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 박사 ogatayoshihiro@gmail.com
요시히로 박사 ogatayoshihiro@gmail.com
-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 前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마이나 카드' 논란으로 본 日 디지털화 현주소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지금 일본에서는 ‘마이넘버’를 둘러싼 문제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마이넘버’란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것으로 일본 거주자에게 부여되는 12자리 고유번호다. 한국 주민등록번호와 다른 것은 번호 부여는 자동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번호를 사용할지와 그 번호에 근거한 ‘마이나 카드(마이넘버 카드)’를 발급 받을지 여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이 제도가 도입됐는데 애초에는 마이나 카드가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원래 일본에서는 2002년에 ‘주기넷(주민기본대장 네트워크)’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어 모든 주민에게 11자리 번호가 부여되었다. 주민에게 부여된 번호에 여러 가지 개인 신상정보를 연결시켜 행정처리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주민 서비스를 효율화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주기넷은 “국민 총 등번호제”라고 불리며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이러한 상황이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모든 국민(정확하게는 외국인도 포함되기 때문에 ‘주민’)에게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행정에 의해 관리된다는 것, 즉 개인 신상정보가 국가의 손에 주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많은 이들이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신상정보 유출 등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이 우려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사회의 개인주의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과거에 국가라는 이름 아래 개인이 전쟁에 휘말려 불행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전쟁관에 따른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어쨌든 2000년대 주기넷 도입 당시는 정부 방침에 반(反)해 시스템 접속을 거부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오기도 했고, 그 번호와 시스템을 활용한 행정서비스를 거부한 이들도 꽤 많았다. 번호를 활용한 주기카드 보급도 결국 5%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2016년, 마이넘버 제도로 이름을 바꾼 거의 비슷한 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마이넘버 제도는 주기넷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무엇보다 주민 개개인에게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행정처리와 관련된 정보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보니, 많은 이들이 반발했던 “총 등번호제”라는 비판은 동일하게 적용될 듯하다. 그런데 이번 마이넘버 제도의 경우, 정부가 큰 예산을 들여 적극적으로 보급해 지금까지 약 78%의 사람들이 번호에 기반한 마이나 카드를 발급받는 데까지 나아갔다. 일본 정부가 사회보장제도나 세금, 그리고 재난지원 등의 행정절차에 한해서만 번호를 활용하겠다며 시작한 마이넘버 제도지만, 세무서에 제출해야 할 원천징수표나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야 할 급여지급보고서 등에는 마이넘버 제공이 필수다. 또 어느새 금융기관 거래에서도 “협력을 부탁한다”는 식으로 고객들에게 마이넘버 제공을 전제조건처럼 제시하고 있다. 마이나 카드 보급을 위해 일본 정부는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데, 대대적인 TV광고를 반복하며 ‘마이나 포인트’ 캠페인을 통해 최대 2만 포인트(현금 2만엔에 해당, 한화로는 약 20만원)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마이나 카드를 신청한 후 QR코드 결제 등 전자결제 시스템에 등록한 다음 충전 및 쇼핑을 이행했을 때 5000포인트(5000엔), 마이나 카드에 부여되는 건강보험증 대체 기능을 신청하면 7500포인트(7500엔), 공금 수령 계좌를 연결시킬 경우 7500포인트(7500엔)를 전자결제 포인트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는 일본 내 전자결제 서비스의 활성화 목적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 내년 가을쯤에는 지금의 건강보험증이 폐지되고 마이나 카드로 대체될 전망이다. 또 올해 4월부터 이미 기존 건강보험증으로 진료를 받는 경우 마이나 카드(마이나 보험증)보다 보험 적용(30% 부담) 시 초진에서 12엔이 비싸지는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보험증을 폐지한다는 것은 바로 마이나 카드를 소지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에 가지 말라는 소리와 같고, 이는 마이나 카드 취득 의무화와 다름 없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마이나 카드 샘플] 한편, 현금 2만엔 상당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카드 발급을 신청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물며 마이넘버의 활용으로 여러 면에서 생활이 편리해진다면 신청을 미룰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한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주민등록번호 제도였다. 필자와 같은 외국인 거주자에게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할 수 있는 외국인등록번호라는 유사한 번호가 부여되는데, 앞의 6자리가 생년월일, 뒤의 7자리 중 첫 번째 숫자가 성별을 나타내는 것도 주민등록번호와 동일하다. 다만 외국인의 경우 성별을 나타내는 부분이 5~8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어쨌든 당시 한국은 주민등록번호(외국인등록번호)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곳이었다. 휴대폰 계약이나 인터넷 연결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본인확인 절차에 13자리 번호가 늘 요구됐다. 2000, 2010년대에 발생한 대기업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 등으로 제도가 개선되어 이제는 무작정 번호를 요구할 수 없게 됐지만, 본인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외국인등록증)을 요구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동시에 그 번호만 있으면 한국에서의 생활은 현격히 편리해진다.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 신고 등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할 수 있고, 병원에 굳이 보험증을 가져갈 필요도 없으며, 번호만 있으면 신분증 제시도 불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상생활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있기 때문에 간편화되고 있는 절차가 수도 없이 많다. 