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논설고문
leejaeho6424@gmail.com
- 아주경제 초빙논설위원
- 前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실장
- 前 관훈클럽 총무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정치 달인' 이재명, 져야 이긴다 1. 특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검찰이 자신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 ‘김건희 특검’으로 맞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두 사안은 동열에 놓을 사안이 아니다. 하나는 당사자가 순수한 사인(私人)이었을 때 일이고, 다른 하나는 선출된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된 비리 혐의다. 특검은 공직자의 비리를 주 대상으로 한다. 공직자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그렇다. 김건희 건은 그동안 나름대로 검찰의 판단을 거쳤다. 주가조작 혐의는 문재인 정권에서 2년 반 동안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허위 경력 기재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반면 이 대표는 선거법 기소에 이어 14일 성남FC 후원금과 관련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 두 사안은 시기나 성격도 다르다. 패키지가 될 수 없다. 이 대표는 2021년 7월 12일 MBC 라디오와 인터뷰하면서 “결혼 전 일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특검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도 어렵고, 태운다고 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특검을 들고 나왔다. 누가 봐도 검찰의 기소에 대한 맞불 놓기로 비친다. 당내에선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는 걸 명심하라”는 말 등이 쏟아졌다. 발의된 특검도 대규모다. 특검보 4명과 파견검사 20명을 포함해 100여 명으로 팀을 꾸리도록 돼 있다. 역대 최대로 알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최순실 특검(105명)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2. 영수회담 이 대표는 그러면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1대1 영수회담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여야를 떠나서 민생을 구하는데 어떤 게 필요한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다. 민생을 살리겠다는 집념이 그만큼 강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절박한 정치적 동기가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한쪽에선 특검을 하자며 영부인을 직격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1대1 영수회담을 요구하는 것인데, 우리 정치사에서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치권 일각의 시선대로 이 대표는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검경(檢警)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그렇다면 영수회담까지 방탄용이라는 얘기인가. 국민의힘 일각에선 “우리도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고가 옷 구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 요구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저런 식으로 나오면 ‘쌍특검’으로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5일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는 김정숙 여사를 업무상 횡령과 국고 손실 교사죄 혐의 등으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김 여사가 청와대 특수활동비 담당자로 하여금 수백 벌의 고가 명품 의류와 수억 원에 해당하는 장신구 등을 구입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민생대책위는 “청와대에선 모두 김 여사가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에서는 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한국납세자연맹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특활비 지출 내역과 김 여사의 의상과 액세서리 등이 포함된 의전비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문재인 청와대는 “국가안보 등 민감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일부를 공개하도록 결정했다. 청와대는 불복하고 3월 항소했다. 납세자연맹은 윤석열 대통령실에 대해서도 특활비 공개를 요구 중이다. 3. 정치와 기회 이런 상황에서 ‘쌍특검’을 하게 되면 여야 극한대치로 정국은 얼어붙고 국정은 마비될 게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면, 이에 반발하는 친문(親文)과 친명(親明) 간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권 여당이 그 단초를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표는 대선 이후 우리 정치를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정상 궤도에 복귀시킬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가 먼저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서 당을 떼어 놓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김건희 특검’만 해도 당 안팎에서 처음 그 얘기가 나왔을 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당이 나서서 그 짐을 나눠 지려 하지 말라”며 말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신선한 충격을 줬을 것이다. 내가 너무 순진한가? 이 대표는 그와는 정반대로 갔다. 그의 행보는 오직 ‘방탄’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비쳤다. 대선 패배에 대한 의미 있는 진단과 논쟁 한번 없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당대표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헌까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사법 리스크와 당의 분리(격리)보다는 일체화를 꾀한 셈이었다. 4. 