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큐브·금·옻·자개로 담아낸 영원·사랑·변화" 채은미 '이터널 리플렉션' 선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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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11-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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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터널 리플렉션'(Eternal Reflection) 11월 21일~2019년 1월 12일까지

  • -채은미 작가 "변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빛에 대한 이야기"


금과 옻, 자개, 빛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화학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금속, 200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색, 태곳적부터 존재하는 빛 등은 '영원성'으로 수렴한다. 이 영원성이 금색 큐브를 만나 무한히 확장(반사)되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랑과 끊임없는 변화를 얘기한다.

지난 20일 만난 채은미 작가는 "변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며 "금 같은 소재는 영원성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고 있고 빛이라는 것은 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견주어져서 서로를 비추어 주고 그것이 확대되어 가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채은미 작가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 전시된 '나비 시리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선화랑(원혜경 대표)에서는 내년 1월 12일까지 채은미 작가의 '이터널 리플렉션'(Eternal Reflection)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색 큐브(Cube·직육면체)로 만든 나비 시리즈, 팔각 시리즈, 하트 시리즈와 평면작품, 설치작품 등 총 36점을 선보인다.

▶채은미 작가가 일본 동경예술대학으로 유학을 간 이유

채은미 작가가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 이유는 색채 때문이었다.

그는 현대 미술사가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온 상황에서 지금까지 아시아 미술에 대한 조명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향후 아시아 미술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아시아에서 갈 수 있는 곳이 일본밖에 없었다.

채 작가는 "일본에서 색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는 그 색에 대해서 끌려갔던 것 같다. 색채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 보니까 색도 맛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며 "색에도 신맛과 떫은맛이 있고 그것을 느꼈을 때 색에서도 자유로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색의 옷을 입었을 때도 어떤 사람은 촌스러워 보이지만, 어떤 사람은 옷의 밸런스가 잘 맞는 경우가 있다. 회화도 마찬가지로 색채를 콘트롤할 수 있어야 자연스러운 것이고 모르면 촌스러운 것이다"고 강조했다.

[채은미 작가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작품 제작에 쓰인 '금박'을 설명하고 있다.]


▶금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는 유학 시절에 우연히 일본화과에 심부름을 갔다가 금박 작업 하는 것을 직접 보고 금에 빠져들었다.

"무언가를 전달해 주려고 갔는데 저 멀리서 성스럽게 무릎을 꿇고 정교하게 행위를 하는 화가를 봤다. 자체가 멀리서 봤을 때 굉장히 접근할 수 없는 느낌이었고 앞에 다가가니까 작품에서 광채 같은 빛이 올라왔다. 그는 금박을 입히고 그 위에 페인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한참을 서 있었고 그때부터 금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시도를 했다."

채 작가가 사용하는 금박은 순도 99.9%의 24K 진짜 금이다. 일반 종이보다 매우 얇아 다루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비싸다.

"무게도 종이의 만분의 1mg 인데, 물기 있는 손으로 만지면 금이 묻어나올 정도다. 10X10cm 크기 일본 가나자와에서 수입해오는 금박의 장당 가격은 1만원 정도 한다. 100호 하는데 금박이 600장 정도 들어간다. 재룟값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작품을 판매하면 금을 많이 사 놓아야 한다."

▶금색 큐브의 탄생

평면 작업이었던 그의 작품에 금색 큐브가 더해진 것은 2002년 금호미술관 초대전부터다.

"금박을 이용한 회화작업을 하다 보니까 여기에서 더 현대적으로 파고들고 싶어졌다. 평면에 입체적인 것이 더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큐브라는 매체가 저한테 꽂힌 것이다. 화장품 케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금의 큐브가 탄생하게 됐다. 디자인과 드로잉 작업을 수없이 하고 3D로 만들어서 금형을 떴다."

그가 사용하는 금색 큐브는 24K 금도금한 것으로 가까이 가면 거울처럼 얼굴이 보일 정도로 모든 빛을 반사 시킨다.

