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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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경제 수석논설위원
- 가천대 교수
- 前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소장
- [곽재원의 Now&Future] 궤도 오른 기시다 ...日 '새로운 자본주의' 힘 실린다 ..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다음 참의원 선거까지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단행하지 않으면 대형 선거가 없는 ‘황금의 3년’을 맞이한다. 그러나 당장 고물가와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방위력 강화 등 중요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금까지 기시다 총리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안전 운전에 만전을 기했다. 이제부터 기시다 정권이 결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강한 결단력이 요구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 언론과 정치·경제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은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함으로써 기시다 정권의 기반은 굳어졌다. 경제정책에서는 고물가 대응이 과제지만 일본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책은 당분간 지속될 공산이 크다. 다만 시장에서는 투·개표 직전 총격을 당해 사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밀어붙인 아베노믹스 수정에 대한 관측도 나온다. 정부와 일본은행이 적극 완화 노선에서 전환할 것인지, 내년 4월 임기가 끝나는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 인사가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실제로 선거전에서는 고물가를 둘러싼 금융정책도 쟁점 중 하나였다. 일본은행은 “국내 경제가 코로나19 사태에서 회복 중”이라며 조기 금리 인상에는 신중한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금융 완화 지속을 호소한 자민당이 승리해 일본은행의 정책 운영도 국민에게 일단 신임을 얻은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긴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금융정책 방향성 차이로 인해 미·일의 금리 차가 확대되어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약세와 달러 강세가 진행되면서 엔 시세는 주초 달러당 137엔대로 약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엔화 약세는 수입품 가격 상승을 통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식료품 등 생필품 가격 인상이 잇따르면서 야당은 선거 때 ‘기시다 인플레이션’이라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아베노믹스의 견인차로서 일본은행이 이른바 ‘이(異)차원 완화’를 단행한 지 9년여가 경과하면서 국채의 대량 구입을 계속한 결과 일본은행의 보유액은 약 520조엔으로 발행 총액의 절반을 차지해 재정 규율이 매우 느슨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규모 완화의 부작용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장차 기시다 총리가 아베노믹스 노선을 전환할지가 초점이다. 시장에서는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함에 따라 일본은행에 완화 지속을 요구하는 여당의 소리가 약해져 정책 수정의 정치적 장벽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앞으로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 선출이 본격화된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은행 인사에 관해 적극 완화를 주창하는 리플레이션(디플레이션으로 지나치게 내린 일반 물가 수준을 정상의 높이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인플레이션이 안 될 만큼 통화량을 팽창시키는 일)파를 중용해 왔다. 이런 점에서 금융정책의 장래를 점치는 데 있어서 기시다 총리의 일본은행 총재 인선이 주목받을 것이다. 2021년 10월에 탄생한 기시다 정권은 7년 8개월의 최장기 정권을 지킨 ‘아베’라는 일본 정치의 중석(重石)이 치워짐으로써 본격적인 정권으로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은 아니라도 기시다류의 정권 운영이 빠른 속도로 궤도에 오르리라는 관측이다. 기시다 정권에서 당의 중추를 담당하는 것은 요시다 시게루, 이케다 하야토 두 전직 총리의 계통을 잇는 기시다파(44명), 아소파(49명), 모테기파(54명) 등 3개 파벌이다. 여기에 당내 최대 계파인 아베파(93명)를 더한 4파가 주류파를 형성한다. 3파 모두 자위대 경무장과 경제 위주의 중도계에서 보수 본류를 자처한다. 반면 아베파는 요시다, 이케다 등과 갈등을 빚은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를 뿌리로 한 보수파벌로 아베는 보수 지지층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아베의 존재는 기시다 총리에게 긴장감을 주었다. 분배 중시를 내거는 총리에게 아베는 성장 중시의 아베노믹스의 계승을 요구했다. 총리가 고집하는 재정 재건 노선에도 방위비 확대를 주장하며 견제했다. 4파가 균형을 잡으면서 정책 결정을 진행함으로써 보수 지지층의 이반을 막고 기시다 정권의 기반 강화로 지속해 왔다. 이런 형국에서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베파의 영향력 약화가 확실시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가 간판 정책으로 내건 ‘새로운 자본주의’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는 2021년 10월 15일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사회 개척’을 콘셉트로 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내각에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본부’를 설치했다. 