬성파도, 반대파도 승복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느냐가 핵심이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사건들을 심리하거나 심리를 앞두고 있다. 지난 3일 기준으로 탄핵 심판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 사건을 비롯해 무려 10건이나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최재해 감사원장,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지호 경찰청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조상원·최재훈 검사 사건이다.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까지 탄핵 심판대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다. 정치 무능을 헌재가 떠안아 탄핵 심판뿐이 아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의 탄핵 소추 정족수가 일반 공무원대로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인지 대통령처럼 3분의 2인지, 한덕수 대행이나 최상목 대행의 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헌재 재판관 임명을 보류한 것이 위헌 또는 국회 권한 침해인지도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대통령 탄핵 심판은 익숙한 풍경이다. 이미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탄핵 소추 정족수나 헌재 재판관 임명 보류 같은 사건은 이번에 처음 접하는 것들이다. 과거에 없던 사건들이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정치가 유례없는 분쟁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고 헌재가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증거이다. 헌법재판소가 정치 갈등의 중심에 선 지금의 현실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정치에서 생긴 문제를 정치 스스로 풀지 못하고 사법부에 떠넘겨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이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를 통한 협상과 타협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실패하고 실종됐다는 징표이다.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법에 의한 갈등 해결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이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나눈다. 패자와 승자의 상생은 없다. 형사 재판에서 결론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다. 탄핵 심판에서도 탄핵 인용 아니면 기각이다. 그 중간은 있을 수 없다. 패자의 마음속에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정치에 의한 해결은 ‘서로 주고 받기’식이다. 나도 양보하고 상대도 양보한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나누지 않는다. 그러니 패자 마음속에 앙금이 남을 일도 거의 없다. 법에 의한 해결보다 진정한 화합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에서 생긴 문제를 사법부에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진화의 한 모습이다. 헌재가 정치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선 현실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주당 "내란죄 철회" 조기 대선 의식? 다만 헌재가 정치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측면도 있다. 그만큼 법치주의가 성숙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법치주의는 정치 갈등과 분쟁을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방식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공산당 독재국가는 물론이고 과거 우리의 유신체제나 전두환 독재 체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기무사 같은 정보기관에서 정치인들을 그냥 잡아가 협박하고 고문까지 했다. 무법천지였다. 지금은 이런 방식이 통할 수 없다. 법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됐다. 헌재의 탄핵 심판은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이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놀라면서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평화적으로 수습하는 방식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문제는 법치주의에 의한 갈등 해결이 패자의 마음속 앙금을 풀 만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냐이다. 정당성은 절차와 내용 모두에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가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대상에서 내란죄 부분을 빼는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측은 지난 3일 탄핵 심판 대상에서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당초 민주당 주도로 작성한 탄핵 소추안에는 탄핵 사유로 ‘내란죄’가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이를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행위가 헌법에 위반하는지만 따지고 내란죄에 해당하는지는 따지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민주당은 내란 혐의의 핵심이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인 만큼 실질적인 탄핵 사유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내란죄가 2대 탄핵 사유였는데 이제 와서 내란죄를 뺀다면 당초 국회의 탄핵 소추 결의가 무효가 된다며 국회 탄핵 결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핵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 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제외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을 기망하는 처사”라고 했다. 국회측 대리인은 내란죄 주장 철회 이유를 ‘탄핵 심판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국정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서는 대통령 탄핵 심판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 내란죄 여부를 따지려면 많은 증인을 헌재 법정으로 불러 심문해야 해 심판 기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탄핵 심판 종료 시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 시점과 맞물려 나라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대표 선고가 나오기 전에 탄핵 심판을 끝내고 조기에 대선을 치르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탄핵 심판을 되도록 빨리 끝내려고 내란죄 주장을 철회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내란죄 주장 철회는 법 논리로나 현실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로나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법에 탄핵 사유 철회에 대한 명문의 규정은 없고, 이 부분은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내란죄 주장을 탄핵 사유에서 철회해도 되는지는 재판부가 판단한다는 말이다. 