방탄 그는 ‘방탄’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다수 국민이 ‘방탄’ 너머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정치인의 야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 어떤 비정함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팬덤 지지자들 생각은 다르겠지만 필자에겐 그렇게 다가온다. 적어도 그가 큰 꿈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이념과 계층의 유권자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야당 탄압' 탓으로 몰아붙인다. 정부·여당에 대해 “정쟁, 야당 탄압, 정적 제거에 국가 역량을 소모하지 말라”고 한다. 다수 국민의 인식과는 간격이 있다. 논객 진중권의 반응이 그 간격을 잘 보여준다. “무슨 정적 제거이고, 무슨 국력 소모인가. 공직자라면 ‘수사를 성실히 받고 제게 씌워진 혐의를 벗겠습니다’라고 해야지 당 차원에서 무슨 기구(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만든다고 될 일이냐.”(문화일보 9월 14일) 필자는 17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허위사실 공표) 공소장을 보았다. ‘대장동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에 대해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때는 하위 직원이라 몰랐다”고 했지만 해외 출장을 함께 가고, 대장동과 관련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음이 드러났다.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특혜’ 건도 이 대표는 당시 “국토부에서 협박을 받았다”고 했지만 협박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5. 정치가와 정치인 ‘진보’로 분류되는 한 중견 언론인은 이 사건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에 대해 모두 “이재명 대표의 부패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폈다. “법리상 유죄일 수는 있어도 정치를 그만둬야 할 정도의 부패 범죄는 아니다”는 것이다.(한겨레 2022년 9월 17일) ‘정치’를 ‘법’이라는 경직된 틀로만 볼 수 있느냐는 점에선 공감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논쟁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기에 딱 하나만 묻고 싶다. 그 거짓말이 내 진영(내편)이 아닌 반대 진영에서 나왔어도 그렇게 관대했을까.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했다. 2021년 12월 3일 전주에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문제가 되자 3월 7일 그 경위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이 대표는 단순한 수사(修辭)였다고 해명했지만 나에겐 쉽게 잊을 수 없는 말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직 이르지만 이 대표는 벌써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에 대한 필자의 고언도 그래서 나왔다.) 진부하지만 정치학개론 시간에 누구나 배우는 게 정치가(statesman)와 정치인(politician)에 대한 구별이다. 정치가는 대의(大義)를 좇아 큰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정치인은 정치 자체에 능한 사람이다.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정쟁(政爭)에서도 좀처럼 지는 법이 없다.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10일 한국갤럽은 투표자 1002명을 상대로 윤석열, 또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윤 후보는 ‘경험 부족’이 18%로 1위였고, 이 후보는 '신뢰성 부족‧거짓말'이 19%로 1위였다. 권위는 물론 심지어 권력까지도 도덕성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인격을 시험해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주어라’(링컨)는 말도 있다. 이 대표, 져야 이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09-19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尹의 '담대한 구상'과 햇볕정책의 그늘 윤석열 정권은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식량, 전기, 항만‧공항, 농업, 의료, 금융 지원은 물론 북·미 관계 개선과 재래식 무기 감축까지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북은 일거에 거부했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조롱과 막말로 답을 대신했다. 1. ‘햇볕 적폐’의 딸 김여정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34)은 “10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버림받은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면서 “오늘은 담대한 구상을 하고, 내일은 북침 전쟁 연습을 강행하는 파렴치한 이가 윤석열 그 위인으로, 역시 개는 엄지(어미)든 새끼든 짖어대기 일쑤”라고 조롱했다 “윤석열이란 인간 자체가 싫다”고도 했다. 한 세대에 걸쳐 ‘햇볕’이란 이름하에 왜곡·누적되어온 굴종적 대북 정책의 적폐를 한눈에 보는 듯하다. 김여정은 그 적폐가 낳은 딸이다. 그는 과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미국산 앵무새”라고 했다. 그가 김일성 핏줄이라고는 해도 우리로 치면 통일부 차관급 관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 정권 내내 우리 대통령의 카운트파트라도 되는 양 위세를 부렸다. 막말은 ‘양념’이다. 더는 그런 수모를 당해선 안 된다. 누구는 밸도 없나.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분을 느껴야 한다. 국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시종일관 대북 저자세가 자초한 일이다. 대통령실이 즉각 “무례하다”며 유감을 표하고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다. 이제라도 균형 잡힌 대북 정책을 통해 이런 품격 없는 언행이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2. ‘유연한 상호주의’에 거는 기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야당과 좌파 측은 “비핵화를 전제로 삼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이 비핵화를 수용할 가능성도 없는데 뭐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윤 정부는 북이 비핵화 의지만 보여줘도 초기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먼저 다 비핵화해라. 