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
thongnhat@hanmail.net
- 前) 조선대학교 글로벌인문대학 교수
-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 외국인 최초 베트남문학회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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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인도ㆍ태평양 시대' 교두보 놓은 한ㆍ베트남 한‧베수교 30년을 맞이하여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의 국빈방문은 지난 30년간의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 관계를 총결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2009년에 맺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에서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유일한 '동맹 관계'인 미국을 제외하고 최고 수준의 협력 관계로 한 단계 더 격상시킨 것이다. 양국의 교역 규모는 1992년 수교 당시 5억 달러(4억9000만 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 807억 달러를 달성하였다. 30년 만에 물경 161배나 증가하였다. 세계 외교 역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큰 성과이다. 이제 양국의 연간 교역 규모는 1000억 달러, 한국의 베트남 직접투자 누적 1000억 달러(2022년 5월 말 기준 790억 달러), 베트남 투자 한국 기업 수 1만 개(2022년 5월 말 기준 9288개)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번 국빈방문에서 한·베 두 정상이 서로 향후 우호협력 관계에 청신호를 주고받았다. 응우옌쑤언푹 주석은 베트남의 잠재력을 믿고 많은 투자를 통해 베트남 발전에 도움을 준 한국에 감사를 표하였고, 동시에 경제뿐 아니라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 나라가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 역시 “한국과 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푹(Phúc) 주석께서 한국을 찾아주셔서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며, “이번 주석님의 방한이 지난 30년을 디딤돌로 삼아 앞으로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도약하고 발전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베트남 언론에서도 응우옌쑤언푹 주석의 방한에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였다. 우선 2030년까지 베트남의 사회경제 발전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는 각종 제조업, 재생에너지, 전기차 생산, 금융, 물류, 과학기술 분야, 문화교류에 한국과 협력하여 베트남의 경제를 도약시킨다는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국과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응우옌쑤언푹 주석은 방한 첫날부터 KOVECA, 한베친선협회 등 친선 우호단체, 화산 이씨 종친회를 접견하여 친밀감을 표시하였고, 다음날에는 대기업 총수를 비롯해 300여 명의 기업인들과의 투자유치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광폭의 행보를 하였다. 이번 응우옌쑤언푹 주석의 국빈방문에 맞춰 베트남의 축구를 동남아 최고의 강팀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에게 양 국가의 정상이 참석한 만찬 자리에서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한 것이 베트남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중에 베트남을 방문하여 쌀국수의 일종인 가장 서민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인 “분짜” 식당을 찾아 시식하여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아있던 대미 적대 감정을 덜어낸 적이 있었다. 이번 양 정상의 만찬장에서 박항서 감독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은 이에 버금가는 기발한 외교 아이디어였다. 가짜뉴스로 인해 반한 감정의 파고가 높아 베트남 내 한인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때에,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는 좋은 호재를 창안한 아이디어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난 베트남과 외교 관계 정상화 30주년의 성과를 되돌아보면, 외교 관계 수립 50주년이 되는 2042년에는 베트남과의 교역 규모가 2000억 달러 규모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은 이번 응우옌쑤언푹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미래를 향한 튼튼한 교두보를 놓은 셈이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서로 부딪쳤던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12월 22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그리고 올해 수교 30주년이 되었다. 