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논설위원장
kjwon54@gmail.com
- 아주경제 수석논설위원
- 가천대 교수
- 前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소장
- [곽재원의 Now&Future] 챗GPT 500일… AI 산업의 우리나라 글로벌 경쟁력을 물었더니 [곽재원 논설위원장] “ 질문; 생성형 AI인 챗GPT가 출시된 지 4월 13일로 500일이 되었다. 그동안 챗GPT가 급속한 속도로 우리 사회에 수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를 몇 개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응답;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는 진행형이다. ^ 자동 번역 및 통역 기술의 발전으로 언어 장벽이 줄어 들었다 ^ 의료 및 의학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진단 및 치료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 금융 분야에서는 AI를 통한 데이터 분석과 예측을 통한 금융 상품이 개발되고 있다 ^ 교육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맞춤형 학습 및 교육 콘텐츠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 자동차 산업에서의 운전 보조 시스템 및 자율 주행 기술이 발전되고 있다 ^ 물류 및 제조 산업에서 로봇 및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어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다 ^ 고객 서비스 분야에서 챗봇을 통한 고객응대가 더욱 개선되고 있다 ^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AI가 창의적인 작품을 생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앞으로 AI의 진보에 따라, AI 기술은 보다 인간과 유사한 학습, 추론, 결정 기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사회에서는 더 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따른 윤리적, 법적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챗GPT와 대화한 내용을 일부 소개해 봤다. 지금 챗GPT와의 대화는 기술발전에서부터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 정치적 변화, 사회 및 문화운동, 경제발전, 우주탐사, 의료혁신, 디지털 혁신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게 이뤄진다. 챗GPT를 필두로 생성형 AI가 지난 500일 동안 몰고 온 무수한 변화를 간결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연일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챗GPT는 GPT-3, GPT-3.5 에서 최신 모델인 GPT-4로 진화하면서 그 성능 향상에 많은 전문가들이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미 MIT 미디어랩과 도쿄대 등은 "인류는 지난 몇 달 동안 루비콘 강을 건넜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챗GPT의 등장으로 생성형 AI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오픈AI라는 인공지능 개발 회사가 발표한 이 기술은 며칠 만에 비즈니스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물을 생각하는 방식을 일거에 바꾸어 놓았다.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버튼 클릭 한 번으로 편지, 회고록, TV 대본 등 거의 모든 것을 작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용자가 할 일은 몇 가지 핵심적인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하는 것뿐이다. 이 기술은 매우 흥미진진하면서도 동시에 저널리스트부터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일반 대학의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을 예감하게 한다. 결국 일반인의 눈에는 그것이 AI가 만든 것인지, 인간이 쓴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이 문제는 생성형 AI의 도덕적 사용에 대한 경종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AI가 자신의 역할을 멸종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TV와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을 약 5개월에 걸친 파업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지난 500일 동안 우리가 실감한 것은 생성형 AI가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 비즈니스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성장과 투자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22년 11월 챗GPT가 출시된 이후 생성형 AI 기능은 세계 경제에 연간 4조4000억 달러(약 620조원)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챗GPT는 검색의 개혁과 새로운 창조의 물결을 일으켜 기존 제품 로드맵을 바꾸는 요인이 되었다. 챗GPT는 기업들에게 AI 투자의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미 컨설팅회사 가트너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주요 기업 경영진의 45%가 AI 투자를 늘리는 이유로 챗GPT의 인기를 꼽았다. 수많은 기업과 일반 사용자들이 생성형 AI의 혜택과 위험을 목격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과 창의적 프로세스의 미래, 혁신의 윤리와 규제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질문도 많이 등장했다. AI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AI의 진보를 방치하면 챗GPT의 영역을 넘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챗GPT가 업무와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트래픽 수치가 말해준다. 시밀러웹사에 따르면 2022년 11월 30일 데뷔 이후 챗GPT의 모바일 및 데스크톱 웹 트래픽은 공개 당일 15만3000회, 2022년 12월에는 2억6600만회, 2023년 10월에는 17억회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지금은 20억회를 넘어섰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어떤 의미에서 아직도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포브스지가 보도한 챗GPT 1년 (2023년)의 발자취는 매우 흥미롭다. 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폭넓은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챗GPT와 생성형 AI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2월: 챗GPT 공개 후 불과 2개월 만에 오픈AI는 유료 버전인 챗GPT 플러스를 발표했다. 3월: 오픈AI가 챗GPT용 새로운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와 음성인식용 AI 모델인 휘스퍼를 공개하고 동시에 스냅, 인스타카트, 샵파이와의 제휴도 발표했다. 몇 주 후 오픈AI는 익스피디아, 카약, 크라나, 슬랙, 오픈테이블, 자피어 등 주요 브랜드가 이름을 올린 다양한 신규 플러그인을 발표했다. 한편 챗GPT가 다양한 주제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부추기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는 100건 이상의 사례가 보고됐다. 4월: 챗GPT의 오보와 '허시네이션'(환각)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오픈AI가 AI의 안전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발표했다. 모델 GPT-4가 GPT-3.5에 비해 사실에 기반한 답변을 반환할 가능성이 40% 향상되었다고 밝혔다. 5월: 오픈AI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샘 올트먼은 미국 상원에서 열린 첫 AI 관련 공청회에서 AI의 위험성에 대한 의원들의 다양한 질문에 답하고 정부 규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GPT-4에 대한 조기 액세스 제공 등 여러 가지 새로운 기능을 갖춘 챗GPT의 새로운 iOS 앱이 애플 앱스토어에 등장했다. 6월: 챗GPT에 처음으로 이용 감소가 나타났으며, 초여름 정체기에 웹 트래픽이 10% 감소했다. 같은 달, 챗GPT 관련 우려가 2건의 소송으로 발전해 오픈AI의 데이터 수집과 콘텐츠 제작이 저작권법 및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소송이 제기됐다. 7월: 오픈AI를 비롯한 관련기업(앤서픽,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백악관과의 면담에서 AI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윤리적 개발에 대한 각 사의 계획을 논의했다. 8월: 오픈AI는 자사의 LLM을 사용하여 기업용 새로운 보안 및 개인 정보 보호 기능을 갖춘 기업용 챗GPT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9월: 새로운 멀티모달 기능을 통해 챗GPT에서 '보고', '듣고', '말하는' 방법을 새롭게 추가했다. 며칠 후 드디어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됐다. 10월: 같은 플랫폼 내에서 직접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DALL-E 3가 챗GPT플러스와 챗GPT 엔터프라이즈에 추가됐다. 같은 달, 바이든 대통령의 AI 관련 대통령령 서명을 앞두고 오픈AI는 다른 프런티어 모델 포럼 회원사들과 함께 AI의 안전을 위해 1000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했다. 11월: 오픈AI가 주최하는 첫 개발자 콘퍼런스 '데브데이(DevDay)'가 개최되어 챗GPT의 커스텀 버전을 쉽게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공개됐다. 11월 후반에는 이사회가 올트먼과 공동 창업자 그레그 브록먼을 갑작스럽게 해고했다가 다시 불러들이는 등 극적인 한 주가 있었다. 또한 챗GPT가 책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을 작성함으로써 미국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새로운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쨌든 챗GPT가 공개된 것을 기점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구글,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하이테크 기업이 생성형 AI에 뛰어들었다. 매일매일 흥미로운 기술 스토리가 쏟아져 나온다. 생성형 AI는 글로벌 기술산업과 동의어가 되었다. 역사상 이보다 더 큰 영향을 이토록 빠르게 미친 기술은 없다. 그렇다면 챗GPT 이후 노동 시장은 정말 AI로 대체되고 있을까? 노동시장 동향 등을 분석하는 블룸베리가 챗GPT가 출시되기 한 달 전인 2022년 11월 1일부터 2024년 2월 14일까지 500만명의 프리랜서 일자리를 조사해 그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생성형 AI 기술의 등장 이후 프리랜서 노동 시장에 눈에 띄는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작문, 번역, 고객 서비스 업무가 크게 감소한 반면 비디오 편집과 제작, 그래픽 및 웹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 직종에서는 작업량이 각각 39%, 8%, 10% 증가했다. 한편 일자리가 증가한 AI 관련 기술로는 AI 콘텐츠 생성, AI 에이전트 개발, 오픈 AI의 챗GPT API 통합, AI 앱 개발 등이 증가세를 보였다. 이 조사는 AI 기술 발전이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AI 도구가 충분히 정교하지 않은 분야나 창의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여전히 인간 노동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챗 GPT와 대화를 나눴다. “질문; 생성AI를 포함한 전체 AI 분야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고 보는가. 아울러 한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를 몇 가지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응답; 한국은 글로벌 AI 경쟁력에서 7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 전략과 인프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상업화와 인재 면에서는 점수가 낮은 편이다. AI 산업 분야에서도 한국은 62개국 중 6위를 기록하며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재 육성과 AI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경쟁력 있는 AI 기업으로는 네이버가 있다. 현재 개발자들 사이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네이버가 카카오, 삼성, 업스테이지보다 우위에 있다. 주목받는 AI 스타트업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부회장이 비밀리에 방문한 국내 AI 스타트업 5곳으로 루닛 테크놀로지, 마인드 AI, 스캐터랩, 업스테이지, 프렌들리를 들 수 있다. ” AI 전문가들은 ’AI 산업혁명‘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전 세계 이용자들이 매일 챗GPT에 많은 정보를 보내면서 자가증식적으로 AI가 진화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글로벌 AI 기술경제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층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4-04-17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몰려오는 '트럼프 2.0' 파고 …일본의 로비 전략은 [곽재원 논설위원장]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나라가 아수라장이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지고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도 최근의 선거는 여야를 구별 못할 정도로 ’쟁점의 희석화‘가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야가 내놓는 매니페스토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가짜 뉴스의 남발과 현혹, 인신공격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이젠 SNS(사회관계망)에 더해 AI(인공지능)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라 선거 후에도 그 후유증이 간단히 수습될 것 같지 않다. 총선으로 인한 총체적 난국이다. 한국이 총선을 치르는 오는 4월 10일에 일본 총리는 워싱턴을 방문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미·일동맹이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유지한다는 인식을 공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당파를 초월한 미·일 결속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기시다 총리는 4월 10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하고, 11일에는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 이후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지방을 시찰한다. 일본 총리가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9년 만이다. 지난 2015년 미국 의회 연설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희망의 동맹'을 주창했다. 미·일 양국이 "힘을 합쳐 세상을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세계 속의 미·일동맹'을 확인했다. 