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의 도전과 과제] 일본의 도발 '위기를 기회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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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입력 2019-09-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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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무역보복ㆍ비메모리 투자, 이재용 체제 안착 시험대

  • 이 부회장 노리는 국정농단 판결ㆍ삼바 분식 논란 극복 과제

[데일리동방] ◆산업화와 함께 해온 재벌 체제가 도전 받고 있다. 여론의 눈높이는 세계화된 시장만큼 넓어졌다. 국민은 묻는다. 재벌의 후계자는 왕관을 쓸 자격이 있는가. 대답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에 달렸다. 데일리동방은 정답을 찾으려는 후계자의 발자취와 멈추지 않는 도전을 살펴본다.<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 6일 충남 아산 삼성전자 온양캠퍼스를 방문해 현장경영에 나섰다. 사진 오른쪽부터 이 부회장, 김기남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백홍주 TSP총괄 부사장, 진교영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곗바늘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뒤쫓고 있다. 이 부회장은 9월 11일 서울R&D 캠퍼스 삼성리서치를 찾아 차세대 기술전략을 논의했다. 삼성리서치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신기술과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융복합 등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 선행연구를 하는 곳이다. 8월 6일에는 충남 아산 삼성전자 온양캠퍼스와 천안 사업장에서 사장단과 현장 경영에 나섰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해 제조업 위기가 산업 전분야로 확산되면서 고객사를 상대로 안심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다. 전날도 대규모 사장단 회의를 열고 각 계열사와 1차 협력사의 일본산 소재・부품 재고 확보 이행 상황 등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개발처럼 미래 경쟁력에 영향 줄 요인을 사전에 점검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일본이 3개 핵심소재 수출 규제를 발표한 지난달 초 5박 6일 일본 출장에 이어 사장단 회의를 열고 대책을 강구해왔다. 일본이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포토 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지만 웨이퍼를 포함한 나머지 소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일본이 한국 회사의 목줄을 쥐고 있어 활로를 찾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최근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이 부회장 뇌물액을 86억원으로 보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파기환송하면서 삼성 리더십에 노란불이 켜졌다.

◆日 무역 보복은 3세 시대 안착 기회   

일본의 무역보복은 삼성의 3세 체제 안착에 시험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공격은 이 부회장이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지 두 달만에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 4월 30일 화성 사업장에서 비(非)메모리 비전을 내놨다. 2030년까지 비메모리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직접고용한다는 내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를 삼성의 총수로 인정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이 부회장의 133조원짜리 비전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뒤 메모리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해온 삼성의 새 먹거리다.

메모리업황은 전망이 불확실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이익은 1분기 4조1200억원에서 2분기 3조4000억원으로 떨어졌다. 전년 동기 11조6100억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도체시장의 30%에 불과한 메모리에서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공략이 시급해졌다.

이 부회장은 밖으로는 일본의 반도체 공격을 막고 안으로는 상속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의 삼성 지배력은 제일모직과 삼성SDS 기업공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으로 높아졌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인 삼성생명 최대주주는 아직 이 회장이다. 이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율 20.76%로 최대 주주다. 반면 이 부회장 지분율은 0.06%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 회장 지분은 보통주 4.18%다. 이재용 부회장은 0.70%에 그친다.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7.08%로 대주주에 올라있지만 이건희 회장 지분 2.86%가 남아있다. 시민단체에선 이 부회장의 상속세 규모를 9조원으로 추산한다. 상속세를 내기 위한 지분매각은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위험할 수 있다.

이번 위기는 그의 경영 능력을 선명히 증명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간 이 부회장은 아버지가 이끈 ‘메모리 반도체 1등 삼성’ 이후를 아직 보여주지 못해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인수합병 실용주의로 신성장동력 확보

단서는 삶의 궤적이다. 1968년생인 그는 명문으로 불리는 경기초등학교와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반장을 지낸 그는 동창과 자주 만나 경조사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 졸업 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경영대학원 석사,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경영대학원(박사) 과정을 마쳤다. 삼성전자 총무그룹 부장으로 입사한 뒤 경영전략담당 상무와 전무,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사장을 역임하고 사장으로 승진했다.

