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상생으로]⑤강남-비강남·임대-분양으로 갈라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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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9-01-0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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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주 갈등

  • 소득이나 거주지역 따라 1등·2등시민 구분…계급 구조화

  • 택배차량 출입 제한…임대주택 입주자 차별 등 갑질 만연

지난해 4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앞에 관리사무소 명의로 붙은 공지문. [아주경제 DB]


갈등(葛藤)의 한자어는 칡나무(葛)와 등나무(藤)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다. 이런 갈등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잖은 사회학자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한층 나아진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2019년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많은 갈등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 ‘진통’의 과정일까? <아주경제>는 그 답에 대한 단초를 신년기획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통해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아파트의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택배 차량을 통제합니다.’

지난해 4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앞에 관리사무소 명의로 붙은 공지문이다. 아파트 품격과 가치, 쾌적한 환경을 위해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제한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 공지는 아파트 거주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거센 질타를 받았다.

◆“제2의 강남인데?”…차별 내면화와 빗장치기

경제적 수준에 따른 거주지역 간의 갈등이 신종 ‘갑질’로 등장했다. 아파트가 중요한 자산적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높은 경제적 수준을 드러내는 자원이 되면서 아파트 입주민들이 행하는 다양한 갑질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됐다.

집의 품위를 위해 택배 차량 출입을 막거나,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구분 짓기 위해 단지 안에 외벽을 설치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막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단지 내 혁신학교 지정 반대를 위해 드러눕는 ‘막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배후에는 ‘집값 지키기’라는 경제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서울과 수도권, 강남과 비강남 등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진화하고 있다. 아파트 ‘택배 갑질’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강남에서는 문제가 안 되고, 강남이 아닌 곳에선 문제가 된다는 식이다.

실제 강남 일부 부촌에서는 수년 전부터 아파트 단지 내 택배 차량 진입이 금지된 곳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파트는 현행법상 사유지이기 때문에 도로 소유권이 아파트에 있다. 따라서 택배 차량 진입 금지도 아파트 입주민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다산신도시 아파트에서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 때 등장한 첫 비명은 “강남도 아니고, 남양주 따위가…”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수 공감을 산 댓글은 무분별한 편 가르기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대안이 아닌 “남양주에 사는 주제에 택배기사들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 “강남에 가면 큰소리도 못 칠 것들“이라는 비아냥이 대다수였다.

한 사회학자는 “최근에는 한국 국민이라도 서울과 수도권 시민이 다르고, 또 같은 서울 시내라도 강남권과 비강남권 등으로 구분된다”면서 “‘강남도 아니면서’ ‘제2의 강남, 제2의 분당’ 등 차별이 일상화된 표현이 넘쳐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득이나 거주 지역에 따라 1등 시민과 2등 시민이 구분되고, 각 집단이 ‘빗장’을 치면서 계급이 구조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가락1동 학부모 모임과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옛 가락 시영) 입주자협의회 관계자 등이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올해 3월 이 지역에 개교 예정인 서울 첫 통합운영학교 해누리초중을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대vs분양 단지내 갈등도 ‘격화’

부동산업계에서는 아파트 내부에서 ‘분양’과 ’임대주택’ 입주자 사이 갈등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단지 내 주민들이 바리케이드나 철조망을 설치하는 사례는 물론 서울 강남·잠실과 경기 분당 등 일부 부촌에서는 혐오시설이 아닌 독신직장인·학생 등 1·2인 가구가 거주하는 도시형 생활주택이 들어서는 것에 반발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은 곧바로 아이들에게 답습된다.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임대주택 사는 친구와는 같이 놀 수 없다”며 따돌림을 당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난해 말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주민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2대 8 비율인 해당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회장이 7년간 80%에 달하는 임대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했다는 불만이 쌓이면서 소송으로까지 비화된 사건이다.

임대주택 주민들은 아파트 부대시설 이용료나 재활용품 매각 등으로 쌓인 부대 수익을 입주자대표 회장이 유용했다면서 고소했다. 결국 아파트는 입주자와 임대자 둘로 쪼개졌다.

실제 서울도시주택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분양·임대 혼합단지 입주민 통합을 위한 관리제도 개선방안 연구’ 자료를 보면 최근 6년간 공사에 제기된 혼합단지 전자민원 138건 가운데 70% 이상이 분양·임대 주택민 간의 차별이었다.

오정석 서울도시주택공사 수석연구원은 “임차인들이 세대의 다수를 이루더라도 아파트 법체계가 분양세대를 우선시하고 있어 임차인이 입주자에게 이의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재 ‘소유권>생활권’인 법을 바꿔야 분양·임대가구 사이의 벽을 허물 수 있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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