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피의사실 공표, 조국 같은 공직자엔 더 확대해야 할 7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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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19-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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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법무부, 조국 장관 수사 와중에 공표 금지 추진

조국 장관 일가족 수사를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법무부와 민주당이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주장하고 나오면서다. 그간 법무부는 피의사실의 기소 전 공표를 금지한 형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공보 준칙'을 만들어  피의사실을  언론에  공표하도록 했다. 검찰의 수사 브리핑 형식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준칙을 바꿔 공표를 금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과 법무부는 피의사실 공표를 검찰의 적폐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전 정권 비리에 대해선 피의사실을  마음껏 공표해 정치 공세에 악용했다. 그러더니 조국 장관 가족이 수사를 받게 되자  공표 금지를 들고 나왔다.  조국 장관을 보호하고 검찰 수사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조국 장관은   “(금지 조치를) 제 가족을 둘러싼 수사가 종결된 뒤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 취재 보도 관행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을 논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전에 한 가지 분명히 할 게 있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적어도 현직 장관인 조국 같은 인물을 보호하려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관은 한 나라의 대표적인 공직자이다. 국민의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사람이다. 이런 고위 공직자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 과정과 내용은 국민에게 최대한 소상히 알려져야 한다. 조 장관 같은 공직자의 경우 피의사실 공표는 더 활성화하면 해야지 금지할 일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하는 피의사실 공표죄를 둔 나라는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죄로,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도입됐다. 정부가 제출한 형법 제정 초안에는 없었는데 국회 법사위가 만든 수정안에 들어갔다. 그때도 이 죄의 도입을 놓고 국회의원 간에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그 논란에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둘러싼 쟁점과 찬반 논거가 다 들어 있다.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찬반 논란

엄상섭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피의사실 공표죄 입법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새 경찰서 문 앞에만 가도 당장에 신문에 나고 여러 가지 말썽이 되어서 혐의를 받은 사람은 신용과 명예 유지에 대단한 곤란을 받는다. (중략) 확정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을 받게 되어 있다. (중략) 경찰서에 한번 잡혀갔지만, 신문에만 떠들어 놓고 수사한 결과 아무런 결론도 나지 못하는 형편도 있다. 한번 신문에 나거나 소문이 퍼진 뒤에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지 못하는 결과가 돼서 그 피해자의 처지는 대단히 곤란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조문을 신설한 것이다.’

이에 변진갑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조항이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우려가 있고, 오히려 범죄 보도로 인하여 범죄 수사에 국민의 협조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윤길중 법제사법위원장이 반박했다. ‘신문기자가 탐지를 해서 보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이 일단 피의사실을 발표하면 수사기관 스스로 이에 기속되어 이것을 번복하기 어렵고 그 피의자를 억지로라도 잡을 수밖에 없는 폐단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변진갑 의원은 ‘(수사기관이) 말을 못하게 할 것 같으면 죄가 있다 할지라도 우물쭈물할 위험성, 즉 범죄를 은폐,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다시 반박했다. 이런 논란 끝에 피의사실 공표죄가 포함된 형법 수정안은 재적의원 92명 중 66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지금도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 관한 쟁점과 찬반 논거들은 이 논란 속에 들어 있는 것들과 똑같다.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공표 금지를 찬성하는 논거다. ①무죄 추정 원칙에 어긋난다. ②피의자 인격권을 침해한다. ③수사기밀 유지를 어렵게 한다. ④수사기관이 이미 발표된 피의 사실에 맞춰 짜맞추기 수사를 할 우려가 있다. ⑤(최근 새롭게 추가된 논란으로) 법관에게 피의자가 유죄라는 선입견을 갖게 해 피의자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다음은 공표 금지를 반대하는 논거다. ⑥수사기관의 은폐, 축소 수사를 방지할 수 있다. ⑦언론 자유를 침해한다. 그러면 각 논거의 합리성 여부를 따져 보자.

◆7개 쟁점별 찬반 논거 따져 보니

첫째, 피의사실 공표가 무죄 추정 원칙에 어긋나는가?
꼭 그렇지 않다.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공표하거나 언론이 이를 보도할 때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표현을 쓴다. 죄를 지었다고 단정하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  '~혐의를 받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공표하거나 보도하는 것은 무죄 추정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혐의를 받고 있다’는 표현도 일반인들에게는 그 피의자가 유죄일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인상을 주는 것조차 피하려면 범죄 보도를 아예 하지 않는 도리밖에 없다.

나아가 무죄 추정 원칙을 말 그대로 지키려면 법원 판결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공표하거나 보도하면 안 된다. 무죄 추정 원칙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그런데 1심이나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대법원에서 파기돼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1, 2심의 유죄 판결 내용을 공표하거나 보도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언론은 범죄 보도를 통해 사회적 문제점에  관심을 환기시키고 개선책을 고민하게 해 준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보다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이끈다. 언론의 범죄 보도를 금지하면 언론의 이런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고 결국 사회 발전도 가로막히게 된다. 

