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 논설고문
ngkim@ajunews.com
- 아주경제 논설고문
- 前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 前조선일보 논설위원
- [김낭기의 관점](건국의 재조명) ③대한민국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 1948년 8월15일 중앙청 앞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이 열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대한민국을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좌파 진영 일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친일·분단 세력이 세운 반쪽짜리 국가라며 정통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올해 8월 15일로 대한민국 수립 75년을 맞지만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여기는 일부의 역사 인식은 여전하다. 그 인식은 정치·외교·안보·경제·교육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분열과 대립의 씨앗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이다. 유엔은 1948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 해 5월 10일 북한을 제외한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유엔 감시 아래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 당시 38도선 이북 지역인 북한은 소련의 거부로 유엔이 감시하는 국회의원 총선거 실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실시하고 여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제정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세웠다. 유엔은 이렇게 출범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선언한 것이다. '친일파가 세운 남한 단독 정부'로 깎아내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유엔 결의문 내용을 자의석으로 해석한다. 이명박 정부 때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놓고 일부 국사학자들이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았다’는 구절 가운데 ‘한반도의 유일한’이라는 부분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감시 아래 선거가 실시된 지역은 38도선 이남뿐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 합법 정부가 아니라 38도선 이남인 남쪽 지역만을 대표하는 합법 정부라는 주장이다. 이들 주장대로 하면 38도선 이북의 북한 지역을 대표하는 합법 정부는 김일성이 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도 남한과 대등한 합법 정부가 되는 것이다. 사실 북한 공산주의 세력은 남한에 앞서 1945~1947년에 소련 주도 아래 단독 정권 수립 준비를 단계적으로 해왔다. 1945년 10월 28일 북한 정권의 ‘태아’라고 할 수 있는 5도행정국을 창설했다. 1946년 2월 8일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실질적인 공산 단독정부를 출범시키고 정규군인 ‘인민군’을 창설했다. 소련은 1947년 말에는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까지 정해 줬고, 1948년 2월에는 김일성 정권 수립에 사용할 헌법안까지 작성했다. 마침내 1948년 9월 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 헌법을 통과시켜 김일성 독재정권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다. 그럼에도 좌파 진영 측 인사들은 남한이 대한민국이라는 단독 정부를 세우는 바람에 ‘통일민족국가’ 수립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으면 남북 통일 국가가 수립될 수 있었을 텐데 대한민국이 태어나는 바람에 남북이 분단됐다는 식이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보는 인식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4월 4·3 사건 72주년 추념식에서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다"고 했다. 그는 "교과서에 4·3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임을 명시하고, 진압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적 수단이 동원됐음을 기술하고 있다"며 "뜻깊다"고도 했다. 4·3 사건은 남로당 제주도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해서 일으킨 무장 폭동을 군경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이다. 문 대통령이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고 한 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꿈꿨다는 말일 것이다. 4·3 사건에서 민간인 희생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한 남로당 행위는 비판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남로당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이승만 정권의 '국가 폭력'은 강조하면서 정작 남로당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았다. 일부 좌파 인사들이 유엔 결의문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하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친일파가 ‘미국 점령군’의 지원 아래 대한민국을 세워 일제시대 이래 계속 지배체제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인민’이 주인인 나라가 아니라 지주와 고위 관료 등 친일파가 주인인 나라라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을 반쪽짜리 분단 국가이자 친일파가 지배하는 국가로 보니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 빼라는 사람들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며 "분열의 역사" "패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 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인 2021년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고향인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찾아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으냐"라면서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 대표의 말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그러나 그런 인식의 연장 내지 반영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우리 사회 여러 부문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남북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지우며 이승만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게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추앙하기는커녕 분단의 원흉으로 몰아간다. 따지자면 김일성에게 분단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도 김일성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논란도 반(反)대한민국 역사 인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마련된 교과서 집필 기준에는 대한민국 체제를 ‘민주주의’로 기술했다. 이를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좌파 성향 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도 있고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진 말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중시한다. 사적 소유권이나 시장 경쟁 역시 자유주의 정신의 한 반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점과 함께 아무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도 국민 자유와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반면에 사회민주주의는 사적 소유권과 자유 경쟁을 제한하는 사회주의 실현을 이상으로 하되 공산당식 혁명적 방법이 아니라 민주적 선거를 통해 추구한다는 게 핵심이다.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이 추구하는 이념이다. 인민민주주의는 북한이나 중국이 주장하는 체제로서, 노동자와 농민 등 소위 ‘무산 계급’의 독재를 말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헌법 전문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정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좌파 진영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뭐겠는가?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미국식 이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니 자유민주주의도 부정적으로 보면서 민주주의로 하자는 건 아닐까? 더욱이 북한은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재산 많은 일부 계층이 노동자와 농민 등 다수의 무산 계층을 착취하는 체제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도 포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닌가. 반(反)대한민국 인식은 외교, 안보, 대북 관계에서도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으로 통일이 무산됐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제라도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주장은 대북 정책에서 압박과 제재보다 대화와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한미동맹보다 ‘우리민족끼리’를 앞세운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임기 내내 지상 과제처럼 추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6·25 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인 지난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세를 끝내고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태어나길 정말 잘 한 나라'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유엔사 주요 간부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유엔사는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은 지금도 유엔사를 한반도 적화 통일의 최대 걸림돌로 여기고 있다”며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는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도 회원국의 전력을 즉각적이며 자동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이것이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종전선언과 연계하여 유엔사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뤄지면 북한은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북한은 1980년 이후 ‘고려연방제’를 주장하면서 ‘선결 조건’으로 △국가보안법 철폐 △공산주의 활동 보장 △미국·북한 평화협정 체결 협조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내정간섭 포기 등을 내걸었다. 대북 압박과 대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보는 눈이 좌파와 우파 진영 간에 이렇게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한·미·일 공조 강화냐 북·중·러 관계 개선이냐를 놓고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 안보 문제를 둘러싼 이런 논란들도 그 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수립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이었고 축복에 가까웠는지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이 보여준다.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올랐고, k-팝은 전 세계 젊은이를 사로잡는다. 신생 독립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주기적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모든 시민이 맘껏 자유를 누린다. 이 모든 것은 ‘자유’와 ‘민주’를 동시에 추구한 자유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택했더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아니라 태어나길 정말로 잘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3-08-17 11:21:21
