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연구원
gsk@hanyang.ac.kr
- 한양대 겸임교수
- 前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 前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캐즘에 빠진 전기차 .. '성장통' 이겨내려면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전기차가 골짜기에 빠졌다. 이른바 ‘전기차 캐즘(Chasm)’의 시대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일시적 후퇴인가, 구조적 쇠퇴인가? 시장을 명확히 진단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모색해야 한다. 캐즘(Chasm)은 본래 지질학 용어로 지층 사이의 단절 및 갈라진 골짜기 등을 뜻한다. 이후 경제나 비즈니스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벤처 기업이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는 듯하다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는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범용화되었다. 첨단기술수용론에서는 혁신성을 중시하는 초기 소비자(early adopters)에게는 신기술이 수용되지만, 실용성을 중시하는 대중(majority)에게까지 진입하지 못하고 급격히 침체기를 맞는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 경제와 자동차 산업 자동차는 한국 경제에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이다. 자동차, 자동차부품, 이차전지는 모두 한국의 15대 주력 수출품목에 들어간다. 반도체가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이라고 공식화했지만, 사실 3대 자동차 관련 품목 수출을 기준으로 하면 그 공식은 깨진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986억 달러에 달해 전체 수출의 15.6%를 차지하지만, 3대 자동차 관련 품목의 수출액은 1조37억 달러(16.4%)로 반도체를 넘어서는 규모다. 구체적으로 2023년 수출액을 보면 자동차가 709억 달러(11.2%), 자동차 부품이 230억 달러(3.6%), 이차전지가 98억 달러(1.6%)에 달한다. 캐즘에 빠진 전기차 몇몇 국가들은 전기차가 주류시장(mainstream market)에 이미 진입한 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캐즘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르웨이는 이미 전기차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범용화된 시장의 모습을 보이고, 스웨덴과 네덜런드도 30% 이상으로 캐즘을 넘어선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초기 소비자에게까지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전기차가 보급되었지만 캐즘을 넘어서지 못한 모습이다. 전기차 캐즘 현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전기차 수출액이 처음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줄곧 증가해왔던 전기차 수출이 2024년 감소세로 진입한 모습이다. 2024년 1분기 전기차 수출 실적은 약 37억6000만 달러로 2023년 1분기 41억7000만 달러에서 9.9% 감소했다. 2023년 자동차 수출액에서 전기차 비중이 23.3% 수준이었다면 2024년 1분기 현재 21.4%로 떨어졌다. 2024년 연간 전기차 수출액도 2023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이차전지 수출을 보면 더욱 자명하다. 이차전지 수출은 2018~2020년 1%대 증가율에 머물다 2021~2022년 15%대의 폭발적인 증가율로 급증했다. 그러나 2023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어 -1.5%로 감소했고 2024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22.3%나 감소했다. 2024년 연간 수출액도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차전지는 전기차의 부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기차 시장이 정체되는 과정에서 선행적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미국의 전기차 시장도 줄곧 성장만 하다 주춤하고 있다. 2024년 1분기 전기차 판매 대수는 약 26만9000대에 달해 2023년 4분기에 비해 -7.3%로 감소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을 선도했던 테슬라의 매출액이 2023년 들어 주춤하기 시작해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2022년 2분기 65%에서 2024년 1분기 51%로 떨어졌다. 테슬라는 인력 감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 세계 직원 수 14만명 중 10%에 달하는 약 1만4000명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진입해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성장 한계에 봉착한 배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배경에는 수요가 확장되지 못하는 캐즘현상을 꼽을 수 있지만, 그 밖에 다른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요한 또 다른 요인이 ‘보조금 축소’다. 그동안 전기차 수요를 유인해 왔던 배경이 보조금이었다면, 보조금 축소는 수요 정체를 야기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독일은 2023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20~30%가량 축소했고, 영국은 보조금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세계적으로도 고금리 장기화의 흐름 속에 각국이 긴축재정을 펼치는 국면에서 보조금이 축소되는 분위기다. 특히 대선을 앞둔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앞세워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보급해왔던 정책 기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상황이다. 두 번째 중요한 요인이 ‘출혈경쟁’이다. 테슬라가 2012년 ‘모델S’를 시작으로 전기차 시장을 선점했고, 이후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출시를 확대해 왔다. 한국, 미국, 독일 등 자동차 강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대거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고, 일본 기업들도 한발 늦었지만 뒤늦게 경쟁에 합류했다. 특히, 중국의 비야디(BYD), 지리(Geely), 상하이자동차(SAIC) 등이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샤오미도 첫 전기차 ‘SU7’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수요는 정체되는 국면에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기차 기업이 성장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다. 셋째, ‘중국의 시장 장악’도 전기차 성장 한계에 한몫했다. 자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중국의 전기차 기업들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이미 중국 시장이 53.6%를 차지할 만큼 거대하고, 유럽(23.7%)이나 북미(15.3%)를 초과한 훨씬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2023년 기준). 중국 정부의 편파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야디(BYD)도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기업으로 부상했지만, 2023년 96%가 내수시장에서 발생했다. 거대한 내수시장은 중국 기업들에 ‘규모의 경제’ 효과를 주고,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점유할 수 있도록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전기차 시장을 기준으로 2017년 중국 전기차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3.4%에서 2020년 6.9%, 2023년 12.5%로 상승해왔다. 넷째, ‘가격경쟁 본격화’는 전기차 기업들을 긴장케 하는 요소가 된다. 수요 둔화와 과잉 경쟁은 통상적으로 시장을 가격경쟁으로 내몬다. 공급과잉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등 가격이 급락했고, 배터리 가격도 조정되고 있다. 테슬라, 폭스바겐 등 세계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내리고 있다. 특히, 가격경쟁을 부추긴 중국의 역할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최근 샤오미는 800㎞의 주행능력을 가진 전기차 ‘SU7’을 5000만원대에 출시했고, 비야디(BYD)의 SUV ‘아토3’는 2200만원에 불과하다. 중국 내수시장이 과잉공급의 난을 겪고 있어 대응 전략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성능 인증 평가를 받고, 현지 조직 인력을 채용해 나가고 있다. 전기차가 캐즘을 건너려면 전기차 산업이 성장통을 겪는 모습이다. 어쩌면 성장해 나가는 데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평가된다. 캐즘을 건너는 전기차 기업이 있고, 건너지 못하고 떨어지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과잉 경쟁화 되다가 산업 구조조정을 겪는다. 이 과정을 지나면 다시 정상화되는 국면이 찾아오는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캐즘을 건너는 일이다. 첫째, 캐즘을 건너기 위해서는 보급형 전기차 모델 출시에 집중해야 한다. 초기 시장은 상대적으로 기술이나 품질이 중요했겠지만 주류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SW(소프트웨어) 차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저가형 전기차를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더할 서비스를 강화하고 그것이 보급형 전기차 속에 차별화된 소구 포인트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 셋째,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전기차의 경쟁력은 곧 배터리 경쟁력이다. 저렴하고 안전하며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차세대 배터리를 확보하는 것이 주류시장을 장악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재 확보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가 캐즘을 건너 광범위한 시장으로 보급되는 과정에서 배터리 핵심 소재가 다시 공급 부족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4-04-22 06:00:00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글로벌 사우스 중심 공급망 재편에 대비하라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지경학적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빙하가 물리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면, 글로벌 사우스가 지정학적·경제학적 관점의 지각변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백 개의 퍼즐로 구성된 지구를 상상해 본다면, 이전에 없던 다른 공식으로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듯하다. 글로벌 사우스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게 되었다. 의회에서 두 정당의 세력이 비슷할 때 그 승패를 결정하는 제3당이 있듯, 미국 동맹국과 중국 동맹국 간의 첨예한 갈등이 전개되는 동안, 제3 세력이 부상하는 모습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이 서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파트너십을 확보하려 경쟁하고 있다. 그 변화는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공급망·수출·기술패권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개발도상국 또는 제 3세계 국가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노스(Global North)가 미국과 유럽 주요국, 한국, 일본 등의 선진국을 뜻하는 개념이었다면, 글로벌 사우스는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개발도상국들을 일컫는 용어다. 20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이 글로벌 노스였다면, 21세기에는 글로벌 사우스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저성장, 고령화, 인구감소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주요 신흥국들이 고성장, 인구증가,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125개 국가의 GDP는 이미 세계 GDP의 약 40%에 달하고, 이들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2에 달한다.