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 교수
lion@khu.ac.kr
-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 전 경희대학교 (주)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 굳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 [황승연의 타임캡슐] 시험대에 오른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정신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선거가 불과 열흘 남짓 남았다. 이번 선거는 왜 특별한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75년이 지난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건국과 헌법정신을 절실하게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이 이전에 있었던가? 선거를 앞두고 건국정신이 계속 이어질지 혹은 북한이 이상형으로 추구하는 그런 국가로 나아가야 하는지 기로에 서 있다. 그만큼 지금 절박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무엇이었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인민민주주의 통제경제 사이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자유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사회는 북한이 건국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내용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1848년에 발표된 공산당 선언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전략으로 발표된 것인데 그 주된 내용에는 다음 사항들이 포함된다. - 모든 자본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국유화 - 그 방법으로 높은 상속세와 높은 누진소득세 부과 - 토지, 은행, 교통 및 운송수단, 공장 등을 국유화 - 망명자와 반역자의 재산 몰수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징벌적 상속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건국 당시에도 세계 최고 상속세율을 가진 국가였다. 최고세율 90%. 당시에 미군정에서 조사한 대국민 의식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 중 약 78%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국가체제를 선호했다. 자본주의는 14%에 불과했다. 당시에 상속세는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실천 방법이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사회를 사회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구해냈다. 광복 당시 대부분 국민들은 농업에 종사했고 따라서 경제체제에 대해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토지 소유 방식이었다.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제헌헌법의 경제 관련 법 조항들을 깔고 그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농지개혁을 단행한다. 이는 북한의 김일성이 시행한 농지개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농지개혁법을 설명하면서 북한의 무상몰수·무상분배 토지 국유화를 예로 들었다. “공산제도는 토지를 인민에게 분배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빼앗아서 정부가 대지주가 되고 농민들은 다 소작인이 되어 정부에 바치기만 할 뿐이니, 지주 땅을 경작하는 것보다 더 자유롭지 못하고 속박을 받는 것이니, 전에는 부호의 노예였던 것이 지금은 정부의 노예가 되었으니 무슨 차별이 있으며 농민 생활에 아무 도움도 없을 것입니다.” 남한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몇 개월 전에 농지개혁법안이 통과되었다. 남한의 봉건식민을 타도한다는 6·25전쟁은 명분을 잃었고, 남한 농민들이 북한에 동조하지 않고 자유 대한민국을 택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나아가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갖게 된 농민들의 자발적 중노동과 창의력이 결합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당시에 우리나라 헌법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시하는 통제경제 조항들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1954년 소위 ‘사사오입개헌’이라 불리는 개헌에서부터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전면 개편하는 ‘경제해방’이 시작됐다. 그 내용은 경제체제의 중점을 국유·국영의 원칙에서 사유·사영의 원칙으로 바꾸고, 천연자원과 산업의 국유·공유 조항을 삭제하며, 사영기업의 국공유화를 금지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비로소 건국정신을 바로 세워 나갈 수가 있었고 이것이 현재 우리 헌법의 근간이다. 헌법정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자유, 인권, 법치, 시장 -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통일전략 - 기회 균등과 능력 발휘 촉진 -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 - 자손의 안전, 자유, 행복 이 헌법정신이 문재인 정부 이후 크게 훼손되었고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건국정신과 헌법정신을 거부하는 정당들 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은 100억원 이상 재산에 대해서는 슈퍼리치 부유세를 도입하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90%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바로 공산당 선언의 실천강령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당이 출현했다. 진보당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판결로 사라진 통합진보당의 후신 격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범야권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한다고 한다. 이를 발판으로 또다시 국회 입성을 추진하려 한다. 정당해산 후 꼭 10년 만에 다시 국회에 입성할 것이 예상된다. 이들과 자매 당임을 선언한 민주당이 한 패가 되어 원내 진입을 도우면 민주당 또한 현재보다 훨씬 좌클릭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원내에 진입하게 되면 예전처럼 전시작전통제권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보안담당 경찰 명단을 요구하고, 정부가 관리하는 철도·항공·물류 등에 대한 상세자료 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어디로 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국회는 친북단체와 반북단체가 맞붙어 싸우는 곳이 된다. 진보당뿐 아니라 다른 자매 정당들도 따라 들어가면 민주당 성격까지 바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총선은 또 다른 6·25전쟁이다. 좌와 우의 이념전쟁이다. 사생결단의 전쟁이다. 아름다운 경쟁? 그런 건 없다. 한쪽은 전쟁을 하자는데 한쪽은 사이좋게 지내자고 한다.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중도 타령이다. 예전에 민주당에 소속되었거나 소위 좌파 정당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대거 입당하여 하루아침에 우파 정당의 후보로 만들었다. 우파 정당에 들어와서는 우파 가치를 강조하는 후보들을 공격한다. 이들이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보다 국민의힘을 공격하는 것이 더 강조되어 보도된다. 이들이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이 있었던가? 당은 좌파들에게는 관대하고 우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였던 후보들은 비난한다. 그들이 지역구에서 경선을 거쳐 선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를 핑계로 사상 검열을 하는 당내 보위부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전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은 아름다운 패배를 논하는 그런 한가한 때가 아니다. 상향식 평등을 추구했던 영국과 스웨덴의 길로 가느냐, 하향식 평등을 추구했던 그리스나 아르헨티나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중도는 없다. 야당 대표가 말한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것을 믿으면 야당을 선택하면 된다. 아니라면 여당을 선택하면 된다. 이런 이념 싸움에서 상대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드러내야 싸워볼 수 있다. 스스로 전선을 무너뜨리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전선의 혼란이 지배한다. 베트남이 그래서 망했다. 2차 대전 후 중국이 그래서 공산화되었다. 전선이 모호하면 우리 편끼리 싸우게 된다. 지금이 그런 상태가 아닌가? 헷갈리지 말고 헷갈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중도 타령하며 모호하게 하다 패한 선거가 2020년 선거였다. 내가 선택할 당과 후보가 어느 입장에 서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당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가 선택하는 당과 후보가 어느 입장에 서 있나 한·미 동맹 : 미군 철수 자유 지향 : 평등 지향 개인 중심 : 집단 중심 시장 주도 : 국가 주도 기업 우선 : 노동 우선 상속세 폐지 : 상속세 강화 책임과 의무 : 복지와 권리 미국과 함께하자 : 중국과 함께하자 일본을 닮은 사회 : 중국을 닮은 사회 희생이 따르는 이기는 전쟁 : 희생이 없는 양보하는 평화 미국과 일본과 한패가 되어야 : 중국과 북한과 한패가 되어야 좌측 항목이 옳다 싶으면 여당을, 우측 항목이 옳다 싶으면 야당을 찍으면 된다. 산토끼들을 쫓아 산으로 갔더니 산토끼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산으로 간 사이에 집토끼들이 우리를 벗어나서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모으려면 우리를 다시 보강하고 이 우리 안에서 안전하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전쟁에서는 네 편, 내 편만 있지 중도 편은 없다. 특히 우리나라 2024년 총선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지난 3~4년간 직접 실시한 조사에서 60대 이상과 2030 남성은 우파 정당 지지자들이다. 4050과 2030 여성은 좌파 정당 지지자들이다. 인구는 좌파 정당 지지자들이 더 많다. 그러나 60대 이상에서 투표율이 높다. 그래서 박빙이다. 투표장에 누가 더 많이 나가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투표를 통해서 좌파 이념을 가진 정당이 선택된들 어쩌겠는가?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정당도 혹은 그 정당 후보도 지향점을 분명이 해야 한다. 내가 선택할 정당이나 후보의 이념적 모호함은 투표장에 나가지 않게 만든다. 당과 후보들은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들은 현명하게 판단하여 투표하자. 내가 어느 당 후보의 입장에서 서야 하는지. 우리가 바꿀 수 없다고 방치하면 그것들은 종종 우리를 바꾸곤 한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2024-03-28 06:40:02
