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논설고문
leejaeho6424@gmail.com
- 아주경제 초빙논설위원
- 前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실장
- 前 관훈클럽 총무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北 동포 인권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통일 이재호 논설고문, 극동대 교수 김정은 정권은 2022년 한 해에만 71발의 미사일을 쏘았다. 그 돈 2억 달러면 2600만 주민이 46일간 굶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 한다(BBC 뉴스코리아). 김정은은 북 주민으로부터 그만 한 양의 식량을 수탈(收奪)한 셈이다. 지난 5월 발사했으나 실패한 정찰위성(장거리탄도미사일)도 그 비용이 10개월치 식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피 같은 식량을 허공에 뿌린 셈이다. 국방연구원은 북의 ICBM 발사 비용을 1기당 2000만∽3000만 달러로 추산한다. 김이 미사일을 1기만 덜 쏘아도 한 해 수입식량의 3분의1을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보유한 핵을 팔아서라도 인민을 굶주리지 않게 해야 할 판에 제 국민 수탈에만 여념이 없는 꼴이니 딱하다. 북은 오는 27일 자신들이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을 앞두고 정찰위성 재발사를 포함한 대규모 무력시위를 준비 중이다. 주민들은 또 그만큼 굶주려야 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유엔의 ‘2023 국제인도주의 지원보고서’에 따르면 북은 심각한 식량난으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주민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040만명에 달한다. 1990년대 중‧후반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을 떠올리게 한다. 수탈당하지 않으려면 수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 주민들이 알도록 하는 게 우선 중요하다. 핵 무력과 미사일 시위, 이 모든 게 내 삶에 대한 수탈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단은 뭘까. 단연 대북전단(삐라)이다. 북 정권의 불의와 비리, 거짓과 기만이 담긴 전단을 만들어 북녘 주민들에게 직접 보내는 거다. 북 정권이 ‘전단’이라면 길길이 뛰는 걸 봐도 그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일명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법까지 만들어 이를 금지시켰다. ‘수탈정권’과 대북 굴종의 시대 문 정권 5년 동안 숱한 대북 저자세 행태가 있었지만 이보다 더한 굴종은 없었다. 김정은을 비판하는 전단을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날리는 것만으로도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니, 어처구니없었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였다. 입법 과정도 참담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으로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이 2020년 6월 4일 “전단 살포 방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하루 만에 법안이 발의됐다. 대표발의자는 당시 송영길 민주당 의원(외교통일위원장). 법안은 민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됐다. 북은 법안 통과를 압박하기 위해 우리 측이 235억여 원을 들여 개성공단에 지어준 남북연락사무소를 무단으로 폭파하기까지 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들끓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한국정부는 김정은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유엔의 제재 해제를 국제사회에 간청했다. 2018년 10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그런 자리 중 하나였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핵·미사일실험을 중단하고, 핵물질을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면서 북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고 판단되면, 마크롱 대통령이 안보리상임이사국으로서 제재 완화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청와대 브리핑). 이는 정권이 바뀌고 지난달 열렸던 윤석열 대통령과 마크롱의 회담과 대비된다. 윤 대통령은 “안보리 결의 위반인 북한의 불법적 도발에, 한국은 차기 안보리이사국으로서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 대처할 것”이라고 했고, 마크롱은 북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강조했다. “북핵 위기에 결연히 대처하기 위해 한국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고, 북한의 인권침해까지 거론하며 지속적으로 단호히 규탄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질타 문 정권 5년 동안 대북관계는 굴종 일변도였다.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 탈북 어부 강제송환,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등을 겪었지만 북에 항의 한번 못했다. 아니, 안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삶은 소대가리” 같은 막말을 들어야 했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그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4∽9월)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2018년 6월, 2019년 2월)이 열려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선언’ 등이 논의되기는 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 북·미관계는 오히려 나빠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 책임 있는 국가관, 명확한 안보관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동안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게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했다. 지난 2일에는 통일부에 대해서도 작심 비판했다.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 같은 역할을 해왔다”면서 “통일부는 달라질 때가 됐으며, 북한 지원부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협력과 교류의 프레임이 바뀌다 윤 대통령의 이런 비판에 대해 야당과 진보 좌파 진영은 크게 반발했지만, 필자는 대통령의 상황인식과 처방이 북핵과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데 적실성(適實性)을 갖는다고 믿는다. 줄잡아 한 세대(30년) 넘게 진행되어온 북의 공공연한 핵‧미사일 개발과 보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여준 반민족적 기만(欺瞞) 행태가 필자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마도 동시대의 한국인이라면 대개는 그러했으리라. 북의 핵 보유로 김대중 대통령(재임 1998년 2월∽2003년 2월)의 햇볕정책은 적실성을 잃었다. 소위 ‘햇볕의 시대’에는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이 지고지선이었다. 기능주의적 상호의존론의 관점에서 열심히 교류하고 협력하면 긴장도 완화되고 관계도 개선된다고 믿었다. 선의의 차원에서 ‘시간은 남북 모두의 편’이었다. 그러나 북핵 앞에서는 교류‧협력도 그 명분과 효용성을 잃었다. 이제는 아무리 교류‧협력을 해도 남북 간 본질적인 균형회복과 선의의 관계 개선은 어렵게 됐고, 남북은 다시 경쟁, 그것도 악성(군비) 경쟁의 시간으로 내몰리게 됐다. ‘교류‧협력 프레임’이 ‘군비경쟁 프레임’으로 바뀌는 프레임 체인지(frame change) 앞에서 통일부도 변했어야 했다. 대북 식량지원이나 열심히 하면 됐던 목가적인 남북대화의 시대는 지나갔음을 알았어야 했다. 윤 대통령의 질타는 이걸 지적한 것이다. 물론 통일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진보 좌파 정권의 철 지난 햇볕정책, 대화지상주의, 앞에서 지적한 대북 굴종 앞에서 통일부도 그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만 해도 최근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이 있자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치욕스런 ‘김여정 하명법’을 만든 장본인이 쉽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부에 대한 윤 대통령의 주문은 한마디로 ‘통일부의 정상화’다. 1969년 통일원으로 출발한 통일부는 국내외적인 통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직과 기능을 확대해왔다. 기본업무는 통일문제에 대해 국민의 중지를 모으고, 통일 의지를 고취시키며, 통일에 유리한 국내외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통일을 앞당기는 데 있다. 그렇다면 어떤 통일인가? ‘우리가 민족사적 정통성을 지닌 평화통일의 주체라는 신념을 가지고, 남북 동포가 다 함께 잘살고, 우리 민족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통일’이다. 바꿔 말하면 ‘북 동포의 인권도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했던 그 통일이다. 그런데도 일부 정권에선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남북대화(교류‧협력), 특히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에서만 찾는 듯한 인식을 주었고, 그 과정에서 통일부는 회담 지원부서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거다. 윤 대통령에게 ‘인권’은 대단히 중요한 모티브다. 국제사회에서 통일 기반을 조성하려면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문제가 분명하게 표명,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제사회로부터의 호응과 지지도 기대할 수 있고, 통일 기반도 확충할 수 있다는 거다. 인권은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관되게 강조해온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 중의 하나다. 상대적으로 진보 좌파 정권들은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북한 인권대사만 해도 5년간 공석으로 두다가 2022년 정권이 바뀌고서야 임명할 수 있었다.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는 기권하기 일쑤였다. 매사 북의 눈치를 봤다. 통일부 내에서도 통일교육과 홍보 기능은 사라지거나 약화됐다. 이런 통일부를 상대하는 북의 관심은 오직 우리 측이 자신들이 쓸 남북협력기금을 얼마나 조성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물론 “그럴수록 교류‧협력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전쟁을 막으려면, 이른바 대결주의자들의 책동을 막으려면 그 길밖에는 없다는 거다. 그러나 그런 평화는 종이 쪼가리와 선의에 기대는 위선적 평화일 뿐이라는 시각 또한 있다. 윤 대통령은 명쾌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심중을 드러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7-06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예측 불허' 반도체 전쟁 …尹대통령 '가치외교' 결실 보여줄 때 미-중 반도체 전쟁과 ‘가치외교’ 미-중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그 사이에 낀 한국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논쟁도 재연되는 느낌이다. 가치외교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은 지난달 21일 미국 마이크론사의 반도체에 대해 보안심사 불합격을 이유로 구매 중단조치를 내렸다. 작년 10월 미국이 삼성, SK하이닉스 등 외국 기업들의 첨단 반도체장비 대(對) 중국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한 데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 이에 미국은 마이크론사 제재로 초래될 중국의 반도체 부족량을 한국 기업들이 메워주지 말라고 요청(압박)하고 나섰다. 세계 반도체시장은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가 장악하고 있다. D램을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은 삼성 43%, SK하이닉스 35%, 마이크론 15%다. 마이크론이 중국시장에서 퇴출되면 중국은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미국은 그 공백을 한국기업들이 나서서 메꾸지 말라는 것이다. 한미 동맹관계에 비춰 우리로선 미국의 이런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우나,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각각 중국에 33조, 35조원을 투자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우리 기업이 입게 될 피해도 크다. 시안(西安)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부터 대규모 투자가 유보되고 제품 업그레이드 계획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최악의 경우 중국에서 ‘철수’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해야 할지 모른다. 벌써 중국 근무 인력의 일부를 한국으로 휴가 보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삼성은 원래 중국에 더 투자할 생각이었고, 중국도 이를 반겼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 중국의 반도체 부족분 메우지 말라” 미국은 작년 10월 외국 기업들이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들일 경우 미 상무부의 별도 허가(수출통제 면제조치)를 받도록 하면서도, 삼성과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이를 1년 간 유예해줬다. 유예기간은 오는 10월로 끝난다. 