- [김낭기의 관점]정치를 '죽이는' 윤석열·이재명의 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연합뉴스) 정치는 말(言語)로 한다고 했다. 말로 따지고 협의하고 토론해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정한다는 뜻이다. 정치에서는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소통과 토론의 정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 대표의 ‘핵 폐수’와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발언이다. ‘핵 폐수’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가는 말이다. ‘킬러 문항 배제’는 핵심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모호한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 정치다운 정치가 행해지지 않거나 국정에서 혼란이 벌어지는 데는 이 대표나 윤 대통령의 적합하지 못한 말들에도 그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17일 인천 부평역 인근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규탄대회’에서 “사실 오염수도 순화된 표현”이라며 “(국민의힘이) ‘핵 오염수’라고 (말한 민주당 인사를) 고발한다니 앞으로는 아예 ‘핵 폐수’라 불러야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원전 오염수 투기는 최악의 방사능 투기 테러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핵 폐수', 오염수 문제 정치 논의 여지 차단 ‘핵 폐수’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 몸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방사능 테러’도 사람에게 절대로 행해져선 안 된다. 둘 다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핵 폐수나 방사능 테러라고 하는 순간 오염수 처리 문제는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 목숨을 앗아갈 문제인데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방류하느냐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조건 방류를 못하게 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면 오염수 처리 문제는 정치적 토론 테이블 위에 올려질 수가 없다. 정치에서 배제하고 차단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오염수 방류가 우리 해양과 수산물에 미칠 영향을 최대한 막으려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일본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두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게 정치다. 그러자면 오염수 처리 문제가 협상과 타협,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표 말대로 ‘핵 폐수’이고 ‘방사능 테러’라면 협상과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치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이 대표는 오염수 처리 문제에 관한 한 정치의 문을 굳게 닫아 잠근 셈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자 그 신뢰성을 부정하고 나섰다. ‘일본 맞춤형 보고서’ ‘일본 용역 보고서’라고 깎아내렸다.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오염수 방류 반대’를 주장하는 1박2일 농성도 벌였다. 우리 정부에도 비난을 퍼부었다. 이재명 대표는 IAEA 보고서를 ‘겸허히 수용한다’는 대통령실 발표를 두고 “혹세무민”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방치하는 정권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염수 투기 방조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대변인 그만하고 당당하게 반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염수 처리 문제에 관한 한 ‘윤석열 정권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판이니 민주당이 정부 여당과 머리를 맞대고 오염수 처리 문제를 논의할 여지는 없다. 정치로 풀 가능성은 없다. 이런 정치 배제 또는 차단 상황은 이 대표가 ‘핵 폐수’ ‘방사능 테러’라고 하는 순간 이미 굳어진 것이다. 정부는 이 대표의 ‘핵 폐수’ 발언에 대해 “이러한 단어 선택은 우리 국민들께 과도하고 불필요한 걱정과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걱정과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야 간 또는 오염수 처리 문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사람이나 단체들 사이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와 토론이라는 정치의 문을 잠가 버린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윤석열 '킬러 문장 배제', 핵심 빗나가 혼란 초래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발언은 국정 혼란을 부른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이주호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에게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대입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고 대통령실이 말했다. 이주호 장관도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 발언은 국어·수학·과학 등 여러 과목을 망라한 통합형 문제나 지나치게 어려운 ‘킬러 문항’을 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올해 수능은 ‘쉬운’ 수능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쉬운 물수능’ ‘어려운 불수능’ 논란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다음날인 16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어제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다시 설명했다.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므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쉬운’ 수능이 아니라 공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하는 ‘공정한’ 수능을 강조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쉬운’ 수능이 아니라 ‘공정한’ 수능을 말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다. 윤 대통령이 ‘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문항 등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지나치게 어려운 수능이 아닌 ‘쉬운’ 수능이 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쉬운’ 수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래 놓고는 쉬운 수능을 말한 게 아니라고 한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핵심을 말하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그게 아니라 이런 뜻’이라고 하는 게 문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6월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공정 수능을 강조한 것인데 민주당이 발언의 본질은 보지 않고 ‘물수능, 불수능’ 운운하며 국민 갈라치기와 불안감 조장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사안의 핵심을 외면한 채 지엽말단을 갖고 정쟁을 벌이는 것은 국정을 논하는 합리적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불명확한 발언으로 정쟁 빌미를 준 것도 잘못이다. 수능 개선을 통한 교육 개혁이라는 본질은 흐려지게 하고 엉뚱한 논란만 일으키지 않았는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공정한 수능에 대한 의지를 담은 지극히 타당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교육부가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하면서 혼란을 자초한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 말대로 교육부가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했다면 애초 교육부에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대통령실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말은 정치의 기본' 아리스토텔레스 지적 새겨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언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짐승들은 고통이나 쾌락을 나타내는 ‘소리’만 낼 수 있지 언어 능력은 없다고 했다. 언어 능력이 없으니 소통과 토론이 불가능하고 힘과 힘으로 싸우는 약육강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 능력이 있기에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표현하고 토론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짐승에게는 정치가 불가능하지만 인간에게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말을 통해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논의하고 토론하고 판단하는 것이 정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협의하는 능력을 정치의 기본이라고 한 것이다. 언어를 통한 소통과 협의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언어가 그 본래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을 신중하고 명확히 하는 것도 그 하나다. 쟁점 사안을 정치적 논의의 테이블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든지, 핵심을 빗겨나가 혼란만 불러일으킨다든지 하면 정치다운 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 이 대표에게는 ‘신중함’, 윤 대통령에게는 ‘명확함’이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3-07-10 12:29:34
- [김낭기의 관점] 민주당, 조선시대 사림파를 반면교사 삼아라 요즘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꼭 조선시대 유학자 정치세력인 사림파(士林派)가 당쟁을 할 때의 행태와 비슷하다. 나라 일을 당파적 입장에서만 보고, 본질을 따지기보다 지엽말단을 갖고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듯 공세를 편다. 정책 논쟁을 벌이기보다 인신공격에 치중하고, 현실을 고려하기보다 명분을 앞세워 상대를 공격한다. 사림파는 민생과는 거리가 먼 당쟁으로 지고 샜다. 조선 사회를 속으로부터 멍들게 했다. 민주당이 그런 사림파를 따라 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한국 주최 다국적 훈련에 참가하려고 지난달 29일 부산에 입항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그 배에 욱일기(旭日旗)가 내걸려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했다. 군함이 외국에 입항할 때 자국 국기와 군기를 다는 것은 국제사회 관례다. 과거 일본과 싸운 미국이나 일본에 침략당한 중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국제 사회의 관례를 인정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일본 함정이 욱일기를 달고 한국에 입항한 게 처음도 아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도 해상자위대 함정이 한국 해군이 주최한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달고 참여했다. 국제법적으로도 해군 함정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인정된다. 해군 함정이 외국 영해에 들어가면 그 나라 국내법을 적용받는 게 아니라 함정이 소속된 나라의 법을 적용받는다. 일본 국내법은 자위함기 게양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처럼 욱일기를 단 일본 함정이 부산항에 입항한 것은 국제관례로나 국제법으로나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국민 자존심’ 운운하며 윤석열 정부를 공격했다. 반일 감정 자극으로 지지층을 결속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당파적 계산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가 안보조차 당파적 이익 따져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실시된 한·미·일 대잠수함 훈련에 대해서도 “우리 군의 무엇이 모자라서 일본군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이냐”고 공세를 폈다. “윤석열 정부가 굴욕 외교도 부족해 독도 근해에 자위대를 불러들였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극단적 친일 행위로 대일 굴욕 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미·일 대잠수함 훈련의 본질은 북한의 잠수함 공격으로부터 우리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참여하는 3국 군사 훈련이 필요하냐 아니냐이다. 민주당은 이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면 3국 훈련 자체를 중단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아니면 당당하게 일본은 참여시키지 말라고 해야 한다. 대신 합리적 근거와 논리를 대야 한다. 그게 본질에 충실한 주장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 같은 본질 문제는 외면한 채 ‘독도 근해에 자위대’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는 감정적 비난만 하고 있다. ‘독도 근해에 자위대’라고 했지만 실제 한·미·일 대잠 훈련은 독도보다 일본에 더 가까운 공해상에서 실시됐다. 본질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하고 있다. 반일 감정에 기대 당파적 이익을 얻으려는 속셈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국가 안보조차 당파적 이익에서 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해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한 것을 두고 민주당 어떤 의원은 "한국 대통령이 우리말로 연설을 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대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미국에서 영어로 연설한 한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만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랬다. 다른 나라 정상도 미국 의회에서 자기 나라 말이 아닌 영어로 연설한 사례가 많다. 한국 대통령이니 우리말로 연설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 명분론이자 우물 안 개구리식 주장일 뿐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작년 9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대통령 참모들에게 ‘ 바이든 쪽팔려’라고 했다는 말을 두고 ‘외교 참사’ 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바이든 쪽팔려’라고 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공식 석상에서 한 게 아니고 자기 참모들에게 사적으로 한 발언이다. 그게 ‘외교 참사’라고 할 만큼 그리 중대한 문제인가. 기껏해야 가볍게 한번 짚고 넘어갈 지엽말단의 가십성 소재에 불과하다. 본질 외면하고 지엽말단 침소봉대해 공격 그런데도 민주당은 무슨 난리가 난 듯 침소봉대해서 공격했다. 오히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측이 한국 측 설명을 듣고는 ‘잘 알겠으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사자인 미국이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데 한국의 제1야당이 지엽말단 가십거리를 갖고 윤 대통령을 코너에 몰아넣으려고 문제 삼은 것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작년 11월 캄보디아 방문 때 정상 배우자들의 앙코르와트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환자의 집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외교 결례’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 의원은 ‘김 여사가 사진 촬영 당시 2~3개 조명까지 설치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자 주한 캄보디아 대사가 직접 나서서 반박했다. 