- [황승연의 타임캡슐] 선거 여론조사의 허와 실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지난 2월 하순 더불어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이 중도 사퇴했다. 여론조사 기관이 경쟁입찰에서 탈락했다가 뒤늦게 추가되었다. 그 과정에서 선관위 외부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선관위원장은 사퇴를 발표하면서 자신이 “허위보고를 받고 속았다”고 폭로했다. 공천 관련 여론조사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어떤 여론조사기관이 조사를 수행하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후보들은 공정하다고 인정받는 조사기관의 결과라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원장도 모르는 어떤 기관이 조사를 시행하고 그것이 결과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선관위원장은 자신을 ‘감투만 씌워놓은 들러리’였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상황을 모르는 척 받아들이거나 혹은 사퇴하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결정해야 한다. 그는 사퇴를 택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둔다고 하면서도 당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그렇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몇 차례 정당의 공천심사위원을 한 바 있다. 그중 한 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모 정당에서 공천심사위원으로 여론조사 전문가를 찾는다면서 필자를 찾았다. 여러 차례 고사했음에도 정치 9단들은 거절할 수 없는 이유와 상황을 만들어 부탁했고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맡은 것이 공천심사위원 겸 여론조사소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위원장은 여론조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당 내부 인사였다. 필자가 공심위원 겸 여론조사소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하는 일은 합리적인 여론조사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심위에서 우선 1차 심사를 하고 2배수 혹은 3배수를 추려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여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 확실해서 공천이 즉 당선인 경우도 많다. 따라서 후보들이 여기에 목숨을 거는 건 당연하다. 우선 사회조사 전문기관을 매출액 순서대로 나열하고 10곳에 통보하여 조사에 참여하겠는가를 묻고 선정하였다. 며칠 뒤에 당의 사무직원 한 사람이 찾아와서 조사기관 하나를 추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기관의 대표는 당에 기여를 많이 했던 당원 출신이고 조사에 경험이 많다고 했다. 당에 대한 기여도가 조사기관 선정에 반영되려면 사전에 논의됐어야 했고 이미 결정이 끝난 상태라서 추가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된 사안이라 사적인 이해에 의해 번복하면 안 되는 게 상식이라 생각했다. 여론조사소위원회에서 조사의 규정을 정하면서 매우 상식적인 사항들을 반영하였다. 조사 결과의 검증을 위하여 결과 중 10%를 무작위로 택하여 사후조사한다는 것을 규정에 넣었다. 마케팅조사에서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10%를 샘플로 뽑아 사후조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당시는 안심번호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후조사가 더 쉬웠다. 사후조사를 통하여 조사에 실제로 응했는지 확인할 수가 있고 또 어떻게 답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장치로 인해 더욱 성실한 조사가 보장된다. 공심위 회의에선 조사를 시행했던 지역에 대해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여론조사는 늘 복수의 기관에 맡긴 후 그 결과를 합산하여 발표되었다. 발표는 예를 들면 이러했다. “XX 지역의 후보로 A예비후보 32.8%, B예비후보 28.4%. 그래서 A예비후보가 최종 후보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방망이를 세 번 두드린다. 후보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린다. 이러한 조사가 한창 진행되었을 때, 필자는 규정에 있었던 10% 사후조사를 상기시켰다. 그 제안 직후 공심위의 모든 행위는 중단되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고위원회가 열린다고 했다. 단지 규정에 존재하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공관위의 업무 진행이 중단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결국 돌아온 답은 “여론조사심의위의 부위원장이 이를 요청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규정에 있는 것을 지키자고 했을 뿐인데 권한이 없다고 하면 더 이상 공심위원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한 뒤, 공심위원을 사퇴했다. 물론 기자들 앞에서 한 얘기는 아니었다. 공심위원장에게 말하고 조용히 나왔다. 여론조사가 공정하게 설계되고 실제로 시행되었는지 혹은 조사한 후 조작된 결과가 제시되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 당시 여론조사에 부정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이 있었는지 검증시스템이 가동되어야 바른 조사가 될 가능성이 크고 이 가능성을 믿고 예비후보들은 공관위 발표에 승복하게 될 것이다. 조사기관 후보 10개 중 조사를 시행하는 두 곳이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실제로 조사가 있었는지, 어떤 설문으로 조사가 되었는지, 샘플링은 어떻게 했는지, 결과가 정확하게 반영되었는지, 이 모든 것을 사후조사로 검증해보는 규정은 무시되었다. 그래서 규정을 만들었던 입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 선관위에 이런 규정이나 있었을까? 어떤 알지 못하는 조사기관이 조사를 시행하고 또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정해진 조사기관이 아닌 곳이 추가로 들어오고 위원장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물러나고…. 사람들은 필자를 사회조사 전문가라 한다.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된 이후 주로 사회조사방법론과 사회통계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사회학회 임원을 하던 시절에 ‘사회조사분석사’라는 자격증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전국 사회학과에 ‘사회조사분석’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게 하고 교과목을 이수하면 시험을 통해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을 따게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관리하는 국가기술자격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SPSS라는 통계팩키지를 사용하여 직접 실기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했다. 당시 이를 준비하는 교수들과 함께 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시험이 시작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 2022년에 사회조사분석사 2급 시험에 약 1만4000명이 응시했다 한다. 필자가 사회조사에 관한 국가자격시험을 기획하고 만들었고 지난 30년간 수많은 조사를 수행해 왔다. 교수직에 있으면서 또 교수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꾸준히 조사를 해왔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조사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국가기관의 검열은 조사 전문가로서의 상상력을 옥죄고 있고 이에 대해 수모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거 관련 조사를 하고 결과를 공표하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필자가 만든 선거관련 조사의 설문도 당연히 심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필자가 만든 설문이 심사과정에서 부당하다고 수정 요구를 받았었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중앙선관위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저렇게 횡포를 부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선관위가 승인 거부한 문항은 직접적으로 선거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 차례 설문지의 승인이 거부되었다. 필자의 설문을 심사했던 선관위 직원은 과연 조사 설계를 해본 경험이 있을까? 사회조사방법론 책은 읽어봤을까?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은 있을까? 선관위 직원이 설문지를 검열하고 문항 수정을 요구할 자격을 누가 부여했나? 이런 의문들이 들었다. 질문이 선거관련 문항이 아님에도 그 문항이 간접적으로 선거 관련 문항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순서상 선거 관련 문항들에 대한 답변을 끝내고 응답하는 것임에도 그의 눈에는 필자가 편파적으로 보였나 보다. 아니라고 하겠지만 특정 정당을 도우려는 의도로 보였다. 결국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선관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승인 거부된 설문의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야당 대표가 정전 70주년을 맞아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래서 '더러운 평화'와 '이기는 전쟁'에 대해 국민에게 묻고 싶었다. 선관위는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더러운 평화‘라는 단어가 아마 이를 언급한 야당 대표를 부정적으로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문항은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말에도 다른 문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희생이 따르는 이기는 전쟁‘과 ’희생이 없는 더러운 평화‘라고 수정했으나 이 또한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전쟁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귀하는 어느 것을 택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1. 전쟁을 해야 한다. 2. 평화를 택해야 한다. 3. 잘 모르겠다”로 조사가 실시되었다. 하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이뿐 아니다. 역시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포기하더라도 남북한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질문도 허용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포기하더라도”라는 부분을 삭제하라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정작 제시한 질문은 ”남북한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로 수정되어 물었다. 이 역시 하나 마나 한 질문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경고나 불이익을 받아 영업에 지장이 있을까 하는 우려에 선관위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사 문항에 대해 심사하라는 권한을 누가 선관위 직원에게 주었을까? 선관위 직원의 심사 능력에 대한 검증은 누가 하나? 적어도 사회조사방법론을 배우기나 했을까? 지금 중앙선관위는 거대한 공룡이 되어 조사를 통제하려 한다. 모름지기 국가기관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존재해야 한다. 지금 중앙선관위는 부패로 오염되어 있다. 여러 건의 직원 부정채용에 대해 수사를 받고 있다. 권력을 쥐면 교만을 부르고 교만은 부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성경 말씀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다. 고쳐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2024-03-12 06:00:00
