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1표라도 많으면 대통령ㆍ국회의원 되는 승자 독식 정치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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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1-10-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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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책상에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손팻말을 부착한 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정치 구조의 핵심적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승자 독식이다. 선거에서 단 1%, 심지어 단 1표라도 더 얻은 측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한다. 선거에 진 측은 모든 권력을 잃는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전부를 갖거나 전부를 잃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구조가 바로 승자 독식이다. 대통령이 그렇고 국회의원이 그렇다. 이 승자 독식 구조가 우리나라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을 병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승자 독식 구조를 이대로 두고서는 나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득표율을 보면 노태우 36.64%, 김영삼 41.96%, 김대중 40.27%, 노무현 48.91%, 이명박 48.67%, 박근혜 51.55%, 문재인 41.09%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뺀 모든 대통령이 국민 절반의 지지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2위 낙선자와 벌어진 표 차이가 2% 포인트에 불과한 대통령도 여럿이다. 그러고도 승자라는 이유로 권력을 독점했다.

대통령이 독점하는 권력 중 핵심은 인사권이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공식적인 인사권만 갖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영향력을 이용한 비공식적 인사권도 갖고 있다. 이래저래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가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을 합쳐 최소 2000개, 최대 7000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절대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선거 때면 유력 대선 후보 캠프마다 기업, 법조, 언론, 문화, 스포츠 등 각 분야 출신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 후보는 정권을 잡으면 이들을 정부 기관이나 공공기관, 공영 방송국, 심지어 법률상 사기업인 금융기관 등에 이르기까지 낙하산 인사로 내려 보낸다. 곳곳에 캠프 출신에 정권과 코드를 맞춘 '캠코드' 인사가 판친다. 승자 독식 정치의 폐해다.

단 1표만 더 얻어도 권력 독점하는 승자 독식 정치

국회에서는 승자 독식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역구 선거에서 1표라도 더 많이 얻은 사람이 당선되다 보니 한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정당 득표율과 국회 의석 점유율이 비례해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작년 치러진 21대 총선은 그 생생한 사례다.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생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합산 득표율은 33.4%,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 그 위생 정당인 미래한국당의 합산 득표율은 33.8%이다. 그런데 의석 수는 더불어민주당 계열이 180석으로 총 의석 300석의 60%를 차지한 반면, 미래통합당 계열은 103석으로 3분의 1에 불과했다. 정당 지지율은 비슷한데도 의석수는 하늘과 땅 차이다. 더불어민주당에 지역구 선거에서 수 백 내지 수 천 표 차이로 당선된 후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당선되는 승자 독식 구조의 결과다. 정의당은 득표율이 9.7%였지만 의석 수는 6석에 그쳤다. 득표율이 10%에 근접하니 의석 수도 300석의 10%인 30석에 근접해야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다. 정의당 역시 승자 독식 구조의 희생자다.

승자 독식 구조의 가장 큰 폐해는 정치를 사생결단의 적대적 정치로 몰고간다는 점이다. 대통령이든 국회든 승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니 여야가 죽기 살기 식으로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권력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으니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요즘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장동 의혹을 둘러싸고 한 달째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은 그런 사례의 하나에 불과하다. 정치권의 사생결단 싸움은 사회 전반의 진영 싸움으로 이어진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벌어진 반조국 광화문 집회와 친조국 서초동 집회의 싸움이 대표적이다. 부모자식, 형제 간에도 진영 싸움이 벌어진다.

이제 승자 독식 정치 구조를 깨야 한다. 우리 정치가 승자 독식이 된 이유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때문이다. 우리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중심제다. 선거제도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단수다수제다. 단수다수제는 선거에서 1표라도 많이 얻는 쪽이 승리하는 승자 독식 제도다. 유권자 과반수 지지를 얻어야 승리하는 절대다수제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이 왕이다. 그 대통령을, 1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단순다수제로 뽑으니 정치가 승자 독식 체제가 되고 사생결단이 될 수밖에 없다.