그는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있다”며 “우리는 몸이 불편한 어린이들에 대한 김 여사의 지원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김 여사의 친절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캄보디아 문화 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게 의무는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조현동 외교부차관은 국회에서 “당시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 배우자 11명 중 프로그램에 참여한 배우자는 다섯 분이고, 여섯 분은 각자 별도 일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김 여사가 정상 배우자들의 공식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않은 게 외교 결례도 아니고 외교 참사는 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정확한 사실도 파악하지 않은 채 무슨 큰 외교 실수라도 저지른 듯 공세를 폈다.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소재라면 사실 여부는 따지지도 않는다.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는 인신 공격성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조명 시설 설치’ 는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문제 삼을 거리가 되지 않는 지엽말단적 일이다. 민주당의 이 같은 당파적 이익을 위한 헐뜯기식 공세는 조선시대 사림파가 즐겨 하던 행동이다. 사림파는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려고 이리저리 갈려 싸우는 사색당쟁을 벌였다. 동인이니 서인이니, 남인이니 북인이니,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는 당파로 갈려 권력투쟁을 벌였다. 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나 민생을 구제할 정책을 놓고 논쟁한 게 아니다. 그저 경쟁 세력을 누르고 권력을 쥐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 당쟁 앞에서는 국익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 정세를 염탐하러 함께 일본에 갔다 온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이 선조에게 정반대 보고를 한 게 대표적 사례다.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곧 침략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 반면에 동인 김성일은 그런 낌새가 없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서인 황윤길 보고대로 일본은 그 1년 뒤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왜 상반된 보고를 했을까? 지금으로 치면 당시는 동인이 집권세력이고 서인은 야당 세력이었다. 동인 김성일이 침략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한 이유는 침략 가능성에 대비해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대부분 야당 세력인 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인의 정신적 지도자인 율곡 이이는 진작부터 십만양병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200년 당쟁···조선 망하는 데 '일조' 이런 상황에서 동인 김성일이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 이는 서인들의 정국 진단이 맞았음을 뜻하고 집권 세력인 동인이 국정을 잘못했음을 시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동인 김성일은 이런 결과를 막기 위해 침략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했다. 나라의 안위는 관계 없이 그저 경쟁 세력에게 권력을 뺏기지 않으려는 당파적 입장에서 국사를 바라본 것이다.(이덕일 저,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임진왜란 때 한양이 일본군에 점령되자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갔다. 피난 길에 경기도 파주를 지나게 됐다. 파주에는 율곡 이이와 함께 서인의 정신적 지도자인 성혼이 살고 있었다. 선조는 “성혼의 집이 이 근처일 텐데 어디쯤일꼬”라고 물었다. 선조를 수행하던 동인 측 관리가 “저기 보이는 저 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근처에 살면서도 일부러 나와보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성혼은 뒤늦게 선조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나 왜군이 막아 선조를 보지 못했다. 동인은 거짓으로 꾸며진 이 일을 성혼이 죽고 100년이 지나서도 그를 공격하는 소재로 삼았다. (이덕일 저,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경쟁 세력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라면 거짓말까지도 공격 소재로 삼는 이 행태는 민주당의 ‘청담동 술자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서울 청담동에서 변호사들과 한밤중에 술 파티를 열었다는 사건이다. 이는 경찰 조사 결과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당시 술자리에 있었고 사건을 제보했다는 첼리스트도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공식 사과 하지 않았다. 일부 친민주당 유튜브에서는 아직도 사실인 양 떠든다. 사림파는 조선 중기 이후 내내 당쟁으로 지고 샜다. 민생 개혁과는 무관한 싸움이었다. 사림파가 200년 이상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지만 서양 식의 기술 발전은커녕 도로 하나, 다리 하나 놓은 게 없다. 그저 허황된 명분론과 공리공담에 기대 헐뜯기식 싸움만 했다. 실사구시와는 거리가 먼 싸움이었다. 그러는 사이 조선은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갔다. 민생은 지칠 대로 지치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다. 결국 조선이 망하는 큰 원인의 하나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할 일은 사림파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다. 당파 이익 아닌 국가 이익 관점에서 지엽말단이 아닌 본질을 직시하고 명분보다 현실을 우선하는 실사구시의 자세로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게 그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3-06-11 19:27:18
- [김낭기의 관점] 尹정부 1년 ② 국민 눈높이와 정서에 맞춘 소통 절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5%, 부정 평가는 59%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의 취임 이후 1년 동안 분기별 국정 지지율을 보면 윤 대통령은 29~54%다. 취임 직후 한때 54%로 반짝했을 뿐 줄곧 20%대 후반~3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68~81%, 박근혜 전 대통령 42~60%에 비하면 한참 낮은 편이다. 취임 직후 52%를 기록했다가 이후 21~32%에 머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그렇게 국정 지지도가 낮을까? 이번 취임 1주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부정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외교였다. 32%나 됐다. 그러나 외교에 대해서는 긍정 평가도 35%나 됐다. 최근 한·일, 한·미 외교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은 ‘호갱 외교’, 국민의힘은 ‘국익 외교’라고 서로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외교가 긍정이나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요인이 된 것은 이런 일시적인 상황 탓으로 보인다. 일시적으로 쟁점이 된 외교를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를 분석할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낮은 국정 지지도···'독단적·소통 미흡'이 큰 요인 그렇다면 무엇이 주요 요인일까? 이번 조사에 따르면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이 각각 6%로 합치면 12%가 된다. ‘경제/민생/물가’ 12%와 함께 가장 높다. 윤 대통령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요인은 일시적 현상인 ‘외교’를 빼고는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 그리고 ‘경제/물가/민생’인 셈이다. ‘경제/물가/민생은’ 어느 정부에서나 긍정 또는 부정 평가 요인으로 존재한다. 반면에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은 대통령에 따라 다르다. 윤 대통령 부정 평가 요인으로 ‘독단적·일방적’과 ‘소통 미흡’이 최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번 조사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 조사에서도 이 항목이 부정 평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독단적·일방적’이나 ‘소통 미흡’은 국민에게는 거의 같은 개념으로 다가올 것이다. 야당 등 반대 세력과 협의하거나 국민 정서에 공감하거나 국민을 설득하거나 하는 게 부족하다는 뜻으로 여겨질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통합과 협치를 위한 공감과 설득의 부족이다. 통합과 협치의 최우선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윤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나 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만나 국정을 논의하고 협상과 타협을 한다면 그게 바로 통합과 협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국민 눈에는 ‘독단적·일방적’에 ‘소통 미흡’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을 윤 대통령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처지가 큰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년간 대장동 사건 등 여러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 왔다. 법적으로 말하면 형사 피의자 신분이다. 이 대표는 몇 차례나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공개 요청했으나 윤 대통령은 응답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아무리 제1야당 대표라고 하더라도 형사 피의자 신분인 이 대표를 만나는 게 껄끄러울 수 있다. 이 대표로부터 국정 협조를 받는 대신 그의 검찰 수사를 적당한 선에서 끝내기로 타협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타협까지는 아니더라도 검찰에 ‘알아서 적당히 수사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재명 '형사 피의자 신분'이 협치 걸림돌이지만 대통령 입장에서 야당과 국정을 논의하고 협조를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불법과 타협하고 수사의 공정을 해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제1야당 대표가 형사 피의자 신분이라는 사실은 민주당에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에도 부담이자 협치와 통합의 걸림돌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정무수석비서관을 통해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만나는 것이 먼저”라며 거절했다. 이 일은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의 통합과 협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대표가 있는 한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걸림돌이라고 해서 윤 대통령의 ‘독단적·일방적’ ‘소통 미흡’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1야당 대표와 만나 국정을 논의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그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게 기자회견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딱 한 번 기자회견을 했다. 취임 100일을 맞아 작년 8월 17일 한 게 전부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도 안 했고 지난 10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 스태프한테 취임 1주년을 맞아서 뭐를 했고 하는 그런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해놨다”며 “무슨 성과나 자료를 주고 잘난 척하는 그런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자화자찬이나 하는 자리는 아니다. 국민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는 것, 대통령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싶은 것을 알리는 자리다.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국민과 공감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다. 기자들은 대통령이 듣기 거북한 질문도 한다. 국민 중에는 그런 질문을 바라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에겐 그런 질문일수록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설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런 질문에 진솔하게 대답하고 설명하면 대통령의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최고의 소통 수단 기자회견도 하지 않아 윤 대통령이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기자회견을 한다면 ‘독단적·일방적’ ‘소통 미흡’이라는 이미지를 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얼마나 국민 정서와 공감하면서 설득력 있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과 정서적 공감을 못하거나 자기 주장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낼 것은 물론이다. 실제 윤 대통령에게는 그런 측면이 있다.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해 한 말이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은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논리적으론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 공감을 받기는 어렵다. ‘일본에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 국민 마음은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우리 국익에 더 해롭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게 국민 정서를 헤아리며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를 강조했다. 