- [황승연의 타임캡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상속세 손질부터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서 임기 중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2주 뒤에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과도한 세금제도를 지목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강력한 세제 개혁의지를 밝혔다. 법률 개정으로 안 되면 대통령령으로 밀어붙이고 정치적 불이익이 있어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이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상속세 문제를 거론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를 낮추거나 없애고 회사법과 상법을 손봐서 거버넌스가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이후 주가는 뛰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테마가 증시에 핫이슈로 떠올랐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대기업 집단의 주가들이 일제히 올랐다. 증권업계나 개미투자자들 모두 낮은 PBR 주식 찾기에 분주해졌다. 대표적인 저PBR주식인 금융주와 자동차주가 급등했다.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후 2주 만에 제주은행이 75%, 흥국화재가 50%, 대형주인 하나금융이 25%, KB금융이 23%가 올랐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주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저PBR주식으로 꼽히는 평균 PBR이 0.3인 유통, 0.4인 금융과 보험, 0.5인 철강 그리고 0.6인 건설, 자동차, 정유, 증권 등의 주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상속세 이유로 고의로 낮은 주가를 유지한다고 여겨져서 필자가 자주 예로 드는 대표적 기업인 태광산업의 주가는 일주일 만에 5만8000원에서 9만4000원까지 60% 이상 올랐다. 정부는 대통령의 이런 의지에 맞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방안으로 여러 가지 기업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는 경영권 방어제도들로서 포이즌 필(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경우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 차등의결권(대주주의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황금주(보유한 주식의 수량과 관계없이 주총에서 의결된 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 주식제도) 등의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드디어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벗고 국제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여당은 또 지역 기회발전 특구로 이전하는 중소기업은 상속세를 면제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역 격차 해소와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공약’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상속세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여러 복합적인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를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주야장천 하고 다녔다. ‘상속세의 저주’라는 칼럼을 시리즈로 쓰기도 하고 <국가의 약탈 상속세>라는 책을 내기도했다.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글을 쓰고 강연도 많이 다녔다. 우리나라가 겉으로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내걸고 내막은 상속세와 같은 좌파 제도로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에 대해 비판도 많이 했다. 상속세를 없애거나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과연 그게 되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2~3%이고 상속세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97~98%인데 국민적인 동의가 과연 가능한가? 표가 생명인 국회의원들이 부자감세니 부의 대물림으로 이해되는 상속세 인하나 폐지에 동의하겠냐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지금과 같이 세수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이게 먹히겠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주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해주었다. 좌파들과는 대화가 아예 불가능했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오히려 상속세를 더 올려 기업의 오너십을 시민단체나 정부가 행사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속세를 폐지한 스웨덴이 오히려 세수가 늘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증거자료를 동원해서 설명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외국의 선례에 대해서는 무시했다. 그럴 때마다 늘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우리나라 경제 모순의 대부분은 상속세 폐지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 했다. 연금고갈문제가 해결되고, 국가부채문제가 해결되고, 투자와 고용문제가 해결되고 세수부족도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말도 되지 않는, 통과되지도 않을, 세상물정 모르는, 현실 감각이 없는 돈키호테 같은 교수로 취급했다. 우리나라에서 주식투자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 정부 때의 일이었다. 부자들을 때려잡겠다는 부동산정책이 당연히 실패로 돌아가서 주택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어느 지역은 세 배로 뛴 곳도 있었다. 집을 마련하는 것이 도저히 그의 생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오포세대(삼포에 더해 내집과 인간관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같은 것들이었다. 부동산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수 없는 절망한 세대가 택할 수 있는 것이 코인이라 불리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와 주식투자였다. 주식투자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2019년에 600만명이던 주식투자자가 2020년에는 914만명, 2021년에는 1374만명, 2022년에는 1441만명을 기록했다. 주식거래규모도 2019년에 2288조원이었던 것이 2년 만에 세 배 이상 커졌다. 이러한 숫자들 이외에 필자는 또 다른 숫자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다른 경쟁국가들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었다. 회사의 시장가치를 장부가치와 비교했을 때 같다면 PBR이 1이다. 이 PBR의 수치가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하고 우리보다 낮은 국가는 시장논리가 통용되는 국가라고 볼 수 없는 러시아 하나였다. 우리나라 기업 전체의 PBR은 1이 되지 않거나 주가가 높을 때 1 정도 되었다. 대만의 경우 우리보다 인구가 절반이 안 되지만 주가 총액은 비슷했고 전체 기업들의 PBR평균은 우리나라의 두 배다. 중국의 침공 위협을 늘 받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주가를 비웃었다. 우리나라의 PBR이 대만 정도만 되어도 주가총액이 3000조원이 늘어나고 주가지수는 6000 정도가 된다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대만 경제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자연스럽게 상속세로 귀결된다. 사주가 사망하면 그 주식 중에서 50%에서 60%를 국가에 바쳐야 한다는 것은 전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든 그런 제도이다. 이런 제도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것에 당연히 주목하게 된다. 상속세율이 55%인 일본, 45%인 프랑스, 40%인 미국, 역시 40%인 영국, 30%인 독일. 그런데 그 어느 나라도 이러한 상속세를 그대로 적용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일 경우 일본은 80% 납세 유예 후 면제, 프랑스는 75% 공제, 미국은 증여공제한도가 340억원이나 된다. 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 공익법인을 만들어 상속세를 피해간다. 그리고 온갖 경영권 보호장치들이 있다. 영국은 50% 공제인데 내년 선거를 앞두고 상속세 전면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독일은 85% 공제에 7년 후 100% 공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도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유예해준다면 미국이나 영국 혹은 독일과 같은 PBR에 달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이생망’ 때문에 주식시장에 뛰어든 수많은 젊은이들을 포함한 1441만명 주식투자자에게 호소하면 상속세 제도개선에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의 재산을 2~3배 불려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바로 상속세율 60%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과 같은 상속세 제도라면 수십년 후 우리나라 국내기업들은 결국 거의가 다 국민연금에 넘어가거나 국유화되거나 외국기업에 넘어가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속세를 한 푼이라도 덜 내려고 대부분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주가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모순을 걷어내자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였다. 주식시장의 왜곡을 막아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 “끈질기게 하니 그게 되네요!“ 최근에 들었던 말이다. 필자가 지난 10여 년 동안 노력했던 일들에 대한 위로의 말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저항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 주제이기 때문이다. 