헌재가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어느 쪽 주장을 받아들이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를 많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헌재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그 결과 역시 패자 쪽에서는 승복하기 어려워진다. 마음속에 앙금을 품게 된다. 패자 마음에 앙금 남으면 화합 요원 탄핵 심판 과정에서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선포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헌재 법정에 출석해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KBS, MBC,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은 대략 26%, 찬성하는 여론은 70% 수준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탄핵 소추 남발 같은 국정 방해의 방지가 계엄 선포보다 더 큰 문제라고 여긴다. 대통령이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게 이들의 정서이다. 물론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어떤 수단이든 용인될 수는 없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정 방해 사태의 해결이라는 계엄 선포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는지, 인정된다면 계엄 선포라는 수단이 적절한지를 따지게 된다.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 및 적절성 여부에 대한 헌재 결정 이유를 탄핵 찬성파이든 반대파이든 마음으로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이 부당하다면 왜 부당한지, 목적은 정당하지만 계엄 선포라는 수단이 부적절하다면 왜 부적절한지, 나아가 목적도 부당하고 수단도 부적절하다면 왜 그런지를 탄핵에 반대하는 ‘26%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도 적절해서 탄핵 대상이 안 된다면 왜 그런지를 탄핵에 찬성하는 ‘70%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년 ~ 1679년)는 ‘법은 입이 없다.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할 뿐이다’라고 했다. 법에는 허점도 있고, 구멍도 있고, 불명확한 것도 있다. 그래서 항상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 허점과 구멍과 불명확성을 채워 넣고 명확하게 하는 건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해석과 적용에 따라 법의 의미가 달라진다. 즉 ‘무엇이 법인지’가 결정된다. 이게 홉스의 말에 담긴 뜻이다. 법 규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헌재 재판관은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탄핵 심판을 통해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게 된다. 그 선언을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이든 찬성하는 국민이든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화합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패자의 마음속에 앙금이 남는다. 법치주의는 효용성을 잃고 갈등과 대립은 지속된다. 탄핵 심판에 임하는 헌재 재판관들의 ‘입’을 주목하는 이유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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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윤석열 탄핵 심판도 이재명 선거법 재판도 '법대로'가 해법
우리 역사상 지금처럼 사법부가 정국 혼란과 갈등 수습의 중심에 선 적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심판’을 다루고 있고, 법원은 ‘이재명 선거법 사건 재판’을 다루고 있다. 헌재와 법원이 각자 언제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정국은 물론이고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법부의 올바른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그 결정의 기준은 다름 아닌 법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이 대표 공직선거법 재판 선고 시점은 대선 구도를 뒤흔들 최대 변수이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나와 대통령이 궐위되면 그날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이 실시된다. 이 대표가 대선일 전에 대법원에서 선거법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민주당으로선 이른 시일 안에 대선이 실시되도록 탄핵 결정은 최대한 앞당기고, 선거법 판결은 대선 이전에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늦추는 게 유리하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당선되면 선거법 재판은 중단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 결정은 최대한 늦추고 선거법 유죄 확정 판결은 최대한 앞당겨 대선 실시 전에 이 대표가 피선거권을 잃도록 하는 게 유리하다. 지금 나라는 이처럼 계산을 달리하는 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한쪽에선 탄핵심판 빨리 하라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선 이 대표 재판 빨리 하라고 외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재판소에 “윤 대통령 파면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일부 의원은 ‘내년 2월까지 탄핵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시점까지지 못 박아 주장한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부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서 국민의힘은 “사법부는 민생과 국가질서를 위협하는 범죄 사건에 대해 법률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흔들림 없이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며 “지난 11월 15일 1심 선고가 나온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법 규정대로 (1심 선고일로부터 3개월인) 내년 2월 15일까지 2심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합리적으로 푸는 방법은 법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두 시간 반 만에 평화적으로 무효화하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라는 헌법 절차를 따른 덕분이다. 탄핵 심판과 선거법 재판을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법 절차를 따르면 된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권력은 법의 제한을 받는다. 이게 법치주의이다. 대통령 탄핵은 청구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기각 또는 인용 결정을 내리도록 헌법재판소법에 정해져 있다. 헌재는 과거 사례에서 이 같은 법정 기한을 지켰다. 