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논설위원장
kjwon54@gmail.com
- 아주경제 수석논설위원
- 가천대 교수
- 前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소장
- [곽재원의 Now&Future] 유례없는 美中 기술패권 경쟁 …尹대통령이 풀 '워싱턴 방정식'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는 한반도의 복잡해진 안보 정세가 만들어 내는 ‘부담의 연립방정식’을 풀기 위한 고난도 행보다. 우리의 안보 정세를 가장 크게 흔드는 미·중 대결 구도는 훨씬 세련된 격돌로 진화하면서 서로를 난적(難敵) 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안보정책의 요체로 외교·정보·군사·경제의 약자를 나열한 DIME(다임)을 강조하며 ‘국력의 모든 요소를 망라해 전략적 경쟁자를 물리치겠다’고 적시했다. 미국 대통령의 평일 집무는 ‘인텔리전스 브리핑’이라고 부르는 정보분석 보고로 시작된다. 중앙정보국(CIA) 등이 국제 정세를 설명한다. 윤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미국의 반중국 정서와 대중(對中)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현장 점검에서 미·중 대결의 근원이 ‘테크노 헤게모니 경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이는 대통령뿐 아니라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 모두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DIME을 하나로 엮는 끈은 바로 기술이다. 반도체에서 양자컴퓨팅, AI(인공지능)의 한 영역인 챗GPT 등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미·중 양국이 내놓고 있는 기술 중심의 산업정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 신산업정책 위한 R&D 정책 강화 기술 경쟁력과 상업화, 공급망 강화를 통한 제조업 부활 겨냥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안보 관점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공급망을 강화하고, 국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2024회계연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의 R&D 우선 항목과 연방정부 연구개발 예산안, 미국의 신산업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기관인 국립표준연구소(NIST)의 예산안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은 R&D 정책에 경제 안보, 중요 기술, 기술 경쟁력과 상업화는 물론 기후변화와 청정 에너지를 포함시켜 R&D를 산업정책 실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중시한 종래의 관행에서 벗어나 중요 기술의 개발과 상업화를 가속화함으로써 미래 산업과 제조업에서 미국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3개 반도체·과학법 수행기관에 많은 연구자금 배분 NIST, 제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제조 프로그램 예산 증액 구체적으로 연방정부는 2024회계연도 예산안에 과학·기술·혁신 관련 연구개발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2100억 달러를 편성했다. 이 예산안은 특히 국립과학재단(NSF), 에너지부 과학국, NIST 등 3개 반도체·과학법 수행기관에 많은 연구 자금을 배분하고, 첨단 제조업, AI, 생명공학, 반도체, 양자과학 등 중요·신흥 기술에 대한 R&D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의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NIST 예산 규모는 전년보다 35억8500만 달러(29%) 늘어났다. NIST는 제조업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제조 프로그램과 중요 노동력 개발 프로그램 예산을 많이 늘렸다. 중요·신흥 기술 연구(2000만 달러)와 국내 공급망 강화(800만 달러)를 비롯해 미국 전역의 16개 첨단 제조연구소를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력 제조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매뉴팩처링 USA’ 예산은 6030만 달러, 중소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제조 확장 파트너십(MEP)’ 예산은 1억90만 달러 늘어났다. 중국,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 단행 미국과 기술패권 대처···과학기술 자립 가속화 겨냥 중국은 미국과 벌이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개편했다. 그 골자는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당 중앙위에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5∼13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심의·의결을 거친 뒤 같은 달 16일 관계기관들에 이 같은 내용의 ‘당·국가기구 개혁 방안’을 통지했다. 이 같은 조치는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 아래 과학기술과 산업정책에 대한 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과학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학기술부 기능 축소···소관 업무 타 부처 대거 이관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신설···당 중앙의 컨트롤타워 그동안 과학기술부가 맡았던 소관 업무들이 공업정보화부, 농업농촌부, 생태환경부를 포함한 타 부처로 대거 이관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가자주혁신모델구, 국가하이테크산업개발구 등 과학기술원구 건설, 과학기술서비스 지도, 기술시장과 기술중개조직 발전 등 업무를 공업정보화부로 이관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일부 과학기술부 소속 기관도 타 부처로 이관된다. 중국농촌기술개발센터는 농업농촌부로, 중국생물기술발전센터는 국가위생건강위원회로 넘어간다. 중국 공산당은 과학기술부의 자금 배분 관련 역할도 조정했다. 과학기술부가 개별 과학연구 프로젝트의 심사·관리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주로 연구기금전문관리기관의 운용관리를 감독하도록 했다. 그 대신 과학연구 프로젝트 전체 실시 상황에 대한 감독·검사, 과학연구 성과의 평가를 강화하도록 규정했다. 과학기술부 기능 축소와 함께 별도의 중앙당 조직으로서 중앙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된다. 중앙과기위원회는 과학기술 활동에 관한 당중앙위원회의 통일된 지도력을 강화하고, 국가혁신시스템의 건설과 과학기술시스템의 개혁을 집중적·통일적으로 계획·조정·추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당 중앙의 정책·의사결정기구다. 중앙과기위원회 사무국은 과학기술부가 맡는다. 이 같은 중앙과기위원회 설립은 “과학기술의 자립자강(自立自强)을 촉진하기 위한 당 중앙의 의지와 결심을 나타낸 것”이라고 위하이보(于海波) 베이징사범대학 교수는 설명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존속되며, 공산당 중앙의 중대한 과학기술정책의 결정을 맡아 책임을 지는 한편 중앙과학기술위원회에 대한 보고 의무를 가지게 된다. 국무원 산하 국가과학기술윤리위원회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산하의 학술적인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위원회로 바뀐다. 국가데이터국 설립···디지털 경제를 효율적으로 추진 디지털 경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산하에 국가데이터국이 새로 설립된다. 국가데이터국은 중앙네트워크보안·정보화위원회에서 디지털 중국건설계획 수립, 공공서비스와 사회 거버넌스 정보화 추진 등 업무를 넘겨받는다. 또한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디지털 이코노미 발전을 향한 조정과 디지털 인프라 배치 추진 등 업무도 넘겨받는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은 이렇듯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다시 요약하자면 미국은 민주·공화 양당의 정권을 거치면서도 제조혁신을 핵심 국가전략 과제로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아가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거액 보조금 지급을 견인차로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한 주요 제조업 부활을 내세운 신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신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2024회계연도 과학·기술·혁신 R&D 예산안은 제조강국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비해 중국의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은 미국의 기술패권과 관련한 압력에 맞서기 위한 과학기술 자립을 겨냥하고 있다. 과학기술부의 많은 업무를 공업정보화부를 포함한 다른 부처로 넘긴 것은 과학기술을 효율적으로 산업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령탑 역할을 하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는 과학기술 정책과 산업정책의 연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중국이 왜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전폭적으로 개편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한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에 협조해야 하는 처지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과 한국의 움직임에 반발하면서 과학기술 자립으로 그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러한 형국에서 생명선을 찾아야 하는 한국은 혁신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조강국 건설에 미래를 걸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4-26 22:24:41
- [곽재원의 Now&Future] '데이터 강국'의 길 …AI 전략에 있다 요즘 AI(인공지능)가 만병통치약(panacea)처럼 전 세계에 걸쳐 맹위를 떨치고 있다. AI는 여러 차례 붐을 거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지만 이번에는 마치 절정에 이르는 듯한 폭발적 기대를 뿜어내고 있다. 1956~1960년대 제1차 AI붐은 미국에서 열린 연구자들 회의에서 ‘인공지능’ 개념이 등장하며 시작됐다. 1980년대 제2차 AI붐에선 지식을 겸비해 전문가처럼 행동하는 AI 개발이 성행했다. 제3차 AI붐은 심층학습 혁신, 데이터 증가, 계산능력 확대를 특징으로 2010년대에 나타났다. 영상과 음성의 인식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202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진화의 단계에 진입한다. 2020년 인간과 같이 문장을 쓰는 ‘GPT-3’가 등장했다. 2022년 문장을 기반으로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AI가 속속 출현했다. 드디어 올해는 ‘챗GPT’ 등 대화 AI의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창조력을 변혁시키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대인의 삶은 AI에 많은 힘을 얻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와 알렉사 등 음성인식 AI를 사용해 검색과 주문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 징표 중 하나다. 최근 등장한 미국 오픈AI의 ‘챗GPT’는 보통 인간이 대답하듯 자연스럽게 복잡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을 정도다. AI가 사회에 널리 침투한 배경에는 사진, 음성, 글 등 다양한 빅데이터가 사용 가능해진 데 있다. 게다가 그것을 분석하는 기계학습(특히 심층학습)의 기술 진보로 음성 데이터를 통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예상하거나 화상 데이터를 통해 적절한 행동을 예측하는 정밀도가 현격히 높아졌다. 예컨대 비즈니스, 특히 마케팅 세계에서도 빅데이터와 AI가 주목받고 있다. 마케팅 업무에서 관심 있는 예측 대상은 고객의 행동과 그 배후에 있는 동기일 것이다. 미국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이란 사람들과 사회의 요구를 특정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객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은 마케팅의 핵심이다. 빅 데이터와 AI를 통한 고객 행동 예측이 마케팅에서 사용되는 사례로는 넷플릭스 추천 엔진이 있다. 고객이 과거 열람한 동영상을 바탕으로 아직 열람하지 않은 동영상 중 어떤 것을 좋아할 것인지 예측해 추천 형태로 표시하고 있다. 전자상거래(EC) 기업도 고객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토대로 쿠폰 등 마케팅 시책을 결정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를 이용해 어떤 고객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결정하는 좋은 예다. 민간 쪽에서 불던 이러한 바람은 이제 공공부문으로 불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정부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분석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간과 정부 부문의 데이터를 적절히 분석하면 친숙한 문제에서 의외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며, 산업정책 등 큰 과제에도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최근 진보가 현저한 데이터 분석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많은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일기예보와 꽃가루 알레르기 경보 발령, 병원 치료와 입원자 통계의 연관성을 분석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는 연구는 정부 통계를 적극 활용하는 사례다. 일본 도쿄대는 민간 데이터를 분석해 산업정책에 활용하는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는 AI의 진보·보급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 연구들은 어떤 작업이 AI로 대체되기 쉬운지 가늠하고 AI가 어떤 일자리를 빼앗을지 예측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AI가 직장에 도입됐을 때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개별 근로자가 AI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미시(微視) 데이터를 입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쿄대 연구팀은 ‘AI 이용이 근로자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택시기사들에게 주목하고 분석했다. 