담당부서인 기재부의 공무원들도 상속세 폐지나 기업주들의 경영권을 강화시켜주는 제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규제가 많을수록 그들의 권한이 강화되기 때문인가? 필자가 그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기재부 공무원들뿐 아니라 여러 경제단체들의 직원들도 그들이 근무하는 조직의 성격상 기업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돕는다는 것이지 정작 상속세는 그들 개인의 삶과는 특별히 상관없는 일들이라서 그들도 공무원들과 비슷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정부는 기업의 가치(주가)를 높이는 기업 등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발표하였다. 주주환원 미흡이 주가가 낮은 원인이라며 배당을 늘리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며 배당을 독려한다. 그런데 회사의 자산으로 배당을 많이 하면 주가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배당락’이라는 용어가 생겼지 않나. 배당을 하지 않아 자산이 쌓이면 그게 주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배당을 하지 않아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가는 실적과 미래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합리적이지, 인위적으로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상속세라는 특별한 변수를 갖고 있어서 주가가 왜곡되어 반영되고 주가 저평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속세 때문에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대주주의 노력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나타난다하니 상속세를 부과할 때 상속재산을 당시의 주가총액으로 하지 않고 주식지분만큼의 순자산가치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업 해외이전 촉진정책이라 불릴 만한 이러한 창의적 저항들이 마지막 발악이기를 바란다. 이러한 저항이 있는 반면 국민의힘은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하는 중소기업에게 상속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총선공약을 발표하였다. 이제는 ‘상속세 폐지’가 더 이상 금기의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좌우가 상속세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상속세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가 높고 폐지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성공을 빌며 이 칼럼이 상속세에 대해 쓰는 마지막 칼럼이기를 바란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2024-02-07 06:00:00
- [황승연의 타임캡슐] 아시나요 그때 그 시절 …국제결혼 떠났던 한국 여성들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한동훈 전 법무장관은 재임 중에 우리나라의 인구절벽 문제 해결 방안으로 외국인 인력 유입책을 발표하고 이민청 신설을 발표했다. ‘단일민족 대한민국’도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고 있다. 스롱 피아비(Sruong Pheavy)라는 캄보디아 출신 프로당구 선수가 있다. 28세나 차이 나는 한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고국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결혼 후 한국으로 건너와 남편에게 당구를 배웠다. 당구 재능을 발견한 남편은 코치를 붙여 제대로 배우게 한 후 그녀를 프로당구 선수로 데뷔시켰다. 그 후 세계 챔피언에까지 오른다. 캄보디아에서 유명해져서 현지 어린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롤모델이 되었다. 내가 독일에 유학하던 시절은 1980년대 중후반 전후 8년간이다. 그 당시 나는 스롱 피아비와 유사하게 한국 여성이 독일인 남성과 결혼한 사례를 많이 보았다. 외국인과 결혼한 우리나라 여인들. 지금은 대한민국 길거리에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알선한다는 현수막을 종종 본다. 나의 유학 시절, 독일에서는 태국 여성들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들도 국제결혼의 대상이었다. 독일에서 유학 시절을 보내며 만난 사람들을 몇 부류로 나누면 유학생,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 독일 남성들과 결혼하기 위해 독일로 온 한국 여성들 그리고 독일 주둔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이었다. 앞의 두 부류는 알려져 있으나 뒤의 두 부류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타임캡슐에 담겨야 할 얘기들이라 생각되어 기억을 더듬었다. 사진결혼으로 독일에 건너온 한국 여성들 1980년대 초에는 대한민국이 제3세계 후진국으로 분류될 때였다. 우리나라가 그리 후진 나라인 줄 몰랐는데 후진국임을 실감하는 일들을 차츰 겪게 되면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지 한인들의 인적 구성을 보며 냉정한 현실을 체감하게 됐다. 유학한 도시가 작은 도시는 아니었으나 알려진 도시도 아니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 유학생들이 10명 내외였고 나머지는 광부나 간호사로 왔다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 주류였다. 주목을 끈 사람들은 독일인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독일어를 잘 못했고 당연히 직장도 없었다. 어떻게 왔는지 궁금했으나 대놓고 물어볼 수 없었다.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사연을 알기까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 여성들은 한국에서 모집 광고나 지인의 소개로 돈을 내고 사진 속 독일 남성을 골라서 결혼을 조건으로 독일에 온 사람들이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허용되던 때가 아니어서 여권을 받는 것이 힘들고 비자를 받는 것은 더 힘들었다. 독일에서도 한국 여성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남성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다고 한다. 한국 여성들은 나이가 그리 어리지 않았다. 모두 한국에서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끼리 다투면서 나온 얘기라는데, 술집에서 접대부를 하다 온 여성도 있고 음료 외판원을 하던 여성도 있었다. 당시는 항공료가 싸지 않아서 한번 오면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사정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독일 남성들은 대체로 한 번 이상 이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정상인 사람들이고 신사들로 보였다. 학력이 낮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드센 독일 여성에 질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남녀가 사진으로 만나 짝을 정하고 현지로 와서 혼인 신고를 하고 살았다. 어떤 커플은 아이도 낳고 살았다. 당시 그 지역에 그런 식으로 한국에서 온 여성이 수십 명이었다. 문화적 충격이나 갈등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정상이 아니다. 한국인 부인이 돈벌이를 할 수 없으니 남편에게 생활비와 용돈을 타서 쓰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부인이 정해진 용돈을 받은 후 식당에 가더라도 부부가 계산을 각자 한다는 얘기를 하며 그 충격을 얘기했다. 다른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국 부인이 한국에서 갖고 온 물건을 본 독일 남편이 자기에게 선물하기를 요청했다. 부부간에 소유를 따질 일인가 해서 줬더니 남편이 자기 서랍에 넣어두고 자물쇠로 채워서 다시는 구경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했다. 신세한탄의 긴 한숨 속에 차마 말 못하고 앓고 있던 속사정이 속옷 삐져나오듯 비쳤다. 독일에서 만난 미군들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 또 다른 부류의 여성들은 한인교회에서 만난 미군들과 결혼한 여성이다. 한 동료 유학생 부부가 하루는 인근 도시에 한인교회가 생겼다며 한번 가자고 했다.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는 유럽 최대 규모의 람슈타인 미군 공군기지(Ramstein Air Base)가 있었다. 이 공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국 군인 혹은 군무원들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가 있었다. 미국 LA에 있는 ‘동양선교교회’라는 대형 교회에서 목사와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설교는 한국어와 영어로 하였다. 교인들은 주로 한국 여성들이었고 드문드문 남편들이 함께 예배에 참석했다. 그 여성들의 남편 중 간혹 백인들도 있고 장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흑인이거나 히스패닉이었다. 계급도 장교는 드물었다. 소령이 얼마나 높은 계급인지 그때 알았다. 소령 부인은 입는 옷이 달랐고 표정이나 걷는 태도도 달랐다. 한번은 남편이 대령인 어떤 여성이 교회에 왔는데 그녀 주변으로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마치 영부인처럼 행세하는 대령 부인에게 그녀들이 시중들듯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 교회에 다니던 여성들은 지극히 착해 보였다. 간혹 주워들은 얘기에서 짐작해보면 집안 형편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자신이라도 돈을 벌어야 부모님 봉양하고 동생 공부도 시킬 수 있어서 미군들이 있는 곳으로 와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미군과 결혼하게 된 경우였다. 그리고 한국에 주둔하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가 순환근무 원칙에 따라 다시 독일 근무 명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람슈타인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확인할 수 없었으나 당시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숫자가 3000명에 이른다는 얘기를 목사한테 들었다. 소련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였다. 독일에 있는 미군기지가 람슈타인뿐 아니고 여러 곳에 더 있었고 주둔 미군의 숫자도 5만명에 가까웠다. 그 한인교회에 나오던 한국 여성들이 100여 명은 넘어 보였다. 모두 합하면 한국 여성들이 3000여 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어찌 순탄한 결혼생활만 있었겠나. 남편과 헤어진 여인들은 미국도 독일도 아닌 독일의 미군기지 주변 그 낯선 곳에서 식당이나 술집에서 단지 혼자 잠잘 곳과 하루의 양식을 위해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항공료를 모으면 어디로 갔을까. 미국일까, 한국일까. 미군과 결혼하여 독일에 온 한국 여성들. 그들의 과거가 어떻든 이국땅에서 향수를 달래고 외로움과 싸우며 문화적 갈등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자 교회에 나와 한국어로 예배를 보고 한국 음식을 나누는 모습에 경건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유학생들이 깊은 얘기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문화적인 적응 과정에서 심리적 충돌이 빚어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여러 부류 인간의 다양한 삶을 관찰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독일에 처음 도착했던 때가 어느덧 40년 전이다. 