일본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후방 지원에 나선 시기였다. 전후 미·일 관계는 오랫동안 일본이 기지를 제공하고 미국은 군사적 억지력으로 극동지역을 안정시키는 역할 분담이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자위대의 국제 기여를 확대했고, 2015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제한적으로 용인하는 안보 법제를 정비했다. 지금 세계는 두 개의 전쟁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을 받는 우크라이나, 이슬람 조직 하마스와 싸우는 이스라엘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세계 2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중국과는 군사력과 첨단 기술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기시다 정권의 방위비 증액과 우크라이나 지원을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1월 일본 총리의 방미와 관련해 '세계에서 일본의 리더십 역할 확대'를 보여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미국 의회가 연설 기회를 주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 총리는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과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대통령에 복귀할 경우의 대비도 염두에 둔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해 트럼프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면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난 트럼프 정권에서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강화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패권주의적 움직임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해협과 오키나와, 센카쿠열도 등 일본 주변의 안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물론 지나친 비관론일 수 있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의 미국 지방 방문은 '만약의 경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기업이 진출해 현지 고용과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곳을 시찰할 것이라고 한다. 후보지인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도요타자동차가 전기차(EV) 등 차량용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2025년 가동할 계획이다. 일본 총리의 시찰은 일본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와 미국 고용에 대한 기여를 미국 여론에 다시 한번 호소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공장에는 5000명 이상이 근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 등 양국 간 단기적인 손익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노린 행보다. 트럼프 전 정권이 출범한 2017년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당시)은 미국에 1조엔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총리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시찰은 바이든 정권을 향한 의미도 있다. 바이든 정권은 2022년 전기자동차 등의 육성 대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주요 정책으로 통과시켰다. 일본 정부로서는 바이든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탈탄소화 노력을 독려하는 메시지도 겨냥한 두 마리 토끼 잡기인 셈이다. 현재로선 트럼프 복귀(트럼프 2.0)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여러 변수가 있지만 '트럼프 2.0'을 제대로 두려워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게 일본 정치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과 싱크탱크들이 일제히 트럼프2.0 전망과 분석 보고서를 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이 소개한 좋은 사례가 있다. 지난 2016년 9월 당시 주미대사였던 사사에 겐이치로(현재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는 대통령 선거를 두달 정도 앞두고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사위로서 선거전을 지휘하는 쿠슈너와 뉴욕에서 면담했다. 그는 "일본은 미국을 중시하고 있다. 당선되면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전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날 밤, 사사에 대사는 쿠슈너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는 "총리가 전화하고 싶다"고 전하자 비서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즉각 아베 신조 총리와의 회담이 성사됐다. 유럽 정상들이 놀란 미·일정상 관계의 초석이 이렇게 쌓였다. 대미 투자 실적을 꼼꼼히 설명하는 전략도 트럼프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집권 자민당의 아마리 아키라 전 간사장은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아베 전 총리 시절의 협상 경험을 살려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당시 직원을 관저로 복귀시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베 캠프의 참모들은 모두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는 거래하는 사람이다. 재선되더라도 성격이나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선거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종횡무진으로 자기 뜻대로 하려는 힘이 더 작용한다"고도 했다. 그러한 트럼프도 손익계산서를 이용해 협상한 아베 총리를 '천재적'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아마리 전 간사장은 "미국에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동맹국 내에서 당신의 위치를 높여주기 때문에 이익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복귀 시 중국에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어떻게 미국을 유도해 디리스킹(위험 감소) 방식을 취하도록 할 것인지, 누가 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정상 간 대화가 아니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자민당 부총재도 트럼프에 대한 로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아소 부총재는 지난 1월 워싱턴을 방문해 명문 재벌로 미국 상원의원을 지낸 존 록펠러 4세를 만났다. 두 가문의 오래 된 인연을 활용하려는 의도다. 일본은 1952년 세계은행에 가입해 전후 부흥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전력 개발과 신칸센 등 인프라 구축에 사용했다. 당시 총리였던 아소의 할아버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요청을 세계은행에 전달한 것은 록펠러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 방미 때도 이런 관계를 통해 트럼프를 만나려 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소 부총재는 이런 인연에 더해 바이든 대통령과는 오바마 정부 시절 부통령 시절부터, 트럼프와는 아베 정부 시절 부총리로 인연을 맺었다. 만약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아소는 정권교체기의 파이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성공경험과 로비 전략이 다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를 대비하는 일련의 포석은 미·일간 지하수맥의 두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의 행보는 이번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결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을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미즈호 리서치의 야스이 아키히코 조사부장은 “어떻게 하면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극단적인 발언과 공약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트럼프 복귀의 리스크를 3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 미국의 '사적화‘(私的化)다. 권위주의로 의회를 경시하고 관료들을 교체한다. 민주주의 경시로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저하된다. 둘째, 본원적 미국 우선주의다. 이민자 유입을 제한하고 무역적자를 빌미로 삼는다. 수입품에 대한 10% 관세안이 대표적이다. 셋째, 중장기 과제 경시다. 화석연료 의존도로의 회귀, 감세 등 재정 기강 해이, 인종 갈등 재점화 등이 거론된다. 경제적으로는 달러 약세, 저금리, 수입 관세, 이민 제한으로 인한 인력 부족 등 전반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복귀는 선거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노골화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강권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 대 중국 관계, 다자간 협력 유지 등으로 민주주의 세력의 결속을 일본이 유럽 세력에게 촉구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이유다. 트럼프 2.0이 현실화된다면 그 파고가 일본보다 한국에 훨씬 더 높고 강하게 밀려올 수 있다. 정부든 기업이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걱정하기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은 개별 사안이 아닌 종합적인 시뮬레이션을 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익숙해져 왔고, 이를 전제로 비즈니스를 최적화해 온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라는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적으로는 새로운 외교의 대안을 구상해야 한다. ‘트럼프2.0' 리스크가 점차 높아지면서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미국의 외교·안보와 경제의 변화에 대비하는 모습과 총선을 앞두고 헐뜯기와 파벌경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모습이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외향화하는 일본의 밝은 미래와 내향화하는 한국의 불안한 미래를 보는 것 같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4-03-18 05:00:00
- [곽재원의 Now&Future] 포스코 장인화號 극복해야 할 과제 셋 [곽재원 논설위원장] 포스코그룹이 오는 3월 21일 주주총회를 거쳐 제10대 장인화 회장 체제를 출범한다. 장인화 차기 회장(68)은 포스코그룹 경영의 3개 핵심 축을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올해 3년 차를 맞는 7대 핵심 사업 추진 전략을 확실한 경영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두 번째는 포스코 50년(1968~2018)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 ‘포스코 100년’ 비전을 겨냥한 넥스트 50년의 굳건한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셋째는 2025년 ‘민영화 25년’에 걸맞은 완벽한 지배구조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출처=포스코그룹] 7대 핵심 사업으로 미래 성장 기회 창출 포스코그룹은 공급망 재편,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전쟁 등으로 촉발된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고 역량을 길러 2024년을 철강, 이차전지 소재, 리튬·니켈, 수소, 에너지, 건축·인프라, 식량 등 7대 핵심 사업에서 미래 기회를 창출하는 원년으로 삼았다. 7대 핵심 사업은 2022년 최정우 회장이 기치를 내건 것으로 포스코그룹을 철강회사에서 소재·에너지 회사로 바꾸는 사업 전환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장 회장 체제에서도 7대 핵심 사업은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이지만 관건은 포스코그룹의 경영 실적이다.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HD)가 최근 발표한 2023회계연도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3조531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건설 수요 침체 등으로 자국산 철강재가 수출로 돌아서면서 수급 균형이 깨져 판매가격이 하락했다. 매출액은 같은 기간 중 9% 감소한 77조1270억원에 그쳤다. 포스코에 따르면 대표 품종인 탄소강 단가가 2023년에 전년 대비 11% 하락했다. 하반기에는 중국의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익에 타격을 입었다. 연간 조강 생산량은 2022년 대비 4% 증가한 3568만톤, 제철소 가동률은 87.7%였다. 성장사업으로 분류되는 배터리 소재 자회사인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의 매출은 전년 대비 44% 늘어난 4조7600억원, 영업이익은 78% 감소한 36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기자동차(EV) 판매 둔화에 따라 배터리업체들이 감산에 나서면서 배터리 소재 수요도 감소했다. 원재료인 리튬 가격 하락으로 1482억원의 재고평가손실을 기록했다. 포스코의 최대 라이벌인 일본제철을 보자. 일본제철은 2024년 3월기 연결 순이익이 전년 대비 32% 감소한 4700억엔(약 4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기존 예상보다 500억엔 높아진 것으로 이익 감소 폭이 줄어든다. 연간 배당금도 160엔으로 기존 예상보다 10엔 많아진다. 원재료 가격이 예상보다 낮아져 강재 판매가격과의 차액인 마진이 확대되는 것이다. 매출액은 13% 늘어난 9조엔, 사업이익은 13% 줄어든 8000억엔. 재고평가손익 등을 제외한 실적 기준 사업이익은 8900억엔으로 기존 예상보다 500억엔 웃돌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주력인 제철사업의 사업이익은 13% 감소한 7500억엔이다. 중국의 경기 둔화로 아시아 철강재 시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2023년 11월 시점의 예상보다 철강재 가격이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앞서 발표한 2023년 4~12월기 연결 실적은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한 6조 6418억엔, 순이익은 15% 감소한 4409억엔을 기록했다. 포스코에 비해 일본제철의 상황이 훨씬 좋아 보인다. [출처=포스코그룹] 진정한 민영화와 포스코그룹 지배구조의 확립 ‘포스코를 알면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대통령실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기업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한국 정치의 일면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포스코의 경우 당초 국영기업(1983년 기준 정부 소유 비율 92%)이었으나 정부는 1998년 7월 3일 정부와 산업은행 보유 지분 26.7%를 1인당 3% 한도로 민간과 외국인에게 분산 매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정부와 산업은행 보유 주식이 여러 차례 분할 매각되었고, 2000년 10월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36%를 매각하면서 완전히 '민영화'되었다. 