배차 앱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익명화된 운전자 주행 이력 데이터를 제공받았다. AI는 승객이 있을 확률이 높은 지역으로 운전자를 유도하는 이 회사의 기술이다. 과거 수요 패턴에서 미래 수요를 기계학습으로 예측하는 기술로 실무 세계에서 폭넓게 응용되는 전형적인 수요예측 AI다. 이를 통해 공차 시간이 운전자의 총 근로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낮춰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했다. 리스킬링(재교육) 관점에서도 현시점에서는 어렵다고 생각되는 소셜 스킬(사회 속에서 타인과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는 힘)도 AI가 향후 한층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민관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 결과가 정책 결정과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연구팀은 현재 데이터 분석으로 얻은 ‘실증 결과에 근거한 정책 형성(EBPM)’을 침투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게오카 히토시(重岡仁) 도쿄대 교수는 “행정데이터는 ‘국민의 공유재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AI 도입에 의한 생산성 향상 효과를 한층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그는 두 가지 포인트를 지적했다. 하나는 연구자(분석)와 정부(정책)를 잇는 인재 육성이다. 분석상의 가정과 전제조건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연구 성과를 정책에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인재가 행정기관에 많이 포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의 정비·개선이다. 그는 데이터 분석에서 연구자를 ‘셰프’, 데이터를 ‘식자재’로 비유한다. 셰프의 솜씨도 중요하지만 식재료의 질 향상이 더 좋은 ‘요리(=에비던스)'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데이터의 질과 양에서 일본은 한참 뒤졌으며 코로나19 사태는 그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통계에 대한 이용 신청 후 데이터 입수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아 접근의 어려움이 시기적절한 연구를 저해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 점에서 앞서 가고 있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세무와 사회보험 등 업무에서 수집하는 행정데이터의 이용을 연구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를 고려해 출생 시 체중에서부터 학교 성적, 병원 입원 이력과 약 처방 이력, 과세 수입, 연금액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들이 개인식별번호로 묶여 있어 연구자들은 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책 형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은 지난해 11월 대화 AI 챗GPT의 등장을 계기로 대화 AI를 정부와 지자체 등 행정에 활용하는 방안을 최근 제안했다. 답변 작성을 지원하고 주민들의 문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밖에 지식과 문장 요약, 조사 작업, 프로그래밍 등도 대상이다. 업무를 효율화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민당 디지털사회추진본부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프로젝트 팀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디지털청 등 관계 부처는 물론 전문가, IT 관련 기업이 참가해 논의를 거듭해 왔다. 챗GPT의 등장으로 그동안 불가능했던 전문적인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 툴이 많이 탄생할 전망이다. 정부와 의회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행정 서비스는 효율뿐만 아니라 정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행정의 잘못으로 주민에게 손해가 생기면 소송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대화 AI의 답변으로 기밀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따라 다닌다. 그 원인으로 학습 데이터가 편중되거나 사용하는 데이터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리스크를 두려워해 새로운 AI 도입을 피하면 ‘성장의 기회도 물거품이 된다’. 자민당은 의회와 정부, 그리고 기업들에 이 같은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자민당이 작년 ‘Web3’에 이어 이번에 대화 AI 활용을 제안함으로써 정부 내에서 AI 활용을 위한 검토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화 AI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기밀 유지와 안전 대책 등 환경 정비가 필요하지만 세계 각국은 아직 탐색 단계에 머물고 있다. AI 활용에서 리스크 관리는 국제표준화기구(ISO)와 미국 NIST(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관련 규격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새로운 규격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민관 데이터 개방과 정부의 AI 전략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정부는 공공데이터법 제정 10년을 맞아 데이터 생성부터 활용까지 생태계 전반을 활성화하고 ‘디지털플랫폼정부’라는 국정 전략에 맞춰 공공데이터법을 전면 개정한다고 한다. 공공데이터와 데이터 기반 행정 등 공공데이터 총괄·협력을 위한 추진 체계를 강화한다. 공공데이터 개방으로 3년 이내에 범정부적 디지털플랫폼정부의 틀을 갖출 계획이다. 데이터 개방과 공유로 국민 신뢰도를 높이고, 기업 생태계를 지원하며, 정부 업무에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1000여 개 행정·공공기관에서 공공데이터 7만4229개를 개방했다. 혁신성장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지원하는 국가중점데이터 168개 분야를 개방했다. 공공데이터포털에서 데이터 민간 이용은 4393만건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초 기준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모바일 앱 등 민간 서비스 개발은 2797건에 달했다. 조만간 디지털플랫폼정부가 본격 가동될 것이다. 먼저 데이터 이용 절차 간소화 등 정부 통계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정비가 필수다. 기술적인 안전성을 확보한 후 정부 통계와 행정데이터를 ‘국민의 공유재산’으로 제공하는 이점을 사람들이 널리 실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질 높은 실증 연구를 꾸준히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데이터 개방 환경 속에서 정부가 솔선수범해 AI 활용을 추진함으로써 환경 정비를 꾀하고 안전 확보를 위한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민간에서도 대화 AI 활용이 촉진되고 인재 육성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제 세계는 데이터 선진국과 후진국, 데이터 강대국과 약소국으로 구별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새로운 글로벌 질서가 생겨난다. 우리도 예외 없이 그 기로에 서 있다. AI 전략이 데이터 경제 시대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이런 AI 전략을 바탕으로 데이터 강국 대열에 반드시 진입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3-29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AI혁신과 산업저변 확대, 정부는 움직여라 정부가 금주 초 신성장 4.0 전략을 발표했다. 3대 분야(미래 기술, 디지털 혁신, 신산업 창출) 15대 프로젝트다. 올해부터 5~6년간에 걸친 실행계획의 연도별 로드맵도 밝혔다. 로드맵에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우주 탐사, 양자컴퓨터, 첨단 재생의료, 소형모듈원전(SMR), 인공지능(AI), 차세대 물류, 탄소중립 도시, 스마트 농어업, 스마트 그리드 등 15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과 추진 일정이 잡혀 있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전략 기술들이지만 특히 주목되는 분야는 역시 AI다. AI 로드맵을 보면 2023년은 AI 학습용 데이터·바우처 지원 확대, 2024년은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 추진, 2025~2026년 사람 중심의 AI 개발, 2027년 이후 범용 AI 개발 등으로 짜여 있다. AI 기술 개발 계획은 2~3년 전부터 추진되어 왔으나 이번에 로드맵을 통해 집대성한 셈이다. 나름 야심 찬 모습이나 최근 AI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터라 보다 긴박감 있는 실행계획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 세계는 가히 AI 시대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회화 등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AI가 미국 등에서 속속 탄생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 학습으로 똑똑해진 기반 모델로 불리는 AI가 그 만능성을 드러내며 충격을 주고 있다. AI가 인간보다 우위에 서는 SF 같은 세계가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960~1980년대에 이은 제3차 AI 붐이 시작된 2010년대 초반 AI가 가속적 진화를 거쳐 인류를 능가하는 싱귤래리티(기술적 특이점)가 2045년에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한 미국 연구자 레이 커츠와일의 책이 주목을 끌었다. 2016년 영국 딥마인드사의 바둑 AI(알파고)와 한국 프로기사 이세돌의 대국은 AI의 급속한 발달을 세계에 알리며 지금의 제4차 AI붐에 불을 댕겼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미국 기업가 일론 머스크 등이 AI의 인류 위협을 주장했으며, 컴퓨터화로 사라질 직업을 분석한 영국 옥스퍼드대 논문도 화제를 모았으나 이젠 오래된 작은 얘기로 사라졌다. 이후 미국 조사회사 가트너가 공표하는 첨단 기술 트렌드 ‘하이프 사이클’에서 AI는 2019년에 ‘과도한 기대’에서 ‘환멸기’ 단계로 옮겨 그 과실이 2021년부터 2022년에 걸쳐 빛을 보게 된다. 2020년 오픈AI가 내놓은 대규모 언어 모델 'GPT-3'는 텍스트 번역과 질문 응답 외에 소설도 만들어낸다. 심지어 계산 문제를 풀거나 프로그램 코드를 쓰기도 했다. 2022년에 등장한 고도의 화상 생성 AI는 기술 진화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AI 연구 비영리단체인 오픈AI의 DALL-E 2(달리 투), 미국 독립계 연구소의 Midjourney(미드 저니), 영국 AI 스타트업 Stable Diffusion(스테이블 디퓨전) 등 화상 생성 AI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기반 모델은 그 규모나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 컴퓨터의 능력을 확대할수록 그 정밀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후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거대 모델 개발 경쟁에 속도가 붙었다. 싱귤래리티 제창자 커츠와일은 작년 가을 한 인터뷰에서 싱귤래리티의 전 단계로 2029년에 AI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다고 재차 주장했다. 현재 상황은 그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6~7일 발발한 인터넷 검색엔진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은 전 세계 톱뉴스가 됐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자회사 오픈AI의 충격적인 최첨단 AI 기술 '챗GPT‘를 자사 제품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터넷 검색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자랑해온 구글이 밀려날지 모른다는 예측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챗GPT’ 등장으로 경쟁의 씨름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글의 대항책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진 몇 가지 강점(파이낸셜타임스 분석)을 본다면 향후 승패는 아주 불투명하다. 첫 번째 강점은 경제적인 것이다. 대량의 텍스트 데이터를 미리 읽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장을 생성하는 자연어 처리 AI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이 점에서 생성 AI ‘챗GPT’는 유리하다. 두 번째 강점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이 회사 소프트웨어가 PC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싸움도 압도적 지배력을 쥔 검색엔진 구글 대 마이크로소프트 빙(Bing)의 오랜 싸움의 재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진짜 강점은 브라우저 Edge(에지)에 있다고 본다. 에지는 테크 관계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다. 이번 발표에서는 에지에 탑재되는 새로운 생성형 AI를 통한 문장 생성 능력과 검색 기술도 선보였다. 키보드 키를 하나 누르면 에지가 화면상 장문의 자료 내용을 순식간에 조목조목 5개 글로 요약해 준다. 그 편리함은 상상하기 어렵다. 세 번째 강점은 생성형 AI 투입으로 선수를 친 것이다. 생성형 AI 경쟁은 마이크로소프트가 3년여 전인 2019년 오픈AI에 처음 약 1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시작됐다. 네 번째 강점은 많은 기업과 깊이 관여해 왔기 때문에 자사를 절대 필요로 하는 고객 기업을 다수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검색엔진이 다양한 사이트에서 정보를 망라적으로 획득하는 크롤링과 함께 고객이 가진 데이터를 자사의 거대 언어 모델에 접목해 개별 기업에 최적의 결과를 출력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인터넷 검색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의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할 수 있다. 