헬조선 대한민국에 오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 독일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독일로 온 한국의 여성들 그리고 미군과 결혼해 독일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 그곳에 온 한국 여성들. 40년 전 우리의 모습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당시에 독일 TV에 나오는 한국의 모습은 늘 수천~수만 명이 모여 시위하고 최루탄을 쏘고 분신하는 장면이었다. 전형적인 미개한 후진국의 모습이었다. 88올림픽 전후 처음으로 한국의 문화를 중립적으로 소개하는 TV방송을 보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올림픽 후 독일인들과 사진결혼을 하기 위해 오는 여성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결혼하는 한국 여성들도 크게 줄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20년 후 우리나라 농촌 총각들과 사진결혼하겠다고 여러 나라의 여성들이 줄을 서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이민자들을 환영하겠다고 한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여성부터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여성들까지 제2의 스롱 피아비가 되려고 한국으로 오는 것을 꿈꾸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이민청을 만든다고 한다. 물론 조선소에서 일할 남성들도 수천 명 단위로 받는다. 한국인들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중동 국가들에 건설노동자로, 스페인에 병아리 감별사로 나가려고 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처럼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데. 누가 그랬던가? 우리나라가 헬조선이 되어 간다고? 그래서 행복지수가 높은 부탄 같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그 부탄에서도 이 지옥 같은 한국에 오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학교 (주)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굳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2024-01-09 06:00:00
- [황승연의 타임캡슐] 왜 영화나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나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평을 써서 공개했다는 것을 신문 보도를 통해 알았다. ‘아픈 역사일수록 우리는 배우고 기억하고 교훈 삼아야 한다,’ ‘참으로 뼈아픈 역사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와 사회에 남긴 상처가 매우 크고 깊다,’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 그가 남겼다는 문장들이다. 그가 영화 판도라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생각난다. 그가 한, 이 말 때문에 탈원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통계가 조작되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예산이 낭비되고 적자가 크게 늘었는지 모두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영화 '서울의 봄' 스토리가 사실과 달리 크게 왜곡되어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는다는 비판도 있고, 어떤 학교에서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선생님이 학생들을 인솔하여 단체관람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사람을 선동하는 데 영화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조잡한 수준이라 해도 그는 역사와 영화를 적절히 섞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갔다. 영화를 보고 진짜 역사인 것으로 믿는 사람이, 혹은 믿는 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에서는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고 그리고 신념까지 갖게 하는 재미에 맛을 들이게 된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재미의 요소를 가미하여 만든 허구인 영화를 보고 ‘재미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뼈아픈 역사’라느니 ‘배우고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더 신이 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허구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만들어 퍼뜨리게 된다. 사실의 바탕 하에 허구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효과적인 도구를 통해서. 유독 북한에서 이런 영화와 쇼가 발달한 것을 보면 북한의 체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대한민국에서도 영화를 보고 ‘역사의 교훈’을 찾자는 말을 들으면 ‘민족성'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자는 말이 한국에서도 나온 지 오래다. 김정일은 ‘역사를 배우는 것은 혁명을 더욱 힘차게 전진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전임 대통령이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고 하는 말과 유사하다. 선생님의 인솔 하에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는 영화 ‘서울의 봄’은 역사가 되어간다. 역사를 직시하고 분노를 느껴야 하고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혁명을 전진시키는 것이다. 2017년에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나왔다. 1200만명 이상이 봤다 한다. 급기야 이 영화의 장면이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드디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와 실제를 구분하지 말라는 혹은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라고 안내한 셈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교과서는 혁명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교과서에 영화를 등장시킨다. 영화를 믿으라는 암묵적 가르침이다. 김정일이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그가 22세 때 벌써 선동부 영화 담당 지도원을 하면서 ‘꽃파는 처녀’를 제작 지휘했다 한다. 그의 영화 사랑이 오죽했으면 신상옥 감독과 영화배우 최은희를 납치해서 영화를 배우려고 했을까? 김일성이 인정할 만큼 대중선동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고 영화 전문가라고 하는 김정일의 수준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납치한 최은희와 한국영화 ‘저 눈밭에 사슴이(1969)’를 함께 봤다 한다. 영화에서 최은희는 본처로 나오고 윤정희가 첩으로 나왔는데, 영화를 보면서 김정일은 최은희에게 “윤정희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한다. 악역을 잘 소화해낸 배우가 시장에 가면 욕설과 돌이 날아온다는 그 수준을 김정일에게 보았다며 최은희는 탈출한 후에 털어놓는다. 몇 년 후에 김정일은 ‘남조선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배우라 칭송’했던 그 윤정희를 동유럽 유고에서 유인하여 납치하려다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수준의 사람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며 떠받들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지금도 국회에 적어도 수십 명이 된다 한다. ‘친지김동’의 가르침인 문화를 통한 선전 선동으로 혁명 완수를 높이 받들었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지도자로 모셨던 사람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이 영화를 보고 “불의의 역사에 대해 분노”를 느끼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들의 수준이 김정일의 수준과 얼마나 다를까? 백주 대낮에 사람을 납치해서 밀실에 가두어 놓고 언젠가는 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사이코 영화가 있었다. 그 수준일까? 북한 학자들이 쓴 논문집들을 본 적이 있다. 논문의 처음부터 수령 훈시를 인용한다. 모든 논문이 중간 중간에 수령님의 말씀이 들어간다. 별 해괴한 논문들이 다 있다. 1992년 김일성은 단군전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라고 지시하였다. 단군릉이라는 묘비가 세워진 무덤을 파보라는 구체적인 과제도 김일성이 내린다. 1년 후 노동신문은 평양인근의 무덤에서 5천년 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며 이는 단군이 분명하며 김일성의 ‘천리혜안’의 예지라고 했다. 단군능의 발견과 함께 민족의 뿌리는 평양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나아가 대동강 유역은 인류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고 대동강 문화는 세계 5대문명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현대인의 턱의 돌출 정도를 표시하는 얼굴 각이 현대인은 84.7도이고 우리 조상은 84.5도이므로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시작했다는 본토기원설을 주장했다. 김정일이 말한 대로 ‘역사는 혁명을 전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고 역사는 창작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도 확고한 목적을 갖고 혁명을 전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의 내용이 역사책에 등장하고 영화의 기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재구성된다. 이런 지적 수준에서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보고 감동받아 역사를 다시 쓰자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포기하고 태양광, 풍력 발전 정책을 밀어붙인다. 당연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 조작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통계 조작이 넘쳐났다. 신화와 과학을 구분 못한 탓이다. 지적 수준 탓이다. 영화와 역사를 구분 못하니. 영화를 보고 흘렸다는 문재인의 눈물에 감동받아 따라 울었던,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 수준은 북한의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나라 역사교육 수준이 이 정도이고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이러니 영화를 역사라고 우기고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는 것이 가능했을 것 같다. 역사왜곡과 조작이 일상화 되어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들의 기억만이 정의라고 하며 역사 조작을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역사벤처사업’이라고 이름 붙였다. 역사가 국민들의 눈높이에 따라 만들어진다면 이 사업은 계속 번창할 것이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도 지배한다’고 했다. 이 신념이 국민들의 기억을 조작하고 역사를 날조한다. 영화와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면서 단군의 유골이라고 우긴다.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죽게 된다고 떠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에 숨겨 놓은 돈이 수백조원이라고도 했다. 이런 우리나라는 과학이 아닌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인류의 세계는 신화의 시대에서 권위의 시대로 그리고 실증과학의 시대로 발전해왔다. 200년 전에 프랑스의 사회학자가 한 말이다. 21세기도 중엽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실증과학의 시대에서 신화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부끄럽게도.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학교 (주)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굳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2023-12-07 17:01:14
