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에겐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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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입력 2020-07-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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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맏이의 눈물로 보는 승계의 법칙] ④롯데그룹

  • 신동빈, 롯데홀딩스 대표 맡으며 형제의 난 마무리

  • 연전연패 신동주, 아버지 유서에도 포기 못해

  • 농심 신춘호, 신격호 라면사업 반대에 오기 보여줘

신동주(왼쪽), 신동빈 형제.[사진=아주경제 DB ]

[데일리동방] 창업주가 눈 감은 뒤에도 롯데그룹 ‘형제의 난’ 불씨는 여전하다. 말년에 형제 간 다툼을 지켜보다 눈 감은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20년 전 유언장으로 다시 갈등을 잠재우려 한다.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최근 승소는 씁쓸한 형제 사이를 재확인 시켜준다. 서울고법 민사34부(장석조 박성준 한기수 부장판사)는 8일 나무코프가 SDJ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신 회장 손을 들어줬다.

◆동생 경영권 뺏으려 수백억 자문료

전 산업은행장인 민유성 나무코프 대표는 2015년 9월부터 자문료를 받고 신 회장 입장을 대변했지만 2017년 8월 계약 해지를 일방 통보 받았다. 법원이 불법으로 판단한 이들의 계약 시기는 형제의 난이 일어난 때와 같다.

양측은 신동주 회장의 롯데그룹 경영권 회복을 위해 동생 신동빈 회장의 법정구속과 롯데쇼핑 면세점 특허 재취득 탈락 등을 목표로 세웠다. 재판으로 밝혀진 자문료는 200억원에 가깝다. 민 대표 측은 일방적인 계약 해지로 14개월분 자문료 107억원을 못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을 받거나 약속하고 법률 사무를 취급하는 일은 변호사법 위반이어서 계약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신동주 회장의 승리는 동생을 상대로 한 ‘형제의 난’ 불씨를 상기시킨다. 신동주 회장은 지난달 동생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 4월 동생의 이사 해임 건과 범죄 사실이 입증된 자의 이사직을 금하는 정관 변경을 요청했지만 6월 정기 주총에서 부결됐다. 신동주 회장은 부결된 안건에 대한 소송 진행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은 동생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유죄 선고 받고도 책임 지지 않았다는 논리를 세웠다. 하지만 본인이 회사 경영과 직원 생계를 위협하며 경영권을 가져가려 한 점을 볼 때 자격 없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은 2015년 본격화했다. 신동주 회장은 그해 7월 신동빈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했다. 동생은 무효라며 맞섰다. 형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무기 삼아 반격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말이 어눌해도 소통이 잘 되는 동생과 달리 형은 한국어를 할 줄 몰라서다. 그는 언론에 아버지와 일본어로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가족끼리 일본어만 하는 일본인 가족 이미지만 남겼다. 기자회견문도 아내가 대신 읽었다.

이후 롯데홀딩스 주총 대결에서 잇따라 형을 누른 신동빈 회장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뇌물공여와 경영비리 사건 등 위기에도 6전 6승으로 승기를 놓지 않았다. 2015년 8월, 2016년 3월과 6월, 2017년6월과 2018년 6월, 이번 주총 모두 동생이 이겼다.

신동주 회장은 자신의 롯데홀딩스 이사직 해임이 부당하다며 롯데 계열사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지난해 6월 한국과 일본에서 패소했다.

형제 간 싸움은 신동빈 회장이 4월 일본롯데홀딩스 회장에 취임하고 이달 초 대표이사(CEO)도 맡으면서 사실상 끝나게 됐다. 지난달에는 신동빈 회장을 롯데그룹 후계자로 지목한 아버지 유언장이 공개되기도 했다. 특히 형이 변호사법을 위반하고 100억원대 자문료를 써가면서 회사 경영을 방해했다는 사실은 동생이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데 보탬이 됐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사진=이범종 기자]

◆마천루 꿈 세우고 아들 분쟁 못 막아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은 현역시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셔틀 경영’을 했다. 아들도 장남은 일본, 차남은 한국 롯데로 보냈다. 나라 사랑을 경제로 실천한 그는 롯데월드타워로 말년의 이상을 실현했다. 고인은 여든살이던 2002년 112층 건물 청사진을 보이며 “외국의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후 관계 당국의 불허가 허가로 변경되며 잠실의 123층 마천루 관광지로 우뚝 서게 됐다.

그의 오랜 꿈이 생전에 이루어졌지만 아들 간 경영권 다툼만은 막지 못했다. 건강이 악화돼 말년에는 조세포탈과 배임 혐의로 법정에 선 자신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사진=아주경제DB]

◆롯데의 ‘이기는 동생’ DNA

집안 장남인 신 회장 본인도 형제와 크게 다퉜다. 남매 중 다섯째로 일본 롯데에서 일하던 신춘호 농심 회장은 1965년 한국에서 롯데공업을 세우고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신격호 회장이 라면 사업 진출에 반대했지만 동생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두 사람은 이 과정에서 의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생은 훗날 자서전 ‘철학을 가진 장이는 행복하다’에서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큰형이 반대하자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집안 아홉째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1996년 롯데햄∙우유 부회장에 올랐지만 1995년 도입된 부동산 실명제를 계기로 형과 갈라섰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본인과 신준호 회장 이름으로 반씩 나눠 갖고 있던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를 두고 서로 소유권을 주장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에 어쩔 수 없이 부친과 동생 명의로 땅을 샀다는 주장과 아버지가 동생에게 직접 땅을 물려줬다는 주장이 맞섰다. 그룹 내 직위에서 해임된 동생은 법원에서도 형을 이기지 못했다. 신준호 회장은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에 취임하고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장남은 24살 차이 나는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대표이사와도 다퉜다. 신 대표는 롯데그룹과 지분 관계가 없지만 롯데 이름과 엘(L) 3개가 겹쳐진 롯데 마크를 사용해 롯데관광을 운영했다. 롯데그룹은 2007년 일본 관광기업 JTB와 합작해 롯데JTB를 세우고 롯데관광이 롯데 이름과 마크를 쓰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후 롯데관광은 롯데 마크 대신 이름만 쓰고 있다.

'살아있는 전설'이던 장남에게 굴하지 않은 동생들은 오늘날 롯데 일가에 작지 않은 자리를 세워놨다. 형을 이기는 동생의 기질은 어쩌면 롯데 집안 기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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