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중고차 사기 판매조직에 처음으로 '범죄집단'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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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진 기자
입력 2020-09-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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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형법 개정으로 도입한 죄...검찰·법원 적극 활용 필요

  • 선진국처럼 제조사가 중고차 성능 보증하는 제도 도입할 만

지난 2016년 11월 경 회사원 A씨(36)는 한 온라인 중고차 판매사이트에서 약 240만원에 판매한다는 한 승용차를 보고 매매업체에 연락했다. 같은 사양의 다른 차보다 몇백만원이 싼 가격이었다. A씨는 인천 서구에 위치한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중고차 매매업체 소속 딜러 B씨를 만났다. A씨는 B씨에게 “정말 290만원이 맞냐”고 물었고, B씨는 “맞다. 게다가 오늘 바로 계약하면 170만원에 주겠다”고 답했다.

A씨는 B씨에게 추가 비용이 없는지를 여러 번 다짐 받고 170만원에 해당 중고차량을 매수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때까지 A씨는 해당 차량을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계약을 맺자마자 B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B씨는 A씨한테 “해당 차량이 법원 경매차량이어서 2100만원 정도의 승계금이 남아있다. 이는 당연히 당신이 내야 한다”며 “나머지 잔금은 현금으로 할 것이냐 캐피털로 할 것이냐”는 황당한 말을 한 것이다. A씨가 “계약서 쓸 때까지만 해도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반발하자 B씨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다 설명했다”고만 답했다.

A씨가 B씨에게 “차를 살 수 없다”고 말하자 B씨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C씨 등 몇명의 딜러들이 몰려와 “이미 이전 처리가 됐는데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냐”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들은 곧바로 “이전비용이 발생했으니 다른 중고차를 구매해야 한다”고 A씨를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그 결과 A씨는 원래 사려고 했던 자동차 대신 주행거리 약 9만㎞의 다른 차량을 48개월 동안 46만원씩 내는 전액 할부 계약으로 1810만원에 구매해야만 했다. 이마저도 시세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또한 A씨는 B씨 등 중고자동차 딜러들에게 수수료 3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행정당국에 제출된 차량등록서류에는 1030만원으로 신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B씨가 세금을 피하기 위해 A씨와 계약한 금액보다 낮은 매매대금으로 신고한 것이다.

중고차 매매계약이 끝나자 B씨 일당은 A씨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검찰은 B씨가 속한 중고차매매업체의 사장과 간부 및 B씨를 포함한 직원 22명을 모두 사기와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범죄단체 조직·가입·활동 혐의도 더했다.

형법 제114조는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범죄 통솔 체제를 갖춘 조직폭력배 등을 ‘범죄단체 조직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으나, 온라인 도박사이트 등과 같은 소규모 조직의 처벌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지난 2013년 4월 5일 ‘범죄단체’보다 느슨한 ‘범죄집단 조직’ 형태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B씨 일당들이 속한 업체가 인천에서 외부 사무실을 갖추고 직책과 역할을 분담해서 중고차 허위 매물 사기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업체 간부가 직원들의 실적을 관리해 수익을 배분했고, 가입·탈퇴가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검찰은 이들에게 범죄단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1심은 B씨 일당에게 사기와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고, 범죄단체에 해당한다는 검찰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대법원은 범죄단체에 해당하려면 “특정 다수인이 일정한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이루어진 계속적인 결합체로서 그 단체를 주도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보아왔는데 1심은 B씨 일당이 대법원 판례가 설명하는 요건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범죄단체보다 한 단계 낮은 ‘범죄집단’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으나 항소심 역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예비적 공소사실이란 공소장에 적힌 공소사실 중 후순위 공소사실을 말한다. 검찰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B씨 일당이 주로 친분관계에 이끌려 모였으며 가입·탈퇴에 별다른 절차가 없었던 점 등을 들어 범죄단체·집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8월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란 “특정 다수인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동목적 아래 구성원들이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범죄를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춘 계속적인 결합체”라고 정의한 후 “범죄단체(조직폭력배 등)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통솔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지만, 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용이하게 할 정도의 조직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후 “이들(B씨 일당)이 조직폭력배처럼 범죄통솔 체계를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조직과 유사하게 대표, 팀장, 팀원(출동조, 전화상담원)으로 직책이나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고, 텔레그램을 통해 범죄 사실과 단속 정보 등을 공유하는 등 범죄집단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며 범죄집단 조직에 대해서 무죄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돌려보냈다.

법원과 검찰 모두 중고자동차매매업체의 허위매물 사기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수사당국과 사법부의 엄단 의지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중고차 딜러가 인터넷에 허위 매물로 고객을 유인한 뒤 인터넷에 올린 것과 다른 차량을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가로채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고자동차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도 해외 선진국처럼 중고차 시장 정화와 거래 투명화를 위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 선진국의 중고자동차 시장 상황은 어떨까?

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자동차 판매장에서 신차와 중고차를 동시에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가 구매 방식을 고를 때 할부로 차를 임대해서 사용한 뒤 다시 매장에 반납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다.

또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른바 ‘인증 중고차’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인증 중고차’ 제도란 제조사가 직접 자사의 중고차량의 상태와 이력, 주행거리 등을 검사하고 3년간 보증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가격이 일반 중고차에 비해 더 비싸지만,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제조사가 직접 안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자동차 제조사가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고 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 전시장에서 필요에 따라 고를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소비자들이 중고차 이력과 시세, 잔존가치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채널과 더불어 중고차 정찰제를 도입했다. 현재 이 제도는 중고차 품질 수준과 신뢰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중고차의 상태를 전문적으로 검사해주는 기관이 주행거리, 사고 이력 등을 확인하고 등급(별점)을 매기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에 더하여 일본 중고차 업체가 자발적으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일본 내 판매 가격, 낙찰 가격 등 여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그 결과 직접 중고차를 확인할 수 없는 해외 소비자들 한테까지도 중고차 시장에 대한 신뢰성이 쌓여 해외 판로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의 해외 중고차를 수출량은 대한민국보다 3.7배, 수출 액수로 따지면 약 6.5배 많았다.

한국 역시 중고차 시장 정화와 거래 투명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8년 당시 미래통합당 원유철 의원은 ‘자동차 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중고차 성능점검자가 거짓으로 점검하거나 점검한 내용과 다르게 자동차 매매업자에게 알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업계의 반발 등으로 인해 2년 동안 국회 국토교통위에 계류돼 있다가 지난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또 지난해 6월 1일부터 중고차를 거래할 때 발급되는 성능·상태 점검기록부 내용이 실제 차량 상태와 다를 경우 중고차를 구매한 소비자가 손해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중고차 성능·상태 책임보험’ 의무가입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고차 매매 업계의 반발로 인해 제도 안착에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와 같이 중고차 매매상들이 중고차 시장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상태로는 자정작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선진국의 신차 시장 수준의 투명한 거래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강력한 법안을 마련하는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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