그럼에도 포스코의 인사는 정권의 입김에 계속 휘둘려 왔다. 이번에도 포스코 회장 인사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부는 인사권을 가진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산업계에 폭넓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포스코는 국내 5위 기업집단으로 사업 분야도 철강, 상사, 건설 등 광범위하다. 그런데도 대기업 총수들이 수십 명 단위로 동행하는 대통령 외유에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최정우 회장은 단 한 번도 동행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영화 이후에도 최 회장까지 4명의 경영진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음으로 양으로 압력을 받아 임기 중 사임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에 따르면 2023년 아시아 지역 지배구조 평가에서 한국은 7위다.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문제로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에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한국 경제 발전을 뒷받침해 온 포스코는 이제 매출 100조원을 바라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중국 철강 대기업의 부상, 친환경 수소환원 제철 기술 확립, 배터리 소재 강화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포스코가 인사를 단행하는 와중에 일본제철은 미국 철강 대기업 US스틸 인수를 발표했다. 업계 재편이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포스코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일본경제신문은 “정권 눈치 보기가 만연한 내향적 경영이 지속된다면 세계 철강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출처=닛케이] 한·일 동시에 등장한 공학계 출신 수장 장인화 회장 내정자(68)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1988년 포스코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 입사했다. 연구 분야를 거쳐 신사업실장과 기술투자본부장, 철강부문장 등을 거쳤다. 이산화탄소(CO₂)를 다량 배출하는 철강업체들은 탈탄소화가 시급한 상황이라 기술에 밝은 그의 경험이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후 모두 공학계 출신이 수장을 맡아 온 전통에서 벗어나 이례적으로 재무 분야 출신으로 2018년부터 경영 전면에 나선 최정우 회장 겸 CEO(66)는 고문으로 활동할 전망이다. 최 회장은 2022년 철강, 상사, 건설, 전지소재 등 사업 자회사를 산하에 둔 지주회사로 전환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일본제철은 지난 12일 이마이 다다시(今井正) 부사장(60)이 4월 1일부로 대표이사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시모토 에이지(橋本英二) 사장(68)은 대표이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다. 이마이 사장 내정자는 1988년 도쿄대학 대학원(금속공학)을 수료한 뒤 같은 해 4월 신일철에 입사했으며 2007년 MIT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16년 집행임원, 2019년 상무집행임원 나고야제철소장, 2020년 상무이사, 2023년 부사장(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추진본부장, 전기로 프로세스 추진 프로젝트 리더)을 거쳤다. 1979년 히토쓰바시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하시모토 회장 내정자는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에 입사한 뒤 1988년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 졸업했으며, 1996년 이후 수출·해외사업을 담당했다. 주로 철강재 영업 분야를 거쳐 2009년 전무, 2013년 상무집행임원이 되어 브라질 합작회사 재건을 맡았고, 2016년 부사장을 지낸 뒤 2019년부터 사장을 맡았다. 이마이 사장 내정자는 옛 신일본제철 출신으로 최초의 기술계 사장으로서 최대 경영 과제인 탈탄소화 대응을 담당하게 된다. 경영 체제를 쇄신하고 탈탄소 대응과 해외 사업 확대로 '세계 최고'를 향한 성장을 가속화한다. 이마이 사장 내정자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세상을 보면 제조업에서는 기술직 출신이 사장이 되는 경우가 많고, 포스코 등 경쟁 철강업체도 마찬가지다. 일본제철은 전체 직원 중 약 3분의 2가 기술직이나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더욱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마이 사장 내정자는 기술 분야 출신이지만 경영기획 부문 임원으로 승진한 독특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그동안 '본사는 참모, 제철소는 현장주의'라는 역할 분담이 강했지만 본사와 현장 모두에 정통한 '전방위형'으로 차기 사장 유력 후보로 꼽혀왔다. 이번 사장 인사의 특징에 대해 일본제철 관계자는 "탈탄소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이 조건이 될 것"이라고 후임 사장의 조건을 꼽았다. 이마이 사장은 제철의 탈탄소화에 필수적인 전기로 추진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등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포스코그룹과 마찬가지로 일본제철도 탈탄소 대응이 시급한 경영 과제다. 일본 산업부문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CO₂) 배출원인 철강업계는 탈탄소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2030년까지 기술 개발과 노하우 축적을 얼마나 진전시킬 수 있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좌우하는 열쇠가 된다. 이마이 사장 내정자는 현재 6명의 부사장 가운데 최연소자 중 한 명이다. 탈탄소 대응은 몇 년 단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근 사장의 재임 기간인 5년을 넘어 장기 경영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사내에서 나온다. 일본제철을 재건한 하시모토 신임 회장이 중장기 경영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이마이 신임 사장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철은 2019년 4월 하시모토 사장 취임 첫해인 2020년 3월기 연결기준 4315억엔의 손실로 회사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제철은 2012년 옛 신일본제철과 옛 스미토모금속이 합병한 뒤 2017년 닛신제강을 인수해 3개 기업 통합 경영을 목표로 했지만 당시에는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당시 하시모토 사장은 국내 고로의 잉여 생산능력을 줄이는 등 사업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세토우치 제철소 구레지구(히로시마현 구레시)의 전면 휴업 등을 결정한 것도 그 일환이다. 영업에도 칼을 댔다. 자동차 회사 등 대형 고객사와의 '끼워팔기 가격'을 시정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해 가격 인상을 추진했다. 그동안 유럽 아르셀로미탈과 공동으로 인도 철강 대기업을 인수하고, 태국에서는 전기로 업체를 단독으로 인수하는 등 해외 사업 투자도 강화하며 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데 주력해 왔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경영의 대부분을 톱다운으로 진행한 당시 하시모토 사장은 2023년 3월기 연결 순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V자형 실적 회복세를 이끌어냈다. 취임 후 약 5년 만에 시가총액은 80% 늘어난 3조2000억엔까지 확대됐다. 이마이 신임 사장의 경영체제는 영업, 해외사업 등 각 분야에 정통한 다른 임원들과 협력해 경영 과제를 해결하는 구도가 될 전망이다. US스틸 인수 실현에는 노조의 반대와 규제 당국의 승인 등 불투명한 요소가 많다. 해외사업을 크게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제철은 철강업계에서 생산량뿐만 아니라 품질을 포함한 종합력으로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마이 신임 사장은 탈탄소화를 비롯한 다양한 난국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특히 2050년까지 4조~5조엔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 탈탄소화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가 주목된다. 장인화 신임 포스코 회장도 이마이 신임 사장과 마찬가지로 탈탄소화, 중국의 저가 공세를 포함한 많은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한·일 철강 대기업 수장의 경영 능력이 바야흐로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제철과 중국의 바오산철강을 제치고 포스코 신화를 재현하기 위한 장인화 신임 회장의 힘찬 항해를 기원해 본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4-02-16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다가온 AI 만능시대 … '회색 코뿔소'의 경고 [곽재원 논설위원장] 예상했던 대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AI 붐이 CES 2024에서 다보스로 옮겨붙고 있다. 지난 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는 ‘AI 모든 것’의 경연장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15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최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 박람회 'CES'에서 미국 스타트업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한 신제품이 대거 출품됐다. 2023년 폭발적으로 유행한 대화형 AI는 PC와 스마트폰에서 자전거 등 생활밀착형 제품에도 도입되며 'GPT 경제권'의 급팽창을 실감케 했다. 홍콩의 전기자전거 브랜드 '유토피아'는 챗GPT를 탑재한 신형 자전거를 공개했다. 핸들 부분에 부착된 단말기와 대화가 가능하며, 주변 가게를 찾아주거나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미국 기업이 전시한 고성능 보이스 리코더(음성 녹음기) 'PLAUD NOTE'는 자동으로 녹취록과 요약본을 작성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VW)은 자동차에 챗GPT를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생성 AI 붐이 스타트업 기업에서 대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지능화에서는 챗GPT 등 생성 AI를 활용해 조작성을 높이는 노력이 잇따랐다. 독일 BMW와 소니그룹과 혼다의 공동 출자회사가 생성 AI를 활용해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생성 AI의 기반 기술을 응용해 영상 인식의 정확도를 높여 자율주행과 운전 지원 시스템의 고도화가 가능해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전은 자동차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며, 이 분야에서 뒤처질 수 없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미국 테슬라가 크게 앞서고 있다. 오랜 기간 하드웨어를 주축으로 삼아온 완성차 업체들이 기업 체질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탈탄소화도, 지능화도 완성차 업체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국, 일본의 관련 기업들도 자사의 강점을 살리고 CES와 같은 자리를 활용해 협업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왔다. 이런 가운데 스위스 동부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논의되는 '신뢰의 재구축을 위하여'란 주제도 눈길을 끈다. 우크라이나, 중동 등 지역 분쟁과 안보, 기술과 AI, 기후변화 대응,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 4개 카테고리로 나뉘어 총 200여 개의 강연이 진행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역시 현지에서 기업 등이 메인 행사장 밖 건물을 빌려 '하우스'라는 특설 공간을 연 것이다. AI 관련 행사와 상담을 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메인 행사장 부지 내에 기업은 부스를 설치하지 못하고 다보스 시내 곳곳의 건물을 빌려 간판을 내거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인텔, IBM, 메타 외에도 인도의 재벌계 IT 대기업인 타타 컨설팅 서비스(TCS)는 자사 하우스에 관계자들을 초청해 문장과 동영상을 결합한 새로운 AI 기능을 선보였다. 도쿄대 등이 설립한 'AI 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18일 미국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격변하는 세계에서의 기술'을 주제로 강연한다. 이러한 AI 붐에도 불구하고 AI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WEF 조사에서 향후 2년간 예상되는 가장 큰 위험으로 AI로 인한 허위정보 확산을 꼽은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이 조사에서는 '위험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국경을 초월한 대규모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유럽연합(EU)은 AI의 위험을 4가지로 분류하고 단계별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는 포괄적인 규제안에 대체로 합의했다. 미국 정부도 새로운 AI 서비스를 대상으로 한 규제를 도입하는 등 국제적인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 베라 요우로바 부위원장은 17일 다보스 회의 강연에서 AI 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도쿄대와 소프트뱅크가 설립한 비욘드 AI 연구추진기구도 15일 AI 진흥책뿐 아니라 AI의 안전과 관리 방식, 전문 인력 교육에 대해 논의한다. 세계는 지금 놀라운 속도로 변모하고 있다. 무력 분쟁이 급증하고, 세계 에너지 자원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AI의 발전도 눈부시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듯하다. 중동 정세, 전기차 보급, 비만 치료 등의 분야를 보더라도 불과 1~2년 전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국제정치학자 이안 브레머가 이끄는 유라시아그룹은 ‘AI 거버넌스 부족’을 2024년 10대 리스크 중 하나로 꼽으면서 2024년에는 규제 당국의 노력이 좌절되고, 하이테크 기업들은 거의 제약을 받지 않고 훨씬 더 강력한 AI 모델과 도구가 정부의 통제를 넘어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주요 AI 기업들은 백악관에서 자발적인 표준 제정을 약속했다. 미국, 중국, 그리고 G20 대부분이 AI 안전에 관한 ‘블레츨리 파크 선언’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획기적인 AI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EU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AI 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AI 혁신은 거버넌스 노력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라시아 그룹은 2024년 AI 거버넌스 부족을 초래하는 네 가지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정치적인 문제다. 