미국이 다시 유예해줄 것인가? VOA(미국의 소리 방송)은 지난달 23일 “한-미 간 지속적인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 걸로 관측된다.”고 보도했다. 재(再)유예 여부가 반도체 전쟁의 한 고비가 될 판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미국의 기술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이를 어떻게든 막거나 늦춰보려는 미국 간 싸움이다. 거기에다 2024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계산까지 더해져 더 첨예한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 주도로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14개국이 디트로이트에 모여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공급망 협정을 타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로선 ‘재유예’를 받고, 향후 예상되는 장애까지도 제거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겉으로 드러난 논의나 움직임은 없다. 미국의 일부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탈동조화(decoupling‧관계단절)에서 디리스킹(de-risking), 곧 ‘위험 줄이기’로 전환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긴 하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21일 G7 정상회의 폐막 후 “미중관계가 조만간 해빙(thaw)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 하원의 외교위원장 마이클 매콜과 미-중 전략경쟁특위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은 2일 미 상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 공백을 메우게 하지마라고 거듭 촉구했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인 두 사람은 “우리는 미국의 동맹들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단호히 반격해야 할 때”라면서 이같이 촉구했다. 이들은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받고 있는 ‘수출통제 유예조치’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두 기업이 예외(유예)를 적용받는 것은 중국 정부에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한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美 안보와 경제에 기여, 代價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기업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나 글로벌 사업을 하니 양쪽을 감안해서 잘 판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ZDNet Korea 5월25일) 하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 사정이 그만큼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우리의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였다. 벌써 15개월째다.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수출 부진 탓이 결정적이다. 반도체 수출액은 작년 같은 달보다 36.2%나 줄었고, 수출 증가율은 10개월째 마이너스다. 무엇보다 중국을 대체할만한 시장을 못 찾고 있는 게 문제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가 움직일 공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안보와 동맹은 물론 경제와 산업의 관점에서도 한미관계 개선에 나름 최선을 다했고 바이든 행정부도 그 덕을 봤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고, 한일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아‧태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안정과 평화, 그리고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동아시아전략 유지에 크게 도움을 줬다. 특히 한일관계 정상화는 미국의 고민거리 중의 하나였던 동북아에서의 안보우려를 크게 덜어준 것이었다. 윤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배상문제로 경색됐던 한일관계를 정상화했을 때 “최대의 수혜자는 바이든”이라는 말도 나왔다. 2022년 한미정상회담 때는 삼성 현대 등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앞을 다퉈 미국에 대규모 공장건설과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윤 대통령은 “미국에 편중됐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문재인 정권 때 왼쪽으로 흘렀던 외교의 錘(추)가 오른 쪽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지적이긴 했다. 문제는 ‘대미 편중’이 ‘가치외교’란 개념과 연결되면서 윤 정부의 외교가 ‘가치외교’로 규정되고, 야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의 과도한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념외교’ 공격, 초점이 안 맞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치외교, 멋있게 보일지는 모르지만…’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날이었다.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경쟁하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의 외교는 철저하게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여야 한다. 한쪽에 기대고 다른 쪽과 적대하면 경제는 폭망, 안보는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위험이 크다. 친구가 아니면 적(敵)이라는 이분법으로 외교전에 나서서는 안 된다. 국익이 우선이어야 한다.” 이 대표의 이런 주장은 지나친 감이 있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국익 우선의 실용외교를 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한국은 특히 그렇다. 한국은 구조적으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채 살아왔기에 편중 외교의 위험성과 한계를 본능적으로 안다. 비록 미국과 소련의 양극적 냉전체제 아래서 미국 중심의 진영에 속하긴 했어도, 기회가 오자 어떤 나라보다도 먼저 북방정책을 통해 외교의 지평을 넓힌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 외교관들에게 “당신은 친구가 아니면 적(敵)이라는 이분법으로 외교전에 나선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웃을 것이다. 어떤 외교관도, 그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외교관이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가치외교’라면 그것은 이재명 대표가 말한 다분히 상식적인 것들을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서 국익은 물론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한 단계 높은 외교를 하자는 것일 게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맞게 우리 외교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외교를 잘하고 있느냐는 별개다. 가치외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우리가 어떤 실익(實益)을 얻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백번 옳다. 그러나 적어도 ‘가치외교’를 경직되고 교조적인 ‘이념외교’ 쯤으로 치환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논쟁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나 방법이 항상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한-중-일, 한-미-일 협의체 활용하라 ‘가치외교’는 굳이 그 연원을 따지자면 국제정치학에서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간의 경합에 닿아있다. 크게 보면 ‘가치외교’는 이상주의를 그 뿌리로 하고 있다. 전후(戰後)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결, 곧 1차 대논쟁은 이상주의의 패배로 귀결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진영(陣營)을 막론하고 전후 외교의 영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은 모두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외교였다. 윤 정부가 이점을 잊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보편적 이상과 규범으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강조한 것은 바른 방향이다.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국력과 리더십이 있느냐가 문제이지 그 자체가 부정되고 비판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얘기가 옆으로 흘렀지만 우리로선 어떻게든 ‘수출통제 면제’ 재유예를 받아야 한다.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부처는 물론 민간단체들까지도 나서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반도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 그게 관련국들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해야 할 일이나 대선 때문에 어렵다면 누군가가 대신 해야 한다. 필자는 반도체 강국, 한국의 대통령이 그 일을 했으면 한다. 다자적 국제 논의구조를 만들자고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침 올해 한국이 한-중-일 3국 협력체 의장국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한 미 일 3국 정상이 구성키로 합의한 한-미-일 3국 협의체를 붙인다면 논의에 탄력이 붙을 수도 있다. ‘대미 편중’ 논란에서 벗어나 진정한 ‘가치외교’의 힘을 보여줄 때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6-07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균형점 찾아가는 대한민국 외교 윤 대통령과 한미정상 외교 80년대, 반미감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지금 용산에 미군이 아닌 중국군, 또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어도 이처럼 거친 시위가 가능할까, 아마 어려울 거다, 상대가 미국이나 되니까 가능한 거라고. ‘미국이나 되니까’라는 말 속에는 미국에 대한 다양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적어도 관용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담겨있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어도 그런 믿음 위에서 70년 한·미동맹은 유지돼왔고, 현대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한 동맹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놓고 평이 갈리고 있다. 한쪽에선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말하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진영에선 “미국 편에 서겠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전쟁위험만 키웠다”고 비판한다. 대통령 스스로 미-중 신(新)냉전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더 적실성이 있을까. 동북아는 이미 북방 3각(중‧러‧북한)과 남방 3각(미‧일‧한국)의 경쟁(대결) 구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남방 3각 열차에 올라타기로 결심한 것 같다. 모호성(ambiguity)의 전략에서 명료성(clarity)의 전략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비춰 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북방 3각과의 관계를 대결 모드로만 가겠다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 고난도의 행보를 어떻게 이어갈지 주목된다. 다시 ‘죽창가’를 불러서야 윤 대통령은 일제 강제징용 문제를 ‘제3자 변제’로 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단숨에 정상화시켰고, 그 동력으로 한·미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으며, 이를 통해 한‧미‧일 3각 협력체제가 재가동되도록 했다. 역대 지도자 중 이렇게 발 빠르게 상황에 대응하고, 주도한 사람은 드물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좌(左)로 흘렀던 대한민국 외교의 시계가 급속히 균형점을 향해 돌아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방미 중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 복귀시키고, 아프리카 수단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도 서로 협력한 데 대해 “한·일관계가 변해가는 것으로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런 변화는 살려나가야 한다. ‘죽창가 정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예정보다 앞당겨 며칠 뒤 방한한다.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릴 주요 7국(G7) 및 한‧미‧일 3국간 정상회의를 앞두고 우리 측과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를 희망해왔다. 한국은 요즘 들어 부쩍 G7의 추가 회원국(G8) 후보로 추천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리셋(reset)될 한·일관계의 미래가 궁금하다. 한미동맹이 최상의 克日, 用日策 엄밀히 말하면 ‘기회’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먼저 있었다. 2015년 박근혜 정권 때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안’은 양측의 입장이 비교적 충실히 절충, 반영된 안으로 평가받았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고, 한국에다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돈도 내놓았다. 