◆고위 공직자 인격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어

둘째, 피의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피의자가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다. 검찰이나 경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당사자는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고위 공직자·정치인·기업인·대학 교수·언론인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거나, 연예인·스포츠 선수 같은 유명인, 흉악 범죄자처럼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도 명예와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는 물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와 동시에 사회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기업인 등은 나라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이런 사람들의 비리를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고 그 실상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그러자면 이런 사람들의 인격권은 일반 시민들에 비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4년 뉴욕타임스가 한 소방서장으로부터 제기당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이렇게 판결했다. ‘공적(公的)인 쟁점에 관한 논쟁은 금지되어서는 안 된다. 활성화되고 공개되어야 한다. 그러한 논쟁 과정에서는 당연히 정부나 공무원에 대한 신랄하고도 때로는 날카로운 공격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 공적 인물, 즉 공직자는 인격권이나 사생활 보호권의 효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직자뿐이 아니다. 어떤 사건으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일반인이 관련된 사건 판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건의 사인(私人)은 그가 원하지도 않았던 일로 뉴스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그와 그의 활동은 이제 전적으로 공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사인의 생활이 이미 사적인 것이 아닐 때 한 개인이 가지는 프라이버시권 역시 일반적으로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물의를 일으킨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흉악 범죄를 저지른 사람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공직자나 공인에게는 왜 인격권 제한이 불가피한가. 얼 워런 대법원장은 그들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데 있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들과 이들의 행위는 ‘정당한 사회적 관심사’이고 따라서 일반인과 똑같은 인격권을 누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 대법원도 피의사실 공표를 무조건 금지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2001년 11월 30일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 에 관하여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라면 용인된다고 판결했다. 이런 판결은 이미 여러 번 나왔다. ‘일반 국민의 정당한 관심 대상이 되는 사항’이란 관련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나 이들이 저지른 사건의 성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항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의 피의사실은 이들의 인격권을 침해하더라도 사회적 이익을 위해 공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셋째, 수사 기밀 유지를 어렵게 하는가? 넷째, 수사기관이 이미 공표된 피의사실에 맞춰 억지로 짜맞추기 수사를 할 우려가 있는가? 아니다. 검찰이 중요 사건 수사 때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내용을 보면 완전 선문답이다. 무슨 말인지 너무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식이어서 기자들이 알아듣기도 힘들다.  대개 기자들의 아우성에 할 수 없이 브리핑을 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이런 선문답식 브리핑에서 수사 기밀이 노출될 위험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짜맞추기 수사 우려도 마찬가지다. 선문답식 브리핑을 해놓고 거기에 짜맞추고 뭐고 할 것도 없다.

공표 금지하면 검찰 감시·견제 누가 어떻게 하나

다섯째, 법관에게 피의자가 유죄라는 선입견을 갖게 해 피의자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법관도 언론 보도를 볼 것이고 그러면 여론의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무죄추정 원칙의 경우와 똑같다. 만약 법관에게 미치는 영향을 막으려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1심이나 2심 판결을 보도하면 안 된다. 1심 판결을  보도하면 2심 법관들이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기소 이전에 공표하는 것을 금지할 뿐 기소 이후 공표하는 것까지 막는 게 아니다. 만약 법관에게 미칠 영향을 막겠다면 기소 이후에도 일절 공표하지 못하게 해야 맞는다. 나아가 재판 단계에서도 범죄 혐의를 보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실제로 독일은 형사소송 관련 소장이나 기타 공문서 내용을 재판에서의 심리 절차가 종결되기 전에  공표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독일 식으로 할 게 아니라면 법관에게 영향을 미치니 피의사실을 공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여섯째, 수사기관의 은폐, 축소 수사를 방지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 그동안 검찰이  권력 실세가 관련된 비리를 대충 넘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게 하려면 언론의 감시와 견제가 필수적이다. 검찰이 누구를 소환하는지, 누구는 왜 조사하지 않는지, 권력 비리 연루자의 압수수색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언론에 보도된 의혹을 빠짐없이 수사하는지 등을 언론이 감시해야 한다. 언론의 감시와 견제마저 없다면 검찰이 권력 비리 수사를 적당히 덮고 넘어갈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진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형사 사법 제도에서는 재판 못지않게 검찰 수사가 큰 역할을 한다. 검찰이 작성한 조서와 기소한 수사 결과가 유무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언론의 검찰 감시와 견제가 그만큼 더 필요하다. 고위 공직자 등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는 검찰 수사의 투명성을 높여 검찰 신뢰 증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검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검찰이 신뢰를 받으려면 국민의 관심 대상인 중요 사건 수사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국민이 알고 이해해야 한다. 

일곱째, 피의사실 공표 금지는 언론 자유를 위축하는가? 그럴 수 있다. 언론은 사건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취재한다. 그러나 검찰도 중요한 취재원이다. 국민적 관심을 끄는 사건이 터졌는데도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수사기관이 입을 다물면 언론의 취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조국 살리려  검찰 입 막는다면 정의를 죽이는 일

7개 쟁점 어느 것을 보더라도 피의 사실 공표를 금지할 이유는 찾기 어럽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지금까지 적용된 사례가 없는 죽은 법이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법 조항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고위 공직자 등에겐 피의자 인격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 수사의 견제와 감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 한계였다. 이런 한계를 놔둔 채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비서관, 정권 실세 등 권력자들의 비리에 대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것도 하필 조국 장관 사건을 계기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조국은 다른 장관도 아니고 법무부 장관이다. 법무부의 영어 표기는 'Ministry of  Justice', 즉 '정의를 관할하는 부서'이다. 남의 정의를 다루려면 장관 본인부터 정의로움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조 장관은 거꾸로 본인을 포함해 온 가족이 부정과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다. 조 장관과 그의 가족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검찰은 이를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지는 국민이 알아야 할 정당한 관심사이다.  그 정당한 관심사를 놓고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 삼는 것은 조국 장관 일가족을 살리기 위해 정의를 죽이는 일이다. 조국 장관 같은 고위 공직자의 피의사실 공표는 금지할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대해야 한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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