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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 조부 심태섭씨 단독 인터뷰 "코치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

성동규 기자입력 : 2018-01-22 18:39수정 : 2018-01-23 00:45
“석희 은퇴경기까지만 봤으면…” “폭력사태 유감… 부담감 덜었으면” “할머니 장례식 때 본 코치 좋은사람” “메달 관계없이 석희는 자랑스러운 손녀”

[심태섭 씨의 집 거실에 걸린 심석희 선수 사진. 사진=성동규 기자]


국가대표.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 그들도 운동선수가 되기 전에 누군가의 자녀다. 2012년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도 그렇다. 최근 심석희 선수는 훈련 도중 A 코치에게 올림픽을 앞두고 좀처럼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찌검을 당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심석희는 선수촌을 이틀간 떠나 있었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가족들의 마음에도 상처가 생겼다. 어려서부터 늘 고된 훈련에 힘들어하는 손녀를 애달프게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먼저 무너져 내렸다.

"좋은 성적을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일부에선 “맞을 짓 했다”고 말한다. 좋은 성적을 내려면 체벌은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앞두고는 있는 터라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몇몇 언론에서의 행태도 비슷했다. 심석희 선수의 인권보다 그의 금빛 질주에 차질이 생길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맞을 짓’인가? 아니다. 폭력의 전염성은 매우 강하다. 사람을 좀먹고 왜곡시킨다. 코치도 선수 시절 받은 폭력을 심석희 선수에게 전달한 것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동의해버리면 폭력은 또다시 계승될 수밖에 없다.

‘때리면 안 된다’가 아니다. 애초에 ‘맞을 짓이란 건 없다’로 전제를 바꾸는 게 정상이다. 심석희 선수가 국가대표인 것에 앞서 한 명의 인간이며 소중한 자녀라는 사실을 언론과 대중은 잊은 듯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심석희 선수의 가족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태섭 씨 집 인근 벽에 심석희 선수의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성동규 기자]


"심석희 선수 할아버님 되시죠. 서울에서 취재하러 왔습니다"

심석희 선수의 할아버지 심태섭 씨가 있는 곳은 멀었다. 서울에서 차로 약 3시간을 가야 했다.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 심석희 선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곳엔 여전히 그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지난 21일 심태섭 씨는 다소 불편한 질문을 하러 찾은 기자를 과분하게 반겼다.

손수 차를 끓여 다과와 함께 내주었다. 심석희 선수의 아버지이자 심태섭 씨의 아들인 심교광 씨도 만날 뻔했지만 아쉽게 길이 엇갈렸다. 원래 심교광 씨는 서울에 거주하지만 이번 올림픽 빙상 경기가 강릉 열리다 보니 얼마 전부터 고향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심태섭 씨는 아들이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밤늦게나 들어온다고 했다. 다짜고짜 이번 사건에 대해 말을 꺼내 놓기가 죄스러웠다. 뜻밖의 호의에 더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심석희 선수의 어린 시절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심태섭 씨는 심석희 선수의 방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어릴 때 찍었던 사진이며 글짓기, 달리기 등으로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꺼내 보였다. 심석희 선수의 방은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위해 서울로 떠나기 전인 초등학교 4학년 때 시간이 멈춰있었다. 낮은 책상 위에는 당시 심석희 선수가 쓰던 교과서와 문제집이 그대로 있었다.
 

[심석희 선수의 웃동복과 메달 등이 보관된 책장. 사진=성동규 기자]


"말로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아이인데 왜 애를 때렸는지 마음이 아퍼"

방 한켠 책장에는 심석희 선수의 운동복과 장갑, 안전모, 메달 등이 보관돼 있었다. 어릴적 심석희 선수는 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심태섭 씨와 할머니인 전옥수씨의 손에 길러졌다. 그래서인지 손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각별해 보였다.

심석희 선수의 방을 둘러보고 거실에 앉아 얼마간을 망설였다. 어렵게 심태섭 씨에게 이번 사건에 관해 물었다. 심태섭 씨는 코치에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할머니 장례식 때 심석희 선수를 데려온 코치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전옥수 씨는 오랜 암 투병 끝에 2013년 세상을 떠났다. 다음 해 소치올림픽 3000m 계주에서 심석희 선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이뤘다. 당시 심석희 선수가 많은 눈물을 흘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코치도 이를 위해 분명 뒤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제의 연을 맺고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도 설명했다. 이번 올림픽에 너무 부담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면서도 이런 일이 다시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심석희 선수의 싸인. 사진=성동규 기자]


"석희가 메달 따는 것보다 행복하게 달리는 걸 보고 싶어"

뉴스에서 코치한테 맞아서 병원에 갔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시 훈련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심태섭 씨에게 심석희 선수의 메달 색깔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에게 심석희 선수는 존재 자체로 이미 자랑스러운 손녀였다. 당연히 일부 사람의 볼멘소리도 개의치 않았다.

얼마 후에 있을 올림픽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도 달랐다. 심석희 선수가 메달을 딸 거라는 기대감과 거리가 멀었다. 손녀를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게 행복해서라고 했다. 심태섭 씨는 심석희 선수가 앞으로 아프지 않고 너무 힘든 훈련을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늘그막 소원이 있다면 심석희 선수가 오랫동안 행복하게 달리는 걸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심석희 선수의 은퇴경기를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제야 한동안 굳어있던 표정이 펴졌다.

자신의 이런 마음을 분명 심석희 선수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심태섭 씨의 말을 곱씹었다. "손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어찌보면 흔한말이 오랜만에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이 한마디만이라도 부디 심석희 선수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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