총리가 본부장, 내각관방장관과 신설한 ‘새로운 자본주의 담당 장관’이 부본부장, 전 국무위원이 본부원으로 구성됐다. 2021년 10월 26일 제1회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회의’를 시작으로 2022년 6월 7일까지 9회째 열렸다. 일본 정부는 9번째 회의에서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과 함께 ‘새로운 자본주의의 그랜드 디자인과 실행계획’을 결정했다. 기시다 총리가 내거는 ‘사람에 대한 투자’에 중점을 두어 3년간 4000억엔을 투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을 성장의 관건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른바 ‘기시다노믹스’의 핵심이다.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계획에 정권의 승부수를 띄웠다. 사회인의 리스킬링(재교육), 디지털 등 성장 분야로 노동 이동, 겸업·부업 촉진, 평생교육 환경 정비 등이 주된 과제다. 디지털 스킬은 직업훈련 강좌 비율을 20% 정도에서 30% 이상으로 높인다. 기업 간 이직이 용이하도록 외부 컨설턴트와 상담하기 쉬워지는 체제도 정비한다. 일본은 경제 체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중반 이후 1%에도 미치지 못해 매우 부진한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1년 데이터로는 0.5%에 그친다. 그리스(0.4%) 스페인(0.6%) 등과 비슷한 수준이며, 미국(1.8%), 독일(1.3%)과 차이가 크다. 여성과 고령자 일손이 증가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인구 감소라는 제약도 있다. 디지털화 등에 대응해 개개인의 스킬과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세계의 성장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 내각관방에 따르면 기업에 의한 사람에 대한 투자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10~2014년에 0.10%에 그쳤다. 미국(2.08%)이나 프랑스(1.78%)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일본 기업은 종래 인건비를 비용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 들어 디지털화 가속 등을 배경으로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종업원의 스킬과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경제산업연구소의 시산에 따르면 교육훈련 투자의 누적액이 2배로 늘어나면 노동 생산성이 2.2% 높아진다. 특히 서비스업은 2.5% 높아져 효과가 두드러진다.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 계획은 기존의 일본 기업들이 “저렴한 노동력 공급에 의존한 비용 절감으로 생산성을 높여왔다”고 분석하면서 궤도 수정을 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일의 절반 이상은 필요 없어지는 대신 새로운 일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그 새로운 일이 일본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면 현재의 고용 유동성을 촉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인재의 성장 산업 배분, 임금 인상과 성숙·쇠퇴 산업의 정리해고 촉진에 의한 근육질화, 새로운 일에 대응하는 비즈니스맨의 스킬 획득의 동기부여 등 여러 가지 움직임으로 연결시키는 가장 중요한 시책이라고 강조한다. 기시다 경제정책에서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과학과 산업기술이다. 실행계획에서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바이오 등 3개 분야를 중점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그 목적은 향후 이노베이션에 공통되는 연산처리의 초고속화에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처리하는 인프라다. 경제산업성 주도 아래 추진하는 이 전략은 우선 반도체 제조 기반을 강화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동시에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 차량용 반도체, 스마트폰 등을 조합해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촉진한다. 데이터센터도 강화해 AI 보급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반도체 분야에서 대만 TSMC 공장을 구마모토에 유치했다. 스마트폰 심장부인 로직 반도체는 이 회사와 한국 삼성전자, 미국 인텔이 미세화 기술을 겨룬다. 구마모토 공장의 반도체는 한 시대 전의 기술이지만 일본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재료와 제조장치 등 저변 업계도 국내 판매처를 넓혀 자극이 된다는 계산이다. 미세가공을 포함한 차세대 반도체는 미국 뉴욕주 알바니의 나노테크 콤플렉스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IBM 등의 협력을 얻어 미국과 협력하면서 개발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것은 규슈에 현지 경제계가 협력해 인재 육성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원래 소니그룹 등의 공장이 있고 TSMC의 진출로 1200명의 일자리도 새로 생긴다. 산업 집적 효과를 살리자는 것이다. 구마모토대가 반도체 연구 교육 센터를 마련해 기업 수요도 고려한 교육과 연구의 무대를 만든다. 규슈와 오키나와의 9개 고등전문학교들은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를 육성하는 커리큘럼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시다 정권은 이노베이션 추진을 위해 총리 직속에 ‘과학기술 고문’제도를 도입한다. 