코로나 팬데믹 때 “K방역”이라고 불리던 한국의 철저한 방역체제가 가능했던 것 또한 주민등록번호와 연결된 많은 개인정보가 활용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다. 필자도 그런 편리한 한국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는 데 많은 고생을 겪었다. 일본 국적자지만 일본 사회가 한국처럼 만능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갖추지 않다 보니 본인확인 절차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한국에 살면서도 꼬박꼬박 갱신해놓았던 일본 운전면허증과 일본 신용카드가 있었기에 휴대폰을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다른 본인확인 절차도 진행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운전면허증이나 건강보험증, 혹은 여권 등과 행정에서 발행해주는 종이 호적등본이나 주민표 중 여러 개의 증명서를 대조해 본인확인을 한다. 그러던 일본이 지금 마이넘버 제도를 널리 보급하려 하고 있다. 일단 보급되면 지금 한국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듯이 그 편리함은 일본 사회에 금방 침투될 것이다. 다만, 1962년 도입된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제도가 과거 불순분자 식별을 위해 널리 보급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주민 개개인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함으로써 개인정보를 일원적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것의 효율성과 아울러 위험성이 지적될 수밖에 없다. 과거 한국에서 주민등록증에 각종 개인정보를 탑재할 수 있도록 전자카드화라는 시도가 잠시 추진되었지만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일본의 마이나 카드에는 IC칩이 탑재되어 있다. IC칩에는 카드에 기재된 정보(이름, 주소, 생년월일, 성별, 개인번호, 본인 사진 등)와 본인인증을 위한 전자증명서만 들어가 있고, 자신이 설정한 비밀번호를 일정 횟수 이상 틀렸을 경우 카드는 무효화되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또한 마이나 카드의 정보를 스마트폰에 담아 활용하는 서비스도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이나 카드의 보급과 아울러 그것을 활용하는 서비스도 다양하게 확대 중이다. 그런 와중에 일본에서는 지난 5월 26일, 마이넘버 제도와 관련된 정부 부처 장관 3명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이넘버를 둘러싼 잇따른 실수들 때문인데, 마이나 포인트가 엉뚱한 사람에게 부여된 사례가 최소 113건, 마이나 카드로 편의점에서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경우 다른 사람의 주민표나 인감증명서가 발급되는 시스템 사고가 14건 발생했다. 또한 마이나 보험증에 다른 개인의 신상정보가 연결되는 사고가 무려 7312건 있었고, 그 결과 의료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열람된 경우가 최소 5건 있었다. 마이넘버에 다른 사람의 은행계좌가 묶여버린 사례도 밝혀진 것만 20건이라고 한다. 정부가 마이넘버 제도의 편리함을 노래하며 급하게 보급시키려는 마이나 카드를 둘러싸고 이미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마이나 카드의 담당 부처인 디지털청은 2021년 일본 사회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기 위해 출범한 새로운 정부 부처다. 하지만 출범 초부터 개인 메일주소의 유출 등, 일본사회의 디지털화 지연을 상징하는 듯한 실수들이 잇따라 불거져 문제가 됐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서둘러 마이나 카드를 보급시키려고 하는 데는 뒤떨어진 디지털화를 만회해 캐시리스 사회를 실현함으로써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또한, 누락 없이 효율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려는 정부의 사정도 지적된다. 주민 서비스의 편리함과 효율성보다 행정처리와 주민 관리의 효율성 추구라는 정부 측의 편의만이 우선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IT 선진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주해 여러가지 차이를 느끼면서도, 필자가 일본을 떠났던 20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디지털화가 진행된 지금의 일본 사회 변모를 보면서 놀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디지털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시대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정도와 질의 차이는 있어도 그런 디지털화에 얼마나 어떤 식으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시행착오와 논란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2023-05-31 06:00:00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尹-기시다 회담이 남긴 과제 …역사는 망각되면 안된다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3월 16~17일 윤석열 대통령은 1998년 10월에 한·일 양국이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즉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며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한·일 청년세대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일본에서는 어떻게 보도되고 있을까. 한국 내 보도와는 반대로 매우 긍정적이다. 한국 측은 결과적으로 많은 양보를 한 셈이고, 일본 측은 기존 입장을 고수한 대응이었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보도됐듯이 일본에서는 두 정상이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2차'로 간 식당 메뉴가 왜 오므라이스인지, 영부인이 무엇을 했는지 등 회담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보에 이목이 집중됐고, 한국 정부에 대한 극히 호의적인 보도가 많았다. 어쨌든 일본에서 한·일 회담은 ‘밝고 좋은 소식’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일본 여론은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견이 65%로 과반을 차지했고, 기시다 내각 지지율도 다소 상승했다(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 그러나 강제노동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강제노동 문제는 일본에서 “이미 해결된 문제”이며 외교 과제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한국 측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번 회담 또한 한국 측이 원인을 제공해 악화됐던 한·일 관계가 회복되는 좋은 징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간 현안이 되어 온 강제노동 문제는 이미 한·일 양국 사회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 혹은 한·일 외교관계 논의의 배경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3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이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해 왔다며 악화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는 심정을 밝혔다. “때로는 이견이 생기더라도 한·일 양국은 자주 만나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선 입장을 설명한 것이다. 