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人] 건강사회 만들고 떠난 유산균 선구자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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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입력 2019-06-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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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 [사진=한국야쿠르트 제공]

[데일리동방] 발효유 선구자인 고(故)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26일 향년 92세로 별세하면서 그가 업계에 남긴 족적이 주목받고 있다.

윤 회장은 1969년 11월 사촌인 축산 전문가 고(故) 윤쾌병 한국야쿠르트 초대 대표이사와 회사를 세우고 국내에 발효유를 처음 도입했다. 당시 정부가 1호 목장인 한독목장을 세워 우유 소비 진흥 정책을 폈지만 한국인 체질에 맞지 않아 버려지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 일본 도쿄에서 고등학교까지 유학한 그는 유산균 발효유에 주목해왔다. 우유 생산량이 풍부했던 그 시절 축산 가공업의 미래 경쟁력을 내다본 영향도 있다.

이후 일본에서 들여온 종균 앰풀을 기반으로 제품 개발에 나선 한국야쿠르트는 1971년 국내 최초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를 내놨다. 지난 50년간 한국야쿠르트는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쿠퍼스’ ‘하루야채’ 등 히트작을 쏟아냈다.

야쿠르트는 한 영화에서 소개되면서 미국 등 해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야쿠르트의 정착은 쉽지 않았다. 유산균 제품을 두고 ‘병균을 판다’는 오해가 이어졌다. 고민 끝에 윤 회장은 ‘야쿠르트 아줌마’를 도입했다. 가정에 견본을 주는 방문 판매 방식은 파격이었다. 주부 대상 방문판매원 모집으로 여성 일자리 창출의 모범 사례도 남겼다. 이후 야쿠르트 아줌마는 국내 최고 판매 조직으로 불리고 있다.

윤 회장은 독자적인 유산균 연구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76년 5월 설립된 한국야쿠르트 중앙연구소는 20년 만에 자체 유산균을 만들어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중앙연구소는 지금도 국내 식품 업계를 대표하는 유산균 연구의 중심으로 불린다.

한국야쿠르트는 전문경영인 제도로도 유명하다. 윤 회장은 회사 창립 초기부터 윤쾌병 박사에게 전문 경영인 역할을 맡겼다. 이후에도 회사는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늦둥이 외아들 윤호중 부회장도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윤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5년 3월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사회봉사단 ‘사랑의 손길펴기회’를 조직해 양로원과 보육원 등을 찾아 다녔다.

사회적 책임의 연장으로 장학재단도 세웠다. 윤 회장은 2010년 사재를 출연해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우덕장학재단을 만들어 장학 혜택을 제공해왔다.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온 윤 회장은 1988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2년 보건대상 공로상, 2008년 한국경영인협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등을 수상했다.
 
창업 이념인 ‘건강사회 건설’에 앞장선 그의 유산은 전국민의 몸에 깊이 새겨져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지난해 21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NCSI) 우유·발효유 부문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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