정책과 제도에 관한 의견 차이로 인해 낮은 수준의 제한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각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합의할 수 있고, 테크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의 제약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라면 AI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규제를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반 모델의 테스트는 임시방편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오픈소스 또는 폐쇄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AI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가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타성이다. AI가 더 이상 '핫이슈'가 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전쟁, 세계 경제 등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다른 우선순위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에서 어떤 것이 시급하고 어떤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결정이 중간에 좌절될 것이다. 셋째, 협력에서의 이탈이다. AI의 가장 큰 이해관계자들은 지금까지 AI 거버넌스에 협력해왔다. 테크 기업들이 자율적인 기준과 가드레일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고 그 막대한 이익이 분명해지면서 지정학적 이점과 상업적 이익의 유혹이 강해지면서 정부와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참여했던 구속력 없는 협정과 체제에서 탈퇴하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기술적 속도다. AI는 오픈AI의 차세대 대규모 언어 모델인 GPT-5가 올해 선보일 예정이지만, 몇 달 뒤에는 아직은 상상할 수 없는 다음의 돌파구가 등장해 진부해질 것이다. AI 거버넌스의 핵심 과제는 AI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확장을 촉진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고, AI를 통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칫하면 AI는 거의 통치되지 않는 소셜미디어와 같은 무법천지가 되어 악용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가짜뉴스 확산, 트럼프 정권의 부활도 2024년의 큰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40억명이 투표에 나서는 이해에 선거를 앞둔 국내외 행위자들(특히 러시아)이 AI를 이용해 선거 캠페인에 영향을 미치고, 분열을 조장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전례 없는 규모로 정치적 혼란을 확산시키려 할 것이다. 서방 사회가 크게 분열되어 있고, 유권자들이 소셜미디어의 에코체임버를 통해 정보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 조작이 용이할 것이다. 오늘날 글로벌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AI가 생성하고 알고리즘에 의해 구동되는 허위 정보이며, AI가 생성한 허위 정보는 선거뿐만 아니라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진행 중인 지정학적 분쟁을 악화시키는 데에도 사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AI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해왔지만, 2024년에는 국가와 기업을 포함한 새로운 지정학적 주체가 획기적인 AI 역량을 개발하고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과 정보 활동 및 국가 안보를 위한 고급 애플리케이션이 포함된다. 오픈소스 AI는 악의적인 행위자들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여 우발적 사고의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 올해 AI가 시장과 지정학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며, AI가 통제되지 않은 상태가 길어질수록 시스템적 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고 정부가 이를 따라잡기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의 주요 싱크탱크들은 2024년의 가장 큰 리스크로 트럼프 정권의 부활을 꼽는다. 민주당의 바이든 전 부통령과 4년 전처럼 공방전을 펼치는 재대결이 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세계 싱크탱크들이 새해마다 예측을 겨루는 '올해의 10대 리스크'는 대부분 '미국의 정치적 혼란'을 가장 먼저 꼽았다. 유라시아 그룹은 "양대 정당 후보들은 대통령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단언하며, 국내 분열로 인해 미국 민주주의는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가장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6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돌이켜보면 매번 새로운 정보통신 수단이 생겨나면서 선거 전술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년에도 분명 깜짝 놀랄 만한 기술 발전이 터져 나와 결과에 영향을 미칠 텐데, 챗GPT를 잘 활용한 후보가 승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러시아나 중국발 가짜뉴스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선거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 종합상사 쇼지쓰는 조심스럽게 짚어본다. 사이버와 리얼의 세계가 뒤엉키는 시대다. 금융계 등에서는 누구나 알면서도 무시하기 쉬운 중대한 리스크를 '회색 코뿔소'라고 부른다. 평상시에는 얌전하지만 한번 난동을 부리면 손쓸 수 없는 코뿔소의 성질에서 유래한다. 그런 '코뿔소'가 우리 곁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을 금기시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에 대비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4-01-17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미중관계의 '속살' …기업과 시장의 눈으로 보자 [곽재원 논설위원장] ‘2024년에는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전쟁이 계속되면서 지정학이 다시 크게 부상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하락하고 금리는 평준화될 것이며, 공급망 분단은 완화되고 원자재 가격도 안정될 것이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들의 성장세가 부진한 가운데 세계 GDP(국내총생산)는 2.2%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다. 개발도상국 경제는 더 나아질 것이지만 중국은 경쟁국에 기업 투자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기업들은 새로운 환경 규제와 글로벌 최저 세율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세계 주요 미디어와 컨설팅기업, 싱크탱크들이 연말에 쏟아내는 내년 정치·사회·경제 전망은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내년 전망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글로벌 임팩트가 가장 큰 항목을 꼽는다면 트럼프 2.0(대선에 승리한 트럼프), 미·중 마찰 지속, 본격적인 AI 시대 도래 등이다. 이래저래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은 어느 분석이나 전망이든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이러한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미·중 마찰은 심화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시적 실태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두 나라 기업과 시장에서 보여온 ‘박빙의 교류’는 이제 더 넓고 더 깊게 펼쳐질 전망이다. 그 단서를 살펴보자. 우선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향해 흔드는 손이다. 중국계 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잇따라 미국 거대 IT 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EV) 업체 비야디(BYD)는 아마존닷컴의 클라우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 기업들의 일련의 움직임의 배경에는 세계 시장에서 미국 테크 기업의 영향력 확대가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커넥티드 카'를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혁신과 보안을 제공한다." 지난 11월 30일 아마존의 클라우드 부문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연례 행사에서 BYD의 브랜딩 및 홍보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V)를 판매하며 전기차 전문업체인 미국 테슬라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BYD는 아마존과 손잡고 네트워크를 통해 자동차에 다양한 신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지난 5월에는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 동남아시아 인터넷 쇼핑몰 대기업 라자다(싱가포르 소재)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애저(Azure)'를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MS는 출자회사 오픈AI의 생성형 AI를 애저에 적용해 쇼핑몰 사이트의 고객 문의에 자동으로 대응하는 기능을 개발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서도 클라우드 사업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알리바바에 MS는 강력한 경쟁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하 라자다는 MS의 클라우드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글로벌 사업 확장을 노리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가 전 세계에 구축한 거점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시너지리서치그룹에 따르면 올해 7~9월 세계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1위는 아마존이 차지했으며, MS와 구글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 3사가 세계 점유율에서 70%에 육박하는 것. 4위인 알리바바 점유율은 5%를 밑돌며 최근 몇 년 동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다음은 미국 시장에서 중국 소비재가 세력을 떨치고 있는 모습이다. '테무(Temu)'와 '샤인(SHEIN)' 등 중국 전자상거래(EC) 이용이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다. 지난 10월 두 앱 이용자는 약 1억1000만명으로 1년 만에 4배로 증가해 최대 업체인 미국 아마존닷컴 대비 90%에 육박했다. 산업 용도를 중심으로 대중국 수입은 줄어들고 있지만, 저렴한 중국산 잡화를 취급하는 두 앱에 대한 소비자의 지지가 높아지고 있어 미국 정부는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조사기관 통계에 의하면 주요 전자상거래 앱의 월간 이용자, 다운로드 수 등을 국가별로 분석한 결과 10월 세계 전체 이용자는 아마존이 전년 동월 대비 4% 증가한 데 비해 테무와 샤인은 2.6배로 급증했다. 테무는 생활잡화, 샤인은 의류를 중심으로 다양한 상품을 취급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두 앱의 미국 내 신규 다운로드 수는 현재 아마존 대비 5배에 육박한다고 한다. 테무는 2022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이용자 수에서 미국 이베이, 샤인 등 경쟁사를 앞질렀다. 10년 가까이 미국에서 온라인 쇼핑을 해온 샤인도 최근 1년 새 이용자를 두 배로 늘렸다. 잇따른 수입 금지 조치 등 영향으로 기업 간 거래가 중심이 된 미·중 무역은 정체된 상태다. 미국의 상품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중국은 2023년 1~6월 멕시코에 밀려 15년 만에 국가별 1위 자리를 빼앗겼다. 기업들이 대중국 수입을 자제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으로 저렴한 물건을 찾는 소비자들은 개인적으로 대중국 수입을 늘리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계 전자상거래 부상에 대해 "중국은 물건을 싸게 만드는 것이 강점이었는데 효율적인 물류와 편리한 앱 개발력이 더해져 기업을 거치지 않고 해외 소비자와 직접 연결할 수 있게 됐다"며 "2022년 이후 물가 상승으로 더 싼 물건을 찾는 미국 내 소비자들의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중국계 서비스가 부상하는 데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 연방의회 초당파 위원회는 지난 6월 테무와 샤인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강제노동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실명으로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에 앞서 짧은 동영상 앱인 '틱톡(TikTok)'에 대한 규제론이 거세게 일었다. 미국에서는 정부기관 공용 단말기에서 사용이 금지됐고, 몬태나주에서는 사업을 금지하는 주법이 통과됐다. 틱톡은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전자상거래 기능을 강화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9월 정부가 SNS상에서 전자상거래를 금지하는 제도를 만들자 틱톡이 전자상거래 기능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같은 규제와 관련해 법률 전문가들은 미국 기업들도 전 세계에서 전자상거래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것까지 '안보' 프레임워크에 포함될 것 같지는 않다고 진단한다. 이런 가운데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샤인이 지난 11월 27일 기업공개(IPO)를 미국 당국에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CNBC 방송 등에 따르면 현재 기업가치는 약 660억 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체이스가 매각 주관사를 맡는다고 한다. 샤인은 앞서 지난 8월 미국 의류 브랜드 '포에버21'과 전략적 제휴를 하고 상호 출자하기로 했다. 패스트 패션 분야의 인터넷 쇼핑몰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에서 샤인 인기는 2010년대에 진출한 '자라(ZARA)' 'H&M' 등 유럽 브랜드를 능가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며 젊은 층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샤인 매출은 약 230억 달러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이번 주 아마존닷컴이 미국에서 내년 1월부터 가격 15달러(약 2만2000원) 미만인 의류에 대해 외부 판매자가 지불하는 수수료를 5%로 기존(17%) 대비 3분의 1 이하로 낮추고, SNS에서도 상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온라인 쇼핑 전체에서 상품 1개당 물류 서비스 등 수수료가 내년에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의류 수수료 인하는 이례적인 일이다. 의류는 아마존에도 주력 분야다. 미국 JP모건에 따르면 2022년 아마존 유통 총액 중 16%를 차지해 전자제품(26%), 생활용품·식품(22%) 다음으로 크다. 아마존은 미국 전자상거래의 의류와 장식품 분야에서 40%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샤인이 플랫폼 사업자로서 입지를 다지면 위협이 될 수 있다. 전자상거래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틱톡의 존재도 만만치 않다. 미국 이용자(1억5000만명)는 하루 평균 90분을 틱톡을 하며 보낼 정도로 체류 시간이 길다. 