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 교수
ph410@anu.ac.kr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 교수신문 논설위원
- [안상준의 함께꿈]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내홍과 파동으로 요동친 총선 공천이 끝났다. 지역구의 후보가 세 번이나 바뀌는가 하면, 실세의 항의로 비례대표 순번이 다음날 바뀌었다. 심지어 후보 등록 마감이 지나고도 공천을 취소하고 정당의 지역구 후보가 사라졌다. 원칙도 기준도 애매한 공천의 결과로 과연 어느 당이 웃게 될까? 총선이 끝나면 이 땅에는 ‘정서적 분단’ 상태에서 ‘심리적 내전’이 종료되고 정치적 평화가 찾아올까?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먼저 공천을 간단하게 평가해보자. 정치초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휘한 집권당의 공천은 별다른 특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등판은 대통령 내외의 리스크 관리와 자신의 미래권력 창출이라는 두 개의 목표로 설정됐다. 내홍을 최대한 줄이면서 김건희 특검법이 저지되자마자 영남권 텃밭에서 시스템공천·혁신공천을 시도했지만, 선명한 기조와 비전 없는 공천은 참신하거나 특별한 느낌 없이 무미건조하게 끝났다. 그 사이에 상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그의 특유의 어법과 제법 멋스러운 패션 스타일이 그를 평가하는 요소로 등장했다. 후진적인 정치문화의 단면에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제1야당의 공천은 당내 주류 교체의 과정이었다. 소위 ‘개딸’의 지지를 업은 비주류 이재명 대표는 공천을 통해 유감없이 권력을 휘둘렀다. ‘비명횡사’는 권력의 비정함과 무상을 동시에 드러냈고, 정치적 생명력이 다한 586세대의 적잖은 정치인을 퇴출하는 역사적 순간을 연출했다. 586세대에 대한 한동훈의 비난이 이재명의 손으로 실현되는 아이러니였다. 과거의 정치적 약속은 무시하거나 궤변으로 감추고, 친명체제 구축에 온갖 힘을 쏟았다. 대선 패배의 방어막으로 손에 쥔 당권이 방탄국회를 통과해 다음 대선까지 그를 지켜줄지 궁금한 대목이다. 제3지대에서는 혼돈의 상태에서 불나방처럼 한탕 권력을 노리는 무리의 이합집산이 펼쳐졌다. 그러나 개혁신당의 공천을 주무른 김종인의 영향력은 여론의 관심 밖이었고, 이낙연의 좌충우돌은 제3지대의 신선도를 떨어뜨려 오히려 양당체제를 강화하는 역효과를 불렀다. 그 와중에 조국혁신당의 돌출은 예상 밖이었고, 현 정권의 실정을 응징할 가장 강력한 대안세력으로서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치의 생동감이 다시 한번 와닿았다. 어느 쪽이 승리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국면에서 승패는 부차적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승리해도 대한민국 정치는 회생과 진화의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우울한 전망 때문이다.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공천판에서 정치의 본령으로서 정책 대결은 완전히 사라졌다. 국내외에서 대한민국의 망조를 예견하는 경고음이 터져 나오지만, 초저출산과 인구감소, 지방소멸, 기후재앙 등 다양한 현안을 다룰 인재 확보는 공천과정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다. 나아가 웬만한 국민은 사과 한 알도 선뜻 장바구니에 담지 못할 만큼 물가가 치솟고 경기 침체로 청년 고용이 얼어붙어도 정치권은 상대를 비난하기에 급급하다.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무엇을 위한 정치인지 유권자들은 묻는다. 이대로 망해도 괜찮은가? 현 정부는 3대 개혁을 추진했다.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이 그것이다.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적 갈등의 경감과 해소에 있다. 다음 국회에서도 다시 논의될 사안임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소양과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정치적 역량을 겸비한 국회의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양당이 연금개혁에 의지가 있다면, 비례대표 순번에 연금전문가를 배치하는 전략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30번 내에 연금전문가는 없다. 국민의힘의 경우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서 현 정부 초대 사회수석을 역임한 안상훈 교수가 있을 뿐이다. 연금개혁은 여야가 당위성을 논하는 정치사안이건만 양당이 전혀 준비하지 않는 상황을 보면 다음 국회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필자의 전망이 너무 비관적인가. 노동개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시도한 정책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노동개혁의 전망을 따져보면 역시 그리 밝지 않다. 노동개혁의 적임자들이 국회에서 민의를 수렴하고 정책을 개발하는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이 부재한 정치가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행복하게 하기는 불가능하다. 반면교사로서 독일의 사례를 보자. 1980년대 독일은 격변기를 맞았다. 폴란드의 자유노조 시위, 소련의 개혁과 개방 정책 등 80년 초중반부터 사회주의권이 요동쳤고, 불과 몇 년 뒤 1989년에 사회주의권 전체가 붕괴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미 1970년부터 사민당 정부가 통독의 길을 열었지만, 1982년 총선에서 보수적인 기민당 정권이 들어섰다. 그렇지만 헬무트 콜이 이끄는 기민당 정부는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했다. 콜의 내각은 디트리히 겐셔 같은 자민련의 노련한 외교가를 끌어안고 통일정책을 꾸준히 이어갔다. 물론 통일정책에는 외교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일사불란하게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정책의 일관성이 필자에게 눈에 띄었다. 노동정책이야말로 동독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부터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기민당 노동전문가 노베르트 블룸은 통일 이후에도 장관직을 수행함으로써 무려 16년간 콜 내각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정부의 초저출산과 인구감소 문제 및 교육개혁도 마찬가지로 아득하다. 20, 30대 청년과 특히 여성이 배제된 국회에서 초저출산 문제는 여전히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부각된다. 아이를 낳으면 지급하는 현금 세례가 언제까지 유용하다고 억지를 부릴지 두고 볼 일이다. 50, 60대 남성이 장악한 국회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들은 20, 30대 청년의 삶을 이해하지도 못하거니와 그들의 미래를 제시할 정도의 지혜와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 또한 마찬가지다. 교사가 배제된 교육개혁은 영원히 미제로 남는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학생의 행복도는 꼴찌, 자살률은 단연 1위. 학생이 교사를 구타하는 교실, 교사가 민원 때문에 자살하는 나라. 늘봄으로 학부모의 부담을 덜겠다는 교육부의 발상에 교사들은 기겁한다. 문제의 근원을 방치한 채, 생색내기에 여념이 없는 교육부 당국의 행태에 절망이 고개를 든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정치적 해결 능력을 스스로 발휘하지 못한다. 정치적 중립성의 원칙 아래 교사들의 피선거권은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질곡을 풀지 못하는 한 교육개혁은 연목구어에 그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개혁과제를 해결하리라는 아무런 전망도 없는 국회에 우리는 무슨 기대를 걸까? 대통령 탄핵, 김건희 특검법의 재발의, 한동훈 딸의 전면 수사?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증오와 복수의 반복으로 그치면 희망은 없다. 새 국회는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안위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새 국회가 민의의 전당으로서 국회의 기능을 회복하는 새로운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우리 앞에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민족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한반도 평화의 정착과 동아시아 전쟁 방지, 산업체제의 대전환에 대비하는 한국 기업을 위한 지원 전략,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빈곤계층의 지원 방안, 비수도권 지역의 공동화 현상과 그에 따른 인구유출 및 경제생활의 침체를 치유하는 획기적인 대책 등 그 어떤 사안도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서로 비수 같은 독설을 날리고 험담하며 싸울 시간도 아니고 계제도 아니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노동자가 죽어가고, 대지가 죽어가고, 아이를 낳지 않고, 서로를 돌보지 않는 삭막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아니면 어디서도 해결할 수 없다. 이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능력도 자격도 국회가 아니면 없다. 따라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국회로 전환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프랑스에서 연금개혁으로 몸살을 앓을 때,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에서 야당과 설전을 벌였다. 오바마가 이른바 오바마케어를 도입할 때, 그의 화려한 언변은 의원들과 토론에서 빛났다. 메르켈은 때로는 보수연정, 때로는 대연정을 통해 16년 동안 통일 독일을 이끌었다. 그 비결은 단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향하며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책 구현에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정부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화를 거부한 정치가 미국 정치사에서 초유의 의회폭동 사태로 귀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로의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동물국회, 보이콧을 일삼는 식물국회에 국민은 진절머리가 난다.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을 초래하는가?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을 제정한 이력이 있다. 대화와 타협은 결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22대 국회에서는 품위 있게 토론하는 민주주의의 전당을 볼 수 있기를 국민으로서 바란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4-03-27 06:00:00
- [안상준의 함께꿈] 분란의 아이콘? 구원의 아이콘? …이재명, 그의 선택이 국운을 가른다 총선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정치는 생물 사람들은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민심의 향방은 날마다 예측 불허이고, 정치인의 생명은 어느 날 느닷없이 끝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렇다. 정치권의 이 격언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에도 적용된다. 한동훈이 국민의힘(이하 국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르고 거의 동시에 이준석이 국힘을 탈당하던 지난 12월 말부터 설 연휴까지 총선 분위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게 유리해 보였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고 있다. 정당 지지율 변동과 분석 기사를 보면, 국힘의 상승세와 민주당의 하락세가 뚜렷하게 대비된다. 특히 지난 총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선거전문가(엄경영, 오마이뉴스 4. 23)와 노조 활동가 출신 정치비평가(최병천, 경향신문 4. 24)의 평가는 민주당에게 꽤 냉정하다. 요컨대 패배를 직감한 정치신인 한동훈이 전원공격으로 경기를 뒤집고 있다면, 다 이긴 경기로 착각한 대선 패자 이재명은 침대축구로 시간을 끌다가 역전당하자 당황하면서도 실실 웃는 클린스만과 흡사한 모양새다. 경기 흐름이 바뀌자 한동훈의 최대 약점인 대통령의 실정과 영부인의 국기문란 행위들은 여론의 관심에서 슬그머니 비껴나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판세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국힘과 민주당 모두 연일 공천과정의 잡음이 터져 나오는데 국힘은 조용히 처리되는 듯 보이지만 민주당은 갈등을 넘어 매일 분당을 경험하듯 언론에 추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더니 급기야 이재명의 리더십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 어쩌면 검찰의 칼끝 위에서 위태롭게 버텨오며 동정표를 받던 이재명 대표에게 이제 비로소 진정한 시련이 다가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재명의 민주당 그런데 이 시련이 지난 두 달의 상황 변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은 이미 대선 패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민주당 자체의 역량 미달이다. 2017년 민주당의 집권은 촛불시위와 탄핵정국의 결과였다. 국민은 국민을 이기려는 정부를 타도했고 새로운 정부와 사회 분위기를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의 기치 아래 검찰 개혁을 비롯해 다방면의 개혁을 시도했다. 보수 야당과 기득권 세력의 방해는 집요했다. 그러자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은 무려 180석을 허락하며 민주당 정부를 응원했다. 민주 국가에서 특정 정당을 위한 이런 일방적인 지지는 정말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민주당은 기대에 못 미치는 형편없는 수준의 정치를 일삼다 그예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유시민 작가의 지적대로 간호법과 노란봉투법의 입법 실패가 대표적으로 아프게 다가온다(민들레, 2. 22). 촛불정부가 실패하며 민주당은 ‘무능한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도덕적 우위로 얻은 평판마저 상실했다. 무한한 정치적 실망감을 맛본 국민은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다. 다른 하나는 이재명 리스크다. 그는 유능한 행정가였고, 상황 판단이 빠르고 언행이 민첩한 행동가였다. 성남 외곽에 세운 화장장과 납골당을 겸비한 훌륭한 장묘시설(영생관리사업소)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능력을 입증한다. 촛불 정국 당시 성남시장 이재명의 시원한 언변과 코로나19 사태를 일으킨 신천지 교회에 대한 경기지사 이재명의 기민한 대응은 국민에게 강한 인상과 믿음을 주었다. 그런데 대선 이후 이재명과 민주당은 의문의 행보를 보였다. 이재명은 대선 패배를 인정했지만, 민주당은 패배의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평가하지도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조차도 선거백서의 존재를 두고 논란이 되는 실정이다. 이로써 이재명의 정치력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기회가 사라졌고, 민주당은 패배를 딛고 거듭날 기회를 놓쳤다. 0.73% 격차에 따른 석패의 의미와 교훈은 허무하게 사라졌고, 강성 지지층만 남은 채 민주당에게 기대를 걸었던 국민의 기대와 염원은 사라졌다. 민주당은 여론의 관심을 외면하며 대선 패자 이재명을 엉뚱한 지역구 의원으로 밀어 올렸고 나아가 당 대표로 옹립했다. 