이를 뒤집어버린 게 문 정권이다. ‘졸속’을 이유로 문 대통령은 합의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이 대목이 민주당으로선 가장 아플 것이다. 판을 바꾸고 키울 드문 기회를 걷어 스스로 차버린 셈이다. 지금이라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윤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폄훼하고 조롱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다. 흔히 ‘동맹외교의 시대’라고 한다. 개별국가 차원을 넘어, 동맹을 만들고, 동맹을 통해 안전도 보장받고, 공통의 이익도 추구한다는 뜻이다. 미소(美蘇) 냉전이 끝나고, 1991년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면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들이 대거 NATO에 가입한 게 이를 웅변한다. 심지어는 소련의 일부였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까지도 NATO 회원국이 됐다. 미·중 신냉전 시대, 불안한 경제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모든 나라는 하나라도 더 내 편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한·일관계도 동맹외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3월 한·일정상회담 규탄대회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해 “강제동원 변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원상복귀 등을 통해 한·일 군사협력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자위대가 다시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우국충정에서 한 말이겠지만 낡고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대표는 자신이 그렇게도 걱정하는 자위대를 제어해주는 게 미국을 고리로 한 한‧미‧일 협력(동맹) 체제임을 잠시 망각한 것 같다. 한·미동맹이 최상의 극일(克日), 용일(用日)의 방책이다. ‘빈손외교’ 주장의 자가당착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민주당 인사들의 비난과 조롱, 냉소는 과도한 감이 있다. 이 대표는 “아낌없이 퍼주는 글로벌 호갱 외교”라고 했다. ‘호갱’은 어리숙해 속이기 쉬운 고객을 지칭하는 속어다. 대통령이 화동(花童)의 볼에 입 맞춘 걸 두고 “성적 학대”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빈 만찬 노래에 대해선 “저 정도에 기립박수면 제가 했으면 아마 (참석자들이) 기절했을 것”이라고 한 의원도 있었다. 그는 이른바 공공외교, 감성외교의 시각으로 이를 볼 안목은 없었던 듯하다. 윤 대통령 노래의 주 고객은 미국 국민과 세계였다. 민주당은 이번 한·미정상 외교를 ‘빈손외교’라고 한다. 이런 평가는 북핵문제에 관한 한 자가당착이다. ‘빈손외교’라 함은 실질적인 핵 억지 강화책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일 것이다. 만약 NATO식 핵 공유나 전술핵 배치를 확약 받았다면 ‘빈손외교’라는 말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민주당의 원조 386들은 “북이 핵을 개발하면 그 핵이 결국엔 우리 것이 되니 나쁘지 않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김정일, 김정은이 설마 같은 민족에게 핵을 쏘겠느냐”고도 했다. 그런 민주당이 윤 정부가 핵 억지 강화에 실패해 ‘빈손외교’를 했다고 질책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 386들의 논리대로라면 오히려 ‘빈손외교’에 안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체계적인 입장정리가 안 돼 있는 듯하다. 국제정치학자 이상우(85) 교수는 저서 <21세기 국제환경과 대한민국의 생존전략>(2020)에서 미-중 신냉전체제가 지속되면 한국은 앞으로도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계속 강화해 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에게 한미 군사동맹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현재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포괄적 동맹으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국 협력체제를 한국이 포함된 5국 협력체제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역대 정권의 외교‧안보‧국방정책의 자문에 응해온 이 분야의 원로 대가다. 서강대 교수, 한림대 총장,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국방선진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물론 대표적인 보수우파다. 중립과 고립 그의 말은 이어진다. “한국은 미-중 냉전에서 어느 편도 들지 말고 중립을 지키면서 등거리 외교를 펴는 게 자주권을 지키고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한국이 취할 전략이 못 된다. 오히려 미·중 양국과 멀어지는 고립을 자초하는 전략이다.” 그는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사실상의 한‧미‧일 3국 동맹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중국의 팽창을 억지하는 미국의 전략은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이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서있다”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한-일 동맹이 어렵기 때문에 한-일 준동맹 상태로 미국과 한-미-일 3국 동맹체제를 형성했고, 이를 통해 구(舊)냉전 시대엔 소련의 압박을 막아냈고, 지금은 중국의 군사압력에 맞서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우 교수의 주장은 윤 대통령의 대일, 대미, 대동북아 전략과 다르지 않다. 보수 우파여서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게 기본이고, 논의의 출발점임을 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미-중 사이에서의 명료화 전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두 강대국 사이를 민첩하게 헤집고 다님으로써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이른바 ‘헤징(hedging)’까지도 포기하겠냐마는 명료화를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원칙과 명분은 물론 국익(國益)까지도 챙기겠다는 것이니 우리 외교관들은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방향은 분명해졌고, 남은 것은 모두의 역량과 열(熱)과 성의(誠意)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5-04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尹의 '한.일 외교 이니셔티브'...'국제체제론' 관점에서 보니 ‘국제’가 없는 대일외교 비판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 결정’ 등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관계 정상화 노력을 필자는 ‘윤석열 이니셔티브(Initiative)'라고 부르고 싶다. ‘굴욕외교’라는 일각의 비판이 있지만 드물게 주도적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외교가 독자적으로 뭘 해본 적은 거의 없다. 크고 작은 결정은 모두 미국이 내렸거나 미국의 묵인과 협조 아래 이뤄졌다. 한국은 신생 독립국으로서 국력도 보잘것없었고 미·소(美蘇) 양극화에 기반한 엄혹한 냉전 체제 속에서 발언권을 갖기도 어려웠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전까지 우리에게 외교란 유엔에서 남북 간 표(票) 대결하는 게 사실상 전부였다. 한국이 제 목소리를 낸 것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과 유엔 가입, 김대중 정권의 남북 정상회담 정도였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관철하기 위해 이 대통령이 단행한 반공포로 석방은 약소국 독자외교의 전설로 남아 있다. ‘윤석열 이니셔티브’를 이런 역사의 변곡점들과 같은 레벨에 놓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한·일 관계의 틀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 스스로가 그런 인식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비판과 비난만이 능사가 아니다. ‘윤석열 이니셔티브’와 GPS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로 우뚝 서겠다는 것은 윤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다. 흔히 ‘GPS’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글로벌 중추국가는 ‘한반도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 국제 협력과 질서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국가’를 뜻한다. 그런 국가가 되려면 우선 이웃 국가와의 관계부터 다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집 뒷마당이 늘 소란스럽고 불안해서야 GPS는 물론 무슨 일인들 마음 놓고 할 수 있겠는가.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그동안 한·일 양국 지식인들부터가 입만 열면 “과거사 문제 정리를 통한 양국 관계 개선이 동북아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했다. 소위 ‘리버럴’을 자임하는 진보적 인사들일수록 더 그랬다. 한·일 관계를 주제로 한 어떤 토론 자리에서도 결론은 늘 같았다. ‘윤석열 이니셔티브’는 이런 소망과 당위에 기초해 한·일 선린·우호관계를 정립하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함께 추구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피해자인 우리가 먼저 강제징용 배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거의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 오므라이스 한 그릇에 뭘 팔아? 한·일 관계 속성상 긍정평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해도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부터 “일본에 조공을 바치고 화해를 간청하는 항복식 같은 참담한 모습”이었다며 영업사원(윤 대통령)이 나라를 판 격이라고 했다. 또 “오므라이스 한 그릇에 국가 자존심과 피해자 인권, 역사의 정리를 다 맞바꿨다. ··· 한반도가 전쟁의 화약고가 되지 않을까, 자위대가 다시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을까 두렵다”고도 했다. 그러나 야당의 누구도 “그렇다면 문제의 대법원 배상 판결이 나온 2018년 이후 4년 동안 문재인 정권은 왜 구경만 했느냐”는 질문에는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판은 물론 정부가 자초한 면도 있다. 로버트 퍼트넘(하버드)의 양면게임이론(two−level game)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외교란 언제나 상대 국가의 동의와 우리 측의 컨센서스가 함께 충족될 때 소기의 성과를 낸다. 윤석열 정부의 대(對)국민 설득 노력이 좀 더 적극적이고 치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발표된 일본 초등학교 검정교과서의 역사 왜곡(독도는 일본 고유영토 주장 등)도 사태를 키웠다. 안팎에서 “이게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물이냐” “역시 일본···”이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복합 경쟁의 시대와 상호의존성의 쇠퇴 국내 대표적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원장 최강)은 작년 12월 말 ‘2023년 국제정세 전망'이란 연례 보고서를 내놓았다. 주제는 ‘복합경쟁(Complex Competition)'. 국가 간 경쟁이 격화돼 경쟁의 질(質)도, 양상도 그만큼 다층화하고 복잡해졌다는 취지에서다. 과거의 경쟁이 기존 국제 질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벌이는 경쟁이었다면, 오늘의 경쟁은 미국과 중국 주도로 국제 질서와 체제를 새롭게 재편하려는 경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첨단 과학기술 분야 위주로 중국이 배제된 새 질서를,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새로운 세계의 패자(霸者)를 꿈꾸면서 미국을 배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국제사회에서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 쇠퇴하는 것을 우려했다. 상호의존성은 국가 간 과열 경쟁과 갈등 심화를 막아주는 안전판 같은 것이다. 전후(戰後) 국제사회가 전례 없이 긴 평화의 시대를 누려온 것도 상호의존성의 증가 때문이다. 국가들이 서로 더 많이 의존하게 되면서 전쟁은 줄고 공존·공영의 기회는 늘었던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이상주의 또는 제도주의의 요체도 상호의존성에 있다. 국제정치체제론 관점에서도 보자 상호의존성이 후퇴한 자리는 절연(絶緣·insulation) 또는 탈동조화(decoupling)가 채우게 된다. 한 예로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미래 기술·소재 관련 분야에서 공급망 재편·분리 시도도 그래서 나왔다는 것. 경쟁의 과열 속에 불신과 불안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분쟁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핵확산 금지체제가 불안정해지며 △군비경쟁이 가속화하고 △중근동에 대한 중·러의 틈새 공략이 시도되고 △경제 리스크가 커지고 기술 경쟁과 인권 논쟁도 심화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복합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각 분야에서 다양한 전략, 전술, 해법들이 논의되고 있을 터여서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관대했던 개발 시대 이래 관련 대책이나 대안들도 넘쳐나지 않았나. 나는 진부하지만 국제정치체제론(international political system) 관점에서 몇 마디를 보태고 싶을 뿐이다. 