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단일패권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더욱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공산주의 진영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의 글로벌 질서가 서방 국가들 주도로 운영됐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음에 불만을 보여왔다. 특히,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나 중국에 대한 관세부과 등과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고, 서구 중심의 탄소 저감 노력이 개발도상국에게 과도한 부담이 됨을 피력해 왔다. 유엔 총회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동의하는 결의안이 채택되거나, IMF, G20 등의 국제기구에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중심의 지각변동,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첫째, ‘중국과의 디커플링’이라는 관점에서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이후 미·중 패권전쟁이 강하게 격돌하면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의존도를 적극적으로 줄여왔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2017년 21.6%에서 2022년 16.5%, 2023년 14.5%로 감소했다. 진영 대 진영의 싸움이 고조되면서 진영 간의 교역은 감소했지만, 양쪽 진영으로부터 다소 중립적 입장을 취해오던 글로벌 사우스와의 교역은 더욱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멕시코, 베트남, 인도 등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2017년에는 멕시코보다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았지만, 2023년에는 역전되었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로부터의 수입액도 크게 늘었다. 2017~2023년 동안 미국의 대중국 수입액 증감률은 약 -14.8%로 감소한 반면, 멕시코, 베트남, 인도 수입액은 각각 51.9%, 145.9%, 72.9% 증가했다. 자료 : USITC, 한국무역협회 둘째,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에 인도가 우뚝 서는 모습이다. 인도가 제2의 중국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GDP 대비 FDI 순유입액 비율을 보면, 2010~2020년까지 중국이 4.0%에서 1.7%로 하락했지만, 인도는 1.6%에서 2.4%로 상승했다. 2025년 중국은 0.7%로 하락하고, 인도는 3.2%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의 공장’이 중국에서 인도로 점차 이동하는 모습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거나 중국에서의 생산 비중을 줄이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가 더는 매력적이지 않고, 노동력이 풍부한 더 매력적인 국가로 대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인도의 움직임은 매우 대조적이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자립 인디아(Self-reliant India)’ 정책을 모디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생산기지로서 부족한 인프라를 보강하고, 경영여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면서 해외 투자 유치에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왔다. 2023년 인도의 인구는 중국의 인구를 초과했고, 고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부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2023년 G20 정상회의를 인도에서 개최하고, '글로벌 사우스 정상의 목소리(Voice of Global South Summit)’라는 이름으로 120개국을 초청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료 : World Bank,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주1 : 2010~2020년은 World Bank의 실적 자료이고, 2025년은 한국경제산업연구원의 전망치임. 주1 : 2025년 전망치는 최근 5년 동안의 FDI 유입액의 연평균 증가율과 World Bank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활용하여 추계함. 셋째, 핵심 광물을 보유한 국가들이 중심에 서게 된다.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전환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재생에너지 등에 들어가는 니켈, 리튬, 흑연, 코발트 등의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세계 주요국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러-우 전쟁과 중동분쟁 등 자원 대국들의 지정학적 불안이 장기화함에 따라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기업들의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채택되고 있고, 세계 열강은 핵심 광물의 채굴량 및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국가들이 니켈, 코발트 등의 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 국가들도 리튬, 흑연 등의 광물 채굴량이 상당하다. 아프리카에도 세계 코발트 채굴량의 68%를 차지하는 DR콩고나, 세계 흑연 채굴량의 13%를 차지하는 모잠비크와 같은 나라들이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서로 개발권과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자료 : USGS(2023) 지경학적 지각변동이 가져올 기회와 위협 첫째, 글로벌 사우스 주요국으로의 신시장 진출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는 수출구조로는 지경학적 지각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무역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함에 따라 한국의 수출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과 같은 신흥개도국으로의 적극적인 진출을 통해 무역구조의 다각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둘째, 핵심 광물 보유국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아무리 반도체 강국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이차전지 강국이라 하더라도 소재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세계 열강이 글로벌 사우스 주요국들로부터 개발권, 채굴권, 판매권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가만히만 있다면, 갈수록 자원의 영토가 줄어들게 된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ODA(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고, 생산기지 이전과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등의 우호적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자원을 조달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원외교를 우선적 국가 의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다국적 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탈중국·탈홍콩 현상을 현상으로서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 적어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이차전지 등과 같이 한국이 잘하는 산업만큼은 다국적 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에 유리한 강점들이 있다. 한국 기업들과 기술교류를 확대하고, 공동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술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한국에 연구기지를 둘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밖에도 해외 기업들의 한국 입성을 막는 과도한 규제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미래형 규제자유특구를 조성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4-03-21 06:00:00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트럼프 컴백에 떨고있다? 미리보는 세계경제 시나리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트럼프가 돌아왔다. 아직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세계인의 관심 인물로 돌아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최근 3개월 동안 세계적으로 트럼프 뉴스검색이 평균 53.5 수준이고, 바이든은 6.8에 불과하다. 더욱이 최근 시점에 가까워져 오면서 두 인물의 관심도 격차는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지지율이 약 3%p 선에서 접전 중에 있긴 하나, 트럼프의 지지율이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트럼프가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돌아올 경우 세계 경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해야 함을 시사해 준다. 자료: Google Trends (주: 전 세계, 최근 90일 기준, 뉴스 검색 기준) 높은 관세의 시대가 온다 만약,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는 10%의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 유지되고 있는 약 3%의 미국 평균 관세율을 1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1821년~1930년까지는 미국의 관세율 평균치가 약 30% 수준이었다. 1930년대부터 세계 경제가 자유무역의 시대로 점차 도약하고, 1995년 무역 자유화를 표방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1%대까지 떨어졌다. 2017년까지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1.5% 수준이었으나,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2018년에 3%대로 올라갔다. 자료: US Department of Commerce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은 유럽연합(EU)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EU에 불만을 가져왔다. 첫째, 중국 견제에 유럽국가들이 충분히 협조하지 않고, 중국과 적당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중국 기업에 투자를 제한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함께 하길 유도했는데, EU가 소극적으로만 대응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둘째, 유럽국가들이 이미 디지털세(DST, Digital Services Tax)를 도입해, 빅테크·플랫폼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일명, 구글세라고 불리는데, 구글(알파벳),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등의 온라인 광고나 데이터 판매 등 매출의 2~7%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디지털세가 주로 미국 기업들이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해왔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무역법 301조를 발동해 징벌적 보복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되나? 중국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2018년 1월 1일 중국의 수출품목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은 3.1%였고, 2019년 1월 1일 12.0%, 2020년 1월 1일 21.0%로 인상했다. 보호무역 조치는 또 다른 보호무역 조치를 이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수출품목에 대해 2018년 1월 8.0%의 관세를 부과했다면, 2019년 1월, 2020년 1월 각각 16.5%, 20.9%로 끌어올린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가장 격화되었던 시점이다. 자료: The US-China Business Council 트럼프가 재임할 경우,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다양한 경제제재를 가할수록 미국으로 리쇼어링(reshoring)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미국 내 생산이 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내수 경제가 활력을 갖게 만들기 위한 트럼프의 큰 그림인 것이다. 