많은 국민들은 자유의 소중함이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지금 자유를 강조해야 하는지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자유가 소중하지만 지금이 자유 수호가 절실한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를 강조하는 시장 경쟁이 강자에게만 유리할 뿐 약자에게는 불평등과 양극화만 가져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추상적 가치만 강조했다. 자유가 무시되고 지켜지지 않아 국민이 실제로 어떤 고통을 당하고 불이익을 입고 있는지를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했다고 하더라도 부족했다. 그러니 국민이 공감하기 쉽지 않다. 지도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문제가 아무리 절실하고 중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대중이 그것을 그런 문제로 느끼지 못한다면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과제가 될 수 없다. 중도파·무당층 지지 확보가 최대 과제 이번 취임 1주년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중도 성향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 윤 대통령 국정 수행을 긍정 평가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65%가 부정 평가를 했다. 지지 정당 별로 볼 때도 무당층에서 긍정 평가 20%, 부정평가 65%로 부정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 중에는 긍정 평가 58%, 부정 평가 39%로 나왔다. 윤 대통령 지지 기반인 보수층에서도 부정 평가가 그렇게 높았다. 중도와 무당층에서 불신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보수층에서조차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앞으로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기존 지지자는 더욱 강력한 지지자로 만들고 무당층과 중도파는 지지자로 이끌어 내는 게 그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층은 어차피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전통적 지지층의 지지를 강화하고 무당층과 중도파를 지지로 끌어들이는 데 필요한 게 국민 눈높이와 정서에 맞춰 소통하는 노력이다. 감성적 공감은 없이 논리에만 치우친 주장과 설득, 구체성을 곁들이지 않은 추상적 가치의 제시만으론 국민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국민 마음을 움직여야 국정 수행에도 성공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3-05-16 18:33:39
- [김낭기의 관점]민주당 '전주乙 무공천'· 국민의힘 '하영제 체포 동의', 정치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치적 유불리 따라 도덕적 잣대 오락가락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월 5일 실시된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민주당의 귀책 사유로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는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에 따른 조치다. 국민의힘은 지난 3월 30일 실시된 국민의힘 소속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 표결 때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체포 동의를 뜻하는 '가(可)' 표결을 독려했다. 불체포 특권 포기를 여러 차례 선언해온 데 맞춰 이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 두 사안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자신들이 약속한 도덕 원칙을 모처럼 실천에 옮긴 사례로 꼽을 만하다. 정치가 국민 신뢰를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은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두 당 모두 겉보기에는 도덕 원칙을 지킨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동안의 행태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도덕을 정략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북 전주을은 민주당 출신 이상직 전 의원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이 박탈돼 재선거를 치르게 됐다. 이 전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선거 전 당내 경선 과정에서 허위 응답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당원에게 보낸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작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4월에 집행유예 2년 확정 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작년 12월 전주을 무공천 방침을 정했다. 이 전 의원은 당헌 96조 2항에 규정된 귀책사유(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로 의원직을 상실한 게 아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한다면 무공천을 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무공천을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은 앞서 2021년 4월 실시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는 당헌을 개정까지 해가며 후보를 공천했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이 성희롱·성추행 사건으로 자살하거나 사퇴하는 바람에 실시됐다.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같은 고위 공직자가 부하 여직원을 성희롱 또는 성추행한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직위라는 권력을 이용한 행위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상직 전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보다 훨씬 더 중대한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이 당헌 규정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헌을 개정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는 전 당원 투표 결과를 내세워 2020년 11월 3일 당헌을 개정했다.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의 귀책 사유를 제공한 경우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96조 2항에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넣은 것이다. 그리고 이 단서 조항을 근거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했다. 민주당, '무공천' 당략적 계산 아닌가 당시 민주당은 “후보를 내서 국민 심판을 받는 게 책임정치에 더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게 변명에 불과하고 속셈이 따로 있음은 누구나 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그 속셈이 무엇인지를 숨김없이 털어놨다. 우 의원은 2020년 10월 방송 인터뷰에서 “(보궐선거는) 대선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민주당이 정한 방침을 일부 수정한 것은 국민들께 죄송한 일이지만 (보궐선거는) 일정한 책임을 지는 문제를 넘어서 대통령 선거 성패까지 영향을 주는 선거라 정당으로서 이렇게 선택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가 후보를 내지 않아 국민의힘 후보들이 사실상 의미 없이 당선된다고 치면 연일 반정부적 행보를 하게 될 경우에 주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을 따질 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서울·부산시장 보선은 서울과 부산이라는 최대 도시의 민심을 가늠하고 붙잡는 선거다. 그 민심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 대통령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비해 전주을 보궐선거는 국회의원 한 명을 뽑는 지역 선거일 뿐이다. 민주당은 이미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국회의원 한 명 잃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없다. 더구나 전주을은 민주당 텃밭이다. 언제고 민주당이 탈환할 수 있다. 결국 당초의 약속을 위반했다는 욕을 먹더라도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서울·부산시장 보선에는 후보를 공천한 것이다. 반면에 전주을은 민주당의 정치적 영향력에 미치는 효과가 거의 없고 오히려 ‘무공천 약속’을 지킨다는 생색을 낼 수 있어 유리하다고 계산해 무공천을 한 것이다. 어느 경우든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기준으로 ‘귀책 사유 제공 시 무공천’이라는 당헌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기도 하고 존중하는 척하기도 한 셈이다. 이런 게 바로 도덕을 정략의 수단으로 삼는 행태다. 불리하더라도 당헌의 기본 원칙을 존중하고 지킨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전주을 무공천에 박수만 칠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 '체포 동의', 이재명 압박용 아닌가 국민의힘이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 표결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한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 때부터 민주당에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물론 이 대표가 그 빌미를 제공하긴 했다.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 포기 대선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며 말을 바꿨다. 그는 “평화시대, 모두가 규칙을 지키고 예측 가능한 사회에는 담장도 없애고 대문도 열어 놓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강도·깡패가 날뛰는 무법천지가 되면 당연히 담장이 있어야 하고 대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야당 탄압을 하고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국민의힘에는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이렇게 말을 바꾼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좋은 소재였다. 국민의힘은 연일 자신들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의원 51명이 불체포 특권 포기 각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자기 당 소속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을 처리하게 됐다. 국민의힘은 자기들부터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겠다며 하 의원 체포 동의안에 당론으로 찬성했다. 그러면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도 불체포 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정하고 나왔을까? 민주당에 대한 불체포 특권 포기 공세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의원 수십 명이 불체포 특권 포기 대국민 서약을 했을까? 국민의힘이 과거 그 전신일 때를 통틀어 지금처럼 불체포 특권 포기를 강하게 주장한 적은 없다. 국민의힘이 정말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의 문제점을 깊이 느겼다면 진작에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도 있었고 그래야 했다. 그러나 지금껏 손 놓고 있다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공격할 빌미가 생기자 불체포 특권 포기를 들고 나왔다. ‘정치적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국민의힘이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에 사실상 당론으로 찬성한 것도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한 결과일 것이다. 불체포 특권 포기 공세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압박하는 것이 하 의원 체포 동의안 찬성으로 그가 구속돼서 의원 한 명을 잃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수 있다. 정치적 유불리라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도덕 원칙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주을 무공천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하영제 의원 체포 동의안 찬성에 박수만 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일관성 보여서 진정성 입증해야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도덕성 실종이다. 정당이든 정치인이든 도덕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도덕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지키려 하기보다 선거 승리나 상대방 공격이라는 정략의 수단으로만 삼는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행위의 ‘동기’라고 했다. 그는 동기를 쾌락 동기와 의무 동기로 구분했다. 쾌락 동기란 어떤 일을 이익이나 쾌락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의무 동기란 그 행위 자체가 옳은 일이라서 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는 쾌락 동기는 잘못된 동기이고 의무 동기만이 올바른 동기라고 했다. 쾌락 동기는 도덕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덕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으면 그 도덕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그 도덕을 지키는 게 불리하면 언제든 헌신짝처럼 버리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주을 무공천이나 국민의힘의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은 그 동기가 ‘올바른’ 동기라고 하기 어렵다. 정치적 유불리라는 계산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 눈 깜짝하지 않고 변할 수 있다. 이래서는 정치에서 도덕이 자리 잡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올바른 동기’임을 인정받는 방법은 하나다. 민주당은 앞으로 재·보선 귀책 사유 제공 시 이것 저것 계산하지 말고 무공천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기들이 야당이 돼서라도 말 바꾸지 말고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로 국민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우리 정치의 도덕적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 나갈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3-04-19 21:25:40