탄핵심판 청구 때부터 기각 또는 인용 결정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개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3개월 만에 끝냈다. 헌재는 지난 16일 이미 청구된 다른 탄핵 사건보다 최우선적으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당연한 일이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 청구된 사람에 대해 탄핵 사유와 같은 이유로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일 때 피청구자가 원하면 형사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탄핵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게 돼 있다. 실제로 ‘고발 사주 의혹’으로 탄핵이 청구된 손준성 검사장의 경우가 그랬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기소되면 탄핵 심판 절차 정지를 신청할 수도 있다. 헌재가 이를 받아들이면 절차가 정지된다. 그러나 그 경우 대통령직 공백 상태가 지속돼 국정 혼란과 불안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 헌재가 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게 중요하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27일 첫 번째 탄핵심판 변론 준비 기일을 열기로 했다. 변론 준비 기일이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청구한 국회와 탄핵 청구를 당한 윤 대통령이 주요 쟁점과 증거 등을 정리하는 절차이다. 준비 기일은 양측 주장에 따라 앞으로 몇 차례 더 열릴 수 있다. 준비 기일 절차가 끝나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간다. 헌재는 지난 16일 윤 대통령에게 탄핵 심판 서류를 여러 경로로 보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서류를 수령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류가 송달되지 않으면 27일 첫 변론 준비기일을 비롯해 탄핵심판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서류를 끝내 수령하지 않을 경우 법에 정해진 다른 송달 절차를 밟아서라도 탄핵 심판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 대표 선거법 2심(항소심) 재판도 서류 송달 문제로 지체되다 겨우 진행되게 됐다. 서울고법은 소송기록 접수 통지서를 지난 9일과 11일 이 대표에게 우편으로 발송했지만, 이사를 갔거나 집이 닫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송달되지 않았다. 이에 법원은 집행관을 통해 인편으로 이 대표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 등에 서류를 전달했고 지난 18일 이 대표의 의원회관 사무실 비서관이 서류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이라는 제목 아래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前審·1심과 2심을 의미)의 판결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 이를 흔히 ‘6·3·3법’이라고 한다. 법 조항에 ‘강행 규정’이라는 제목을 단 사례는 거의 없다. ‘반드시’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사례도 드물다. 그러나 이 조항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 대표도 2022년 9월 기소된 뒤 2년 2개월 만인 지난 11월 15일에야 1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270조 규정을 ‘훈시 규정’으로 여겨 왔다. 훈시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강행 규정이 아니라 가급적 지키라는 가이드라인이라는 의미다. 법 조항 제목이 ‘강행 규정’이라고 돼 있는데도 훈시 규정으로 여기고 지키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9월 선거법 위반 재판과 관련해 '선거법 강행규정을 지켜달라'는 권고문을 일선 법원에 보냈다. 법원행정처의 조치는 “법원부터 선거 재판 기간을 규정한 선거법을 지켜야 한다”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평소 지론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조 대법원장은 “공직직선거법에 명문화된 6·3·3 규정을 법관이 훈시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법 해석이다. 문언대로 ‘강행규정’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 선거법 사건 재판이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는 재판부 의지에 달려 있다. 대법원은 2002년 6월 25일 재판부 의지와 관련해 큰 의미를 갖는 판결을 했다. ‘항소심법원이 일정한 선고기일을 염두에 두고 공판기일을 정하여 진행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자의적인 재판 진행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 판결이다. 재판부가 선고 기일을 머릿속에 정해 두고 이에 맞춰 재판을 서둘러 진행해도 문제 없다는 뜻이다. ‘270조 규정을 최대한 준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결대로 이 대표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 기일을 미리 정해 놓고 이에 맞춰 재판 절차를 서둘러 진행하면 법정 시한인 내년 2월 15일 이내에 판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2심 뒤 열릴 대법원 재판도 마찬가지로 내년 5월 15일 이내에 마칠 수 있다. 만약 윤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실시되고 그때까지 이 대표 선거법 재판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자체가 정국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낙선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당선되면 큰 혼란이 따를 수 있다. 재판이 지연되지 않았다면 유죄 판결이 확정돼 이 대표는 대선 출마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었는데 재판이 지연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는 반발과 비판 여론이 비등할 수 있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직선거법 270조의 6·3·3 규정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나라가 조속히 안정과 질서를 되찾느냐, 계속 혼란과 갈등에 빠지느냐가 사법부 결정에 달려 있다. 권력 눈치를 보거나 권력에 영합한다면, 그래서 법치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혼란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온 국민이 사법부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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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탄핵 정국 대립 핵심 요인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 셈법 차이
