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렬 논설고문
jrpak88@gmail.com
- 고려대 철학과
- 중앙대 정치학 박사
-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 EBS 이사
- 연합통신 이사
- 언론중재위원
-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 [박종렬의 제왕학] 시진핑 '중국夢'과 대만통일 전략 뒤의 '짙은 그림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12년 11월 29일 첫 임기 시작 보름 만에 ‘중국몽(中國夢)’을 집권 이념으로 선포했다. ‘중국몽’은 ‘두 개의 백 년’, 즉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과 신(新)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성취할 국가 전략 목표다. 2021년 ‘모든 국민이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만들고, 2049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국가 비전의 청사진이다. 경제·군사적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초일류 패권 국가로 도약하는 ‘중국의 꿈’을 구현하는 시대를 여는 것이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한 경축대회에 지도부 중 유일하게 인민복 차림을 한 시 주석은 중국인 모두가 중산층이 되는 ‘샤오캉 사회를 달성했다’며 ‘탈(脫)빈곤’을 선언하고 ‘중화(中華)민족은 세계에서 위대한 민족’임을 역설했다. “··· 5000여 년 유구한 문명의 역사가 있고, 인류 문명 진보에 불멸의 공헌을 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조금씩 반(半)식민지, 반(半)봉건사회가 되어 국가가 모욕당하고 인민이 박해당했으며 문명이 몽진했다. 중화민족이 겪어보지 않은 재난에 부닥쳤다. 그때부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중국 인민에게 ‘중화민족의 꿈’이 됐다. ··· 100년 동안 중국공산당이 단결해 중국 인민의 모든 분투·희생·창조를 이끌었다. 이를 귀결하는 것이 바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우리는 첫 번째 100년 분투 목표를 실현했고, 중화 대지에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사회를 건설해 절대 빈곤 문제를 해결했다. ··· 대만(臺灣) 문제를 해결하고 조국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임무이자 중화민족의 염원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과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대만 독립 도모를 단호히 분쇄하고, 민족 부흥이라는 아름다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 중국 인민의 국가 주권과 영토를 지키는 굳은 결심과 확고한 의지를 정립해야 한다. 중국 인민은 어떤 외래 세력도 우리를 괴롭히고 압박하거나 노예화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 망상을 꿈꾼 자는 14억여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건설한 강철 만리장성에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이다.” 시 주석이 미국 패권을 겨냥해 정면 대결을 선언한 것이다.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홍콩 문제 등에 대해 외부 세력이 간섭하지 말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2049년 신중국 100주년에 맞춰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 매진을 강조하면서 대만 통일, 홍콩·마카오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도 재천명했다. ‘중국몽 실현’을 명분으로 시 주석은 지난 10년간 최고위층을 포함한 집중적인 반부패운동으로 장쩌민계 몰락과 함께 그동안 개혁·개방 노선을 주장하면서 시진핑과 갈등해온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비롯한 공청단파도 완전 붕괴시켜 1인 장기 집권 시대를 열었다. ‘조정이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一朝天子 一朝臣)’라는 중국 정치의 불문율(不文律)을 깨고, 장쩌민(江澤民)부터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쳐 시진핑까지 세 명의 총서기를 섬겨온 유일무이한 ‘세 왕조의 이데올로그’로 이념·선전을 총괄해온 왕후닝(王滬寧)이 설계한 ‘중국몽’은 3기 시주석 체제에서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책사(策士)의 나라’인 중국답게 시진핑 2기 체제에서 국가서열 5위였던 왕후닝은 3기 체제에서 4위로 한 단계 격상됐다. 학자 출신으로 지모(智謀)를 흉중에 품은 기재(奇才)로 평가받는 그는 2018년 당헌(黨憲) 개정과 2021년 11월 ‘역사결의’를 통해 시진핑을 마오 이후 ‘최고 위인’으로 격상시켜 ‘시진핑 후계자는 바로 시진핑’이라는 시진핑 장기집권과 ‘일존(一尊) 체제’ 구축을 선도했다. ‘시진핑을 보려면 왕후닝을 보라’는 말대로 시진핑의 핵심 브레인답게 2020년 10월 이른바 ‘두 개의 수호(兩個維護: 시진핑 당 중앙 및 전당의 핵심지위 수호, 중공 중앙의 권위와 집중통일 영도의 수호)’와 2021년 8월 이른바 3차 ‘역사결의’를 끌어내고 ‘두 개의 확립(兩個確立: 시진핑 당 중앙과 전당의 핵심지위 확립,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을 주도해 시진핑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에 오른 강력한 최고 지도자인 영수요, 주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왕후닝은 1991년 <미국은 미국을 반대한다(원제목 美国反对美国)>는 저술에서 중국 외교의 오랜 기조인 ‘다극(多極)체제론’ 대신 ‘미국에 맞서 싸우는 새로운 대국’으로써 중국 부상을 주창, 대외정책도 바꾸었다. 시진핑이 총서기가 된 2012년부터 본격화한 ‘신형대국관계론(新型大國關係論)’의 이론적 토대가 된 이 책에서 “4년마다 순조로운 정권 교체를 하는 미국의 내면을 보면 개인주의와 향락주의, 기술주의에 빠져 몰락, 세계 패권국 지위를 잃을 수밖에 없다”라며 “약점 많은 미국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흑인과 원주민, 여성들이 미국에서 겪는 현실은 미국이 평등 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 정당들은 시장에서 정치후보자를 상품으로 광고하고, 행상(行商)처럼 팔 뿐이다. …미국에선 기술이 사람을 정복했다. 우리가 미국을 압도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 분야에서 추월해야 한다. …고유의 정신과 가치관이 붕괴한 미국은 지속하기 어렵다.” 이런 미국관을 바탕으로 왕은 “중국이 국력을 집중하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라면서 시에게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 그리고 ‘전랑외교(戰狼外交)’를 헌책했다. 