정식 한·일 정상회담 성사는 11년 3개월 만이라고 하니 그동안 이웃 나라로서 비정상적이기도 했던 한·일 사이에 대화가 재개된 것은 참으로 환영할 일이기는 하다.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 재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향후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한 의사 소통이 이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전보장 분야에서 전략적 연계를 추진할 필요성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확인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 조치 해제도 결정됐고, 한국 정부도 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그 후 GSOMIA 정상화도 결정되었고, 5월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주최국인 일본이 한국을 초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일 기업들은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과 교류를 위한 '한·일 미래동반자협정 기금'을 창립하겠다고 밝혀 양국 관계 개선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미래 청년세대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결의와 자신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 내 보도에서도 강제노동 문제의 역사와 피해자들의 존엄, 권리가 한·일 관계의 그늘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라는 ‘해결 방안’을 제시함에 따라 성사됐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이 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이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가해 측인 일본 기업에서는 아무런 대응도 약속한 바가 없고, 일본 정부 역시 “과거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만 할 뿐 식민 지배에 관한 사죄나 반성의 말을 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안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에는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대응'을 기대했던 전문가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분명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의 제3자 변제라는 방법은 피해자들이 오랜 싸움 끝에 인정받은 가해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사과나 위자료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안이다. 일부 피해자들의 뜻이 외면됐다. 올해 1월 나는 이 칼럼에서 강제노동 문제를 졸속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 내에서는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었던 것 아닌가?” “일본이 말한 대로 따르기만 한 것 아닌가?” 심지어 두 정상 간 간담 중 기시다 총리가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행 촉구, 즉 더 이상 일본에 그 책임을 묻는 일이 없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독도(일본 정부 표현으로는 '다케시마') 영유권에 대해서도 모종의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일본 언론이 보도하여 보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한국에서는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다만 무엇보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이 '해결 방안'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들이 요구한 것은 돈이 아니라 가해 기업의 사과이며, 자신들의 존엄성 회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루지 못한 채 한·일 정상회담 성과가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여론과 언론 대부분은 어느새 '피해자인 우리가'라는 주어를 가지고 진짜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일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해법 시비가 아니라 정상회담이 여야 공방에 이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위화감을 느낀다. 진짜 당사자는 강제노동 피해자들이고, 그 문제 해결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가해 기업이자 일본 측이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역사가 잊히고 있다. 과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 말한 '미래지향'이란 과거를 잊기 위한 미래지향이었을까. 실제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하면서 “양국 국민, 특히 젊은 세대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이를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과거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진정 의미 있게 만들려면 피해자들이 원하는 구제가 실행돼야 하고, 이것은 일본의 가해 기업만이 완수할 수 있는 책임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역사가 교훈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음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담화에서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본 정부는 그 역사를 후세에 물려줘야 하고, 그것은 일본 정부가 완수해야 할 책임이다. '미래지향'이라는 미명 아래 역사가 망각되면 절대 안 될 것이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2023-03-23 06:00:00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한국이라는 거울, 일본이라는 거울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올해 1월부터 2월에 걸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는 '내가 일본을 떠난 이유(わたしが日本を出た理由)'라는 연재기사가 실렸다. 간호사, 보육사, 교원, 의사, 대기업 출신 회사원, 전직 경찰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일본 젊은이들이 삶의 거점을 해외로 옮긴 이유가 소개됐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한계를 느꼈다, 가혹한 장시간 노동이나 일의 스트레스로 몸이 견디지 못하게 됐다, 학생시절에 꿈꿨던 해외생활에 도전해보고 싶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선택했다, 일본에서만 일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등 해외 이주를 결정한 사람들의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일본에서는 사생활을 희생해서 겨우 그럭저럭 생활하던 것이 해외 이주를 하면서는 사생활도 확보하고 즐기면서 생계를 꾸릴 만큼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된 사례와 코로나19 사태로 다양해진 업무 스타일에 따라 해외에 있으면서도 일본 고객과 일할 수 있고, 게다가 수입은 2배가 됐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을 떠난 사람들의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적으로 일본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직장 환경,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구조가 지적되었다. 