상대국의 수출품목에 대한 관세는 높게 부과하는 반면, 미국 내 법인세를 인하하고, 환경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들도 리쇼어링을 유도하기 위한 일관된 트럼프의 정책들이다. 트럼프2.0, 모든 게 변화할 것 통상환경에만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밖의 모든 곳에서 전혀 달라질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첫째, 산업지형의 변화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될 경우, 가장 먼저 할 일 중에 하나로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꼽고 있다. 트럼프가 ‘어젠다 47’이라는 이름으로 대선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지구상 가장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철폐하고, 자원개발을 막는 환경규제를 없애며, 원자력 에너지 생산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에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고, 전기차 보조금을 확대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면, 트럼프는 그러한 정책지원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바이든의 핵심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를 공약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전기차와 2차전지 투자전략에 상당한 혼선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국제정세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모든 정책기조는 ‘MAGA’로 일관된다. 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적 지휘를 유지하느라 희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재집권할 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탈퇴하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고,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해 왔다. 미국이 세계 방위산업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동맹국들이 국방 예산을 증강할수록 미국의 방위산업 수출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안보에 대한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스스로 국방력을 확보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방위산업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에게도 방위비 분담금을 추가적으로 요구하고, 한·미 동맹이 다시 시험대에 놓일 수 있다. 동맹국과의 협력체계를 공고히 하는 것에 집중했던 바이든과는 달리, 트럼프는 MAGA에 혈안이 될 것이다. 셋째, 미국을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이다. 트럼프는 법인세 추가 인하를 공약했다. 트럼프는 2017년 세법 개편을 통해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린 바 있다. 바이든이 집권하면서 법인세 최고 세율을 28%로 올렸는데, 트럼프는 이를 15%로 내리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는 법인세 추가 감면으로 미국 주식시장에 자금 유입을 유인하고, 절감된 세금만큼 기업들이 사업확장과 신규 채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통상 및 환경정책과 맞물려 기업들을 미국에 유치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 낮은 수준의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상대국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부여함으로써 세계 주요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수출하기보다 현지 생산을 택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료: OECD 트럼프 시나리오와 통상전략 마련해야 트럼프가 재집권을 시작하면 나타날 통상환경의 변화를 그려보고, 사전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트럼프 재집권 시 EU에 대한 징벌적 무역 조치에 대응할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독일 고위 관리들도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되면 더 큰 도전에 당면하게 될 것으로 인지하고, 미국 상원의원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등 진지한 준비를 하고 있다. 트럼프가 구상하고 있는 통상 및 외교정책들을 조사하고, 가능성 큰 시나리오들을 마련하며 각각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구상해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한 보복관세나 경제제재들이 단행됨으로써, 중국을 통한 대미 우회수출 전략이나, 중국산 소재 및 부품을 조달받는 공급망 전략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미국이 평균 관세율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미국 내 생산이 유리할 것인지, 그 밖의 더 유리한 우회 수출 경로가 있는지 사전에 고민해야 한다. 보호무역 조치 외에도 기존의 무역협정, 파리기후협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협정을 폐기·탈퇴할 가능성이 커 외교·통상 분야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특히, 대만 해협을 놓고 군사적 긴장감이 증폭되거나, 중동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재편될 수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되면 세계 지형에 변화가 나타날 것이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외교·통상 분야에 걸쳐 나타날 가능한 시나리오별로 기민하게 대응할 전략들을 사전에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4-02-20 19:09:28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지금 세계는 전쟁 중 …K-방산의 새로운 도전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지정학적 리스크 세계는 전쟁 중이다. 이스라엘-하마스를 중심으로 한 중동 분쟁이 세계인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종식에 대한 기대조차 사라졌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외치고, 미국은 ‘세계의 대만’이라 외치고 있다. 중국의 무력 도발 위험에 미국은 대만 총통 당선인 라이칭더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 땅 바로 옆에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경학적 분절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은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세계적인 경제학자 69%는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로 인해 세계 경제가 더욱 흐려질 것으로 판단했다. 세계화(globalization)가 진전되던 세계 경제에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분절화가 진전되는 국면에서는 위협이 많아질 것이다.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만큼 세계 주요국들은 방위비 지출을 늘리는 모습이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는 2024년까지 방위비를 최소 GDP의 2%까지 지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회원국들은 각국이 GDP 대비 2.5%를 방위비로 지출하는 것에 합의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참고로 2022년 기준 세계 방위비 예산은 GDP의 2.3%에 달한다. 미국의 2024회계연도 국방예산은 지난해보다 약 3% 늘어난 8860억 달러(약 1152조원)였다. 일본의 2024회계연도 방위비는 약 73조원에 달하고, 전년보다 16% 이상 증대시킨 규모다. 한국의 2024년 국방예산도 59조4000억원으로 2023년 57조원에서 약 4.2% 증액됐다. 2023년 세계 방위비 지출은 약 2조47억 달러에 달하고, 2028년까지 연평균 4.9% 증가해 2조546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하는 방위산업 세계 경제에서 방위산업의 지위가 높아질 전망이다. 방위산업은 국가 방위를 위하여 군사적으로 소요되는 물자의 생산과 개발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정의한다. 협의의 방위산업은 국방력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총·포·탄약·함정·항공기·전자기기·미사일 등 무기장비의 생산과 개발로 범위를 한정하지만, 광의의 방위산업은 무기·탄약 등 직접적인 전투기구뿐만 아니라 피복·군량 등 비전투용 일반 군수물자까지도 포괄하기도 한다. 방위산업의 경제적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국방, 외교, 안보 등의 면에서도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인공지능, 우주·항공, 로보틱스, 반도체, 사물인터넷 등 고급 기술이 집약되는 첨단산업이라는 점에서 미래 유망 산업의 성장에도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된다. 세계 방위산업(defense industry) 규모는 세계가 분절화하고 국지적 전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방위시장(defense market)은 2021년 기준으로 약 2조1551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에서 2027년 약 2조8887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 방위산업은 2027년까지 연평균 약 5.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이는 세계 경제 연평균 성장률 약 3.5%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세계 경제에서 방위산업의 역할(비중)이 커짐을 의미한다. 세계 주요국들이 방위비 지출을 늘려나가고, 방위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한국으로서는 방위산업 수출의 기회가 커진다. 2020년까지는 K-방산 수출액이 3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2021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해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 2022년의 K-방산 수출 대상국이 4개국에 불과했고, 폴란드에 대한 수출이 72%를 차지할 만큼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지만 2023년 들어 12개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국방부 방위사업청의 2024년 수출 목표치는 200억 달러이고, 수출 대상국을 확대해 나가면서 동시에 무기와 무기체계 수출 품목의 다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주요 기업들의 추가적인 계약 체결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방위산업 전략의 재편 세계 방위산업에서 한국의 지위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세계 군사비 현황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무기수출 점유율은 2018~2022년을 기준으로 약 2.4% 수준에 달한다. 세계 무기수출 순위 1위 미국(40%), 2위 러시아(16%), 3위 프랑스(11%), 4위 중국(5.2%), 5위 독일(4.2%), 6위 이탈리아(3.8%), 7위 영국(3.2%), 8위 스페인(2.6%)에 이어 한국은 9위 자리에 있다. 민간 분야의 제조 경쟁력과 내수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이 가진 장점을 살리고, 방위산업 선진국과 기술적 격차를 줄여나가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군사·안보적인 긴장감이 고조되고, 각국이 군비를 증강시키고 있다는 기회가 있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지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첫째, 독자적 방위산업을 구축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방위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핵심 기술이 집약되는 중추산업으로서 기회를 포착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방위산업이 주요국을 빨리 뒤쫓아간 것이었다면 이제 주요국들이 뒤쫓아 오도록 해야 한다. K-방산은 이제 그동안 없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국가방위산업전략(NDIS·National Defense Industrial Strategy)’을 발표했고, 중국 등 대외 의존에서 탈피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세계가 분절화되고 있으므로 기존의 방위산업 밸류체인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기존의 소재나 부품의 공급망이 깨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독자적 방위산업 생태계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움직임이 필요하다. K-방산이 도전해야 할 두 번째 방향성은 첨단화다. 