중국 경제력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웃돌고, 국제적으로 ‘G2’ 대우를 받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만은 아니다. “2020년까지 중산층 사회를 이룩하고 2049년까지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경제력에 기반을 둔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항공모함, 탄도 미사일, 사이버 전력을 갖춘 군사 강국으로 거듭나,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미국을 넘어 새로운 역학 관계에서 중국 중심 시대를 열겠다…” ‘일국양제’의 전략구상으로 대만을 평화적으로 통일한다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하고, 절부당두(絶不當頭·실력이 될 때까지 절대로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하라’는 유훈은 용도 폐기되었다. 특히 덩의 “미국과의 대결을 100년간 피하라”는 유촉(遺囑)을 걷어차고 시진핑은 미국을 대체할 중국 주도의 '신시대'를 선언, '살기등등하게 상대를 핍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의 단계로 이른바 ‘중국몽’을 천명하고 나서자 미국 지도자들은 중국 부상을 패권 경쟁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8년 3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 이른바 ‘미·중 갈등’이 시작됐다.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 역시 강력한 대중(對中) 압박·견제라는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도 중국의 급격한 부상 억제를 대외정책 최우선과제로 채택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견제·봉쇄하려는 전략 목표를 위해 동맹국들을 끌어들이는 ‘반(反)중국 벨트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증대와 팽창주의, 그에 따른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 등 주변국 안보 불안을 미국이 불식시키려 하면서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해 만든 연합체)를 강화·확대했다. 미국 주도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5개국은 국가 안보를 위해 인터넷 사용자 활동을 모니터링, 공유하는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다섯개의 눈)로 중국을 견제하는 최첨단 군사기술동맹을 새롭게 구축했다. 미국은 나토에 이어 서방 강대국들의 모임인 G7을 D10(‘민주주의’ 10개국 연합체)으로 확장하고, 인도 태평양경제구조(IPEF) 주도 등 복합 중층구조로 대(對) 중국 포위망을 거미줄처럼 엮어 중국 봉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엘리트들도 최근 수년 동안 중국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바뀌어 이제 중국을 적(敵)으로 보는 데 초당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국무장관으로 미·중 수교의 조타수였던 헨리 키신저도 “미국과 중국이 이제 냉전 초입에 접어들었다”라고 진단했다.바이든을 비롯한 미국 지도자들은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차이가 크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권위주의 국가들이지만, 그 반대편에는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진영이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의 홍콩 민주화 운동과 신장(新疆)·티베트의 소수 인종 억압은 미국 지도자들이 이런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 가장 자주 드는 사례가 됐다.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雌雄)을 겨루는 현대판 ‘그레이트 게임’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중 패권전쟁이 ‘무역분쟁’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패권 전쟁’으로 치열해지는 상황은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진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기원전 5세기 기존 패권국 스파르타에 급부상한 신흥강국 아테네의 도전으로 벌어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한 그리스 역사가이자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는 ‘신흥강대국이 기존 세력 판도를 뒤흔들면 양측이 무력충돌로 치닫게 된다.’고 분석했다. 전쟁 원인을 예언이나 도덕 문제, 우연이 아닌 국제적 문제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란 용어를 만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벨퍼 센터의 그레이엄 앨리슨 소장은 미·중 정상회담 직전인 2018년 4월 2일 〈W.T〉 칼럼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미국의 세계 경제생산 비중은 1980년 22%에서 오늘날 16%로 떨어진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에 2%에서 18%로 증가했다. …신흥강대국 중국과 패권국 미국의 대립과 대치는 향후 수년간 고조되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이다.” 국제안보전문가로 유명한 앨리슨 소장은 “지난 500년 동안 지배적인 패권 국가 지위는 16차례 붕괴했으며 그중 12건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였다”라며 “냉전 시대 미·소 관계, 20세기 초 미·영 관계 등 무력충돌을 피한 4차례는 도전하는 국가와 도전받는 국가의 태도와 행동에 엄청난 조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고 지적했다. 2027년 ‘대만 침공’으로 통일 국가 완성? 1인 장기집권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한 시진핑의 ‘중국몽’은 옛날 중국이 패권 국가를 자처할 때와 같은 ‘화이질서(華夷秩序) 부활’이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에서 빛을 발한다’라는 의미로 중화(中華)라 자칭했고, 주변 국가를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즉 오랑캐로 취급했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중·일 대결 구도 역시 거칠어지고 있다. 미국 퇴조의 틈을 타 아시아 맹주(盟主)를 노렸던 고 아베 전 총리는 2021년 대만 싱크탱크인 국책연구원 주최 포럼에서 화상으로 “대만의 비상사태는 일본의 비상사태이며, 따라서 미·일 동맹의 비상사태가 된다. 중국 지도부,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를 인식하는 데 오해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대만 공격 시 개입한다.”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자격·권리가 없다. 잘못된 길로 불타 죽을 것”이라며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강력하게 항의했다. 최근 ‘해양세력인 한·미·일 대(對) 대륙세력인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가 동북아시아에서 다시 형성되고 있다. ‘현대판 히틀러’라는 별명으로 러시아를 23년째 이끌어온 푸틴, 시진핑과 김정은은 10년째 장기집권이지만 한·미·일은 집권 기간이 4년 혹은 길어야 8년이어서 권력 장악력이 취약한 실정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까지 발발, 두 진영의 대립 전선이 더욱 선명해 졌다. 