동영상 시청 이력을 바탕으로 관심 상품 등을 표시하는 기술도 뛰어나다. 아마존은 최근 들어 중국계 전자상거래를 의식한 대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빅테크와 중국 정부의 빈번하고 다양한 접촉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미·중 갈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미국 기술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지난 12월 6일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장관)과 회담을 했다. AI 분야 협력과 미·중 무역 관계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왕 부장은 회담에서 "AI 관련 중·미 간 교류와 협력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MS를 포함한 다국적 기업의 중국 사업 진출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스미스 사장은 "중국 경제의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중국 시장을 중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3년 들어 팀 쿡 미국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미국 테슬라 CEO가 잇따라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과 중국이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기술기업 경영진은 중국 정부와 대화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지난 6월 빌 게이츠 MS 공동창업자는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4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고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 건강, 기후변화 등 사회적 과제에 대한 대응을 논의했다고 한다. MS는 중국 진출 30주년을 맞았다. 게이츠는 경영에서 손을 뗐지만 친선 역할로 비즈니스 측면에서 미·중 관계 악화로 인한 영향을 완화하는 역할을 사실상 맡고 있다. 지난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호텔에서 열린 시진핑 주석 주최 만찬회는 이러한 미국 기업과 중국 정부의 관계를 표면으로 드러낸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퀄컴, 보잉, 제약회사 화이자 등 수장들이 참석했다. 참석 기업의 공통점은 사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애플은 2023년 7~9월 매출 중 17%를 홍콩 등을 포함한 중화권이 차지했다. 주력 제품인 아이폰 등의 제조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퀄컴은 23년 9월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62%였다. 중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에 있는 한국은 이러한 미국과 중국 간 관계 개선 움직임을 지금부터 특히 주목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새해에는 미·중 관계를 기업과 시장의 눈으로 간파해 새로운 대중(對中)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12-14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경제안보시대…한일경제협력의 새 지평을 열다 [곽재원 논설위원장] 한·일 관계는 역사와 감정이 정치를 흔들고, 결국 경제를 볼모로 잡는 일의 반복이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이런 반복을 종언시키고자 한 역사적 결단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빛바랜 이 선언에 담긴 상호존중과 상호인정, 그리고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마른 들에서 새싹이 나오듯 소생하고 있다. 작금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셔틀외교는 ‘현재가 과거와 싸우도록 내버려 두면 잃는 것은 미래’라는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말을 상기시킨다. ‘윤석열-기시다 미래선언’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일 정상의 셔틀외교는 2011년 일본 교토에서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총리와의 회담이 마지막이 됐다. ‘윤석열-기시다’ 셔틀외교는 한·일관계 ‘잃어버린 10년’의 복원이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일 관계가 잘 안 풀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현재의 한국과 일본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두 나라는 무역 파트너이고, 교육, 화학, 기술 영역에서 교류하고 있으며, 상대방의 대중문화도 받아들이고 있다. 양국은 지난 정부와 다르게 동맹 관계를 중시하고,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부상에 대해 같이 대응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미국 시사지 포린어페어즈는 “서울과 도쿄가 화해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면, 그 길은 존재하며, 역사 문제가 장애물이 될 수 없다”고 논평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특히 경제관계도 수복(修復)을 넘어 선순환의 단계로 넓혀나가야 한다는 당위와 기대가 부풀고 있다. 한국 경제에 있어서 일본과의 관계 회복은 필수불가결하다. 지난 10년간을 돌이켜보면 예컨대 한국 수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2020년 26%에 달했다. 군사동맹국인 미국이 14%,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5%에 불과하다. 1990년에는 반대로 미국 30%, 일본 19%, 중국은 겨우 2%였다. 여기서 아픈 경험은 정부의 누적된 안보와 경제의 뒤틀림이 그대로 드러난 2016년 '사드 문제'였다.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을 배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슈퍼마켓이 중국에서 철수한 사건이다. 이와 관련 일본경제신문은 “아시아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시장을 가진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한국으로선 아쉬운 '잃어버린 10년'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한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가 빠르게 정상화되는 추세가 더욱 주목된다. 지난 6월, 8년 만에 통화교환(스와프) 협정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1997년 외환위기 교훈을 바탕으로 2001년 체결됐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대통령(당시)의 독도 상륙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2015년 기한 만료와 함께 종료됐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9위인 약 4200억 달러(약 600조원)에 달한다. 통화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적다. 일본 미디어들은 “이번 협정 재개 합의는 환율 안정 효과보다 한·일 경제 관계 회복을 상징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올해 3월 정상회담 이후 경제 관계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음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사례다. 일본은 7월에 한국을 수출 절차가 우대되는 '그룹 A(백색국가)'에 재지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강화했던 수출 규제를 완화했다. 한국도 이미 일본의 조치를 둘러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고 일본을 우대국으로 재지정했다. 이로써 한·일 경제관계는 2019년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강화조치가 취해지기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한국은 세계 유수의 반도체 업체를 보유하고 있고, 일본은 소재와 제조 장비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중요 물자인 반도체 공급망 강화는 공동의 이익이다. 한·일 경제계는 오랜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역사 교과서나 위안부 문제로 외교적 갈등이 생겨도 경제관계가 냉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징용공 문제로 사태가 악화됐다. 당시 아베 신조 정권은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됐고, 한국 기업들은 대상에서 제외된 소재 등을 일본 이외의 조달처를 찾았다. 반대로 한국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일본 기업도 나왔다. 일본 오피니언 리더들은 “무역을 외교적 무기로 사용하는 방식이 오히려 상호 불신을 심화시켰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계기로 민간 차원의 협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양국 상공회의소는 지난 6월 부산에서 6년 만에 회의를 열고 2025년 오사카-간사이 세계박람회의 성공과 2030년 국제박람회의 부산 유치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의에서 후쿠오카 상공회의소는 양국에 새로운 관광 루트를 만들어 유럽과 미국 등에서 관광객을 유치하자고 제안했다. 한·일 경제협력의 견인차는 역시 양국 경제계다. 이 점에서 도쿠라 마사카즈 일본 게이단렌 회장(스미토모화학 회장)이 ‘월간 게이단렌 10월호’에 기고한 보고서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 보고서는 ‘한·일 경제 관계 강화를 위한 발걸음 착실히 내딛다’는 제목을 달았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경제계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을 위한 길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양국 정부를 비롯한 관계 각계의 협조를 얻어 다음과 같은 주요 활동을 전개해 왔다. 첫째, 윤 대통령 초청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개최. 2023년 3월 윤 대통령의 방일에 맞춰 양국을 대표하는 경제인들이 참여하는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전경련과 공동 주최했다. 둘째 '한일미래파트너십기금' 설립. 윤 대통령 방일 기회에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당시)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한일미래파트너십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일 양국은 '한일미래파트너십기금'을 조성해 공동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7월 서울에서 '제1차 한일미래파트너십기금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공동사업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게이단렌과 전경련은 향후 기금 공동사업으로 (1) 청년인재 교류, 대학생-고등학생 교류, 교원 교류 등 (2) 산업협력을 통한 경제안보, 스타트업 연계, 엔터테인먼트-콘텐츠 등을 두 축으로 삼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셋째 한-일 산업협력 포럼에서 양국 간 협력 가능성 논의. 같은 달, 양 기관은 양국의 산업 협력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한일 산업협력 포럼'을 서울에서 개최했다.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양국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또한, 한·일 협력은 양국 간 협력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의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넷째, 새로운 ' 한일 경제위원회’ 설치. 게이단렌은 2023년 5월 31일 총회에서 '한-일경제위원회(위원장: 사토 야스히로 경단련 부회장 겸 미즈호금융그룹 특별고문, 이와타 게이이치 스미토모화학 사장)'를 신설했다. 이날 첫 회의에는 윤덕민 주일한국대사를 초청했다. 다섯째, 한·일은 중요한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 한·일 양국은 DX(디지털 전환)·GX(그린 전환), 저출산·고령화 대응 등 많은 공통의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으며, 한·일 기업들은 이러한 과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경제안보와 글로벌 공급망이 세계의 화두가 된 지금 일본도 관민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 탈탄소를 위한 에너지 공급 방식 등 복잡하게 얽힌 여러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미·중 대립과 탈탄소 대응 등 세계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리더십 발휘가 기대된다. 과거 무역흑자 대국이던 일본도 2022년에 무역적자가 18조엔으로 확대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본은 제조기술 입국의 존재감 유지를 목표로 한다. 탄소중립 전원을 기반으로 한 첨단산업의 일본 회귀와 아시아 지역과의 동맹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려 한다. 게이단렌이 정부에 촉구하고 있는 정책은 첫째, 국제경쟁력을 갖춘 탄소중립 전원(신재생에너지, 원자력)의 정비와 전국적 효율적으로 전력을 융통할 수 있는 계통연계 강화. 둘째,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의 생산기지로 세계가 주목하도록 비즈니스 환경의 총체적 점검. 셋째, 산학협력을 통한 혁신 등이다. 더 이상 대학은 연구, 산업계는 투자와 사회 실현으로 분업하는 시대가 아니라, 연구부터 사회 구현까지 산학협력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에 기여하고, 일본과 아시아의 시장 통합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보다 대담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한국과 일본의 이해가 일치된다. 같은 맥락에서 오는 17일 윤 대통령은 방미기간 중에 기시다 총리와 ’한일간 수소·암모니아 공동 공급망 구축‘을 선언한다고 한다. 양측에게 모두 매우 긴요한 협력이다. 양국의 공동 조달로 가격 협상력을 높여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양자 기술에서도 새로운 틀을 마련하고, 한·일 경제안보 협력을 확대한다. 컴퓨터 능력 향상을 위해 반도체 기술 개발에서 한-미-일이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한·일 양국이 공급망과 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후퇴하지 않는 미래지향적 관계로 연결하려는 목적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을 포함한 3개국 자유무역협정(FTA)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한·일 관계 개선은 2019년부터 정체된 3국 협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한·일 경제관계 회복이 다시는 뒤틀어지지 않는 지혜를 모으는 데도 힘을 써야한다. 양국 간에는 뿌리 깊은 현안도 있다. 관계가 다시 냉각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경제적 유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고 박태준 전 국무총리(포스코 명예회장)는 생전에 한·일관계에 대해 “이웃 국가와의 사이에는 의견 차이와 마찰이 항상 있다. 앞으로는 합리적인 마찰이 훨씬 늘어날 것이다. 지도자들이 정치적 갈등을 잘 관리하고 경제로 파급되지 않도록 하는 상상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시 새겨봐야 할 고견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11-15 05:00:00