이때부터 이재명의 횡보가 시작되었고 거대야당 민주당은 방 안의 코끼리로 둔갑했다. 지금 국민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수권정당의 능력과 위신을 갖추었는지 의심하고 있다. 이재명의 총선 전략 이재명은 국민의 의심을 해소하고 민주당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재명의 능력 평가에는 한 가지 제약조건이 따른다. 검찰에 의한 무한대의 압박이다. 최근 이재명의 부인과 영부인에 대한 검찰의 극단적인 조치는 매우 상징적이다. 이재명의 부인은 법인카드 10만원 유용 혐의로 기소되었다. 반면에 영부인은 관련자가 처벌받은 도이치모터스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및 300만원을 넘는 고가의 ‘디올백 스캔들’에도 검찰의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대학가에서는 커피 한잔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나아가 2년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왜 기소되지 않는지도 의문이다. 법리적인 측면에서 증거가 불충분한 건지 아니면 정치적인 시간 끌기 전략인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의 능력 발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인한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이재명의 총선 승리 전략은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정당 수준과 정치적 역량을 가늠할 때 민주당 앞에는 두 개의 해결책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민주당의 대동단결에 기초한 총력전 전개다. 이재명은 민주당의 비주류 출신으로 대선 후보가 되었고, 지금은 당 대표로 당을 지휘한다. 당내 주류 교체를 통한 당권 장악과 이후 대선 후보의 길은 총선 국면에서 해결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총선의 상대 국힘이 있음을 잊지 않고 대승적 결단에 기초한 통합적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두 정당의 지지율이 역전되자 이재명은 분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언론의 프레임일지 모르지만, ‘찐명’ 논란이 거짓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적전 분열로 참패한 요르단전을 총선에서 지지자들이 경험해야 하겠는가? 그건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해결책은 민주당의 역량을 채워줄 참신한 인재 영입이다. 필자의 안테나 성능을 고려하여 다른 분야의 영입 인재에 대한 평가는 보류하겠다. 하지만 대학정책과 지방소멸 대비를 위해 영입한 인재를 볼 때 몹시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는 고등교육 정책을 주관하는 연구원이 박사 한 명밖에 없다던 지인의 전언이 떠올랐다. 나아가 총선 국면 초입에서 민주당이 내놓은 ‘인재추천위원회’의 12개 영입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이자 아킬레스건인 ‘교육’이 빠진 이유를 이해했다. 그 12개 분야 중에는 하물며 ‘동물 복지’도 있었기에, 민주당은 필패를 자초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책 차원에서 다른 사례를 보자. 이재명은 최근에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시들하던 프로젝트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민주연구원은 이 프로젝트의 유효성과 실현 가능성을 면밀하게 검토했는지 궁금하다. 다급한 상태에서 떠도는 제안을 덥석 공약으로 발표한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왜냐면 문재인 정부 시절 한겨레신문에 실린 “논의 20년째 ‘대학통합네트워크’, 총선 앞두고 다시 펼쳐질까”(2020. 2. 20)라는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총선 국면에서 발표된 이 기사의 핵심 발언자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의 제안자였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지난 대선에서도 이재명의 공약으로 부상했지만, 재정 조달과 실천 방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공약집에서 배제된 바 있었다. 돌려막기와 재탕에 불과한 정책으로 마치 새로운 정책인 양 국민을 현혹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모르기는 피차가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다. 총선 결과와 한국 사회의 미래- 이재명의 선택은?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는 시절이다. 민주주의 체제 위기의 핵심 요소는 국정 책임자의 리더십이다. 트럼프, 푸틴, 시진핑, 헝가리의 오르반,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그리고 윤석열의 리더십을 보자. 인류 최악의 지도자 히틀러는 염라대왕이 파견한 악마가 아니다. 독일 국민이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선택한 정당 지도자이다. 그 선택의 책임 때문에 히틀러의 죄악에 대해 독일 국민은 오늘까지도 사죄의 의무를 지고 이행한다. 정치지도자의 선택이 역사적 사명감에 기초해야 함을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다. 현재 대한민국의 양극화와 극우화는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빈부 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기 직전이다. 초저출산과 지방소멸의 원인은 모두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든 실존적 위기와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하는 집단적 우울증으로 귀결한다. 대한민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대한민국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다. 세계 경제의 침체, 코로나19의 후폭풍, 민주주의 체제의 해체 징후, 기후 악화에 따른 묵시록적 상황의 도래 등 전 세계의 위기 국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추락은 너무 빠르다. 최근 뉴스에서 본 현직 국회의원, 대학원생, 의사의 입을 틀어막고 쫓아내는 장면이 모든 걸 웅변한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장은 이 사태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외마디 항의도 없다.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의 모습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독일이라면 국회의원이 저런 모습으로 끌려 나가는 사건이 벌어질까? 혹여 벌어지더라도 이렇게 조용히 넘어갈까? 아마도 나라가 뒤집히는 난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이미 해체의 위기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이재명은 그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우리 사회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이재명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고 믿는다. 필자가 대학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면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근대적 인간과 근대사회의 차별성이다. 그 위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해체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온 지금, 이재명의 역량과 선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본다. 민주당의 확실한 승리를 위해 이재명은 용퇴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최선의 결정을 국민 앞에 내놓길 바란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4-02-27 06:00:00
- [안상준의 함께꿈] 대학 '무전공 입학' 둘러싼 교육부의 졸속행정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올해는 대학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준비도와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 지난 24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주요 정책 추진계획'에서 무전공 입학의 강제적인 도입과 확대는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해당 정책은 느닷없이 발표되었고 의외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신속하게 철회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교육부의 졸속행정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고, 무엇보다도 대학에 대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무지와 그의 왜곡된 대학관이 드러났다. 무전공 입학이란 대학이 입학 정원의 일정 부분을 전공·학과 등 구분 없이 모집하는 전형을 가리킨다. 무전공 입학생들은 재학 초기에 기초·교양과정을 이수하면서 적성과 흥미에 맞는 전공을 탐색하고 결정한다. 이는 대학과정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학업과 직업 모델의 연계성을 높이는 대안으로 평가할 만하다. 실제로 우리의 교육과정 전반을 고려할 때, 고교 졸업 후 자신의 적성과 직업 전망에 부합하는 대학의 전공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대학은 층위가 다양한 모집단위를 설정하고 이른바 ‘학부제’를 시행하였다. 필자 역시 대학 입학 당시 모집 단위 ‘역사·철학계열’에 지원했고, 2학년 진급 시에 사학과를 선택했었다. 또한 필자가 교수로 임용될 때, 현재 재직하는 대학의 모집단위는 특이하게도 국학·역사학부라는 애매한 명칭이었다. 그것은 국학부(한문학전공, 민속학전공, 동양철학과전공)과 사학과의 기묘한 조합이었다. 세월이 흘러 2009년도에는 자유전공학부라는 모집단위가 등장하여 학생의 전공선택권 보장과 대학의 유연한 학사운영 방식이 실현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학부제 모집은 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전공선택권의 쏠림현상으로서 그 결과는 학부 내 혹은 대학 전체에서 특정 전공의 존망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자유전공학부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융합 학문을 가르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도입 당시 서울대(정원 157명), 연세대(150명), 고려대(123명), 이화여대(40명), 중앙대(133명) 등 의욕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러나 ‘융합 학문을 가르친다’는 본래 취지는 전혀 구현하지 못한 채 자유전공학부는 인기학과로 가는 '디딤돌'로 전락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전 단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가운데, 대부분의 학생은 경영학과와 컴퓨터공학과를 비롯한 소위 인기학과를 선택했다. 연세대의 경우 다수의 학부생이 경영학과를 지원하자 ‘경영예과’라는 비아냥이 돌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중앙대는 도입 이듬해에 바로 모집 중단에 들어갔고, 연세대는 5~6년 운영하다가 국제학부로 흡수했다. 다른 하나는 전공선택권에 부합하는 학부 내 전공들의 유기적인 협력이 예상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학부 입학생들은 학과 입학생들과 견주어 보면 소속감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해당 전공의 교수들과 사제지간을 맺기도 애매하고, 해당 전공의 선배들과 교유하기도 어정쩡하다. 한편 학부 내의 학과 교수들은 학부생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하여 다양한 신호를 보내면서 경쟁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학부 내 교수들의 실질적인 협조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국학·역사학부가 유지될 당시에 학부 내 전공들의 알력 관계는 건전한 교류를 해칠 정도로 심각했다. 예를 들어 2학년 진급 시 우수학생의 다수가 A학과에 몰렸다. 그러자 B학과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학부의 해체를 주장한 반면 C, D학과는 A학과 덕분에 그나마 학부에 적정 수준의 학생이 입학하고 충원에 문제가 없으니 A학과 쏠림을 눈감아주자는 태도를 보였다. 다른 학부에서도 대동소이한 문제들이 노출되면서 마침내 2008년 대학본부는 일제히 학부제를 폐지하였다. 따라서 학부제이건 자유전공학부이건 학생의 전공선택권은 보장하지만, 교육적인 차원에서 검증된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는 것이 이제까지 축적된 경험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대학에 미친 사례는 대학의 규모와 운영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부 대학의 사례는 대학의 경쟁력과 전망을 완전히 잠식하는 파국적인 결말을 보이기도 한다. 다른 대학들이 자유전공학부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갈 무렵인 2017년에 A대는 교육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창의융합학부’라는 정체불명의 학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학내 구성원들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각 학과의 정원 30%를 갈취하여 220명 규모(전체 정원의 무려 7분의 1에 해당)에 달하는 매머드급 학부가 탄생했다. 이렇게 대학의 구조를 현저하게 왜곡하고 탄생한 동 학부는 2019년부터 신입생 모집에 들어갔으나 불행히도 코로나19 창궐과 함께 심각한 신입생 미충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교육은 언감생심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못한 채, 해마다 대규모 미충원 사태를 맞게 되었다. 마침내 신입생 모집 5년 만에 대학본부는 2025학년도부터 학부의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부 창설의 주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나아가 무전공 입학은 대학에 대한 지극히 반교육적이고 비현실적인 인식에 기초한다. 교육부는 학생이 선호하거나 몰리는 전공과 학과를 존치하고 그런 분야에 대학의 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런 과격한 조치는 현실적으로 대학에서 실현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반도체학과의 진급생이 전년 대비 해마다 50% 넘게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교수 충원, 공간 확장, 실습시설 확충 등 교육여건이 충분히 충족될 수 있을까? 현재의 급여 수준으로 반도체 우수 인재를 대학교수직으로 유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다른 학과와 공존하는 대학의 속성상 공간의 확장도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인재 양성은 기업의 상품 생산과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은 시장 수요에 따라 설비 투자를 조정하고 상품 생산의 비중을 수시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학은 어느 정도 특성화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과 인력 충원, 공간 배치 등 다양한 요소들의 지속성 때문에 상품을 찍어내듯이 인재를 배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이른바 비인기 기초학문은 어찌해야 하는가? 