지난 30년은 900여 년의 두 민족 교류역사에 비하면 30분의 1에 불과한 짧은 기간임에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성과를 거둔 것은 한민족과 베트남민족 사이에 음과 양으로 통하는 어떤 문화적 유사성이 생산적인 작용을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베트남 리(李)왕조의 왕자 2명이 정선(旌善)이씨와 화산(花山)이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사실과 1363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문익점(1328~1398년) 선생이 황제의 미움을 받아 교지(Giao Chỉ)로 귀양을 갔다가 3년 만에 귀국하면서 가져온 교지의 목화 씨앗은 한‧베 우호 협력관계 발전을 견인할 자양분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우리에게 베트남과의 선린우호관계를 공고화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인도‧태평양 시대를 활짝 열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풍부한 천연자원 개발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고, 에너지, 녹색성장, 과학기술, 노동, 문화, 관광,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베트남과의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번 응우옌쑤언푹(阮春福) 주석 방한의 최대 성과는 외교 관계를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켜 인도‧태평양 시대를 여는 데 두 정상이 뜻을 모았다는 데 있다. 두 나라의 정상 윤(尹) 대통령과 푹(福) 주석이 만나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한 “윤(尹)‧푹(福)” 시대를 열기로 한 것이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베트남과 손잡고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정신으로, 베트남과 상부상조하면 함께 멀리 갈 수 있다. 안경환 필자 주요 이력 ▷한국글로벌학교(KGS) 이사장 ▷하노이 명예시민 ▷전 조선대 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2022-12-07 17: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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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40) 한국어라 할까? 조선어라 할까?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가슴에 제2의 고향을 심는 것과 같다. 그 나라 말을 통해서 문화를 익히고 교류를 통해서 정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그나라 문화의 전도사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7일 하노이 교외의 한 단독 주택에서 북한으로 유학을 다녀온 베트남 사람들이 유학 50주년을 자축하는 모임이 있었다. 함흥 유학파들의 모임이었다. 북한은 베트남이 어려울 때 도와준 베트남의 우방국이다. 북한은 호찌민 주석이 1945년 9월 2일 독립을 선언하고 건국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승인하였다.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31일 수교하였고, 그해 10월 25일 상주대사관을 교환 개설하였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그해에 북한은 베트남에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베트남이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자 북한은 현금 및 물자를 지원하였고, 베트남 유학생을 받아 교육을 시켜 주었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에는 203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북한군 14명이 베트남에서 전사하였다. 호찌민 주석은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해외로 유학을 보내 종전 후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육성하였고, 그러한 계획하에 북한에도 베트남 유학생이 파견되었던 것이다. 베트남은 (구)소련으로 제일 많이 유학을 보냈고, 다음이 북한, 중국, 쿠바, 동구권 여러 나라 순서로 유학생을 보냈다. 올해가 67년도에 북한으로 가서 5년 후인 1972년에 유학을 마친 이들의 졸업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베트남에 북한 함흥지역 유학파들이 모였다. 1963년도부터 북한으로 유학을 갔는데, 초기에는 학생 수가 많지 않다가 1965년에 조금 더 늘었고, 1967년에 유학생 수가 가장 많았다. 북한으로 유학을 다녀온 베트남 유학생들은 북조선과 베트남의 우호 관계 증진에 주축이 되었고, 1992년 12월 22일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자 이들의 통역 활동이 초창기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번 베트남에 있는 함흥 유학 50주년 기념 모임은 유학생 가운데 사업으로 가장 성공한 HANVICO 회장 팜반뚜언(Phạm Văn Tuần:75)의 자택에서 음식을 준비하였다. 팜반뚜언 회장은 침구류를 생산 판매하는 회사로 설립 23년이 되었고, 미얀마에도 공장이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는 베트남의 문학 걸작 “쭈옌끼에우”의 저자 응우옌주의 고향이 있는 하띤성 출신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응우옌주의 인본주의 경영철학으로 승부를 걸었다. 조상을 모시는 일,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사람을 모시는 일을 경영에 중심으로 삼았다. 몸이 아프거나 출장으로 참석이 어려운 회원을 제외하고는 북부 베트남에 있는 회원들은 이번 모임에 거의 다 모였다. 회식에 앞서 악대와 가수가 번갈아 가며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로 분위기를 돋구었다. 첫 곡은 아리랑으로 시작되었다. 가수가 아리랑을 부르자 합창으로 바뀌었다. 회원 가운데 시인 한 분은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함흥해변의 아름다움이 눈에 어리니 언제 한번 다시 가 볼까나? 