각종 소프트웨어가 인터넷 검색의 개념을 바꿔간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어떤 작업을 하든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얼마나 찾아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느냐가 검색엔진의 성패를 결정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검색 사업이 완전히 새로운 사업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간 2000억 달러 규모가 넘는 인터넷 검색 사업이야말로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시장 그 자체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가 동향은 생성형 AI가 가져올 수 있는 창조적 파괴력을 주식시장도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기술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테크 대기업들이 어느 곳도 이 생성 AI라는 신기술을 자사의 강점으로 살리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금 기술시장 화두는 ‘챗GPT’지만 결국 중심은 AI 시장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 큰 트렌드는 기업들이 AI 연구를 가속화하면서 산업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지금 AI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스러운 문장이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AI를 비롯해 모든 영역에서 데이터 활용에 AI는 필수가 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에 발표된 AI에 관한 연구 논문을 분석하면 IT뿐만 아니라 제약·의료, 에너지, 자동차 등 업종에서도 질 높은 성과가 나왔다. 일본경제신문은 최근 네덜란드 학술정보 대기업 엘제비아의 협력을 얻어 2012~2021년 학술 논문과 학회 논문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누적 논문 수가 많은 기업 톱10에는 미국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사, 중국에서는 국유 송전업체인 국가전망, 텐센트 등 4개사가 포함됐다. 일본 최상위는 NTT로 12위였다. 논문 피인용 수를 바탕으로 한 엘제비아 산출의 질(質) 지표에서는 미국 알파벳이 선두였다. 현재의 AI 열풍이 시작된 2012년 시점에 AI 논문을 100편 이상 낸 곳은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뿐이었다. 각 사의 논문 수는 급속히 늘어 2019년 이후에는 상위 10개 기업이 매년 각 100편 이상을 발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논문 발표를 하는 것은 대학과 공적 연구기관이 많지만 AI는 학술적인 연구와 산업 응용 관련이 깊고, 성과를 적극적으로 공표하는 기업도 많다. 지난 10년간 기업별 누적 논문 수 1위였던 IBM은 전 세계에 연구자 3000여 명을 거느리고 AI를 경영 중심축의 하나로 내세운다. 이 회사는 반도체부터 소프트웨어, 윤리 등 사회적 영향에 관한 것까지 폭넓은 AI 관련 연구 주제를 다루면서 음성 인식 등 분야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려왔다.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비즈니스용 AI ‘왓슨’을 개발해 언어와 음성 관련 등 다양한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제공한다. 연구의 질적 측면에서도 기업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다른 논문에서 인용된 횟수가 상위 10%인 주목 논문을 분석했다. 2012년 시점에 주목 논문을 1편 이상 발표한 기업은 36개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90여 개에 달했다. IT 이외 업계에서도 질 높은 성과가 생겨나고 있다. 성장세가 눈에 띄는 분야는 제약·의료, 에너지, 자동차다. 2012년 시점에는 주목 논문을 내고 있는 기업이 각 업계에서 1개밖에 없었지만 2021년에는 제약·의료가 13개, 에너지가 8개, 자동차가 7개로 늘었다. 제약·의료는 진단과 창약(創藥) 등으로 AI 응용이 빠르게 진행되는 분야다. 2021년 주목 논문 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21편)였다. AI를 ‘치료하고 싶은 질병 이해’ ‘약이 되는 분자(分子) 설계’ ‘임상시험 가속’ 등에 활용해 창약을 효율화하려 한다. 이 회사는 반도체 대기업인 미국 엔비디아와 협업하는 것 외에 AI 창약 스타트업인 영국 베네볼런트 AI와는 만성콩팥병, 특발성 폐섬유증 등을 대상으로 5개 이상 신약 후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GE헬스케어는 미국 의료기관·대학 등과 손잡고 의료용 영상을 AI로 해석하는 기술을 향상시키고 있다. ‘에디슨’으로 불리는 AI 활용 서비스를 통해 이 회사의 진단기기를 도입한 의료기관이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 중국 국가전망은 1억대가 넘는 스마트미터 데이터를 분석해 효율적인 전력 공급을 실현하는 스마트 그리드(차세대 송전망)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트로차이나는 석유자원 탐사 등에 AI를 활용하는 논문을 내고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독일 부품 대기업 보쉬가 특출하다. 연구 거점인 ‘보쉬 AI 센터’를 설치해 230개 이상인 동사 공장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을 진행하고 있다. 센터는 설립 3년 만에 초기 투자를 회수해 2021년 현재 3억 유로 가까운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까지 전 제품을 대상으로 AI를 이용한 개발·제조나 AI 탑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의 AI 열풍은 ‘심층학습’이라고 부르는 기술의 혁신으로 2012년경 시작돼 아직 관심이 시들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유창하게 언어를 다뤄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성 AI'가 연구개발의 주 전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최첨단의 연구를 견인하는 것은 미국 빅테크들이지만 이제 경쟁은 글로벌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도 민관 일체의 ‘AI 산업기술전략’을 시급히 마련하여 지체 없이 추진해야 할 때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2-24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尹의 '정부 시스템 개조' … 키워드는 '글로벌 스탠더드' 새해 국민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을 윤석열 대통령이 했다. 정치는 난삽하고 경제는 어려운 시국에 웬말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럴 때 한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5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정부 시스템을 개조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통해 국가 정상화와 초일류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을 마치고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다. 김은혜 홍보수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보니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 국민은 대단한 성과를 냈다"며 "이런 국민의 역량으로 정부가 일류 국가를 만들지 못하면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조급하게 미시적인 제도를 만들거나 바꾸기보다는 '체인지 싱킹(생각 바꾸기)'이 시작점이 돼야 한다"며 "국무위원들이 타성에 젖지 않고 일류 국가시스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꾼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초일류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지식 시장, 가장 우수한 인재가 경쟁하고 가장 좋은 것이 선택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미국 등 사례를 국무위원들이 연구·점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김 수석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도 "규제, 노동 등 모든 시스템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우리 제도를 정합시키지 않으면 외국에서 투자도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며 국제 기준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던진 화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정부 시스템’에 대해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 논의가 일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 경영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부 개조의 도달점으로 잡았으니 의아해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화) 전략이란 말이 기업과 국가에 쓰일 때는 마케팅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개념이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실행하는 대표적인 국제기구로 WTO(세계무역기구)를 들 수 있다. WTO가 1990년대부터 주창해온 국제표준화 전략은 기업 활동과 정부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콘셉트를 담고 있다. 2011년에 발표된 국제표준화 전략에 관한 집약된 의견이 있다. ‘최근 기업 경영 활동이 글로벌화하여 세계에 다양한 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가운데 제품 품질의 우열과는 별도로 국제적인 규격이 아니면 세계시장에서 통용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국제표준화 전략이 각 나라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원래 표준화라 함은 자유롭게 방치하면 다양화·복잡화·무질서화하는 사안들을 소수화·단순화·질서화하도록 하는 것을 지칭한다. 또 국제표준화라함은 표준화로 제정된 국제적인 결정을 말한다. 대표적인 국제표준으로서는 국제표준화기구(ISO) 등이 있다. 국제표준화 전략이 기업의 국제 경쟁상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이유로는 표준화의 목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종래 표준화는 △호환성 확보 △생산효율 향상 △제품의 적절한 품질 설정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표준화를 둘러싼 국제무역제도의 변화와 근년의 휴대정보통신단말의 보급 등 기술혁신을 동반한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국제표준 증대를 배경으로 △기술 보급 △산업경쟁력 강화 및 경쟁환경 정비 △무역촉진·원활화 등이 주요 목적이 되면서 기업의 경영 전략에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일찍부터 국가정책으로 이를 추진해 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민일체의 대응이 미흡한 형편이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국제표준화를 추진하는 구체적인 메리트로 우선 한국에서 개발한 기술이 세계시장에서 국제표준으로 받아들여지면 기술 선행성으로 시장에서 우위를 갖게 됨과 동시에 시장을 보다 크게 넓힐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규모의 경제로 제품 코스트가 싸져 국제경쟁력이 한층 높아지게 되고 특허 등 지식재산에서도 수입이 늘어난다. 게다가 제품과 서비스의 편리성이 향상되고 제품 가격과 서비스 요금의 하락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국제표준화에 관한 전략으로 2010년 5월에 책정된 ‘지식재산추진계획 2010’에서 금후 세계적인 성장이 기대되면서 일본이 기술 우위를 가진 ‘선진 의료’ ‘물’ ‘차세대 자동차’ ‘철도’ ‘에너지 매니지먼트’ ‘콘텐츠 미디어’ ‘로봇’ 등 7개 분야를 특정 전략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국제표준 획득을 추진해 왔다. 민간에서도 전자 대기업과 공공 연구기관이 주체가 되어 중소기업 니즈 등을 고려하면서 공동으로 국제표준화 활동을 행하는 ‘표준인증 이노베이션기술연구조합’을 2011년 1월에 설립하는 등 일본의 국제표준화 전략을 선도해 왔다. 최근 기업(특히 제조업)은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와 그에 따른 급격한 수요 변동, 원자재 가격 급등,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과 급격한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2020년 1월 이후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보다 큰 사업 환경 변화에 직면하고 있어 눈코 뜰 새 없이 변화하는 예측 불허의 세계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업무 시스템 기반 마련이 생존을 위한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한편 업무·시스템 기반의 대부분은 거점마다 제각각인 구조와 개별의 데이터 관리가 되고 있어 글로벌 시각에서 경영 정보 파악과 의사 결정이 곤란한 상황이 되고 있다. 변화에 계속 대응하기 위한 업무·시스템 기반에는 글로벌 레벨에서 시황·사업 상황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 인적 자원 재배치를 포함한 거점 통폐합·M&A·포트폴리오 변경 등 다이내믹한 사업 경영 판단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 각 거점에서 공통의 방침·룰에 따른 표준 업무 프로세스를 확립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에 관해서도 공통의 생각에 근거한 일원적인 데이터 관리가 가능한 구조로 통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이와 더불어 업무 시스템 기반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으로서 IoT(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기업 간 연계 데이터 활용을 추진하는 중추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즉, 업무 시스템 기반으로서 얼마나 양질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고 글로벌 업무 표준화·통합화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또 다른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진하고 있다. OECD가 2004년에 펴낸 ‘글로벌화에 대응-변화하는 세계와 OECD(Getting to Grips with Globalisation:The OECD in a changing World)'의 서문이 매우 시사적이다. 