‘즉각적인 직무 정지’와 ‘질서 있는 조기 퇴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자 윤석열 대통령 퇴진 해법으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탄핵을 통한 대통령직 배제를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아직 명확한 방법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을 거론하고 있다. 두 당은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려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명분이다. 그러나 그 명분 뒤에는 차기 대권 싸움에서 서로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각자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계산이다. 그 계산의 차이가 탄핵 정국 해법을 두고 민주당과 국민회의가 대립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즉각적인 직무 정지는 민심 호응을 명분으로 한다. 이번 계엄 선포는 헌법에 정해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선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헌법 제77조 ③항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특별 조치 대상에 국회는 빠져 있다. 그럼에도.국회에 군인을 출동시켜 국회 활동을 막으려 하고 계엄 포고령 제1호에서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려 했다. 이런 행위는 내란죄에 해당하고 내란죄 혐의를 받는 사람이 대통령직을 유지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게 민심이다. 민주당은 '민심 호응', 국민의힘은 '혼란 방지' 앞세워 윤 대통령은 식물인간 상태다. 국정 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속히 직무에서 배제하는 게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시급하다. 이 역시 민심이고, 즉각적인 직무 정지라는 민주당 주장의 명분이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은 혼란 방지를 명분으로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탄핵은 실제로 (국회에서)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불확실성이 상당한 기간 진행된다”며 “그 과정에서 극심한 진영의 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탄핵은 헌재 결정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시점과 결과가 불확실해 혼란을 야기한다. 그래서 일정 시점을 지정하고 그때에 맞춰 조기 퇴진하는 것이 국정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한 대표 주장이다. 한 대표는 탄핵에 버금가는 즉각적 직무 정지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무총리가 국정 운영을 직접 챙기고 대통령은 뒤에 물러나 있게 하면 된다고 했다. 대통령이 궐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무총리가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야당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국정농단 상황에서 우원식 현 국회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총리에게 전권을 맡겨라’고 말했다. 그때 그 솔루션(해법)을 나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자 명분을 앞세워 자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명분이 전부는 아니다. 그 뒤에 깔린 계산을 봐야 양측의 속내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민주당은 가능한 한 빨리 윤 대통령을 퇴진시키려 하고 국민의힘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리를 유지하게 하려 한다. 왜 그럴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문제를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李 사법 리스크' 현실화 막으려 이 대표는 지난 11월 15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만약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이 대표는 피선거권이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문제는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대표 입장에서는 대법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선을 실시하는 쪽이 유리하다. 그러자면 대선 날짜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그 방법이 탄핵이다. 국회 탄핵안 가결에서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은 3개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개월 걸렸다. 대통령이 궐위되면 헌법 제68조 ②항에 따라 그로부터 60일(2개월) 이내에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헌재 탄핵 심리에 걸리는 기간 2~3개월과 탄핵 결정 뒤 보궐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기간 2개월을 합치면 앞으로 늦어도 4~5개월 이내에 대선이 실시될 수 있다. 이 기간 내에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윤 대통령 탄핵이 헌재에서 결정되면 법원은 비상한 정치 상황을 맞아 이 대표 재판을 연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 전까지 대법 판결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대법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이 대표는 피선거권 제한을 받지 않아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지금 분위기로는 이 대표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볼 것이다. 이 대표가 당선되면 대통령 임기 동안 재판은 중단될 것이다. 이게 이 대표가 바라는 최상의 상황일 것이다. 민주당이 ‘매주 탄핵안 발의’라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데는 이런 ‘시간 싸움’의 고려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 국민의힘 계산은 이와 정반대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이 대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대선을 실시하는 게 유리하다고 볼 것이다.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면 이 대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다른 대선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이 대표 말고 다른 후보가 나오면 국민의힘은 승산이 있다고 볼지 모른다. 이런 상황을 노려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현실화하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들에게 “이대로 당장 대통령을 탄핵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할 수 없다”고 했다. 박정훈 의원은 SNS에 “이재명 대표가 법의 심판을 받을 때까지 현 정부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며 “대통령 탄핵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썼다. ‘탄핵=이재명 정권 등장’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민주당이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최대한 피하려는 반면에 국민의힘은 이를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 민주당이 즉각적인 직무 정지를, 국민의힘이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서로 다른 셈법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희망 사항에 빠져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면 헌법재판소에서 반드시 탄핵 결정이 날 것으로 전제한다.