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학파vs학현학파, ‘성장·분배’ 중시..방점과 순서, 방법 등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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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효 기자
입력 2019-02-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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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강학파, ‘선성장·후분배’ 추구vs학현학파, 낙수효과 한계 지적..소득주도성장 이론적 토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월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신임 부의장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강학파와 학현학파는 성장과 분배를 모두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와 순서와 방법 등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서강학파와 학현학파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두 학파가 지금까지 어떤 부침을 겪어 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서강학파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1970년대 이후 경제개발 전략을 주도했던 고위 경제관료들 및 이와 맥을 잇는 경제학자들을 말한다. 서강학파는 지난 1960년대 미국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웠고 1970~1990년대 고도 성장기에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주도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승윤 전 경제기획원 장관, 고 김만제 경제기획원 장관, 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이 서강학파로 분류된다.

서강학파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선성장 후분배’ 추구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적인 과제였던 시기에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주도했기 때문에 서강학파가 ‘선성장 후분배’를 추구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1990년대까지는 낙수효과(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저임금 노동자 등 저소득층도 고도 성장의 과실을 받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 산업 실질임금지수는 1970년 78.9에서 1979년 180.3으로 2배 넘게 급증했다.

또한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활성화된 노동운동은 1990년대까지는 주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렸고 이는 빈부격차 완화에 크게 기여했다.

전년 대비 실질임금 상승률은 1986년 5.3%, 1987년 6.9%, 1988년 7.8%, 1989년 14.5%로 올랐다.

서강학파가 30년 가까이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선성장 후분배’를 추구했지만 1990년대까지는 고도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달성돼 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는 고도 성장과 분배 동시 달성

대표적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지지자인 조갑제씨는 2017년 10월 31일 ‘뉴데일리’에 게재한 칼럼에서 “세계은행이 1965~89년 사이 세계 40개 주요국 평균 경제성장률과 소득분배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성장률에서 세계 1위, 소득분배의 평등성에서도 아주 양호한 국가로 나타났다”며 “소득 분배의 평등성을 재는 기준은 소득 상위 20%가 소득 하위 20%의 몇 배를 차지하느냐를 보는 것이다. 한국은 약 7배로 이 기간 중 1인당 소득성장률이 연 4% 이상이고, 소득 분배 지수가 10(즉,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소득의 10배) 이내인 우량국가는 동아시아의 6개국-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일본, 태국뿐이었다. 이는 군사정권 때 한국사회의 빈부 차이가 더 커졌다는 속설을 무효화시키는 통계이다”라고 주장했다.

서강학파는 복지 확대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6년 4월 당시 김만제 경제기획원 장관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해 유럽처럼 국민이 노후를 걱정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후 1986년 12월 31일 국민연금법이 공포됐고 1987년 9월 18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설립됐다. 1988년 1월 1일부터 국민연금제도가 실시됐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현된 것도 1989년 7월이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서강학파가 퇴조하고 학현학파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11월 발생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다. IMF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 신화를 무너뜨렸다. 이로 인해 관치금융 등 서강학파의 과오가 부각됐고 서강학파는 IMF 외환위기 책임론에 휩싸였다.

1997년 12월 있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선거에 의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는 서강학파가 퇴조하고 학현학파가 경제정책을 주도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정부(1998년 2월∼2003년 2월)에선 김태동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고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가, 노무현 정부(2003년 2월∼2007년 2월)에선 이정우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김대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요직에 기용됐다.