시진핑의 장기집권 명분인 대만통일은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시켜 연쇄작용으로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듯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주한미군과 주일 미군 공군기지는 중국의 ‘원점 타격’ 대상으로 미군의 대만 전쟁 투입은 물론 그 이상의 협력을 압박할 것이다. 100여 년 전 청·일 전쟁 패배로 대만을 일본의 최초 식민지로 내줬던 국가적 치욕을 상기하는 중국은 ‘제2의 청·일 전쟁’을 불사하고 대만통일을 국가 대전략으로 설정, 설욕을 다짐하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대만 침공’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자 시 주석 4연임이 걸린 21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27년을 유력한 시기로 예측, 대만을 둘러싼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했을 때 대응할 우리의 유연한 외교·안보 전략이 절실하다. 역사적 격변기를 맞아 한반도 운명에 ‘결정적 역할’을 할 시진핑 주석, 이제 이 ‘한 사람’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의 패권전쟁, 계속되는 경기 침체, 제로 코로나 정책에도 최근 창궐하는 코로나, 1인 장기집권에 대한 불만, 신장·티베트의 인권탄압 등은 한비자(韓非子)가 지적한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즉 ‘이치(理致)가 아닌 것이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옳은 이치라도 법에 우선할 수 없으며, 법도 권세를 능가하지 못하고, 그 권세라 할지라도 마침내 하늘, 즉 민의를 거역할 수 없다.‘는데 천자(天子)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시진핑 황제‘의 ’중국몽‘이 어떤 결말로 귀결될지 역사의 추이가 궁금해 진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2023-01-09 14:59:37
- [박종렬의 제왕학] 비수를 가슴에 품고 천하 평정한 '시따따" 마오쩌둥(1세대:1893∼1976), 덩샤오핑(2세대:1904∼1997)에 이어 중국의 3세대 지도자인 장쩌민 전 주석(1926~2022)이 지난달 30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 전 주석은 퇴임 이후에도 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1942~) 시대까지 중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시진핑 체제를 출범시켰지만, 2018년 시진핑 1인 체제가 굳어진 뒤부터 정적(政敵)관계로 바뀌었다. 시 체제를 탄생시킨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도 20차 당 대회 현장에서 강제 퇴장당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시 주석을 견제해온 전직 국가 원수 등 원로들이 역사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시진핑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장악했다. 시 주석의 집권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그는 2007년 무명의 저장성 당 위원회 서기에서 몇 단계를 뛰어넘어 미래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5년 뒤, 2012년 제18차 전국대표대회와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당 총서기뿐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 주석에 올랐다. 2012년 당시만 해도 최고 권좌를 둘러싼 권력투쟁 과정에서 시진핑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앙정치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없다. 시진핑은 야망을 품고 공청단과 태자당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어부지리(漁夫之利) 전략으로 임했다. 시진핑의 최고 권력자 등극 과정은, 자신의 노력보다는 장쩌민과 후진타오, 두 세력의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얻은 어부지리였던 셈이다. 당시 후계 구도를 놓고 전직 장 주석과 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과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당), 두 파벌은 생사를 건 암투를 벌였다. 공청단 출신 후 주석은 후계자로 친동생처럼 여기던 최측근 리커창(李克强, 1955~ )을 내세웠다. 길가는 차들의 번호를 순간적으로 외운 뒤 오차 없이 기억할 정도로 우수한 베이징대 출신 리커창은 대학 시절, 영어로 된 법학 서적들을 번역하고 공청단에 가입, 44세로 최연소 성장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시진핑보다도 5년 빨리 중앙위원회에 입성해 후 주석의 후계자로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그러자 당시 86세의 장쩌민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이 격렬히 반대했다. 당시 리커창 부총리 등 ‘사대천왕(四大天王)’으로 불리던 리위안차오(李源潮) 당 중앙조직부장,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 등과 치열한 차세대 지도자 경쟁을 벌인 시진핑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졌으나 2007년 상하이 서기로 깜짝 발탁,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기류가 달라진다. 같은 해 당 대회에서 시진핑이 서열 6위의 국가부주석과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맡고, 리커창은 서열 7위의 국무원 상무부총리를 맡아 후계 구도에서 시진핑의 우위가 확정된다. 이는 리커창의 총서기 등극만큼은 막으려는 상하이방의 적극적인 반대와 모두가 무난하다고 생각했던 시진핑을 중재안으로 제시한 쩡칭훙(曾慶紅:1939~)의 배려 때문이었다. 시진핑의 초등학교 선배로 14살 위인 쩡은 태자당(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 맏형이면서 장쩌민 심복으로 상하이방과 연결돼 시진핑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다. 중국인민해방군 총정치부 가무단 소속(소장)의 국민적 스타인 부인 펑리위안(彭麗媛:1962~)의 막강한 군부 인맥 등 거미줄처럼 얽힌 인맥도 시진핑이 황태자로 부상하는 데 큰 뒷받침이 됐다. 2010년 시진핑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지명되면서 후계자 경쟁은 막을 내렸다. 결국, 시진핑 부주석의 낙점은 카리스마나 특출함이 아닌 무색무취함이었다. 서로에게 거부감 없는 ‘무난한 인물’을 선택한, 계파 갈등의 어부지리를 얻은 셈이다. 공청단과 상하이방 두 세력의 권력투쟁으로 태자당의 시진핑이 승리, 2013년 3월, 후진타오 뒤를 이어 제7대 중국 국가주석의 자리에 올랐다. 두 파벌의 ‘10년 대란’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문득 결말에 도달해보니, 보시라이로부터 아두(阿斗)라는 비아냥을 듣던 시진핑 홀로 황제대관식을 치르게 된 셈이다. 아두는 아둔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된 유비(劉備)의 아들이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취임, 이듬해 8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 선전 사상 공작 회의에서 당 간부들에게 독서와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근대 중국의 대철학자이자 선통제 스승이었던 왕궈웨이(王國維, 1877~1927)가 설파한 ‘인생삼경계(人生三境界)’를 인용, ‘맥연회수’를 언급한다. ‘…고금의 위인들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인생의 3경계를 거쳤다. 