하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시였다. 이어서 한국주재 3대 베트남 대사를 역임한 즈엉찐특(80) 대사의 단결과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이 담긴 축사도 있었다. 즈엉찐특 대사는 평양 유학파이지만 특별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음식은 베트남 음식에 더하여 한국식으로 담근 김치, 고추장, 된장, 푸른 고추가 곁들어져 있었다. 김치는 북한여성으로 베트남 남성과 결혼한 화제의 주인공 팜응옥까인(73)씨의 부인 리영희(74) 여사가 함흥 아낙네의 솜씨로 김치를 매콤하게 담가 왔다. 남편 팜응옥까인씨는 김일성 뱃지를 자랑스럽게 양복 왼쪽 옷깃에 달고 있었다. 팜응옥까인씨는 18살이 된 1967년에 북한으로 유학을 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낯선 북조선 함흥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교 3학년 때인 1971년에 흥남시 소재 비료공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실험실에 근무하는 아가씨 리영희씨를 우연히 만나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첫 만남 이후 31년 만에야 결혼식을 올릴 수가 있었다. 2002년 결혼 당시 신랑은 53세, 신부는 54세였다. 이들은 북한 여성과 베트남 남성이 가정을 꾸린 다문화가정 1호가 되었다. 북한 당국이 2002년도에서야 리영희씨에게 외국인과 혼인을 허락한다는 정식 문서를 발급하였고, 머나먼 남쪽 나라로 시집을 온 것이다. 너무 늦게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도 없다. 하노이에서 2002년에 국제결혼식을 올린 두 부부는 올해로 결혼 20주년을 맞이하였다. 회원들 모두 북한에서의 유학 생활의 애환을 반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50년이나 지났음에도 북한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는 노인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유학생으로 선발된 이들은 모두가 수재들이었고,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는 자부심과 국가를 위해 한몫하겠다는 애국심으로 가득 찼던 젊은이들이었다. 김책공업대학교 광산학과를 나왔다는 분이 말을 걸어왔다. “안 선생! 한 가지 물어봅시다. 조선 아니 한국은 언제 통일 할꺼요? 빨리 통일하시라요. 한민족인데 같이 힘을 합쳐야디요.” 이들에게는 ‘한국어’ 보다는 ‘조선어’가, ‘한반도’ 보다 ‘조선반도’가 더 익숙한 말이다. 금년은 베트남과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로 1992년 수교 당시 보다 교역 규모가 200배 증가한 1천억 달러, 한국 투자 기업체 수가 1만여 개, 누적투자 액수가 1천억 달러를 눈앞에 둔 사상 유례없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베트남에서 ‘남조선’, ‘조선반도’, ‘조선어’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의 마음속에는 북한이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화통일만이 유일한 통일 방법임을 주장하는 북한집권층이 엄존함에도, 남북한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상, 금강산, 묘향산을 자유롭게 올라가 북한 동포들과 얘기하고, 서울역에서 KTX타고 평양을 구경하러 가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 진보 좌파 세력이 득세를 하고 있는 한 ‘남조선’, ‘조선반도’, ‘조선어’ 등등은 듣기 싫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안경환 필자 주요 이력 ▷한국글로벌학교(KGS) 이사장 ▷하노이 명예시민 ▷전 조선대 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2022-12-05 13: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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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39) 한국과 너무 다른 베트남의 '5무(五無)' 선거 베트남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가 5년마다 한 번 실시된다. 베트남 국회는 단원제로 500명을 선출하며, 국회의원 입후보자 추천과 모든 선거 관리 업무는 ‘베트남조국전선(Mặt trận Tổ quốc Việt Nam)’이 담당한다. 올해 창립 67주년인 베트남조국전선은 1955년 9월 10일 호찌민 주석이 창설하였다. 조국을 방위하고 건설하는 모든 국가 활동에 참여하고, 국민의 합법적인 권리를 보호하며, 민족의 대단결을 유도하고, 민주화를 실현하고, 사회 통합을 제고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당 직속 기관이다. ‘조국전선’이 관리하는 베트남 선거는 5무(五無)가 특징이다. 첫째, 현수막이 없다. 재활용이 안 되는 현수막은 선거 후에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가 된다. 친환경 소재로 재활용되면 그래도 나은 편이나 재활용되는 양은 많지 않다. 쓰레기로 소각하면 온실가스 배출로 대기 환경이 오염된다. 현수막으로 걸려 있을 때는 도로 미관을 해치고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베트남에는 거리에 선거 현수막이 하나도 걸리지 않아 폐해가 없다. 둘째, 선거운동원이 없다. 선거 때만 되면 확성기를 틀고 노래와 율동으로 유권자 시선을 끌기 위해 거리마다 시끄럽게 하는 선거운동원이 전혀 없다. 조용한 선거가 기본이다. 셋째, 선거유세와 선거 벽보가 없다. 유권자들 앞에서 목청을 돋우는 선거유세가 없으니 당연히 유세용 차량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입후보자의 인생 역정이 어떠했는가? 그동안 국가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점이 국회의원 입후보자 추천에 가장 중요한 척도다. 선거용 벽보로 담벼락을 도배하는 일이 없다. 