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기각될 수도 있다. 만약 기각되면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고 조기 대선은 물 건너 간다. 대선은 윤 대통령 임기 종료 뒤인 2027년 3월에야 실시된다. 그 안에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건 확실하다. 그리 되면 이 대표는 대선 출마 꿈을 접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대법원에서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에 유죄가 확정될 것으로 전제한다. 이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 무죄가 나오면 이 대표의 대선 행보에는 거칠 게 없어진다. 아무리 대선을 늦춰도 이 대표 출마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희망 사항에 근거해 자신만의 탄핵 정국 해법에 몰두할 일은 아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서로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상대방 입장에서 해법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여야, 제3의 해법 찾을 수 있을 텐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집단 불참으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폐기되자 탄핵 의결이 될 때까지 매주 본회의를 열고 탄핵 소추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집단 불참으로 탄핵안이 폐기됐으면 그것으로 일단 국회 절차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 의사는 탄핵 불발로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매주 탄핵안을 발의한다면 법이 아닌 힘으로 자기들 뜻을 관철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민주당의 매주 발의에 국민의힘이 집단 불참으로 맞서면 나라는 안정될 수 없다. 탄핵안 표결이 이뤄질 때마다 거리에는 탄핵 찬성 시위와 반대 시위가 벌어져 갈등과 혼란만 커진다.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해 반대하지 않고 표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회 운영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집단 불참도 의사 표시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이나 노란봉투법을 강행 통과시킬 때 표결에 집단 불참했다. 그때는 국민의힘이 표결에 참여해 반대한다고 해서 이들 법의 통과를 저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집단 불참은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에 항의한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탄핵안은 다르다. 국민의힘이 반대하면 탄핵안 통과를 막을 수 있다. 국민의힘이 참여해 부결시키면 민주당이 더 이상 탄핵안 발의를 되풀이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할 명분이 없다. 그럼 탄핵 논란을 끝낼 수 있다. 만약 그 뒤에도 민주당이 또 탄핵안을 발의한다면 그때는 국민의힘이 집단 불참으로 폐기시켜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탄핵안 통과를 막은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심판을 받게 될 수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활용이라는 계산에만 빠져 있지 않으면 의외로 탄핵 정국을 풀 해법이 나올 수 있다. 민주당은 탄핵안을 한 번만 더 발의하겠다고 약속하고,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지되, 탄핵안이 부결되면 민주당이 다시는 탄핵안을 발의하지 않기로 여야가 합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면 어떨까. 윤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에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구속될 수도 있다. 구속되면 물론이고 불구속 기소되더라도 그 즉시 대통령직 사퇴는 피할 수 없다.꼭 탄핵이 아니라도 직무 정지나 배제의 길이 열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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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법에 매달리는 윤석열ㆍ법을 무시하는 이재명…둘 다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에 매달려 이치를 무시하다 민심의 쓴맛을 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힘만 믿고 법을 우롱하다 법의 무서움을 맛봤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문제로 지탄을 받고,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게 그렇다. 법에만 매달리는 것도, 법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물론 문제의 성격이 다르긴 하다. 윤 대통령의 경우는 야당 공세와 비판 여론에 대한 대응이라는 정치력의 문제이다. 반면에 이 대표의 경우는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기본 원칙의 문제이다. 그만큼 심각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여론 조사에서 부정적 평가 요인으로 빠지지 않는 게 김 여사 문제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 여사 문제는 최근까지 5주 연속 부정 평가 최상위를 차지했다. 지난 12~14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직무수행의 부정 평가 이유로 ‘김건희 여사 문제’(16%)가 1위로 꼽혔다. ‘경제/민생/물가’(13%), ‘소통 미흡’(7%) ‘경험·자질 부족/무능함’ (이상 6%)을 훨씬 앞섰다. 민심보다 법을 앞세우는 윤 대통령 대응방식의 대표적 사례가 검찰의 김건희 여사 방문 조사 특혜 논란이다. 검찰은 김 여사의 도치이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하지 않고 경호처가 제공한 외부 장소에서 조사했다. 검찰의 김 여사 무혐의 판단 못지않게 방문 조사도 큰 논란거리가 됐다. 김 여사 방문 조사 특혜 논란에 '특혜 아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저도 검사 시절에 전직 대통령 부인, 영부인에 대해 멀리 자택까지 직접 찾아가서 조사를 한 일이 있다”고 했다. “(검찰) 조사 방식은 정해진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하는 거면 (검찰청사에서 조사를) 하겠지만, 모든 조사는 원칙적으로 임의조사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조사 방식, 장소를 정할 수 있다”고 했다. 방문 조사가 특혜가 아니라는 말이다. 법적으로야 윤 대통령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말이다. 많은 국민들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일수록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하물며 대통령 부인에게는 더 말할 게 없다. 검찰이 스스로 김 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하는 결정을 하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검찰청사로 소환해 조사하라고 할 수도 있었다. 