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도 직장 갑질은 더욱 심각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20~64세 성인 남녀 노동자 1,50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73.3%였다. 가해자는 ‘상급자’라는 답이 77.5%였다.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1명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갑질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갑질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의 심리적 문제도 있겠지만, 사회문화적 원인이 더 크다. ‘군대문화’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와 위계질서 같은 봉건적 신분제의 잔재가 여전히 우리사회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파트 평수, 자동차, 연봉을 비교하는 금권주의도 원인일 수 있다.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하고 경쟁의 승자가 모든 혜택을 누린다는 잘못된 사회 인식도 큰 문제이다.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기업의 성장을 우선해온 사회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특히 직장 갑질의 경우, 재취업이 어려운 현실 역시 가해자의 폭력이 은폐되고 피해자는 도망갈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직장 갑질은 그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피해양상도 다양하다. 필자는 1년간 ‘직장갑질119’ 법률스텝 활동을 하면서, 이메일·카톡 상담을 통해 많은 직장 내 갑질 사례를 목격하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직원들이 사장 어머니의 김장을 하던 회사, 생리휴가를 요청하면 생리대를 검사하던 회사, CCTV로 노동자를 하루 종일 감시하며 분 단위로 보고를 요구하는 회사가 있었다.
직장 갑질의 특징은 피해자의 인격 그 자체가 손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직장 갑질은 권력과 지위를 바탕으로 빈번하게 가해가 발생하지만 피해자는 저항할 수 없다. 저항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일상적·반복적인 폭력이 더하여진다. 결국 피해자의 자존감은 매우 낮아지고,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2달 전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하는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국회 법사위 일부 의원들은 법 문구가 모호해 악용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신·정서적 고통’과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의 범위를 구체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양상을 가지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특수성을 간과한 주장이다. 캐나다, 프랑스에서도 관련 법안과 같이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이 먼저 노동법에 신설되었다.
하루 빨리 직장 갑질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법의 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갑질 행태는 차별이 고착화된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기업문화의 개선을 통해 ‘직장 갑질’을 근절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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