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더 늦게 어른이 되고 더 빨리 노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기원 변호사(법무법인 율석)
입력 2019-02-17 07: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가동연한과 노인기준의 하향에 관하여

대법원은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높일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심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24일 보건복지부 장관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노인을 줄여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고 더 늦게 노령연금 수급자격을 얻게 하기 위해’라는 것이다. 정부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 고졸취업을 확대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목적 의식 없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동연한과 노인기준을 높이려는 시도는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고령까지도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사는 노인이 많아져 노령연금 부담도 커지게 되었다. 직관적으로 볼 때 일할 수 있는 노인을 더 일하게 만든다는 제안은 타당해 보인다. 고졸 취업을 확대시키려는 시도 또한 마찬가지도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국민 모두가 대학에 가서 무엇하겠냐는 비판을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직관에 의한 판단을 피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전거가 넘어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물으면? 단 1명의 예외도 없이 핸들을 넘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사람이 가진 직관에 의한 잘못된 판단이다. 실제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어째서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야 넘어지지 않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기술력과 생산력이 부족한 사회는 일자리가 충분했다. 새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일할 자리가 있었다. 남성은 밖에서 끊임없이 일했고 여성은 가사일과 바깥일에 동시에 시달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릴 때 부터 노동에 투입되었고, 죽거나 병들 때까지 일했다.

기술력과 생산력이 충분한 사회는 가용한 사회구성원들을 모두 노동에 투입하지 않고도 사회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재화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선진국가는 언제나 일자리가 부족하다. 이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오랜 교육기간과 정년제도와 노령연금이다. 정년제도가 사람이 절대적으로 건강을 잃어 노동생산성이 크게 떨어지는 노인이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정년제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20세의 인간에게 진실로 노동능력이 없어 대학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니다. 60세의 노인이 진실로 노동능력이 없어 은퇴를 시키는 것 또한 아니다.

기술력과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생산성은 상승한다. 생산성이 상승하면 일자리는 줄어든다. 이러한 변화에 맞게 사회는 근로자의 취업시기는 늦추고 정년을 단축해야 한다. 근로자는 일평생 적게 노동하고 장기간 노령연금을 수급하게 해야한다. 평생 노동기간이 비교적 짧음에도 근로자가 평생 경제적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나의 근로자가 노동능력을 획득한 시점부터 노동능력을 상실할 때까지 장기간 노동한다는 전제하에 경제적 재화를 획득하게 하는 중세적 패러다임은 미래에는 지속될 수 없다.

근로자는 사회에서 15~20년 정도의 노동으로도 노령연금 및 복지혜택 등으로 평생 자신과 소수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의 재화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건강해서 노동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가동연한과 노인기준을 높인다면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65세 내지 70세에 은퇴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 및 노령연금을 지급하지만, 기술발전으로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할 것이므로 갈등은 더 증가할 것이다.

극도로 발전한 기술력으로 1인의 근로자가 지금의 10배가 넘는 초월적 생산력을 발휘하는 미래사회를 상상해보자. 그곳에서는 아마도 하나의 인간이 5년 이상 노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5년의 노동으로도, 하나의 인간이 자신의 유년기와 은퇴 이후에 생존하는 모든 기간의 재화를 생산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에 맞는 격의 임금을 지급할 것이다. 5년의 노동이 끝난 인간은 자유로이 봉사활동, 연구작업, 사회적 활동 등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생을 보낼 것이다. 실제로 그럴 리가 있겠냐고? 불과 100년만에 인류의 생산력이 얼마만큼 증가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교육제도, 정년제도, 노령연금제도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상상은 픽션에 나올만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인간이 노동력을 유지하는 연령 내내 생산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야만 생존의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지금의 선진사회 형태에서 발생하는 소위 ‘헬조선’식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뀌는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개개인은 현재 상태에서 자신이 조종하는 단 하나의 개체에게 이익이 되는 변화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늦게 어른이 되어야 하며, 일찍 노인이 되어야 한다.
 

[사진=법무법인 율석 제공]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