대통령 부인이라도, 아니 대통령 부인이기에 더욱더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이게 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래서 김 여사가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서고 기자들 질문을 받고 나아가 ‘물의를 일으켜 국민께 죄송하다’고 했더라면 김 여사를 향한 민심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두고두고 국정의 발목을 잡히게 되지는 않았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른바 ‘명품 백’ 사건에서도 민심을 놓쳤다. 윤 대통령은 법률 전문가이니 내심 김 여사가 무죄라고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눈은 다르다. 다수 국민들은 대통령 부인이 덥석 선물을 받는 것은 법적 유·무죄를 떠나 잘못이라고 여긴다. 대통령 부인이라면 처신이 일반인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민심이다. '명품 백'사건, 진작 딱부러지게 사과했어야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김 여사를 감싸고 도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이 지난해 11월 처음 터지고 나서 3개월이 지난 올해 2월에서야, 그것도 ‘특별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입을 열었다. 시기와 방식도 문제이지만 내용은 더 큰 문제였다. 사과나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백을 건네 준 최재영 목사가 사무실로) 자꾸 오겠다고 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고만 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며 인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몰카에 의한 정치 공작’이라는 말도 강조했다. 사과보다는 변명에 가까운 말들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사건 초기에 스스로 나서서 ‘대통령 부인으로서 선물을 받은 것은 그 경위야 어떻든 명백히 잘못한 일이다. 이 점에 대해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 사건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즉각 사과하지 않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윤 대통령 내심의 법적 판단도 결코 작지 않은 요인이 됐을 것이다. ‘법적으로 무죄인데 뭐가 그리 큰 문제냐’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실제로 언론 보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도 있었다. 김 여사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윤 대통령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을 때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는 보도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중대한 실책이 없는데도 여론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국면 전환 인사나 조치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안다.” 법적 판단을 민심에 따른 판단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지난 15일로 예정된 공직선거법 1심 판결을 앞두고 대규모 거리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김 여사 특검 촉구라는 등의 명분을 댔지만 1심 판결을 앞둔 세 과시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민주당 내 몇몇 조직들이 모두 나서 이 대표 ‘무죄 촉구’ 시위를 하거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대표 열렬 지지자들은 ‘이 대표 무죄 탄원 100만명 서명 운동’을 벌였다. 일부 의원은 법원이 유죄 판결을 하면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무죄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법정에서만 할 수 있다. 법정 밖에서, 그것도 대규모 집회와 시위, 서명을 통해 주장하고, 게다가 탄핵까지 운운하면 법원에 대한 겁박이 될 수밖에 없다. 무죄를 선고하라고 판사를 협박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행위는 재판의 근본을 해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간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 대표 무죄' 시위, 재판의 근본 훼손 민주법치국가에서 재판의 근본은 ‘자유심증주의’이다. 어떤 증거를 유죄 증거로 볼지, 무죄 증거로 볼지는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긴다는 말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법관도 신이 아닌 이상 유·무죄 판단을 잘못할 수 있다. 유죄를 무죄로, 무죄를 유죄로 오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기는 이유는 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법관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압력을 받지 않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게 여러가지 재판 제도 중 가장 낫다는 인류의 오랜 경험과 전통에 의한 것이다. 그 대신 3심 제도나 재심 제도 등 오판을 최대한 막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 법원이 이 대표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인정해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이 대표와 민주당은 법원이 검찰의 억지 주장만 받아들여 유죄 판결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 측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 주장을 반박하며 무죄라는 주장을 수없이 폈다. 판사는 양측 주장을 다 듣고 나서 이 대표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어느 쪽 증거가 더 타당한지는 판사의 자유 판단에 따른다는 자유심증주의에 의한 판결이다. 이 대표가 자유심증주의를 존중한다면 앞으로 2심에서 자기한테 유리한 새로운 증거를 내세워 판사가 무죄 심증을 갖도록 하면 된다. 그게 법 절차를 지키는 길이다. 그러지 않고 법원을 향해 무죄 압박 시위를 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훼손하는 일이다. 판사에게 양심껏 하지 말고 민주당 힘을 보고 재판하라는 말이다. 검은 것을 희다고 하라는 말이다. 이 어찌 재판의 근본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민주당은 이 대표 수사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국회에서 청문회를 여는 등 법석을 떨었다. 이 대표를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를 보복하려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사가 정말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면 탄핵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표를 수사하고 기소했다는 이유로 탄핵 운운하는 것은 힘을 앞세워 법을 우롱하는 또 하나의 법치 무시일 뿐이다. 명백한 위법 없는데도 수사 검사 탄핵 추진 민주당은 검찰이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자 수사를 지휘한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탄핵 소추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다 취임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이 사건을 지휘할 수 없었던 검찰총장까지 탄핵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의 반박에 밀린 듯 검찰총장은 탄핵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장 등 간부 3명 탄핵은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검사가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할 때 무혐의 처분하는 것은 합법적 권한 행사이다. 