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금지법 1주일] 불안한 ‘꼰대들’...여전히 불만인 막내들

장용진·서민지·장은영 기자입력 : 2019-07-23 14:28
직접 처벌조항 없지만 징계-손해배상 가능 “처벌조항 생기면 퇴사할 때 고발”
# 정 부장(56)의 술자리는 요란하기로 유명했다. ‘이탈자’나 ‘낙오자’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았다. 모두가 참석해야 했고, 모두가 마셔야 했다. 단 한명, 단 한잔의 예외도 없었다.
한번은 ‘장모님이 올라오셨다’며 회식에 빠진 후배에게 술 취한 정 부장이 전화를 걸어 2시간 가까이 ‘쌍욕’을 퍼붓기도 했다.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전화기 밖으로 흘러나오는 욕설을 후배의 장모가 듣고 기겁을 했을 정도였다.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에 여자직원들을 데리고 갔다가 기겁한 신입 여사원이 울면서 집에 갔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두 사람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 ‘그날 이후’ 계속된 정 부장의 ‘뒷끝’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 어느 부서에서든 쉽게 볼 수 있었고 한때 직장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했던 ‘정 부장’들이 요즘 떨고 있다. 50년 넘게 대한민국 직장문화를 주도하고 좌우했던 ‘정 부장’, 뒤에서 ‘꼰대’라고 수근댄다고 해도 막상 자신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들이야 말로 회사 내 ‘인싸’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생전 처음으로 후배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난 17일부터 시행된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에 따르면 ‘정 부장’의 그간 행적들은 대부분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 부장님은 상습범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이란, △직장에서의 지위 혹은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업무상 적정한 범위를 넘는 행동 등을 말한다.

지위나 관계의 우위라는 것은 반드시 지휘관계나 상하관계가 있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직급이나 직위, 체계상 상위에 있는 모든 관계를 말한다. 쉽게 말해 ‘회사 선배’의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도 고통을 받았거나 근무환경이 나빠졌다면 그 역시 해당된다. 퇴근 이후나 메신저 등 온라인을 통한 괴롭힘, 집단 따돌림도 규제대상에 포함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정 부장’은 죄질이 나쁜 상습범이다. 회식이나 술자리를 강요하고, 음주를 강요할 뿐만 아니라 성적 수치심까지 유발했다. 심지어 ‘뒷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직원들이 이직까지 했다. 전형적인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 해당한다.

아직은 가해자에 대한 직접 처벌규정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징계사유에는 포함이 된다. 괴롭힌 피해신고나 징계가 반복되면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형사처벌이 안된다 해도 일단 불법으로 규정된 이상 자칫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허윤 변호사(44·변호사시험 1기)는 “물론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에 처벌조항이 없지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근거는 된다”면서 “위자료 청구소송의 매우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이 아닌 경우 우리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범위는 5000만원 이내이고 통상 1000만원을 넘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액수만 보면 그리 고액은 아닌 셈. 하지만 피해자 1인당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정 부장처럼 피해자가 많다면 상황이 심각할 수도 있다.

물론 정 부장들도 할 말이 있다. “우리가 막내 때에는 당연한 일들이었다”고 시작한 그들의 하소연은 “직장 생활이 마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 같다”는 푸념이 나올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자료사진][사진=게티이미지]


◆ ‘아직도 미흡’ 막내들의 하소연

“조심은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뿐이에요”
여의도 IFC몰에서 만난 직장인 안모씨(32·여)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이후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올해 초부터 언론보도와 각 사업장 별 교육이 진행되면서 내용은 어느 정도 인지가 됐기 때문에 조심하는 분위기는 역력하지만 실제로 크게 바뀌는 것은 아직 없다는 것이 안씨의 생각이다.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회식에 불참하면 다음 날의 ‘싸한 분위기’와 매서운 눈길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젊은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외형적 변화는 있는데 본질적인 변화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인 셈이다.

가해자에 대한 직접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도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하는 이유다. 전과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누가 신경을 써서 30년 된 습관을 고치겠느냐는 것이다.

외주 방송제작사에서 일하는 B씨(29)도 같은 생각이다. 얼마 전까지 ‘야!’라고 불렸다는 그는 “요즘도 부장이 기분 나쁠 때에는 여전히 ‘야’로 불린다”면서 “내 잘못이 아닌데도 그러는 걸 보면 화풀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처벌조항이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처벌조항이 생기면 회사 나갈 때 고발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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