한국이 축적해온 방위산업 고유의 기술과 반도체, ICT, 로보틱스 등의 기술들을 집약한 선도적인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데 국방 R&D 투자가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Business Research Insights)는 미래 방위산업의 두 가지 핵심 요소를 꼽았다. 한 가지는 초경량·고성능 소재(lightweight, high-performance materials)를 개발하는 것이고, 두 번째 요소는 현대화에 대한 투자(investment in modernization)를 진척시키는 것이다. 글로벌 방위시장 수요가 어떠한 방향으로 형성될 것인지가 자명하므로 첨단화라는 K-방산의 방향성도 자명한 것이다. 세 번째 방향성은 지속화다. 전술했듯, 2024년 국방예산이 2023년보다 4.2% 증액된 59조4244억원에 달한다. 2024년 정부예산 증가율이 2.8%임을 고려하면 국방예산은 상당한 수준으로 증액 편성된 것이다. 이 예산에는 보라매, KF-21 최초 양산이나 레이저대공무기, 고고도 요격유도탄 등 사업뿐만 아니라 K-방산 수출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일시적으로 예산을 증액하고, 일시적으로 수출 지원을 제공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을 하나의 성장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기획하고, 국제방산협력 및 수출지원 시스템을 확보함으로써 지속 성장이 가능한 방위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4-01-22 06:00:00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피크 코리아' 아닌 '두 번째 한국'으로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일본의 경제지 <머니1(Money1)>은 “한국은 끝났다(韓国は終わった)”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제기된 ‘피크 코리아(Peak Korea)’론이 분명 불편한 감정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혐한 매체의 단순한 비난적 표현들은 무시할지라도, 논리적 비판이 하나라도 있다면 겸허히 수용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에 놓여 있다는 것은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 저성장 체제에 놓이게 될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저성장을 수용해온 한국 경제 한국 경제는 1970년대 14.9%에 달하는 고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1990년대까지 고성장기를 보냈다. 한국전쟁 이후 극도로 못살던 나라에서 2018년 세계 GDP 10위 국으로까지 도약했다. IMF, OECD, World Bank와 같은 주요 국제기구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을 만큼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의 모습과 달리 최근의 실정을 보면 한국 경제가 자존심을 구긴 듯하다. IMF가 전망한 2023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1.4%로, 일본의 2.0%보다 낮다. 2023년 1.4% 성장률은 현대 경제사에 겪었던 4번의 경제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성장률이기도 하다. IIF(국제금융협회)의 Global Dept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 규모(GDP 대비 비율 기준)가 조사대상국 중 한국이 가장 크다. 2023년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실질성장률 하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1980년대 9.7%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다가, 1990년대 7.3%, 2000년대 5.1%, 2010년대 3.0%로 내려왔다. 2020년 초에는 잠재성장률이 그나마 2.2%를 유지하는 듯했으나, 2024년 이래 2%대마저 밑도는 1.8%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즉, 향후 2%를 웃도는 실질성장률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한국 잠재성장률 추정(단위: %) 자료: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제로 성장의 시대 오는가? 수십 년 동안 고성장 시대에서 중성장 그리고 저성장 시대로 내려온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더 내려갈 것인가’가 쟁점이 되겠다. OECD는 세계 주요국의 장기 1인당 잠재성장률을 추정했는데, 2030~2060년 동안 한국은 0%대로 떨어져 0.8%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사대상인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1인당 잠재성장률로 전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로 성장의 시대 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OECD도 ’그렇다‘라고 답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OECD 회원국의 평균 1인당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 1.3%에서 2030년대 1.1%로, 미국은 같은 기간 1.2%에서 1.0%로 완만하게 둔화하는 흐름이다. 일본은 오히려 같은 기간 1.0%에서 1.1%로 올라선다. 개발도상국들은 대체로 1인당 잠재성장률이 상승하는 흐름인데, 예를 들어 맥시코는 1.1%에서 1.5%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한국의 1인당 잠재성장률은 2020년대 1.9%에서 2030년대 0.8%로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세계적인 흐름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주요국 1인당 잠재성장률 전망(단위 %, %P) 자료 : OECD(2021) The long game: Fiscal outlooks to 2060 underline need for structural reform. 무엇이 한국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가? 잠재성장률은 크게 노동투입, 자본투입, 총요소생산성으로 구성된다. 2020년까지 3가지 요인 모두 기여도가 떨어져 왔고, 이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지속해서 하락해 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각각의 요인별로 상황을 진단해 보자. 첫째, 노동투입이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구는 2023년 약 5171만명에서 2024년 5175만명으로 소폭 늘었다가 이듬해부터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적으로도 인구감소가 지속하여 2041년 들어 인구 규모가 5000만명 미만으로 감소할 것으로 통계청은 추계한다. 인구감소 속도보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더욱 빠르게 감소할 전망이고, 이는 앞으로 노동투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어렵게 만든다. 노동력의 감소는 인건비 상승을 야기하고, 세계 시장에서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자본투입이 늘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저성장은 저성장을 야기하는 법이다. 기업은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 투자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는 신규투자를 단행할 수 없다. 미래에 도전하기보다, 현재에 안착하고자 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여기면 더욱 그러하다. 해외직접투자(FDI) 역시 저성장에 직면하고, 시장규모가 점차 축소될 것으로 보이는 한국보다,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미래 시장으로서 가치가 있는 신흥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높다. 셋째, 총요소생산성은 한국 경제를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요소다. 총요소생산성은 전체 생산요소의 결합적 투입에 대한 전체 산출규모의 비율로서, 생산성을 분석하기 위해 널리 활용되는 지표이다. 쉽게 말해 생산성이라고 표현하겠다. 모든 경제활동은 ‘투입(input)→과정(process)→산출(output)’로 구성된다. 피크 코리아는 노동투입과 자본투입이 줄기 때문에, 산출이 늘어나기 어려운 경제구조라고 재정의해 볼 수 있다. 남은 것은 ‘과정(process)’이다. 노동 및 자본의 투입이 줄어들지라도 과정의 혁신이 있다면,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하지 않을 수 있다. 잠재성장률과 요인별 기여도 자료: 한국은행 ‘두 번째 한국’, 성장동력을 찾아서 ‘피크 코리아’라는 일본의 지적이 틀렸음을 보여주자. 다시 뛰는 한국, ‘두 번째 한국’을 만들어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비아냥대는 비난일지라도, 이념적 프레임을 기반으로 정치적 억측일지라도 우선 그 지적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한국 경제를 뒤돌아보자. 한국 경제의 무엇이 고장 났는지,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자문해 보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번째 한국’은 없다.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최대한 막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에 순응하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다. 생산연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노동투입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여성이 더는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근로환경을 조성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청년의 일할 의욕을 고취하고,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더욱이, 해외로부터 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조성하고, 외국인의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신산업으로의 탈바꿈을 시도해야 한다. 자본투입은 상수가 아니라 변수다. 산업생태계를 바꾸어 자본투입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통산업에 매달리고 안도해서는 안된다. 유망산업으로 진출하고, 신상품을 개발하며, 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끊임없이 전환하고 있는데, 기업이 그 자리에 있으면 안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유연한 규제환경을 조성하고, 기업들이 전통산업에서 신산업으로 사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안주하는 기업이 아니라, 도전하는 기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여성과 청년의 경제활동 참여를 이끄는 선순환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자. 이가 없으면 잇몸이 있지 않은가? 노동과 자본의 ‘투입(input)’이 줄지라도, ‘과정(process)’의 혁신을 통해 ‘산출(output)’을 늘려야 한다. 일하는 방식의 전환, 창조적 경영 혁신, 기술혁신, 교육 혁명, 효율적 행정, 선진화된 정치, 제도 개선 등 한국이 이뤄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일어서서 ‘두 번째 한국’을 향해 다시 뛰자. 스티브 데이비스의 명언을 인용하겠다. “넘어진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3-12-20 05:00:00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2高1低' 고착화…새로운 경제 공식 필요하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어제의 공식이 오늘의 구식이 된다. 어제의 낡은 공식으로는 오늘의 숙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제의 숙제는 그 공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숙제가 달라진 오늘은 새로운 공식을 이용해야만 한다. 필자는 『스태그플레이션 2024년 경제전망』을 통해서, 2024년을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 고착화 되는 뉴 레짐(new regime)의 시대로 정의했다. 