필자의 대학에서는 2024학년도부터 철학과가 사라졌고, 2025학년도부터 자연과학대학이 해체된다. 혹자는 ‘아직도 지방대학에 물리학과와 화학과가 남아 있었어?’ 또는 ‘여전히 사립대학보다 변하는 속도가 늦네’라고 반문하거나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국립대라는 프리미엄의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국립대마저 학문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 물리학, 화학 등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포기할 때 과연 우리나라의 대학에 미래가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의 흐름에 비출 때 너무 한가한 한탄이라고 나무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시각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인문학의 기초 없이 K-인문의 진흥이 가능하고, 정신문화의 수도를 표방하는 안동이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미래의 한류를 이끌 가능성이 열릴까? 나아가 기초과학의 토대 없이 첨단·융합 과학에서 꾸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자율적 혁신’으로 포장된 교육부의 대학혁신을 거부한다. 그것은 허구다. 강요를 자율로 포장하고, 통제를 혁신으로 왜곡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갉아먹는다. 적어도 지금까지 대학에서 융합 학문의 교육은 사기극과 다름없었다. 학생들이 그걸 몰랐을 리는 만무하다. 그저 인기학과로 몰려감으로써 사기극을 피해서 갔을 뿐이다. 최근에 답답한 마음에 임용 연차가 낮은 교수에게 “창의융합형 인재”가 어떤 학생을 지칭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웃으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교수님의 눈높이를 낮추세요. 그냥 이 전공 조금하고 저 전공 조금하고 그렇게 여러 전공의 맛을 본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제서야 나는 얇고 넓은 지식의 유용성을 설파하는 주장이 대학에서도 통용되고, 급기야 마이크로 디그리(타 전공에서 3~4과목을 이수하고 받는 학위) 또는 나노 디그리(타 전공에서 2~3과목을 이수하고 받는 학위)의 도입이 사회적 수요를 반영하였음을 어렴풋이 인지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향후 우리 대학체제 전반에 가져올 영향을 생각하면 우울하다. 필자의 상식으로 대학은 근대 세계의 합리적 이성이 작동하는 기관이며, 현대 물질문명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물론 미래 사회는 지금과 다른 메커니즘 혹은 프로세스로 작동할지 모르지만, 대학이 축적한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체계가 배제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 사회를 대비한 인재 양성이 현재의 대학 교육을 딛고 새로운 패러다임 위에서 가능할지 몰라도, 돈으로 환심을 사서 새로운 제도를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대통령과 교육부 및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이율배반적이고 반지성주의적 행태들을 규탄한다. 과학기술 진흥을 약속하고 연구개발비를 대폭 삭감하여 과학기술의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대통령, 특수목적고의 부활을 통해 고교학점제를 무력화하면서 학생의 전공선택권을 강화하겠다는 장관, 지방대학 시대를 선언하고 수도권 대학의 증원을 허용하여 지방민의 염원을 짓밟는 대통령, 선도주자(First Mover)가 되자고 부르짖지만 원천 기술 개발의 토대가 매우 약한 나라,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면서 과학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나라. 궁극적으로 기초가 허약하고 지속 가능성이 미약한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는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4-01-30 06:00:00
- [안상준의 함께꿈] 정치 지도자들여, 이 나라가 만만합니까 [안상준 교수] 대통령이 민심과 다투고 오기 정치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총선 승리에 집착하는 대통령의 파행적인 국정 운영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총선 승리를 위해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기이한 대책과 기괴한 인사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할 지경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이 임기 시작 후 3개월 만에 총선 출마를 위해 물러났다. 장관 6명을 교체하는 소폭 개각을 단행한 지 불과 며칠 만이었다. 물러나는 장관은 모두 예외 없이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 언론은 “장관직이 국회의원으로 가는 스펙이냐”고 대통령 인사 스타일을 비판한다. 정부가 그런 비판을 귀담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하다는 증좌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내년 정부 예산에 대해 국회 심의 과정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장관도 개각 명단에 포함돼 있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이고, 대통령의 권력 놀이에 동원되어 영혼 없이 처신하는 장차관들 모습에는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으로 비판한 히틀러의 하수인들이 어른거린다. 부산 엑스포 유치 경쟁은 국제적인 망신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정부의 오판과 무모함, 그에 따른 예산의 낭비, 희망 없는 게임에 들러리 서는 재벌의 모습 그 모두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였다. 그 와중에도 대통령 부부의 잦은 해외 순방은 국가적인 외교 행사인지 가족 해외여행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숱한 논란을 낳았다. 엑스포 유치 실패는 자명한 결과였고, 정부의 무능과 파렴치는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매우 이례적으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이 발표되었다. 이제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가 바뀌고 타협의 정치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가능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국민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참으로 기괴한 장면에 말문이 막혔다. 대국민 사과 며칠 뒤 대통령은 부산 깡통시장에서 유력 재벌 총수들을 병풍처럼 세워 놓고 떡볶이 먹방쇼를 벌였다. 부산의 총선 민심을 잡기 위해 체면과 격조 따위는 집어던진 천박한 퍼포먼스였다. 이 장면은 재벌의 약점을 이용한 대통령의 견리망의(이익을 보고 의로움을 잊는다)가 최고조에 달한 역대급의 기괴한 연출이었다. 이에 대국민 사과의 진정성은 증발했고, 엑스포 유치를 위한 재벌 총수들의 민간 외교는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특수한 관계를 증명했다. 재벌의 저승사자였던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에게 재벌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보였나 보다. 물론 재벌들은 찰나의 부끄러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물질적 대가를 보장받았을지도 모른다. 개발독재의 수혜자로 성장하여 지속적인 정경유착으로 유지되는 재벌의 지위를 삼척동자라고 모르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국정 책임자로서 대통령이 벌인 품위도 망각하고 국제사회에서 재벌 총수의 지위도 배려하지 않는 길거리 쇼에 국민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쯤 되면 재벌에 유리한 감세 정책도 국가 경제를 고려한 조치라기보다는 재벌을 동원하기 위한 족쇄가 아닌지 심히 의구스럽다.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그저 숨죽이고 있을 재벌의 처지를 생각하니 갑자기 재벌들이 처량하고 불쌍하게 여겨진다. 세상 참 요지경이다. 방송 장악에 대한 대통령의 집착은 더욱 두드러진다. 온갖 비난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장에 기용됐던 이동관은 과속 질주해 법을 위반했다. 자신과 대통령이 지명한 다른 상임위원 단둘이 회의를 열어 취임 이후 모두 29개 안건을 의결함으로써 그는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구’로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취지를 위배했다. 그러고도 전혀 거리낌 없이 당당했다. 의결 안건 중에는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교육방송(EBS) 이사 교체도 있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그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읽혔다. 다행히 야당은 탄핵 카드로 이동관의 질주를 멈춰 세웠다. 이동관의 사퇴는 대통령에게 적잖은 상처를 주었음에 틀림없다. 대통령은 다시 검사를 소환했다. 검찰 선배로서 몇 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된 ‘형님 김홍일’을 이동관의 후임으로 내정한 것이다. 검사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임을 추인이라도 하듯이 방송 장악에 동원된 특수부 검사의 임무가 과연 성공적으로 완수될지 지켜볼 일이다. 여당 대표 김기현의 사퇴 과정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다. 그는 용산의 여의도출장소라는 집권당을 향한 비아냥을 들어도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던 당대표였다. 대통령에 의해서 그리고 대통령을 위해서 당대표직을 수행했건만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려는 국회의원의 ‘소박한 소망’을 품은 탓에 그는 대통령의 격노를 자아냈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는 민주주의니 공당이니 어떤 정치적 개념과 행위의 적합성을 따지기 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모멸적인 토사구팽이다. 드디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국 정치의 심장부로 불려 나왔다. 이제 여당의 실권은 검사 3인방 윤석열·김홍일·한동훈 수중에 떨어졌다. 많은 평론가가 예상하던 대로 서서히 검사왕국의 전모가 드러났다. 법에 근거한 정치로서 법치가 아닌 엘리트 법조인이 법을 앞세워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법치가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검사동일체를 기초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일단 의심이 들면 끝까지 파서 유죄를 창조해내는 법기술자들의 칼날이 세상을 휘저을 태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는 국민의 명령을 무시하고 사조직을 만들어 권력을 창출하고 시민권을 억압하던 군부의 총칼과 무엇이 다른지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권력 놀이에 흠뻑 취한 대통령과 여당의 막장 드라마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름은 점점 깊어만 간다. 거대 야당의 삼류 드라마도 막장 드라마 못지않게 한심한 탓이다. 전직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인사는 연일 신당 창당 카드로 당대표 흔들기에 여념이 없고, 다른 한편에서는 당대표와 각을 세운 세력이 당대표의 이선 퇴진을 주장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는 최대 의석을 확보한 제1야당 민주당이 결정권을 갖는다. 그러나 민주당은 현재 방안에 갇힌 코끼리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쩔쩔맨다. 그저 정부의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노리고 정작 혁신과 비전은 보여주지 못한다. 근원적인 원인은 대표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와 리더십 실종에 있다. 사실 이재명 대표는 장기간에 걸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성토하며 억울한 처지를 항변할 수 있다. 많은 국민은 그의 심경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인간적인 차원과 별개로, 국민은 각자의 삶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야당 대표를 원한다. 이재명 대표는 현명한 선택으로 이 국면을 빠져나와야 한다. 그가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 검찰을 만난 것도 정치적 운명이자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대선 이후 그는 엉뚱한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의원이 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민주당 대표가 되었다. 물론 민주당 당원의 선택이기도 했다. 이재명에게 당대표직은 검찰의 칼날을 막는 방패막이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서 민주당은 방안에 갇힌 코끼리가 되었다. 민생을 위한 민주당의 노력은 그만큼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고 대통령의 폭주를 효과적으로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어렵다. 혹자는 민주당이 오히려 국민의힘보다 총선 승리를 위한 혁신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평가하고, 혹자는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노쇠한 정당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사이다’ 이재명은 사라졌다. 지방정부의 행정가 이재명의 명성은 정치가 이재명의 원대한 비전과 실효적인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재명 대표는 침묵하며 장고 중이다. 그는 조만간 선거제 개혁안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선택의 결과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미래와 직결될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 대표는 대선 공약으로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 폐기를 내세웠다. 정치개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약 폐기를 내비쳐 퇴행에 동참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즐기는 양당 체제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이제 국민은 똑바로 보고 있다. ‘멋진 패배’를 버리고 ‘초라한 승리’를 누릴 때 정치인 이재명이 건재할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각자도생은 국민의 삶을 휘감는다. 삶의 가치는 돈으로 치환되고, 인간은 돈으로 평가된다. 공동체는 해체 중이고 관계는 점점이 흩어진다. 누가 나라를 지키고, 누가 아이를 낳고, 누가 소를 키울지 모르겠다. 인구 소멸, 지방 소멸, 대학 소멸 등 대한민국이 소멸의 늪에 빠져든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지 못해 분노가 서린 대통령의 얼굴에서, 억울한 심경을 가누지 못해 저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재명의 얼굴에서 국민은 정치 지도자의 대의를 느끼지 못한다. 대의를 좇지 않는 정치인이 나라를 이끌 때 국민의 삶은 질곡에 빠진다. 도덕이 땅이 떨어지고 인명이 사소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공자님은 “자신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말을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논어 현문편, 14.20)고 말씀하셨다. 이 땅의 정치 지도자가 부끄러움을 깨닫고 대의를 좇아 나라를 바로 세우기를 세모에 기원한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3-12-27 21:41:32