국제정치체제론은 일부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여전히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가장 명쾌하고 유용한 틀이다. 위험과 기회가 공존할 양극적-다극체제 복합 경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의 핵심은 외교적 재량권의 확대 여부와 선택의 딜레마다. 체제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는 미·중에 의한 양극적–다극체제(Bi-Multipolar system)로 이미 접어들었다는 게 내 판단이다. 미·중을 두 개의 극(極)으로 해서 그 주위에 일본, 한국 등 중견 국가들이 포진한 체제 말이다. 일찍이 양극체제가 다극체제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석학 케네스 왈츠(Kenneth Waltz·1924∽2013년)였다. 구조적 현실주의자인 그는 강력한 두 개의 극(極) 국가에 의해 여타 국가들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왈츠의 이런 주장에 대해 로즈크랜스(Richard Rosecrance)는 “양극체제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체제여서 더 위험하다”고 반박하고, 이 두 체제가 결합된 양극적-다극체제가 더 안정적이라고 했다. 이 체제에선 두 개의 극(極)국가-예컨대 미국과 중국-가 체제 밖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고, 그 외 다수 국가들은 두 극국가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완화하는 완충자 역할을 한다. 양극체제와 다극체제의 장점을 결합한 체제다. 나는 지금의 동북아 체제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본다. 이 체제에선 엄격한 양극체제보다 상대적으로 중견 국가들의 재량권이 커진다. 기회와 위험이 공존한다는 얘기다. (로즈크랜스가 란 논문에서 이런 주장을 한 게 1966년이다) 야당 대표, 좀 더 사려 깊은 비판을 다음은 선택의 딜레마다. 두 강대국, 두 진영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예컨대 중국은 그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지만 미국과 경쟁하는 강도가 세어질수록 더 까다롭게 나올 게 분명하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이 딜레마에 대한 대응으로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을 주문했다. 가치와 체제가 개입되는 지역 및 국제적 쟁점에 대해서는 찬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중장기적으로는 투명성의 강화로 상호 신뢰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한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어떤 나라의 외교도, 대외정책도 단순한 건 없다. 하물며 한·일 관계에서랴. 그 어려움을 알고, 그 복잡함을 알고 거기에 맞게 비판하고 질책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야당 대표가 “오므라이스 한 그릇” 운운하는 식의 비난과 조롱이 얼마나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자리에서 꼭 엘리트 외교와 대중 외교(mass diplomacy)를 거론해야 하나. 이러니까 “이번 비판 속에 정작 국제(國際)는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4-07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우리는 새정치 'K-Politics'를 보고 싶다 누가 당대표가 되든 국민의힘 새 지도부의 최우선 과제는 내년 4월 총선에서의 승리일 것이다. 총선에서 이겨서 지금의 여소야대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하나 교체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새 정부의 철학과 정책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남은 임기 내내 야당과 티격태격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그로 인한 갈등의 심화와 국정 운영의 난맥상과 비효율은 여야(與野) 차원을 떠나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터이다. 보수 우파의 대표적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고성국TV 대표)는 지난달 25일 대구에서 열린 ‘동서미래포럼’ 창립식에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조건으로 공천혁명과 정치쇄신을 들었다. “4월 총선을 계기로 젊고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신인을 발굴해 대대적인 공천혁명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동서미래포럼은 지난 대선 때 영호남 화합운동을 벌였던 인사들이 선거 후 확대·재결성한 모임이다. 고 박사는 특별 연사로 초대됐다.) 내년 4월 총선에 尹 정권 성패 달려 그는 “모두들 ‘윤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한 몸을 바치겠다’고 하는데 4월 총선에서 지면 무슨 수로 대통령을 도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과 자유 시민사회단체 및 지식인 그룹 간에 정치개혁 연대를 꾸려서 공천혁명 담론의 선점과 전파를 주도하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 국민 체감도가 높은 국회의원 특권 전면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공천혁명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지만 이번엔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나라 안팎으로 사정이 어려운 데다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욕구도 그만큼 커진 탓이다. 공천혁명은 정치의 한 축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정치의 요체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넘어, 한 시점에, 한 사회에 주어진 문제들을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능력(적실성)의 문제로 진화한 지 오래지만 요즘 이를 더 절감하게 된다. 공천은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치는 좋은 공천에서 시작된다. 실패로부터 배운다고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1대 총선 참패의 교훈 보수 우파 정당으로서 국민의힘이 공천에서 실패했다고 평가되는 대표적인 총선이 2020년 21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이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득표율 41%로 지역구에서 84석을 얻었다.(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19석을 합치면 103석. 총 의석수는 300석) 상대인 더불어민주당은 49%로 163석을 차지했다. 충격적인 참패였다. 특히 수도권에선 전체 의석 121석 중 103석을 민주당에 내줬다. 그 패배의 결과로 만들어진 강고한 여대야소 정국 속에서 문재인 정권은 유화(宥和) 일변도의 대북정책, 소득주도 성장, ‘검수완박’ 등을 밀어붙였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뒤늦게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2020년 1월 17일∽3월 13일)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021년 3월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공천고백기’란 부제(副題)가 말해주듯이 공천관리를 책임졌던 사람이 쓴 일종의 참회록이다. 저자가 “나 하나 불쏘시개 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듯이 웬만한 용기와 애당심 없이는 쓸 수 없는 책이다. 이런 고백록이 나온 것 자체가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참회록’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과거의 잘못을 다스려 앞으로 닥칠 우환을 경계한다’는 징비록(懲毖錄)으로 읽혔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 특히 보수 우파에겐 가히 필독서다. 좋은 공천, 좋은 정치 그의 패인분석과 대안 제시는 실증적이고 구체적이다. 책에 따르면 당시 공천관리위는 이른바 ‘혁신공천’의 3대 원칙, 곧 △과감한 물갈이(인적쇄신) △구태 청산(계파별 나눠먹기 배제) △청년과 여성 신인 적극 충원을 내걸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역대 총선에서 보기 힘든 ‘보수통합’을 일궈냈지만, 이게 표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국민에게 ‘보수가 통합됐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소회다. “··· 거기에다가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중도층도 끌어오지 못했다. 안정을 희구하면서도 변화에 대한 수용이 강한 중도층을 의식해 변화의 고삐를 끝까지 잡고 갔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 고삐를 쥐고 전국을 누빌 유력인물(리더)도 없었다. ··· 역대 총선에선 대개 변화의 폭을 크게 움직인 쪽이 승리했다. 17대 탄핵풍의 진원지인 열린우리당, 18대 뉴타운 바람의 한나라당, 19대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변신한 변화의 새누리당 등이 그런 경우였다. ··· 이러는 사이에 코로나(재난) 지원금이 뿌려졌다. 전대미문의 역병 앞에서 민주당은 안정과 신뢰의 탑을 쌓아갔고 우리는 하나씩 무너져갔다. ···” 저자는 대안으로 ‘시스템 공천’을 제안한다. 의정활동이 공천에 직결되어야 하고, 지역관리를 잘하면 공천을 보장해주고, ‘포청천 윤리위’를 상설해 공천도 사전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천관리위는 선거 5개월 전에 구성하고, 공천관리위원회의 독립성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공천자 40%는 매년 의정활동 평가와 당무감사를 통해 미리 정해놓고, 나머지 60%는 공천관리위에서 심사해 확정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천 작업을 심도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도 참고가 될 듯싶다. 공천파동 나면 공약은 묻힌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국민의 힘)은 들떠 있었다. 야권의 분열로 180석 이상을 얻을 거라는 전망들이 돌았다. 김무성 대표부터 그런 예상을 했다. 결과는 지역구 105석에 비례대표 17석 등 122석에 그쳤다. 123석을 얻은 민주당에 제1당을 내준 참패였다. 오만한 행태와 공천파동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의 진박 논쟁과 김무성 대표의 ‘옥새파동’은 지금도 조롱거리다. 이때도 총선백서가 나왔다. 참회록이라기보다는 유권자들과 일문일답하는 형식으로 정리된 백서였다. 그래서 이름도 <국민백서>. 국민이 물었다. 참패의 원인이 뭔가? 당이 답했다. “지지층의 외면을 자초한 공천파동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지층에게 지지할 근거를 주기보다는 지지를 철회할 근거를 주었다. ··· 계파 간 극한 대립 상황에서 리더십도 실종됐다. 여권 내 권력 획득과 방어에만 집중하다 보니 공당의 이미지를 상실했다.” 공천에 대한 평가를 구했더니 이런 답이 올라왔다. “민주당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신선한 인재는 찾아볼 수 없고 구태의연한 현역 중심의 공천, 친박 중심의 공천이 식상했다.” 당도 이를 시인했다. “공천 파동과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밥그릇을 놓고 싸우면서도 계속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과 오만이 지지층까지 외면하게 만들었다. ···” 야당에도 타산지석 <국민백서>는 이 대목을 ‘공천파동의 쓰나미, 모든 것을 집어삼키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계파 갈등의 조짐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구성에서부터 시작됐다. ··· (계파 갈등으로) 얼렁뚱땅 구성된 공관위는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비롯해 친박 중심으로 이뤄졌다. 공관위원들의 자질도 대내외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 공천이 계속 지연되면서 당내 모든 조직과 대응능력이 마비되고, 본격적으로 선거준비에 돌입해서도 각각의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해야 할 사무총장 등 핵심라인이 공천정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내부조직은 우왕좌왕했다. ··· (이를 포함한) 당내 계파갈등이 연일 언론을 통해 전달되면서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다짐이나 공약은 모두 묻혔다. ···” 유감스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필자는 이를 보다 생생하게 되살려주고 싶어서 가능한 한 원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마지막 부분, “계파갈등이 연일 전달(보도)되면서 공약은 묻혔다”가 유독 가슴을 친다. 정치현장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민주당에도 타산지적이 될 듯하다. 주변적인 것들이 본질을 밀어내는, 가십(gossip)이 정책을 밀어내는 퇴행적 정치 관행과 보도는 SNS 유튜브 시대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4월 총선에 다가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1년여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지금 시작해도 늦다. 혁신공천을 통해 4월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치개혁도 이뤄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번 공천은 단순한 공천이 아니라 정치교체를 위한 공천으로 인식해야 한다. 공천혁명으로 정치선진화를 앞당겨 한국 정치의 틀을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4류 정치’라는 오명 속에서 헤맬 것인가. 우리도 우리 정치를 ‘K-정치’라고 부르고 싶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3-08 15:37:43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한국정치 증오와 분열의 벽… '정서적 올바름'으로 넘어서자 민주당의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념’ 발언을 소환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1월 26일)에서다. 