연구자나 기술자 등 적지 않은 젊은 인재들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사회 전반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일본은 정말 대단해!”라며 일본만의 문화 등을 자화자찬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각 방송국에서 다양하게 방영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최근 5~10년 사이의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좀처럼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자신감 상실의 반증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일본에서의 ‘혐한 붐’을 비롯한 배외주의의 대두도 그러한 풍조 속에 있다. 그러다 일본 사회는 최근 몇 년 사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예찬의 진부함을 자각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데이터 등을 통해 일본 사회가 결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실질임금은 수십년간 상승하지 않아 이제 선진국 중에서 최저 수준이라는 것, 일본 교사들의 노동시간이 최장이라는 것, 일본 연금제도만 믿고 가만 있으면 노후자금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 여성의 사회진출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 등 일본 사회의 정체가 객관적 지표로 가시화된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기사뿐만이 아니다. 일본에 10년간 거주한 이른바 ‘일본통’으로 불리는 BBC 도쿄 특파원이 일본을 떠나면서 쓴 칼럼 '일본은 미래였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Japan was the future but it’s stuck in the past)'(2023년 1월 20일자)도 화제가 되었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분명히, 그러나 애정을 가지고 지적한 이 칼럼은 게재 후 2일간 전 세계 300만명에게 읽히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내에서도 적지 않은 찬반 논란이 일었다. 영국인의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견해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가 하면, 최근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니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나도 그 글을 읽었는데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는 당연한 지적이었고 새삼스럽기까지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FAX가 적지 않게 쓰이고, 많은 직장에서는 종이 서류를 통한 결재가 기본이며 거기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전자매체에 의한 교환은 신용할 수 없으니 종이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받을 경우도 아직 많다. 이메일보다 우편이 확실하다는 감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에 오래 산 내가 일본에 돌아와서 겪어보니 답답하고, 불편한 일들이 많다. 아무리 태어나고 자란 자기 나라지만, 너무 융통성 없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불안할 때도 있다. 한편, 19년이나 일본에서 떨어져 있던 나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변치 않는 일본’도 여기에는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화, 비대면화가 더욱 진행된 한국 사회에 비해 좋든 나쁘든 인간미가 느껴져 안도할 때도 있다.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동네 공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축구나 야구를 하고 뛰어노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어느 시대에도 변함없는 아이다운 아이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본 사회가 전혀 변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올해 2월 1일 국회에서 동성결혼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기시다(岸田) 총리가 “사회가 변해버린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비공식 발언이었으나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보완하듯 “(성소수자에 대해) 보기도 싫다. 옆집에 살고 있다면 싫다”고 말한 총리 비서관이 여론의 반발로 결국 경질되었다. 올해 5월 히로시마(廣島)에서 개최되는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장국인 일본만이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그런 편협한 가치관을 차별이라고 단정하는 여론이 일본 사회에 형성된 것은 최근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내가 일본을 떠난 이유'라는 연재기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상당수는 여성이었다. 외국 영주권을 취득한 일본인은 지난해 가을 기준 전년 대비 2만명 증가해, 사상 최고치인 55만7000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62%가 여성이었다. 일본이 여성에게 살기 힘든 사회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게 된 것 같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 고령화가 큰 사회문제인 일본에서 출산과 육아의 문제를 아직도 ‘여성만의 문제’로 보고 있는 일본정부의 정책과 태도에도 비판이 쏠리고 있다. 변하지 않는 일본의 폐해가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조금씩 자극하고, 일본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쿠맨(育メン, 육아하는 남자)’이라는 말이 있는데, 육아를 돕는 남성을 칭찬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나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친구로부터 ‘이쿠맨’이 되라는 ‘격려’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에도 ‘육아빠’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육아엄마’라는 말이 없는 것처럼 ‘이쿠맨’, ‘육아빠’라고 특별한 듯 말하는 것이 칭찬이라고 해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하는 남성의 증가율로 봤을 때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육아를 경험했지만, 육아의 주체로서 남성의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실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남성들의 육아휴직은 단기간에 그치거나 실제로 제도를 이용하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쉽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성이 출산 후 경력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것도 여전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고, 해결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의 미투와 페미니즘 운동의 사회적 영향력도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물론 그 반동(Backlash)이 벌어지고 남녀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보면 안 되겠지만, 한국이 일본 사회보다 몇 발짝 앞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한·일 간의 차이를 가지고 어느 쪽이 ‘앞선다’고 논의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싶다. 