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부부 간에도 강간죄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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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미 변호사(법무법인 비츠로)
입력 2018-1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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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배우자의 부당한 침해"

  • 대법원 2013.5.16. 선고 2012도14788,2012전도252 전원합의체 판결

Ⅰ. 2012도14788 판례의 내용

피고인인 남편은 피해자와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서 1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다. 2008년 피해자인 부인이 요청하여 직장을 그만두었고 안산으로 이사하여 처가식구들이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일을 하였으나 처가 식구들과의 불화로 인해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피해자는 2011년 10월 28일, 단골손님과 저녁을 먹고 자정 무렵에 귀가하였고 이에 화가 난 피고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하였고 다음 날 아침에 귀가하였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외도를 의심하였으며 부엌칼을 들고 피해자에게 폭행을 가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같은 해 11월 11일 자신의 집에서 주먹과 발로 피해자의 머리와 허리 등을 여러 차례 때렸으며 피해자를 향해 부엌칼을 들고 찌를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피해자를 안방으로 데리고 가, 칼을 옆에 둔 상태로 겁을 먹게 하여 항거불능상태에 있던 피해자의 옷을 벗긴 후 1회 간음한 후 재차 비슷하게 피해자에 대하여 피해를 입히고 피해자는 이로 인하여 약14일간의 치료를 요하는 다발성좌상 및 열상 등을 입었습니다.

피고인은 같은 달 14일 딸을 유치원에 보내는 피해자를 뒤따라가서 피해자의 목과 머리채를 잡아끌고는 자신의 차에 태운 후 “도망가면 죽인다”고 위협한 후 피해자로 하여금 휴대전화를 끄게 하였고, 같은 달 15일 울산에서 경찰관에게 체포될 때까지 피해자를 경남 산청, 부산, 울산 등지로 끌고 다니며 감금하였습니다.

Ⅱ. 판결의 요지

1. 사건의 경과 및 원심판결의 요지

1심법원은 증거를 통해 위의 범죄사실이 모두 인정되고 피고인에게 성폭력 범죄의 습벽이 인정되며 재범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징역6년과 7년간의 신상정보공개 및 10년간의 위치추적전자장치부착명령을 선고하였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법률상 처는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준강간 및 특수강간의 유죄를 인정한 법리오해 및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였습니다.

2심법원은 형법 제97조가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법률상 처가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는 없고 또 부부사이에서 비록 상대방에게 성관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폭행·협박 등으로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여 강제로 성관계를 할 권리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유죄의 원심판결은 유지하면서 양형부당은 받아들여 징역3년 6월과 7년간의 신상정보공개(다만, 기재범죄 축소) 및 10년간의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명령을 선고하였습니다. 이후 피고인은 상고하였습니다.

2. 대법원판결의 요지

(1) 다수의견

결론적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내용, 가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형법의 체계와 그 개정 경과,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부부의 동거의무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형법 제297조가 정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는 법률상 처가 포함되고,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만 아니라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여 강간죄를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행 또는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른 것인지 여부는, 부부 사이의 성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가정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자제하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그 폭행 또는 협박의 내용과 정도가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른 것인지 여부, 남편이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혼인생활의 형태와 부부의 평소 성행,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상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Ⅲ. 판례에 대하여

1. 쟁점의 소재

강간죄의 행위객체는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되었고, 성전환자 역시 판례를 통해 강간죄의 행위객체에 포함이 되었습니다(대법원 2009.09.10. 선고 2009도3580).

강간죄의 행위객체와 관련하여서는 법률상의 처에 대한 문제만 남게 되었는데, 2008도8601 판례는 적어도 당사자 사이에 혼인관계가 파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고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어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혼인관계가 존속하는 상태에서 남편이 처의 의사에 반하여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교행위를 한 경우 강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법률상의 배우자인 처도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실질적 부부로 인정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법률상 처를 강간죄의 객체로 보았기 때문에, 사실상 법률상 처를 강간죄의 객체에 포함시켰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본 대상판례는 ‘실질적인 부부관계를 존속하는 경우에도 법률상의 처가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법률상의 처가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있는지’ 적격여부에 대한 판례입니다.

2. 법률상의 처가 강간죄의 객체로 될 수 있는지 여부

(1) 부부관계의 특수성 및 강간행위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

이번 판례는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내용, 가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형법의 체계와 그 개정 경과,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부부의 동거의무의 내용 등에 비추어 형법상 강간죄의 객체에는 법률상 처가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만 아니라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으며, 종전 판결의 내용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였습니다.

(2) 소결

법률상 처를 강간죄의 객체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간음에 관한 해석 역시 법률상의 해석으로 본다면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형법상 강간죄의 객체에 법률상 처를 배제하여야 한다는 어떤 명문의 규정도 없으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내용, 가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형법의 체계와 그 개정 경과,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부부의 동거의무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만 아니라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판결의 의의

개정되어 현재 시행 중인 형법에 의하면, 제297조에서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어 남성을 객체로 하는 강간죄의 성립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제297조의 2(유사강간)이 새로 신설되어 판례가 취하던 종래의 삽입설과는 달리 직접적인 성기삽입이 없이도 죄의 성립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즉 강간죄의 객체와 행위 태양의 구성요건에 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이러한 변화는 사회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정조에 관한 죄>가 <강간 및 추행에 관한 죄>로 바뀐 것과 같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계속해서 이어져 온 강간죄 보호법익에 대한 논쟁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의 강간이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배우자의 부당한 침해로, 마땅히 강간죄의 성립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 판결은 그러한 점에서 개정된 형법의 기조에 시기적절하게 상응하여 새로운 기준을 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Ⅴ. 결론

결론적으로 법률상의 처는 아내이기에 앞서 한사람의 여성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성폭력범죄는 ‘폭행·협박을 사용하여 타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압적인 성행위’에서 그 불법성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이 혼인관계를 통해 함께 생활하는 배우자라고 하여 제한되거나 배제될 이유는 없습니다.
 

[사진=법무법인 비츠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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