관저 주도로 경제산업성, 문부과학성, 후생노동성 등의 예산과 권한 다툼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일본 재계 대표 격의 하나인 경제동우회는 지난 8일 기업 경영자가 모이는 하계 세미나에서 청년 등 다양한 인재의 활력에서부터 사회 변혁을 촉진하고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한다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경제동우회는 이러한 생각을 국민 운동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언문은 성장 분야로 인재의 이동 등 사회 전체적으로 인재 유동화의 가속을 피할 수 없다며 교육과 노동시장, 사회보장 제도개혁을 정부에 요청했다. 기시다 정권은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 계획’을 2027년까지 마무리 짓는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기시다 정권 못지않게 한국의 윤석열 정부도 윤석열 정권이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따라 정부의 각 부처가 실행 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일본과 한국 정부가 이러한 야심 찬 방대한 계획을 실현하려면 그만큼 재정 부담도 커진다. 지금부터의 승부는 어떻게 재원을 확보하고, 어떤 우선순위로 배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 일본의 정책을 비교·참고하면서 위기 상황에 올바른 정책 방향을 설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2-07-14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정부가 곧 기업이다" … Y노믹스와 항공모함론 세계경제는 분업과 협력으로 비용을 줄이며 성장해 왔다. 그러한 세계화가 지금 역회전하면서 블록화라는 반동(反動)이 고개를 든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재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거대한 글로벌 리스크로 사회·경제 전 분야에서 코스트 증가를 겪게 된다.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생활비 상승이 계속되면 사회적 불만은 커진다. 자국 우선의 수출 제한 같은 움직임이 확산되면 분절이 심화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역사적인 고물가에 세계의 결속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특히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우크라이나 위기 속에서 급등하면서 다른 복합 요인의 영향과 함께 세계적 인플레이션 고공 행진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에너지·식량 모두 필요 불가결한 물자이기 때문에 가격 상승은 ‘증세’처럼 시민 생활을 압박해 가처분소득 감소와 소비 침체를 가져온다. 인플레이션은 국내 정치 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각국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구미(歐美)는 인플레이션 퇴치를 위해 금리 인상을 추진하지만 그 방향타 잡기에 따라서는 경기 감속을 초래해 경우에 따라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될 수 있다. 일례로 1980년대 초반 세계경제는 지속적으로 침체했다. 그 원인은 석유위기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격화, 이에 대응하는 고금리 정책이었다. 현재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세계경제에 강력한 경고등이 켜진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지난 16일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경제정책, 즉 ’Y노믹스‘ 전체 모습이 밝혀진 것이다. 이전에 내놓은 새 정부 국정 목표와 20대 약속, 110대 국정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책이다. 판교는 윤 대통령이 추진할 경제정책(Y노믹스)을 처음으로 국민 앞에 설명하는 자리가 되며 다시 희망을 쏘아 올렸다. 발표 내용은 윤 정부가 향후 5년간 어떻게 나라 경제를 이끌 것인지를 가늠케 하는 키워드들을 집약했다. 국민들이 52쪽 분량의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보고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언론들은 비슷비슷한 제목들을 뽑았다. '윤 대통령, 경제관료들에 경제위기 대응 위해 강한 투지로 임해 달라고 주문' 'Y노믹스는 민간 주도의 혁신성장' '스태그플레이션···복합위기에 경제·시장 흔들' '규제 철폐 올인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돌파'···. 언론들은 이와 함께 Y노믹스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표방하며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를 기조로 삼고 있다는 점, 그 기조 아래에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각종 규제 철폐에 올인해 성장의 바퀴를 돌게 함으로써 3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 복합 위기를 돌파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언론들의 이러한 설명과 분석에도 불구하고 ‘Y노믹스’ 정체가 무엇이냐며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가 윤 대통령이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 이어 기업인들과 진행한 비공개 토론에서 행한 발언에 있다. “미국 항공모함은 미국 국방부 재산이지만 태평양 바다로 갈 땐 수천, 수만 개 기업이 같이 지나가는 것입니다”라는 대통령 발언 내용이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항공모함을 예로 들어 정부와 기업 간 관계를 설명했다. 