과거 한국은 특히 경제적으로 일본을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하던 시대가 있었다. 최근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자신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오히려 일본이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어떤 분야나 어떤 국면에서는 일본이 앞서고 있고, 한국이 배울 수 있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지금 일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중 한국 사회 또한 똑같이 과제로 삼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각자의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는 이상 단순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저출산 고령화 문제, 경제 격차 문제,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을 둘러싼 문제, 그리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둘러싼 문제 등 조금만 생각해도 공통된 과제들은 실로 많다. 나는 이번 달 오랜 한국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소개하는 내용의 <한국이라는 거울(韓国という鏡)>이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일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깊이 아는 것이 자신의 사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일본에게 있어 한국이 그렇듯,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또한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라는 사회의 양상을 알게 됨으로써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지, 이 칼럼을 한국어로 집필하면서 나 또한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2023-02-20 05:00:00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 서둘러야 하지만 졸속 결론은 피해야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2022년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사상 최악’으로 꼽혔던 한·일관계 개선이 기대됐다. 그러나 애초에 나는 이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일 관계가 개선되리라는 단순한 기대감에 대해서도 위화감을 느낀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일관계가 발전된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코로나19 사태로 막혔던 한·일 간의 하늘길이 2022년 후반부터 다시 열렸는데, 2023년에는 한·일 간의 왕래가 다시 활발해지는 동시에 한·일관계 또한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바람과는 달리 새해 벽두부터 한·일관계를 둘러싼 문제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식민지배 시기에 일어난 강제노동 문제이다. 일본에서는 ‘징용공’ 문제로 불린다. 지난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강제징용 해결을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나는 일본에서 온라인상으로 토론회를 시청했는데, 보고 있기가 힘들고 괴로웠다. 무려 10명이나 되는 발표자 및 토론자가 각자 입장에서 견해를 밝혔지만 ‘토론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강제노동 문제 당사자인 피해자나 그 유족들에게 발언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강제노동 문제는 지금 왜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1965년 한·일 양국 국교정상화 때 이미 해결된 것으로 여겨져왔다. 2005년,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던 노무현 정부에서마저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사법 판단이 내려짐에 따라 피고 일본 기업이 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사법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반발했고, 피고 일본 기업들도 일본 정부 방침에 따라 배상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민사소송 당사자도 아닌 한국 정부가 사법 판단에 개입할 수는 없다. 그 결과 피고 일본 기업의 국내 재산은 한국 사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현금화되어 원고에 대한 배상으로 충당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만약 일본 기업의 재산이 현금화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한·일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한국 정부로서도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정면으로 지적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과거 한·일 양국 정부는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평가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1965년에 국교정상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라고 해석했고, 일본 정부는 그것을 한국 정부에 대한 경제지원으로 간주했다. 즉, 한·일 양국 정부는 식민지배의 책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양측의 의견 충돌을 피하고 타결을 꾀한 것이다. 1965년 당시 한·일관계를 둘러싼 동아시아 냉전 국제정세는 한·일 양국 정부로 하여금 국교정상화를 서두르게 했다. 이후 한·일관계를 규정하게 된 한·일협정에 따른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어느덧 ‘65년체제’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일관계의 발전은 65년체제하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처럼 활발한 민간교류가 가능한 것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은 65년체제의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민지배에 대해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되 일관되게 법적 책임을 부정해온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그 틀을 뒤집는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한국 정부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의 결과로,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미 65년체제를 뒤흔들 판결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늦추도록 사법부에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바로 사법농단 사건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더 이상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일 양국 정부는 65년체제에서 모호해진 식민지배 책임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라는 보복조치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고, 한국 정부 또한 GSOMIA 파기를 언급하는 등 맞섰다. 