그럼 우리가 그다음에 한다’는 뜻이 아니다”면서 “의제를 우리가 먼저 저쪽에 줘야 (저쪽의) 답변을 기다릴 수 있고, (그렇게 해야) 의미 있는 회담이나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엄격한 상호주의가 아닌 ‘유연한 상호주의’ 방식으로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핵 합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자원·식량 지원 프로그램 같은 기제가 작동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제재 해제의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 미국을 움직이려면 북·미 간 최소한의 신뢰가 조성돼야 한다. 그게 우리에겐 부담이자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차제에 상호주의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상호주의는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1대1의 엄격한 상호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현실 속 상호주의는 훨씬 다양하다. 비대칭 상호주의도 많다. 여유 있는 쪽에서 더 많은 것을 주고, 가난한 쪽에선 더 적게 주는 것이다. 좌파가 보수 진영을 공격할 때 동원하는 단골 무기가 상호주의다. ‘상호주의’를 고집해 형편이 어려운 북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대부분 ‘비대칭 상호주의’로 북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보수의 상호주의를 기계적 상호주의로 보는 것은 정확한 인식이 아니다. 남북 문제 해결에 ‘교류‧협력’이 큰 역할을 했던 시대가 더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북이 핵 보유국이 된 후로 그런 인식이 더 강해졌다. 이번에도 일각에선 교류‧협력보다 북 체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 곧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제시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교류‧협력이야말로 남북 쌍방 간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손쉬운 방법이다. 적십자사를 통한 이산가족 상봉이나,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식량 지원 방안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3. 북핵,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 남북 문제가 구조적으로 어떤 접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북이 핵을 포기할 리 없고, 남은 ‘핵을 보유한 북’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서든 양보를 하면 좋겠지만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국가와 정권의 존폐가 걸린 일인 데다 미국,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북은 1956년 물리학자 30여 명을 소련 드부나 핵 연구소에 파견한 이래 핵 개발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2006년 제1차 핵실험에 성공했고, 지금은 7차 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핵기술 고도화와 핵무기 경량화에도 진전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북의 핵 개발을 막았어야 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대한 책임 문제도 규명되어야 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에 준 5억 달러는 북한 경제 규모로 보아 실로 큰돈이었다. 당시 한 재벌그룹 총수는 “1억 달러만 있으면 식량난을 비롯해 북이 직면한 산적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물경 5억 달러가 북에 건네졌다.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상황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모든 전문가들은 “북이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쟁만은 안 된다”고 한다. 어떻게 하라는 건가. 상황을 잘 관리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지금의 한·미 동맹 체제 아래에선 실현되기 어렵다. 북핵 문제 관리가 새 정부에는 또 하나의 큰 과제인 셈이다. 비핵화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안 되면 튼튼한 관리 체제라도 갖춰야 한다. ‘최선은 차선의 적(敵)’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4. 좌파의 ‘대화 공세’에 대처하는 법 ‘안보 딜레마’는 상대 국가의 군비 증강에 불안을 느낀 나라가 자신도 군비 증강에 나서지만 상대방도 다시 군비를 늘림으로써 두 나라 안보가 모두 불안해지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대화 딜레마’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자니 상대를 믿을 수 없고, 안 하자니 호전적 대결주의자로 몰리는 현상 말이다. 남북 대화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대화에 소극적인 듯 비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좌파는 불문곡직하고 ‘대결주의자’로 몰아버린다. “평화에 반대해? 그럼 전쟁하자는 거야?” 같은 단순 무지한 공격으로 그동안 보수는 힘들었고 좌파는 재미를 본 게 사실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든, 코로나 방역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든 기회만 되면 북과 대화할 의지를 내비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인 화해 협력 기류에 편승해 남북 대화에 물꼬를 튼 것은 좌파가 아닌 보수 우파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없었더라면 김대중(DJ)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DJ의 최초 통일 방안이 1980년대 중반에 나온 ‘공화국연방제’였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혹독했던 냉전시대 서슬 푸른 군사독재 치하에서 자신의 통일 방안에 ‘연방제’라는 이름을 붙였던 DJ는 이로 인해 극심한 고초를 겪었다. DJ는 결국 1990년대 초 ‘공화국연방제’ 통일 방안을 ‘공화국연합제’로 바꾼다. 그 결정적 계기가 1989년 노태우 정권이 발표한 7‧7선언이었다. 