- [황승연의 타임캡슐] 부자를 위한 상속세 개편안? 100년 기업 만들 '제2의 토지개혁'? [황승연 교수] 국회에서 지난주 11월 3일 최재형 의원실에서 주최하는 ‘기업생존을 위한 상속세제 개편 세미나’가 열렸다. 최재형 의원은 법률안을 개정하여, ‘주식을 상속할 때는 상속 시점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상속인이 상속받은 주식을 매각하여 처분할 때 과세하자’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야 기업들의 지속적인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나는 그가 왠지 왜소해 보였다. 국회의원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면 당의 지도부 의원들이나 동료의원들이 몇 명은 축사를 한다. 세미나 시작 전에 참석한 의원들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의원’인지 세를 과시하고 참석 의원들이 정식으로 축사를 하거나 적어도 인사말을 하게 한다. 이런 일에 세미나 시간의 3분의 1을 보내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번 세미나처럼 국회의원이 한 사람도 오지 않은 세미나는 처음 경험하는 낯선 풍경이었다. 다행히 세미나실은 취재하는 기자들과 청중으로 좌석을 거의 채웠다. 최재형 의원은 개회사를 하는 도중에 다음과 같은 얘기를 털어 놓았다. 지난 2021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후보 예비경선 때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낸다 했을 때 캠프 내에서 반대가 많았다. 결국 공약을 발표했을 때 캠프는 해체되고 말았다. 캠프가 해체되고 최재형 의원은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에서 탈락하고 본경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는 상속세 폐지를 공약으로 내기 전에도 최저임금제 인상 반대, 주52시간제 유연화, 노조개혁 등의 우파적 공약들을 내놓았다. 이 역시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그는 ‘캠프 내에서 반대 의견이 많아도 소신껏 공약을 꺼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 내에서도 ‘상속세가 없는 나라가 많다’는 최 후보의 주장에 이것은 잘못된 정보이며 가짜뉴스라고 하면서 민생과 관련된 절박한 의제가 아니라고 비난했다. 최재형 후보는 정확한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폄훼하는 말을 들으며 물러섰다. 그 후에 그는 종로에서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당선되었다. 당선 후에 여러 세미나를 주최하며 의정활동을 하였는데 상속세 폐지에 관한 세미나만 벌써 여러 차례 열었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최재형 의원을 본다. 이로써 그는 또 어려운 길을 택했다. 곧 다가올 국회의원 선거 운동 기간에 또 비난받을 일들을 쌓았다. 민생을 외면하고 부자들의 편을 들어 부자감세를 반대한다는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이번에 그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직접 발표를 맡았다. 보통 의원들은 세미나를 주최하고 교수나 전문가들을 불러 발표를 시킨다. 이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직접 발표를 맡았다. 상속세제를 개편하겠다는 법안을 낸다는 발표를 하고 그 배경설명을 했다. 이것이 다음 선거에서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이 문제로 대선후보 캠프의 해체를 경험한 그이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그가 다음 선거에서 당선만을 목표로 했다면 발표하지 말았어야 할 공약이었다. 또 시기가 좋지 않다. 왜 지금인가? 사람들은 그에게 정치력이 없다느니 정치를 모른다느니 그런 얘기들을 한다. 이런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2021년 9월 대선 후보들이 당내 경선으로 분주할 때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에서 전 국민 대상 가치관 조사를 했다. 2000명을 샘플로 한 전국조사였다. 상속세에 대해 물었다. “우리나라는 부자들의 세금 부담이 낮기 때문에 부자들에 대한 상속세를 더 올려야 한다.” 이 질문에 64.8%가 상속세를 더 올려야 한다고 답했고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답변은 불과 14.9%였다. 증여세에 대해 물었다. “부모가 자식이 집을 살 때 돈을 지원해 주는 것은 증여이므로 정부는 젊은 사람들이 집을 구입하면 철저하게 조사하여 부모의 지원이 있으면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이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46.7% 아니라는 답변이 22.0%였다. 상속세 증여세를 철저하게 걷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생각이다. 이런 환경이 2년 사이에 변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그는 국회의원이고 매일 지역에서 유권자들과 손을 맞잡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줘야 하는 일을 그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1946년 8월에 미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에 실린 적이 있었다. 질문은 “어떤 체제를 선호하십니까?”였다. 사회주의가 71%, 공산주의가 7%, 자본주의는 고작 14%였다. 즉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78%나 되었다. 조선말기 백성의 10% 미만이 양반, 대략 50%가 상민, 40%가 노비였다 한다. 이런 계급적 문화 환경이 아직 남아있을 때였다. 해방 직후 남한지역 12살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78%였다.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국민들이 있었을까?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환경에서도 우리나라가 시장경제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주춧돌을 놓았다. 당시에 국민의 뜻이라 하여 여론을 따랐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토지를 국유화하고 전 국민이 협동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지금처럼 대한민국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을까? 1948년 건국 이후 우리나라 GDP의 85% 이상이 농업에서 나왔고 국민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개발 국가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농토의 대부분을 소수의 토지부자들이 갖고 있어서 근대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경자유전(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의 원칙을 관철시켜야 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북한과는 달리 유상매입 유상분배 방식이었다. 1950년 3월에 관련법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6·25가 터졌다. 당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가 없었던 노비나 가난에 찌든 농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이 남한의 일부를 점령해서 농민, 노동자들을 위한 국가를 만들겠다 했을 때 농민들은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았다. 그 당시 토지개혁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발전을 꿈 꿀 수 있었을까? 당시 국부의 대부분을 농업이 만들어 내고 있었고 그것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 생산수단인 토지가 일반 국민들에게 나누어져서 전 국민들이 건강하게 소유하게 되는 것은 근대사회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이제 농업인구가 줄어 농업인구가 5%도 되지 않고 그것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환경이 변하여 국민총생산의 대부분을 기업이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 토지를 국민들이 건강하게 소유하듯 기업들도 주식을 통해 국민들이 건강하게 소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기업을 상속세로 60%씩 국가가 빼앗아 가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전근대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최재형 의원은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가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재선에 대한 욕심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보궐선거에 당선된 그가 2년만 하고 말 국회의원을 시작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재선을 위한 욕심이라면 당연히 상속세 폐지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유형의 국회의원이다. 여론에 따라가는 정치가가 아니라 여론을 뚫고 미래를 여는 정치가인 것이다. 1848년 칼 마르크스가 낸 공산당선언에는 “상속세로 모든 자본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한다”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상속세가 바로 공산당선언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가? 최재형 의원은 그가 발의할 상속세법 개정안에서, 상속받는 것이 주식일 경우에는 과세하지 않고 이 주식을 매각할 때 즉 이득이 실현되는 시점에서 과세하도록 하자는 법안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들은 상속세율이 높지 않다. 특히 상속재산이 기업일 경우에는 상속세 때문에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도록 한다. 최재형 의원이 발의한다는 법안은 우량한 100년 기업이 많이 나와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자는 설계도이다. 제2의 토지개혁이다. 시장경제를 이해 못하는 국민들을 이끌고 건국을 해야만 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외로웠을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세미나에서 왜소해 보였던 최재형 의원의 어깨 뒤에 서서 기꺼이 그의 배경이 되고 싶었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학교 (주)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굳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2023-11-06 06:00:00