제1경계는 ‘망진천애(望盡天涯:목표를 분명히 하고 실천 전략을 세운다)’, 제2경계는 ‘의대점관(衣帶漸寬:식음을 전폐하고 잠을 설치면서도 목표에 매진한다)’, 제3경계는 ‘맥연회수(驀然回首:천신만고 노력 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는 경지)…’ 시진핑은 왕궈웨이가 <인간사화(人間詞話)>에서 3경계의 개념을 서술한 다음의 시구가 ‘원대한 이상을 꿈꾸며 어려움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권력의 정점에 오른 자신의 인생 역정과 닮았음을 암시했다. “간밤에 서풍이 심하게 불더니만/푸른 나무들이 다 시들어버렸네/나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저 하늘 끝까지 펼쳐진 가없는 길을 바라보네(망진천애·望盡天涯).”(제1경지) “바지 끈이 점점 헐렁해져도(의대점관·衣帶漸寬)/끝내 나는 후회하지 않으리/그대를 위한 것이라면/내 몸 하나 초췌해진들 그 무엇이 걱정이랴.”(제2경지) “길거리에 밀려 넘치는 사람 속에서/수천 수백 번 그녀를 찾아 헤매었지/불현듯 무심히 고개 돌려 쳐다보니(맥연회수·驀然回首)/등불이 희물그레 꺼져가는 난간 곁에/찾으려는 바로 그 여인, 서 있지 아니한가!”(제3경지) <도올, 시진핑을 말하다> 시진핑은 대학 졸업 후 3년간 중앙군사위에 근무했던 것을 빼면, 82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25년간 지방을 전전하며 시골동네 현 서기부터 시작해 차례차례 승진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공직자 생활을 했다. 리커창 등 다른 파워 엘리트와 달리 시진핑은 중앙 정계의 주목도 끌지 못했으며 처음부터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노린 것은 물론 아니었다. 어느 순간 대권을 향한 질주를 의식했겠지만, 그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과정은 일종의 ‘맥연회수’였다. 남송의 사인(詞人) 신기질(辛棄疾, 1140~1207)의 ‘청옥안’이란 시에 빗대 묘사한 제3의 경계인 ‘등불이 희물그레 꺼져가는 난간 곁에/찾으려는 바로 그 여인, 서 있지 아니한가!’처럼, 그야말로 ‘문득 고개 돌려 쳐다보니 권력의 정상에 올라있었다’라는 것이다. 대지약우(大智若愚)와 난득호도(難得糊塗)로 정적 제거 시진핑이 노자 가르침대로 ‘드러내지 않아도 알려지며(不見而名), 뭘 하지 않으면서도 이루어진(不爲而成)’ 것처럼 삶의 우연적 계기들이 작동, ‘무위에 이르면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이룬 것과 같다(無爲而 無不爲). 하는 것이 없기에 아니 하는 것이 없다’처럼 어느 날 일어나보니 천하를 품었다는 얘기다. 이는 ‘자기를 숨기는 지혜’인 노자의 대지약우(大智若愚)와 위대한 승자들의 비법인 후안흑심(厚顔黑心)인 ‘난득호도(難得糊塗)’에 맥이 닿아 있다. ‘교활하고, 뻔뻔하고, 음흉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내고 내 뜻을 이루는 창과 방패’라는 후안흑심으로 무장하는것이야말로 제왕학(帝王學)의 요체(要諦)이다. 난득호도는 ‘총명하기는 어렵고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어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라는 뜻이다. 시진핑 아버지를 복권시킨 덩샤오핑은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국내적으로는 천안문 사태와 개혁개방 반대, 대외적으로는 동구권 붕괴 후 서방의 위협 등 국내외 도전 속에서 체제 안정을 지키면서 대외문제 처리 기준으로 공산당 내부에 도광양회 28자 방침을 제시했다.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누구를 두려워하지도 말라. 누구에게든 죄를 짓지 말고, 친구를 사귀되 나름의 계산하고 사귀라. 도광양회하면서 머리를 절대로 들지 말라. 절대로 깃발을 흔들며 나서지 말고, 지나친 말을 하지 말라. 지나친 일도 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경제건설에 매진하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유훈인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절대로 머리를 쳐들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국가전략만이 아니라 인생에도 귀감으로 삼았고, 마침내 극상의 권좌에 올랐다. 마음을 비우고 때를 기다리며 천하를 도모한 시진핑은 역사적 인물도 진시황이나 한 무제, 당 태종 같은 화려한 영웅이 아니라 후한을 연 유수(劉秀)나 촉나라를 세운 유비처럼 인화단결을 중시하는 인물들을 롤 모델로 삼았다. 누구도 믿지 않고,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시 주석은 나중에 권력 장악에 큰 역할을 하는 지방 인맥들을 관리하고 조용히 실력을 쌓으며 침착하게 기회를 기다린 것이다. 아버지 인맥의 후원하에 꾸준히 군 관련 인맥을 관리해온 시진핑에 비해 공청단 출신인 리커창은 군 인맥이 없던 것도 큰 약점이었다. 대권을 틀어쥔 시진핑은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상하이방과 공청단을 향해 반부패 척결을 앞세워 가차 없이 칼을 뽑아 들었다. 각 파벌의 핵심 권력들을 부패 등의 혐의로 숙청, 제거하고 전광석화처럼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자신의 집권에 반대해 정변을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 4대 천왕이라는 신 4인방도 차례로 감옥에 넣었다. 항상 엷은 미소를 띤 얼굴로 ‘시따따(시 아저씨)’의 서민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지만, 흉중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야심가의 기질을 감추고 1인 체제를 굳힌 것이다. 집권 후 반대파를 숙청하고 헌법의 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도 삭제, 종신 집권 기반까지 마련한 시진핑은 어찌 보면 마오쩌둥보다 더 무서운 비수(匕首)를 가슴에 품고 등극한 책략가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지지자들은 그를 하늘이 낸 ‘천명(天命)을 받은 지도자’인 천자(天子)로 떠받들고 있다. 중국 혁명 8대 원로였던 부친의 실각 등 부침을 거듭하는 정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아홉 살부터 지켜보며 성장한 시진핑은 평실(平實), 저조(低調), 겸화(謙和), 대기(大氣)란 네 단어를 좌우명 삼아 체화했다. 소박하고 수수한 성품을 바탕으로 재능과 능력을 뽐내지 않는 처세(저조)와 겸허하고 온화함(겸화)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대범하고 당당(대기)하게 일을 처리했다. G2로 굴기한 오늘의 중국을 만든 걸출한 세 인물 즉 “마오는 산, 주은래는 물, 덩은 길”로 비유하며 ‘반세기 한 우물을 판 3인방’으로 꼽았다(이중 전 숭실대 총장). 이제 시진핑은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 ‘중국몽’을 주창하고 ‘한 송이 꽃’이 되어 천하통일과 세계를 제패하는 패권 국가로의 위상을 노리고 있다. 14억을 다스리는 황제로 등극한 시진핑의 두 어깨에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운명이 걸려있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2022-12-12 06:00:00
