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변의 로·컨테이너] ‘대출의 유혹’...보이스피싱 공범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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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주 변호사
입력 2019-03-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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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좌에 입금된 돈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다 낭패 볼 수도

  • ‘디테일’이 유·무죄 가른다

급하게 목돈이 필요했던 A씨는 대출을 받고 싶었지만 신용등급이 낮아서 고민이었다. 때마침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모 은행 대출담당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A에게 “대출을 해주겠다. 대출을 받으려면 거래실적이 필요하다. 계좌로 돈을 입금시켜 줄 테니 그 돈을 인출해 직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것 같았던 A는 계좌번호를 알려줬고, 계좌에 이체된 돈은 직원이라는 자에게 전달했다.
그러고 나서 ‘아차!’ 싶었다.
‘보이스피싱’

최근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래실적을 높여 대출이 가능토록 해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A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거짓말에 속아 돈을 인출해 전달한 것일 뿐이라며 억울함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사기방조죄로 처벌 받는 사례가 꽤 많다. 형도 결코 가볍지 않다.

판례는 피고인이 범행의 전모와 구체적인 방식을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여러 정황상 사기임을 ‘예견’하는 정도로도 사기방조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비정상적 거래라는 것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던 점 △금융기관 대출 경험이 있어 정상적인 대출 절차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하는 자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금융업체 소재지를 확인하지 않은 점 △인출목적을 묻는 금융기관 직원에게 거짓말을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고인에게 사기방조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A가 혐의를 벗기 위해선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돈이 보이스피싱 사기의 피해금원일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없었다는 사정을 입증해야만 한다.

법원도서관 판결정보열람실에서 살펴보면 무죄가 선고된 판결들도 꽤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해야 한다”며 “검사의 입증이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재판부는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현금인출과정에서 신분을 은폐하려고 하지 않은 점 △계좌정지를 당했고, 취득한 대가도 없는 점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능력과 방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결국 계좌에 입금된 돈을 모르는 사람에게 건넸다 보이스피싱으로 기소된 경우 여러 정황상 사기범죄임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디테일’에 대한 입증이 유·무죄를 가른다고 보면 된다.

보이스피싱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만 4440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한 번이라도 돈을 인출하거나 전달하는 등 일단 가담하면 공범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혐의를 받기는 쉬워도, 혐의를 벗기 위해선 많은 고통과 노력이 따른다. 범죄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 즉각 중단하고 수사기관에 문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사진=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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