- [황승연의 타임캡슐] 기업 발목잡는 고액의 상속세 …원조국가 영국까지 폐지 수순 [황승연 교수] 영국의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이달에 있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상속세의 단계적 폐지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더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현재 40%의 상속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하면서 결국 폐지할 예정이며 이 계획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것이라고 한다. 영국 정부는 수개월 전에 상속세 폐지를 2025년 총선거의 대표 공약으로 내건다고 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더 타임스는 상속세가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현재 상속세율은 40%이다. 32만 5천 파운드(5억3천만원)이상의 상속재산에 40%를 과세한다. 살고 있는 주거지를 상속하면 50만 파운드(8억2천만원)로 올라간다. 부부가 각각 상속할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최대 100만 파운드(16억4천만원)까지 세금 없이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상속재산이 기업의 주식일 경우에는 전혀 다른 룰을 적용한다. 기업을 물려받았을 때 40%를 과세하면 주식을 팔아서 세금을 내야 하므로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 그러면 회사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비상장기업의 주식을 상속받을 때는 100% 공제하여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 상장기업의 주식을 상속받을 때는 50%를 면제해준다. 따라서 기업을 상속받을 때의 상속세는 없거나 최고세율이 20%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50%이다. 상속 재산이 기업일 경우에는 영국이나 다른 국가들은 기업의 존속을 위해 과세하지 않거나 세율을 낮춘다. 우리나라는 기업일 경우 할인이 아니라 오히려 할증을 한다. 따라서 기업을 상속받을 때 대기업 대주주일 경우에는 20%를 할증하여 60%의 상속세를 내야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남긴 재산 20조원은 대부분 주식이었다. 그의 가족들의 상속세는 할증과세를 포함하여 60%인 12조원의 세금을 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굶주린 늑대이고, 영국의 상속세는 초원에서 풀을 뜯는 순한 양이다. 이마저도 영국은 상속세를 위험하다며 없앤다고 한다. 영국은 1796년에 상속세를 도입했다. 상속세의 원조국가라 할 수 있다. 수낵 총리는 “국민의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지하기 위해 상속세 문제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했다. 영국을 노조의 국가에서 자유시장국가로 변신하게 했던 마가렛 대처 수상의 말이 떠올랐다.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사람들의 재산을 모두 고갈시키는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제도는 사람들의 재산을 고갈시켜 성공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닌가? 영국이 상속세를 없애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영국인들과 영국의 회사들이 영국을 떠나는 액소더스를 막아보자는 것이다. 스웨덴의 많은 회사들이 상속세가 높아서 떠난 적이 있었다. 코로나 백신으로 유명한 Astra-Zeneca라는 회사는 원래 ASTRA AB라는 스웨덴 회사였다. 1984년 당시 스웨덴의 상속세는 70%였다. 상속이 발생하자 자녀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했다. 상속세 때문에 주식이 시장에 나온다는 소문이 나자 주가가 폭락했다. 결국 자녀들은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도 상속세를 다 납부하지 못하고 스웨덴을 떠났다. 이후 이 회사는 영국의 Zeneca라는 회사가 사서 합병하였다. 이 사건 이후에 스웨덴의 많은 회사들이 해외로 떠났다. 영국으로 떠난 회사들도 많았다. 스웨덴의 상속세 때문이 영국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결국 경제난에 허덕이던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영국의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도 이유이고, 상속세가 주변 국가들 보다 높은 것도 이유이다. 영국회사가 가장 많이 옮겨가거나 영국의 투자가 크게 늘어난 국가로는 네덜란드를 꼽는다. 유럽에서 네덜란드가 영어로 소통이 가장 잘 되는 나라라는 것 이외 다른 이유는, 네덜란드의 상속세가 실제 최고세율이 3.4%로 낮다는 것이다. 기업 상속 때 인근 다른 국가들의 실제 최고 상속세율은 프랑스가 11.25%로 가장 높고, 독일 4.5%, 아일랜드 3.3%, 벨기에 3%, 스페인 1.7% 등이다. 상속세율 프랑스 45%, 독일 30%, 아일랜드 33%, 벨기에 30%, 스페인 34%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가지 공제제도, 할인제도가 있다. 할인이 아니라 할증제도가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뭐, 이중 비과세? 당신들만 정의로운 척 하는가? 영국이 상속세를 없애려고 하는 이유는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소득세를 내고 모은 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또 낸다. 그러면 일할 의욕을 잃는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영국 국민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상속세를 없애자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영국의 현 정부가 자신 있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가 너무 높다는 얘기가 나오면 우리나라는 소득세가 낮기 때문에 상속세로 부의 양극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식한 좌파 교수나 학자나 평론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다.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최고세율이 45%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득세는 국세이므로 국세 중 10%를 지방세로 추가로 징수한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49.5%이다. 그런데 소득에 비례해 의료보험 등의 간접세도 올라가므로 50%를 넘는다. 소득세 이외에 상속세도 50%이다. 대기업 대주주일 경우에는 60%다. 그 숫자는 극히 적어서 무시한다지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의 가족들이 내고 있는 상속세금 12조원은 2011년에서 2020년까지 우리나라 상속세수 전체의 연 평균인 2.25조원의 5배도 더 되는 액수이다. 삼성은 ASTRA처럼 해외에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는 경우라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상속재산이 기업일 경우 50%의 상속세를 납부하고 나머지 회사의 자산에 대해 배당으로 받아갈 경우 배당소득세(49.5%)를 한 번 더 내야하므로 이 경우 역시 이중과세가 된다. 즉 75%의 세금을 내는 것이다. 어쩌면 이중과세가 아닌 3중과세 아닌가? 법인세와 상속세와 소득세. 이중과세 해소를 이유로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세를 안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속세도 안낸다면 이것은 “2중 비과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2중 비과세?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지능이 모자란 사람이다. 우리나라에 경제활동 인구의 약 70%가 근로소득자인데 실제로 이들 중에서 소득이 있음에도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이 40%에 육박한다고 한다. 면세 범위에 들어가는 인구가 많다는 얘기이다. OECD국가의 평균 면세자 비중의 두 배 이상이다. 면세자들이 상속세를 또 면제 받으면 이중 비과세가 아닌가 하는 말장난을 한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들 중 상속세를 내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이런 선동질일까? 우리나라는 좁은 세원, 높은 세율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선진국들의 보편적인 과세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는 많은 학자들, 정치가들이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면서 정의로운 척 한다. 베네주엘라 차베스 정권도 정의로운 척 하다가 망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차베스를 배워야 한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하기야 부탄이 행복지수가 높다고 부탄을 칭송하던 대통령도 있었다. 부탄 대통령이 될 그런 수준의 사람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다. 상속세를 왜 없앴냐고? IKEA라 하면 스웨덴을 떠올린다. 스웨덴의 가구 제조 기업이라 알려져 있다. 1943년 Ingvar Kamprad가 스웨덴에서 만들었다. 특히 다자인과 색깔이 스웨덴 풍이다. 이케아 매장의 분위기나 로고에서도 스웨덴의 국가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케아의 본사는 현재 네덜란드에 있다. 1980년대에 본사를 옮겼다. 설립자 개인은 스위스로 국적을 바꿨다. 아는 사람들은 안다. ASTRA 와 같은 이유로 스웨덴을 떠났다. ASTRA는 상속세를 내는 과정에서 주인이 파산하여 회사가 영국으로 넘어갔고, IKEA는 사전에 대비 차원에서 네덜란드로 옮기고 스위스 국적 취득으로 아직까지 설립자 가족들이 오너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세금을 적게 내겠다고 세금이 적은 곳으로 본사를 옮기고 국적을 바꾼다는 것이 비난받을 일인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기업들은 세금이 적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많은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세금을 낮춰서 자기 나라로 기업들이 흘러 들어오도록 한다. 이케아는 20만명 이상의 직원과 연 6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이다. 이런 회사가 남아있는 것과 상속세 때문에 떠나는 것 중 어떤 것이 국익에 유리할까? 우리나라 대통령도 외국에 가면 해외 자본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모델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인정받는 스웨덴이 2004년 상속세를 폐기하였다. 그 당시 스웨덴의 재무장관이었던 페르 누데르 전 재무장관이 지난달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 스웨덴 중소, 중견 가족기업들은 상속, 증여세 때문에 가업을 승계하지 못하는 큰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상속세 폐지 이후 가업 승계가 어렵다는 얘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즉효약이었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상속세 폐지 이후 오히려 세수가 늘었다. 