도널드 J. 존스턴 사무총장(1996~2005년 역임)의 서문 내용이다. “내가 1996년 OECD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회원국 수도를 방문했을 때 받은 주요 조언은 오늘의 문제에 대한 1)민첩한 정치적 대응, 2)효율적인 조직 운영, 3)글로벌 접근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정치인들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양측이 글로벌 상호의존의 이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널리 합의된 게임의 규칙 제정이라는 과제에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OECD가 이러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국제사회의 정합적인 틀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다른 플레이어의 서포트를 얻으려면 이러한 룰은 가능한 한 높은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이 과제에 임하고 있다. 각국이 국제적 트렌드를 무시해도 국내에서 경제정책을 잘 운영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경제 정책 당국은 환경과 건강, 식품 안전성에 대한 우려에서 기술 혁신 및 개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른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OECD는 각국 정부와 정책 당국이 결집하여 이러한 문제와 기타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독특한 처지에 있다. 그러나 세계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플레이어는 OECD 국가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앞길에는 많은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경기 둔화로 실업률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무역 장벽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생필품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테러 위협은 일상생활을 불안하게 하고 비즈니스 활동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불화나 반목은 사라지지 않고, 효과적인 인도적 원조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정부 간 조직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데 필요한 관점을 얻기 위해 한발 물러서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내가 이 소책자에서 의도한 것은 OECD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많은 정책 과제에 대해 되돌아보는 동시에 현시점에서 OECD가 중점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몇 가지 정책 과제를 지적하는 것이다.(이하 생략)’ 도널드 존스턴 전 사무총장은 캐나다의 경제개발·지역개발장관, 과학기술장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뒤 OECD를 10년간 지휘하며 OECD 자체는 물론 선진국들의 글로벌 스탠더드 확산에 힘을 썼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 UAE,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을 순방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중요성, 특히 국제표준에 맞춘 정부 시스템의 개조에 착안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을 다시 연구하자고도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WTO, OECD 등이 오래전부터 이끌고 온 주제지만 아직 기업과 정부가 혼연일체가 된 좋은 착지점을 찾은 사례가 많지 않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다. 이점에 있어서 한국도 취약하다. 세계경제포럼이나 블룸버그통신 등이 매년 발표하는 각국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정부의 비효율과 노동 문제가 항상 뒷다리를 잡고 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정부 시스템 개조가 그 답안이다. 이제부터는 실행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3일 제1차 수출전략회의에서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강조하며 국무위원들을 수출 전선에 뛰어들라고 했다. 이번 UAE 순방 후 개최한 국무회의에선 ‘본인이 제1호로 전 국무위원이 영업사원’으로 나서자고 했다. 기업과 정부가 2인3각으로 뛰려는 ‘체인지 싱킹’이 정부 시스템 개조의 출발점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1-27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새해 경제약진 위한 방책 …인도ㆍ싱가포르ㆍ북유럽의 성공모델 반영하자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계(癸)의 형태는 사물을 재는 나침반에서 왔다고 한다. 조리 있게 도모한다, 계획한다 등의 의미로 이어진다. 묘(卯)는 가장 대중적인 동물인 토끼다. 토끼가 등장하는 동화에는 마지막에 반전이 많다. 언뜻 보기에 호조를 보이더라도 끝까지 조심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적 설화들이다. 따라서 올해는 주변을 잘 살피면서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해라고 할 수 있겠다. 계묘년은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해다. 외교는 인도·태평양 중시로 전환했고, 경제는 신성장 4.0 전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세계적인 통화 긴축 등에 세계가 흔들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약진했거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나라들이 있다. 이들이 구사한 방책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내용들이 적지 않다. ◊중국을 대체하는 인도의 약진=일본경제신문이 분석한 2022년 아시아 주가지수를 돌아보면 인도가 압승이다. 인도의 견조한 주가는 장기적인 성장을 전망한 매수세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 주가지수가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단기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다. 인구 동태, 디지털화, 탈탄소화, 탈세계화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적인 트렌드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인도다. 모건스탠리가 최근 리포트에서 내린 평가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확대 등에 따라 2031년 인도 상류층 가구는 5배 늘어 2500만가구, 중산층 가구는 배 이상 늘어 1억6500만가구에 이를 것이라며 두터운 경제권이 탄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장기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주식 매수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도 순풍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애플의 스마트폰 ‘iPhone’을 꼽을 수 있다. ‘iPhone’ 생산 중심지가 인도로 변하고 있다. 재벌 타타그룹은 투자를 확대하며 노동력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중화권의 부진은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경제의 하방 효과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책의 불투명성과 미·중 관계 악화 등을 배경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기본 틀에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인구 동태 면에서도 중국은 인도에 최대의 인구대국 자리를 내주게 된다. 2022년 주가의 인도 강세·중화권 약세는 앞으로의 세계 경제와 자금의 침로(針路)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도 정부가 발표한 지난 7~9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6.3% 늘어나면서 8분기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다. 인도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2021년 5월 한때 하루 40만명을 넘어섰지만 지금은 수백 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기오염 등 과제도 많지만 앞으로도 인도의 성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탄탄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인도의 방대한 내수다. 이미 14억명의 거대 시장을 거느린 이 나라 인구는 2023년에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이 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인도는 2022년 명목 GDP에서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 독일을 앞지른 다음 2027년에는 일본도 제치고 미·중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도는 인구 증가에 더해 IT(정보기술) 주도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의 정부계 비즈니스 스쿨인 인도무역학원(IIFT)의 네하 제인 교수는 2001년부터 2061년까지 ‘인도의 잠재적 인구 보너스’라는 논문에서 이 기간 동안 유리한 인구 동태 변화와 적절한 사회경제정책 시나리오의 조합으로 약 30년간 인구 보너스 혜택을 누릴 것이며, 고령화 부담이 시작되기 전에 인구 보너스를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는 IT 경쟁력 등 뛰어난 면도 있지만 경제 격차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인도공대 델리의 자얀 호세 토마스 박사는 인도가 2020~2040년 세계 생산연령인구 증가분 중 2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잠재적 근로자들이 경제성장에 큰 혜택을 주지만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늘어나는 청년들에게 적절한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건강, 교육, 기타 사회 부문에 대한 정부 지출 증가는 인도 청년층의 잠재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문했다. ◊싱가포르는 전 국민 리스킬링, 인구보다 생산성 우선=2014년에 시작된 싱가포르의 ‘스킬스 퓨처(Skills Future)’ 운동은 이른바 전 국민 리스킬링 계획이다. 25세 이상 남녀에게 스킬 습득을 위한 학습비용을 지원하며 대상 코스는 디지털 기술부터 경영관리에 이르기까지 2만4000개 이상에 달한다. 여기에는 심각한 저출산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는 2050년을 내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민 없이는) 노동자 1.5명으로 노인 1명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가 붕괴된다고 지적했다. 1980~199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외국인 유입으로 낮은 출산율을 보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여론이 분출해 인구 중 30%가 채 안 되는 외국인 유입을 줄였다. 이렇게 되면 중장년 세대를 포함해 본토 사람을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생산성 향상을 중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여행 제한 영향으로 2021년 외국인 수가 147만명으로 전년 대비 10% 줄었다. 인구는 처음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그럼에도 정부 관계자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스킬스 퓨처 운동은 제2단계로 이행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브레이크를 밟는 게 아니라 기어를 한 단 올린 것이다. 일률적인 보조금 외에 개별 업종과 직종에 맞는 능력을 육성하기 국내외 기업과 제휴한 프로그램을 차례로 시작했다. 2021년 싱가포르에서 재학습 지원을 받은 사람은 약 66만명에 이른다. 이는 외국인을 제외한 생산연령인구 중 4분의 1에 해당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페이팔을 비롯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독일 지멘스 등 많은 유명 기업들과 제휴했다.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국민을 재교육에 끌어들인 예는 드물다. “사람의 잠재 능력은 교육과 훈련으로 극대화할 수 있다”는 리콴유 전 총리의 조언은 지금 빛을 더한다. 싱가포르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20년 기준 약 17만 달러로 2015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은 3% 정도다. 국내총생산(GDP)이 이미 높은 수준인 국가에서 이룩한 대단한 기록이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생산성을 높였을까. 리콴유 총리 시절인 1980년대부터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인 근로자의 값싼 노동력 수용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건설과 음식을 포함한 많은 업종에서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지지 않았다. 경제성장을 창출하는 요소인 노동력, 자본, 생산성 중 노동력 증가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경제산업의 구조개혁이 지연된 것이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민 수용이 어려워지면서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이런 구조를 재검토할 좋은 기회가 됐다. 생산성이 낮은 업종에서 높은 업종으로, 같은 회사 안에서도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과제로 부각되었다. 인공지능(AI)과 로봇뿐 아니라 의약, 에너지 등 모든 산업에서 기술혁명이 일어나고 있어 그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평생학습이 필요한 중장년 세대에게 접근하기 쉬운 리스킬링(Reskilling) 기회를 정부 주도로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다. 