- [김낭기의 관점]이재명 대표, 자라나는 세대가 본받을 만한 롤 모델 될 수 있나? “10년 넘게 자신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다. (이재명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게 인간이고 그게 사람이다.” “이 대표와 같은 인물이 당대표라는 사실에 당원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분노감이 든다.” 각각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지난 10~12일 페이스북 등에서 한 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 재직 시절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전모씨 자살에 대해 보인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전씨 자살에 “그게 왜 이재명 탓이냐, 검찰 탓이지”라고 했다. 전 비서실장 죽음에 "왜 내 탓이냐?" 전씨는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사건과 경기주택도시공사 직원 합숙소 사건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전씨가 그렇게 된 원인은 단 하나다. 그가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 재직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대표 관련 사건에 연루돼 이름이 오르내릴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전씨의 죽음은 그가 이 대표의 과거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사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검찰 탓을 하기 전에 원초적으로 자기 때문에 생긴 전씨 비극에 인간적 자책감을 표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 기대이고 예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대표는 자기 탓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로지 검찰 탓만 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 기대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그러니 ‘먼저 인간이 돼라’는 식의 모욕적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보잘것없는 갑남을녀라도 이런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 어렵다. 하물며 제1야당 대표로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유력 정치인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검찰 탓만 하고 인간적 자책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이 대표 행동은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가로젓게 만든다. 인간에게는 본능적 정의 감각 또는 도덕심이라는 게 있다. 도덕이나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코흘리개 애들조차 뭔가 이상하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그건 안 돼”라고 말한다. 이게 본능적 정의 감각이고 도덕심이다. 사람들은 그 정의 감각이나 도덕심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에 상식적 기대나 예상을 하게 된다. 그 기대나 예상에 어긋난다고 여길 때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이런 마음이 합쳐져 민심이 된다. 윤영찬, 김해영, 진중권 세 사람의 말은 그런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가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 것은 전씨 죽음에서만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국회 표결에서 부결된 직후 보인 행동도 그런 사례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을 표결할 때 민주당 내 반발표가 최소 31표나 나왔다. 체포 동의안에 찬성하는 표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표결을 앞두고는 “압도적 다수결로 부결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동의안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1표 더 많이 나왔다. 찬성이 과반에 이르지 못해 부결되는 바람에 이 대표는 가까스로 체포를 면했다. 이쯤 되면 이 대표는 ‘반발표를 던진 의원들이 왜 그렇게 많이 나왔는지, 이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고 성찰하겠다’고 한마디 할 수도 있었다. 빈말로라도 그리 할 수 있었다. 이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 기대이고 예상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검찰의 영장 청구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확인했다”며 “당내와 좀 더 소통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해 힘을 모아 윤석열 독재정권 검사 독재에 강력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만 했다.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기대하고 예상하는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가로젓지 않았을까 한다. 체포 동의안 집단 반발표에도 '자기 성찰' 언급 없어 이 대표가 전씨 죽음이나 민주당 내 집단 반발표 발생에 대해 ‘저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언행을 한 데는 나름대로 계산과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인간적 자책감을 표하거나 집단 반발표 발생을 중시하는 언행을 하면 수세에 몰려 정치적 입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계산이나 판단은 당장은 이 대표 입지를 지켜줄 수도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손해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이 대표가 진심으로 전씨 죽음에 인간적 자책감을 표하고 집단 반발표 발생을 성찰하겠다고 했다면 일반인들이 이 대표를 보는 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대표가 상식에 부합하는 도덕심이나 자기 성찰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게 되고 이는 이 대표에 대한 인간적 신뢰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적 신뢰만큼 큰 정치적 자산이 있을까? 그런데 이 대표는 거꾸로 행동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정의 감각이나 도덕심은 안중에 없다는 이미지만 더 키워줬다. 형수 욕설 파문 등으로 이미 이 대표의 인성을 불신하던 사람들에게는 그 불신을 더욱 강화하고, 중간적 입장에서 판단을 유보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시 안 되겠군’ 하는 새로운 확신을 심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가 보통 사람들의 도덕심이나 정의 감각을 존중했다면 체포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국민 마음을 크게 얻을 수도 있었다. 이 대표는 2021년 대선 후보 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를 공약했다. 불체포 특권은 헌법에 규정돼 있다. 헌법을 바꾸지 않고는 폐지할 수 없다. 불체포 특권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 자체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었다. 이 대표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체포 특권 폐지를 공약했다. 국회의원이 어떤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도 체포되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정의감이나 도덕관념에는 맞지 않는다고 보고 이런 국민 마음을 노려 공약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정작 자기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돼 체포 위기에 놓이자 불체포 특권 폐지 공약을 뒤집었다. 이 대표는 ‘상황이 달라져서’라고 했다. 구속영장 청구는 윤석열 검사 정권이 자기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정적을 제거하려는 음모라고 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검찰 수사를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런 범죄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구속영장을 당연히 기각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 대표는 더욱더 자신 있게 영장실실심사에 응해야 앞뒤가 맞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만약 이 대표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됐을 수도 있다. 구속될 위험을 감수하고 자기 공약을 지켰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그는 국민에게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 대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유리하겠다 싶으면 실현 의지도 가능성도 없는 공약도 쉽게 하고, 불리할 때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만 사람들 뇌리에 심어줬다. 불체포 특권 폐지 공약이 얄팍한 선거용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고 말았다. 보통 사람들의 도덕심과 다른 행태 정치 세계에서는 목적을 위해서는 도덕성이나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는 게 진리처럼 말해지기도 한다. 속임수와 거짓말, 위선, 말 뒤집기, 뻔뻔스러움 같은 비도덕적 수단을 써도 문제 없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한다. 16세기 이탈리아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철학이라는 뜻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정치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도덕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고 한 것은 맞다. 정치인이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기만 해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중대한 국가 이익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비도덕적 수단이 불가피할 때’만 그렇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비도덕적 수단을 일삼는 게 중대한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불가피해선인가? 대부분은 자기 개인 이익을 위해서다. 그것도 도덕적 수단이 가능한 상황에서 그런다. 이 대표는 예외라고 할 수 있나?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게 되자 2016년 9월 25일 "트럼프는 왜 대통령이 돼선 안 되는가"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트럼프는 위험한 선동, 대중 영합,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주장, 인신 공격, 말 바꾸기, 남의 약점 악용하기 등 사려깊은 정치보다는 자기 이익만 쫓는 언행을 일삼아 왔다. 트럼프 당선으로 정치가 크게 변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기존 정치에 대항하는 개혁 정치인처럼 덫칠해진 부분을 정밀 검토해 봐야 한다. 잘못하면 백악관을 국민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개인적 이익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맡기게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 맺었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 어린이 세대에게 롤 모델(role model·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인물)이다. 트럼프의 품성과 사람 됨됨이는 과연 우리가 대통령들에게 바라는 인성이고 품성인가?" 뉴욕타임즈는 10월 16일 '오늘의 오피니언 편지'라는 논설실 명의의 글에서는 다시 한번 트럼프가 어린 세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물으며 이렇게 썼다. “어린 세대는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말이 허세나 빈정거림, 심지어 거짓말이 되는 걸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트럼프 같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린 세대들은 트럼프 같은 인성을 당연한 것처럼 배우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제기한 질문을 이 대표에게도 던질 수 있다. ”이 대표 당선으로 정치가 크게 변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이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대통령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롤 모델이 돼야 한다. 이 대표의 품성과 인성은 우리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인성이고 품성인가?”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3-03-23 13:22:51