- [안상준의 함께꿈]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치의 복원을 꿈꾸며 [안상준 교수] 수능이 끝났다. 낙엽 지는 거리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북풍이 불고, 옷깃을 여미는 시민의 손길은 애처롭다. 어느새 2023년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문득 현 정부 출범 즈음에 시작한 ‘함께꿈’이 어느 정도 여물어 가는지 돌아본다. 대통령의 정치 외면 정치는 국민 삶을 살피는 행위다. 정치 행위의 결과물은 정책으로 드러난다. 다양한 분야의 정책은 국정 운영 기조에 맞게 설계되고 부처 간 혹은 이해당사자 간 조정을 거쳐 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로 집행된다. 그런데 현 정부는 태생적이고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바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이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 여권의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 그리고 대선에서 이겼을 때 ‘정치 초보 대통령’을 우려하며 정치 문법을 배워야 한다는 조언과 고언이 쏟아졌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 변신하기 위한 조건으로 협치를 강조했고, 그것은 여소야대의 국회 지형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시작부터 지금껏 이를 무시하고 거부해왔다. 야당과 그 어떤 대화나 타협의 노력도 없었고, 결국 극한적인 대립만 남았다. 정부의 법률 제안은 야당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야당의 법률은 대통령의 재의권에 막혔다. 급기야 대법원장 내정자가 국회 인준을 거치지 못하고 낙마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국정 책임자와 국회 입법권의 충돌은 민주 정부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정부는 왜곡된 형태로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한 합법적인 절차를 마련했는데, 바로 시행령 통치다. 여론은 극단적으로 갈렸고, 일선 공무원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사이에서 복지부동했다. 야당 탓하는 정부와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 탓하는 야당 사이에서 책임정부는 사라지고, 문제나 사고가 터지면 일선 공무원이 책임지고 처벌받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형 사고는 언제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정도다. 정부의 무능과 미숙한 대응 사례는 차고 넘친다. 특히 국가전산망 마비로 대한민국 전자정부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주일째 장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서비스 먹통이 연달아 발생하지만 국회에서 “재난 상황은 아니다"는 행정안전부 차관의 답변은 카카오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전쟁 같은 비상 상황에 먹통이 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대통령의 질타는 ‘늘공’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와 다름없다. 세계 잼버리 대회는 준비 부족과 파행적 운영으로 전 세계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진상 규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책임 공방으로 변질됐고, 파행 운영을 위기 대응으로 뻔뻔하게 치환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아마도 모두의 기억에서 이 사태가 희미해질 때쯤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오송 지하도 참사는 또 어떤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보냈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정부의 태도는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변함없이 안위를 엿보는 공무원 세계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진상 규명에 나서는 자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 중에 거친 물살에 휩쓸려 사망한 해병대 채모 상병의 익사 사고 경위를 규명하려던 해병대 조사단장은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제동에 걸려 항명죄를 뒤집어쓰고 분투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 과정에서 천공의 역할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의 덫에 걸린 전 국방부 대변인도 그중 한 명이다. ‘바이든 날리면’ 듣기평가는 괘씸죄에 걸려 가짜뉴스를 발본색원하는 정책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진실을 누설하거나 바른말을 하면 뒷감당을 걱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알리기에 충분하다. 개혁 과제의 실종 위기 지금 국정은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의지에 달려 있을 뿐 여의도 정치와 무관하게 보인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정치를 외면하고, 전 정권과 야당 탓으로 돌리면서 정치 혐오를 유발하는 형국이다. 그 결과, 3대 개혁 과제가 무산될 전망이다. 법률의 제·개정으로 개혁 과제를 실현할 수 있건만 그 단계로 나아가기도 전에 이미 공론화 단계에서 주저앉는 모양새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유연근무제 도입이었다. 이른바 ‘9 to 6’의 일일 8시간 노동에 기초한 주당 52시간 노동이라는 골격을 파괴하고, 기업의 입장을 한껏 반영하여 조건과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취지였다. 일견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노동문화는 결코 이런 합리성을 담보할 수 없다. OECD 회원국 중 장시간 노동 톱3에 속하는 한국의 기업들이 52시간 노동 내에서 이 제도를 수용할 리는 없다. 그래서 주당 최장 69시간까지 늘어나는 문제점을 지적하자 고용노동부는 혼비백산에 빠져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흐지부지 중단되고 말았다. 그래도 장관은 머쓱한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금개혁의 요체는 내는 보험료만큼 노후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노후 삶과 정부의 재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구체적인 수치를 포함하지 않은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기금의 고갈만 부각해 국민의 노후 삶에 대한 우려를 자극할 뿐 실효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건전재정 타령만 하는 정부의 의도가 사뭇 궁금하다. 내용과 방법을 떠나 정권을 걸고 연금개혁을 이뤄낸 마크롱의 결단이 대단해 보이고 부러울 지경이다. 교육개혁은 애초부터 지향점이 없었다. 개혁이라는 허명으로 결국 수능의 비중을 높였고 특목고의 부활을 달성했고 고교학점제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언급이 교육계의 모든 사안을 뒤덮어버렸다.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는 취지는 2024 수능으로 실현될 것인가? 어림도 없다! 겉으로는 수험생을 죽이는 ‘킬러문항’이 사라진 듯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킬러문항을 없앤 ‘불수능’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불태우는 중이다. 수능이 고교과정을 짓누르는 힘은 더 커졌고, 사교육 시장은 더욱 기승을 부릴 태세다. 어쩌면 깊은 생각 없이 툭 던진 대통령의 한마디가 50만 수험생의 진로를 뒤흔든 사건이 아닐까 싶다. 교육은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다. 청소년 자살률 급등, 파국적인 초저출산율, 부동산 가격 상승, 사교육비 상승, 노후 자금의 결핍,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승자 독식 사회의 진화 등 공교육의 부실과 사교육의 창궐로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은 너무도 크고 심각하다. 무책임한 정책의 부작용 현 정부 정책들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도처에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기후위기는 기후 재앙으로 심화했고,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탄소중립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져 대표적 정책으로 일회용품 규제를 내놓았다. 종이컵을 퇴출하고,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고, 가능하면 일회용품 총량을 줄이는 방향이었다. 그에 따라 정부는 식당과 카페에 종이빨대 사용을 권장하고 플라스틱 재료 퇴출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나 전면적인 제도 시행 보름 전 환경부는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고, 플라스틱 재질 규제를 포기했다. 상식과 원칙을 벗어난 무례하고 폭력적인 번복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정책을 믿고 다량의 종이빨대를 준비한 중소기업들은 줄도산에 빠졌다. 이는 정부를 믿으면 망한다는 메시지를 낳았고,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의 협력자가 아닌 그린워싱의 첨병임을 국제사회에 알린 ‘정부재해’라 칭해야 할 정도다. 비전도 없고 원칙도 없고 상식도 없는 정부는 안타깝게도 비겁한 모습마저 보였다. 의대 정원 확대는 필연적이고 국민적 기대가 높은 사안이다. 의료 시설의 부족은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중대한 사유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대구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학생의 모습을 직접 지켜봐야 했다. 그날 밤 중소도시의 삶에 드리우는 두려움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요즘도 서울행 KTX이음 열차에서는 서울의 대형 병원을 방문하는 부모의 안위를 묻는 자녀들의 통화 소리가 예사로이 들린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런저런 실없는 핑계를 대면서 증원 규모를 빠뜨린 채 알맹이 없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거나 실제적인 증원 규모와 증원 시기 그리고 증원 방식에 관한 발표를 연기하고 있다. 그 연유가 사뭇 궁금하다. 의사협회는 이번에도 파업 카드를 꺼내들 것인가? 그렇다면 대통령은 즉각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내릴까? 의사협회와 검사정권, 과연 누가 더 힘이 셀까?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정권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런 의심을 입증이라도 하듯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 현실화율 계획 발표를 돌연 연기하고 현행을 유지하기로 했다. 필자가 이해하는 한, 부동산 자산 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은 종합부동산세와 공시지가의 현실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부자에게 이로운 감세로 이미 무력해졌다. 시세 대비 공시가의 낮은 책정은 모두에게 좋을 것 같지만 부자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다. 유예 선언은 명백히 총선 전략의 일부로 보인다. 세수가 59조원 부족하여 한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메꾸는 중에도 내년에도 변함없이 부자 감세를 유지하겠다는 정부 아닌가. 그 유탄은 서민이 맞고, 전국의 학생이 맞고, 지방공무원이 맞는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축소와 폐지, 교부금의 감소에 따른 교육 활동 프로그램의 축소와 중지 그리고 지방정부 교부금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공무원의 수당 삭감으로 드러나는 중이다. 정치의 복원을 바라며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또는 전국을 돌며 반정부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현 정부를 옹호하는 맞불시위도 만만치 않다. 상식과 이성을 견지하고 꿋꿋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정치가 실종된 사회에서 우리 국민은 각자도생의 이전투구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집권 여당과 진보 좌파의 누명을 쓰고 매도당하는 제1야당은 기득권 거대 정당의 이득을 누리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심리적 내전’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달아 ‘정서적 분단’을 우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비전, 전략,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보듬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정치가 복원되길 ‘함께 꿈’꾸는 밤이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3-11-27 06:00:00