- [곽재원의 Now&Future] 돋보인 '중동외교'… 정치ㆍ경제 역동성 살릴 기회로 [곽재원 논설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중동방문은 시기·장소·성과의 3각구도에서 이뤄진 소위 ‘3위1체’ 외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지난 4년간 세계는 3가지 큰 충격을 경험해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이후 공급의 혼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원자재(상품) 가격 급등이 그것이다. 이 일련의 거대한 충격은 이미 끝난 것일까? 팔레스타인 이슬람 조직인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격렬한 공격과 가자지구 분쟁은 그 대답이 '아니오'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채권시장의 혼란도 여전히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최신 세계경제전망(WEO)은 자신감을 주는 동시에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세계 경제는 탄력성을 보였지만, 당초 예상에 비해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경제성장률 격차가 심화되면서 장기적으로 실적이 악화됐다. 세계는 여전히 대혼란과 격변의 시대이다. 윤 대통령은 이때 지정학적 리스크가 돌출된 중동의 한복판에서 외교전을 펼쳤다. 이는 외교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중동 리스크를 현장에서 관측하고 그 해소를 위해 능동적인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였다. 윤 대통령의 최종 행선지인 카타르를 보자.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와의 충돌을 둘러싸고 중동 걸프만의 소국(小國) 카타르가 인질 석방의 중재자로서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카타르는 미국, 하마스 등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 향후 협상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이뤄진 미국 국적 모녀 2명의 인질 석방에서 하마스는 "카타르의 노력에 부응해 인도주의적 이유로 석방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21일에도 새로운 인질을 석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카타르에 통보했지만 이스라엘이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측은 부인하고 있다. 카타르는 하마스의 모체가 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 '무슬림 형제단'과 관계가 깊다. 대중운동을 중시하는 무슬림형제단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위험하게 여기지만, 카타르는 이를 지원해 왔다. 서방 언론에 따르면, 하마스는 2012년부터 카타르에 해외 거점 사무소를 개설했고, 지도자인 하니야는 오래전부터 카타르에 머물고 있다. 한편, 카타르는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영내에 미군 기지를 두고 있다. 미국과 아랍 국가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을 활용해 인질 석방 협상을 중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은 카타르의 하마스와의 관계를 강하게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0일 미국인 2명의 석방에 대해 카타르의 "중요한 지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카타르는 이전부터 주변국 무장세력이나 서방과 대립하는 이란과도 깊은 관계를 맺는 독자적인 외교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소국이지만 자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조직인 탈레반과도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했을 때 미국, 유럽 각국 대표들이 자국민 피난과 인도적 지원을 위한 창구로서 카타르와의 협력을 위해 도하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란과의 관계에서도 미국과의 핵합의 재협상을 중재하는 국가 중 하나로, 지난 9월 미국이 이란의 자산을 동결 해제할 때 그 자금을 카타르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충돌 이후 미국은 자산 사용을 중지하기로 카타르와 합의했다. 이러한 관계가 카타르에 위험요소가 되어 2017~2021년 사이 이란과 무슬림형제단과 적대적인 사우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이 카타르와 단교했다. 윤 대통령의 카타르 방문에 왜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를 대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역시 사우디 국빈 방문은 이번 중동외교의 핵심이다. 한·사우디 협력의 신세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할 만큼 큰 성과를 일궜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야기된 유가 급등을 염두에 두고 사우디가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인도적 지원 등 필요한 협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우디의 미래도시 네옴(NEOM) 등 대규모 개발 구상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포스트 석유 시대를 맞아 "한국은 사우디의 최적의 파트너"라며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협력도 제안했다. 수소 생산과 유통, 활용 등에서 협력을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식품과 의약품 분야 협력도 양해각서를 맺었다. 회담 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투자 포럼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첨단 기술을 가진 한국과 풍부한 자원과 성장 잠재력을 가진 사우디가 손을 잡으면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인프라 수출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국 기업이 사우디의 인프라 구축과 에너지 사업 등에서 총 46건의 투자-수주 계약과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는데 이는 중동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서도 한국은 정부 주도로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석유공사가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와 석유 비축사업 공동 추진 계약을 체결했고, 한국전력과 포스코홀딩스 등이 아람코와 암모니아 생산사업에서 협력한다. 인프라 분야에서는 현대건설이 사우디 투자부와 부동산 개발 등에서 협력하고, 스마트시티 건설 프로젝트에는 국내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현대차는 사우디 국부펀드인 PIF와 손잡고 부품과 반제품을 조립하는 '녹다운 방식'의 자동차 공장 설립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해 산업 다각화 등을 골자로 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도적으로 수립한 장기 경제계획 '비전 2030'에서는 인프라 확충과 국내 제조업 발전 등을 내세우고 있다.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내다보고 수소 등 청정에너지 생산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일본 등을 탈탄소 연료의 미래 공급처로 삼고 있으며, 관련 기술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의 사우디·카타르 국빈방문에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 소프트웨어산업협회(조준희 회장)는 지난주 별도 동선으로 UAE 아부다비를 방문했다. UAE의 AI(인공지능)와 디지털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오마 술탄 알 올라마 UAE AI·디지털 경제부 장관, 두바이 상공회의소 회장 등 UAE와 두바이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양국 협력에 대해서 논의했다. 오마 술탄 알 올라마 장관과 두바이 ‘Expand North Star 2023’ 행사에 참가한 10여 개 한국 기업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한국 기업 60여 개사가 부스를 차렸다. 아부다비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가 지난 9월 최신 대규모 AI 모델 '팔콘 180B'를 발표했다. 그 성능에 전 세계 기술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ATRC는 연내 정부 AI 기업 출범을 발표할 예정이며, 대화형 AI '챗 GPT'를 개발한 미국 오픈AI 등 이 분야 강자들과 정면승부를 펼칠 것이라고 한다. ATRC 산하 응용연구기관 '기술혁신연구소(TII)'는 74개국 국적 약 800명의 연구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구 주제는 생명공학, 로봇공학에서 양자컴퓨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19년에 설립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도 이에 가세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중동 민간경제 외교의 한 축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모습도 이번 윤 대통령의 중동외교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 한가지 눈여겨봐야 할 이벤트가 있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 중동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GCC)가 지난 20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무역 확대와 기후변화 대책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조직 하마스의 충돌이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자치구 가자지구의 정세도 논의했다. 아세안에서는 의장국인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등 9개국 정상이 참석했고, GCC에서는 개최국인 사우디의 무함마드 왕세자를 비롯해 카타르의 타밈 수반 등 총 6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회의 서두에서 "우리는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모든 분야에서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상황을 언급하며 "슬픔을 느낀다"며 전투 중단을 촉구했다. 조코위 대통령도 국제법에 따른 충돌 해결을 촉구했다. 양 지역은 1990년대부터 관계 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각료급 회의는 열렸지만, 정상회의는 처음이다.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신흥-개발도상국의 존재감이 커지는 가운데 경제와 외교에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있다. 회의에서는 가자지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충돌을 둘러싸고 양 지역 정상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공동성명에서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촉구했다. 가자지구 사태와 관련해 GCC는 사우디의 무함마드 왕세자가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밝히는 등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고, 아세안은 국가마다 입장이 다르다. 이번에는 입장 차이를 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조속한 휴전을 촉구한 것이다. 아세안은 성장을 위해 GCC에 대한 수출 확대를 요구해 왔는데, 2021년 아세안의 수출 대상국은 중국(금액 기준 전체 16%)과 미국(15%)이 크고, GCC에 대한 수출은 아직 미미하다. GCC 국가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고유가로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정부계 펀드 등을 통해 해외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산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제조업 등이 많은 아시아는 GCC의 유력한 투자처이며, 경제 발전이 지속되고 있는 동남아시아는 특히 성장 시장으로 꼽힌다. 이러한 아세안과 중동국가의 경제협력공동체 움직임도 새로 포착된 망외(望外) 의 소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외교강화와 확대에서 창출하고 있는 여러 성과들에 이어 이번 중동순방 성과는 ‘하이 리스크 지역에서 하이 리턴’을 발굴하는 신외교로 풀이할 수 있다. 중동순방 외교가 국내 정치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10-25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리먼쇼크 15년후 …세계는 빚더미에 '디폴트' 경고등 [곽재원 논설위원장] 오늘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른바 리먼 사태가 터진 지 꼭 15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와 비교한 지금의 국내외 경제환경은 어떤가. 내년도 긴축예산 기조 아래 경제를 운영할 윤석열 정부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이런 관점에서 리먼쇼크를 다시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2008년 봄 이후 미국 대형 증권사 베어스턴스와 주택공사의 위기가 터져 나왔다.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이 대처에 나서면서 시장도 안정되자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8월에 베이징 올림픽을 관람했다. 2008년 8월 18일 전 세계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보고서도 나왔다. "최악의 시기는 끝났다. 한여름의 휴식을 즐기자". 필자는 리먼 브러더스의 전략가다. 겉으로는 조용한 여름을 보낸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혼란을 일단 봉합하면 시장에 낙관론이 확산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문제가 드러나고, 패닉이 확산되고 상처는 깊어진다. 이것이 리먼 사태의 교훈이다. 지금 세계에서는 저금리를 배경으로 증가해 온 이자 부채가 세계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하며 여기저기에 위기의 신호등이 켜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세계 약 7700개 기업의 이자 부채 잔액은 약 13조 달러(약 1경9000조원)로 금융위기 직후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이자 지급 부담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기업의 재무 운영은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경제신문이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비교 가능한 전 세계 7689개 기업(금융 제외)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2023년 4~6월 말 이자부채 잔액은 12조7581억 달러로 2008년 10~12월 말 6조6000억 달러보다 92% 증가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기우치 도모히데 이코노미스트는 "기업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경제의 약점이 가계가 아닌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차입금 금리 상승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7700개 기업의 2023년 4~6월 이자지급액은 약 1250억 달러(약 180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0% 증가했다. 