선거 벽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나 주거지 공용 알림판과 투표 장소에 A4 용지 크기에 인쇄한 후보자 이력을 게시하는 게 고작이다. 넷째, 연설비, 홍보물 제작비, 방송 광고비 등에 들어간 선거비용을 득표율에 따라 보전해주는 선거 공영제가 없어 선거로 인한 국고 낭비가 없다. 선거 공영제는 재력 없이 입후보하지 못하는 유능한 사람에게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입법 취지는 좋은데 베트남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유능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다섯째, 재·보궐 선거가 없다. 당선인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 당선이 무효가 되어 재선거를 치르거나 선출된 의원의 사퇴, 사망, 실형 선고 등으로 인해 그 직위를 잃어 공석 상태가 되어도 보궐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 유권자는 선거구별 의원 정수만큼 입후보자에게 투표하고, 50% 이상 득표한 후보자 가운데 다수 득표자 순으로 당선자가 정해진다. 따라서 선거구별로 50%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가 없을 때에도 결선 투표 제도가 없어 해당 선거구는 국회의원이 공석이다. ◼ 조국전선의 국회의원 후보 추천 조건 베트남에서 5년마다 한 번 실시되는 선거에서 국회의원과 함께 시‧군‧현(縣) 의원도 동시에 선출한다. 선거에 출마하려면 ‘조국전선’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현재 베트남 조국전선중앙위원회 도반찌엔 위원장(59)은 소수민족인 산지우(Sán Dìu)족 출신이다. ‘조국전선’은 입후보 신청자 자질을 심사할 때 신청자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 과거 경력을 면밀하게 검증한다. 예를 들면 신청자 가족 가운데 프랑스 식민시대에 프랑스 측에 조력했거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적국과 내통한 자가 있으면 추천에서 제외된다. 범법자, 병역기피자, 이중국적자, 체납자, 파렴치범, 공금 횡령, 밀수범, 토지사기범, 마약사범, 폭력범 등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자들은 초기에 걸러진다. ‘조국전선’은 엄격한 입후보자 자격 심사기준을 통하여 자질을 갖춘 국회의원 입후보자를 추천하여 국회 품격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심사의 기준은 첫째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헌법을 수호할 애국심과 충성심이 있는가? 그리고 국가의 공업화와 현대화 사업을 견인하고, 국민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민주화, 문명화와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둘째는 법을 집행하는 데 근검염정(勤儉廉正)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도덕적 품성이 있는가? 관료주의, 탈법행위, 부정부패와 공직자들의 권위적인 태도를 척결할 투쟁성이 있는가? ‘근검염정(勤儉廉正)’과 ‘지공무사(至公無私)’는 호찌민 주석 국가 통치의 기본 행동 철학이었다. 결국 ‘조국전선’은 호찌민 주석의 정치 철학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추천하고, 추천된 후보들 가운데서 국가를 이끌어갈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것이다. 셋째는 국정을 책임지는 국회의원의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 즉,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의견을 듣고, 국민에게 대중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가?다.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과 도덕성을 국회의원의 추천 잣대로 삼고 있어 국민에게 지탄받는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일이 없다. ◼ 특권 없는 베트남 국회의원 베트남 국회의원은 특권이 없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국회의원들과 비교된다. 한국 국회의원은 면책특권, 불체포 특권, 보좌관 9명, 본인 급여를 포함하여 1년에 인건비 6억여 원, 45평 사무실, 비행기 비즈니스석, 출국 시 귀빈실 이용, 차량 유지비·유류비·교통비 지원 등 국민 혈세를 가지고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다 누리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훌륭하고 그들의 활동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크다면 국회의원 특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한국 정치인들은 정파적 이념성이 너무 강하고 지방색을 부추긴다. 지난 6월 1일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로 출마했던 이정현 후보는 18.81%로 보수 정당 사상 역대 최다 득표를 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광주·순천 등 호남에서 총 6번 출마했는데 “이번이 단 한 번도 욕을 듣지 않은 유일한 선거”라고 했다고 한다. 호남에서 보수 정당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없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있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이 지역감정으로 묘하게 얽혀 있어서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일꾼을 뽑지 않고 '정치꾼'을 뽑는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연(緣)에 따라 자기 사람을 공천하니 후보 자질이 문제가 된다. 