새로운 공식의 도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저물가 시대를 겪어온 우리는 고물가라는 ‘이상한’ 과제를 맞이했고, 저금리 시대를 경험한 우리는 고금리라는 ‘이례적’인 부담을 견뎌야 하게 되었다. 2024년에는 고물가와 고금리가 지속하다 보니, 이 현상이 ‘이상하고’,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경제 주체는 좋든 싫든 뉴 레짐에 익숙해지고, 이를 점차 받아들이게 된다. 뉴 레짐은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의 고착화이고, 이는 다시 말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즉, 2024년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체제에 놓이게 된다. 고물가의 고착화 ”인플레 압력이 낮아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23년 8월 잭슨홀 미팅의 기조연설에서 제롬 파월 연준의장이 한 발언이다. 즉, 인플레이션이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끈적끈적하게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도 고물가라는 숙제를 채 해결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고물가 기조가 고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OECD는 세계 주요국들이 2022~2023년에 찾아온 인플레이션 현상이 2024년에는 다소 완화되지만, 주요국의 목표물가 수준인 2%에 부합하게 떨어지는 데 제약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OECD의 주요국별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 자료 : OECD(2023.9) OECD Economic Outlook 고금리의 고착화 2022~2023년은 긴축의 시대다.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작한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는 0.25%였던 기준금리를 짧은 시간 내에 5.5%로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향후 금리에 쏠린다. 2024년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있을 것인지, 있다면 언제 있을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기준금리 인하의 시점은 곧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가 될 것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ail Times)는 2023년 9월 ’Higher for longer’라는 문구를 표지에 걸었다. 2024년 상반기까지는 목표하는 물가수준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겠다. 최근의 통화정책 기조를 반영한 명확한 표현은 ’Higher for longer’다. 당분간은 높은 기준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다. 2024년 하반기에 물가지표가 ’확실히‘ 안정화 될 경우, 1~2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한다. 연준 입장에서는 향후 물가에만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2023년 연초까지만 해도 경기침체 혹은 시스템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오직 물가목표만을 달성하기 위해 강한 긴축을 단행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다. 다행히도 미국경제가 강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는 상황이다. Fed(연방준비제도)는 9월 FOMC 후 경제전망(SEP, Summary of Economic Projections)을 통해서 2023년과 2024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0%, 1.1%에서 2.1%, 1.5%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즉, 극심한 경기침체를 우려해 기준금리를 조절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연준은 향후 발표되는 미국의 물가지표에 집중해서 기준금리를 결정할 것이다. IMF의 주요국 권역별 기준금리 전망 (단위 : %p) 자료 : IMF(2023.10) World Economic Outlook. 저성장의 고착화 고물가-고금리의 압력은 저성장을 더 고착화한다. 고물가-고금리는 경제성장에 제약을 가하기 마련이다. IMF는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022년 3.5%, 2023년 3.0%, 2024년 2.9%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평년 성장률 3.8~3.9% 수준을 밑돌아 경기침체 국면이 장기화할 것으로 판단했다. OECD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자료 : IMF(2023.10) World Economic Outlook.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기업이 어렵지 않을 수 없다. 원자재와 부품값이 오르니 수익이 악화된다. 기업의 자본은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으로 구성되는데, 타인자본 즉 빌린 돈의 대가(이자)가 높으니 적극적으로 신산업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 역동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 없는 이유다.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가계도 어렵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금리 상황에 이자상환 부담이 가중되어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들고 있는데, 물가는 한없이 비싸니 소비할 수 없다. 고물가 기조가 유지되는 한 실질소득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텅장’이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통장에 월급이 들어와도, 이자나 공과금 등이 빠져나가면 텅텅 빈다는 의미다. 가계와 기업이 쪼들리니, 정부도 예산지출을 확장적으로 펼칠 수가 없다. 기업의 경영활동에서 나오는 게 법인세고, 가계의 노동 및 소비활동에서 나오는 게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아닌가? 경제 주체의 경제활동 수준이 수축되는 국면이기 때문에, 세수가 많이 걷힐 수도 없고 세출을 많이 늘릴 수도 없다. 정부지출도 쪼그라들기 때문에, 경제가 확장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뉴 레짐의 시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4년의 새로운 체제, 즉 뉴 레짐은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 기조를 한마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뉴 레짐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제 주체는 물가 상황에 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물가 아직 안 잡혔다’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물가안정목표제하에 있다. 한국이나 미국 등과 같은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목표물가는 2%다.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정점을 이미 통과했고, 미국도 하향 안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2%라는 목표물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4년 상반기까지 2%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 제약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첫째, 고물가-고금리는 기업의 신규투자를 억누르는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사업 의지를 고취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한파나 폭설과 같은 계절적 요인과 설 수요가 맞물려 식료품 물가가 급등할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셋째, 고물가는 유독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실추시킬 수 있으므로 재정정책의 초점이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장치를 확충하는 데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저성장에도 대응해야 한다. 첫째, 재정 운용의 미를 살려야 한다. 예산을 긴축적으로 계획할지라도 어떤 분야에 예산을 집중함으로써 경제가 효율적으로 순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한 단위의 예산이 수십, 수백 단위의 경제활동을 이끌 수 있도록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세계 주요국들이 경기침체 국면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름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나라들이 있다.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같은 주요 신흥국들과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교역을 늘려나가야 한다. 셋째, 저성장의 고리에서 탈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신시장-신기술-신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선제적 규제 완화는 물론이고, 기업이 신규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고민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3-11-20 05:00:00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2024년 스태그플레이션…'플립 턴'이 필요하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오르막의 연속이다. 다 올라온 줄 알았는데 또 오르막이다. 2023년에도 녹록지 않은 경제였는데 2024년에는 ’지칠 대로 지치는 경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은 기업 투자도, 가계 소비도 억누르는 악조건이고, 악조건이 2023년에 이어 장기화하다 보니 지칠 대로 지치게 된다. 필자는 <스태그플레이션 2024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수 있음을 강조했다. 2024년 경제를 들여다보고 대응책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 2024년 한국 경제 전망 시대를 결정짓는 변수가 있다. 2020년의 변수가 코로나19였고, 2021년의 변수는 백신 보급이었다. 2022년의 변수는 전쟁이었다. 전쟁의 지속 혹은 확전 여부에 따라 경제가 결정되는 듯했다. 실제 2022년 국내외 경제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국면이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경제 흐름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2023~2024년의 변수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의 정도에 따라 각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달라진다. 즉, 인플레이션 위협이 해소될 것인지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동결·인하 속도와 정도를 결정할 것이고, 이에 따라 2024년 경제 시나리오가 짜일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 한국 경제 전망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시나리오를 전제로 하겠다. 인플레이션 위협이 연내에 해소되는지 혹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다시 고조되는지 등에 따라서 낙관적 혹은 비관적 전망이 갈릴 것이다. 2024년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한 전제 자료 : 김광석(2023.10), 스태그플레이션 2024년 경제전망, 이든하우스. 첫째, 시나리오1은 가장 낙관적인 상황을 전제한다. 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둔화하여 2024년 상반기 안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가정하겠다. 글로벌 물가가 빠른 속도로 안정되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여왔던 세계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급격히 전환될 것이다. 물가 안정이 과제였던 경제에서 경기 부양이라는 과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억눌렸던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움직임 등이 일 것이다. 공격적 투자 성향이 집중되면서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이동함에 따라 자산가치가 급격히 상승하게 될 수 있다. 기업의 신규 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증가하고, 대외 경제가 빠른 속도로 안정되면서 수출 경기도 호조세로 전환될 것이다. 2024년 한국 경제는 2.1% 성장하며, 잠재성장률 수준을 지켜낼 것으로 전망한다. 