그 판단이 반드시 옳은 판단이었느냐 하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합법적 권한 행사인 이상 법 위반은 아니다. 따라서 탄핵 대상도 될 수 없다. 탄핵 추진은 법 무시 행위일 뿐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대놓고 법원을 겁박하고 법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국회 다수당이라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임을 모를 사람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무죄를 ‘확신’하고 ‘촉구’해도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법의 엄정함을 피해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1심 유죄 판결을 ’사법 살인’ ‘정치 재판’이라고 주장한다.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는 행위가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말이 있다. 억지는 이치를 못 이기고, 법은 권세를 못 이기고, 권세는 하늘을 못 이긴다는 뜻이다. 법을 앞세워 민심을 거스르는 윤 대통령은 억지가 이치를 못 이긴다는 말을,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는 이 대표는 권세가 하늘을 못 이긴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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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명태균 입'에 휘둘리는 한국 정치의 가벼움
, 명태균씨 소동을 보면서 한국정치가 얼마나 경박한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명씨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치권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공방을 벌인다. 특히 국민의힘은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명씨에게 했다는 ‘오빠’가 친오빠냐 윤석열 대통령이냐를 놓고 싸우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명씨 폭로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우리 정치가 휘말려들어야 하는가? 그 난리를 쳐야 하는가? 명씨가 언론 인터뷰나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폭로한 내용의 핵심은 그가 대선 전 윤 대통령 부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윤 대통령 부부에게 많은 정치적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명씨는 아크로비스타 306호 윤 대통령 자택에 “셀 수 없이 갔다”며 “제가 거기 연결이 된 거는 (2021년) 6월 18일”이라고 했다. 명씨는 “6개월 동안 매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여러 조언을 했어요. 가끔 낮에도 여러 번씩 통화했어요. 스피커폰으로 아침에 전화 오세요. 두 분이 같이 들으시니까.” ‘6개월’이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때인 2021년 6월~11월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명씨 폭로의 핵심 정리해 보니 명씨는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에도 조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때 대통령 내외분이 전화가 오셔서 말씀하시길래 오늘 그냥 입당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내외분이 ‘7월 30일’, ‘8월 3일’, ‘8월 6일’, ‘8월 15일’ 말씀을 해서 제가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입당하러) 가셨다”고 했다. 그는 “제가 말해서 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가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입당하신 거는 사실”이라고 했다. 명씨는 2022년 1월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결별 원인으로 꼽히는 ‘후보는 우리가 해준대로만 연기만 좀 해달라’는 김종인 위원장 발언도 자신이 한 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에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은 제로였으나 제가 얘기한 게 투자자, 배급사가 국민의힘이고, 감독이 누구냐, 김종인이며, 연출은 누구냐 이준석, 시나리오는 내가 짜줄게. 후보는 연기나 잘하시면 됩니다. 이거였다”고 했다. 명씨는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갈등을 빚을 때 자신이 나서서 중재를 한 듯한 주장도 했다. 명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카톡메시지 캡처본에 따르면, 명씨는 김 여사에게 “내일 준석이를 만나면 정확한 답이 나올 겁니다, 내일 연락 올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이에 김 여사가 “넘 고생 많으세요!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오(요) 제가, 난감 ㅠ”,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사과드릴게요”라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오빠’가 김 여사의 친오빠냐 윤 대통령이냐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대통령실이 설전을 벌였다. 명씨는 대선 당시 윤 대통령 부부를 만나 국무총리를 추천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이력서(서류심사)도 자신이 봤다고 했다. 명씨는 인수위(2022년 3월~5월) 때 김 여사가 자기에게 ‘인수위 인사들을 면접봐 달라’고 했다고 했다. 김 여사 '철없는' 행위는 개탄스럽지만 명씨의 폭로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풍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폭로가 사실이라면 우선 김건희 여사 처신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 기간 중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김 여사가 명씨를 통해 이 문제에 관여했다는 게 그 하나다. 아무리 대선 후보의 아내로서 남편을 돕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아내가 이처럼 남편 정치 문제에 관여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은 아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인수위 사람들 면접을 봐 달라’고 했다는 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김 여사는 대통령 당선자 부인이지만 사적 신분이다. 인수위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공식 기구이다. 사적 신분의 김 여사가 법적 공식 기구에서 일할 사람들 선발에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지칭하는 듯한 맥락에서 ‘철없이 떠든다’고 했지만 실제 ‘철없는’ 사람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서는 김 여사가 아닌가? 