특히 최근에는 5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수익력과 재무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금리 상승의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무디스 조사에 따르면 올 4~6월 전 세계 디폴트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한 48건으로 3년 만에 가장 많았다. 무디스는 2024년 중반에 디폴트율이 10~15%까지 올라갈 수 있는 '비관적 시나리오'도 가정한다. 이렇게 되면 저금리 덕분에 적은 이익으로도 이자비용을 충당해 온 '숨은 좀비 기업'들의 재무 악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기업 부문의 금리 민감도가 개인보다 낮기 때문에 경기 둔화는 리먼 사태 때보다 완만하게 진행되는 만큼 오히려 기간은 길어지기 쉽다고 진단한다. 지난 8월 25일 중앙은행의 '다보스 회의'에 해당하는 국제 경제 심포지엄인 '잭슨홀 회의'(미국 와이오밍주)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인플레이션과 금리를 이야기하는 연준 총재가 아니라 부채 문제를 제기한 학자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금융위기 때부터 코로나19 사태 때까지 쌓인 막대한 공공부채는 "당분간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가 부채 수준을 낮출 만큼 강력하게 확장되지 않을 것이며, 많은 나라에서 정부는 지출을 줄이는 대신 적극적으로 지출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국이 재정난을 완화하기 위해 세수를 늘리거나 성장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도전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와 '대처주의'(대처 전 영국 총리의 경제사상)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이후 많은 선진국에서 지출 감축과 감세를 내세우는 '작은 정부'가 중심적인 정치 이념이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극복,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의 과제에 직면한 각국은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정권은 30년대 이후 최대 규모로 경제에 개입하면서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재정적 행동주의 부활'의 한 패턴으로 본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경기 순환을 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재정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차입비용이 급등하면서 이미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파이낸셜 타임스 최근 특집기사에 따르면 현역 세대의 소득에 세금을 부과해 고령자(대부분 자산은 있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료비와 공공급여를 충당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세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지출 확대가 가장 필요한 분야로 국방, 인구문제, 기후변화의 세 가지를 꼽았다. 국방의 경우를 보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종식은 '평화의 배당금'을 가져왔고, 국방 예산을 다른 용도로 돌릴 수 있게 됐다. 2021년 말 기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목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를 2%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국가는 31개 회원국 중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 국가들과 중국과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많은 정부가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 노령인구 부담도 커지고 있다. 20~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에서 2023년 33%에서 2027년 36%로 상승하고, 이후에도 매년 약 1%포인트씩 증가해 50년에는 5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인 탈탄소 트렌드로 경제의 탈탄소화 비용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재정정책이 새롭게 주목받는 것은 탈탄소 트렌드와 지정학적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와 최근 유럽 에너지 위기 속에서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대규모 백신 접종 계획의 실행과 가계와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이다. 사회적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큰 정부'의 부활은 지출 확대 압력을 가져온다. "재정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거시경제 정책이 더욱 정치화된다"는 말이 있다.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제한된 정책수단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재정정책은 "누구에게, 무엇에 세금을 부과할 것인지,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통과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억제법'이 대표적이다, 녹색 보조금 계획이라 할 수 있는 이 법은 녹색기술과 탈탄소를 위해 노력하는 제조업에 수천억 달러의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미국 대통령이 투자를 늘리기 위해 이토록 자유롭게, 이토록 신념을 가지고 재정확대 논의를 꺼낸 대통령은 루스벨트 이후 아무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지출 확대의 유혹과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경제 성장이 기대에 못 미치고, 중앙은행이 금융을 긴축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선진국 정부들은 고민에 빠졌다. 기업과 개인을 위한 막대한 코로나19 대책으로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는 공공부채가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자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부채 증가와 금리 상승은 금융시장에서 국채 발행을 어렵게 만들고, 발행 비용도 높아진다. 특히 단기 국채가 그렇다. 재정전문가들은 세입을 늘리는 데 가장 인기 있는 수단은 앞으로도 세금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OECD 통계를 보면 각국 정부가 사회안전망과 의료제도를 확충하면서 회원국 평균 조세부담률은 GDP 대비 1965년 24.9%에서 1988년 32.6%, 2021년 34.1%로 상승했다. 그러나 생활비 위기 속에서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세금 인상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행정 서비스를 줄이는 것이 또 다른 선택지라고 하지만 역시 정치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주디스 프리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자본세와 소득세의 균형, 토지세 증세의 찬반, 부유세 과세의 기반을 넓히는 방법, 기업 초과이윤 과세 등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정책은 매우 강력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세계 각국의 공통된 고민이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대목이 미국을 필두로 ‘큰 정부’들이 지향하는 국가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내건 신산업정책이다. 이 신산업정책은 테크노 헤게모니(기술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정부의 보조금 제공을 무기로 하는 산업정책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각국의 미래 혁신전략의 요체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민생중심’과 ‘긴축예산’이란 기치로 총 657조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내놨다. 이 가운데 연구개발 예산은 ‘교육정책-과학기술정책-산업정책-국가경쟁력-국력’으로 연결되는 국가미래전략의 머릿돌 역할을 한다. 역대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마치 성역(聖域)처럼 여겨 꾸준히 늘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기조를 중단하고, 2024년도 R&D 예산을 25조9000억원으로 무려 16.6%(5조2000억원) 줄였다. 내년도 예산에서 연구개발의 성역은 깨졌다. 정부가 강조한 긴축예산의 본보기가 된 셈이다. 이제 과학기술계는 국가 연구개발의 효율성과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새로운 혁신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계는 그동안 연구개발비를 효율적으로 집행해 왔는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지 점검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한다면 재정 긴축의 기조 하에서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의 적정 수준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R&D 예산 규모는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그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9-15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캠프 데이비드' 이후 우리의 對中 전략 방향은 곽재원 논설위원장] 오는 18일 한·미·일 정상이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다. 별장이 주는 이미지는 백악관보다 덜 격식적이고, 덜 공개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별장에서 역사의 큰 획을 긋는 ‘결의’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매우 격식적인 백악관 정상회의보다 한층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남이 아닌가 한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3국정상 회의는 어느 때보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3국의 결속이 2018년부터 벌어지고 있는 미·중 기술패권경쟁에서 미국 측의 우위를 지키는 핵심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일 대(對) 중·러·북의 안보대립에서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디 캠프 데이비드의 정신은 ‘동서대립의 긴장완화’였으나 이번에는 기술, 경제, 군사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전제로 세계를 경영하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크게 반영되고 일본과 한국이 뒤따르는 형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3국 관계는 지난 1980년대 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전두환 대통령 때 이후 지금이 가장 친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40년 전 당시에는 막강한 미국을 방파제 삼아 나카소네 총리가 미일, 한일 관계의 가운데 서서 걸출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현재의 3국 정상들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과거보다 관계가 어긋나기 쉽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약점도 있다. 문제는 ‘포스트 캠프 데이비드’다. 이 회의가 끝나자마자 우리 정부와 기업은 어떤 전략과 정책을 갖고 중국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난도 과제 풀이에 나서야 한다. 우선 미국과 유럽의 자세를 보자.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최근 디리스킹(위험회피)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디리스킹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능력을 제한하고, 혼란에 대비해 중국과의 공급망을 복선화하며, 중요 원자재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 등을 의미한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하는 디커플링(경제분리)에 비해 특정 리스크 감소를 목표로 하는 현실적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도 대 중국 관계에서 '디리스킹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고 정상들이 합의했다. 2018년 미·중 갈등 이후 미·중은 전체 무역에서 서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신규 직접투자도 감소해 사실상 경제관계가 점차 단절되고 있다. 디리스킹은 양국에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세상을 바꿀 핵심기술의 치열한 개발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미래 기반기술이 둘로 나뉘면 세계 관련 비즈니스 생태계도 양분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중국이 반도체 소재 갈륨 같은 중요 광물의 수출을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혼란이 반복되고, 서방이 취하는 대안은 분열을 가속화할 것이다. 일본 다마(多摩)대학교 나카노미나토 아키라 교수는 “디리스킹은 결국 국제기업에 요구되는 자율적인 디커플링이다. 그 실행을 위해 우방국 간 협력에 기반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국제기업들은 탈냉전의 본질을 이해하고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될 미·중 대립의 긴 여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유럽연합(EU)은 2019년 3월 대(對)중국 정책 문서 'EU-중국 전략 전망'을 발표했다. 이 문서에서는 중국에 대한 EU 측의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즉 EU에게 중국은 (1)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협력 파트너', (2) 이익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협상 파트너', (3) 기술적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제적 경쟁자', (4) 서로 다른 통치모델을 추진하는 '체제적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EU가 중국을 대하는 방식을 단순히 '대립'이나 '협력'이라는 단선적인 방향성으로만 정리할 수 없다. EU는 중국을 격렬하게 대립하는 분야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쟁점에서는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EU는 어떤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하거나 경쟁, 혹은 대립하고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문화-인적교류, 세관-항공 업무 등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기 어려운 실무적-기술적 분야에서는 EU는 중국과 협력하는 자기장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경쟁관계에 있는 분야로는 철강, 태양광 패널, 첨단기술 개발 등 중국의 과학기술력 발전에 따라 EU와 무역 마찰을 빚고 있는 분야를 들 수 있다. 