시나리오2는 중립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다. 2024년 물가 상승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횡보하는 흐름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즉, 끈적끈적한 고물가(sticky inflatio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번 오른 가격이 내려가기는 쉽지 않은 성격이 있고, 임금과 공공요금도 지속해서 오르면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물가 2%까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국제 유가 상승이나 기후문제에 따른 식료품 가격 상승세가 물가를 자극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됨에 따라 세계 주요국들은 상당 기간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하반기에나 한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고, 여전히 제약적인 금리가 될 것이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압박은 한국 경제를 저성장 고착화로 몰아넣을 것으로 판단된다. 2024년 한국 경제는 1.7%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2023년 극심한 경기 침체에 따른 기저효과(High Base Effect)가 작용해 ’숫자상으로‘ 반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며 체감경기는 전년보다도 못하다. 시나리오3은 가장 비관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조되는 일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상당한 수준으로 나타나거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후 재건사업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면 원자재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됨에 따라 국제 유가가 급등할 수 있고, 슈퍼 엘니뇨에 따라 식료품 가격도 덩달아 급등할 수 있다. 미국을 시작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 높은 임금 상승률이 반영되어 근원물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위협이 다시 고조됨에 따라 주요국들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게 된다. 미국 금융시장 불안과 중국발 부동산 사태가 재점화하면 자본시장은 상당한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투자를 두려워하고, 가계의 소비심리는 더 얼어붙는다. 2024년 한국 경제는 2023년 상황보다 더 악화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는 1.3% 수준으로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2024년 경제가 경제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경제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가장 안 좋은 경제가 될 것이다. 2024년 한국 경제 전망 자료 : 김광석(2023.10), 스태그플레이션 2024년 경제전망, 이든하우스. 주1 : 2023년 10월 10일 기준 전망치임. 주2 : 시나리오2는 기준이 되는 중립적 전제를, 시나리오1은 낙관적 전제를, 시나리오3은 비관적 전제를 의미함. 2024년 ’플린 턴‘이 필요하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어려운 경제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까? 경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움직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수영의 역사 속에 1분이라는 마의 장벽이 있었다. 어떤 노력을 해도 배영 100야드(91.44m) 종목에서 1분이라는 기록을 깰 수 없었다. 당시 수영선수들은 턴을 할 때 손으로 벽을 짚던 시절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 기록이 깨지지 않는다. 하나의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것은 수영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그 움직임은 바로 플립 턴은(flip turn)이었다. 1930년대 수영선수들은 턴을 할 때 손으로 벽을 짚었다. 당시 수영 코치였던 텍스 로버트슨(Tex Robertson)은 기존 방식에 의문을 품었고 손이 아닌 발로 턴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텍스 로버트슨의 제자인 아돌프 키에퍼(Adolph Gustav Kiefer)는 59.8초의 기록으로 배영 100야드 종목에서 1분 기록을 깨뜨린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당시 16세였고 1935년 일리노이 고등학교 선수권 대회에서 세상을 바꾸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고 같은 해 일리노이주 선수권 대회에서는 58.5초를, 1940년에는 57.9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아돌프 키에퍼의 플립 턴(flip turn) 자료: Alchetron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다. 강물은 계속 흐르고 있으니 같은 강물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이고, 설사 강물이 흐르지 않을지라도 다시 들어간 '나'도 이미 변화했기 때문에 같은 강물에는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판타 레이(Panta Rhei)'는 변화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함을 강조한 그의 대표적인 사상이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 짓누르는 2024년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야 한다. 앞서 2024년 경제를 전망했다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모색해 2024년의 플립 턴을 시도해 보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연습하는 것이다. 기업은 경제 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그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물가, 금리, 환율, 국제 유가, 원자재 가격 등과 같은 거시경제 변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고 적절한 구매전략과 판매전략을 짜야만 한다. 대외 환경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주목하며 수출 전략과 신시장 진출 전략을 꾀해야 한다. 산업 트렌드를 주시하며 유망 산업으로 진출하는 등 사업전략과 관련 인재를 확보하는 인사 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정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좌시하면 안 된다. 고물가와 저성장을 같이 만나는 상황에서는 이렇다 할 대응책도 마땅히 없기에 고민이 깊어진다. 2024년 물가 안정을 최우선하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 상반기 내에 물가 안정을 이루어 통화정책이 그 외 다른 과제(금융 불안 해소, 경기 부양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내일을 살펴야 한다. 가계와 기업이 비록 어제오늘을 놓고 고심이 깊을지라도 정부는 내일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어제의 주력 산업이 내일의 유망 산업이 아닐 수 있다. 장기적인 R&D 로드맵을 짜고, 경제주체가 흔들림 없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야 한다. 기업들이 유망 기술에 투자하고 신상품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계가 그 유망 기술을 확보하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정부는 큰 나무가 되어 품어야 한다. 낡은 규제로 인해 수년간 공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되도록, 기업이 잘못된 제도에 ’지쳐 쓰러짐‘ 없도록 정교한 산업기술정책을 구축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3-10-20 06:00:00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미래 없는 예산안…장기침체 앞에선 한국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상처가 아물어도 흔적은 남는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지만 마음이 성숙할지라도 몸은 사실 아픈 만큼 쇠약해진다. 2022~2023년에 찾아온 고물가와 고금리가 해결되지 못한 채 2024년을 앞에 두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상처는 장기 침체라는 흔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장기 침체에 진입하나? 한 나라의 경제가 휘청일 만큼 충격이 있고 난 뒤에는 경제 체질 자체가 바뀌는 듯하다. 실제 어떠한 대내외적 충격이 있을 때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경제위기의 충격이 가장 대표적이고 그 상처가 있고 난 뒤의 경제 여건에 흔적처럼 잠재성장률이 뚝뚝 떨어져 왔다. 저출산, 인구 감소,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는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리라는 희망을 제약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는 경제성장률이 둔화해 왔다. 실질성장률이 떨어져 온 것보다 잠재성장률이 지속해서 둔화해온 것이 더 중대하다고 평가한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노동력과 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가 완전고용되었다고 가정할 때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량 증가율로, 물가가 그대로일 때 달성 가능한 최대의 경제성장률이다. 마치 건장한 남성이 쇠약해져 버리듯 고성장 국가의 경제 체질에서 저성장 국가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1980년대 9.7%의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다가 1990년대 7.3%, 2000년대 5.1%, 2010년대 3.0%로 내려왔다. 2020년 초에는 잠재성장률을 그나마 2.2%를 유지하는 듯했으나 고물가·고금리의 상처가 지나고 간 흔적이 2024년에 남아서 2%대마저 깨지는 국면에 놓일 것으로 판단된다. 장기 침체 피할 돌파구는 무엇인가? 장기 침체 진입이 피할 수 없는 여건이라면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일 것이다.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 산업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과 R&D를 집중해야 하는 절실한 순간이다. 일본은 변화에 대응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은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중대한 이유 중 하나다. 과거 일본이 카메라와 필름 시장을 독식하듯 장악했던 적이 있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삼성전자를 비롯한 IT기업들에 시장의 반을 내주었다. 디지털카메라마저도 사라지고 카메라 기능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면서 일본이 장악했던 카메라와 필름 시장은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 카메라와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로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산업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는데 일본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독일도 변화에 대응하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 군림하다시피 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온 독일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시대적 전환에 대응이 부족했다. 독일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는 군림했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는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2022년 기준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미국 테슬라와 중국 자동차 기업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1위는 테슬라(16.4%), 2위는 BYD(11.5%), 3위는 상하이차(11.2%)다. 폭스바겐은 4위로 전기차 시장을 7.2% 점유하고 있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고, 독일이 침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한국도 그 길을 따라 나설 이유는 없다.