북방정책의 시발점이 된 7‧7선언은 ‘남북 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북한과 미국·일본 등 간 관계 개선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였다. DJ 측근들은 뒷날 “DJ는 7‧7선언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남북 평화체제 수립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통일론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게 된다”고 증언했다. (졸저 <사회통합형대북정책> 나남, 2013년) 좌파의 ‘대화 공세’에 주눅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5. “쇼는 안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운동 중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대북 쇼는 안 한다”(1월 24일 공약 발표)고 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북한과 대화는 필요하지만 정상 간 대화나 실무자들의 대화와 협상이 정치적인 쇼가 돼서는 안 되고 실질적인 평화 정착에 유익해야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다수 국민이 남북 간 대화나 행사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고, 이 회담이 또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싱가포르, 하노이)으로 이어짐으로써 화제가 되긴 했다. 그럼에도 주 의제였던 비핵화 문제엔 어떤 성과도 없었다. 권위주의 독재와 민주화 시대의 파고를 헤쳐 나오면서 보수나 진보나 남북 문제의 정치적 이용에 관한 한 원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이와 결별하겠다고 먼저 선언한 셈이다. 대북정책은 물론 일련의 외교 행사는 현안 논의와는 별개로 정치적·상징적 의미가 있게 마련이고, 이것이 한 나라의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된다. 거품(쇼)은 걷어내고 자산은 늘리겠다는 윤 대통령의 다짐을 주목한다. 이재호 (정치학 박사, 극동대 교수, 전 동아일보 논설실장)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08-23 10:22:57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정지 6개월' .. 그에겐 행운의 시간 .. 말(言) 화두로 씨름하라 ··· 당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페이스북에 광주 무등산에 오른 사진과 글을 올렸다. 징계 잠행 이후 닷새 만이다. 왜 무등산일까. 그는 "정초에 왔던 무등산, 여름에 다시 오겠다고 했었다"면서 “광주에서의 약속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공언한 ‘서진(西進)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정치 재개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당의 가장 약한 고리인 호남의 상징, 광주 무등산을 찾아 자신의 심경과 의사를 보다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거다. 역시 이준석답다. 그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두 가지가 빠진 징계결정 나는 이준석 대표가 당의 징계결정을 받아들이는 게 순리라고 본다. 물론 억울한 점도 있다. 징계결정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하나는 성상납에 대한 유죄의 증거다. 경찰이 수사 중이라고는 하나, 그가 성상납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증거를 인멸하나. 그 ‘인멸’도, 이 대표와 김철근 정무실장 간 공모, 또는 이 대표의 묵인이나 양해가 있었다는 정황상 증거조차도 아직 없다. 윤리위가 심증만으로 징계를 한 것이다. 이 대표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법적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때는 “징계처분”이 당대표에게 있으므로 “징계가 납득이 안 되면 우선 징계처분을 보류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당원권이 정지되면 피선거권과 선거권도 정지되므로 대표자격도 정지된다. 따라서 징계처분의 권한도 대표 직무대행(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당도 11일 의원총회에서 이를 확인했다. 의원들은 “(권 대표) 직무대행 체제로 당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권 대표는 직무대행 기간에 대해선 “윤리위가 결정한 바와 기본적으로 6개월”이라면서 “정치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예측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복귀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징계결정 수용하고 재충전하라” 당의 원로인 홍준표 대구시장도 8일 “징계결정을 수용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6개월간 오로지 사법적 절차를 통해 누명을 벗는 데만 주력하라”면서 “누명을 벗고 나면 새로운 이준석으로 업그레이드 돼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100% 공감한다. 홍 시장은 자신의 경우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7년 3월 탄핵 대선을 앞두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엮여 당원권이 1년 6개월 정지됐다”면서 “항소심 무죄판결로 당원권이 회복돼 대선후보와 당 대표를 다시 한 일이 있다”고 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김순례 전 최고위원도 자유한국당 시절이던 2019년 4월 5·18 폄하발언으로 당원권이 3개월 정지됐지만 징계 종료 후 복귀했다. 중앙일보는 이 대표에게 남은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재심 청구나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할 수는 있겠지만 인용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이 대표에게 호의적으로 알려진 20대 남성 팬덤이나, 자신의 임기 동안 급증했던 책임당원들을 앞세워 당을 압박할 수도 있겠지만 당을 쪼개는 행위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7월 10일) 黨의 중진들은 바라만 보고 있었나 문제의 성상납(성매매 알선수재)은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과 2016년에 있었던 일이다. 공소시효는 7년이다(징계시효는 공무원의 경우 3년). 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조기 수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죄는 엄중히 묻되 파장은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게 사법(司法)이 아닌 정치가 해야 할 일 아닌가. 물론 이번 싸움은 이 대표와 ‘윤핵관’과의 세력다툼 성격을 띤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이로 인해 당이 입은 상처가 너무 컸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2개월여 만에 30%대까지 떨어졌다. 