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국 70년]불혹 맞은 미·중 관계, 패권전쟁 결말은

베이징=이재호 특파원입력 : 2019-09-09 07:01
①미중 수교 40년 만에 패권전쟁 본격화 中 압축성장에 자신감, 신형대국관계 제안 축소되는 국력 격차, 견제 전략 가동한 美 헤게모니 쟁탈전 격화, 버티기 선택한 중국
[편집자주]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건국 70주년(10월 1일)이다. 개혁·개방 정책 추진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떠들썩하게 잔치 분위기를 내고 싶었지만 대내외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홍콩 내 대규모 반중 시위까지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할 수 있을까. 중국이 당면한 현안과 과제를 10회에 걸쳐 들여다 본다.
 

신중국 수립후 미중관계[그래픽=아주경제DB]


첸치천(錢其琛) 전 중국 부총리는 2001년 베이징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을 통해 "미·중 양국의 종합 국력은 함께 논할 처지가 안 된다. 중국은 솟아오르고 있고 속도도 더디지 않지만 반세기 안에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며 "중국은 미국에 현실적인 위협이 되지 않으며 미국 스스로도 중국을 적수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중 간 이익은 서로 엉켜 있어 냉전 시기의 미·소 관계와 다르고 한반도 등 여러 사안에 대해 협력이 필요하다"며 "미·중 간 무역은 건강한 발전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1988~1998년 외교부장, 1993~2003년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하며 신중국 수립 이후 역대 최고의 외교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이지만 미·중 관계 예측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우선 간과한 것은 중국의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는 점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며 100년은 지나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개혁·개방 40주년이었던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0조8000억 달러(약 1경2900조원)로 9년째 세계 2위를 유지했다. 1978년 미국 GDP의 4.6% 수준이었던 중국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60.5% 수준까지 확대됐다.

이른바 '중국 위협론'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꿰뚫어 보지 못한 것 같다.

첸 부총리는 2002년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특강에서 "미국은 자신의 경제·안보 이익을 고려해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국제적 지위를 빌릴 필요가 있다"며 "중국의 성장은 미국이 부딪쳐야 하는 현실이며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 간 마찰은 끊이지 않아도 붕괴에 이르지는 않는다"며 "우리의 국력이 증가할수록 세계는 다극화로 가고 국제 관계의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같은 자신감은 2013년 집권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하는 일로 이어졌다.

신형대국관계는 충돌 및 대립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협력해 상생하는 관계를 뜻하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어느새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태평양에 중간선을 긋고 서쪽은 미국이, 동쪽은 중국이 관리하자는 제안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잠복해 있던 중국 위협론이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고,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환율전쟁과 금융전쟁, 기술전쟁으로 이어질 패권 경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세기 넘는 갈등·협력의 역사, WTO 가입이 분수령

1844년 청나라와 미국이 마카오 외곽의 왕샤촌(望厦村)에서 양국 간 최초의 조약인 왕샤조약을 체결한 뒤 한 세기 넘게 미·중은 반목을 거듭했다.

왕샤조약 자체가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수많은 불평등 조약 중 하나였던 데다, 국공 내전 시기에는 미국이 국민당 정부를 적극 지원해 공산당 내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돼 갔다.

1950년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하면서 양국 대립이 극에 달했고, 미국은 중국의 유엔 활동을 봉쇄하면서 고립 정책을 지속했다.

'죽의 장막'에 갇혀 있던 중국이 외부 세계로 나오게 된 것도, 미국이 중국을 향해 손을 내민 것도 모두 소련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1960년대 후반 중·소 분쟁이 벌어지자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해졌다. 미국도 소련 견제 차원에서 대중 관계 개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1971년 중국의 유엔 가입 및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등극,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등이 분수령이 돼 1979년 1월 1일 양국은 공식 수교한다. 올해는 미·중 수교 40주년이 되는 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불혹을 맞은 셈이다. 

부침을 거듭하던 양국 관계는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로 급격히 경색됐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 요구 시위가 확산하자 중국은 탱크를 동원해 강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은 강력한 대중 제재에 나섰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 역시 "7개국이 아니라 70개국이 어쩐다 해도 소용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덩샤오핑은 "미·중 관계는 잘 처리해야 하지만 겁을 낼 필요는 없다"며 "우리는 해방 이후 미국과도 전쟁을 했지만 제공권 하나 없는 절대 열세에도 겁을 내지는 않았다"고 항전 의지를 내비쳤다.

양국 간 경색 국면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1997년)과 빌 클린턴 대통령(1998년)이 상호 교차 방문하면서 풀리기 시작해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생산력을 크게 높였지만 소득 수준이 낮아 내수 시장만으로는 공급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세계 무대 진출이 절실했던 중국은 10년 가까이 미국에 저자세를 취한 끝에 1999년 말 미·중 WTO 가입 협상 타결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이 중국을 WTO 체제로 끌어들인 것은 제조기지 역할을 중국에 물려주고 미국은 금융 등 고부가가치 산업 발전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친미 성향의 WTO 내에서 중국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했을 터다.

하지만 중국의 WTO 가입은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2002년 중국의 GDP는 1조3300억 달러로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2%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10조8700억 달러로 15% 수준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 상품무역 수출액은 2661억 달러에서 2조2765억 달러로 연평균 14.4%씩 성장했다. 세계 1위 교역국, 1위 외자이용국, 2위 해외투자국. 미국과 더불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현재 위상이다.

◆트럼프의 등장, '지구전' 선택한 중국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막대한 비용과 국력을 소모했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식 자본주의의 한계와 도덕적 해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반대로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며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이 남긴 유훈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을 드러낼 때가 도래했다고 판단한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새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또 중국 공산당의 노선·이론·제도·문화 등 4개 자신감(四个自信)을 강조하며 중국식 사회주의가 서구와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이 같은 행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갈수록 싸늘해졌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으로 대중 포위 전략을 가동했고, 뒤이어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는 더욱 노골적인 대중 압박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환율조작국 지정 등 경제적 공세, 홍콩·대만 문제 개입을 통한 정치적 공세,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감행하는 군사적 정세를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미 21세기 글로벌 헤게모니를 누가 쥘 것인지를 둘러싼 패권전쟁이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정재호 서울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미·중 간 패권 전쟁이 미·영의 사례처럼 평화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며 "평화적 세력 전이의 조건인 언어·문화·역사·인종·종교 등 5가지 가운데 공통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2015년 오마바 행정부 때 발표된 안보전략보고서에는 중국을 수정주의적 적대 세력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10곳 등장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36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며 "관세와 무역을 거쳐 환율, 자산 동결, 군사적 충돌 등 아직 밟아야 할 단계도 많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공세에 맞선 중국의 대응 전략은 '지구전'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미·중 갈등 격화와 관련해 "마오쩌둥(毛澤東)이 항일전쟁 승리의 이론으로 내세운 지구전으로 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오쩌둥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지구전론(論持久戰)'을 발표하고 경제력·군사력이 월등한 일본을 상대로 단기 결전 대신 유격전과 지구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구전이 전략적 방어, 대치, 역공의 단계로 진행되며 최종 승리를 위해 일시적인 후퇴와 장기전에 따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로 다가온 재선 전까지 대중 공세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일 공산이 크다. 중국으로부터 큰 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는 한 그럴 것이다.

선거와 여론에 목을 매는 미국 정치인들과 달리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은 시간을 무기 삼아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다만 고도 성장과 경제 발전에 따른 과실의 단맛을 알아버린 중국 인민이 수뇌부의 전략적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까. 미·중 패권전쟁의 향방은 중국 인민들의 인내심 수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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