- [박종렬의 제왕학] 일극집중(一極集中) ..나라의 흥망이 한사람에 달려있다 한 나라는 한 사람에 의해 흥망이 결정된다 “한 나라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흥성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一國 以一人興 以一人亡).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 나라가 쇠망하는 것을 걱정한다. 그래서 반드시 현명한 사람을 찾아낸 뒤에야 죽을 수 있다. 그런데 관중은 어찌 그렇게 죽었단 말인가?” -소순의 <관중론>에서 현재 중국 자금성(紫禁城) 수뇌부는 공자의 <논어>보다 정치와 경제를 하나로 녹여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부국강병(富國强兵) 원리를 설파한 관중(管仲·BC 725?~645)의 <관자>를 열심히 읽으며 G1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알려진 관중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으로 제갈량이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다. 소순(蘇洵·1009~1066)은 <관중론(管仲論)>에서 후계 구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죽은 관중보다 관중을 제(齊)나라 환공에게 천거한 포숙아를 더 높이 평가했다. 환공의 반대편에 섰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관중을 천거해 제나라 재상에 오르게 한 포숙아의 지인지감(知人知鑑), 즉 사람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자질을 높이 산 것이다. 관중은 중국 춘추시대 초기 제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다. 환공(桓公)을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만든 책사(策士)였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환공보다 먼저 죽었고, 제나라는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위기 상황을 맞았다. 소순은 바로 미묘한 권력이양의 기미(機微)를 통찰한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소순은 중국 역대 명문장가 중 동파(東坡)로 널리 알려진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형제의 아버지다. 두 아들과 함께 삼소(三蘇)로 불렸고 ‘당송 8대가’였던 그는 ‘응집(凝集)되어 있는 노천(老泉)’으로 일컬어졌다. 생사를 건 권력투쟁의 본질을 직시한 <관중론>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에서 권력이 이양되는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원형은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유덕자(有德者)에 천하가 돌아간다고 공맹(孔孟)은 가르치지만 ‘중국 25사(史)’를 비롯한 사서(史書)에 기록된 역사 현장에는 예나 지금이나 칼날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있을 뿐이다. 시진핑, 종신 집권 길을 열다 10월 23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69)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었다. 1990년대 제정된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이 2018년 당대회에서 삭제되었고 그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직전 주석이었던 후진타오(胡錦濤·80) 시대까지 유지되었던 2연임 초과 금지 원칙을 깨고 사실상 영구집권의 길을 연 셈이다. 동시에 자신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반열에 올렸다. 시 주석은 이번 당대회에서 후계자 지정도 없어 마오쩌둥이 누렸던 ‘영수(領袖·최고지도자)’ 칭호를 부여받으면서 장기집권 체제를 완성했다.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종신 집권이 가능한 일극집중(一極集中)의 1인 영구집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시진핑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인 1953년에 태어난 5세대 지도자다. 그는 2013년 3월 후진타오 뒤를 이어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에 올랐으며 제6대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군 통수권자) 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일했다. 그는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중국 헌법에 명시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라는 ‘10년 제한’ 금지 조항을 삭제했고 2021년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통해 종신 집권의 기틀을 마련한다. 시진핑은 최근 20차 당대회에서 대만(臺灣) 무력 침공과 양안(兩岸) 통일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미국 CIA는 영구집권을 정당화할 만한 치적이 없는 시진핑이 본인의 3연임이 끝나는 2027년 이내에, 이르면 2022년 말에라도 대만 침공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주석 임기 ‘10년 제한’ 규칙을 당초 설계한 사람은 덩샤오핑이었고 1인 권력이 아닌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다. 신격화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등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1인 지배체제’ 폐해를 실감한 덩샤오핑을 위시한 개혁·개방 시기 원로들 간 합의에서 도출된 후계구도 안정화 시스템이었다. 이때 당대 최고지도자가 한 대를 건너뛰어 차차기(次次期) 지도자를 후계자로 육성하는 ‘격대지정(隔代指定)’이란 관례도 세웠다. 차기 권력 계승자를 최소 5년 전 또는 10년 전부터 미리 낙점하고 부주석에 임명해 차기 지도자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이런 관례에 따라 시진핑 주석 역시 2007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에 의해 차차기 중국 지도자로 낙점됐다. 지난 세기 치열했던 정치 경험을 통해 중국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후계구도 안정화가 정치와 국가체제 안정의 근간임을 체득했다. 일찍이 마오쩌둥은 자신의 후계자로 린뱌오(林彪)나 화궈펑(華國鋒)을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덩샤오핑 역시 후야오방(胡耀邦)이나 짜오즈양(趙紫陽)의 실패가 있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 바로 전·현직 고위 간부들의 합의에 따라 새로운 지도자를 미리 정하자는 것이고, 그 결과가 바로 ‘격대지정’이다. 마오의 독단적 지시로 실시된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1957년 이후 상급 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당원과 국가 공무원들을 벽지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노동에 실제로 종사시키는 하방운동(下放運動), 줄여서 하방(下放)을 세 차례나 겪고 류사오치(劉少奇) 등 2인자의 죽음을 보면서 마오 1인 장기집권의 폐해를 몸으로 체험한 덩(鄧)은 후계자 선정이 정치적 안정의 요체임을 경험했다. 이 논리에 따라 1992년 14차 당대회에서 장쩌민(江澤民) 총서기를 선출한 이후 관행적으로 당대회를 통해 10년 단위(1기 5년)로 최고지도자가 바뀌었다. 