당이 강성 지지층에 줄곧 끌려 다니다가 정권을 빼앗겼는데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양념’ 발언도 한몫을 했다는 거다. 윤 전 총장은 ‘양념’이 “문의 어록 중 제일 아팠던 부분”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들에게 문자폭탄과 댓글테러를 가해 논란이 되자, “경쟁(경선)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했다. 왜곡, 과열된 팬덤 정치의 비민주성을 걱정하기보다는 ‘해프닝’ 정도로 여긴 것이다. 그 ‘양념’이 증오의 씨앗이 돼 우리 정치를 극심한 대립과 반목 속으로 몰아넣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文 정권 5년, 증오의 굿판이 된 정치 문 정권 5년 내내 정치판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막말과 저주의 굿판이 됐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수 국민을 “토착왜구”로 몰아도 대통령은 물론 책임 있는 여권 인사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증오는 정권이 바뀌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듯하다. 새 정권에 비판적인 일부 성직자들은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의 전용기가 추락해버렸으면 좋겠다”는 경악할 만한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지독한 증오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증오상업주의>(2013년)를 쓴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악마화’라는 말을 썼다. 신간 <퇴마정치>에서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윤석열을 악마화 한 탓”이라고 했다. “윤석열을 미워하는 수준을 넘어 2년7개월간 계속 악마화 했고 이런 민주당의 자해(自害) 탓”에 졌다는 것이다. 증오가 넘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위험한 사회다. 증오는 이성을 마비시켜 합리적 소통과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증오는 증오를 먹고 자란다. 내가 상대를 증오하면 상대는 더한 증오로 되갚음 한다. 그 끝은 공멸(共滅)이다. “견해가 다르면 결혼도 안 해” 문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김부겸 전 의원은 “한국정치는 견해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결혼도 안 하겠다는 ‘정서적 내전상태.’에 있다”면서 “다음 단계는 ‘싹 쓸어 없앴으면 좋겠다.’는 사회심리 위에 등장했던 나치와 파시스트로, 우리는 그만큼 위험하다(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했다.(1월 29일 ‘정치학교 반전’ 강연, 경향신문) ‘증오’는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이어서 해소도, 치유도 어렵다. 우리만 해도 근대 이후 일제의 주권침탈, 식민체제, 전쟁과 분단,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압축 성장만큼 압축된 증오가 도처에 쌓여왔다. 불공정, 차별, 특권, 내로남불이 증오를 낳는 원인이라면 대한민국처럼 적합한 토양도 없다. 미국의 반(反)명예훼손연맹(ADL · Anti-Defamation League)은 증오가 심화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눈다. 증오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샐리 콘(Sally Kohn) 박사는 저서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The Opposite of Hate, 2018년, 에포케, 장선하 역)에서 이를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증오의 피라미드’ 맨 아래쪽인 1단계는 ‘어떤 집단은 본래 우월하다’는 고정관념 등이 형성되는 단계다. 2단계는 왕따나 욕설 같은 편견을 바탕으로 행동과 말은 안 해도 은근히 이뤄지는 사회적 따돌림처럼 남에게 해를 입히는 단계다. 3단계는 취업이나 주택 정책, 혹은 정치적 시스템 안에서 제도적 형태의 차별이 일어나는 단계다. 4단계에선 테러나 증오범죄처럼 편견에 치우친 폭력이 발생하고, 맨 꼭대기인 5단계에선 대학살로 발전한다. ‘증오의 3단계’로 넘어가선 안 돼 우리는 이 중 2단계의 정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SNS를 통해 이뤄지는 상대에 대한 멸시와 조롱, 집회와 시위 등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3단계는,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노골적인 배척이나 채용 기피, 성(性)소수자에 대한 겁박 등이 벌어지는 단계다. 다행히 아직 3단계로 넘어가지는 않고 있다.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들, 예컨대 위헌심사제도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증오의 파고 앞에서 방어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울 때가 많다. 증오는 이른바 증오상업주의(hatred commercialism)에 의해 조장되는 경향이 있다. 증오상인들(hatred mongers)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증오’를 만들어 판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북한의 대응을 그런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북은 남한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겨 체제의 결속과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을 확보해왔다. 한국의 두 거대 양당 체제에 대해서도 그런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公敵 1호, 증오상인들(hatred mongers) 증오를 파는 건 결국 언론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맷 타이비(Matt Taibbi)는 저서 <증오주식회사>』(Hate Inc., 필로소픽, 2021년)에서 이를 시니컬하게 파헤친다. “…(기자들을) 우리(cage) 안에 전부 몰아넣는다. 이렇게 해서 안전하게 포획되면 우리는 스포츠팬들이 하는 방식대로 뉴스를 소비하도록 훈련받는다. 우리 팀은 응원하고 나머지 팀은 모두 증오한다.… 증오는 무지의 파트너이며, 미디어 종사자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판매하는 전문가 됐다.” 증오는 SNS를 타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국내 유튜브 중 광고수익을 내는 채널수만 5만이 넘는다고 한다. ‘증오’는 익명성으로 무장한 채 ‘가짜 뉴스’에 얹혀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파괴적이고 선동적이다. 미디어 소비자는 이중으로 피해를 보는 셈이다. 증오는 정치의 가십화(化)를 초래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상대를 증오하다보니 기사의 경중(輕重)은 제쳐두고, 반대편에게 망신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들만 찾느라 혈안이 된다. 침소봉대와 ‘기사 비틀기’는 일상이 됐다. 한국 신문의 정치면에서 ‘가십난’이 사라진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권위주의 시절, 언론자유의 위축 속에서 정치판의 짤막한 뒷얘기, 속칭 ‘가십’을 통해 정치 뉴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지만, 정치의 경박화(輕薄化), 희화화, 저질화를 초래한다는 논란이 있어 대다수 언론사가 이를 없앴다. 증오가 죽은 가십난을 되살려내고 있다. 정치와 정치기사의 퇴행이라고 할 만하다. 누가 죽은 가십난을 불러내나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한 진영(陣營·block)이 도사리고 있다. 진영을 감싸고 도는 것은 끝 모를 증오다. 진영은 제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지만 그 대가로 상응하는 충성을 요구한다. ‘보호’와 ‘충성’을 맞바꾸는 셈이다. 충성심을 어떻게 보여줄 건가. 증오를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공천 시즌이면 돌출하는 일부 의원들의 막말과 기행(奇行)은 그래서 나온다. 증오의 정치가 한국사회를 더 갈라놓기 전에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떤 모임에서도 정치 얘기는 안 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안다. 친구들끼리는 물론 가족 간에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다. 필자는 설을 쇠러 고향에 갔다가 죽마고우 친구들끼리도 격렬한 언쟁 끝에 사이가 틀어져 돌아온 경우를 흔하게 봤다. 정치판이 깨끗해야 증오가 사라져 정치를 주제로 한 논쟁이야 어디에서나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전통적으로 정치를 도덕적 선악(善惡)의 문제로 포장해온 데다가, 실제로 현실 정치인들이 불법과 비리의 주범인 경우가 많아서 더 거칠고 위선적이다. 한국정치는 우선 정치판이 깨끗해져야 증오가 사라진다. 증오를 유발하는 모든 모순과 불합리를 없애야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우리의 근, 현대사부터 다시 써야 한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함께 민주적 합의와 협치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도 여야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여기에다 나는 샐리 콘 박사가 말한 ‘정서적 올바름’(emotional correctness)을 하나 추가하고 싶다. ‘정서적 올바름’이야말로 증오를 완화시키는 실천 가능한 첫째 덕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쉽게 말하면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거라면 “‘정서적 올바름’은 ‘극과 극으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예의를 갖춰 대화하고, 상대와 공감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에 거는 기대 콘 박사는 “입 밖으로 나오는 말뿐만 아니라 말을 할 때의 의도와 표현방법을 통해 상호존중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효과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수많은 악플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필요하면 가서 만났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온라인에서 내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놀라우리 만큼 심오한 경험이었다.” 역시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것은 태도(attitude)다. 증오라는 거대 담론의 철옹성 앞에 작고 왜소해 보이겠지만 ‘증오 줄이기’의 첫걸음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마침 여야 의원 121명이 참여하는 초당적인 정치개혁 모임이 출범했다. 전체 의원 40%에 해당하는, 전례가 없는 큰 규모다. 승자독식의 한국정치의 폐해를 바로잡는 게 목표라고 한다. ‘정서적 올바름’으로 내부규율을 삼아 부디 소기의 성과가 있기를 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2-06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방탄' 민주 정당 …표류하는 한국 민주주의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걸 보면서 책 한 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읽었을 책이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브로드웨이 북스, 2018년).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의 공저인 이 책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그중 인상적인 대목이 정당에 관한 언급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당’이라고 말한다. 흔히 국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과도한 기대라는 거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인 대중선동가, 잠재적 독재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튼튼한 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당이 없거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악마와 거래라도 하듯이 선동가, 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populist outsiders)을 영입하게 되고, 결국 그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죽는다는 것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의 집권이 그런 경우였다는 것. 192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치와 파시스트가 집권에 성공했을 때 그들의 당원 수는 전체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집권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정권을 잡았다. 기성 정치세력 내의 내부자들(insiders)의 방조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히틀러를 영입하려는 자신들의 야망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선 눈을 감았고, 히틀러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보다 치명적인 착각은 없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제어해야” 두 차례의 쿠데타 실패로 수감 중이던 차베스(1954~2013년)를 불러낸 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두 번이나 지낸 원로정치인 라파엘 칼데라(Rafael Caldera 1916~2009)였다. 차베스는 칼데라와의 연합 덕분에 1998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했고, 14년간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차베스는 독재와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되었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붕괴됐다. 