- [안상준의 함께꿈] '자유' 외치지만 퇴보하는 '자유권' [안상준 교수] 기회만 있으면 ‘자유’를 외치는 대통령,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집권 여당.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논란이 되고, 고등학생의 그림을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인다. 나아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이 정부의 간섭과 통제로 제한된다. 이런 대통령의 모순적인 언행과 한국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는 지난 10월 19~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자유권 규약 심의’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유권 규약이란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1966년 12월 채택한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 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을 가리킨다. 이 규약은 전문과 6부 53개 조로 구성됐고 생명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그리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자유권과 관련된 인간의 기본권을 폭넓게 규정한다. 한국 정부는 1990년 4월 10일 자유권 규약에 서명했고, 4년마다 이행에 관한 국가보고서 심의를 받아 왔다. 2018년 11월에 4차 심의를 종료했고, 이번에 5차 심의를 받은 것이다. 통상적으로 심의는 당사국이 이행보고서를 제출하고 자유권위원회가 이를 검토한 후 쟁점 목록을 작성해 발송하면 이에 대한 당사국의 답변서를 받은 후 자유권위원회가 심의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5차 심의는 약식 보고 절차(Simplified Reporting Procedure)를 채택해 당사국의 보고서 제출이 생략된 채, 자유권위원회가 질의서를 보내고 당사국이 답변서를 제출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자 참여연대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 11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자유권 대응모임’은 자유권위원회에 NGO 공동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해결하지 않는 문제들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현 정부는 네 가지 측면에서 자유권을 제약하고 있다. ① 정부는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명예훼손의 비범죄화 등 후진적 사법제도의 개선에 미온적이다. ② 노조 혐오 선동, 노조 운영에 대한 행정 개입과 노조 활동에 대한 사법 탄압 등 정부와 고용주는 결사의 자유를 억압한다. ③ 정부는 공직자 의혹을 다룬 기자나 언론사에 대한 고소·고발을 남발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 ④ ‘시민사회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시민단체를 폄훼하고 보조금 지급 중단 등 다양한 조치로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약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시민단체 고유의 기능을 위축시킨다. 심의 과정은 지난 심의에서 제기된 문제를 비롯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자유권 침해 사례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검증했다. 예를 들어 심의위원들은 사형제 폐지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이유를 다시 질의했다. 하지만 “사형제의 형사정책적 기능과 대체 형벌의 가능성 등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 대표의 답변은 사실상 수용할 의지가 없거나 매우 약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2007년 이래 제기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이유가 다시 거론됐다. 정부 대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자는 법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다만 4개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 등을 두고 법안 간 차이가 있는데, 정부는 논의 과정에서 합리적인 의견을 낼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법 제정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을 언급하면서 합리적인 의견을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사실 합리적인 의견이라는 표현은 매우 모호하여 시간벌기용으로 보일 따름이다. 실제로는 정부와 고용주에게 유리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유보하겠다는 태도와 다름없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질의와 응답은 정부의 의도를 상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한 후속 조치를 알려 달라는 요청에 정부 대표는 “수사와 국정조사를 통해 대부분 진상이 규명됐고, 피해자 애로사항 해결과 지원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며 “인파 사고 재발방지 대책 65개가 포함된 국가안전시스템 종합대책 또한 추진 중.”이라고 답변했다. 정말 국가는 진상을 규명했고, 책임자를 처벌했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했는가? 159명이나 희생자가 나왔는데 과연 이후 우리 사회는 공공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숙한 국가가 되었는가? 전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송 지하도 참사가 이를 입증한다. 어떤 징후를 신고하고 어떤 긴급 상황을 알려도 우리의 안전 불감증은 깨어나지 않고, 우리의 안전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헌법상 대통령의 의무와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끝까지 인정하기는커녕 유엔 기구를 상대로 진실을 감추고 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아무런 대국민 사과도, 진실 규명도 없었고 나아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조차 수립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명백히 드러나니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자유권 규약 심의를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기껏해야 회의에 관한 소개, 질의 내용과 정부 대표의 답변 내용을 알려주는 데 그쳤다. 기사에는 심의위원의 지적 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정부 대표의 발언을 부각하고 자유권위원회의 포괄적인 분위기를 전달해 마치 정부의 답변이 수용된 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의 보도는 심의 과정에서 다양한 질의와 답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심의위원들은 대통령실 주변 집회 금지 등 집회 자유 축소에 우려를 드러냈고 건설노조 집회에 대한 탄압,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 파업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청구를 비롯해 과거 사법농단의 재발 방지 계획과 국가보안법 7조 폐지 계획 등 다양한 사안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특히 MBC의 관련 기사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답변이 사실과 다름을 유가족의 보도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알렸다.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기초적인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았고 피해자지원단과 유가족, 피해자가 직접 면담한 적도 없다”거나 “서울시는 추모행사와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고 철거 명령을 내리고 있고 정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대표단의 답변은 허위 답변이나 다름없다”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분노를 자세하게 다뤘다. 한편 경향신문의 기사는 제목(<그렇게 ‘자유’ 외쳤는데···시민단체 “유엔, 한국의 자유권 8년 전으로 후퇴 우려”>)부터 현 정부의 기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 심의를 담당하는 산토스 파이스 위원의 견해를 실으며 “정부 대표단의 답변이 소극적이었으며, 상당수의 질의에서 사실상 8년 전 4차 심의와 똑같은 수준의 답변을 했다”고 지적했다. 자유권 규약 심의에서 드러난 본질적인 문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현 정부의 무능과 허위의식이 그것이다. 현 정부의 권력은 검찰의 수중에 있다. 군대를 제외하고 모든 권력기관은 검찰 인맥이 장악했다. 그런데 집권 1년 반 동안 현 정부의 성과는 무엇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분야든 칭찬할 만한 성과나 박수 칠 만한 업적 또는 기대할 만한 변화가 떠오르는 게 없다. 대통령은 3대 개혁, 즉 연금개혁·노동개혁·교육개혁을 추진하는 중이다. 성패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개혁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현재 개혁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발표된 연금개혁안은 그야말로 빈껍데기다. 여전히 폭탄돌리기는 끝나지 않았다. 연금개혁의 핵심은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과연 연금이 고갈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과연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게 될까? 따라서 연금기금 고갈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노후 소득의 적정성을 파악하여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번 개혁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아예 제시하지 않았다. 추정하건대 정부 재정 부담을 고려해 제시하지 않았거나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지기 싫어 제안을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든 무능한 정부임을 자인한 셈이다. 노동 개혁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부는 노동 개혁의 핵심 과제로 노사 법치주의 확립과 노동 규범 현대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내세운다. 이는 노조의 불법·부당 행위를 바로잡고, 노동 시간을 유연하게 개편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대통령에게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자의 단체행동권(파업권) 보장은 안중에 없다. 작년 12월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즉각적인 업무개시명령으로 곧바로 진압되었다. 더구나 노조의 회계 장부 제출 요구와 회계 감사 진행으로 노조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고 근간을 훼손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나아가 노동 시간 개편안은 어떠한가? 노동자의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해 고용시장을 확대한다는 취지에 대해서 집중 노동과 휴가의 보장 여부, 근로기준법의 악용, 많게는 ‘주 69시간’ 노동 허용 등 다양한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려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뒤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상대적으로 교육개혁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교육의 특성상 그 결과가 미래에 드러나고, 당사자가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발표된 대입개편안은 결국 수능의 비중을 늘리고 내신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특목고를 부활하고 교육서열화를 더욱 강화해 학생의 선택권 확대를 통한 교육과정 정상화 의지를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이는 이전 정부의 성과를 철저히 무효로 만드는 동시에 다시 학생들을 지옥의 경쟁으로 몰아넣을 심산이다. 그러는 와중에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개혁의 실패를 만회할 호재로 부상했다. 처음에는 대통령이 직접 ‘해마다 1000명씩 정원을 늘리겠다’는 내용의 의사 수급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한 차례 연기하고 발표된 내용은 의대 정원 증원 규모가 빠진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현 정부의 무능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어떤 개혁의 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는 결코 무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능을 가리고 싶은 허세와 허위로서 이념전쟁을 꺼내든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어찌 됐든 대통령과 정부는 성장동력을 살리고 나라 곳간을 채우고 국민의 지갑이 두둑하게 채워지도록 국정을 운영해야 하지 않겠나. 시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점점 더 커지는 우려와 불안과 원성이 진정으로 우려스럽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3-10-30 06:00:00
- [안상준의 함께꿈] 2024학년 수시 경쟁률로 본 지방대학의 현주소 [안상준 교수] 2024학년도 대학입시의 막이 올랐다. 지난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수시 입학원서 접수가 종료되었다. 대학입시는 분명히 대한민국 국민에게 최대의 관심사이지만, 수년 전부터 지방 소재 대학에 근무하는 구성원에게 대학입시 결과는 눈썹이 타들어갈 만큼 긴박한 문제로 부상했다. 학생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학이 망할 지경이고 그에 따라 지방소멸의 가속화가 한층 우려되기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와 지방 학생의 서울 집중 현상이라는 이중적인 요인으로 지방 소재 대학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는 와중에 올해 입시는 좀더 새롭게 다가온다.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 현 정부는 멋진 구호와 함께 지방대학의 관리 권한을 지자체에 이관하고, 미증유의 재정지원 정책으로 지방대학을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한 RISE체계(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도 글로컬대학30 선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정책의 효과가 입시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기는 성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캠퍼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기에 정책의 비전과 효과가 수험생에게 전달되고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고, 입시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입시 결과를 지켜보면서 일말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서울권 대학의 평균 경쟁률이 17.79:1인 반면, 지방권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5.49:1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수험생 1명이 6장의 원서를 쓰기에 6:1의 경쟁률에 미달하면 사실상 미충원의 수렁에 빠질 게 뻔하다. 그런 계산 아래 이미 지방대의 미충원은 기정사실이 되어간다. 지방 내에서도 격차가 존재하기에 그나마 전통적인 유명세를 보유한 대학을 제외하면 많은 대학이 미충원에 시달릴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대학이 어느 정도의 정원을 채우지 못할지 수시 원서접수 결과는 대략의 윤곽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입시에서 글로컬대학30에 예비 선정된 대학의 수시 경쟁률이 매우 중요했다. 정부의 정책 대안이 앞으로 지방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설립유형에 따라 국립대와 사립대로 분리하여 경쟁률 분석과 해석을 진행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1 위 표는 국립대학 가운데 의과대학을 설치한 대형 국립대 9곳과 대체로 중소도시에 소재하고 의과대학이 없으며 규모가 작은 중소형 국립대 11곳의 2024학년도 수시 경쟁률을 집계했다. 올해 경쟁률의 추이를 살피기 위해 2022학년도와 2023학년도 지표를 병기했다. 그에 따르면 상기 20개 국립대 가운데 전년도보다 경쟁률이 오른 대학은 3개에 불과하다. 국립한밭대는 3년째 조금씩 상승하는 추세로서 지방대의 특이한 사례로 보이며, 충남대와 국립한국교통대는 전년도에 상대적으로 큰 하락을 겪고 난 후 눈에 띄게 반등하는 점이 이례적이다. 