장쩌민과 함께 후진타오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장쩌민 이후 시대를 이끌도록 했다. 그리고 후진타오는 후계자 수업을 마치고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올라 10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다. 장쩌민 역시 시진핑과 리커창 등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집권하는 길을 열었다. 물론 덩샤오핑의 ‘원톱’ 후계자와 달리 18대 후계구도는 ‘투톱’의 경쟁 구도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임자가 차차기 후계자를 사전 낙점해 안정적인 권력 승계가 이뤄지도록 하면서 장쩌민·후진타오 시대는 각각 10년으로 막을 내렸다. 시진핑 주석도 과거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이번에 ‘자진 퇴진’을 선택한 이를 칭송할 때 등장하는 ‘높은 인품과 굳은 절개(高風亮節)'란 칭송을 받으며 떠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함께 후계자 구도 군(群)에 선발되면서 서열 6~7위 상무위원으로, 더불어 국가부주석과 부총리로 임명되어 차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18차 당대회에서는 후춘화(胡春華)와 순정차이(孫政才)가 제6세대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정치국 위원에 진입해 후계구도에 성큼 다가섰다. 이들 역시 시진핑과 리커창의 경쟁 구도와 마찬가지로 양자 경쟁 구도를 형성해왔다. 그동안 중국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은 7~9인으로 적절한 권력 배분을 통해 파벌 간 균형을 유지해왔다. 또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견제에 나서면서 ‘집단지도체제’라는 중국 특유의 권력 구도를 만들었다. 중국 공산당은 50대 초·중반 정치인을 상무위원으로 발탁해 후계자로 정치 수업을 시켰고, 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진핑 현 주석 역시 각각 1997년과 2007년 당대회에서 54세로 상무위원이 된 뒤 이변 없이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하지만 시진핑은 이런 오랜 불문율을 깼다. 5년 전인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후계자를 지명해야 했지만 오히려 당 헌법을 개정해 3연임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절대 권력이 생길 수 없도록 국가주석을 2연임까지만 할 수 있다는 ‘임기제’ 규정이 훼손되면서 집단지도체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그동안 고수해온 68세 이상 인물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머물지 말자는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 유임, 68세 퇴임)’라는 나이 제한도 깨졌다. 이제는 능력이 있으면 오르고 능력이 없으면 내려온다는 ‘능상능하(能上能下)’라는 원칙이 대신한다. 10월 22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기구이자 의사 결정 기구인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10년째 집권 중인 시진핑은 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선출돼 3연임이 확정됐다. 시진핑 1인 절대권력 시대가 개막되었다.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등 중국 권력의 전통적인 3대 파벌이 적절하게 상무위원에 배분되던 관례도 깨져 집단지도체제가 붕괴했다.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도 4명을 갈아치우며 모두 시 주석 측근인 이른바 ‘시자쥔(習家軍)'으로 구성됐다. 통치 이념과 정책에 대한 책사 역할을 하며 정권이 세 번 바뀌어도 살아남은 5위의 왕후닝(王滬寧·67)은 이번에 4위 상무위원으로 유임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 지위에 대한 ‘두 개의 확립’을 한층 더 공고히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당장(黨章·당헌)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두 개의 확립’이란 ‘시 주석의 당 중앙 핵심 및 전당 핵심 지위 확립’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을 말한다. 이에 따라 2017년 열린 직전 19차 당대회 때 당장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당의 지도 사상 중 하나로 명기된 데 이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마련된 셈이다. 시 주석이 집권 3기에 들어 1인 체제를 완전히 굳히면서 사실상 임기가 15년이 아닌 20년, 더 나아가 종신 집권을 노릴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 소식통은 “다시 권좌에서 내려오기에는 시 주석이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며 “시 주석은 푸틴처럼 사실상 종신 집권 모델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지난 5일 “시 주석의 목표는 중국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며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순간까지 통치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장기집권 앞에 놓인 과제도 녹록지 않다. 전문가들은 시진핑 3기 시대에 대한 도전은 당내가 아니라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경제 실적 등 외부에서 제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집권에 성공한 시 주석은 마오쩌둥의 ‘신중국 수립’,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장쩌민의 ‘홍콩·마카오 반환’처럼 역사에 남을 치적을 만들기 위해 ‘대만 통일’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당대회 개막식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비전을 위해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을 견지하겠지만 무력 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반드시 실현할 것”이라고 ‘대만 무력 통일 불사’를 처음으로 대내외에 선언했다. 당대회 폐막식에서 공개된 당장(당헌) 개정안 결의문에는 “대만 독립을 단호히 반대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담겼다. 대만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전반적인 국방력 강화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은 물론 미·중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2022-10-28 06:00:00