훗날 칼데라는 차베스를 영입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이 권력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당의 주류가 협력해 이들을 당에서 고립시키거나, 경선에서 패배시켜야 한다는 거다. 저자들은 이를 당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적인 게이트키퍼(gatekeeper‧문지기) 기능으로 보았다. 게이트키핑이 잘 되는 정당은 차베스 같은 인물들이 정권을 잡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당이 성공한 민주주의 게이트키퍼가 되려면 행태주의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Nancy Bermeo)가 말한 ‘거리두기’(distancing)도 잘 해야 한다. 선동가나 극단주의자(전제주의자)들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데 능하다. 그들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집단에 의해 부패한 가짜 민주주의이므로, 정권을 잡으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이런 식의 선동을 차단하려면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당내 경선에서 배제하거나 제명, 또는 고립시켜야 한다. 그들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민주세력끼리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영국, 코스타리카, 핀란드 등은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잘 막아냈지만 베네수엘라 등 다수의 남미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민주정당의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 그들은 물론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담론 차원에서의 해법도 제시한다. '상호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절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는 이 두 개의 가드 레일(guard‧rail)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가 출마했던 2016년 대선 전까지는. 저자들은 이 가드 레일을 다시 세워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원론적인 얘기보다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를 콕 집어서 제시한 데 주목했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을 식별해서 격리시키고(isolate), 경선에서 패배토록(defeat) 해야 한다는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에 더 끌렸던 것이다. 거기에서 정당정치의 엄중함, 단호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정당은 느슨하고 허술한 조직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보루’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던 것이다. 노웅래 의원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민주당이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자 여권에선 즉각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노 의원 건을 부결시켜야, 곧 국회로 넘어올 이 대표 체포동의안도 부결시킬 수 있어서 그랬다는 거다. 민주당이 임시국회 종료(1월 8일) 직후 새 임시국회를 소집할 걸로 알려졌을 때도 1년 내내 이 대표 방탄 국회를 열어두겠다는 거라고들 했다. 방탄, 방탄, 방탄, 왜 이리 관대한가 실제로 대선 이후, 이 대표와 민주당의 관심은 오로지 ‘방탄’에 쏠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헌 80조를 고쳐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라도 정치보복일 경우엔 구제할 수 있도록 한 게 단적인 예다. 최근엔 ‘탁란(托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 원로 언론인은 “한국 민주화의 적통인 민주당을 종북 좌파세력과 586, 부정·비리 의혹의 당대표가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 낳듯(탁란) 접수했다”고 했다. “어찌해서 169석의 거대 야당이 대표 한 사람의 방탄놀이에 올인해 그의 부정‧비리 사건에 당의 명줄을 건다는 것이냐”고 그는 개탄했다.(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11월 29일) 송영길 전 대표는 이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자신이 5번이나 당선됐던 지역구(인천 계양을)를 선뜻 내주었다. 이 대표는 이 선거구의 보궐선거(6월 1일)에서 당선됨으로써 확실하게 ‘방탄조끼’를 챙겨 입었다. 대체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해 왜 이렇게 관대할까.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어떤 확신이라도 있어서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민주당은 대장동 비리의혹과 이로 인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대목은 앞서 소개한 레비츠키와 지블랫 교수의 지적과는 대조적이다. 두 저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권력 중심부 진출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게이트키퍼(문지기)의 중요성과 이들 선동세력과의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당은 ‘거리두기’는커녕 이 대표 중심의 ‘단일대오’ 유지에 올인했다. 필자 눈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라고 하기에 충분한 한 야심가를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비쳤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2019년 한 논문에서 이 대표를 ‘아웃사이더 기질과 카리스마 성향 등을 가진 좌파 포퓰리스트로’ 규정한 바 있다. 월간 신동아 2022년 10월호) “대표직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해가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고 있다. 연초 5선의 이상민 의원과 문희상 상임고문은 ‘이 대표의 유고에 대비해 플랜2, 플랜3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고문은 ’영리한 토끼는 굴을 3개 판다‘는 교토삼굴(狡免三窟)과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거론하기도 했다. 사법 리스크로 당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으니 대비하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야권의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도 “측근 비리가 확인되면 이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동아일보는 4일 당내 핵심 친명(친이재명) 이라는 한 의원의 말을 익명으로 보도했다. 그는 “이 대표가 당은 당이고, 사법 리스크는 내 문제라고 당당히 말하고, …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결과에 따르겠다, 수사엔 언제든지 응하겠다고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는 것이다.(최근엔 이 대표도 그런 쪽으로 마음이 바뀐 듯하다. 그는 4일 기자들에게 “소환조사 받겠다는 것인데 뭘 방탄이냐”고 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도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방탄’ 이미지로 내년 총선을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대표는 ‘방탄’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수사에 응함으로써 당을 ‘방탄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방탄’ 뒤에서 ‘정치보복’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적대적 의존관계’ 해소에 밀알 되어야 올 한 해가 우리 정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대표가 더 잘 알 터이다. 승자독식의 한국정치를 바꾸기 위한 제도적 개혁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도 그중 하나다. 결과에 따라서는 기존 여야 관계가 허물어지고 정치판이 재편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이 대표가 지금과 같은 ‘방탄’에, 좌파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이미지로 그 논의와 작업에서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부하기는 해도 한국정치가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은 틀리지 않는다. 여야가 서로 증오하고, 그 증오에 기대어 공존하는 관계 말이다. 그만큼 편 가르기와 증오(악마화)가 일상이 됐다. 문재인 정권에서 유독 심했다. 다수 국민이 ‘친일 토착왜구’로 낙인찍혀도 대통령이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까. 이 대표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 대표는 큰 틀에서, 한국정치의 적대적 의존관계의 해소를 위해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를 몸을 낮춰 고민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1-06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김정은 딸의 등장 …30년 햇볕정책 결말 '4대 세습'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9살 난 딸을 데리고 나타나다니,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8일과 26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화성-17형) 발사 현장과 자축 행사장에 딸 김주애를 데리고 나왔다. 김주애는 엄마(리설주)와 함께 발사 순간을 지켜보았고 아버지 손을 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 부녀(父女)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바람에 공포의 미사일은 어디로 가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소녀의 이미지만 오래 남았다. 딸이 엄마를 많이 닮아 관심도 그쪽으로 쏠렸다. '판박이' '붕어빵'이라고들 했다. 그 틈새에서 비핵화 논의는 잠시 실종됐다. 김정은이 노리는 게 이거라면 성공한 셈이다. '후계자 수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김주애 위로는 세 살 많은 오빠가 있다. 북의 남아선호(男兒選好) 현상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 발사 현장의 군 관계자들이 김주애를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부르고, 줄지어 그에게 ‘폴더 인사’를 했다고 후계 운운하는 건 성급하다. 김정은도 어릴 때는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미사일 공포는 사라지고 소녀의 미소만 김 위원장은 1남 2녀로 알려진 자녀 중에 왜 김주애만 데리고 나타났을까. 오빠(12세)나 막내 여동생(5세)을 데리고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김주애가 김정은이 원하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김주애는 백두혈통이다. 김일성 왕조의 직계 핏줄이다. 백두혈통은 김씨 왕조를 떠받치는 정통성(legitimacy)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백두혈통이라야 주민들에게 먹힌다. 김주애가 미사일 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북한 당국이 즉시 “백두산 정신의 핵은 다름 아닌 수령 결사옹위 정신”이라며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백두산 행군을 독려하고 나선 것은 그래서다. 둘째, 김주애는 북의 미래 세대다. 미래의 주역이 될 그를 핵·미사일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핵·미사일도 그리고 북한 체제도 영원하리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김주애는 북한의 미래와 안전을 담보하는 상징인 것이다. (물론 김주애의 오빠와 여동생도 백두혈통이고 미래 세대다. 그러나 십중팔구 유학 중일 오빠는 공식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아직 공개하지 못했을 것이고, 여동생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리설주 우상화’ 시작되다 마지막으로 김주애는 엄마 리설주(33)와 닮았다. 이 대목이 핵심이다. 딸이 엄마를 안 닮고 누구를 닮겠는가마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에 머리 스타일(긴 머리 반묶음)과 옷차림까지도 닮았다. 꾸미다 보니 같아진 게 아니다. 세심하게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두 사람 사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리설주의 위상 제고, 곧 우상화를 위해서다, 리설주는 백두혈통이 아니다.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김정숙(1917~1949) 같은 ‘여성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김정숙은 1941년 소련군 극동88정찰여단에서 활약했고 지금도 북에선 국모 대접을 받는다.) 리설주는 평범한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한때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로 활동했다. 2009년 김정은과 만나 세 아이를 낳긴 했지만 북한판 영부인으로서 아우라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김정은은 이런 리설주의 위상을 높여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리설주가 어린 자식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려면 격(格)부터 달라져야 했다. 특히 자신의 여동생이자 리설주에게는 시누이가 되는 김여정(34·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게다. 김여정은 누가 뭐래도 정통 백두혈통이 아닌가. 