한국에서는 ‘NO JAPAN’ 불매운동도 일어났다. 당시 한국 사회는 ‘NO JAPAN’이 아니라 ‘NO ABE’라고 밝히며, 과거의 이른바 ‘반일’ 운동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대중은 당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인지할 수 없었고, “한국은 역시 반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2019년 한·일관계는 ‘사상 최악’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한·일관계가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사람들은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시기에 65년체제 유지가 중요시되었던 것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보수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당시 이낙연 총리가 아베 일본 총리에게 “한국도 (한일)협정을 존중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일본 정부에 직접 식민지배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없었다. 어쨌든 취임 당초부터 한·일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인 윤석열 정부는 강제노동 문제의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공개토론회’에서 밝혀진 외교부의 ‘해결책’이란 한국 측 재단이 피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 기업에 대해서도 마치 면책하는 것과 같은 방안으로 보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단순한 금전적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일관되게 가해 기업의 사과를 통한 자신의 존엄성 회복을 바라고 있으며, 그 증거로서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고령이기 때문에 문제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또한 일본 정부가 일관되게 식민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정해온 것이 사실이고, 그 태도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정부 방침에 따르는 피고 일본 기업들과 원고 피해자들 사이에서 어떤 화해 방안이 도출될 가능성 또한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일본 정부가 65년체제의 틀을 중요시하는 이상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는 일도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원하는 해결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해서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외교부 안을 비롯해 ‘공개토론회’에서 거론된 일부 주장들을 듣다 보면, 마치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한·일관계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피해자들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이 문제는 피고 일본 기업들이 배상을 거절한다고 해도 일본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 편에 서서 일본 정부와의 협상에 임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결국 현재 한·일관계는 65년체제에 얽매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경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5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양국 외교장관이 피해자들을 소홀히 한 채 합의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던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사회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혼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본래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는 과거를 직시하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 설사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원점으로 돌아가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일본 사회가 주체적으로 마주보아야 할 문제이다. 물론 이 문제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리 없다. 1965년 한·일 양국이 처한 각자의 사정을 우선시해 타협한 국교정상화에서 놓친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일본 사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숙제는 피해자 구제의 문제이고, 현대 국제사회가 가치를 무겁게 여기게 된 인권문제이기도 하다. 그저 한·일관계를 저울질해 취사 선택할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피해자를 생각하면 서둘러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지금까지 오랫동안 싸워온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졸속 결론을 내려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2023-01-17 06:00:00
- [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K-컬처 지렛대로 한일관계 새 시대 열자 지난달 30일 아침 “큰일 났다!”는 아내의 목소리에 잠을 깬 나는 이태원에서 일어난 그 ‘참사’를 알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내가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그 시절에 돈 없는 유학생이던 내게 밥을 먹여준 가게가 있던 거리이자 한국어학당이 끝난 뒤 이틀에 한 번쯤 다니던 익숙하고 애착이 있는 동네인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외국인이지만 약 2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2014년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함께했던 나이기에 이번 사고는 더욱 충격이자 슬픔과 안타까움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앞으로는 절대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참사의 사망자 중에는 일본인 2명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을 좋아해서 언젠가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한국어학당에 다녔다고 한다. 