세 대학의 상승은 개별적인 현상일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미약해 보인다. 세 대학의 상승에 반해서 나머지 국립대의 경쟁률은 모두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3년째 조금씩 하강하는 추세가 단연 눈에 띈다. 부산대는 2022학년도 국립대 전체에서 경쟁률 선두를 유지하다가 작년에 소폭 하락에 이어 올해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충북대, 국립안동대, 국립금오공대 등 다수의 대학이 해마다 뚝뚝 떨어져 이제는 4:1에도 미치지 못해 미충원이 확실한 상황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국립대 가운데 다수의 대학이 실질적인 미달에 해당하는 6:1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형 국립대 가운데는 경상국립대와 제주대, 중소형 국립대 가운데는 국립공주대, 국립부경대, 국립한밭대를 제외하곤 모두 이에 해당된다. 이미 중소형 국립대 가운데 여러 대학(국립목포대, 국립군산대, 국립순천대, 국립강릉원주대, 국립안동대 등)이 2021년부터 미충원을 탈피하지 못하는 터에, 경쟁률이 더 하락함으로써 미충원의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사실 이번 수시 전형을 시작하면서 글로컬대학 30에 예비 선정된 대학의 경쟁률 추이에 관심이 쏠렸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원이 지방대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에 과연 이 점이 수험생의 대학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비 선정 명단에 오른 국립대(*로 표시함) 가운데 경쟁률이 오른 대학은 단 두 곳, 즉 경상국립대와 국립한국교통대뿐이다. 경상국립대의 상승은 아주 미미하고 국립한국교통대가 약간의 도약을 보이지만, 예비 선정 대학의 프리미엄이라고 보기에는 어색하다. 따라서 지방대학에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지원한다고 해도 수험생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미충원의 규모가 커지면 엄청난 부조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재정지원 이후에 학생의 선택이 달라질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지방대학의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재정지원을 넘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위 표는 글로컬대학 30 예비 선정 대학과 필자가 임의로 선별한 권역의 주요 대학들의 2024학년 수시 경쟁률을 보여준다. 앞서 국립대에서 살펴봤듯이, 글로컬대학 30에 예비 선정된 사립대의 수시 경쟁률은 선정 가능성과 별개로 대체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6개 대학 중 4곳이 하락했고 2곳이 상승한 가운데, 한림대의 상승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고 순천향대의 상승이 눈에 띄지만 작년의 급강하를 만회하는 반등의 의미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동대를 제외하고 예비 선정된 대학에는 의과대학이 있어 한층 강화된 의과대학 진학 열풍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수도권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세 대학(한림대, 순천향대, 연세대 미래캠)이 6:1이 넘어 안정권을 보이지만 수도권에서 상당히 떨어진 세 대학(울산대, 인제대, 한동대)는 4:1도 넘지 못하는 약세여서 실질적인 미충원이 예상된다. 이 현상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글로컬대학30이 재정지원을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한, 지방대의 학생 충원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 지방 사립대학의 2024학년도 수시 접수 결과는 전체적으로 약보합세로 판정할 수 있다. 작년보다 학령인구 감소폭이 커지고 수험생 수가 최초로 40만명 이하로 떨어지는 해라는 암울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수시 경쟁률 하락폭은 예상보다 크지 않다. 물론 각 권역에서 대표격인 사립대학임에도 영남대가 6.09:1을 기록하여 가까스로 미충원의 우려를 벗어날 뿐, 나머지 대학은 모두 미충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동서대처럼 하락폭이 매우 큰 대학은 지방 사립대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 같아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지방대 전체를 통틀어서 공과계열 학과 전반과 특히 첨단기술 분야 학과가 경쟁률 하락을 견인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러운 요소다. 예를 들어 경북 지역의 국립안동대와 국립금오공대를 살펴보자. 국립금오공대는 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2022학년도에 6:1에 가까운 경쟁률을 보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4:1에도 미치지 못함으로써 구미 국가산업단지를 끼고 있는 입지를 고려할 때 자존심을 구겼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국가산업단지의 규모와 영향력이 계속 줄고 있는 최근의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국립안동대의 경우 공과대학 14개 학과 중 6:1을 넘는 학과가 단 하나도 없고, 3:1에도 이르지 못해 대규모 미충원이 예상되는 학과는 무려 9개에 달한다. 이런 경향은 국립목포대나 국립순천대 같은 중소형 국립대학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나타난다. 나아가 기술혁신과 융복합을 반영하여 학과 명칭을 새로이 짓거나 바꾼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첨단’, ‘융복합’, ‘AI’가 명칭에 들어간 학과들은 2:1을 넘기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첫째, 지방의 제조업 기반 약화와 특히 중소도시 학생의 탈지역 흐름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구미의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지방 산업단지가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역민의 삶에 기여하는 정도가 약해지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가능하면 수도권으로 이동하여 내일을 준비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둘째, 지방대학에 오는 학생의 학습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기초적인 수학 능력을 갖춰야 공학적인 이론과 실제를 습득할 수 있지만 많은 학생들은 이를 상당히 버거워한다. 게다가 첨단과 융복합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이와 연관된 학과명을 멀리하는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지방대 소멸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지방대 스스로 이를 극복하고자 몸부림치기도 한다. 국립군산대, 국립목포대, 국립안동대, 국립순천대 등 중소형 국립대학은 최근 몇 년 새 나름의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모두 4:1의 경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수시 결과를 받아들었다. 자체적인 변신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얘기다. 사립대학 역시 이 점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대로 간다면 모두 지방대라는 이름으로 휩쓸려 내려갈 운명이다. 문제 해결의 요체는 학령인구 감소다. 그에 따라 대학의 규모도 줄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무엇보다 효율적인 감축이 중요하다. 대학 간 적극적 통폐합과 캠퍼스 특성화를 통한 전향적 변신은 분명히 앞서 언급한 학내 구조조정이나 외형적 변모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의 두 국립대 안동대와 금오공대를 살펴보자. 인문학을 모태로 성장한 안동대의 공과대학을 금오공대로 넘겨 공학 특성화 캠퍼스를 구미에 조성하고 안동대 캠퍼스를 인문학, 생명과학 및 지역사회에 필수적인 학과들로 특성화하는 한편, 도청 신도시에 평생교육을 중심으로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면 경북 유일의 대학이자 신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로컬대학30을 계기로 두 대학을 통합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나 서로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해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결과에 따라서는 양측이 두고두고 후회할 수도 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유사하리라 본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없으면 지방대학은 모두 소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지만, 국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조용하다. 대학과 지자체에 권한과 재정을 이관하는 것으로 제 할 일 다 했다는 식이다. 대학의 변신과 대학 간 통합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나아가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실현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제가 국가균형발전이고, 대학이 국가균형발전의 거점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전)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2023-09-26 16:06:12
- [안상준의 함께꿈] '정국 뇌관' 대한민국 교육 현장 [안상준 교수] 교육 현장에 쓰나미가 밀려온다. 한여름 무더위가 휘감은 거리에서 교원의 성난 목소리가 거리를 뒤덮는다. 대학가에는 소멸의 공포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며 교수들의 한숨과 체념이 하염없이 늘어진다. 느닷없이 수능 출제의 기조 변경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과 공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올 하반기는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아우성이 정치 이슈를 뒤덮고 내년 총선에 커다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 뚜렷하다. 기나긴 무더위를 보내고 맞는 9월은 새로운 시작이다. 각급 학교는 2학기를 맞고, 여의도에는 정치의 계절이 도래한다. 그 출발점에 ‘9·4 교육공동체 회복의 날’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현재까지 교원 6만여 명이 연가와 재량휴업을 활용하여 7월 18일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 교사 49재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세종시교육감(최교진)과 서울시교육감(조희연)은 공개적으로 지지와 동참 의사를 표명하며 학교 구성원의 관계 회복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9·4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예의 그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분하겠다고 경고와 협박을 표명했다. 지금까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대한 교육 당국과 수사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고, 교실 붕괴 방지를 위하여 거리에서 외치는 교원의 요청에 대한 교육부와 정치권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교육 당국의 경고와 협박에도 타오르는 교원의 적극적인 투쟁 의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권의 재정립이다. 그것은 교사의 권위 회복이기도 하고, 교사의 가르칠 권리 회복이기도 하다. 교실은 가르치는 자(교사)와 배우는 자(학생)의 교감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질서는 구성원의 언어적 소통과 공동체적 협력에 기초하여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도덕적·지적 권위는 학생과 학부모에 의해 도전받지 않아야 하며, 학생의 배울 권리와 인격적 대우를 받은 권리는 훼손될 수 없다. 한때 학교는 체벌과 폭력의 현장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고 항변하며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몰리는 학생들은 적지 않다. 경제적 풍요, 교사의 자질 향상, 교육 환경 개선 등 교육 여건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가운데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교육 재정의 획기적인 확충과 사립학교 교원의 인건비 지출 등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대표적인 성과다. 하지만 제반 요소의 향상과 개선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은 여전히 ‘승자 독식의 교육관’에 눌려 신음하는 중이다.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일류 대학 진학이 사회적 성취로 이어지는 등 학업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고 대학 입시 성과로 교사의 능력을 측정하는 사회에서 상호 소통하는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인 관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른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라는 과도한 반응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교사들의 소망은 소박하다. ‘가르치는 본업’에 전념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애정을 갖고 가르치는지,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지’ 학생들은 직감한다. 그리고 대다수 교사에게는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학생을 관리하고 학부모와 상담하고 성적과 사무를 처리하는 업무에 지쳐 있다. 최선을 다해 가르치기 위하여 교안 작성에 공을 들이고 학생과 교감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사든 교수든 학생들과 지적 대화를 나누고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질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기는 매일반이다. 따라서 교육 당국의 최우선 과제는 학생 관리를 포함한 교사의 행정업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교사가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가르치는 능력 향상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9월이면 대학가에는 개강의 신선한 바람이 분다. 방학을 마치고 다시 보는 학생들의 면면에는 무더위 속에 영근 모습이 비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대학가를 휘감는 소멸의 바람이 이번 학기부터는 더욱 스산하게 불어닥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 바람의 진원지는 교육부라는 점에서 저항의 맞바람 또한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컬대학30’ 사업 선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예비 선정된 15개 사업단은 10월 6일까지 본 선정을 위한 시행계획서를 제출하고, 본 선정 결과는 10월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10월이면 수시 입학 전형이 시작되고 경쟁률이 드러나는 때라는 점에서 발표 시기가 상당히 미묘하게 다가온다.