- [박종렬의 제왕학] 취임 50일 지났는데 '윤석열표 브랜드'가 아리송하다 “정치가는 선인(善人)이 아니다. 지옥을 봐야 한다. 정치는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것이지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길만 말하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천국으로 가는 길밖에 모른다며 다 같이 손잡고 가자고 하면, 자칫 모두를 지옥으로 이끌게 된다. 동물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계도 결국 싸움터다. 일단 싸움터에 나가면, 즉 프로가 되면 ‘절대로’ 이겨야 한다. …투쟁할 때는 상대를 잘 알 것, 자신의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할 것, 자신의 입으로 표현할 것, 이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신동아> 2010년 12월호, 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 1937~)는 로마제국 탄생에서부터 전성기까지의 통치철학과 제도를 논하면서 “이상적인 정치지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숙지하고 있어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며 고대 로마인들이 한 것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오노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지적 능력, 설득력, 육체적 내구력, 자기제어 능력, 지속하는 의지라고 했다. 윤언여한(綸言如汗), “말이 많으면 자주 처지가 궁색해지니 중도를 지키라.” 윤석열 대통령이 메시지와 국무위원 등 중요 인사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과 정치 스타일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설득 능력이 중요한데 윤 대통령의 파격적인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이 관심을 끌고 있다. ‘권력형 침묵에 종지부를 찍은 역사적 변화’라고 호평하지만 적당한 거리 두기의 기술이 없으면 ‘스스로 판 자기 덫’이 될 것이라는 간언에 더 공감한다. 윤 대통령의 거침없는 바깥 나들이에 대해 오죽하면 도어스테핑으로 족하다며 “대통령님을 말려주십시요! 위험합니다. 소탐전실(小貪全失) 됩니다”는 대통령의 안위(安危)를 우려하는 의견광고가 게재되겠는가? 역대 정부에선 볼 수 없었던 탈권위주의적 신선한 소통방식임은 분명하지만, 권위주의와 권위는 구분돼야 한다. “내가 곧 프랑스다”며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드골 대통령의 “지도자는 대중과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지적은 지도자의 권위가 정치 행위에서 중요한 덕목임을 암시하고 있다. 대선 중에도 윤 대통령의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답변은 종종 논란이 되곤 했다. 정치는 말인데 정제되지 않고 거침없이 대답하는 응구첩대(應口輒對)는 설화(舌禍)를 잉태한다. ‘말은 사고(思考)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지적이 아니라도 사상과 정치철학은 말로써 표출된다. 말이 곧 사람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야당 측의 ‘정치보복 수사’ 주장에 대해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느냐”고 반문하는가 하면 ‘부자 감세’ 지적에 “그럼 하지 말까”라고 되물었다. 또 대통령 부인의 활동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방법을 좀 알려 달라”라고 말한 대목은, 가벼움 못지않게 무책임한 인식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 중용’ 비판을 놓고 “과거엔 민변 출신으로 도배됐다”라고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욕설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말은 정치(精緻)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말의 무게는 곧 자리의 무게다. 국민을 향해 구사하는 레토릭은 지도자 품격의 평가 기준 중 하나이자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중심이다. 국가 지도자의 세계관과 의식구조는 국가의 미래와 국격을 좌우하는데, 그 세계관과 의식구조는 곧 그 사람의 ‘말’ 즉 메시지를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유대인 고전 <탈무드>를 보면 랍비가 제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을 찾아 상자에 담아오라”라고 시키자, 제자는 두 상자에 모두 혀를 담아 가져왔다고 한다. 혀가 나쁘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고, 좋게 쓰이면 사람을 살리기까지 하므로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므로, 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많은 상처를 주어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장(老莊)사상에 심취했던 당나라 현종이 ‘노자’텍스트에 ‘경’자를 붙여서 『도덕경』으로 올렸다는 제왕학의 전범인 도덕경에서 왕은 의중을 확실하게 노출하지 말고 그저 조짐(兆朕)만 보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왕이 자신을 지칭할 때 짐(朕)이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한다. 노자는 다언삭궁(多言數窮) 불여수중(不如守中) 즉 “말이 많으면 자주 처지가 궁색해지니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 “저 우주와 자연은 자신의 의도를 말로 하지 않는다, 그저 만물을 풀 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않는다. 지도자도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저 백성들을 풀 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말라”(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도덕경』5장 국정 최고 지도자는 윤언여한(綸言如汗), 즉 말을 땀처럼 여겨야 한다. 일단 흘린 땀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한번 내린 결정은 취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철의 여인’ 영국 대처 총리는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을 형성하며, 인격은 운명을 좌우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후당(後唐) 시절 입신해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는 처세에 능해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 즉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 풍도는 자신의 처세관(處世觀)을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 요약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뜻이다. 야무유현(野無遺賢), 현자가 들판을 헤매지 않으면, 만천하가 편안하다. “동양의 정치는 야무유현(野無遺賢)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 아닌가. 경륜 있는 자는 스스로 감추지만 현명한 치자(治者)는 그를 찾아내야 하고, 끝내 찾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능하고 경륜 있는 사람을 초야에 묻혀 썩게 하고 아첨하는 소인배(小人輩)만을 등용하는 치자는 망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청록파 시인이자 자유당 시절 논객이었던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전 고려대 교수의 ‘의기론(意氣論)’의 한 구절이다. 