최근 일본 유학생들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일부러 하숙집을 선택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국 문화를 배우려 했다고 한다. 고인의 아버지에 따르면 꿈이었던 한국 유학이 성사되어 많이 기뻐했다고 한다. 또 다른 10대 사망자도 한국어학당을 다니면서 나중에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한국에 유학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올해 2월까지 한국 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 관련 수업을 맡아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12년간 학생을 가르친 나에게 특히 20·30대 사망자가 많았던 이번 이태원 참사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게다가 외국인 사망자를 생각하면 약 20년 전 내 모습이 겹치기도 한다. 더불어 지금 일본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에 대해 배우면서 한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약 20년 전 나는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이나 한·일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어학당부터 다녔다. 나는 한국이나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유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시는 지금 분위기와는 전혀 달라서 다른 일본 유학생들도 한국을 좋아하거나 한국에 살고 싶어서 유학을 선택한 경우가 드물었다. 일본에서는 특히 유학이라고 하면 미국 등 서구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더구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가는데 “왜 한국이냐?”고 의아해하는 주변 반응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시와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한국 유학에 특별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한국에 살고 싶다” “한국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유학의 이유가 되고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가 그동안 크게 발전했고, 일본 사회도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은‘선진국’으로 간주되게 되었고, OECD 분류 기준에서도 작년에 ‘선진국’ 대열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2020년 한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며, 선진국 클럽인 주요 7개국 회의(G7)에도 초청됐다. 한편 일본은 오랫동안 이어진 경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선진국 중에서 최저 수준의 실질임금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불리던 일본의 영광은 이미 과거가 됐다. 수직적이었던 한·일 관계도 이제 수평적으로 변해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한·일 경제력은 이미 역전됐다는 분석도 많다. 경제력만이 아니다. ‘한류’로 불리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인기는 멈출 줄 모르고, K-팝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등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산업은 폭넓게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발전과 문화적 파급력이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 결과 내가 과거 경험했던 것처럼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면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저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국 유학을 결정하거나 워킹홀리데이로 체류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한 세대 앞인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한 해 동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수는 1750만명을 넘었다. 그중 일본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은 중국에 이어 둘째로 많은 약 327만명으로 11%를 차지했다고 한다. 2019년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방한하는 일본인이 감소한 해다. 그 후 코로나19가 팬데믹 양상을 보이며 전 세계 국경이 닫히는 상황이 벌어졌고 한·일 관계 악화라는 상황도 흐지부지됐다. 그러던 중 2022년 들어 조금씩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더 이상 경제활동을 멈출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최근 한·일 간 왕래 제한이 풀렸다. 지난 9월 일본인 방한 관광객은 2021년 같은 달 대비 24.1배인 2만756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태원에서 사망한 두 일본인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을 계속 찾지 못하다가 드디어 한국 유학의 꿈이 이루어지자마자 이런 참사를 당하고 만 것이어서 마음이 더욱 아플 수밖에 없다. 나는 올해 4월부터 일본 대학에서 한국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신입생 대부분이 K-팝이나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 지원한 학생들이다. 교수들과 신입생이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대부분 학생들이 K-팝 아이돌 중 자신의 ‘오시(推し-아이돌 그룹 중에서 자신이 가장 밀고 있는 멤버를 가리키는 말로 ‘최애’와 비슷한 말이다)’ 멤버 이름을 말하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그런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BTS 정도였고 그 외 다양한 아이돌 이름들이 나왔지만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K-팝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있어서는 19년에 걸친 한국 생활 경험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본에서 2003년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 붐’ 직전에 한국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일본 내 한류 열풍은 올해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직접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일본에서 ‘욘사마’ 인기가 한창일 때 그것을 신기한 현상처럼 소개하던 뉴스를 나는 한국 언론을 통해 보았다. 한국으로 유학간다고 했을 때 “왜?”라며 신기해 하던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한국에 있는 나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한류 붐(제1차 한류)은 당시 나보다 나이가 많은 40대 이상 여성에게 국한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류는 20대와 10대는 물론 연령을 넘어 심지어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남성을 포함해 일본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3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한류는 그동안 변천을 거쳐 이제 ‘제4차 한류 붐’으로 불리고 있다. 