올케와 시누이에게 맡겨진 北 리설주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딸 김주애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백두혈통인 김여정에는 못 미치지만 리설주도 백두혈통(김주애)을 낳은 엄마다. 따라서 리설주를 차제에 사실상의 백두혈통에 ‘편입’시킴으로써 시누이인 김여정과 힘의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려면 엄마 김주애가 리설주와 닮아야 했다. 누구든 김주애를 보면 리설주를 떠올릴 정도가 되어야 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발사 현장에 나온 모녀의 사진을 보면 당 선전선동부에서 세심하게 터치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했다. 이 또한 김정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 자신도 집권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김정은의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생모 고용희(1953~2004)와 여성 편력이 극심했던 아버지 김정일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을 보면서 자랐다. 고용희는 재일동포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북에 들어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네 번째 부인이 됐다. 김정일과 사이에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세 자녀를 낳았지만 2004년 지병으로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도 김씨 왕조의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김정은은 스무 살이었다. 生母 고용희와 같은 운명은 NO! 고용희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상화 시도가 있었다. 김정일(2011년 사망)의 ‘10·8 유훈’에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데에는 모친(고용희)의 뛰어난 노력과 공적 덕분”이라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희는 2000년대 초와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한때 ‘평양의 어머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신분이 낮은 무용수 출신인 그를 누구도 영부인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생모에 이어 아내인 리설주까지도 그런 운명으로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리설주도 고용희와 같은 연예인(가수) 출신이다. 리설주가 남편이 내민 그 줄을 잡고 ‘백두혈통’의 성(城)에 무난히 입성할 수 있을까. 부모를 따라 자식의 신분을 바꾸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자식을 따라 부모의 신분을 바꾸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진짜 백두혈통인 시누이 김여정과 관계에는 문제가 없을까. 올케와 시누이 관계라는 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고 보면 향후 북한을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리설주와 김여정은 한 살 차이다.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보게 될 수도 권력은 부자(父子) 간에도 나눠 갖지 못한다. 하물며 올케와 시누이 사이에서야. 김정은의 힘이 조금만 빠져도 두 여자는 치열한 권력 쟁패로 치달을 수 있다. 리설주의 아이들에게 김여정은 고모다. 북한에서 ‘고모’란 어떤 존재일까.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반역죄로 몰아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한 바 있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한 편의 리얼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시청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예고편은 오래전 김일성 시대에 아들 김정일과 그의 계모 김성애(1924~2014·여맹위원장)가 이미 보여준 바 있다. 김정일은 계모에 맞서기 위해 계모와 아버지 김일성의 사이를 끈질기게 이간질했고 마침내 1974년 자신을 중심으로 한 후계 체제를 굳힘으로써 김성애를 밀어냈다. 세습 왕조의 행로와 운명이 대개 그러하다. 忍耐하며 ‘레짐 체인지’의 순간 기다려야 어떤 경우나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이다. 9살 난 어린 딸을 통해 대대손손 핵과 미사일로 인민을 지켜주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핵을 포기하겠는가. 비핵화는커녕 남북 관계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진정한 관계 개선보다는 이런 식의 핵·미사일 이벤트나 쇼에 치중할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언제든 국지 도발로 긴장도 조성하고 내부 결속도 도모할 것이다. 크게 보면 이게 30년 햇볕정책의 결말이다. 햇볕정책의 양탄자 위에서 현대사에 전무후무한 4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리설주 우상화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햇볕정책에 대한 총체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뒤틀린 남북 관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그렇다고 책임 논쟁을 벌이자는 것은 아니다. 책임 논쟁은 거대한 블랙홀이 돼 한국 사회를 집어삼킬 것이고 그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다만 햇볕정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얻자는 얘기다. 다시 ‘인내와 관리의 시간’인 듯하다. 섣부른 대화도, 대결도 자제하면서 상황을 관리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과욕은 피해야 한다. 역대 진보‧좌파 정권이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 개최’라는 욕심을 버렸다면 대북 정책에서 시행착오를 그만큼 줄였을 것이다. 관리하면서 인내하다 보면 누가 아는가, ‘궁중 잔혹사’의 결과로 왕이 바뀌듯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의 순간이 다가와 있을지도.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12-08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南 참사 애도기간에 北은 '막무가내' 미사일 도발 이태원 참사에 대해 북한은 끝내 어떤 애도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도 위로의 말을 전해왔지만 북은 침묵했다. 대신 미사일만 쏘았다. 애도기간인데도 개의치 않았다. 같은 민족의 비극적 참사에 미사일 세례로 대응한 꼴이다. 도중에라도 잠시 멈추고 애도를 표했어야 하지 않을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위협하더니, 곧바로 조전을 보냈다. “희생자 유족과 친구들, 다친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보내며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 북의 미사일 공세는 대한민국에 대한 ‘2차 가해’였다. 이태원 참사로 패닉상태에 빠진 우리에게 애도의 성명 한 장 없이 미사일을 퍼부었다. 저들이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던 그 동족인가 싶을 정도다. ‘참사와 미사일’ 사이에서 우리는 북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대응을 재점검하도록 요구받는다.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미사일 세례 북은 갈수록 막무가내다. 지난 2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는 등 10시간 동안 25발의 미사일과 대포 100발을 쏘았다. 3일에도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과 단거리탄도미사일 5발을 날렸다. 한-미가 연합공중훈련(비질런트 스톰)을 연장키로 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북의 박정천 당 군사위 부위원장은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겁박했다. 무엇이 북을 이처럼 천방지축 오만불손하게 만들었을까. 원래 ‘버릇없는 아이’(spoiled son)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갈수록 커지는 남북 간 격차 앞에서 느꼈을 초조함이 핵(核)과 결합하면서―더 정확히는 핵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과거와는 사뭇 다른 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북이 마구 쏘아댄 미사일은 초조함의 표시이자 자신감의 과시로 보인다. 한 세대 가까이 북을 선의(善意)로 대하면 북도 달라질 거라는 착각이 남북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고착시키고, 끝없는 대북 굴종을 낳았다. ‘햇볕을 쪼여야 북이 외투를 벗을 것’이라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각은 말 그대로 우화(寓話)에 그쳤어야 했다. 그게 절대시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햇볕정책은 질이 나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의 하나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북의 핵 보유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됐다. 햇볕정책이 갖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취지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마저도 북핵과 미사일 앞에서 휴지가 됐다. 문재인 정권 때, ‘김여정 하명법’으로 조롱당했던 대북전단금지법이나, 북이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했던 입에 옮길 수도 없는 막말을 생각해보라. 국민의 피 같은 세금 235억원을 들여 개성에 세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이 일방적으로 폭파했을 때 우리는 응징은커녕 항의다운 항의 한번 못했다. 그 대가가 북의 핵무장이고 미사일 세례다. 이게 정상적인 남북관계인가. 햇볕정책 30년, ‘설거지’는 누가? 북한은 2003년 대구 지하철,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애도를 표했다. 1984년 우리가 수해를 입었을 때는 쌀, 시멘트, 옷감(포플린)을 보내오기도 했다. 북은 당시 전두환 정부가 자신들의 수해지원 제의를 전격 수용하자 내심 당황했다고 한다. 그때도 형편이 어려웠던 북은 구호물자 마련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그 성의(誠意) 덕분에 그해 11월 남북 경제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풀렸다. 이제는 이런 공존 공생의 남북관계를 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핵폭탄과 미사일을 머리에 인 북과 무슨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햇볕정책 30년, 누구는 즐겼고, 누구는 감격했다. 하지만 부(負)의 유산은 오롯이 남았다. 설거지는 늘 보수정권의 몫이었다. 햇볕잔치는 끝났고, 윤석열 정부도 그 어깨가 무거워졌다. 북의 NLL 이남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실질적 영토 침해”로 규정하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한 대응이다. 핵 공론화도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핵 공론화는 확장억지의 강화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제는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독자 핵무장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북으로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북이 도발하면 할수록 한·미동맹은 굳건해진다. 핵억지(핵우산)도 강화된다. 이 ‘안보 딜레마’가 몰고 올 군비 상승을 북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북, 미사일 비용 감당하다 內破될라 북이 지난 2일 하루에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25발을 돈으로 환산하면 7500만 달러(약 1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미사일 1발에 200만~300만 달러 꼴이다(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3일 자유아시아방송). 이 정도 비용이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가부도로 인한 내파(內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암호화폐 해킹으로 그 비용을 댄다지만 서방 국가들이 보고만 있겠는가. 핵 공론화 중 확장억지, 곧 기존의 핵우산을 더 넓고 두텁게 펴야 한다는 데 대해선 한·미부터가 이론이 없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자체 핵보유에 대해선 한·미는 물론 우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반대하는 쪽은 북의 핵보유를 정당화시킴으로써 한반도의 비핵화를 어렵게 만들고,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시킬 거라고 우려한다. 미국의 반대를 꺾기도 어렵거니와 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전술핵 재배치도 어려운데 자체 핵무장이라니, 현실성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독자 핵무장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핵 개발이 임계점을 넘었고, 이제 완전한 비핵화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전략목표는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핵 억지’의 제공으로 (이를 위해) 모든 핵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고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북이 핵무기로 미 본토를 위협할 때 과연 미 대통령이 북한과의 핵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핵 보복을 결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독자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4일 국방안보포럼). 