선출직 공무원이 자신을 뽑아 준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고 자신을 공천해 준 사람을 위해 정치를 하니 나라가 병든다. 또한 베트남에는 다수결주의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숨어 당리당략에 따라 절차를 어겨가며 편법으로 법을 제정하는 야합 정치는 없다. '위안부' 피해자 복지를 위한 기부금을 횡령하고도 특권을 누리고 있는 국회의원은 베트남에 있을 수가 없다. 한국은 정치가 나라를 병들게 한다.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킨다. 표를 의식한 퍼주기식 인기 영합주의 정책이 국고를 탕진하고 민생을 어렵게 한다. 베트남 국회의원들은 국가 경제 발전과 국방을 위해서는 오로지 한 덩어리가 된다. 반면에 한국 정치인들은 미국, 중국을 살피며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만 챙긴다. 누가 사드 배치나 쿼드 가입 문제를 언급하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말하며 반대한다. 안보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다. 경제 보복을 우려해 중국 눈치를 본다. 베트남에는 중국에 편향적인 정치인은 없다. 베트남 국민은 과거 역사에서 외세를 이용해 왕위를 보존하려 했다가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 왕을 잘 기억하고 있다. 레(黎) 왕조(1428~1788) 마지막 왕 찌에우통(昭統·1765~1793)은 떠이선(西山) 농민혁명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1788년 청나라에 황태후를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찌에우통은 원병으로 온 청나라 군사 29만명을 등에 업고 떠이선(西山) 농민혁명군에 협조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였다. 이에 응우옌후에 장군이 이끄는 떠이선 군은 1789년 정월 청나라 군을 기습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예기치 않은 청나라군의 대패는 찌에우통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찌에우통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신하 25명과 함께 패퇴하는 청나라 군사를 따라 연경으로 갔다. 그러나 청나라는 떠이선 군과 전쟁이 재발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였고, 찌에우통은 치욕적인 삶을 살다가 1793년 이국에서 생을 마쳤다. 왕이 매국노가 된 것이다. 베트남 역사서인 황려일통지(Hoàng Lê nhất thống chí·皇黎一統志)는 찌에우통에 대해 “예부터 이제까지 이렇게도 비참했던 왕은 일찍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찌에우통은 베트남 민족에게 치욕을 준 왕이었다. 비록 청나라 지배를 받을지언정 찌에우통은 허수아비 왕으로라도 왕위를 연명하려고 했다. 청나라로 가지 않고 박닌성 고향으로 피신했던 왕비는 1804년 찌에우통 시신이 돌아오자 염습을 마친 뒤 음독하여 39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자고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국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외세에 의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중국에 의존해 독립을 유지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치인의 역량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부족하고 애국심, 애민정신이 없으면 경제인들이 땀 흘려 일궈 놓은 수출 규모 세계 7위, 경제 규모 세계 11위라는 성과도, 한류 열풍으로 올라간 대한민국 위상도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된다. 한국 국회의원 가운데에도 유능하고 민족의 미래를 설계할 줄 아는 뛰어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인재들이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국민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의 난맥상이 화면을 통해 실시간 방영되면서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이후에야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데 반하여 베트남은 선출 전에 의원의 자질을 철저하게 심사하여 후보로 추천한다. 베트남은 어떤 경우에도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제도화해 놓았다. 2024년 4월 10일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각 정당에서는 공천심사를 엄격히 해서 국회의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 애국심을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여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이고 국회의원 특권을 국회의원 스스로가 포기한다면 대한민국은 1등 국가를 목표로 고공비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비상하는 대한민국의 날개를 잡고 있으면 안 된다. 국회를 혁신하는 것이 국가를 도약시키는 첩경이다. 베트남은 조국전선이 국가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국격을 살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조국전선은 ‘홍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추동력이라 할 수 있다. 베트남 국회의원의 자질과 국격은 ‘조국전선’이 지킨다. 안경환 필자 주요 이력 ▷한국글로벌학교(KGS) 이사장 ▷하노이 명예시민 ▷전 조선대 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 회장 2022-11-20 10: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