당의 중진의원들이 제 역할을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홍준표 시장도 “(내홍 중인데도) 중진들의 모습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다선(多選)의 중진 의원들은 경륜도 있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능력도 있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지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안 내거나 못 내는 분위기다. 이번에도 이준석 대표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민주당의 이상민 의원(5선)이었다. 그는 이 대표가 “본인 스스로를 갉아먹고 궁극적으로는 당까지도 무너지게 한다”고 했다.(CBS 라디오) 중진들 무력하게 만든 팬덤정치 여야를 막론하고 중진들의 위축은 정치의 팬덤(fandom)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관계가 인기연예인과 팬 사이의 관계로 변하면서, 정치 참여의 수준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만큼 지지자들에게 구속된다. 그런 관계가 반드시 바람직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속칭 ‘∽빠 정치’나, 일부 초선 의원들의 일탈이 그 방증이다. 지지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정도라고 믿어온 중진들에겐 생경한 정치 환경이다. 그러다보니 ‘꼰대’ 소리를 듣기보다는 나서지 않겠다는 심리와 분위기가 강하다. 이 대표는 우군 확보 차원인 듯 당원 모집에 나섰다지만 그래서 될 일은 아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논리로 팬덤에 호소하겠다는 것인데 먹힐 것 같지 않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 “피해자 코스프레와 윤핵관 프레임으로, 사적 목적과 보복을 위해 저희 2030 보수 청년들을 소환하지 말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대의 아이콘 이준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그가 2011년 말 정치에 입문한 이후 오늘까지 그의 행적을 여러 자료를 통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착잡했다. 대개는 그의 ‘업보’라고 했다. 자업자득, 뿌린 대로 거뒀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를 바꿀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 영민한 청년에 대한 평가치고는 너무 박했다. 口業 – 입으로 쌓은 업보 40쪽이 넘는 ‘나무위키-이준석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읽으면서 나는 중간 중간에 내가 느낀 점들을 제목 형태로 써보았다. 예컨대 2019년 3월 당시 바른미래당의 청년학교 회식자리에서 차마 옮길 수 없는 말로 안철수를 모욕, 안 지지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제명을 촉구한 일이 있었다. 그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이 기사 밑에다 나는 ‘천방지축 안하무인’이라고 썼다. 2021년 6월 신임 당대표로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면회할 계획이 없다. 내가 당대표가 된 걸 감옥에서 보며 위안이 됐기를 바란다”고 했다. 논란이 되자 그는 기사 수정을 요청했다. 그해 8월 윤석열과의 통화내용이 유출돼 파문이 일었다. 이 두 기사 아래에 나는 ‘신뢰부족, 진정성의 결여’라고 적었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다 인용하기 어렵다.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는 이 대표의 지향성과 함께 정치인으로서 그가 뭘 보완해야 할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 사안은 본질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려웠다. 여론도 시민들의 불편을 생각해야 한다는 쪽과 전장연의 이동권 보호를 지지하는 쪽으로 갈렸다. 이 대표는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경찰과 교통공사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당장 유화적인 언어로 그분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줄 생각이 없다”면서 “불법시위를 중단하고 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얘기하자”고 했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반발도 거셌다. 주목할 것은 당시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고언(苦言)이었다. 그는 “당 대표가 항상 본인의 소신만 피력할 것 같으면 정치 해나가기를 어렵다”면서 “참을 때는 참고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 선배인 임태희 당시 대통령당선인 특별고문도 “정치에는 차가운 머리로 하는 영역도 있고, 따뜻한 가슴으로 해야 되는 영역이 있다. 발언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헤아려가면서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6개월, 말(言)만 붙들고 씨름하라 정치인으로서 이준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이 두 사람의 조언 속에 다 들어있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붉은 사인펜으로 ‘오만과 독선’을, 파란 펜으로는 ‘겸양과 말, 그리고 인내’를 적어 넣었다. ‘사고는 디지털로, 태도는 아날로그로’라는 말도 추가했다. 이준석이 말을 조금만 더 가려 했더라면, 그러기 위해서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무슨 엄청난 사건이나 사고 때문에, 거창한 이념이나 이론, 비단주머니에 담긴 비책 같은 게 없어서 이리 된 게 아니다. 말 때문이다. 말로 지은 업보, 곧 구업(口業) 때문이다. 말을 아끼려는 노력, 말을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하나만 있었어도 피해갈 수 있었다. 예부터 화종구출(禍從口出),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주어진 6개월-나는 역설적으로 이 대표에겐 행운의 시간이라고 본다- 말(言)이란 화두 하나만을 붙들고 씨름하시라. 정치를 구하고, 대한민국을 구하는 일쯤은 잠시 접어두시라. 한국정치의 자산(資産) 하나가 이런 식으로 피지도 못하고 꺾여서야 되겠는가.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07-14 16:36:13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동맹열차 탑승' 바른 결정이나 내릴 곳은 우리가 정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나토 파트너 국가 자격으로 참석한다. 한국 대통령이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고, 대면(對面) 다자외교 무대 데뷔이기도 하다. 