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 줄게 같이 자자" 택시기사 '성희롱'...명백한 '인종차별·인권침해'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안동현 기자
입력 2021-05-12 18:2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성희롱 발언이지만…형사 처벌은 어려워

  • 대상이 사회적 약자인 '베트남 이주민'…인종차별 문제 제기돼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인식제고에 도움될 수 있어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피켓을 든 여성.[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만원 줄게. 같이 자자." 지난 1일 늦은 밤 택시를 탄 승객에게 기사가 던진 성희롱 발언이다.

여러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 8일 한 60대 택시기사는 여성승객에게 "같이 자자"는 말 뿐만 아니라 "애인이 있냐" "결혼은 했냐" "남편 말고 애인을 만드는 건 어떠냐"는 등 다른 성희롱 발언을 쏟아냈다는 사건을 보도했다. 승객이 "2살짜리 애가 있다"고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택시 기사의 부적절한 언행은 그치지 않았다. 승객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야 기사는 입을 닫았다.
 
"돈 줄게. 같이 자자"...단순 성희롱은 처벌 안 받아

이 사건은 택시 기사를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로 피해자 측이 택시기사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적용할 혐의가 마땅치 않다"며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현행법상 성희롱은 직장 내에서 발생한 경우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즉, 양성평등기본법이 아니면 성희롱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은 없다. 성추행(강제추행)은 신체접촉 등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한 적용되지 않는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의 적용도 불가능하다. 모욕죄 또는 명예훼손죄의 경우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연성'이 있어야 한다. 공연성이란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처럼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나눈 대화는 공연성이 성립하기 어렵다.
 
2017년 택시기사가 이주민 여성에게 "밤에 잠자리 잘하고 있냐"..."너 때문에 코로나 걸렸어"라고도
 
문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베트남 이주 여성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소수자이자 약자인 이주민의 인권침해 성격이 더 강한 사안이다.

비영리단체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제호 상근변호사는 아주로앤피와의 통화에서 택시 기사의 행동을 성희롱에 해당하는 문제로 규정하면서도 "택시 기사가 과연 한국인이거나 자기가 함부로 제의를 할 수 없는 상대였어도 성매매를 제안했을지 생각해본다면 안 그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얘기는 이분(베트남 이주 여성)에게는 내(택시 기사)가 함부로 성매매를 제안해도 된다는 인식이 밑에 깔려있다고 생각된다"며 이번 사건은 이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주민 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인종차별 또는 성차별적 행위는 오랫동안 지적돼 온 사회문제 중 하나다. 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혐오표현 실태 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서도 이주민 여성을 향한 성희롱적 발언이 등장한다. 이 연구결과에는 한 이주민 여성에게 택시 기사가 "밤에 남편이랑 잠자리 잘하고 있냐"라고 말한 사실과, 전철역의 어떤 남성이 그녀의 이주민 여성 친구에게 “너 여기 와서 힘들게 돈 벌잖아. 나랑 같이 가면 매달 30만원 용돈으로 줄게”라고 말한 사실 등이 포함돼 있다. 이와 같은 발언은 이주민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주민공익지원센터'의 고지운 변호사 또한 아주로앤피와의 통화에서 '이주민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가 많이 생기고 있냐'는 질문에 "있다"고 말하며, 최근 코로나 국면에서 지나가는 이주민 여성을 가리켜 "코로나"라고 부르는 등의 모욕적 행위를 한 사건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고 변호사는 "이에 대해 작년 말에 기자회견을 열고 이후 모욕죄로 고소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앞선 지난 1일 택시 기사의 성희롱 사건과 달리 공공연한 장소에서 벌어졌기에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관련 입법이 효과적 대안 될 수 있어

아주로앤피와의 인터뷰에 응한 변호사들은 이주민 인권 침해의 정책적 해결 방안은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호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차별금지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인종, 국적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을 선언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이 규정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 또는 교육과 제도와 관련한 정책을 수립하는데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원옥금 베트남교민회장은 아주로앤피와의 통화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두 달 전부터 이주민 인권 단체들이 차기 대통령 후보에게 제안할 이주민 인권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원 회장은 여성을 비롯한 외국 이주민들이 "성차별 뿐 아니라 고용이나 교육, 행정 서비스 등 전반적으로 차별 받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