2006년 2월 21일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올린 ‘압축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외환위기로 압축성장은 지속 불가능한 성장모델이었음이 입증됐다”며 “그것은 서강학파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서강학파 인사들이 반박하기도 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에는 학현학파가 지금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전 정부들보다 복지를 확대했다. 그러나 이 기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진보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이유로 학현학파 인사들이 경제 분야 요직에 기용되기는 했지만 서강학파와 학현학파의 차이점은 부각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서강학파vs학현학파 차이점 부각

IMF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살인적인 취업난과 양극화 심화 등으로 2007년 12월 있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돼 학현학파는 퇴조했다. 2012년 12월 있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서강학파는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2016년 말 발생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일어난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권이 수립됐다.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정유라 입시부정으로 2016년 5월 28일 일어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김모군과 정유라의 극명히 대조되는 삶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성장 우선 정책이나 개인의 노력, 낙수효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로 인해 학현학파가 본격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했다. 학현학파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분배경제학을 가르쳤고 성장 일변도의 한국 경제학계에 분배의 중요성을 알린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따르는 진보·개혁적 경제학자들의 모임이다.

학현학파는 서강학파와 달리 분배를 성장의 후순위에 둬선 안 된다는 입장. 먼저 고도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고도 성장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복지는 후에 추진하는 서강학파의 방식으론 현재의 고착화된 양극화와 취업난, 경기침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이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서강학파와 학현학파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이하 특위)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은 가계소득 증대, 가계지출 경감과 안전망·복지 강화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경제성장이다.

정부 재정지출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을 늘리면 이들의 구매력이 높아져 내수가 확대될 것이고 이는 기업들의 소득 증가와 고용 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리라는 것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주요 내용이다.

서강학파의 경제정책은 먼저 최대한 성장을 많이 이룬 다음 그 과실이 모든 국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게 하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그 순서를 바꾼 것이다.

대표적인 학현학파 인사인 홍장표 특위 위원장은 특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아직 성장의 혜택을 국민들이 고르게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며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으로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통해 더불어 잘 사는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그 동안 위축되어온 가계의 소득기반을 확대하고 주거, 의료, 교육 등 분야의 핵심생계비를 경감하며 복지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국민생활의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학현학파는 낙수효과도 부정한다.

홍장표 위원장은 지난해 9월 13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일종의 불평등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 패러다임이 그간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그 길을 걸었던 정부가 없었으니까. 주로 수출·대기업 중심의 성장모델로 가지 않았나”라며 “소위 ‘낙수효과’를 바라고 한 정책들이었다. 박정희 정부 이후로 쭉 그래왔다고 볼 수도 있다. 수출이 잘 되더라도 우리 가계가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서강학파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특히 강력 비판하고 있다. 임금 인상은 경제성장과 함께 시장 원리에 따라 이뤄져야지 정부가 인위적으로 올리면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서강학파 2세대 원로 경제학자인 김병주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해 9월 12일 (사)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린 ‘경제 난국을 풀어낼 마법(魔法)의 공식’이란 제목의 글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성공하려면 1950년대 경제개발 이전 한국경제처럼 대외 교역 비중이 미미한 미개방 경제이거나, 개방 경제라면 다른 경쟁 상대국들이 보조를 맞추어 동률 이상으로 임금을 인상해주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처럼 대외 교역 비중이 높은 나라가 독자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것은 자국이익 제일주의 국제경쟁에서 자해행위가 된다”며 “소득주도성장이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재원 고갈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근로장려금 등은 ‘소득’이 아니고, 따지고 보면 생산이라는 소득창출 활동이 수반되지 아니하는 일방적 금전수수이다. 그 돈의 원천은 정부자금, 다시 말해서 조세이거나 정부부채이다. ‘소득주도’는 궁극적으로 재정파탄과 국가부도로 인도된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 차별 없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어떠했나? 한편으로는 서비스업종 임시직 중심으로 일자리가 줄고, 근무시간 단축되어 명목 소득이 감소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재 가격인상으로 지출이 늘어 소득이 실질적으로 감소했다”며 “저소득계층에게는 더블 펀치가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 조치 이전에 예측 가능했었을 고용주들의 반응을 소홀히 한 탓이다”라고 덧붙였다.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박정수 교수는 2017년 11월 24일 서강대 '게페르트 남덕우 경제관'에서 열린 '서강학파가 본 한국경제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전망' 세미나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통해 “노동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인위적인 임금 상승은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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