나토 파트너국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나토 훈련에 참여하거나 정보 교환 등을 통해 협력 관계를 맺은 나라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 간 회의 세션에 참석하는 한편 여러 정상들과 양자 회담도 할 것”이라면서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한 국제질서를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리의 역할을 확대할 중요한 계기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와 글을 정리하던 중 김기수 전 세종연구소 국제정치연구실장이 쓴 <21세기 대한민국 대외전략-낭만적 평화란 없다>(2012년)란 책자에 눈길이 갔다. 출간된 지도 꽤 됐고, 1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이지만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북방정책 관점에서 짚어볼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북방정책이 햇볕정책의 뿌리 저자는 노태우 정권(1988∽1993년) 때 북방정책을 '한국이 국제 체제 수준의 외교 전략을 최초로 입안해 실행한(성공한) 케이스'로 본다. 한·소, 한·중 수교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체제의 변화를 유도했고, 북한은 이로 인한 체제적 압박(systemic constraint)을 견디지 못하고 끌려 들어옴으로써 획기적인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체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확한 평가다. 북방정책은 그 창의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감이 있다. 결실인 남북기본합의서만 해도 남북 화해와 상호 불가침, 교류협력의 방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대북·통일정책의 대장전(大章典)이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북한 측의 이행 노력이 뒤따르지 않은 게 주된 원인이었지만 우리 측에서도 뒤이은 정권들이 그 동력을 살려가지 못했다. 오늘날 진보 좌파 진영이 전가의 보도로 삼는 햇볕정책도 그 출발점은 북방정책이다. 북방정책 없이 햇볕정책이 가능했겠는가. 햇볕정책을 열 번 얘기할 때 북방정책을 한 번이라도 언급하는 균형감과 아량을 보였더라면 남북 관계 담론과 논의 구조가 이토록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체제 압박의 효과 윤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은 북한에 대한 체제적 압박, 곧 국제 체제에서의 압박을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 핵을 포기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이 되라는 압박이다. NATO는 회원국이 30개국이고, EU(유럽연합)는 회원국이 27개국이다. 윤 대통령이 NATO 회원국 정상들과 만날 때마다 김정은의 심경이 어떨까. 북방정책 당시 김일성 주석의 심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국제 체제의 압박을 통해 외교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최초의 인물로 오스트리아제국의 재상 메테르니히(Klemens von Metternich, 1773∽1859)를 소환한다. “메테르니히는 국제 관계가 단순 양자 관계에 기초해서는 평화롭게 유지될 수 없고, 강대국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체제(국제 체제·International System) 수준의 결속 혹은 압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메테르니히는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1815∽1898)와 함께 구미(歐美) 외교사에서 전설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이념적으로는 보수 반동이었지만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 세력 균형에 기초한 유럽 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를 구축함으로써 유럽에 100년 평화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저자는 북방정책이 메테르니히의 전략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암시한다. 김일성, “천군만마를 얻었다” 북방정책에 대해 당시 북한이 느꼈던 압박감은 실로 컸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자고 나면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우수수 무너지던 때였다. 당시 필자는 통일부 출입 기자였다. 김일성 주석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됐을 때 안도의 숨을 쉬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김일성은 “(기본합의서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들었다. 당시 김 주석은 “남북 관계는 누가 누구에게 먹히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1991년 1월 북한 신년사)고 했는데 이는 흡수 통일에 대한 북의 우려를 처음 표명한 것이었다. 6자 회담 실패 딛고 글로벌 접근으로 물론 지금 상황은 다르다. 그때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이전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한 핵 보유국이다. 북핵 문제를 남북 양자 관계 차원에서 풀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럴수록 다자적 차원에서 다시 시도해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북한에 대한 국제 체제적 압박을 통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압박'이란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렛대’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다자 정상외교를 통한 대북한 ‘체제적 압박’은 북핵 6자 회담 실패와 오버랩된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6자는 2003년부터 10여 년간 수차례 회담을 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이번 나토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북핵 문제를 거론한다면 다자적 해결 노력, 곧 6자에 국한되지 않는 확대된 ‘글로벌 접근’으로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언론은 “미국 중심의 동맹 열차, 그것도 앞자리에 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어떤 동맹 열차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타는 열차다. ‘자유’가 인류 