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테마여행 10선 6권역 남도 바닷길 여행코스(전남 순천‧여수‧광양‧보성)에는 특별한 ‘문학기행’을 즐길 수 있는 명소가 집약돼있다. 문학 속 풍경을 찾아 무작정 떠난 여행은 휴식 이상으로 값진 경험과 감흥을 안겼다.
◆가상도시 무진을 품고 마주한 순천…김승옥 무진기행 속 ‘순천만’
8000년 시간이 빚은 자연 생태계 보고 순천만은 행정구역상 전남 순천시와 고흥군, 여수시에 걸쳐 둘러싸여 있다. 광활한 갯벌과 거대한 갈대 군락이 순천만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영양이 풍부한 갯벌은 칠게와 짱뚱어, 철새들을 품어주는 보금자리다.
바람이 부니 갈대들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쉭쉭쉭’ 소리를 낸다. 햇빛을 가득 머금은 갈대군단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대신 금빛·은빛 물결 출렁이는 겨울 순천만. 갈대밭 사이로 걷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멋들어진 그림 한 폭을 감상하는 듯 황홀하다.
이제 드넓은 갯벌에 펼쳐진 갈대군락과 더불어 다양한 철새까지 볼 수 있는 순천만 생태체험선에 몸을 실을 차례다. 순천만 S라인을 따라 배로 이동하다 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먼 길을 날아와 순천만에 자리 잡은 수많은 겨울 철새들이 힘찬 날갯짓을 한다. 그 분주함이 한가롭고 평화롭게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 개체 수가 증가하고 다양한 생명체를 키워내고 있다.
저녁 무렵이면 더욱 빛나기 시작한다. 붉은 노을이 장관을 연출해서다. 불덩어리가 뒤로 떨어지는 듯 석양을 보는 곳으론 용산전망대가 제격이다. 천천히 걸어서 30분이면 닿는 야트막한 산이라 아이들도 엄마 손을 잡고 올라간다. 저녁 무렵 썰물 때면 40㎞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갯벌이 펼쳐진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S자 물길을 따라 배가 천천히 미끄러져 나간다. 석양과 함께 마음도 따스해진다.
순천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와온해변도 일몰 명소다.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데크까지 있어 인증사진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조정래 ‘태백산맥’ 떠올리며 보성으로 향하다
읍내가 그리 크지 않아 천천히 걸어 다니며 한나절 문학기행 하기 좋다. 남도여관으로 등장한 옛 보성여관과 부용교(소화다리), 김범우 집 등 소설 속 장소를 현실에서 만나는 감흥이 특별하다.
보성여관 가는 길, ‘아즘찬이’ 카페와 보성군 특산물 판매장 ‘매시랍게’ 등 푸근한 느낌을 주는 상점 간판이 눈에 띈다. 드디어 보성여관이 보인다. 1935년에 지어진 보성여관은 한옥과 일식이 결합한 2층 목조건물이다. ‘태백산맥’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묘사된다. 2012년 문화재청과 보성군이 보성여관으로 복원해 현재 온돌방 7개를 갖춘 숙박업소로 활용 중이다.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차 한 잔 마시고, 책을 읽으며 하룻밤을 묵어가기에도 좋다. 투숙객이 아니면 입장료 1000원을 내야 한다.
보성여관 맞은편 ‘정도가’도 소설 무대다. 지식인 청년 정하섭 본가로 등장하는 술도가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꼬막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꼭 들러야 할 필수코스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 작가 좌우명이 기록됐다. 문학관 주변에는 현부자집과 소화 집터·홍교가 자리했다.
수산물 지리적 표시 제1호인 벌교꼬막과 보성녹차를 비롯해 득량만과 여자만의 해산물은 유명하다.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국내 최대 월동지다. 보성갯벌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
◆윤동주 시 지켜낸 놀라운 우정···광양 정병욱 가옥서 만나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길벗이자 글벗이고, 영벗이었다고 전해진다. 윤동주가 3학년, 정병욱이 1학년 때 기숙사에서 지내다 윤동주가 4학년, 정병욱이 2학년 때 하숙집을 전전하며 삶을 함께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자선시집을 77부 한정판으로 출판하려 했지만, 1937년부터 실시된 한국어 말살 정책 때문에 무산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윤동주는 육필로 시집 3부를 작성, 1부는 자신이 갖고 다른 1부는 이양하 교수에게, 마지막 1부는 벗인 정병욱에게 준다.
정 선생이 갖고 있던 윤동주 시집 마지막 한 부는 정병욱 본가에 온전히 보존돼왔다. 이 원고는 그가 목숨 걸고 지켜낸, 소중한 작품이었다. 일본에 강제징집되기 전 원고를 품고 광양 본가로 향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 원고를 부디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남긴 마지막 유언과 같은 부탁이었을 것이다. 본가는 섬진강 물줄기가 흐르는 마지막 포구 망덕포구 바로 앞이라 일본인 왕래가 잦았음에도, 어머니는 과감히 마룻바닥을 뜯어낸 뒤 보자기에 고이 싼 원고를 넣고 다시 마루를 덮었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강제징집됐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왔다. 정 선생도 그중 한 명이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경성대학(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윤동주 유고시집 편찬을 진행한다. 잠들어있던 시집은 1948년에 비로소 세상빛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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