- [김낭기의 관점]막 오른 '거짓말 혐의' 재판, 이재명 대표 운명 가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구속될지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이 대표 앞에는 구속 여부보다 더 긴박한 사법 리스크가 놓여 있다. 3월 3일 시작되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재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4부(부장판사 강규태)는 최근 공판준비기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3, 17, 31일을 공판 기일로 지정했다. 2주일마다 재판이 열린다. 이 재판에는 피고인인 이 대표가 직접 출석해야 한다. 재판 결과는 이 대표 정치적 운명을 결정적으로 가르게 된다. 100만원 이상 벌금형만 나와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국회의원직도 즉시 박탈된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시절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혐의로 기소됐으나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이번에도 ‘거짓말 혐의’를 무사 통과할까? "김문기씨 모른다" 거짓말 여부가 쟁점 이 대표는 작년 9월 8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혐의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방송 인터뷰에서 대장동 사업 실무를 담당했던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하위 직원이라 성남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한 부분이다. 또 하나는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하지 않을 경우) 직무 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한 부분이다. 두 혐의 가운데 ‘국토부 협박’ 여부는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용도 변경 문제에 대해 ‘성남시가 잘 알아서 판단하라’고 보낸 공문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성남시에 협박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재량권을 준 셈이니 ‘국토부 협박’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반면에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한 게 허위 사실, 즉 거짓말인지는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죄가 성립하려면 말할 당시 허위 사실인 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허위 사실의 인식’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허위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말할 당시에는 허위 사실의 인식이 없었다면, 즉 거짓말인 줄 몰랐다면 허위 사실 공표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대표가 허위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앞으로 재판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검찰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선거에 미칠 영향을 의식해 몰랐다고 했다고 공격할 것이고 이 대표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른다고 했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럼 허위 사실 인식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2005년 7월 22일 판결에서 허위 사실 인식 여부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05. 7. 22. 선고 2005도2627 판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위자가 그 사항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였는지 여부는 성질상 외부에서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우므로,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소명자료의 존재 및 내용, 피고인이 밝히는 사실의 출처 및 인지 경위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및 그로 말미암아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행위자가 허위 사실을 인식했는지 여부는 사람의 마음속 일이라 외부에서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우니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소명자료의 존재 및 내용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속 의사는 ‘겉으로 드러난 정황으로부터 추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형법의 기본 원리이다. 대법원 판결도 이 원리를 말한 것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거짓말 판단 기준으로 보면 이 원리를 이 대표가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한 말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 대표는 김문기씨 등 10명과 함께 2015년 1월 6~16일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같이 갔음이 당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으로 드러났다. 동영상에는 이 대표와 김씨가 농담하는 장면도 나온다. 검찰은 이 대표 공소장에서 이 대표가 변호사 시절인 2009년 6월부터 김씨를 알고 지냈고, 두 사람이 2009년 8월 26일과 12월 1일 정책 토론회에 함께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2013년 11월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입사한 이후 2016년 4번, 2017년 2번, 2018년 1번 등 총 7번에 걸쳐 이 대표에게 대장동 관련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2017년에는 이 대표가 기자회견을 할 때 김씨가 3차례 동석했다고도 했다. 이런 자료들은 대법원이 허위 사실 인식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로 제시한 ‘소명 자료의 존재 및 내용’에 해당한다. 반면 이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2021년 12월 22일 SBS)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2021년 12월 24일 CBS), “얼굴도 모르고”(2021년 12월 27일 KBS), “얼굴이야 봤겠지만 그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 (2021년 12월 29일 채널A)라고 김문기씨를 모르거나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 인터뷰라는 공개된 자리에서 네 번이나 말했고, 내용도 애매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는 대법원이 고려 요소로 제시한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공표 경위와 시점’에 해당한다. 이 대표는 중·고교 검정고시를 통해 중앙대를 나왔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생활을 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도 지냈다. 학력과 경력 등으로 볼 때 기억력이나 사리분별력이 일반인보다 나으면 낫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대법원이 고려 요소로 제시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에 해당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이 대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소명 자료의 존재와 내용, 이 대표가 네 번이나 방송에 나와 ‘모른다’고 한 공표 경위 및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이 대표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 등 사정을 종합할 때 이 대표가 도저히 김문기씨를 몰랐거나 기억에 없을 수는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할 당시에는 정말로 기억이 안 났을 수도 있다고 해야 할까? 상식적 판단의 문제다. 법원도 상식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친형 강제 입원' 논란 무죄 판결 재연될까 이 대표는 허위사실공표혐의를 무죄로 인정한 2020년 대법원 판결이 이번에도 재연되기를 바랄지 모른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방송 토론회에서 ’형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해 허위사실 공표죄로 기소됐다. 2심은 유죄로 인정하고 이 대표에게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확정됐더라면 이 대표는 202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20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무죄 취지로 2심을 깨고 파기환송했다. 대법관 12명 중 7명은 무죄 의견(다수 의견), 5명은 유죄 의견(소수 의견)이었으나 다수결에 따라 무죄로 결정됐다. 당시 권순일 대법관이 무죄 판결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대법관은 대법관 퇴임 4개월 뒤에 화천대유 고문으로 들어가 월 1500만원 고문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다수 의견은 후보자 토론은 유권자들의 후보자 선택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만큼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선거 토론에 법이 너무 쉽게 개입하면 ‘숨 쉴 공간’이 사라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사 처벌은 "적극적,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한 때에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대표 발언은 계속되는 공격과 방어의 토론 과정에서 "즉흥적, 돌발적으로" 나온 것이라 후보자 토론의 취지와 기능을 고려할 때 형사 처벌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소수의견은 후보자 토론에서 허위 사실 유포는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해 선거제도의 본래 기능을 훼손한다고 했다. 다수 의견과 같이 적극적·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표명한 게 아니라고 해서 면죄부를 준다면 후보자 토론회가 본래 기능을 못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 발언 맥락을 전체적으로 볼 때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의 대립에서 보듯 ‘강제 입원 발언’ 무죄 판결은 후보자 간에 치열한 공격과 벙어가 벌어지는 토론회라는 특성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또한 발언이 나오게 된 경위가 적극적·일방적이었느냐, 즉흥적·돌발적이었느냐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대표가 김문기씨를 모른다고 한 것은 후보자 토론이 아니라 방송 인터뷰에서다. 후보자 토론회는 후보자들이 서로 공격과 방어를 수차례씩 주고받는 자리다. 방송 인터뷰는 사회자의 준비된 질문에 후보자가 준비된 답변을 하는 자리다. 둘이 성격이 전혀 다르다. 또한 이 대표는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모른다’ ‘기억에 없다’고 했다. 이걸 ‘즉흥적·돌발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친형 강제 입원’ 발언과 같은 자로 잴 수 있을까? 이 점이 향후 재판을 보는 포인트의 하나가 될 수 있다. 100만원 벌금형만 받아도 2027년 대선 출마 불가 공직선거법에 선거 사범 재판은 1심 재판은 기소된 날부터 6개월, 2심은 1심 판결일로부터 3개월, 3심은 2심 판결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돼 있다. 기소된 날로부터 12개월 이내에는 3심 재판까지 마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이 대표 재판 1심 결과는 4월 중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 판결은 올해 9월 9일 이전에 나오게 된다. 법원이 선거 사범 재판을 1년 이내에 끝내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 대표 재판도 올해 9월 9일까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길게 잡아도 윤석열 정부 임기 중에는 끝날 것이다. 이 대표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형량에 따라 피선거권 박탈 기간이 달라진다.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5년,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10년간 박탈된다. 벌금 100만원만 선고받아도 2028년까지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피선거권이 없게 되면 국회의원직에서 퇴직한다’는 국회법 제136조 규정에 따라 국회의원직도 즉시 박탈된다. 이 대표가 이번에도 ‘거짓말 혐의’에서 벗어날지, 이번에는 거짓말 혐의가 인정돼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맞게 될지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3-02-22 11:54:55
- [김낭기의 관점]]법리 무시한 이상민 탄핵, 상식 무시한 곽상도 무죄 판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소추 의결과 곽상도 전 국회의원 무죄 판결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사안은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장관 탄핵 소추는 법리를 무시했고, 곽 전 의원 무죄 판결은 상식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상민 장관 탄핵 소추는 과연 탄핵 사유가 되느냐 하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이 된 야권은 이 장관 탄핵 소추 사유로 이 장관이 헌법, 재난안전법,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장관이 핼로윈 참사 직후 재난대책본부·수습본부 신속 설치 등 재난안전법상 행안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책임을 방기해 적절한 구조·구급 활동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가 커졌다고 했다. 참사 발생 이후 자택에서 관련 조치를 하지 않았고, 관용차를 85분 동안 기다리느라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졌다고도 했다. 그 결과 이 장관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참사 이후 부적절한 언사를 반복하면서 고위공직자에게 기대되는 최소한의 품위마저 저버려 국가공무원법의 품위 유지 의무를 어겼다고 했다. 야권이 이 장관 탄핵 사유로 몇 가지를 제시했지만 핵심은 이 장관이 행안부 장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탄핵 사유가 될지가 문제다. 헌재, "직무 성실성 여부는 탄핵 사유 안 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는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며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박근혜)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조치에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하여 곧바로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문에서도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 취지대로 한다면 이 장관이 핼로윈 참사 이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수는 있겠지만 탄핵 사유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헌재는 탄핵 제도의 본질을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의 지배 원리를 구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박근혜 탄핵 결정문), “공직자의 권력남용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노무현 탄핵 기각 결정문)라고 했다. 