보편의 가치임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영향력 상승” 미국 측 전문가들도 일제히 반겼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함으로써 북한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면서 “한국은 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몇 주 만에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파급력이 최상위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석좌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 한·미 동맹에 대해 우위에 서려고 시도한다면 한국이 매우 강력한 파트너들과 함께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월 11일 미국의소리 방송·VOA) 한·나토 양자 관계 차원에서 긍정적인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정섭은 “나토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안보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안보 개념과 한국군의 안보 역량을 현대화하는 거시적 차원에서 협력에 실익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김정섭, <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 MID)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대미 편중으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한 당사자로서 분단의 구조적 현실 앞에서 동맹 열차 탑승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백번 양보해도 한·미 관계가 이완돼 “한·미 연합훈련을 컴퓨터 게임으로 축소·전락시켰다”는 말을 들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동맹 열차 탑승’은 잘한 결정 동맹 열차 탑승은 바른 결정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통상질서가 흔들리고, 가치(價値)는 물론 첨단 기술과 자원을 놓고서도 서로 ‘깐부’가 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예컨대 한·일 관계 복원이라는 외교적 난제 중 난제도 일단 동맹 열차에 올라타고 난 후에 풀어야 한다. 동맹열차를 타기로 한 이상 일본과 함께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다. 일본 측에도 이점을 설득해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현지 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 참석의 실익을 배가하는 방책일 것이다. 다만 언제 어디에서 동맹 열차에서 내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친구 따라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서 내려야 한다. 앞으로 윤 대통령에게 그 결정은 탑승할 때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이 될 것이다. 우리 외교안보팀에 충분한 복안이 있을 걸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06-21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한 尹과 광주의 새로운 미래 주말 저녁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의 첫 인사가 화제에 올랐다. 요지는 “장관급 인사에서 호남 출신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정권이 몇 번 바뀌어도 장관 자리를 특정 지역에 대한 배려와 균형 인사의 기준쯤으로 여기는 세간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도 개각 때면 장관들 프로필을 보면서 영남은 몇 명, 호남은 몇 명 하며 세던 시절이 있었다. 유인태 전 의원이 노무현 정권에서 정무수석(2003∽2004년)을 할 때 얘기다. 사석에서 공정인사 시비가 일자 그는 일갈했다. “자꾸 영남, 호남 하지 마라. 우리 같은 사람(충북 제천)은 영호남 어디에도 못 끼어서 ‘기타’로 분류되니까.” 좌중엔 폭소가 터졌다. 장관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장관 인사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들이 있다. 이른바 개발독재-영남패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생긴 소외와 피해 의식 탓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그 상처까지 치유된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쉽게 단순 비교가 가능한 고위공직자 수(數)나 출신 지역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는 단순한 인사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정권의 국정 운영의 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유력 정치인에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반문(反文) 정서가 심상치 않은 지역을 어떻게 끌어안고 갈 것인가? 그의 대답이 이랬다. “우선 장관 인사에서 조금 배려해야 되겠지요. 청와대도 (어떻게 대처할지) 다 알아요.” 이런 ‘배려’를 윤석열 정부에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지역 안배보다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징후도 보인다. 보수와 광주의 상징자산을 공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장관과 여당 의원 전원을 데리고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을 때 나는 궁금해졌다. 40년 동안 한국 사회를 옥죄어온 이념과 지역 갈등의 한 매듭이 이렇게 풀린다면, 앞으로 광주는 어떻게 될까. 아니 어떻게 되어야 하나. 광주의 언론들은 윤 대통령의 파격적인 5·18 참배를 긍정 평가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호남 민심을 겨냥한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기 위한 개헌과 진상 규명의 로드맵까지 함께 제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미 공수(攻守)가 바뀐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 광주를 찾을 것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더 우렁차게 부를 것이다. 그 추모사와 노래가 ‘이제는 광주가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으로 들리지 않을까. 