알려진 주요 동문은 경기초교 후배 조현상 효성 총괄사장,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다. 경복고는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구본준 전 LG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이 유명하다.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안으로는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겸손한 성품을 갖췄다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다.

실용주의적인 모습도 잘 알려져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사장단과 임원진이 타던 전용기와 헬기를 대한항공에 매각했다. 불필요한 출장 의전도 없애고 엘리베이터도 직원과 함께 타는 것으로 전해졌다.

데뷔전은 순탄치 않았다. 2000년 설립된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 ‘e삼성’은 이 부회장이 경영에 나선 첫 사례로 기억된다. 당시 그룹 차원에서 사업 밀어주기에 나섰지만 적자로 막을 내렸다. 그는 이후 뚜렷한 성과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의 지휘봉이 무거워진 시점은 2014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와병하면서다. 그는 승계 작업이 한창이던 2016년말 특검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수사하면서 구속과 실형 선고, 2심 집행유예를 거치며 부침을 거듭했다. 이후 공식 행보를 자제해왔지만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장사업을 포함해 인수합병으로 확보한 신성장동력도 관심을 끈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커넥티드카(Connected Car)와 오디오 분야 전문기업인 하만을 인수했다. JBL과 하만카돈(Harman Kardon), 마크레빈슨(Mark Levinson), AKG 등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가 여기 속한다. 무선 이어폰 갤럭시 버즈에 AKG의 음향 기술이 적용됐다. 널리 쓰이는 삼성페이도 2015년 미국 루프페이를 인수해 갤럭시 S6로 선보였다.

이 부회장은 미래 인재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8월 20일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 광주 교육센터에서 교육생들을 격려했다.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이 IT 생태계 저변 확대에 필수적인만큼 당장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한 도전을 멈추지 말자는 취지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광주를 비롯한 전국 4개 지역에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세웠다. 양질의 소프트웨어 교육으로 청년 취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광주 교육센터는 약 700㎡ 규모에 최첨단 소프트웨어 강의실 4개를 갖춰 교육생 150명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동시 제공할 수 있다. 2020년부터는 3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을 찾아 에어컨 출하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장 사장, 이재용 부회장, 노희찬 경영지원실장 사장, 박병대 한국총괄 부사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성공적 반격, 여론이 왕관 씌워줘

이 부회장은 정권 최대 위기이자 기회를 맞은 문재인 정부와 입장이 비슷하다. 정부는 비전 2030 발표 당시 비메모리 반도체를 중점 육성 3대 산업으로 선정하고 10년간 1조원을 투입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화이트리스트 삭제 이후 기초소재 국산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비전 선포 당시 중소기업과의 상생 계획을 밝힌 이 부회장이 기초소재 분야에서 모범 사례를 만드는 데 성공할 경우 정부의 밀착 지원을 끌어내는 데 더욱 유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벌 승계에 대한 여론 역시 우호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

다만 검찰 수사와 법원 판단이 향후 이 부회장 행보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뇌물공여 피고인으로 2017년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1심 때 징역 5년, 지난해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하지만 8월 29일 대법원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면서 실형 선고 가능성이 되살아났다. 법원이 인정한 뇌물액은 1심 89억원에서 2심 36억원, 그리고 대법원에서 다시 86억원으로 늘어났다. 현행법상 횡령액 50억원 이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집행유예 조건은 형량이 징역 3년 미만일 경우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최종 수혜자로 그를 지목하고 관련자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를 반복했다.

이 부회장은 9월 11일 사장단에게 "불확실성이 클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흔들림없이 하자"며 "오늘의 삼성은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래였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가 말한 불확실성에 자신의 집행유예 가능성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제 이 부회장은 세계시장과 법원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를 위한 악전고투를 벌여야 한다. 겨울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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