사생결단식 적대적 정치가 진영 싸움 불러와

우리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는 승자 독식 대통령중심제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으로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프랑스식 결선 투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는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여기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그러나 이런 대안들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 구조나 대통령 선출 방법을 바꾸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 간에도 개헌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쳐 국회만이라도 승자 독식 구조가 되지 않게 하는 게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기본은 승자 독식인 소선거구제+단수단수제이다.  이런 선거로 전체 의석 300석 중 253석을 선출한다. 나머지 47석은 정당별 득표율에 의한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소선거구제+단순다수제는 거대 양당제를 가져온다. 1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되기에 거대 정당에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 지금까지 제1당과 제2당이  전체 의석의 80~90%를 점유했다.

소선거구제+단순다수제를 비례대표제 중심으로 바꾸면 승자 독식이 없어져 거대 양당제가 물러나고 다당제가 등장하게 된다.  각 정당이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 수를 배정받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학계 일부에서도 비례대표제 중심 개편 제안이 나오고 있다. 비례대표제 중에서도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은 총 의석이 지역구 299석, 비례대표 299석으로 지역구 대표와 비례대표 의석 수가 똑같다. 전체 598석을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정한 뒤 어느 정당이든 지역구 당선자가 배정된 의석 수보다 적으면 그 차이만큼 비례대표를 배분하고, 더 많으면 지역구 당선자는 그대로 인정하되 비례대표 의석은 배분하지 않는 방식이다.

독일식 제도를 작년 우리 총선 결과에 적용해 보면 다당제가 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득표율이 더불어민주당 계열 33.4%, 미래통합당 계열 33.8%, 정의당 9.7%, 국민의당 6.8%였다. 이 비율대로 총 의석 수 300석을 배분하면 더불어민주당 100석, 미래통합당 101석, 정의당 29석, 국민의당 20석이 된다. 승자 독식 체제에서 더불어민주당 계열이 절반이 넘는 180석을 얻고 군소 정당인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6석과 3석에 그친 선거 결과와는 전혀 다르다. 

이 같은 계산은 설명의 편의를 위해 여러 가지 변수를 생략하고 한 것이다. 실제에서는 이 계산과 다소간의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큰 그림은 비슷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더불어민주당이나 미래통합당 같은 거대 정당 중심의 양당제가 무너지고 다당제가 등장할 것이란 사실이다. 거대 양당제와 다당제는 정치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거대 양당제에서는  두 정당 사이에 적대적 대립과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타협과 협상의 정치가 불가능하다. 

승자독식 깨야 통합·협치 가능···독일식 제도 참고할 만

그러나 다당제 아래에서는 타협과 협상의 정치가 불가피해진다. 여당이 과반수를 얻어 국회 권력을 독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당과 대통령은  다른 정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국정을 이끌어나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정당 간 협상과 타협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적대적 정치에서 합의의 정치, 승자 독식 정치에서 ‘각자 제 몫만큼의 정치’로 바뀌게 된다. 여당이 국회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니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감싸고 돌 수도 없다. 그 결과 '제왕적 대통령'은 불가능해진다.

민주당은 2019년 12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총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 중심으로 선거법을 바꿨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 47석을 그대로 유지해 지역구에서 의석을 얻지 못한 군소정당에 돌아갈 비례 의석이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정당 득표율을 100% 그대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50%만 인정해 반쪽 비례대표제에 그쳤다.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가 되려면 비례대표 의석이 총 의석 300석 중 최소 100석은 되고 정당 득표율도 100%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게 선거제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래야 다당제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당제가 되면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고 그러면 국정 안정이 흔들릴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보다 거대 양당이 사생결단의 적대적 정치를 하거나, 거대 여당이 등장해 입법권을 독점하고 대통령을 감싸고 돌거나 반대로 거대 야당이 등장해 국정을 마비시키는 승자 독식의 부작용이 훨씬 더 클 수 있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과제로 협치와 통합이 꼽힌다. 대통령마다 협치와 통합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뤄진 적은 없다. 협치나 통합이 권력의 선의에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협치나 통합은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일정 부분 양보 내지 포기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권력도 스스로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국정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돼야 양보하고 포기한다. 그럴 때라야 협치와 통합도 가능하다. 그 ‘어쩔 수 없이’ 하게 하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게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꿔 거대 양당제 대신 다당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권력 구조 개편 같은 국민적 합의가 걸린 문제와 달리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은 정치권에서만 합의되면 실현할 수 있다. 대선 후보마다 정치 개혁을 외친다. 진짜 그럴 뜻이 있다면  먼저 승자 독식 정치 구조를  깨는 일부터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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