광주는 윤 대통령과 자유, 민주, 인권이란 광주(5·18)의 상징자산을 공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 진작 그렇게 됐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5·18 비방금지법 같은 과잉 입법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피 흘린 게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뒤틀린 수구 좌파와 단절하라” 우파 보수정권의 적극적인 5·18 포용 노력 앞에서 광주에 남은 것은 뭘까. 5·18 정신을 국민 통합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꾸준히 해나가야겠지만, 현실의 광주로 돌아간다면 새로운 광주, 달라진 광주를 만드는 일밖에는 없을 것이다. 민주도시 광주가 세계 일류도시로 비상(飛翔)하는 미래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광주 출신 정치인이자 시민사회운동가인 주동식(64)을 주목한다. 운동권 출신으로 일관되게 영남패권주의를 비판해 온 그는 ‘광주담론’ 세계에선 잘 알려진 논객이다. 지금은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반노(反노무현), 반문(反문재인) 인사로 꼽힌다. 주동식은 호남 혐오와 맞서 싸우면서 유명해졌다. 일베(일간베스트) 같은 곳에서 호남과 호남인을 비속한 표현으로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뛰어들었다. 다른 지역들도 이와 비슷한 혐오에 시달리고 있어서 ‘지역평등시민연대’라는 단체도 만들어 대표로 활동 중이다. 친노·친문 패권의 대안 세력을 그에게 있어서 달라진 광주, 새로운 광주는 친노·친문 패권과 단절한 광주다. 정리하면 이렇다. “김대중(DJ)을 중심으로 한 광주의 민주화 투쟁이 5·18을 거치면서 좌파(주로 NL계 주사파)에 의해 반미자주화투쟁으로 변질됐고, 광주가 이들 좌파의 숙주(宿主)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2016년 <호남과 친노>라는 저서에서 “독자 정치세력화에 실패한 친노가 민주당에 들어와 호남의 정치 기반을 접수하고, 호남의 민주 자산까지 훔쳐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친노는 ‘우리가 아니면 호남 너희는 왕따가 된다’는 논리로 호남을 압박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친노·친문의 패권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의 형성을 광주의 시급한 정치적 과제로 꼽았다. 이에 대한 반론도 물론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럼에도 친노·친문에 대한 현실정치적이고 객관적 접근을 통해 광주·호남 정치의 실체를 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차제에 공론화가 되기를 소망한다. 주동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양향자 의원(55·무소속·광주 서구을)은 새로운 광주를 얘기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한 요소다. 아니, ‘자산(資産)'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어릴 때 광주는 그 자체로 자부심” 광주여상 출신인 양 의원은 연구보조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고졸 직원으로는 삼성전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임원(상무)이 된 반도체 전문가다. 반도체의 ‘반’자도 모르던 그가 당시만 해도 커피를 타고 복사를 하던 일이 당연했던 보조원에서 28년 만에 반도체 설계 담당 임원이 된 과정은 어떤 인간승리보다 극적이다. 그의 자서전 격인 <꿈 너머 꿈을 향해 – 날자, 향자>(2018년)에는 그가 반도체를 알기 위해 밤잠 안 자고 사내대학과 직장 선배들에게 공학과 수학의 기초를 배우는 모습이 나온다. 읽다가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양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반도체 경쟁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우리 미래가 걸린 국가 간 패권 경쟁인데도 우리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부에 더 과감한 투자와 인재 양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보좌진의 성폭력 문제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최근 복당이 가능해졌으나 복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제가 입당했던 민주당이 지금의 민주당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릴 때 광주는 그 자체로도 자부심이었다고도 했다. 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와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이재명 고문의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광주에서 민주당 정치인이 이런 결심을 한다는 게 놀랍다. 양 의원의 말이다. “지금 광주는 멈춰 있다. 바다를 향해 굽이쳐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저수지와 같다. 사람도, 돈도, 일자리도 모두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다. 광주가 흐르려면 이제 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인용한 것인데 나는 그걸 이렇게 이해했다. 문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기울어진 실력이야. 자랑스러운 광주를 되찾아야 윤 대통령이 광주를 다녀간 이튿날, 광주 무등일보는 ‘20대에게 외면받는 5·18, 달라져야 한다’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5·18이 그 당시를 살았던 세대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어서 젊은 세대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낼 콘텐츠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광주, 달라진 광주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주동식의 지적처럼 좌파의 숙주가 되고, 좌파 특유의 반(反)기업 정서로 인해 인구 145만 대도시에 복합쇼핑몰 하나 유치하지 못하는 광주라면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광주 출신 한 출향 인사의 자탄이다.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자랑스러운 광주의 정신과 역량, 인정(人情)과 관용의 문화는 다 어디로 가고 뒤틀린 좌파와 마주 잡은 손만 덩그러니 남았는가.” 한없이 정치적이지만, 정작 정치가 죽어버린 땅에, 윤 대통령의 5·18 참배가 새 정치의 싹을 돋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게 이번 대통령의 5·18 참배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 고려대 정치학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06-01 12: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