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이 가진 경쟁력을 생각해야 할 때다. 모든 영역에서 잘할 수는 없다. 이미 모든 영역에서 잘할 만한 나라도 아니다. 한국이 끝까지 밀어붙여야 할 일을 고민해야 한다.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인도, 중국, 미국처럼 인구가 많아서 노동력이 풍부하거나 시장이 크지도 않지 않은가? 그마저 그 인구는 줄고 있지 않은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호주처럼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다. 원자재나 소재 공급을 차단하면 경제가 심장마비 걸리듯 멈춰 선다. 유일한 강점은 기술력이다. 기술력이 1위가 되었든, 10위가 되었든 어쨌든 기술력을 높이는 것만이 한국이 나아갈 유일한 길이다. 기술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과 기초과학과 기술 기반의 산업을 육성하는 R&D는 한국의 미래를 두고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미래 없는 예산안 다소 긴축적으로 예산(안)을 편성한 부분엔 공감과 응원을 보낸다. 2024년 재정지출 계획을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해 2023년에 비해 2.8% 증가한 수준이다. 역대 최저 예산 증가율인 만큼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 공감이 간다. 세수가 부족한데 세출만 무작정 늘릴 수 없지 않은가? 부채에 의존해 늘릴 수야 있겠지만 재정건전성도 우려되고 추가 국채 발행에 따른 경제의 부담도 걱정이 된다. 더구나 2024년까지는 물가 안정에 최우선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 판단되고 그런 점에서 긴축재정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자료 : 기획재정부, 2024년 예산안, (P)는 계획치(Plan)를 의미함] 문제는 그 예산을 어디에 쓰느냐다. 예산 규모보다 용처가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용돈을 준다고 해보자. 불량식품을 사 먹을지, 우유를 사 먹을지에 따라 같은 용돈의 효과가 다르지 않겠는가? 2023년 8월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예산안에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12. 일반·지방행정’을 제외하고 분야별 예산 증액 혹은 감액 방향을 살펴보면 ’2. 교육‘과 ’5. R&D’만 줄였다. 교육 예산은 6.9%, R&D 예산은 16.6% 감액할 계획이다. [자료 : 기획재정부, 2024년 예산안, 국회 통과 전 예산안을 기준으로 함.] 올해까지는 유망 기술이던 게 내년에는 사양 기술이 될 수 있는가? 올해까지 기술력을 쌓아오던 유망 기술 분야 연구원 중 일부가 내년에는 짐 싸서 집에 가야 한다. 가다가 중지해도 좋은 일이 있지만 R&D는 절대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한 법이다. 한국의 총 R&D 예산은 공공 R&D 예산이 25% 지급될 때 민간 R&D 예산은 75% 대응 자금이 투입되는 구조다. 공공 R&D 예산이 줄어들면 그 3배에 달하는 민간 R&D 예산이 줄어든다. 즉, 2024년 공공 R&D 예산이 5조2000억원 감액되면 민간 R&D 자금 또한 15조6000억원가량 감액될 수 있음을 뜻한다. 미래 있는 한국에 대한 구상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그림 그리고, 변화를 선도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진흥하고 산업을 재편해 나가야 한다. 앞서 독일 사례를 들었으니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 보겠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데 뒤처지면 현대차와 기아차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연기관차에 필요한 부품이 2만~3만개에 달하고 전기차는 1만5000~1만8000개로 구성된다.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자동차 기업 하나만 휘청이는 것이 아니라 수천 개 중소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함께 쓰러짐을 의미한다. 장기 침체에 진입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유망 산업에 대한 도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래지향적 예산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미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안 된다. 가계는 오늘내일을 고민할 수 있다. 기업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정부는 아니다. 정부는 중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오늘과 내일의 경제가 혹독하게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정부는 중장기적인 미래를 그려나가야 한다. 교육과 R&D 같은 미래지향적인 부문에 대한 예산을 확충하고 가계와 기업이 역동적인 미래를 그림 그릴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3-09-19 05:05:25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성장판 닫힌 중국경제, '잃어버린 30년' 오는가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대도망’이 일고 있다. 중국경제가 나쁘다 보니, 기업인들이 자본을 들고 해외로 떠나는 현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징지르바오(經濟日報) 등과 같은 언론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해외 투자가 연간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세계 약 50위권 국가의 한해 GDP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 재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逃亡(도망)’이라는 은어로 표현하고 있고, 앞으로도 유행처럼 번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는 현상에 이어, 중국 기업들이 해외로 ‘도망’하는 배경에는 중국경제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중국은 6월 21.3%에 달하는 역대 최고치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했고, 7월에는 통계를 누락 발표했다. 역대 최고치를 크게 경신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경제의 현실을 명확히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 위협의 현실화 세계가 고물가에 허덕일 때, 중국은 홀로 저물가의 늪에 빠져있다. 2022~2023년 세계는 초인플레이션 시대를 맞이했는데, 중국은 디플레이션 공포에 처해 있다. 미국은 9.1%(2022년 6월), 영국은 11.1%(2022년 10월), 유로존은 10.6%(2022년 10월)를 기록하는 41년 만의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는데, 중국은 최고 2.8%(2022년 9월)를 기록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났다. 전혀 다른 세상인 듯하다. 특히, 고성장-고물가-고금리의 체제에 있는 신흥개도국과 저성장-저물가-저금리의 선진국은 엄연히 차이가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1~2% 성장하는 선진국이 10%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때, 중국처럼 5~6% 성장하는 신흥국이 2%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낮은 물가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료 : 중국국가통계국, 중국 물가상승률 추이] 2023년 7월 들어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3월 0.7%, 4월 0.1%, 5월 0.2%, 6월 0.0%로 제로물가 기조를 유지하다가 7월 –0.3%로 하락했다. 통상 생산자물가(PPI)는 소비자물가(CPI)를 2개월 정도 선행하는데, 중국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10월 이후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2023년 4월 –3.6%, 5월 –4.6%, 6월 –5.4%, 7월 –4.4%를 기록하며 하락세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향후 중국 소비자물가는 0%를 밑돌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중국의 대내외 경제환경이 녹록지 않은 데다가, 미·중 패권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같은 구조적 변화에 당면해 있는 상황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디플레이션 소용돌이(Deflationary Spiral)’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숨겨진 부채’가 남겨둔 덫 중국경제의 정상화 속도가 더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부채다. 특히, 지방정부의 부채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방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지와는 별개로, 경기부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서 그 문제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비지출 등으로 지방정부의 부채가 급증했고, 2022년 부담을 덜 기회를 얻기도 전에 2차 셧다운으로 부채가 가중되었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규모는 2023년 기준 약 40조 위안에 달하며, GDP 대비 32% 수준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1조 위안에서 두 배가량 증가했다. 광의의 정부부채로 손꼽히는 LGFV의 부채를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방정부의 자산을 담보로 인프라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s, 지방정부융자기구)의 부채는 2022년 60.0조 위안, 2023년 66.3조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GDP 대비 53%에 이르는 지방정부의 부채가 숨겨 있다. 최근 쿤밍토지개발투자와 쿤밍뎬츠투자와 같은 LGFV가 회사채를 만기가 지나서 갚으며 디폴트(default, 채무불이행)를 겨우 모면하는 일이 발생했다. 신용위험까지 고조되는 상황에서 단기간 안에 경기를 부양시킬 만한 뚜렷한 대응수단이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성장판이 닫힌 중국 중국경제의 성장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IMF는 2023년 중국이 5.2% 성장에 그치고, 2024년에는 4.5%로 경제성장률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크지 않을뿐더러, 2024년에는 그 효과도 사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2023년 연초에 기준선 50을 상회하는 듯했다가 4월부터 다시 내려가 50을 밑돌고 있다. 제조업은 그렇다 하더라도 서비스업은 2023년 연초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되는 모습이었으나 3월 이후 강한 내림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7월 제조업과 비제조업 PMI는 각각 49.3, 51.5에 머물러 있다. [자료 : 중국국가통계국, 중국 구매관리자지수 추이] 중국경제는 대내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대내적으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 변화가 함께 찾아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처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패권전쟁이 장기화하고, 중국에 제조기지를 두었던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 다른 주요국으로 이동하는 ‘차이나 엑소더스(China Exodus)’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성장판이 점차 닫히는 기로에 놓였다. [자료 : IMF(2023.7)World Economic Outlook update, 중국의 경제성장률과 수출증감률 추이 및 전망]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중국경제가 당면한 위험요인이 한국경제에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경제는 상당한 수준으로 꼬꾸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당분간 빠져나올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실물경기가 부진한데, 재정건전성도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위험은 상당 부분 은행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는 은행의 ‘공적 역할(national service)’에 대한 요구를 높일 것이고, 은행은 지역경제와 금융안정을 위해 대출 상환기간을 연장하거나 정책금융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을 통해 한국경제에 위험을 전이시키는 연결통로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한국의 경제주체들이 그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 “중국으로부터 공장을 다른 나라로 이전해야 하는가?” 