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선정이 ‘지역과 대학이 탄탄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동반 성장을 하도록 지역과 연계한 대학의 혁신을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표방한다. 그러나 대학들은 본 사업이 오히려 대학의 무한 경쟁체제를 유도하고 비수도권의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사업은 선정 기준으로 제시된 학과 간, 대학과 지역‧산업 간, 국내외 간 벽 허물기를 제시한다. ‘지역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경쟁, 교육 수요자 의견 중시, 교육‧연구의 질 제고를 위한 경쟁 촉진, 획일적인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는 효과’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자연적 요인과 대학 서열화와 수도권 대학 쏠림이라는 사회적 요인으로 소멸의 위기를 맞은 비수도권 대학을 살리는 대책으로 다시 경쟁 구도를 조성하여 살아남으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본질적으로 대학 구조조정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6월 하순에 발표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대학의 단위로서 학과 또는 학부의 설치 원칙을 철폐한다. 이제 대학은 융합학과(전공) 신설이나 자유전공 운영, 학생 통합 선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 조직을 자유롭게 구성·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이제부터 대학에 무자비한 학생 유치 경쟁, 전공 존치 경쟁, 재원 분배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고장이나 다름없다. 치열한 경쟁 속에 교육과 연구를 비롯한 대학의 본원적 기능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학교 밖 수업도 허용하고 있다. 이제 학교 밖에서 이동수업과 협동수업이 가능해진다. 특히 협동수업은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현장 실무지식 습득을 위한 목적으로 산업체·연구기관 등과 맺은 협약에 따라 해당 기관이 보유한 시설·장비·인력을 활용하여 학교 밖 장소에서 실시하며, 학점 인정 범위는 졸업학점 중 4분의 1까지 확대된다. 이는 대학이 고급 지식을 생산하는 고등교육기관보다는 기업을 위한 취업 준비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교육부는 대학 자율이라는 허울을 쓰고 국가 재정으로 기업의 인재 양성을 위한 통로를 마련한 셈이다. 한국 대학에서 고급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기능은 사치다. 나아가 취업과 연계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초과학, 인문학, 예술 분야는 대학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게 뻔하다. 고등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큰 그림 없이 즉흥적이고 폭력적인 구조조정이 라이즈 체계와 글로컬대학이라는 미명 아래 펼쳐진다. 지역의 사립대나 중소 도시의 국립대가 소멸의 늪으로 빠지는 상황을 대학의 구성원과 지역 주민은 그대로 두고 볼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11월 16일에 치를 수능은 교육 현장에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대통령의 킬러 문항 언급 이후 신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킬러 문항 배제를 공식적으로 단언했다. 신임 원장은 교사 출신으로서 장학관을 거쳐 교육부 관료를 지낸 바 있다. 대통령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임무를 띠고 평가원장으로 낙점된 인물로 볼 수 있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수능 난이도는 어떻게 변할까? 교육부의 바람대로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실 적정한 난이도라는 표현이 매우 모호하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풀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면 당연히 난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예측은 이미 재수생의증가를 불러왔다. 대학에 다니는 이른바 반수생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는 고학력자들이 의대 진학의 꿈을 다시 지피고 있다는 소문이 횡행한다. 그렇다면 고3 학생들 관점에서 난데없이 경쟁자가 늘어난 셈이다. 당락에 따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통령을 원망할 요인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적정한 난이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예년처럼 불수능 평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출제에 동원된 모든 인원은 조사와 수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출제진으로 참가한 교수와 교사가 초유의 상황에서 적정한 난이도를 어떻게 상정할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가 예상된다. 그런 예상을 한다면 출제진 확보 자체가 어려운 난감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훌륭한 출제진 구성은 수능의 성패를 좌우하는 제1요소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가원의 고충이 그 어느 때보다 크리라고 여겨진다. 어떤 경우든 이번 수능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난제가 되었고, 결과에 따라 휘발성 강한 이슈로 터질 우려가 있다. 교원의 분노, 대학의 소멸 우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 2023년 하반기 교육 현장과 정치권을 강타하리라고 예상되는 세 가지 요인을 검토하면서 교육 문제의 근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성적지상주의와 입시, 대학 서열화, 지방과 중앙의 격차 심화, 각자도생의 사회 분위기 등 교육 현장의 병폐들이 집약되어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으로 지친 구성원들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무한경쟁에 던지기 싫고 무한경쟁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버겁다는 청년의 아우성이 궁극적으로 국가 소멸의 우려를 낳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무한경쟁의 해소이고 입시에 종속된 교육의 해방에 있다. 이제 교육 당국과 국민 모두에게 대안적 사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쟁 교육에서 전인 교육으로 교육의 지향점이 바뀌어야 한다. 최근 방영된 ‘EBS 세계의 교육’ 시리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1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관리체계가 통제시스템에서 자율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은 국가의 의무로서 효율성 원칙에서 보충성 원칙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투여되는 공공재정의 비율이 높지 않다. 특히 고등교육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러고도 대학 혁신을 외치는 모양새가 무모하게 다가온다. 진정한 글로컬대학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과시적 성과보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 함께 이마를 맞대야 할 때다.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2023-08-29 05:00:00
- [안상준의 함께꿈] 극우화하는 유럽 정치 …드리우는 전쟁의 그림자 [안상준 교수] 2015년 여름 학생들을 인솔하여 동유럽 현장학습을 다닐 때였다.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켈로티 역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난생 처음 마주친 생경한 광경에 당혹스러웠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자국을 버리고 서유럽 국가로 망명하려는 난민들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뉴스에서 듣던 난민의 실체를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면서 이주, 국적 그리고 평화 등 인간의 생존과 그 가치를 곱씹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영화 ‘스위머스’(The Swimmers)를 감상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는 무작정 고무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 땅으로 향하는 난민의 실태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가운데, 천신만고 끝에 베를린 난민촌에 들어간 시리아 수영선수 출신 자매가 각고의 훈련 끝에 IOC ‘난민대표선수단’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하는 스토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시 독일 총리 메르켈의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홍보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 있다고 느껴졌다. 현재, 여전히 지중해의 파도는 난민의 생명을 집어삼키기 일쑤고 유럽 각국은 이주민 정책으로 쉽게 내홍에 휘둘린다. 바로 지난 7월 초 네덜란드 연정의 내각이 총사퇴를 결정했다. 연정 붕괴의 발단은 난민 정책에 대한 이견이었다. “전쟁 난민 가족들의 입국을 매달 최대 200명으로 제한하고 전쟁 난민들이 자녀를 데려올 경우 최소 2년을 기다리도록 하겠다.” 중도우파 보수 정당 ‘자유민주인민당’을 이끌며 14년째 총리직을 수행하는 마르크 뤼터가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난민 수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가능한 한 가족의 입국은 보류하자는 방안이었다. 연정의 파트너 중도좌파 정당 ‘민주주의66’은 이러한 반인륜적인 난민 정책에 강력히 반발했고 연정은 붕괴했다. 사실 이 뉴스를 접하고 ‘네덜란드 너마저!’ 하는 생각에 실망스러웠다. 강소국 네덜란드가 어떤 나라인가? 필자가 아는 한 네덜란드는 유럽, 아니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국가에 속한다. 16~17세기 전 유럽을 광기와 전쟁으로 몰아넣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에서 박해받는 신앙인들의 종착역은 네덜란드였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개방과 관용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국가였다.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포용은 근대 초기 이래 네덜란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런 네덜란드마저 난민에 대하여 점점 제한적인 수용으로 선회하는 상황은 유럽이 난민 수용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로 읽혔다. 뤼터 제안의 문제는 극우파의 논리를 보수 집권여당이 정책에 차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는 네덜란드 국민의 상당수가 이민자 수용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민에 관한 강경책이 극우 정당이 이민에 관한 담론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을 띠었다고 분석했다. 최근 독일의 정치적 상황 변동은 더욱 우려스럽다. 전임 총리 메르켈의 난민 수용 정책에 반발하는 극우 세력의 준동이 심상치 않아, 이러다가 극우 정권의 성립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섬뜩할 정도이다. 실제로 지난달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후보들이 시장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바로 작센-안할트주 라군에스니츠 시와 튀링엔주 존넨베르크 시로, 모두 과거 동독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들이다. 통일 이후 2등시민의 불만을 꾸준히 표출한 동독 지역 주민들이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은 10년 전 창당 초기부터 예상 밖의 인기를 얻었는데, 세계 경제의 위기와 그로 인한 실업률 증가라는 상황이 극우가 성장할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방의회와 연방의회를 넘어 이미 유럽의회에도 진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치 정권의 퇴출 이후 독일 정치에서 극우 성향 시장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 분명하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는 이런 변화에 대한 우려를 실증적으로 반영한다. 극우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집권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 일요일에 총선이 치러진다면’ (Polit Barometer)] SPD(사회민주당, 중도좌파, 현 집권당) CDU/CSU(기민련 =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중도우파) Grüne(녹색당, 중도좌파, 연정 참여) FDP(자유민주당, 중도우파, 연정 참여) AfD(독일을 위한 대안, 극우 정당) Linke(좌파당, 좌파 정당) Andere(기타 소수 정당을 통칭)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을 위한 대안’은 20%를 얻어 아직 집권까지는 부족하지만 제1야당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중도우파 보수당 기민련이 여전히 1당의 지지세를 획득한 가운데, 현 집권 여당 사민당의 지지세는 3위에 그쳐 초라하기 그지없다. 녹색당이 분전하는 모습이지만, 극우 정당의 약진을 저지할 정도의 지지는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중도좌파와 좌파가 인기를 잃는 만큼 극우 정당의 지지가 확대되는 추세가 역력하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난민 정책의 반동으로 보수 연정이 붕괴하고 극우적 성향의 정치세력이 약진하는 현상은 다른 나라들의 극우파 득세와 더불어 유럽 정치 지형의 전반적인 극우화 경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00년 만에 도래한 이탈리아 극우 정당의 집권, 프랑스 극우 정당의 괄목할 만한 의회 진출, 대표적인 북유럽의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극우 정당의 제2당 지위 확보 등 주요 국가에서 극우 세력의 선전은 개별 국가의 차원을 넘어 범유럽적이다. 그래서 차기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어느 정도 약진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 6월 하순 프랑스에서는 알제리계 10대 소년이 검문 중에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7월 초순까지 낭테르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이주민의 폭력적인 항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검문 과정에서 이미 프랑스 경찰은 소년에게 위협을 가했고, 소년의 저항은 곧바로 총격으로 이어졌다. 2005년 경찰의 추격에 쫓기던 두 청년이 철조망을 타고 넘다가 감전사를 당한 사건과 판박이다. 