어느 쪽이 우리의 안보와 미래에 더 적실성을 갖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 등 국제체제로부터의 반대 압력 때문에 핵무장을 못하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후(戰後) 70년이 넘도록 세계가 인류사에 드물게 긴 평화의 시대를 누려온 것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아닌 핵무기에 기초한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확장억지 속에서 NCND의 핵 옵션을 그럼에도 북의 미사일 사태로 한층 강화된 확장억지가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굳이 핵무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미는 3일 끝난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확장억지의 일환으로 미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가 있도록 운용하기로 합의했다. 확장억지 제공 과정에서 한국의 관여도 보장키로 하는 등 미국은 독자 핵무장만 빼고는 뭐든지 다 들어줄 태세였다. SCM 공동성명에 “김정은 정권이 핵공격을 하면 종말을 맞을 것”이란 경고를 처음 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공동성명에는 (핵 억지에 관한) 선언적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면서 “미국의 어떤 강한 말도 ‘핵 있는 북한과 핵 없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달라진 안보환경 아래서 독자 핵무장 외에 믿을 만한 무슨 방책이 있느냐는 얘기다. 결론은 분명하다. 양측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든 접점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강화된 확장억지를 더 강화하고, 그 아래서 독자 핵무장은 NCND의 전략적 기술적 옵션으로 놔두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어떻든 지난한 일이다. 햇볕에 취해, 이대로 가면 북이 핵보유국이 되고, 조국의 안보와 미래, 그리고 운명까지 그 하위변수가 되고 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의 가책 소리가 크다. 실로 기이한 시절이었다. 구차한 대북 굴종주의자들은 ‘평화세력’이고, 원칙을 지키고, 남북 간 형편에 맞는 융통성 있는 상호주의로 가자는 사람들은 ‘전쟁세력’으로 몰렸다. 이에 복무했던 그 많은 구루(guru)들은 오늘 북의 미사일 세례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11-09 06:00:00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낡은 '친일타령'으로 핵 게임 이길 수 없다 박근혜 정권 때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한·일관계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2013년 7월 도쿄 국제도서전에 참석했을 때였다. “과거의 한·일관계는 위(상층부)는 좋았으나, 아래(민초 수준)는 나빴다. 요즘은 거꾸로다. 위는 안 좋고, 아래는 좋다.” 한·일관계를 이처럼 쉽게 압축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흘렀다. 그의 인식과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국 간 바닥 정서는 우호적이고 활기가 넘친다(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기반 위에서 피어난 문화교류와 한류도 한몫 했을 터다). 반면 정부, 정치, 정상(頂上) 수준에선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문재인 정권에서 특히 그랬다. 그 사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 여파로 아직 제대로 된 정상회담 한번 못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미·일 3국의 동해 합동훈련에 대해 “일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인 것은 자충수, 극단적 친일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위기를 핑계로 일본을 끌어들이다간 한반도에 욱일기가 다시 걸릴 수 있다”고도 했다. 전에 없이 사나워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앞에서 다시 ‘친일’을 꺼내든 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규탄도 빼놓지 않았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미사일을 쏘고 7차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는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의 일체의 행위를 규탄한다”고 했다. 앞뒤가 안 맞는다. 북의 위협이 그렇게 심각하다면 한-미 공조에 더해 한-미-일 3국 공조로 가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게 상식이다. 같은 당의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한·미·일 3국간 안보협력이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다”고 했다. 태극기가 일본열도를 뒤덮으면 안 되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겹친다. 그런대도 일본은 빼라는 얘기는 현실성이 없다. ‘오늘 동해훈련에 일본이 끼게 되면 미래의 한반도에 욱일기가 나부끼게 될 거라’는 논리인데 정체된 낡은 반일(反日) 인식의 소산이다. 이 대표는 거꾸로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 모르겠다. 첫째,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우리가 싫다고 어디로든 보내버릴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 둘째, 중국은 계속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셋째, 미국은 언젠가는 우리와 헤어질 수 있다. 동북아의 국제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속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욱일기가 나부낄 거라고? 거꾸로 태극기가 일본열도를 뒤덮으면 안 되나. 나는 이 대표에게 유럽의 7년 전쟁(1756~1763년)을 심도 있게 연구해보기를 권한다. 어제의 적(敵)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적이 되는 국제전쟁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욱일기’ 발언으로 배일(排日)은 했을지 몰라도 미래 지향의 용일(用日)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욱일기’를 걱정할 게 아니라 북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친일 선동 노름에만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고장난 축음기처럼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오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해 이제 북핵문제는 남북 간 ‘핵 균형’을 유지하는 문제로 성격이 바뀌었다. 핵 균형은 왜 필요한가. 억지(抑止·deterrence)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북은 핵무기를 가졌고, 우리는 못 가졌다’는 말은 쉽게 풀면 북은 억지력이 있고, 우리는 없거나 부족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갭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전술핵 재배치, 韓美 입장 달라 원론적으로 4가지 방법이 있다. ⓵자체 핵무장 ⓶전술핵 배치 ⓷핵 공유 ⓸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핵우산)가 그것이다. 이 중 자체 핵무장은 지금과 같은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아래선 어렵다. 미국을 비롯한 기존 핵보유국들이 핵무기 확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술핵 배치는 1991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때 미국이 가져간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것인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선 한·미 양국 전문가들의 생각도 다르다. 박원곤 교수(이화여대)는 12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당초 반대에서 지금은 입장이 조금 바뀌었다”면서 “전술핵이 한반도에 와 있고,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의 전투기를 활용한 투하가 북의 전술핵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방송에서 유성옥(전 국정원 안보전략원장), 김태우(건양대 교수)도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면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본부장(전 이재명후보 선대위 실용외교위원장)은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미국 측 전문가들은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13일 6명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의견을 물었더니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의 수량이 많지 않은데다,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될 위험 때문에 한반도에 배치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전술핵 배치 없이도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로 한국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확장억지 말고는 다른 대안 없나 핵 공유에 대해서도 미측은 부정적이다. 클링너 연구원은 “자체 핵무장, 전술핵배치, 핵 공유 중, 핵 공유가 차악(least bad)”이라면서도 미국이 한국에 핵통제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핵무기가 어떤 목표물에 대해 어떻게, 몇 개 사용될지는 한·미 확장억제전략회의(EDSCG)에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확장억지(핵우산)뿐이다. 미국은 1978년 제11차 한·미 SCM(연례 안보협의회)에서 한국에 대한 핵우산 보장을 천명한 이래 확장억지를 일관되게 유지, 강화해 왔다. 2013년 10월 북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열린 제45차 SCM에선 이른바 ‘맞춤형 억제전략’(Tailored Deterrence Strategy)에 합의하기도 했다. 미국의 양자 동맹국들 중 이런 억지전략에 합의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핵무기,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9월에는 EDSCG 논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신범철 국방차관 일행에게 전략자산인 B-52 전략폭격기에 탑재된 핵탄두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확장억제를 믿으라는 일종의 현시였다. 이쯤 해서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걸로 충분한가. 가짓수가 많은 현란한 비핵억제조치들보다 전술핵 같은 똘똘한 대응수단 하나가 더 절실한 것 아닌가. 억지 논의는 결국 전술핵 재배치 여부로 다시 돌아오고 만다. 윤 대통령, “여러 의견 경청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측 당국자들의 말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부터가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지난 12일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했다. 조태용 주미대사도 워싱턴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확장억지 실행력 강화가 정부의 입장”이라면서도 “북핵이 현실적인 위협이 된 상황발전에 따라 창의적인 해법도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창의적 해법’이란 표현을 썼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작년 9월에 내놓은 ‘한국인의 외교안보 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3%가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했다. 독자 핵무장에 대한 지지율은 69.3%였다. 이는 2010년의 55.6%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수치였다.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응답은 93.3%. 유사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을 이길 수 없다’는 응답도 67%에 달했다. 달라진 안보의 성격과 수요, 달라진 국민의 인식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윤석열 정부의 최대 과제가 됐다. 북은 앞으로도 고도화된 핵무기를 기반으로 더 공세적으로 나올 게 분명하다. 이근욱 교수(서강대)는 2014년 지역 핵 국가들의 문제를 연구해온 비핀 나랑(Vipin Narang· MIT대) 교수의 이론을 기초로 북의 핵 행보를 예측했다. 결론은 이러했다. “북은 파키스탄과 유사하게, 핵무기 보유 덕분에 만들어진 전략적 공간과 안정성을 악용하여 전술적 도발을 반복하고, 제한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함으로써 반복적으로 위기가 발생하는 ‘안정-불안정의 역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북의 국지도발이 반복될 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이근욱, 「비핀 나랑의 현대 핵전략」, 『전략연구』 2014년) 억지 경쟁의 핵심은 신뢰다. 상대방이 우리 측의 의도와 결심을 의심하지 않아야 억지력이 생기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핵보유국 북한을 상대로 핵 균형을 이루려면 확장억지든 전술핵 배치든 이게 관건이다. 이재명 대표의 ‘친일국방’ 주장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핵 게임이 시작됐다.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낡은 ‘친일타령’으로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10-16 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