문제는 리스킬링이 효과를 나타내 사회 전체에서 인력 재배치가 진행되는 데 5~10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안전망을 동시에 정비하지 않으면 기술혁신을 따라갈 수 없는 하층민을 만들게 된다.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 수용을 줄이고 전체 이민 수도 좁혀야 한다. 반면 고도의 기능을 갖춘 인재는 부족하고, 유능한 외국 인재는 앞으로도 환영해야 한다. 도시국가로서 뉴욕, 런던 등 세계 대도시와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어 가만히 있으면 경제 경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사회 다양성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인구 감소와 그것을 기점으로 한 성장 둔화라는 미래가 선진국에 다가온다. 축소 균형의 현실에 안주하면 나라도 사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디지털화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동시에 성장을 묶는 규제도 풀어야 한다. 재학습을 통해 인재의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싱가포르 사례를 살펴보면 취해야 할 선택지가 많다. ◊북유럽의 트램펄린 경제=스웨덴 산업경제연구소 라쉬 파숑 교수는 ‘트램펄린과 같은 경제’ 구조가 북유럽 사회에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낙오되는 사람을 확실히 받아들여 결코 가라앉지 않고 몇 번이라도 위로 뛰어오를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스타트업, 리스킬링, 성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사회다. 북유럽 국가의 성공은 기업보다 사람과 기술을 중시하는 성장에 기인한다. 노키아 감원으로 흔들린 거리는 창업을 키우는 장(場)으로 변신했다. 높은 복지는 중산층을 지탱하는 유연성을 제공하고 있다. 1960년대 덴마크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유연성이 제 힘을 발휘한 것은 1994년 이후다. 10% 전후로 고공 행진하는 실업 대책으로 리스킬링과 재취업 활동에 나서지 않으면 실업 보상을 줄이는 벌칙을 만들었다. 실업자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자 실업률이 떨어졌다. 실직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을 연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덴마크에서는 기업이 종업원을 해고하기 쉬운 유연성과 실업보상·직업훈련에 의한 안전성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유연성은 유럽 전체로 확산된 노동모델이다. 그 발상지는 덴마크다. 고복지 북유럽 모델이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민족과 문화의 동질성에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균질한 사회에서는 국가가 세금을 사용해 평등한 복지를 제공하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쉬웠다고 한다. 이민의 증가로 이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세계의 최대 화두는 ‘경제안전보장’이었다. 올해도 이 개념은 한층 확대·강화될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를 유지·발전시킨다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노선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가치 외교다. 국익도 가치 외교에 따라간다. 이런 점에서 같은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싱가포르, 인도, 북유럽과 협력을 강화하고, 이들의 성공모델을 우리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3-01-01 19:33:04
- [곽재원의 Now&Future] 독일과 일본이 탈(脫)원전에서 복(復)원전으로 돌아가는 이유 올해 말로 예정하고 있던 독일의 ‘탈원전’ 연기가 지난달 25일 정식으로 결정됐다. 연방참의원(상원)이 원자력발전소 전체 3기에 대해 2023년 4월 중순까지의 운전 연장을 인정하는 원자력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최대 야당과 국민들은 2024년까지 가동 계속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가동 중인 남부 이자르2와 네커베스트하임2, 서부 엠슬란트는 2023년 4월 15일까지 운전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숄츠 정권은 지난 10월에 가동 연장을 위한 원자력법 개정안을 각의에서 결정했다. 이어 연방의회(하원)가 찬성 다수로 가결했고 이번에 정식으로 상하 양원에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메르켈 전 정권은 동일본 대지진 후인 2011년 5월에 탈원전을 결정해 단계적인 폐로 작업에 착수했다. 2022년 말까지 이자르2 등 남은 3기에 대한 운전을 정지해 ‘원자력발전 제로’를 완료시킬 계획이었다. 그 흐름을 바꾼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화력발전에서 사용하는 가스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원전 활용을 요구하는 여론이 올여름부터 높아졌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지난 8월 4일 공표한 여론 조사에서는 2022년 말 이후에도 원자력발전 가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회답이 ‘수개월 연장’과 ‘장기 이용’을 합해 82%에 달했다. 2022년 말까지 원전을 모두 멈춰야 한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숄츠 정권은 이 같은 여론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를 심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토대로 원전 복귀를 추진했다. 올 들어 지금까지 독일 에너지 사정을 살펴보자.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독일을 포함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의 국영 가스프롬은 7월 하순 이후 독일로 이어지는 주요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가스 공급량을 종래 계획에서 80% 줄였다. 독일에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장 8%를 넘어 역사적인 고물가에 이르렀다. 가을부터는 가스 가격 급등이 광열비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부담이 커졌다. 자원 가격 강세로 인한 수입 증가로 소득 유출이 계속되면서 독일의 무역수지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개인소비 위축 등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독일의 겨울은 길고 춥다. 난방 수요가 높아지는 겨울철에 가스 저장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체 전원으로서 숄츠 정권은 원자력발전 활용론을 들고 나왔다. 숄츠 정부는 그가 이끄는 중도좌파 독일사회민주당(SPD)과 환경정당인 녹색당, 산업계와 가까운 자유민주당(FDP) 등 3당 연정 체제다. 원전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FDP다. 린트너 FDP 당수(재무장관)는 “모든 가능성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당면한 원자력발전 가동에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FDP의 원전 활용 방안은 가동 중인 3기에 2024년까지 연장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원료인 농축우라늄은 러시아가 세계 생산량 가운데 50%를 차지한다. 따라서 가스에서 우라늄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러시아 의존에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녹색당은 신중론이 뿌리 깊다. SPD도 녹색당에 가까운 입장이다. 연정 내 갭을 메꾸는 절충안으로 모색된 ‘수개월간 한정 연장’은 일단 원전 운영 사업자로서는 새롭게 연료봉을 조달할 필요가 없어 실현을 위한 허들이 낮다. 하지만 전력 공급량 중에서 원자력발전 비율은 최근 10년 사이에 약 20%에서 6% 전후로 떨어져 대체 전원으로서 큰 효과는 바랄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숄츠 총리가 이끄는 SPD는 지지율이 약 20%로 제1야당 CDU(30% 미만)에 역전되었다. 겨울이 되면서 난방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민 사이에서는 숄츠 정권의 인플레이션 대책이 불충분하다는 불만이 싹트고 있다. 이 때문에 탈원전의 새로운 기한이 된 2023년 4월을 넘어 재연장론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도 원전 환경에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경제산업성이 지난 30일 ‘원자력발전소 재건과 운전기간 연장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후 재가동조차 여의치 않아 원전은 터부시되는 분위기였다. 장래에 걸친 전력의 안정 공급과 탈탄소의 양립을 향해서 국가로서 원자력발전 활용을 다시 한번 키우겠다는 기시다 정권의 의지가 선명히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기술·자금 양면에서 관민의 역할 분담, 사용 후 핵연료 취급 등 산적한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일본 정부는 지진 재해 후 원자력발전 신증설이나 재건을 봉인해 왔다. 최근 우크라이나 위기로 에너지 공급 불안에 직면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약점이 원전 회귀의 단초를 제공했다. 우선 원전 재건안 제시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상황을 타개하는 첫걸음이 된다. 정부는 간사이전력의 미하마 원자력발전소(후쿠이현)를 후보지 중 하나로 보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1~3호기 중 1·2호기는 폐로가 결정됐고 3호기는 가동된 지 40년 넘었다. 간사이전력은 ‘신증설이나 재건이 자연스럽게 필요하게 된다’는 입장에서 정부의 결정을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원전 설계·건설에는 최소 10년 안팎의 시간과 5000억~1조엔(약 5조~10조원)에 이르는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목표가 없으면 전력회사는 움직일 수 없다. 지진 재해를 거치면서 사회 환경도 크게 변했다. 전력 시장은 자유화가 진행되어 신재생 에너지의 코스트가 점차 낮아지고 있어 원자력발전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가격 경쟁력이 없는 게 사실이다. 전력회사를 뒷받침하는 실효적인 지원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안전 확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달라지지 않았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새로운 경수로에 대응한 규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1~2년이 걸린다고 한다. 입지 지자체의 이해도 빼놓을 수 없다. 종래 경수로와 다른 소형 모듈로나 고온 가스로, 고속로라고 하는 원자력발전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다. 재건 이외에 이러한 ‘차세대 혁신로’ 개발·건설에 대해 정부 계획안은 향후 상황을 근거로 검토한다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당분간은 운전 기간 연장에 초점을 맞춰 원전 운용을 유연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진 재해 후 안전심사나 재판소의 명령 등으로 정지하고 있던 기간을 완화한다. 규제위에 의한 안전심사에 합격했다면 상한선인 60년을 초과해 운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때 검토했던 상한 자체의 철폐는 신중론이 뿌리 깊기 때문에 일단 보류했다. 재가동이 끝난 원자력발전소에서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은 대략 10년 이하로 운전은 최장 70년 정도까지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일본 국내 33기 원전이 모두 현행 규칙 특례로 최대 60년간 운전한다고 가정해도 2050년대에는 5기까지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원자력에 대한 신뢰 회복도 빼놓을 수 없다. 계속 늘어나는 사용 후 연료를 재사용하기 위한 공장은 가동되지 않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도 정해지지 않았다. 원전 재건 추진에는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길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경제산업성이 11월 28일 ‘향후 원자력 정책의 행동 계획안’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안전 메커니즘을 포함한 차세대 혁신로 개발·건설을 진행시켜 간다’고 명기했다. 폐로가 결정된 원전의 재건을 염두에 두고 전력의 안정 공급과 탈탄소의 양립을 목표로 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신증설이나 재건을 ‘생각(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 온 정책을 바꾼 것이다. 종합자원에너지조사회(경제산업상 자문기관)의 원자력 소위원회를 통해서다. 여당인 자민당과 조율해 정부의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실행회의에서 연내에 최종 결정한다고 한다. 새로운 원자력발전은 종래와 같이 원자로를 물로 식히는 경수로로의 안전성을 높인 타입을 구상하고 있다. 만일의 경우에도 녹아내린 핵연료가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원자로 용기 아래에 ‘코어 캐처’를 구비하는 기술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 현장은 기술자 퇴직이 이어지면서 부품 등 공급망도 좁아지고 있다. 정부는 전력회사의 투자를 뒷받침한다. 연구개발 강화로 개발 설계부터 건설, 운전까지 지휘명령할 수 있는 사령탑 기능 확립도 내세웠다. 수명을 다한 원전의 폐로를 착실히 진행하기 위해 전력회사가 국가 인가법인에 거출금을 내고 자금을 확보하는 제도도 마련한다. 독일과 일본의 ‘탈탈(脫脫)원전=복(復)원전’은 조심스러운 반전이다. 그러나 또다시 돌리기는 어려운 모멘텀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 벨기에 등 여러 나라들이 동조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원전 강국 한국에는 ‘원자력 경제’의 문이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니박스] 독일의 실상을 그린 베스트셀러 ‘독일 2050’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흔들린 나라 중 하나다. 풍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의 보급 확대를 진행시키는 한편 전력 불안 고조로 메르켈 전 정권에서부터 내걸어 온 '연내 탈원자력발전’ 목표를 미뤘다.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흔들리는가. 