또한 대립하는 분야는 인권과 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의 투명성-공정성 등 주로 규범과 관련된 문제이다. 최근 EU가 대외정책에서 규범을 중시하는 태도를 더욱 명확히 하면서 규범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향후 EU는 유럽경제안보전략에 제시된 대중국 견제의 구체적 방안을 둘러싸고 일본, 미국 등 비슷한 우려를 가진 국가들과 협력을 모색할 것이다. 우리도 경제안보 측면에서 중국과 어떻게 중요한 파트너로서 관계를 확보할 수 있는지 그 여건을 만들어 가는 일이 절실하다. 둘째는 변하고 있는 중국 사정이다. 각국이 중국을 대하는 방식이 일정치 않은 가운데 외국자본의 중국 투자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6월 대중국 직접투자는 확인 가능한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이테크 분야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중국의 대외 개방에 대한 의구심이 그 배경이다. 외자 이탈로 인한 디커플링(경제 분리)이 진행되면 중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에 따르면 4~6월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공장 건설 등에 투자한 금액은 49억 달러(약 7조1000억원)였다.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은 87%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은 우방국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지난 9일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대중국 투자 규제 강화를 발표했다. 합작투자를 통한 신규 투자도 대상이어서 투자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정책 이후 중국 경제는 활기를 잃었다. 성장을 견인해온 부동산 시장이 구조적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주택 등 민간 자본 형성은 성장하기 어렵다. 노동인구 감소도 성장을 저해한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 등에서 자체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필요한 장비와 부품의 해외 조달이 부진하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 속도가 떨어지면 중국 경제의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성장 둔화는 세계 경제에도 부담이 된다. 셋째는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처리수 방류문제다. 일본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회의가 끝난 뒤 이달 말이나 내달 초에 해양방류를 실시할 것이다. 일 정부가 국내외에 어떤 설득력을 보여줄지가 우선 관심이다. IAEA(국제원자력기구) 의 안전성 보고서를 인정하는 입장을 보여온 우리 정부는 야권과 환경운동세력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칠 것이고, 중국은 대 일본 정부 비난을 국제여론으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캠프 데이비드 회담의 결실과 고도의 구상력이 필요한 대 중국 전략들이 오염수 문제에 휘둘리지않게 하는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8-14 05:00:00
- [곽재원의 Now&Future] 중국경제한계론? 총체적으로 다시 보자 최근의 한·중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개의 뉴스가 있다. 하나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다”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고압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싱 대사의 발언은 양국 외교부가 상대국 대사를 초치하는 상황으로 번졌다. 한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견제구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또 하나는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한국 수출선 1위로 등극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공급망 강화로 동맹국과의 교역을 늘린 반면 중국 정부는 제조업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무역 패턴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2022년 지역별 국제수지에 따르면 대중 수출액은 1220억 달러(약 175조원)로 전년보다 10% 가까이 줄었다. 반면 대미 수출액은 전년 대비 22% 늘어 1390억 달러로 불어났다. 수출액에서 대미가 대중을 앞지른 것은 2004년 이후 18년 만이다. 결정적인 배경은 미국의 한국자동차 수요 증가다. 세계적인 반도체 시장 침체에 따라 반도체의 대 중국 수출은 부진했다. 이 두 개의 뉴스는 서방에서 회자되고 있는 중국경제한계론(피크 차이나)과 맞물려 크게 부각됐다. 극히 일부지만 탈중국을 거론하는 세력도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중국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서 향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마침 이번 주(27~29일) 중국 톈진시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주최 하계 다보스 회의가 좋은 분석 대상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지 4년 만에 개최된 것이다. 테마는 ‘기업가 정신과 기술혁신(이노베이션)’이다. 정·재계와 국제기구 관계자 등 1500명 이상이 참가해 이노베이션과 글로벌 채무 문제 등을 논의한다. 하계 다보스 회의는 세계경제포럼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매년 겨울 열리는 국제회의의 중국판으로 2007년 시작됐다. 코로나19 감염이 유행하기 전인 2019년까지는 매년 여름 랴오닝성 다롄시와 톈진시에서 번갈아 개최했다. 중국에서는 봄의 보아오 아시아 포럼 등과 함께 대형 국제회의로 자리잡았으며, 지금까지 중국 총리가 참석해 대외개방 등 경제정책에 대해 연설했다. 앞서 2019년 회의에서는 총리였던 리커창이 증권과 생명보험에서 외자의 출자 규제 철폐를 앞당기겠다고 표명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리창 총리가 3기에 접어든 시진핑 정권의 개방적 자세 등을 세계에 알렸다. 그는 개막 연설에서 올해 5% 성장률 목표 달성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2023년 4~6월 성장률은 1~3월(4.5%)을 넘어설 전망이라며 2023년 연중 5% 안팎의 성장률 목표는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억제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 종료 후 중국 경제 둔화 우려를 무마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을 줄이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리창 총리는 (중국을 지칭한) 디리스크(위험회피)는 잘못이며 각국 경제가 서로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이미 140개국·지역의 주요 무역 파트너가 됐다"며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계 다보스 회의에서는 이밖에 식량안보와 글로벌 채무문제, 중국이 주도하는 광역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의 방향성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6월 16일 베이징시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를 만나 외국 기업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외국 기업(홍콩, 마카오, 대만 기업 포함)은 2022년 말 현재 4만3704개로 전년보다 0.5% 줄었고 연말 기준으로는 3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봉쇄를 노린 '제로 코로나' 정책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앞날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수출규제 등 대중 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기업들의 투자전략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서 7월 1일 시행하는 개정 반스파이법도 대중 투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국가안전과 이익에 관한 정보 제공과 수집 혐의가 있다고 당국이 판단하면 단속이 가능해진다. 중국에 있는 외국인과 외국 기업에 적용을 확대하면 외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중국으로서도 경제의 안정 성장에 외국 기업으로부터의 투자는 빠뜨릴 수 없다. 정부가 지난 1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철회하면서 경제활동은 정상화됐다. 다만 봄 이후에는 수요 부족이 두드러져 경기 회복력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기적으로도 경제 성장이 계속 감속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에서 2024년 중국의 실질경제성장률은 4.5%로 5%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2026년에는 3%대 성장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외자를 끌어들여 생산성을 높이는 중요성은 크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빌 게이츠와의 회담에서 양 국민의 우호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며, 나아가 세계 각국과 광범위한 과학기술 이노베이션으로 협력해 나갈 의향을 나타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미국 전기자동차(EV)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 등 유력 경영자들의 중국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하계 다보스에 앞서 지난 3월 28일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 아시아 포럼도 반추해 봄직하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정재계 인사가 모이는 이 포럼은 중국이 주최하는 대형 국제회의로 '제로 코로나' 정책 종료 후 처음 열렸다.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참석했다. 미·중 갈등이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공급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문제를 주제로 다뤘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기후변화 문제, 중국이 주도하는 광역경제권 구상 ‘일대일로’를 논의했다. 리창 총리는 이 포럼의 강연에서 “무역보호주의와 디커플링(분단)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등 대중 수출 규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세계화의 지속적인 추진을 표방하면서 첨단기술을 둘러싼 대 중국 포위망에 대한 경계감을 내비쳤다. 그는 세계화를 이끌어가는 자세를 강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리창 총리는 일방적인 제재 남용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 중국 수출 규제 외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도 견제했다. 그는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 진영은 중국과 러시아 대응에 보조를 맞추는 사례가 늘었다며 이를 ‘새로운 냉전’이라고 형용했다. 하계 다보스 회의든 보아오 아시아 포럼이든 중국의 자세는 정해져 있었다. 미국 등의 움직임을 반세계화라고 비판하는 한편 중국 스스로는 세계화의 선도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무역자유화를 촉진해 안정적이고 원활한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일정한 패턴이다. 중국은 세계의 여론을 의식해 보아오에서 ‘디커플링’을 반대했고, 하계 다보스에선 ‘디리스킹’에 반대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아시아의 잠재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창 총리는 보아오에서 “디지털 경제와 친환경 녹색경제에서 폭넓게 협력하면 아시아가 세계경제 회복과 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의 맹주로서 구심력을 높이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중국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화를 심화시키는 수단으로서 중국이 주도하는 광역경제권 구상 '일대일로' 외에 동아시아의 지역적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언급한다. 대조적으로 2021년 9월 가입을 신청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세계화 추진을 강조하며 간접적으로 미국을 비판하는 리창 총리의 보아오 포럼 연설은 지난 2022년 4월 같은 포럼에서 비디오 연설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내용과 겹치는 점이 많았다. 리창 총리는 그때에도 중국 경제가 3월 들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에 자신이 있고 실현 능력도 있다”고 강조했다. 연초에는 5% 안팎으로 정한 2023년 경제성장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고 엄격한 경기 인식을 보였지만 이때는 긍정적인 톤으로 말했다. 국내의 구조 문제에서도 ‘중대한 리스크를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행의 자본부족 등 금융불안의 싹을 잘라내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우려마저 있는 시스템 리스크 발생을 막을 뜻을 내비쳤다. 2022년 인구감소 사회에 돌입해 저출산·고령화가 향후도 급속히 진행된다는 중장기적인 과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경제를 읽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연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1월 16일~20일)이다. 이 다보스 포럼에서도 중국은 경제 회복에 기대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류허 중국 부총리는 “2023년 경제성장률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국의 2022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3.0%에 그쳤다. 하지만 코로나19 봉쇄를 노린 '제로 코로나' 정책이 끝나면서 사람과 사물의 흐름이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장래 불안을 높이던 엄격한 행동 규제가 사라짐으로써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 등 내수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수입은 분명히 증가해 세계경제에 기여할 것이며, 경기 안정을 중시해 ‘경제의 기둥’이라고 평가하는 부동산 업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류허 부총리가 발표했다. 이렇게 하계 다보스 회의와 보아오 아시아 포럼, 스의스 다보스 포럼을 연계해 보면 중국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중국이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도 비쳐진다. 다만 ‘피크 차이나’에 대해선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중국공장 일부 매각과 삼성전자의 대중 반도체 수출 급감 같은 현상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중국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대국적(大局的) 시각이 긴요한 시점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6-29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