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데미무어가 머리카락을 미는 장면이 나온다. 시쳇말로 '바리깡'을 댄다. 마치 훈련병처럼 말이다. 이는 '여자군인'이 아니라 '그냥' 군인이 되길 바란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투쟁심의 상징이다. 솔직히 멋었었다. 지금도 멋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를 '전우'라 부른다"는 영화 카피가 너무도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군인의 머리카락이 짧은 것은 전장상황에 불적합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길면 전투 중 관리가 어렵고 위생상 불결하다. 구보 중에 머리카락이 눈을 찌를 수도 있고, 방탄모가 벗겨질 가능성도 크다.
이는 여군도 동일한 조건이지만 일반사회 생활도 같이 해야하는만큼 무조건 박박 밀라고 할 수 없으니 숏컷을 하라고 조건을 완화해 준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조단(데미무어)는 이런 배려를 거부하고 그냥 박박 밀어버린다. 더이상 여자로 보지 말라는 거다. 영화였지만 난 눈물이 날 뻔했다.
꾸미지 않았고 중성적인듯 해도 나름 매력이 있는데 아무튼 그게 논란이란다. 영화 속이긴 했어도 데미무어는 민머리를 들이 밀며 중성을 넘어 남자들과 똑같아지겠다고 바득바득 악을 써도 뭐라하지 않았는데 기껏 좀 짧은 커트머리 가지고 이 난리다. 수난도 이런 수난이 없다. 왜 안꾸미느냐, 페미니스트니냐,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 별소리 희안한 소리가 다나온다.
내 나이 이제 오십.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인생인데, 살다가 운동선수가 꾸미지 않았다고 욕먹는 건 처음이다. 운동선수가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지 꾸미고 말고 따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과거에는 운동선수가 외모에 관심을 둔다고 오히려 비난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축구선수 고종수, 펜싱 남현희 등)
그런데 단지 짧은 머리카락을 문제삼아 '페미니스트' 어쩌고 하며 메달 박탈 운운하다니 도대체 이건 무슨 천지개벽할 신박한 논리전개인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머리 속을 열어 현미경 검사를 하듯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마 왠만해선 이 세상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희귀한 뇌구조 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논리인지, 누가 만들어낸 주장인지 모르겠는데, 황당하고 기가막힌다. 이런 식의 억지를 확대재생산해내면서 먹고사는 자들이 유튜브나 SNS에 기생한다고 하니 기가 찰 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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