물론 이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시위대의 구호에서도 이는 감지된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프랑스인이 될 수 없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를 청소하고 물건을 배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프랑스 정부가 이주를 허가한 과거 프랑스 식민지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주민들이었다. 이번 시위로 극우파 대선 후보 마린 르펜의 인기는 더욱 치솟고 있다. 여론의 추이를 보면 그는 이미 대통령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차마 자기 손으로 극우 대통령을 찍을 수 없었던 프랑스 국민의 양심(?)은 어쩔 수 없이 마크롱을 선택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 마크롱은 철저하게 친기업 반서민 정책으로 국민을 우롱했다. 중도우파도 중도좌파도 몰락한 프랑스 유권자의 표심에 주목하는 이유다. 유럽 정치 지형의 극우화는 전쟁의 위험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속되는 경제위기, 장기적인 실업률 증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실질적인 삶의 질 저하는 중산층의 붕괴를 초래하고 분노와 혐오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20세기 초반 인류의 재앙이 다시 도래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1차 세계대전은 흔히 제국주의 전쟁으로 불린다. 유럽의 열강이 제국주의를 본격적으로 실천하며 식민지 개척에 나선 시점은 바로 독일통일 직후인 ‘1873년 공황’기였다. 비스마르크는 동맹체제로 신생 독일제국에 다가오는 전쟁을 막았지만, 마침내 독일이 제국주의 경쟁에 뛰어들자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1900년 전후 유럽의 근대화와 번영을 가리키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좋은 시절)’는 외적으로는 열강의 식민지 경영과 세계 분할, 내적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혁명의 열기를 동반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1차 대전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총력전이었다. 전쟁은 무려 4년을 끌었고 1000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20년 뒤 극우 전체주의자들은 전 인류를 또다시 전쟁의 참화로 끌어들였다. 이번에는 6년 동안 7000만명이 희생되었다. 그 근저에는 세계 경제의 파탄, 개인의 생존 위기, 불평등과 사회적 원한이 도사리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으로 전쟁을 감행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우민화가 뒤따랐다. 그렇게 나치가 탄생했고, 인류 최악의 전쟁범죄가 벌어졌다. 쿼바디스(Quo vadis)? 지난 세기의 역사를 되새기며 묻는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2023-07-25 06:00:00
- [안상준의 함께꿈] 킬러문항도, 5지선다형도 아니라면 [안상준 교수]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를 내면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이권 카르텔은 교육 질서를 왜곡하고, 학생들이 같은 출발선에서 공정한 기회를 제공받는 것을 저해한다." 지난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 관련하여 발언한 진술의 일부이다. 가히 파격적이고 예측 불허다. 그래서 수능 당사자들은 불안과 혼란을 호소한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수험생들은 레이스가 흐트러질까 불안해하고, 학부모들은 자녀의 입시 결과에 악영향이 미칠까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일선 교사들의 난감한 표정과 학원 강사가 지을 의문의 미소마저 떠오른다. 모두가 느닷없는 평지풍파에 당황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의 돌출 발언에 여론의 반응이 예상 밖으로 커지자 이미 희생양이 발생했다. 수능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부의 국장이 경질되었고,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게다가 여당은 대통령의 진의를 옹호하며 킬러문항을 비난하고 사교육 업계의 일타강사 때리기에 나섰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혹여라도 출제 난이도 때문에 검찰의 조사를 받는 시나리오를 제기하며 과연 올해 수능을 무난하게 치러낼 수 있을지 우려한다. 수능은 대학 진학의 관문이다. 대학마다 수시 전형의 비중이 높아졌어도 학력 측정의 척도로서 수능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특히 상위권 학생의 실력을 변별하는 출제 난이도는 수능의 효능감을 과시하는 요소이면서 출제 오류의 원인이 되곤 한다. 2022학년도 수능이 끝난 후 평가원은 생명과학II 문항의 정답 오류 시비에 휘말렸다. 당시 평가원은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아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다시 말해서 ‘문항은 틀렸지만, 오류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견 모순된 태도로 맞섰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출제자는 수험생들이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풀이 방법을 수립해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경우, 정답을 고를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해야 한다. 문제의 오류로 인해 정답을 선택할 수 없게 됐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수능의 변별력과 킬러문항의 등장이다. 변별력은 공부 잘하는 수험생과 그렇지 못한 수험생의 실력차를 정확히 구별하는 척도를 말한다. 시험의 난이도와 변별력은 비례한다. 그런데 수능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이다. 100점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몇 명이 100점을 맞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수가 100점을 맞는 복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킬러문항이 등장한다. 즉 공부를 잘해도 틀려야 하는 문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가원은 ‘변별’을 수능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국민이 바라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대체로 불수능 기조를 유지하는 추세이다. 변별력을 기초로 수능의 공정성은 절대적인 가치로 승화했다. 경제력의 격차, 기회의 차별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시와는 달리 공정성 시비 없이 수험생을 줄 세우려면 시험이 가급적 어려워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원칙이 되고 국민은 큰 저항 없이 수용했다. 교육과정은 입시를 위하여 존재하고, 교육목표는 입시 성과로 귀결된다. 그 결과, 학력과 학벌이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학벌사회가 탄생했고, 공부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대통령의 돌발적인 수능 발언은 교육개혁의 시발점일까 아니면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나온 즉흥적인 제안일까? 교육과정과 수능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어느 정도일까? 수능의 초고난도 킬러문항을 질책하면서 대통령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의 출제의 예로 국어의 비문학 복합지문을 콕 집어 지적했다. 그런데 현행 교육과정은 핵심 목표로서 '지식 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반 마련'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미 학교는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의 벽을 허물어 융합 교과 수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는 취지도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대통령은 학과의 벽을 허무는 대학에게 전폭적으로 지원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교육정책에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인식과 지시가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미래인재 양성을 표방하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전수평가를 도입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내세우면서 특목고 폐지를 번복하는 정책의 상충이 다반사다. 그날 대통령의 발언은 준비되고 다듬어진 정책의 지시라기보다 즉흥적인 대응으로 보인다. 문제는 만기친람 스타일의 대통령이 즉흥적인 사안을 불쑥 지적하고 지시하는 행태가 교육 분야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경제를 위한 교육의 쓸모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도구적 교육관이 빚는 반복된 현상으로 이미 지난해 반도체학과 설립 지시에서도 드러났다. 대학 입시는 교육과정 평가의 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사안이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학입시 개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윤석열 대통령은 과소평가한 게 틀림없다. 수능은 일종의 늪이다. 준비 없이 내딛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줄 세우기식 상대평가를 없애고 수능을 포함하여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입시개혁이 뜨자마자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 김상곤 교육부 장관 겸 초대 사회부총리는 교육개혁의 첫발도 떼지 못하고 맥없이 물러났다. 이번 논란으로 대통령과 여당에게 밀려올 파고가 서핑을 즐길 정도의 수준일지 아니면 쓰나미가 되어 모든 걸 휩쓸어 갈지 자못 궁금하다. 이 가이드라인이 대략 50만 수험생의 인생을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그로 인하여 수험생의 반발이 터져 나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통령이 직접 발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능의 난이도와 사교육비 감경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챙길 사안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마치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에 대하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전을 벌임으로써 외교문제가 더욱 복잡미묘해지는 것처럼, 교육 내적인 문제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전문가와 교육부 관료에게 맡기는 게 타당해 보인다. 그보다 큰 틀에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해결할 문제는 따로 있다. 수능으로 가는 ‘교육지옥’에서 학생과 학교를 구해내는 임무다. 대한민국 초·중등 학생은 시험의 굴레에서 시들기 일쑤이고, 획일적인 교육과정 때문에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몸에 익히지 못한다. 5지선다형 찍기 교육으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증강현실 등 최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상품으로 만들 인재의 육성은 요원하다. 교육방식의 다양화와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교육목표의 설정이 시급하다. 식민지 시대부터 지속되는 공급자 위주에서 교육 수요자 위주로 교육의 관점이 전환되어야 한다. 수능은 공정한 잣대를 핑계 삼아 교육 수요자를 객체로 전락시키는 도구로 작동한다. 교육 수요자의 사고 능력이나 전인적 인격과는 전혀 무관한, 타인의 성적에 따라 나의 지적 능력과 심지어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비인간적인 방식이라는 말이다. 2019년 11월 한국교육개발원은 대학 입시 제도의 개편을 모색하면서 주요 국가들의 최근 입시제도를 소개한 바 있다. 전반적인 흐름은 획일적인 평가를 벗어나 다면적인 평가를 강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독일과 프랑스처럼 교육의 공공성이 확립된 국가는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서 공부할 권리를 보장한다. 학문의 성격상 입학 인원 제한이 불가피한 일부 학과(의학과, 심리학과, 법학과 등)의 경우에 제한하여 경쟁 입시가 치러진다. 미국, 일본, 중국도 예외 없이 다원화하고 차원이 다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학생의 수학능력을 다면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날한시에 5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으로 학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무모한 방식을 재고하고, 국가적 과제로서 수시 전형의 공정성 담보 및 한국형 다면평가의 방식 도입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지식영역을 넘보는 시대가 도래하여 인간에게 남겨진 분야가 무엇인지 우리는 냉정하게 분별할 시점에 와 있다. 모든 전문가는 창의력과 철학의 영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치른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문항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1. 행복은 이성(理性)이 관계된 영역인가? 2. 평화를 원한다는 것은 정의를 원하는 것이기도 한가? 3. 제시된 레비 스트로스(프랑스의 인류학자, 구조주의자)의 <야성의 사고> 중 한 대목을 읽고 분석하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에게 묻는 문제로서 참으로 품격이 있다. 위 문항 중 하나를 골라 4시간 고민하고 답안을 작성하는 수험생을 생각해보라.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논란이 된 지 5일 만에 이주호 장관은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공정 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기법을 고도화해 출제진이 충실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 점검을 하는 등 교육부 수장으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하겠다.” 대통령의 의지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봐야 5지선다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미네르바대학, 태재대학 등 캠퍼스 없이 세계 각지를 옮겨다니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신개념의 대학을 논의하는 세상이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은 우주로 여행하는 시대를 꿈꾸고 있다. 수능의 공정성과 문항의 난이도를 놓고 여론이 들썩일 때가 아니다. 우연히도 대통령의 킬러문항 발언 덕에 본격적으로 수능 개편을 논의할 시점이 찾아왔다. 역사는 예기치 않게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필진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2023-06-27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