세계 1위 미국 국방력을 상징하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위해선 수많은 미국 기업의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은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경제단체장과 이채린 클라썸 대표, 김지원 레드윗 대표 등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경제계는 이에 앞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주축이 되어 지난 5월 24일 '신(新) 기업가 정신'을 선포했다. 선포식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손경식 경총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등 국내 재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경제단체와 국내 대표 기업 등 76곳이 동참했다. 나라가 어려울 때 투자와 고용을 일으키는 데 경제계가 앞장서겠다는 일종의 결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항공모함’은 ‘헵타포드(heptapod)의 언어’로 해석된다. 다리 7개를 가진 문어 비슷한 외계 생명체(헵타포드)가 지구에 와서 소통을 시도한다는 내용의 미국 SF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를 떠올려 봤다.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가 선언된 그해 11월에 개봉된 영화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비선형적인 언어다. 어느 한 시점, 어느 한 사안에 매몰되지 않고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시도가 배어 있다. 영화에서는 그 언어를 물리학자와 언어학자가 풀어 나간다. 윤 대통령이 예를 든 항공모함은 기술패권 경쟁과 경제안보 시대의 최대 상징이다. 그래서 항공모함론은 과거의 성장 체험과 현재의 성숙 단계를 넘어 미래의 재도약을 그리는 ‘한국 경제 재흥(再興) 전략’을 암시한다. 이를 실행에 옮길 윤 정부의 경제 운영 시스템은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중핵을 이룬다. 예컨대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기재부 출신들을 소위 스와트(SWOT·강점, 약점, 기회, 위협요인) 분석을 하면 국정 관리의 노련함과 책임감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반대로 엄격한 관료주의와 선도력 미흡은 약점 요소다. 요즘 같은 VUCA(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애매성) 시대에 안정 위주의 후발적 자세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기업이다, 정부와 기업은 하나다‘라고 윤 대통령이 강조한 것도 글로벌 위협 요인을 기회로 바꾸는 도전적·혁신적 자세를 주문하는 것으로 보인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하는 정부‘를 염두에 둔 지적으로도 해석된다. 경제 장관들은 바로 ‘간각하(看脚下)’로 응답해야 할 때다. 아무리 미래 비전이 화려하고 정책과 전략이 뛰어나다 해도 지금 발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부터 정치는 한발 앞이 암흑이라고 했다. 지금은 경제도 똑같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고 위험하다. 세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우선 파악해야 한다. 현장 교수, 현장 관료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 주유소에서 휘발유(ℓ당 2079원, 사당동)와 경유(ℓ당 2089원) 가격이 역전되었는지, 곧 ℓ당 2100원을 넘는다며 미리 탱크를 가득 채우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심리 등을 파악해야 한다. 지하철 환승역이 요즘 왜 붐비는지, 아파트 동네 쓰레기량이 왜 슬슬 줄고 있는지, 한여름으로 가는데 가정의 전기 사용량은 어떻게 변하는지, 치킨집 튀김용 기름값과 치킨 배달료는 어떤지 등은 민심을 축적하는 ’길거리 경제학‘의 주요 변수들이다. 경제관료들이 현장력을 갖고 제대로 처방전을 내어야 대통령의 언어에 힘이 생기고 미래 비전이 또렷해진다. 윤 정부의 경제 5년을 지탱해 주는 기초체력도 여기에서 생긴다. 경제 전문가들은 윤 정부의 경제 로드맵을 상정한다. 우선 정부 출범 100일과 8월 15일 광복절이 다가온다. 2023년은 윤 정부가 첫 편성한 예산으로 나라를 운영한다. 내년 1년은 한국 경제의 흥망을 결정짓고, 2024년 4월 총선의 성패를 가늠하는 엄중한 한 해가 된다. 국가 과학기술정보정책을 책임지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최근 대통령 취임사와 국정과제 및 주요 각료들 취임사를 ’워즈 클라우드‘로 분석했다. 김재수 KISTI 원장은 취임사 내용이 상당 부분 공유되고 있어 정부 내 정책 소통에 강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취임사에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선언한 것과 궤를 같이하며 ‘디지털’ ‘혁신’ 등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음도 파악됐다. 최희석 KISTI 정책부장은 “디지털 중심 국가로서 전체적으로 규제와 제도를 개선해 기업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술 혁신을 통해 균형 있는 지역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새 정부의 정책사상(콘셉트)을 풀이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Y노믹스’ 가 이제 본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간다. 윤 대통령 말을 원용하면 한국형 항공모함이 출범했다. 큰 배에 무엇을 담고, 어디를 향하는지에 대해 전 국민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의 ‘항공모함’이 순항하기를 기원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2-06-20 05: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