유럽 최대 경제대국은 어디로 향할까. 독일의 실상을 그린 신간 ‘독일 2050’은 불안의 시대에 명료한 장기적 관점을 제공한다. 부제는 '기후변화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다. 독일 저널리스트 두 명의 공저로 환경의식이 높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이 그리는 것은 기후변화가 독일 사회에 닥치는 리얼한 변화다. 산림과 수자원 등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도시와 교통, 경제에서 에너지, 그리고 정치까지 총 14장에 걸쳐 논점을 망라한다. 독일 기업의 구체적인 사례도 이해를 돕는다. 2050년은 중요한 고비다. 독일 정부는 온난화 가스 배출을 실질적으로 제로화하는 카본 뉴트럴의 달성 목표를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긴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 책은 많은 독일 국민이 인생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시간 축으로서 2050년을 주목해 각론을 전개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수십 년 단위의 초장기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미치므로 정밀한 분석이나 파악이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의 경종을 단순한 예측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50년의 미래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올여름 폭염 영향으로 물류망을 지탱하는 라인강 수위가 극단적으로 떨어져 화력발전용 석탄의 수상 수송이 막혀 발전 전망이 불안정해졌다. 폭염일이 더 늘어나면 공급망 혼란을 통한 손실은 독일 경제에 큰 위협이 된다. 이 책이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까지 독일 기온은 섭씨 약 2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2100년까지 탈탄소의 대처가 늦어지면 6도 오른다. 기후변화 대응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문제도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의한 전력 확보는 동시에 이상기후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독일은 2030년까지 전력의 80% 정도를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할 계획을 내세운다. ‘원자력발전이냐’ ‘신재생에너지냐'라는 양자택일의 논의를 넘어 한국에도 장기적인 전략이 요구될 것이다. <아마존 , 닛케이 등에서 발췌>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2-12-02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경제를 지키는 정책에서 움직이는 정책으로 지난 10월 28일자 주요 일간신문들은 1면 머리기사에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와 같은 날 삼성전자 총수가 된 이재용 회장에 관한 뉴스를 비슷한 비중으로 나란히 배치했다. 이 같은 편집은 사설에서도 반복됐다. 신문 성향에 따라 제목은 달리 붙였지만 윤 정부에는 정책의 신속하고 과감한 실행을 요청했고, 이 회장에게는 삼성 신화의 재창출을 주문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발표했으나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날짜에 삼성그룹이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발표하자 도하 거의 모든 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노 대통령이 “정부보다 삼성이 훨씬 힘이 있다”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민관이 협력해야만 나라 경제를 끌고 갈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을 직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주재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는 첫 생중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았다. 우선 정부가 위기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다는 사실과 어떤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고 가는지를 국민들에 부각시키려 했다는 분석이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일자리는 민간이 만들고 투자도 민간이 해야 효율이 높다”고 강조했다. 4개월 반 전으로 돌아가 보자.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16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 모두 발언에서 “어려울수록 또 위기에 처할수록 민간·시장 주도로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당면한 민생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고질적인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위기 대응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민간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정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민간의 혁신과 신산업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와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관행적인 그림자 규제들을 모조리 걷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투자의 위축과 생산성 하락을 더 이상 우리 경제와 정치가 방관할 수 없다”며 “경제안보 시대의 전략자산인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의 R&D 지원과 인재 양성에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들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막는 노동시장,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낙후된 교육제도,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계속 가중시켜가는 연금제도는 당장이라도 두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항공모함을 예로 들어 정부와 기업 관계를 설명했다. 세계 1위 미국 국방력을 상징하는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위해선 수많은 미국 기업의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정부와 기업은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경제단체장과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이번 비상경제민생회의는 판교회의의 데자뷔인 셈이다. 다만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윤 대통령과 참석 장관들에게 위기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일부 지적도 있었지만 정권 출범부터 강조해 온 ‘민간 중시 경제’라는 초심(初心)을 지키려는 자세에는 평가하는 바가 크다. 윤 대통령이 꺼내든 경제 활성화 카드는 한마디로 규제 완화다. 주 52시간제 규제를 유연하게 한다거나 근로자 30명 미만 영세 기업에 대한 연장근로 허용은 관련 기업과 종사 근로자들에겐 절실한 문제다.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외국인 인력을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도 바람직하다. 15억원이 넘는 주택에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는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적절한 조치다. 다만 고금리 여파로 자금경색 위기에 직면해 있는 기업들과 중소 증권사에 대한 지원책은 안 보였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산업을 위해 뒤늦게 K칩스법을 만들었는데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노동·교육·연금 등 경제 구조 개혁에 필요한 이슈도 언급되지 않았다.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이은 11월 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는 수출이 주안점이었다. 무역이 7개월째 적자를 기록하고 9월까지 23개월 연속 증가해 온 수출마저 2년 만에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논의된 ‘신성장 수출동력 확보 방안’의 구체적인 이행 방향을 정리했다. 5대 분야 세부 추진 과제에 대한 실행계획이다. 간략히 설펴보면 먼저 주력 산업에서는 2차전지 산업 혁신전략 수립, 주력 산업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올라 있다. 해외 건설에서는 원팀 코리아 수주지원단 첫 출정, 해외 건설업 특별연장근로 기한 연장이 들어 있다. 또 중소·벤처와 관련해 역동적 벤처 투자 생태계 조성 방안, 수출 중소기업 지원 방안이 꼽혔다. 관광·콘텐츠 분야는 전자여행허가제 개선, 호텔 등 외국인 고용쿼터 규제 완화가 담겼다. 디지털·바이오·우주 분야에서는 인공지능 초일류 전략, 디지털바이오 혁신 전략을 내세웠다. 추 장관은 “정부 역량을 결집해 대부분 과제를 연내에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잇따라 열린 두 차례 회의는 올 1~3분기의 저조한 경제 실적을 반전시켜 내년도 신성장을 위한 모멘텀을 확보해야 하는 남은 4분기(10~12월)에 해야 할 긴급 처방이다. 곧바로 산업별로 심층 토론을 통해 규제 혁파에 가시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여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도 참석시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와 공감할 부분이 많은 일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의 복합 위기 대처 모습이 눈에 띈다. 정권 지지율 하락과 엔화의 초약세, 지역경제 쇠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우리와 닮은꼴이다. 기시다 총리는 2일 총리 관저에서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자동차 사장 등 자동차업계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자율주행과 탈탄소 등 업계가 안고 있는 과제를 총리가 직접 듣고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최근 물가 상승을 근거로 임금 인상을 기대한다고 말했고. 도요다 사장은 자동차 관련 세제 개선을 요청했다. 총리가 특정 업계와 협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대화는 정기적으로 여는 것으로 사전 조정됐다. 그 첫 회합인 2일에는 총리가 관련 업계의 기본적인 입장과 방침을 들었다. 다음번에는 공급망 관련 문제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게이단렌(経団連) 회장과 함께 자동차업계 대표들이 참석했다. 자동차 업계 구성원은 게이단렌에서 자동차 관련 정책을 논의하는 ‘모빌리티 위원회’ 위원이다. 이 위원회는 자율주행과 차세대이동서비스(MaaS)를 살린 성장 전략을 정리해 정부에 제언한다. 탈탄소와 디지털화 같은 업계를 넘어선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정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경제·일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관민이 협력해 새로운 성장에 도전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총리가 스스로 자동차 산업을 겨냥한 것은 정권이 중시하는 임금 인상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재계는 이날 회의에 맞춰 ‘임금 인상을 단행할 때가 아닌가’라며 맞장구쳤다. 기시다 총리는 이에 앞서 지난 10월 28일 정권 출범 후 두 번째 경제 대책으로 ‘고물가 극복·경제재생 실현을 위한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했다. 기시다 정권이 내거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기치 아래 ‘고물가와 엔저 대응’ ‘구조적인 임금 인상’ ‘성장을 위한 투자와 개혁’을 중점 분야로 한 종합적인 대책이다. 이 대책은 일본 경제 재생을 위한 ①물가 급등·임금 인상에 대한 대처 ②엔화 약세를 살린 지역의 ‘돈 버는 힘’ 회복과 강화 ③새로운 자본주의 가속 ④국민의 안전·안심 확보 등 네 가지를 골자로 하고 있다. 향후 이 경제 대책을 뒷받침하는 2022년도 제2차 추경예산이 편성된다. 사업 규모는 대략 72조엔(약 720조원)으로 잡혀 있다. 대규모 재원을 신속하게 생산성 향상에 집중시킨다는 기시다 정권의 행동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세계 경제 위기의 시대를 맞아 대응 정책을 다듬어 나가면서 정책 실행 효과를 가시화해 나가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에 정책 자원을 중점화하고, 투자와 고용을 움직이는 정책 운영을 꾀해 나가야 한다.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계속 추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의 정책 틀을 넘어선 새로운 사고와 접근 방법으로 경제를 지키는 정책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성공 여부는 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과거의 방식에 익숙한 경제관료들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2-11-04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경제 운영도 시진핑 직속? …시장 개혁파 세력 쇠퇴할 듯 중국 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국가주석)가 23일 3기 최고지도부를 발족시켰다. 자신은 당의 톱인 총서기, 국가원수인 국가주석, 군의 톱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 3개 포스트를 계속 장악하게 됐다. 그는 신지도부를 거의 자신의 복심 또는 옛 부하들로 포진하면서 후계 후보도 두지 않았다. 그의 임기 규정은 없고, 다음 당대회인 2027년 이후에도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 집단지도체제를 벗어나 완벽한 ‘1강 권력’ 체제에서 초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3기 시진핑 정권에서는 경제 운영도 시 주석의 직할(直轄)이 될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의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제20회 공산당 대회(16~22일)가 중국 경기 회복에 탄력을 주어 급속한 위안화 약세를 차단하고 주가 강세를 뒷받침하는 경제정책을 내놓을 새로운 체제를 결정할 수 있을까에 주목해 왔다. 