직책의 성실한 수행 여부는 이런 탄핵 제도의 본질과 무관하기 때문에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헌재 결정 내용은 탄핵 소추에 관한 법리를 잘 설명해 준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헌재가 밝힌 두 전직 대통령 관련 결정문을 꼼꼼히 살폈더라면 이 장관의 핼로윈 참사 대처 문제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법리를 무시하고 정치적 이유로 탄핵 소추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원을 받은 곽상도 전 의원 뇌물죄 무죄 판결은 무죄 이유를 일반적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워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아들이 지급받은 돈과 이익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걸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했다. 이어 “아들이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들이 존재하지만 아들이 성인으로, 결혼을 해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했다”며 “따라서 곽 전 의원이 직접 돈을 받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곽 전 의원과 아들이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적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들 돈은 아들 돈이고 아버지 돈은 아버지 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받은 돈을 아버지가 받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곽상도 아들 아니었다면 퇴직금 50억원 줬겠나 아버지와 아들이 경제적으로 독립 생활을 한다면 ‘아들 돈’과 ‘아버지 돈’은 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고려 사유가 있다. 우선 하나는 돈의 규모다. 아들이 퇴직금으로 일반 회사원과 비슷한 액수를 받았다면 그 돈은 아들 돈으로 보는 게 맞다. 그러나 그 액수가 터무니없이 크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게다가 아버지가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서 기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면 사정은 더욱 달라진다. 액수가 터무니없이 크고 아버지가 고위직에 있었다면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아들에게 돈을 줬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곽 전 의원 아들은 6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 대기업 고위 임원 사례를 빌리지 않더라도 턱없이 큰돈이다. 곽 전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검사, 대통령실 민정수석 비서관, 국회의원을 지냈다. 기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그렇다면 화천대유가 아들에게 50억원을 준 것은 아버지인 곽 전 의원을 보고 준 것이고, 그래서 사실상 곽 전 의원이 받았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어떻게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지 않았다고 해서 뇌물 수수 행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뇌물죄 요건 중 ‘금품 수수’ 법 조문을 너무 액면 그대로 해석한 것 아닌가. 법 조문에 얽매여 상식을 놓쳤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사법부의 책임성’이라는 말이 있다. 법관이 자기 판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 책임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책임과는 다르다. 일반적 책임은 잘못한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이를 희생적 책임이라고 한다. 반면에 법관의 책임은 ‘설명할 책임’이다. 왜 그렇게 판결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서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받아야 할 책임을 말한다. 국민이 판결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면 그 법관은 설명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된다. 곽상도 전 의원 무죄 판결에서 재판부는 고위 공직자 출신 아버지의 아들에게 50억원이라는 거액을 준 게 어떻게 아버지를 보고 준 게 아닌지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상민 장관 탄핵은 정치에 얽매여 법리를 무시했다. 곽상도 무죄 판결은 법 조문에 얽매여 상식을 무시했다. 법 운용에서 법리나 상식을 지키지 못하면 겉보기에는 합법일지라도 실제로는 불법이고 비법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학교 특임교수 2023-02-12 15:22:36
- [김낭기의 관점]이재명 대표, 범죄 혐의 못지않게 큰 문제는 '법치 훼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러 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제1야당 대표가 잡다한 범죄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것은 우리 정당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받는 범죄 혐의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 관계자들이 보이는 ‘법치 훼손’ 언행이다. 법치의 핵심 가치는 '법 앞에 평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제1야당 대표는 마치 법 앞에 평등에서 예외라도 되는 듯, 아니 예외가 돼야 한다는 듯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 이 대표가 검찰 소환 통보에 대응하는 모습부터가 그렇다. 검찰은 지난 16일 대장동 사건 등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오는 27일과 30일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주중에는 일을 해야 하니 27일이 아니라 (토요일인) 28일에 출석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어 당대표 비서실 명의로 "2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것으로 확정됐다"고 공지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28일 조사라는 것은 수사팀과 협의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할 범위와 내용 등이 상당한 점을 고려해 두 차례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변호사를 통해 구체적인 출석 일정을 통보했으나 이 대표가 일방적으로 언론을 통해 28일 10시 30분이라고 출석 의사를 표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석 일정 임의로 결정 무슨 일이든 양측이 협의 중일 때 ‘확정’되려면 양측이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자기 일방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이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 측은 검찰과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석 일정이 확정됐다’고 공지했다. 출석 횟수도 이 대표 임의로 한 번으로 했다. 출석하는 날을 평일이 아닌 휴일로 정한 것은 더욱 특이하다. 공무원인 검찰 직원들도 토요일엔 쉰다. 이 대표가 28일 출석하면 수사 담당 검찰 직원들은 쉬지 못하고 근무해야 한다. 이 대표에게 평일이 일하는 날이듯 검찰 직원들에게도 평일이 일하는 날이다. 이 대표는 자기는 평일에 일을 한다면서 검찰 직원들에게는 평일이 아닌 휴일에도 나와 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령인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검사가 피의자를 소환할 때 일정 등을 피의자 측과 협의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검사가 피의자 사정을 고려해서 소환 일정을 잡으라는 취지지 피의자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일반 국민이라면 이 대표처럼 출석 횟수와 일정을 자기 편한 대로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통할 수 없는 일도 자기에게는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법 앞에 평등'을 부정하는 일이다. 자기는 법 위에 존재하는 듯 남들과 다른 특별 대우을 요구하거나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 측이 법 앞에 평등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작년 12월 21일에 그 달 28일 검찰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성남FC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였다. 이때 이 대표 측근은 “부장검사가 아니라 성남지청장이 당대표 비서실장에게 연락해 예우를 갖춰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동아일보가 그달 27일 보도한 내용이다. 당시 이 대표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28일 나갈 수 없다며 검찰과 소환 일정을 협의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 측근이 ‘부장검사가 아닌 지청장이 연락하는 예우’를 갖추라고 했다는 것이다. 상대가 제1야당 대표이니 검찰 중간 간부가 연락하는 것은 무례이고 기관장인 지청장이 직접 연락해야 예우에 맞는다는 얘기다. . 지청장 아닌 부장검사가 연락하는 게 무례? 일반 국민이라면 기관장은커녕 수사 검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가 통보하는 일도 없다.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통보하지도 않는다. 검찰 일반 직원이 전화로 통보하거나 수사 담당 검사 명의로 된 출석요구서를 보낸다.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출석요구서를 보내게 돼 있다. 이 대표에게 수사 담당 검사가 아니고 이 검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가 연락한 것만 해도 일반 국민들에 비해 예우를 갖춘 것이다. 이 대표 측은 이것도 모자라 기관장인 지청장이 직접 연락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작년 9월 6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을 때는 서면 진술서만 보내고 출석은 하지 않았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의 불출석을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전날 의원총회에서)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한 출석 요구이니 응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들이 많았다. 출석 요구는 터무니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기자들이 안호영 수석대변인에게 ‘일반인들도 고발을 당하면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데 당대표라는 이유로 서면 조사만 받으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안 수석대변인은 “서면 조사 요구에 응하면 굳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검사는 피의자를 소환하기 전에 서면 조사로 대체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도록 돼 있다. 서면 조사를 할지, 소환 조사를 할지는 검사가 판단할 일임이 명시돼 있다. 피의자가 판단하는 게 아님이 명확하다. 검찰은 이 대표에게 소환을 통보했지 서면 진술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임의로 서면 진술서만 보내고 출석하지 않았다. 안 수석대변인은 '서면 조사 요구에 응하면 굳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해 피의자인 이 대표에게 서면 진술이나 출석 중 선택할 권리가 있는 듯이 주장했다. 이 모두가 이 대표는 법 위에 존재함을 자처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언행이다. 일반 국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이 대표가 제1야당 대표임을 감안해 소환 일정 등에 대해 얼마간 예우를 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정한 수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일반 국민들보다 월등히 특별한 대우를 한다면 곤란하다. 그건 법 앞에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 측이 기관장이 연락해야 한다든지, 소환 조사 대신 서면 조사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월등한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법 위 존재인 듯 잇달아 특별 대우 요구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을 하기 때문에 검찰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선이 끝난 뒤 경쟁 후보였던 사람에 대해 꼬투리를 잡아 느닷없이 수사를 시작했다면 정치 보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표 수사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이 대표가 받는 혐의는 모두 재작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그 뒤 대선 기간 중에 터졌다. 대선 이후 갑자기 수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대선 이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다. 이게 왜 정치 보복인가? 대선 경쟁 후보였으니 그냥 덮어둬야 하나?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도 맞지 않다. 야당 탄압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야당 인사들이 정권을 비판하면 이를 막으려고 수사할 때 쓰던 말이다. 당시 정권은 야당 인사들 뒤를 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혐의, 심지어 간통 혐의를 씌워 수사했다. 지금 검찰은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활동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 대표 개인 비리를 수사하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야당 탄압인가? 메릭 갈런드(Merrick Garland)는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이다.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시절에 기밀 문서를 유출한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트럼프 행정부 출신 검찰 고위직을 임명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우리로 치면 윤석열 정부 법무부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을 지낸 인사를 윤석열 정부 비리를 수사할 특별 검사에 임명한 격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일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자 보도에서 "메릭 갈런드 장관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수사에 트럼프 정부 출신을 특검으로 임명한 의도는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법 앞 평등' 무너지면 법치 무너져 갈런드 장관은 2021년 3월 법무부 장관 취임 연설에서 '법 앞에 평등'을 강조했다. "우리가 성공하고 미국민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법무부의 오랜 규범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당과 권력, 사회적 지위, 경제적 차이 또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다른 규칙은 없다”고 했다. 