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 ② | 청와대로 간 판사들] '법복 입은 정치인' 나오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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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주 기자
입력 2020-03-0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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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관 신뢰에 상처...'퇴직 후 2년 내 청와대행 금지' 법안 통과

“법관으로서 퇴직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대통령비서실의 직위에 임용될 수 없다”

지난달 9일 국회를 통과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내용이다.

개정안은 “법관은 대통령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직위를 겸임할 수 없다”는 규정, “대통령비서실 소속의 공무원으로서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의 법관 임용을 금지하는 규정도 담고 있다.

개정안은 제안이유에서 “현행 법원조직법에는 법관에 대하여 퇴직 후 대통령비서실 임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고,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으로서 퇴직 후 일정 기간 법관으로의 임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한편, 법관의 대통령비서실 파견 및 겸임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실정”이라며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제고하려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이 법원조직법에 들어온 배경에는 김형연·김영식 전 판사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형연 전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간사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사법부 독립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사직하고 다음날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갔다. 게다가 지난해 5월에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사직하고 11일 뒤 법제처장으로 임명됐다.

지난해 5월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임명된 김영식 전 판사는 김형연 전 비서관의 후임이다. 김영식 전 판사는 인천지법 부장판사로 있던 2018년 12월 사표를 던졌다. 당시 김 전 판사의 법무비서관 내정설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김 전 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게시판에 글을 올려 “사직 전·후로 지금까지 어떤 공직을 제안받은 적도 없었다”며 “그야말로 기사보도의 원칙마저 저버린 오보이며 인권법연구회 전체를 폄훼하려는 의도”라며 내정설을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4월 뒤 그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이들의 행보에 대해선 법원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나왔다.

“김형연 법제처장이 판사의 새로운 출세 모델을 만든 것 같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들의 행보에 인권법 연구회가 정치집단처럼 오해를 받고 있다”

법관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간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각각 2명·3명·5명의 법관 출신 비서관이 있었다.

유독 이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센 것은 ‘공백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에선 대부분 공백기를 충분히 뒀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김영식 전 판사는 퇴직 ‘석 달’만에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김형연 전 판사는 공백기조차 없었다.

대한변호사협회 감사인 홍성훈 변호사는 “판사로 재직하며 누구보다 사법부 독립을 외쳤던 이들의 행보는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정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며 “최근 법원조직법이 개정돼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금지 규정이 없었던 것은 삼권분립을 존중할 것이라는 법관에 대한 신뢰가 작용했던 것인데 여기에 상처가 남은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37개국을 대상으로 각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해 순위를 매긴 조사 결과 초안이 나왔는데, 한국이 꼴찌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법원만 콕 집어 물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가 꼴찌이든 아니든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것만은 사실이다. 사법부가 정의를 지키는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취임사 하는 김형연 신임 법제처장 (세종=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김형연 신임 법제처장이 지난해 5월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법제처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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