세계 경제의 복합 불황에서 중국의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목은 당대회가 열리자마자 이상(異常) 사태를 만나 우려와 추측으로 바뀌었다. 시진핑 주석은 16일 활동보고에서 경제성장 수치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국가통계국은 17일 저녁 갑자기 7~9월 중국의 GDP 통계 공표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5년 전 당대회에서는 기간 중 7~9월 통계를 예정대로 발표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민간기업에 대한 통제 강화 등으로 안정 성장이 흔들리고 있으며, '성장 제일' 노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당대회가 끝난 24일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2022년 7~9월 실질 GDP가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했다. 연간 실질 GDP는 정부 목표인 5.5% 선을 크게 밑돌았다. 코로나19 봉쇄를 통한 ‘제로 코로나’ 정책과 부동산 금융규제에서 비롯된 주택시장 침체가 그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이번 GDP 발표 연기는 시진핑 3기 진입에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GDP의 공표로 ‘정책 불황’이라는 비판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진핑 집권 3기 출범과 함께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에 막이 내리고 있다고 보는 금융시장 관계자도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중국 당국의 규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 주석은 16일 ‘제로 코로나’ 정책과 관련해 바이러스 만연 방지와 경제사회 발전을 양립시켰다”며 성과를 강조했다. 활동보고에는 주택 버블 억제책을 견지한다는 방침도 명기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 주석은 경제성장에 관한 장기적인 수치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2035년에 1인당 GDP를 중간 정도의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모호한 목표를 내놓았다. 3만 달러 전후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염두에 두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2021년 시점에서 1만2551달러(약 1870만원)였다. 3만 달러까지 올리려면 연평균 6.4% 늘려야 한다. 그러나 2년 반이 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은 코로나19가 재확산될 때마다 이동 제한을 강화해 왔다. 서비스업 등을 중심으로 기업은 불투명한 앞날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의 고공 행진 등 고용 회복의 지연은 가계에 영향을 미쳐 소득 불안과 절약 움직임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도 개발기업의 자금난 등으로 아파트 시장을 혼란스럽게 했다. 지방재정과 금융을 포함한 부동산 의존형 경제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규제 후유증을 치유하면서 안정 성장을 이어가려면 개혁·개방 노선으로 민간기업의 힘을 키우는 게 순리라는 도착점에 이른다. 그러나 IT(정보기술)와 교육 같은 산업에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때 실현의 길이 험난해 보인다. ◊ 중국 경제정책의 투 톱 ‘리창-허리펑’ 체제 이 같은 중국 경제의 현실에서 시진핑 3기 체제에서 경제팀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선은 경제사령탑의 인사다. 시진핑 주석은 총리 후보로 리창(李强·63) 상하이시 당 서기를 기용했다. 총리에는 부총리 경험자가 일하는 관례가 있어 미경험의 리창의 발탁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시진핑 저장성(浙江省) 시대의 비서였다. 시 주석과 거리가 있었던 현 리커창(李克强) 총리와는 달리 경제 운영을 담당하는 총리를 신뢰할 수 있는 인물에게 맡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융을 포함한 거시경제 정책의 사령탑에는 류허(劉鶴·70) 부총리 후임에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의 허리펑(何立峰·67) 주임이 맡게 됐다. 그는 샤먼대 박사 출신으로 시 주석과 40년 이상 친분을 쌓았다. 2014년에 발개위 부주임에, 2017년부터는 주임으로서 조직을 이끌어 왔다. 시 주석이 베이징을 떠나 국내나 해외에 출장할 경우 거의 빠짐없이 동행해 왔다. 그는 일대일로 사업에 깊숙이 연관돼 있다.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는 데도 강한 의욕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금융 행정과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포함해 향후 5년간 거시경제 운영의 책임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총서기가 정치, 총리가 경제 운영을 각각 담당해왔다. 시진핑 지도부가 처음 출범할 당시 리궈창 총리가 경제 운영을 나누고 있었지만, 시 주석은 2016년경부터 측근 류허 부총리를 내세워 경제정책에도 관여해 왔다. 발개위는 계획경제시대인 1952년 발족한 국가계획위원회를 전신으로 하는 국무원의 핵심 조직이다. 에너지정책과 각 산업에 대해 관리감독도 하며, 인프라 등 공공사업의 허가 등 경제정책 전체에 강한 권한을 가진다. 허리펑은 거시경제 운영에서 특히 격차시정을 목표로 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의 추진 등 시진핑 주석의 색깔을 한층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문가들은 류허 부총리가 경제통제를 중시하는 시진핑의 방침과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당내 개혁파 간의 미묘한 균형을 잡고 거시경제 운영에 맞춰 왔다면서 그가 지도부를 떠나면 중국의 시장화 개혁을 지지하는 개혁파의 힘은 더욱 쇠퇴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중국에서 '인민경제'라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인민경제는 ‘재산을 인민들이 골고루 소유하는 것이다. 기업은 자기 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정의된다. 개혁·개방 경제의 후퇴를 예고하는 말로 새삼 주목된다. 중국 경제는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데다 지방의 중소은행을 중심으로 금융 불안의 위험도 팽배하다. 이런 가운데 실무 경험이 부족한 ‘리창-허리펑’ 콤비가 능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중국 경제의 기본방침, 당대회 보고 시진핑 총서기의 보고는 ‘중국식 현대화’ ‘향후 5년의 목표·임무’ '대만 통일에 무력행사 포기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3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중국의 향후 기본방침을 정리하고 있다. 일본 다이와 종합연구소와 다이이치 경제연구소는 이 가운데 경제 관련 내용을 분석한 결과 2017년 13장에서 15장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경제와 관련된 각론은 4장 ‘새로운 발전 형태 구축을 가속화하고 질 높은 발전 추진에 힘쓴다’, 5장 ‘과학교육 흥국(興國) 전략을 실시해 인재의 현대화 건설 지원을 강화한다’, 9장 ‘민생복지를 증진하고 인민생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 11장 ‘국가안전보장시스템·능력의 현대화를 추진해 단호하게 국가안전보장과 사회의 안정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11장에서는 경제안전보장과 관련해 ‘중점분야의 안전보장 능력 정비에 힘써 식량, 에너지·자원, 중요 산업체인·공급망의 안전보장을 확보한다’고 명기했다. 이 보고는 우선 산업분야와 관련해 지난 10년간 실적으로 “차세대 정보기술을 비롯한 전략적 신흥산업의 발전이 확대되면서 유인우주선과 심해탐사, 슈퍼컴퓨터, 위성GPS, 양자정보, 핵전력기술, 항공기, 바이오제약 등에서 중요한 성과를 취득할 것”이라며 “중국은 이미 이노베이션형 국가가 됐다”고 선언했다. 이노베이션형 국가란 중국이 2006년에 내놓은 2020년에 실현하고 싶은 목표다. GDP에서 차지하는 R&D 지출이 2.5% 이상, 학술논문 및 특허등록 건수가 세계 5위 이내 등의 수치목표와 이노베이션 능력을 평가하는 정성적 목표가 정해져 있다. 실제로 2020년 R&D 지출의 GDP 비율은 2.41%로 2.5% 이상 되지는 않았지만 기타 지표 등에 의한 종합 판단 이래 나온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산업발전에 관한 사항은 4장 ‘새로운 발전형태의 구축을 가속화하고 질 높은 발전 추진’에서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기본 방침은 “현대화 산업체계를 구축하고 경제발전의 착안점은 실물경제에 둔다”는 것이다. 최대 목표는 산업구조 업그레이드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신형 공업화를 추진하고, 제조강국, 품질강국, 우주강국, 교통강국, 인터넷강국, 디지털중국의 건설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제조강국’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전에 발표한 ‘중국 제조 2025’의 연장선상에 있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여파를 염두에 두고 “산업 공급망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그 강인성을 높이겠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담았다. 이번에 독립된 부분으로 5장에 들어간 ‘과학교육을 통한 진흥전략을 실시하고 현대화 건설의 담당자(인재) 육성 강화’가 눈길을 끈다. “과학기술을 제1의 생산력으로, 인재를 제1의 자원으로, 이노베이션을 제1의 원동력으로 삼을 것을 견지한다”고 강조했다. 8장에서는 문화, 콘텐츠 관련 산업의 육성에 주력하고, 제9장 민생복지와 관련해서는 건강한 중국을, 제10장 녹색발전에서는 저탄소 및 환경 비즈니스 관련 산업을 크게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적시했다. ◊ 시진핑 3기 체제에서 미·중 갈등 심화 중국이 2016년 이래 이노베이션국가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책의 혜택이 국유기업에 집중되어 민영기업은 모기장 밖에 놓인다는 이른바 ’국진민퇴(國進民退)’의 움직임과 민영 신흥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등 기본방침·정책과 실제 수행에 큰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번 당대회 보고에서 경제와 관련된 부분을 보면 질 높은 발전과 이노베이션 중시 등 기존 노선을 답습한 것이 많다. 문제는 이러한 기본방침과 정책을 실현할 때 모순과 알력이 생기기 쉽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제조강국·품질강국·우주강국·교통강국·인터넷강국· 디지털중국 건설을 가속화하면 미국과의 갈등·마찰은 더욱 심화된다. 시진핑의 일강 체제에서 특히 부각될 문제로 꼽히는 대목이다. 변화무쌍한 중국이지만 5년에 한 번 열리는 전당대회에서의 보고와 지도부 인사는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분명한 나침반이 된다. 우리는 이를 장기적인 시각에서 총체를 파악하고, 중국이 향후 펼쳐나가는 정책 동향을 주시해야 한다. 반대편에 서 있는 미·일 등의 정부와 기업의 대응은 눈을 뗄 수 없는 사안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2-10-25 06:00:00
- [곽재원의 Now&Future] 복합위기 난제 …'기업하는 자유'부터 돌려줘야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기업하는 자유’를 돌려드리는 것이 끊임없는 혁신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 나아가 지속가능한 성장에 마중물을 붓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아주경제의 ‘제14회 착한 성장, 좋은 일자리 글로벌포럼(2022 GGGF)’에서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향후 5년간 기업 규제완화를 핵심 정책기조로 삼겠다는 의미인 동시에 ‘생산성 높은 경제’로의 경제구조개혁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는 지금 복합위기의 시대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저성장과 생산성 하락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코로나 팬데믹, 보호무역주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이 겹쳐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三重苦)를 몰고왔다. 복합위기가 표출되는 양상은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가 금리인상과 달러강세를 유도하며 세계 경제를 리드하고 있는 미국의 자세에 주목하며 추수(追隨) 하고 있는 형세다. 특히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8월 26일 경제심포지엄 잭슨홀 회의에서 행한 고인플레이션 억제에 대해 ‘해낼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keep at it until the job is done)는 발언은 이제 주요국들의 금과옥조가 된 듯하다. 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가 극에 달한 2012년 7월 26일,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콘퍼런스에서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whatever it takes) 는 명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파월 의장은 FRB에 주어진 물가 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두 가지 사명 중 전자, 즉 인플레이션 억제에 방점을 찍었다. 적당한 시기에 경기를 배려해 금리인하로 돌아설 것이 아니냐는 미국증시의 낙관론에 맞선 잭슨홀 발(發) 충격요법이다. 이에 따라 세계 금융당국은 9월 20~21일로 예정된 차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결정에 대해 관심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경기를 달구지도 식히지도 않는 중립금리에 이르렀지만 여기서 금리 인상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측이다. 또 하나 주요국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새로 출범한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정권의 위기관리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새로 취임하는 G7 정상은 트러스가 처음이다. 생활고에 대한 국민의 불만, 인플레 저지를 위한 금리인상으로 추락한 국내 경기, 그치지 않는 여당 내의 노선 대립, 기세등등하는 야당·노동당, 우크라이나 피로, 그리고 이미 진흙탕에 빠진 브렉시트 등 많은 난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가 관심이다. ‘철(鐵)의 여자· 대처의 재래(再來)’ 라는 이미지로 톱의 자리에 오른 트러스 총리의 위기관리와 국가개혁의 수완이 벌써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과 정반대로 금융완화 지속의 길을 택한 일본의 동향도 주목거리다. 