상속세 폐지가 스웨덴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얘기이다. 상속세 때문에 떠났던 기업들도 돌아오고 더 이상 이를 이유로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세수 측면에서도 2000년에 51%였던 GDP 대비 세금 비율이 2014년에는 44%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세수는 오히려 30조원이 늘었다. 건강한 경제구조로 바뀌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좌파들은 이런 자료들은 안 본다. 목표가 이미 정해져 있고 목표에 맞는 자료들만 보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없애 우리나라가 더 부강한 나라가 된다는 상황을 좌파들은 원치 않는다. 부강한 나라가 되면 그들이 꿈꾸는 혁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속세 때문에 몇 개의 재벌이 사라진다면 쾌재를 부를 것이다. 스웨덴은 그러지 않았다. 상속세 폐지에 국민들이 동의해주었고 이후 스웨덴은 더 부강하고 안정적이 나라가 되었다. 상속세를 없애고 나서. 상속세가 있는(없는) 국가가 얼마나 되나? 지구상에 상속세가 없는 나라가 몇 개나 되냐고? 상속세를 유지하는 나라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그 나라들의 수를 세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 상속세율이 있으나 과세하지 않는 나라도 있고 여러 가지 공제혜택으로 극히 적은 상속세를 내는 나라들도 있다. 그래서 실제 세율은 크게 떨어진다. 상속세는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과세하지 않는 나라들을 상속세가 있는 국가군에 포함해야하는가 없는 국가군에 포함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자세한 자료를 상속세 유지론자들에게 들이 밀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실제 최고세율이 명목 최고세율보다 더 높은 나라가 딱 하나 있다. 대한민국이다. 최근에는 넥슨이라는 게임회사가 상속세를 냈다. 대기업 군에 속하는 대주주라 하여 60% 상속세를 과세했다. 재산을 털어 1조 3천억 원을 내고 나머지는 주식으로 상속세를 물납했다. 물납 받은 우리나라 기재부가 2대 주주가 되었다. 정부 소유의 주식 가치가 4조 7천억원이라 했다. 한편 삼성의 상속세는 12조원이었다. 20조원 재산의 60%였다. 그런데 삼성은 미술품과 골동품과 현금 기부가 11조원정도 되었다. 그러니 총 31조원의 상속재산에서 물려받은 것은 8조원이고 23조원을 국가에 바친 꼴이다. 전 재산의74%이다. 이런 식으로 상속세를 걷으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얼마나 남아날까? 삼성을 중국이 노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한민국 기업들을 중국에 넘기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고 본다. 중국에 가서 ‘중국은 큰 산이고 우리는 작은 봉우리’라고 비교한 대통령도 있었고, 우리나라를 ‘말 궁둥이에 붙어 만리를 가는 파리’가 되자는 시장도 있었다. 삼성을 중국에 넘기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넥슨도 중국이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중국몽’인가? 상속세가 없는 국가의 숫자가 정확하게 정리된 것이 없다. 예를 들면 스위스의 상속세는 국세가 아닌 지방세인데 실제로 과세하지 않아서 없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 경우는 상속세가 있는 것인가? 38개 OECD 국가들 중 명목상 상속세가 있는 국가들은 18개국뿐이다. 따라서 모든 OECD 국가들의 상속세 평균은 12.9%이다. 그런데 충분히 똑똑하지 않은 학자나 기자들은 상속세 평균을 27%라 한다. 이는 ‘상속세가 있는 18개 국가들만의 상속세 평균’이다. 정확하게 표현해주지 않는 이유는 의도적으로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높아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인가? 여기에 또 다른 큰 함정이 있다. 국가에서 발표하는 명목 최고세율과 부과하는 실제 최고 세율이 다르다는 것이다. 벨기에는 상속세가 80%이다. 그런데 가족이 상속할 경우에는 세율은 30%로 떨어진다. 만약에 상속재산이 기업일 경우에는 다시 90%를 공제하고 10%만 낸다. 그러니 상속세율은 3%이다. 우리나라는 60%이다. 우리가 벨기에보다 20배나 많은 세금을 내고도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면 기적이다. 기적이 있어 왔지만 기적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상속세율이 55%로 세계 1위. 50%인 우리 보다 높다며 우리가 세계2위라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상속세율 1위의 일본에 1백년 이상 역사를 가진 회사가 3만3천개가 있다 한다. 우리나라는 9개이다. 일본 기업이 세대가 바뀔 때마다 55%의 상속세를 내야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그 많은 기업이 생존할 수 있었을까? 해답은 공제혜택에 있다. 비상장기업은 80%의 상속재산에 대해 납세유예를 해준다. 55% 세율이므로 실효세율은 11%이다. 이마저 5년이 지나면 완전히 면제해준다. 대다수의 국가에 공제혜택이 있다. 미국의 경우 약 300억원 가량은 세금 없이 증여받을 수 있다. 이 범위를 넘어서면 포이즌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황금낙하산 등의 제도로 경영권 방어 장치가 있다. 자세히 어떤 내용인지 스스로 검색해서 공부하는 재미를 빼앗지 않으려 한다. 미국은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어 상속세 무용론이 나온 지 오래다. 미국은 개인 혹은 가족이 평생 일군 기업을 국가가 약탈해가도록 내버려 두는 나라가 아니다. 독일도 가업 상속제도가 있어서 85%의 상속 자산에 대해 공제하고 7년을 유지하면 100% 공제한다. 따라서 실제 최고세율은 4.5%이거나 7년이 지나면 제로가 된다. 상속세가 있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도 최고세율이 있지만 기업을 승계할 경우에는 다양한 공제제도를 두어 기업할 의욕과 성공에 대한 열망을 꺾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비 OECD국가들 중 주요 경제대국들 즉, 중국,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도 상속세가 없다. 한국기업들은 이 국가의 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해야하나? 우리나라의 상속세를 어떻게 바꾼다고? 올해 초 기재부에 ‘조세개혁추진단’이 만들어졌다 한다.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범부처 임시조직이다. 조세개혁추진단에서 상속세제를 개혁한다며 발표한 것이 상속세 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전체 상속재산에 대해 과세하지 않고 개인이 취득하는 유산 취득분에 개별적으로 과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납부해야할 세금이 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기업과 같이 규모가 큰 상속 자산일 경우 의미가 없다. 정부부처가 늘 해왔듯 마치 상속세를 개편하는 양 생색만 내고 실제로는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그런 개편이다. 공무원들은 눈치를 본다. 정권이 바뀌면 당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갖는 눈치.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전략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으려면 바꾸는 척하고 정작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 살아남는다. 부자 감세, 부의 대물림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정책이고 뭐고 맥을 못춘다. 정작 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발표했던 상속세제 개혁 방안에 대해서 읽어보지 않은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이 아니었으니 몰라도 되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상속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으니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찾아보시라.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이렇게 말했다. 2021년 12월 1일자 많은 신문이 이 내용을 보도했다. “스웨덴이나 독일의 상속제도를 잘 벤치마킹해서, 근로자의 고용 보장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기업이 영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상속세 과세 특례의 경우 독일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봤을 때 약 100배 정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안다.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세개혁추진단은 이 인터뷰 기사를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상속세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갈라파고스적 세금이 되어서는 안된다. 상속세 과세를 이연한다면? 상속세의 폐지를 얘기하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특히 좌파는 물론이고 우파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그렇다. “교수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러나 지역구에 가면 이 얘기 못합니다!” 상속세 폐지를 얘기하면 부자 편에 선 것으로 본다. 그럼 당선되기 힘들다. 상속세가 없어지면 서민들이 얻게 될 이익과 국가 경제에 미칠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이익이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보편적인 국민들의 수준이다. 그래서 상속세 폐지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식으로 접근해본다. 기업을 이어받을 때 상속받는 것은 회사의 주식이다. 어떤 이득이 실현된 것이 아니다. 주식의 가치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려면 주식을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이를 가처분소득이라 한다)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할 때 비로소 소득이 된다. 그렇다면 미실현 소득이 실현되는 시점에서 과세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자본이득세 혹은 일반 소득세 개념으로 과세하는 나라들이 있다. 소득세율이 49.5%이고 상속세율이 50%(할증 적응을 안 받는다면)이니 같다고 보면 소득세 단일 세제로 상속세를 커버할 수 있다. 주식을 매각하지 않으면 회사는 존속된다. 해외자본유치보다 기존 회사의 존속이 낫지 않은가? 그리고 상속받는 것이 주식이 아닌 개인의 재산일 경우 회사에 모두 출자를 해버리면 이 또한 기업 자산이 되며 이를 가처분 소득으로 만들 때 소득세로 과세하면 세수는 동일하다. 상속세 걱정에서 그리고 기업 존속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상속세가 부당한 세금이라며 고쳐나가려고 한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폐지하려는 제도를 우리만 유지하려 한다면 이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해봐야 한다. 우리만 특별히 잘난 사람들이 아니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 (전) 경희대학교 (주)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굳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2023-10-06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