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박보영 전 대법관의 선택과 그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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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8-07-2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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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 제11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성별이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신분에 따라 누구든지 차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2년 전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다. 대형 법조비리의 민낯을 드러낸 ‘정운호 게이트’다. 화장품 원브랜드숍 대표인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100억원대 해외 원정도박 사건으로 구속됐는데 그의 빠른 석방을 위해 검찰 고위 관계자, 관련 검사,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대동단결'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현직 부장판사, 전직 검사(변호사), 전직 부장판사(변호사) 등 법조계 거물 '전관' 다수가 구속됐다. 역대급 법조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뒤에는 ‘전관예우’라는 불편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 대법원이 선고한 재판 중 대법관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수임한 사건은 440건(2017년)으로 전년 대비 67%나 늘었다. 정운호 게이트 이후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시키겠다며 여러 대책을 시행한 이후 나온 결과라 더욱 충격적이다. 전직 판사나 검사가 소송을 맡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은 법원의 신뢰를 흔드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의 생존 마케팅이 되기도 한다. 안타깝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른 이들에게 변호사 개업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런 현실에서 박보영 전 대법관의 선택은 큰 울림을 준다. 그는 대법관 퇴직 후 전남 여수시 시·군법원 판사에 지원했다. 시·군법원은 소액심판 사건이나 즉결심판 사건 등을 다루는 소규모 법원이다. 변호사 개업을 하거나 대형 로펌을 마다하고 시·군법원 판사에 지원한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 해외에서는 전직 대법관이 연구업무나 단독 재판을 맡는 ‘시니어 법관’이 활발하지만 국내에선 전직 대법관이 일선 재판부로 복귀한 사례가 없다.

사람의 본성은 그가 모든 것을 가졌을 때 나온다는 말이 있다. 대법관은 법관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수만명의 법조인들 가운데 오직 선택 받은 14명만이 대법관에 오를 수 있다. 그의 용감한 선택이 더 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이 되길 바란다. 또 '제2, 제3의 박보영'이 늘어나 전관예우 비리가 줄고 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응원한다. 변화는 늘 그렇듯 개인의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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