[채은미 작가의 'Eternal Love' 작품, 큐브 사이로 자개 장식이 보이고 있다. /사진=선화랑 제공]


▶금과 옻, 자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금박을 붙일 때는 접착제를 뭘 쓰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데 채은미 작가는 전통 방법인 옻을 사용한다. 또한 옻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개도 그의 작품 안에 들어왔다.

"옻은 천년이 지나도 변색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옻은 막을 형성해서 금에 칠하면 금 위에 막이 올라와서 코팅이 된다. 옻이 변색이 안 되고 벌레들이 못 들어 오는 것이 그런 이유다."

옻을 다루다 보니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가끔 옻이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달걀에 소량의 옻을 넣어 '옻환'을 만들어 먹는다. 위도 보호하고 옻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채은미 작가의 'Eternal Hexagon' 작품, 정확한 계산에 의해 배치된 큐브가 보인다. /사진=선화랑 제공]


▶0.1mm의 오차조차 허용치 않는 초정밀 작업

금색 큐브가 도드라진 작품은 환상적으로 보이는 것만큼 지난한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금 또는 자개로 장식한 판과 큐브를 따로 만든 다음에 설계도에 따라 큐브를 판에 붙이는 것이다.

판은 큐브가 올라가도 틀어지지 않게 꼼꼼하게 마감 처리가 기본적으로 돼야 하고, 자개를 자를 때는 하나하나 크기를 확인해서 잘라야 한다.

자른 자개를 물에 담가서 씻고 그것을 한 번 더 코팅한다. 그다음에 자개 위에 그림을 그린다.

판에다가 금을 칠하기 위해서는 옻칠을 한 번 한 다음에 사포로 갈아 내고, 또 한 번 옻칠을 하고 난 다음에 비로소 금이 올라가게 된다.

큐브는 통째로 판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뚜껑을 먼저 판에 붙인 다음에 뚜껑에 큐브를 끼우는 방식을 사용한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제 작업에서 페인팅이 제일 쉽다. 그냥 그리면 된다. 큐브 작업은 여러 과정이 필요하고 제가 제어하기 힘든 것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제어해 나가야 하고 너무 복잡하다."

큐브의 배열이 단순히 사각형이 아니라 육각형이나 팔각형, 심지어는 하트 모양이 되면 계산이 더 복잡해진다.

"수학적인 계산은 직접 하기도 하지만 컴퓨터로 시뮬레이션과 캐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수치적으로 0.1mm 차이 때문에 전체적인 것이 깨질 수 있다."

이러한 어려운 작업의 과정을 거친 큐브 작업은 그만큼 더 화려한 자태와 내면적 가치를 품고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다.

"대형 작품을 자세히 보면 갈라져 있는 판을 붙인 것을 알 수 있다. 계속 붙이면서 확장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선화랑에 전시된 채은미 작가의 나비 시리즈 'Eternal Sunshine'_gold leaf gold plated injection model mother of pearl on farbfilm painting 2m10x2m10x7cm 2018 /사진=선화랑 제공]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준 '나비 시리즈'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가로와 세로가 210cm인 대형 나비 시리즈이다.
금과 자개, 그리고 1861개의 금색 큐브를 사용한 것으로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그를 날게 해 준 작품이다.

채은미 작가는 2015년 진화랑 개인전 이후 개인 사정으로 창작 의지가 꺾여있었다. 2016년도부터 나비 형상 작품을 만들면서 작품에 자신을 투영하고, 완성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나비 자체는 상처가 있고 날개가 찢겨 날 수 없는 나비이다. 그런데 그 나비의 몸에 홀연히 씨앗이 심어졌다. 그 씨앗에서 어느덧 잎이 나고 꽃이 피기 시작해서 모든 나비 몸에 꽃이 만발하게 피게 된다. 나비가 꽃의 이미지를 온몸에 달고 날아가게 된다."

이날도 나비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채은미 작가에게서 진짜 날개가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
 

[선화랑에 전시된 채은미 작가의 '팔각 시리즈 /사진=선화랑 제공]


▶끝없는 변화를 간직한 '팔각 시리즈'의 비밀

그를 대표하는 작품은 역시 팔각 큐브 작품이다. 이날 전시장에서도 여러 팔각 큐브 시리즈가 놓여 있었다.