과거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을 때만 해도 소설과 같은 한국 문학까지 일본에서 유행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일본 독자들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특히 인기 있는 것은 가볍게 읽을 수 있거나 특정 사회와 시대 배경이 의미를 가지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 한국 문학과는 다른 매력으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K-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그림책 등이 매년 꾸준히 번역되며 일본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처음에 일본어 발음 그대로 ‘간류(かんりゅう)’였던 한류는 이제 일본에서도 한국어 발음 그대로 ‘한류(ハンリュー)’로 표현되고 있다. 한국 문화가 일본 사회에 얼마나 침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약 20년 만에 거처를 옮기게 된 내가 오랜만에 일본 생활에서 느끼는 한국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다. 물론 내가 사는 후쿠오카라는 지역이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 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리에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한국 음식점,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식재료와 과자, 한국 기업의 가전 등이 적지 않은 것에 놀랄 따름이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한국 요리나 다양한 상품 등이 자주 소개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국 연예인이 언급되는 일도 자연스럽다. 20년 만에 일본 생활에 적응 중인 나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한국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일본에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서점에 가면 여전히 입에 올리기도 불쾌한 표현으로 한국을 비하하는 경박한 다양한 책과 잡지들이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혐한(嫌韓) 서적’이다. 상당수는 한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가짜 전문가가 집필한 것들이다. 한류 팬인 젊은이의 부모가 사실은 혐한 서적 애독자로 자기 자녀의 취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혐한 서적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불황에 빠진 출판업계가 팔리는 책을 안이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이 팔린다는 것은 그러한 한국 인식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일본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한국에 대한 관심은 문화로서 즐기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면 갑자기 획일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토록 한류가 깊게 뿌리내린 현재도 그것은 마찬가지인데, 언론 미디어의 영향과 SNS 등 인터넷 공간의 영향이 작지 않다고 본다.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표현으로 ‘한국’이라는 콘텐츠가 부정적으로도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시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현대사회의 정보 리터러시(information literacy)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다만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데만 치우친 일본 사회의 관심이 혐한 서적 보급을 허용하고 한국과 관련된 것, 특히 재일 코리안에 대한 혐오발언(hate speech)과 혐오범죄(hate crime)를 조장해왔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재일 코리안 민족단체와 학교 건물, 그리고 교토 우토로 지구에 대한 방화와 같은 범죄사건이 벌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하지만 귀한 역사 자료가 다수 분실됐다. 인터넷 공간의 편향된 정보를 근거로 한국에 대한 적대심을 키웠다는 20대 범인은 재일 코리안의 집주 지역인 우토로 지구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역사관 부재 등이 지적되어왔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눈앞의 문제와 자기만의 일로도 버거운 젊은이들에게 사회문제로 눈을 돌릴 여유는 없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정치와 문화를 구별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에서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이 금기시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한 일본에서 한류와 혐한이 양립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모든 일을 정치화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치나 역사의 귀찮은 문제를 외면하고 싶은 무의식의 심정이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증오와 혐오의 씨앗을 키울 수도 있다. 예전에 청소년들 간 한·일 교류 자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학생들과 대면하기 전에 한국 측 인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역사 문제와 관련된 화두는 꺼내지 말라고 못 박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수월한 교류를 위해서 상대방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화제는 피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우선은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그 후에 얼마든지 어려운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연간 1만명이라고 했던 한·일 간 왕래가 이제 연간 1000만명 시대를 맞았다. 하물며 일본에서 한국 문화가 생활 전반에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 시대다. 이제 더는 교류만 하는 시기는 지난 것이 아닐까. 향후 일본에서 한국 문화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황과 역사, 정치, 경제, 한국인의 정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가 진전되었으면 한다. 물론 한국 사회 내 일본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한·일 상호 간에 다른 인식으로 부딪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단단하게 한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일 상호 이해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보다 깊은 상호 이해를 위해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홍익대 조교수 ▲전)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2022-11-16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