갈런드 장관의 말은 일차적으로 검찰과 경찰 등 법 집행을 담당한 공직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러나 ‘정당과 권력,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규칙은 없다’고 한 말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새겨들을 만하다. 누구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고, 그래서 누구한테나 똑같은 규칙이 적용돼야 함을 강조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11조 ①항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분을 지어 다르게 대우하는 게 차별이다. 지위와 권세에 관계없이 법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게 '법 앞에 평등'이다. 특별 대우를 요구한다면 '법 앞에 평등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다. 법 앞에 평등 원칙이 흔들리면 법치가 흔들리게 된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는 그것으로 법을 피해 가거나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할 것이다. 돈도 권력도 없는 일반 국민은 정당한 결과로서 불리한 처분을 받아도 ‘가진 게 없어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는다’며 법을 비웃을 것이다. 이래서는 법치가 바로 설 수 없다. '법 앞에 평등'을 훼손하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의 언행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 교수 2023-01-24 15:35:15
- [김낭기의 관점]국정 개혁 시동 건 윤 대통령, 설득력과 정치력 시험대에 섰다 ‘혁명보다 어려운 게 개혁’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개혁의 길은 험난하다는 뜻이다. 개혁에는 숱한 저항과 반발이 따른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저항과 반발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과 정치력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15일 국정 과제 점검 회의에서 노동·연금·교육을 3대 개혁 과제로 선정하고 “개혁은 인기가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했다. 국정 개혁을 선언한 윤 대통령은 이제부터 리더십과 정치력 검증의 시험대에 서게 됐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 중 최우선 과제로 노동 개혁을 꼽았다. ”노동 문제가 정쟁과 정치적 문제로 흘러버리면 정치도 망하고 경제도 망하게 된다. 노동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삼류, 사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간에도 같은 노동에 대해 같은 보상을 받는 체계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노동 개혁의 방향으로 노사 법치주의 확립,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합리적 임금 체계 확립 등을 제시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 인기 없지만 꼭 완수" 윤 대통령은 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연금 이야기를 꺼내면 표가 떨어진다고 해서 지난 정부 땐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번 정부에서는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피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으로 ‘지금보다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아’ 연금 재정을 안정화시키는 내용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월급에서 내는 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36년까지 15%로 올리고,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현행 62세(2033년까지 65세로 상향)에서 2048년 68세로 높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교육 개혁의 핵심은 학생 맞춤형 교육, 지방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정 과제 점검 회의에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해 “학생들이 일률적인 종이 교과서 대신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자기 수준에 맞는 내용을 찾아서 공부할 수 있게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 “지방 맞춤형 교육을 위해 지방 대학이 지역 발전과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교육부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과감하게 넘기고, 대학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건강보험 개혁도 중점 개혁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난 5년간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보 무임 승차를 방치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을 파탄시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건보 개혁이 시급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건보 개편 방향으로 건보 급여와 자격 기준 강화, 건보 낭비와 누수 방지, 의료 사각지대 지원 강화를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보험 적용 축소’가 아니라 ‘보험 적용 기준의 합리화’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노동·연금·교육·건보 개혁 추진은 문재인 정부 정책에서 생긴 부작용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2020년 건보 보장률 70%’라는 목표를 내걸고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3800여 개 항목에 단계적으로 건보를 적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투입된 예산은 30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다. 이로 인해 건보 재정 수지가 2018년 사상 처음으로 2000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크게 악화됐다.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2조8000억원, 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 부작용 바로잡기 일환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문제는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2042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 바닥날 것이라며 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고령화와 저출산 심화로 인구 구성이 현행 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힘든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어 연금 개혁 목소리가 커지던 때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개혁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연금 재정 고갈 우려가 커지는데도 방치한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기존 60세에서 2033년까지 65세로 늦추고,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낮추기로 했던 것과 대비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문제에서는 문재인 정부 주요 지지 세력인 민노총에 끌려다니다시피 했다. 민노총이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적극 제지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민노총은 우리 사회에 권력 집단으로 군림하며 각종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좌파 정부에서 우파 정부로 바뀌면 좌파 정부 정책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우파 정부에서 좌파 정부로 바뀌면 우파 정부 정책의 부작용을 바로잡을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게 민주주의에서 정권 교체가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다.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좌우파 정책이 균형을 이뤄 나라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윤 대통령의 개혁 추진은 정권 교체의 효과를 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개혁에 성공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하나는 개혁 분야별로 정밀한 개혁 청사진을 만드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개혁의 당위성과 방향만 제시한 상태다. 이제부터 구체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나 현실성 있으면서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개혁안을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저항 극복할 리더십과 정치력이 관건 더 큰 문제는 개혁에 따르는 저항과 반발을 극복하는 일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노사 법치주의, 보상을 연공서열 중심에서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임금 체계 개선, 노동 수요가 몰리는 특정 시기에 노사 합의로 주당 근무 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하는 노동 시간 유연화 등에 대해 노조가 반발하고 저항할 것은 뻔하다.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는 건보 개혁에는 당장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올 것이다. 건보 적용 기준을 지금보다 좁히고 까다롭게 하면 일반 국민들도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역시 당장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면 국민들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개혁에 대한 저항과 반발을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치력에 달렸다. 리더십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노동·연금·교육·건보 개혁을 왜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개혁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안을 마련할 때도 왜 그런 개혁안이 필요하고 중요한지 개혁안의 합리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의 당위성과 개혁안의 합리성에 대한 설득은 특히 현 정부 개혁 방향과 내용에 부정적인 사람이나 단체에 집중해야 한다. 야당과 노조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언론, 지식인이 그들이다. 적극적 반대자는 소극적 반대자나 중립파로 만들고, 중립파는 지지파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정치력’이 무엇인지를 피부에 와닿게 설명한 사람으로 작고한 김상현(1935~2018) 전 국회의원을 들 수 있다. 김 전 의원은 6선 의원으로 여야 정당을 넘어 많은 정치인들과 폭넓은 교류 관계를 맺었다. 정계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지위나 학력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정치의 요체를 한마디로 하면 내 편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거나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는데 그래서는 결코 내 편을 늘릴 수 없다.”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포용해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바로 정치력임을 말하고 있다. 정치력 핵심은 반대자 포용 민주당은 현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틈만 나면 김건희 여사 ‘스토킹’에 나선다. 민노총을 비롯한 좌파 단체들은 연일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여기에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가세하고 있다. 대학과 언론계에도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 모두 윤 대통령이 싫어하거나 윤 대통령을 싫어할 만한 사람들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 자체가 껄끄럽고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를 하려면 적극적으로 만나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력를 발휘해야 한다. 최고 정치 지도자인 대통령에게는 정치력이 더욱더 요구된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윤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개혁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개혁으로 손해를 볼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개혁에 저항하는데 반해 개혁으로 이익을 얻을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당장의 손해는 눈에 보이지만 먼 미래의 이익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미온적 지지자를 적극적 지지자로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말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지지 세력을 넓혀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충고와 지지 세력을 넓히려면 반대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김상현 전 의원의 충고를 윤 대통령이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2022-12-25 13:2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