작가는 2012년도 '각도의 변화'라는 개인전 이후 팔각 및 육각 등의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채 작가가 팔각, 육각 등 '사선'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변해야 한다는 내면의 의지와 한 번에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현실적 타협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이 180도 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인 것 같다. 뭔가 바뀐다는 것은 거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180도 바뀌길 원한다. 뭔가 변화는 필요한 것 같고, 그런 마음은 있는데 움직이지는 못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적당하게 소화할 수 있는 변화의 수치는 뭔가 했을 때 45도가 생각났다. 그 각도의 기울기 만큼 가보자 하고 정한 것이다."

하지만 불안한 '사선'들이 둥글게 서로 힘을 주고 받쳐주면 완벽한 형태가 된다. 그것이 팔각 큐브 시리즈이며, 이 사선들이 모여 에너지가 끊임없는 확산된다.

"각도를 주다 보니까 힘들이 모이게 됐고 그 각도를 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게 된다. 지금도 45도를 가기 위해서 하루에 0.0001도씩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갈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 예술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렇게 가는 것이다."
 

[선화랑에 전시된 채은미 작가의 하트 시리즈 'Eternal Heart(Pink)'_Wood panel, aluminum panel on injection model, farbfilm gold leaf 31x38cm 2018 /사진=선화랑 제공]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하트 시리즈'의 탄생

전시장 2층에는 36개의 큐브로 만든 하트 4개가 모여,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하트 큐브 시리즈가 걸려있다.

채 작가에게 하트의 의미는 자신을 응원해주시고 끊임없는 변화의 원동력을 제공한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한국에서의 대학교와 대학원, 그리고 일본 유학까지 10년이 넘는 배움의 길에서 때로는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냉정하고 엄하게 꾸짖던 어머니에게서 작가는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느꼈다.

"어머님이 누구보다도 응원해주시고 새롭게 도전하고 나아가는 데서 뜨겁게 지지해줬다. 그 사랑에 감동한 것이다. 사실 하트 시리즈도 그 사랑에서 얻어진 것이다. 금이나 자개, 빛이 가진 영원성도 본질적으로 들여다보면 사랑이다."
 

[선화랑에 전시된 채은미 작가의 평면 작품]


▶큐브 이전의 금빛 평면 작품

전시장에는 큐브 시리즈 이전인 2002년에 제작했던 2점의 평면 작품도 전시됐다.

작품은 금박으로 일군 '금색 바다'에서 검은색의 띠가 꿈틀대고 있다.

채은미 작가는 "검은색의 띠는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이다. 캔버스에 금박을 놓으면서 약간 간극을 주면서 밀었다. 약간씩 밀려지는 금박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물결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강조했다.
 

[선화랑에 전시된 채은미 작가의 테이블 설치 작품, 큐브 사이로 LED모니터 화면이 보이고 있다. /사진=선화랑 제공]


▶빛의 반사를 이용한 테이블 설치 작품

2015년에 발표했던 테이블 설치작품도 새롭게 전시됐다.

대형 LED모니터 위에 금색 큐브들을 격자 모양으로 배치해 놓아, LED모니터 화면이 바뀔 때마다 빛이 큐브에 반사돼서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우리가 늘 TV를 접하고 영상매체를 접하고 있지만 내 작품이랑 융합하면 어떤 모습일까? 라고 오랫동안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구현을 하게 된 것이 2015년이다. 큐브는 정면에서 봐도 좋지만, 측면에서 보면 측면과 측면 사이에 부딪히는 이미지들이 너무 다양하게 보인다."

▶채은미 작가 누구?

채은미 작가는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예술대학 대학원 서양화를 배웠다. 일본에 있을 당시에는 제1,2 회 외국인 유학생전 및 히로시마 국제학생미술제 수상 했고, 아사히 문화예술재단과 사또오 국제예술육영재단 장학생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중국, 두바이, 싱가포르에서 18회 개인전을 열고 32회 그룹전에 참가했다. 그의 작품은 금호미술관, 가네마쯔 주식회사, GS 홀딩스, 터키 보르산 박물관, 두바이 빠잠 컬렉션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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