달러화에 대해서 뿐 아니라 러시아 가스관 노르드스트림 공급 중단 연장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깊어지는 유로화와 영국 트러스 신정권의 생활비 위기 대책이 인플레이션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영국 파운드화에 대해서도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어려운 외부환경 아래 일본의 수입물가 상승압력은 지속되고 있다. 물가상승의 피크아웃(정점) 수준과 그 타이밍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엔화 시세는 달러당 142엔을 기록, 7월 말 133엔대에서 한달반 사이에 9엔이나 떨어졌다. 현재 달러화는 폭넓은 통화에 대해서 강세가 진행.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실력을 나타내는 달러 지수가 장중 한때 110으로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금융정책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거의 없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경기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물가를 잡는 게 우선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추가 금리인상도 미국만큼 큰 폭은 아니지만 추세는 따라갈 작정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물가가 계속 오르다가 8월에 잠시 주춤했는데 10월경에는 피크아웃을 맞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폈다. 무역수지적자는 계속되고 있지만 경상수지가 흑자라서 문제가 없다는 분석도 했다. 현재 한 총리와 추 부총리의 발언 등에서 포착되고 있는 정책 당국의 최우선 과제는 기업을 추스르는 것이다. 규제완화와 감세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호응하는 모습이다. 박대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불황의 악순환을 신속히 끊어내기 위해 정부와 국회, 기업이 중지를 모아야 한다"며 ” '규제 완화'와 '기술 혁신'이 복합위기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앞으로는 일자리 창출도, 국가 경제 견인차 역할도, 인공지능(AI), 가상현실, 블록체인, 빅데이터, 바이오 등을 비롯한 신산업에서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를 떠나서 민생 문제,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지혜를 맞대고 손을 맞잡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빗거리, 정쟁의 요소를 최소화시키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우리 국민에게 목전에 와닿아 있는 처방도 효과적으로 내놔야 하는 것이 현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삼중고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은 매우 시급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누가 어떤 정당이 집권했느냐와 무관하게 인구 소멸, 저출산 고령화 사회, 에너지 전환과 같은 중장기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경제의 ‘2022 GGGF’에서는 ‘복합위기 처방전= 기업 살리기= 규제완화(감세포함) +기술혁신= 생산성 높은 경제= 착한 성장, 좋은 일자리’ 라는 어려운 다원고차(多元高次) 방정식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지금부터 할 일이 명백해졌기에 이 방정식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2-09-07 14:54:02
- [곽재원의 Now&Future] 기술혁신이 국가 경쟁력이다 … Y노믹스, '웹3.0'을 주목하라 … 최근 정보통신업계에 인터넷의 새로운 형태인 ‘웹(Web)3.0’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인터넷과 차이점으로 '웹3.0'은 일부 기업만이 아닌 개인도 데이터를 이용·활용할 수 있어 우리 사회 본연의 모습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요즘 세계적으로 새로운 기술 혁신을 나라의 경제성장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인터넷이 우리에게 가까워진 것은 약 30년 전이다. 1993년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월드와이드웹(WWW)을 무상으로 공개함으로써 웹(거미집)처럼 펼쳐진 인터넷 공간이 생겼다. 웹에서는 원래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발신할 수 있지만 당초에는 PC(개인용 컴퓨터)로 페이지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 사용법이었다. ‘웹1.0’이다. 2세대인 ‘웹2.0’이라는 말이 등장한 게 2000년대 중반이다. 그 대표 격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이다. 미국에서 트위터 등이 생겨나면서 인터넷은 보기만 하는 것에서 개인도 정보를 올리고 교류하는 장(場)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웹’의 모든 패권을 미국이 장악했다. 플랫폼으로 불리는 기업이 개인 데이터를 관리하는 중앙집권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한 것이다. 이제 등장한 ‘웹3.0은 과거 30년간 유지해 온 게임의 룰을 일거에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웹3.0‘의 정의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거의 공통되는 것이 분산대장(分散臺帳)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특정 기업의 서버가 아닌 무수한 개인 컴퓨터에 분산돼 저장·관리되는 기술이다. 암호기술에 의해 이력을 사슬(체인)처럼 연결해 데이터 조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 기술이 확산됨에 따라 플랫폼에 데이터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관리·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등 거대 IT기업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 정보 액세스와 데이터 이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국 네트워크가 IT(정보기술) 대기업에 의한 중앙집권형 지배구조에서 분산형으로 바뀔 것이다. ’웹3.0‘은 사회 본연의 모습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로 방식이다. 회사를 대체할 조직이라며 DAO(분산형 자율조직)라는 개념이 나왔다. DAO에서는 사업 또는 미션마다 인터넷상에 사람이 모인다. 거기에 참여하기 위해 블록체인상에 기록되는 디지털 자산의 토큰을 구입하거나 보수로 받기도 한다. 고용계약에 기초한 회사와는 성질이 달라 부업을 전제로 하는 근로 방식도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기술에서 예를 들어 NFT(대체불가능토큰)는 데이터에 유일성을 부여하고 영상과 음악, 암호자산의 증명서와 같은 기능을 한다. 쉽게 복사되어 무료로 유통되던 데이터에도 새로운 가치가 생긴다. 세계에 통용되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밖에 거대 가상공간 메타버스, 거래소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는 분산금융 ‘DeFi’, 게임과 금융을 조합한 ‘GameFi’ 등 새로운 비즈니스 형태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웹3.0’의 첫 번째 성공 사례는 2009년 등장한 비트코인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열풍을 이끌고 있는 것은 NFT다. 그 거래에는 암호화폐 점유율 2위인 이더가 유통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이더리움'이 주로 사용돼 왔다. 이더리움은 인력을 통하지 않고 계약 내용을 인터넷상에서 자동 실행하는 스마트 콘트랙트라는 구조가 충실하다. NFT화로 디지털 아트는 유일무이한 것으로 증명됨으로써 콘텐츠 2차 유통에 따른 수익화의 길도 열려 아티스트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게다가 프로스포츠 명장면의 비디오 클립, 브랜드 상품에 연결된 보유 증명 등 사람이 소유한 기쁨을 느끼거나 구입해 응원하고 싶은 여러 가지 것들이 NFT화되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메타(옛 페이스북)의 본격 진입을 계기로 메타버스에 이목이 집중되자 NFT와 블록체인 게임 등 ‘웹3.0’ 비즈니스와 관계가 클로즈업됐다. 메타버스는 NFT 전시판매와 블록체인 게임의 장, 아바타 이벤트 고객 등 ‘웹3.0’ 비즈니스의 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서는 또한 기존의 전자상거래(EC)를 이용할 때와 같이 플랫폼마다 어카운트를 구분하지 않아도 같은 아바타로 여러 가지 메타버스를 방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개인이 인터넷 ‘주권’을 되찾으려는 ‘웹3.0’의 세계관에 가깝다. ‘웹3.0’에서도 패권은 미국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이 디지털 자산 기술의 개발·촉진을 요구하는 한편 소비자 등을 보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와이오밍주는 DAO에 법인격을 인정했다. 지난 30년간 뒤처져 왔다고 생각한 일본은 지난 6월 7일 결정한 경제재정운영방침과 기시다 정부가 기치로 내건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 계획에 ‘웹3.0’을 포함시켰다. 분기마다 기업의 암호화폐 평가익에 대한 과세가 의무화되는 등 세제와 규제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에서 규제 완화 등 조속한 환경 정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DAO의 상법상 위치 설정이나 토큰의 세제 취급에 대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은 지난 6월 ‘웹3.0이 개척하는 미래’를 주제로 ‘세계 디지털 서밋 2022’(일본경제신문·총무성 주최)을 열었다. ‘웹3.0’을 사용하는 20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물론 현재론선 인터넷 게임 체인저로서 ‘웹3.0’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현재 2만 달러 전후로 반년 남짓 만에 약 70% 폭락했다. 아트계 NFT 가격도 급락했다. 미국 달러화와 등가를 유지하기로 했던 암호화폐 '테라 USD'는 5월 이후 순식간에 거의 무가치해졌다. 당연히 빌 게이츠와 같은 회의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의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암호화폐는 가치 급등락이 심하다. 돈세탁의 온상이 되기 쉬워 NFT를 편취하는 사기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리스크다. 회사와 비교해 시장에서 감시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DAO가 범죄 등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투자가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DAO 본연의 자세를 포함해 ‘웹3.0’에서는 국제적인 제도 정비도 과제로 떠오른다. 현재 ‘웹3.0’ 비즈니스는 IT 대기업들이 클라우드에서 제공하는 블록체인상에 구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대로라면 IT 대기업 ‘손 위’에서 비즈니스가 계속된다. 메타데이터도 사용법에 따라서는 아바타의 데이터가 통째로 기록되어 행동 추적된다고 하는, ‘웹3.0’ 콘셉트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IT 대기업과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현재의 ‘웹2.0’형 기업들도 클라우드 서비스 심화와 꾸준한 비즈니스 모델 재검토, 인공지능(AI) 활용 등 고객 만족도 향상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것과의 경쟁 속에서 ‘웹3.0’ 비즈니스의 수익 모델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는지를 주의 깊게 판별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지난 30년간 홈페이지 열람이 중심이었던 ‘웹1.0’에서 2000년대에 SNS 등 네트워크 사용자들로 하여금 정보 발신을 가능하게 한 ‘웹2.0’으로 진화했다. 현재 떠오르고 있는 ‘웹3.0’은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IT 대기업과 같은 특정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고 이용자들 사이에 데이터를 공유·관리하면서 운용하는 분산형 웹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30년’이 IT에서 뒤처진 시대와 겹친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비즈니스에서 활약하는 스타트업을 키워 일본 경제의 재흥(再興)으로 연결하고 싶어한다. 새로운 기술을 미지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회에 도입해 성장으로 연결하겠다는 게 일본의 구상이다. ‘웹3.0’에 의한 경제 부흥이다. ‘웹3.0’의 목표는 중심이 없는 세계다. 주도권은 어느 나라에도 열려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은 신산업을 키우면서 규제를 만들지만, 한국과 일본은 먼저 규제부터 만들고 싶어한다. 성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규제당국은 실패와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웹3.0’은 제4차 산업혁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결정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시야에서 멀어져 있던 정보통신정책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개최한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존 주요 첨단 산업의 혁신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신산업 창출을 통한 새로운 성장까지를 겨냥해야 한다. 첨단 산업의 혁신과 신산업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이에 맞는 적절한 정보통신정책이 긴요하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제4차 산업혁명이 지금 얼마나 확산되었는지 보면 자명해진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부터 과학기술산업정책에 ‘웹3.0’을 포함하는 정보통신정책을 과감히 융합하는 Y노믹스를 추진해야 한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2022-08-19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