기업인을 만날 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산업 유형과 재정 상황 등에 따라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대응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꼭 주지해야 할 것은 탈중국 현상이 트렌드인 것이지 그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동종업계의 많은 기업이 중국을 떠나면 떠날수록 남아있는 기업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에 공장을 둔 이유가 ‘생산’에만 국한된다면 더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이 있는 국가로 이전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고, ‘생산’뿐만 아니라 ‘시장’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면 굳이 단기간 안에 서둘러 중국을 떠날 필요가 없겠다. 중국의 성장판이 닫히더라도 여전히 4~5%의 성장 속도를 가진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실적인 리쇼어링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리쇼어링이 가능한 산업을 선별해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완화된 규제환경과 기술교류 등을 목적으로 해외에 공장을 이전한 기업들이 주요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 자유무역지역, 규제프리존과 같은 정책수단이 있고, 규제샌드박스나 규제자유특구 등의 장치를 활용해야 한다. 해외 현지법인이나, 해외 주요 기업들이 오고자 하는, 한국만이 할 수 있는 특화된 유인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5G 선도국가고, 고도화된 스마트 시티 인프라를 활용해 R&D, 시범 운용, 서비스 개발을 시도하는 산업군을 집적시킬 능력이 있다. 주요 산업 클러스터를 요충지로 하여, IT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에 특화된 리쇼어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3-08-16 09:13:15
- [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내 곁의 '로봇'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SF영화가 바뀌어야 할 때다. SF영화의 단골 소재가 로봇인데 로봇은 이미 공상이 아니다. 로봇은 미래가 아니고 이미 현실이고 일상으로 들어왔다. 공항이나 호텔, 백화점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가게에 이르기까지 로봇을 만나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닌 삶이 되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로봇산업의 가능성을 알고 진작부터 분주하게 준비해왔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브랜드 엑스블(X-ble)은 의료용 착용로봇 멕스(MEX)를 출시했고, 삼성전자는 봇핏(Bot Fit)이라는 이름의 보행보조 로봇을 출시할 계획이다. LG그룹도 서비스 로봇 ‘LG 클로이’를 출시하고,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는 인간에게 주는 불편함을 로봇을 통해 최소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로봇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서비스 로봇 시장 전망 로봇은 크게 제조 로봇(industrial robot)과 서비스 로봇(service robot)으로 분류된다. 서비스 로봇은 생산공정 등에 주로 사용되는 제조 로봇과 구분지어 물류·유통, 의료, 국방, 농업, 가정용 등과 같이 제조업 이외 분야로 응용 분야가 확장된 로봇을 말한다.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은 2023년 현재 약 401억8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향후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은 2024년 487억5000만 달러, 2025년 591억5000만 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서비스 로봇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물류로봇으로 45%에 달하며 서빙로봇이 18%로 그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유형이다. 그 밖에도 의료로봇(13%), 청소로봇(12%), 농업로봇(7%), 점검로봇(5%) 등으로 구성된다. [서비스 로봇시장 전망 및 보급 현황] 6대 서비스 로봇, 어디까지 와 있나? 첫째, 물류로봇(Transportation & Logistics)은 서비스 로봇의 가장 범용화된 영역이다. 물류창고는 이미 로봇에 점령된 지 오래다. 온라인 쇼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물류로봇을 채택하는 물류센터가 늘어나고 있다. SSG닷컴은 GTP(Goods To Person) 시스템을 도입했다. 직원이 물건을 가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직원을 찾아오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주문이 들어오면 직원이 넓은 물류센터를 헤매면서 제품을 찾아야 했다. 이제 직원이 모니터를 통해 배송 물품을 확인하면 물건이 담긴 바구니가 자동으로 직원 앞으로 온다. 둘째, 서빙로봇(Hospitality)은 사람이 가장 친숙하게 만나는 로봇 중 하나다. 환대, 접객, 주문, 요리 등 일을 하므로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AI 로봇커피로 유명한 비트코포레이션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최근 무인 매장 운영 시스템 ‘아이매드’를 상용화하고, 솔루션을 구독서비스로 제시하는 RaaS(서비스형 로봇) 비즈니스로 확대하고 있다. KT Enterprise는 다양한 외식업 매장에서 안정적인 서빙이 가능한 AI 서빙로봇을 제공하고 있다. 서빙로봇은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급속도로 도입되고 있다. ㈜대보유통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라면이나 가락국수 등을 조리하는 로봇과 무인결제시스템 테이블로를 도입할 계획이다. 셋째, 의료로봇(Medical/Healthcare)은 인류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특히 수술로봇은 의료로봇 시장에서 약 60%를 차지하는데 다빈치(da vinci) 수술로봇은 독점적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교함이 특징인데 사람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최소 절개 수술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주목해 볼 만하다. 대형 절개가 아니라 2.5㎝ 미만만 절개해 통증이 적고 흉터가 거의 없는 정밀 수술이 가능하다. 한편 로봇재활치료도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데 질병이나 사고에 의해 발생한 문제를 회복시켜 주도록 재활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넷째, 청소로봇(Professional Cleaning)은 사람이 가장 꺼리는 일을 대신 해준다. 청소로봇은 주거, 상업, 산업 분야 청소를 목적으로 설계된 로봇이다. 물론 집마다 로봇청소기가 침대 밑이나 소파 밑까지 돌아다니며 깨끗하게 청소해 주며 사람의 일을 대신해 주고 있기도 하지만 가정용 외에도 청소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역에서 전문 청소로봇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호텔, 사무용 빌딩, 도로 등에 걸쳐 청소로봇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바닥뿐만 아니라 건물 창이나 외벽, 저수조·탱크 청소에 이르기까지 청소로봇이 도입되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이 많이 보급됨에 따라 태양광 패널 경사면이나 수직면 전방위로 움직이며 조류 배설물 등을 청소하는 클라이밍 로봇(climbing)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다섯째, 농업로봇(Agriculture)은 농업을 진화시킨다. 파밍(farming)과 로봇(robot)의 합성어로 팜봇(farmbot)이라고도 한다. 부족한 농촌 일손을 대신하고 생산성을 높인다. 밭 갈고, 씨 뿌리고, 모를 심는 작업을 수행한다. 밭을 가는 자율주행 트랙터, 과수원의 잡초를 제거해 주는 제초로봇, 병충해 방제 로봇 등에 걸쳐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존 디어(John Deere)는 CES 2023에서 자율주행 트랙터로 최우수혁신상을 받았다. 현대로템과 현대자동차도 농업용 웨어러블 로봇 등 농업 분야에 적용하는 로봇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농업로봇은 식량 부족이나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 등 농업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여섯째, 점검로봇(Maintenance and inspection)은 사람의 안전을 책임진다. 영하 40도의 극한 지역에 있는 전력시설이나 산간에 있는 고압전선을 점검하는 로봇이 도입되고 있다. 케이블 로봇이 케이블의 코팅 두께를 측정하거나 내부 부식을 진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터널 등과 같은 지하 공간의 균열을 점검하거나 시설물을 유지·관리하는 데도 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3차원 센서와 GPS를 기반으로 균열이나 콘크리트의 열화, 녹 등을 검사한다. 그 밖에도 댐 수중검사, 배관검사, 도로 유지·관리, 건물 외벽 진단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점검로봇이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로봇산업,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첫째, 로봇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로봇은 인간을 짓밟기보다는 돕는 존재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6대 서비스 로봇의 활용·보급 동향을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사람이 하기 싫어하거나 어려운 일을 대신하거나 사람의 능력을 넘어 물류, 의료, 농업, 청소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각종 매체에서도 ‘사라질 직업’에 대해서만 집중 조명하지만 로봇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게 만드는지, 사람은 어떤 역량을 갖추어 나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소홀하지 않은지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고령화와 생산연령인구 감소라는 엄청난 숙제가 주어진 한국 사회는 ‘로봇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가 차원에서 로봇산업에 관한 비전을 선포하고 기술 개발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진행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선정해 로봇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대학의 원천기술 연구와 정부 출연연구소의 차세대 기술 개발 및 기업의 기술 상용화 등이 어우러질 수 있는 로봇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로봇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IT 인프라와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추고 있다. 다만 각각 독립된 조직 차원에서 구축한 역량을 로봇 생태계 전반에 공용화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다면 다양한 서비스 영역에서 로봇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다. 셋째, 로봇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청사진도 마련해 기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로봇에 의해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되는 영역도 있지만 부상하는 로봇산업에서 함께 성장할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해외 유망 기업들을 M&A하고, 해외 전문인력과 기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차세대 로봇 시스템을 개발할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융·복합적 사고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 활용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를 길러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2023-07-12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