나라의 치세가 바르게 되려면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야무유현’은『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현명한 사람을 모두 발탁해서 초야(민간)에 인물이 없다’라는 뜻이다. 어진 이가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산다는 것은 세상이 어지럽고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재집권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요약하면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위선은 국민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전문성과 역량이 결여된 아마추어 ‘김현미 장관 류’의 기용, 재판 결과 ‘위선자의 표본’으로 확인된 조국 장관 등의 발탁은 국민적 분노를 촉발하였다. 소주성, 부동산 파동, 국가부채 1000조에 이른 미증유의 경제난과 치솟는 고물가의 민생고 등으로 국민이 겪었던 대가가 너무 컸다. 혼란이 극에 다다르면 새로운 질서가 온다는 난극당치(亂極當治)라고나 할까, 문 정권의 실정에서 빚어진 나쁜 결과 뒤처리가 인사의 정상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인사가 망사’가 된 문 정권에 실망하고 정권교체를 했는데 윤 정권도 ‘며느리가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아간다’라는 속담처럼 초장부터 인사에 구설이 따르고 있다. ‘남성·50대·서울대’ 편중에다 오랜 지기를 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자진 사퇴했고, 검찰 시절 복심(腹心)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다. 한미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가 ‘남성 편중 인사’를 지적하자 두 여성 장관 후보자를 전격 지명했지만 두 사람은 제기된 의혹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인사 참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5월 첫째 주 조사 이후 한 달여 만에 다시 40%대로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6월 17일 나왔다. 직무수행 부정평가자들은 인사(21%) 직무 태도(11%), 대통령 집무실 이전(9%) 등을 꼽았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김건희 여사 행보(1%)가 부정평가 이유에 새롭게 등장했다. 최근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김종인 전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출범한 지 한 달 20일 정도밖에 안 됐는데 이런 사태가 났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수습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2022.6.30.) 정부 출범 초 검찰 출신이 법무부와 검찰 내부 인선을 넘어 대통령실과 금융감독원·국가정보원 등 국정 운영 핵심 각종 요직에 '윤석열 사단'인 측근 검사 출신들이 대거 기용됐다. 헌법의 기본 정신인 견제와 균형 원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검찰 내부에서도 편중 인사가 '검찰 공화국' 이미지 각인으로 검찰 조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다. 또한 ‘끼리끼리 인사’인 동종 교배식 검찰 인사는 전문성과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주요 언론사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입을 모아 '검찰 공화국'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권영세(통일부 장관), 원희룡(국토부 장관), 박민식(국가보훈처장)같이 벌써 검사 그만둔 지 20년이 다 되고 국회의원 3선, 4선하고 도지사까지 하신 분들을 무슨 검사 출신이라고 얘기하는 건 좀 어폐가 있지 않나”라고 항변했다. 국정 지지도 폭락 이유로 “윤 대통령 인사가 문제”라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예견되고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정관정요, “다른 왕조에 가서 인재를 빌려다 썼단 말이냐?” 중국 역사상 ‘정관의 치’로 알려진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모범적 치세를 보였던 이세민(李世民)이 신하들과 나눈 문답집이자 제왕학 교과서인『정관정요(貞觀政要)』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인사(人事)를 가장 중시했다. 이세민은 대신 봉덕이(封德彛)에게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는 일을 맡겼는데, 봉덕이는 시간이 흘러도 인재를 추천하지 않고 차일피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태종이 진행 상황을 채근하자 “제가 성심을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태종은 “군자가 사람을 쓰는 일은 그릇을 쓰는 것과 같아 각자의 장점을 취해야 한다. 자고로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 제왕들은 다른 왕조에 가서 인재를 빌려다 썼단 말이냐? 인재를 알아보지 못할까 봐 걱정해야지, 어찌 오늘의 인재들을 모함하느냐”고 강하게 질책했다.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재(適材)가 적소(適所)에 배치돼야 한다는 점이다. 목수가 집을 지을 때 큰 나무는 대들보와 기둥으로 쓰고 작은 것은 서까래로 쓰고, 눕힐 것과 세울 것을 각각 그 자리에 알맞게 써야 크고 튼튼한 집이 된다는 원리와 똑같다. 적재적소에 배치되면 모든 결정에서 문제점에 대해서 '왜'를 묻고 '어떻게'를 빨리 찾는다. 여기서 효율이 생기고 속도가 빨라진다. 비선조직이 힘을 쓸 방법이 줄어들고 없어진다. 취임 50일이 지났건만 국가 경영에 대한 포괄적인 프로그램이나 시대정신을 담은 눈에 띄는 비전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콘셉트로 국정을 차별화하고 국정 어젠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지, ‘윤석열표 브랜드’가 아리송하다. “대통령 권력은 유한하고, 책임은 무한하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시경(詩經)』에 '두려워하고 삼가기를, 깊은 못가에 서 있듯, 얇은 얼음을 밟고 가듯(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논어(論語)』, 태백)” 신중하게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인과 함께 한가하게 쇼핑하고 여유 부릴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위기상황이다. 거대 야당의 압박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물가, 무역적자 역대 최악 등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총체적 위기)’이 이미 시작됐을지 모른다”는(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복합적 경제위기, 북핵 고도화 등 난마처럼 얽힌 국제정세 등 내우외환(內憂外患)은 시시각각 윤 정권을 옥죄어오고 있다. “때를 얻는 자 흥하고 때를 놓치는 자는 망한다”는 말대로 전광석화처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2022-07-06 15: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