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상생으로]⑥일방통행식 정책 후유증…지역경제·관련기업 직격탄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송종호 기자
입력 2019-01-03 01: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탈원전 갈등

  • 전기로 인상 조짐에 국민 반발

  • 전력 수급 불안정도 갈등 요인

대한민국의 원전갈등은 해를 넘겨 2019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탈원전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대응 출사표' 에서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달 탈핵경남시민행동이 창원시의회 앞에서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탈원전 정책 폐기를 촉구하는 대정부 결의문을 가결한 창원시의회를 규탄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사진=연합뉴스]


갈등(葛藤)의 한자어는 칡나무(葛)와 등나무(藤)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다. 이런 갈등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잖은 사회학자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한층 나아진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2019년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많은 갈등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 ‘진통’의 과정일까? <아주경제>는 그 답에 대한 단초를 신년기획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통해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원전사고 걱정 없는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탈(脫)원자력발전(이하 탈원전)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으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4대 비전 12대 약속 가운데 ‘자연·사회적 재해·재난 예방’에서 탈원전 기조를 거듭 강조했다. 취임 후엔 탈원전에 박차를 가했다. 대선 득표율 41.4%를 기록했던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017년 6월 84.1%(한국갤럽 기준)까지 치솟으며 탈원전은 순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탈원전은 원전강국 대한민국이 예상 못한 갈등의 시작이었다. 정부는 지지율에 취해 설득을 잊었고, 원전 지역 주민들은 일자리 실종·인구 감소 등에 동요했다. 원전사업을 하던 기업들은 매출이 급감해도 호소할 곳을 잃었다. 시민단체들은 갈등을 부추겼다.

◆후쿠시마 사고 계기로 탈원전 바람…文 대통령 취임 후 가세

세계 각국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탈원전 목소리가 커졌다. 각국은 탈원전을 검토했고, 환경운동가들의 정부 입각도 탈원전 바람에 한몫했다. 우리나라도 문 대통령이 취임하며 탈원전 대열에 가세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부산 기장군에서 고리 1호기가 해체 절차에 들어갔고, 신규 원전 건설이 유력하던 삼척·영덕 지역도 백지화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속도전은 탈을 내고 말았다. 정부가 주도한 일방적인 탈원전은 갈등의 불씨가 됐다. 지난 2017년 12월 정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에 앞서 원전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공청회를 열었다. 지역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었지만 이내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원전 지역 주민들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로 못 박아 놓은 공청회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다”며 “국민을 무시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는 주민 반발에도 공청회 강행을 택했고, 끝내 원전 지역민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정부의 이날 강행이 환경단체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환경단체들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탈원전·석탄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기만적인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지역경제·관련기업 악화일로…탈원전이 부른 갈등

문재인 정부가 공청회를 개최한 지 1년이 넘었지만 2019년 현재 탈원전 갈등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 경북 울진군민은 “원전 백지화로 지역에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다”며 “탈원전으로 인한 지역경제 붕괴, 인구감소 등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탈원전은 원전설비·기술 기업들에도 치명타로 작용했다. 다만 기업들은 정부와 겉으로 드러나는 충돌보다는 속으로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원전설비 기업들의 속앓이가 곳곳에서 외부로 터져 나오고 있다. 두산중공업에서 최근 취임 1년도 안 된 사장마저 떠나며 일방통행식 탈원전 정책 후유증을 외부에 알렸다.

본래 두산중공업은 풍력발전 설비 등의 친환경 에너지 사업군도 갖추고 있지만 국내를 대표하는 원전설비 업체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러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두산중공업에 직격탄을 날렸고, 김명우 사장은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달 10일 사의를 밝혔다.

그간 두산중공업은 탈원전 정책으로 실적이 급감하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해왔고, 유급휴직이나 계열사 전출 작업 등을 진행해왔다. 탈원전 정책에 반발보다는 우선 생존을 목표로 해왔지만 결국 사장마저 짐을 싸게 된 상황을 맞게 됐다.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은 국민과의 갈등도 예고하고 있다. 벌써 전기 수입 등 전기료 인상 발생 요인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으로 전기료의 두 자릿수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원전을 포기할 경우 전력 생산단가 등 전기료 인상 요인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반발이 높은 우리 사회에서 전기료 인상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또 탈원전을 비롯해 탈석탄 등으로 우려되는 전력 수급 불안정도 갈등 요인이다. 즉 이를 대체할 방안마저도 진영 논리로 변질돼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전은 현재 100% 국산인 전기를 전력 수급 불안정에 대비해 중국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맥킨지에 의뢰해 16억원 규모의 연구용역도 마친 상태다. 다만 각국 이해관계와 북한을 거쳐야 하는 현실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마저도 전기 수입을 두고 에너지 안보와 친환경이라는 논리로 진영이 갈리며 또 하나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도 내부 갈등…“갈등 풀고 탈원전으로 나아가야”

세계 각국도 탈원전 갈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만도 우리와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16년 대선에서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대만 국민도 초기에는 친환경에 매료됐다.

하지만 정부가 본격적인 탈핵 정책에 나서자 반발 여론이 높아졌다. 대만인 10명 중 5명 이상이 탈원전에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유는 전기료 인상에 대한 우려였다. 또 2017년 대만은 최악의 전력난을 겪었다. 그해 여름 태풍으로 송전탑이 붕괴되며 전력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고, 화력발전소까지 고장 나며 대정전 사태를 겪었다.

결국 불만의 목소리가 터졌다. 국민당 계열인 사회단체 창펑 재단은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전력공급 제한이나 전기료 인상, 대기오염이 없을 것이라 했던 차이잉원 총통의 3대 선거공약이 모두 공수표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결국 대만은 지난해 11월 탈원전 정책의 폐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대만은 탈원전 정책 폐지를 결정했다. 투표자의 59.5%, 유권자 전체의 29.8%가 탈원전 정책 폐지에 찬성했다. 하지만 대만 정부는 투표 결과에도 “‘원전 없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입장은 변함없다”고 밝혀 갈등은 거듭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원전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8월 니콜라 윌로 프랑스 환경장관은 원전 감축 목표가 후퇴한 것에 반발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2015년 전력 생산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75%에서 2025년까지 5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35년까지로 잠정 연기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먼저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원전 감축 일정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봤다. 하지만 환경운동가 출신인 윌로 환경장관이 잠정 연기에 반발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갈등을 풀지 못하면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전문가는 “탈원전 갈등으로 4차 산업혁명 경쟁력에 뒤처질 수 있다”면서도 “탈원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경쟁조차 하지 못하고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갈등 해결은 행정부 리더십을 보여주는 척도”라며 “이를 외면하고 탈원전을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결국 갈등을 방치하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탈원전 갈등 해결이 급물살을 탈지는 미지수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과 한국원자력학회 등이 산업통상자원부에 탈원전 정책 여론조사와 국민투표 등을 진행하자고 제안했지만 정부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탈원전 국민투표와 관련해 “대만과 우리는 차이가 있다”며 “대만은 10년 내 원전 제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통 부족으로 생긴 일이고, 저희는 더욱 착실하게 추진하고 있어 특별히 (국민투표를) 건의할 용의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