그러나 명씨 폭로가 전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김 여사 처신의 ‘철없음’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될 만한 게 뭐가 있는지 의문이다. 명씨가 대선을 전후해 윤 대통령과 자주 연락하며 조언을 했다는 게 문제가 되나? 선거판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명씨도 그런 사람의 하나일 뿐이다. 국정 개입이나 농단 같은 건 없어 윤 대통령이 명씨 조언의 일부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명씨 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을 들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문제라고 할 수 있나? 대통령 후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을 얼마나 가려들었는지는 후보의 안목이나 신중함의 문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비리나 불법 부당의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를 자주 만나고 조언을 했다는 시점은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대선 운동 기간이다. 모두가 윤 대통령 취임 이전이다. 정말로 문제가 된다면 명씨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에 개입하거나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불법 부당한 특혜를 줬을 경우이다. 그러나 명씨가 대통령을 팔아 이권에 개입하거나 검은 돈을 받았다는 등의 사실은 밝혀진 게 없다. 대통령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도 없다.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휘둘려 국정을 함부로 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정치는 명씨가 엄청난 비리나 불법, 국정 개입이나 국정 농단을 폭로하기라도 한 듯이 그이 입에 휘둘리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하면 할수록 대통령 부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은 커져가고 정권의 몰락은 앞당겨질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 부부와 명씨 사이에 정권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의혹이 있는데도 숨기고 있다는 투다. 지금까지 드러난 명씨의 폭로 중에 그렇게 의심할 만한 내용이 뭔가? 국민의힘은 정치 브로커의 활동을 막는 ‘명태균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치 브로커의 입을 어떻게 법으로 막을 수 있다는 건가. 명씨는 “아직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며 “대선 때 내가 한 일을 알면 모두 자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내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검사에게 '(나를 구속하면) 한 달이면 (윤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 감당되면 하라'고 말할 것”이라고도 했다. 자기를 구속하면 윤 대통령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내용보다 더욱 엄청난 내용을 폭로하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온 정치권이 난리 만약 명씨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20분의 19’를 전부 폭로하고, 거기에 정말로 윤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윤 대통령에게 엄정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으면 된다. 국민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나오기 전까지는, 더구나 그런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나 정황이 나오기 전까지는 명씨 입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 한 언론 표현대로 “거간꾼인지 협잡꾼인지 ‘듣보잡’ 인물”의 경박스러운 폭로에 휘둘리는 것은 그보다 더 경박스러운 일이다. 명씨가 여론조사를 조작하거나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명씨가 어떤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건 그것대로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명씨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는 것과 명씨 입에 휘둘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10월 16일 실시된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야당 후보를 큰 득표율 차이로 이겼다. 이 두 곳은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텃밭이라고 불린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명씨 소동이 하루도 그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국민들은 명씨 소동이 말 그대로 가십성 소동일 뿐 정부 여당을 심판해야 할 만한 사건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 아니겠는가? 국민이 정치권보다 더 사안의 본질을 바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 부부가 명씨 소동을 계기로 되돌아봐야 할 게 있다. 김 여사의 ‘철없는’ 처신이 갈수록 걱정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다. 김 여사는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 직후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한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57분간 통화했다고 이 인사가 밝혔다. 김 여사는 대선 때는 인터넷 매체 직원과 7시간 45분 동안 통화한 내용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팬클럽에 보내고, 친북 인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런 일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반복되니, 이러다 정말로 무슨 큰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닌가 가슴을 졸이게 하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 부부에게는 '쓴 약' 돼야 부인 일에 두루뭉술 넘어가기만 하는 윤 대통령의 엉거주춤한 자세도 되돌아 봐야 할 일이다. 윤 대통령이 그런 자세를 취하니 김 여사가 자기 처신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말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 이전과는 달리 스스로 사람을 가려서 만나고 조언을 구하는 신중함과 지혜를 잃지 않고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지난 4월 윤석열·이재명 회동을 앞두고 윤 대통령을 사적으로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는 사람들이 대통령 말을 미주알고주알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생기면 국민은 윤 대통령이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할 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신중함이나 지혜를 잃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명태균 소동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입에 쓴 약'이 돼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