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논설고문
leejaeho6424@gmail.com
- 아주경제 초빙논설위원
- 前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실장
- 前 관훈클럽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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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한국정치 증오와 분열의 벽… '정서적 올바름'으로 넘어서자 민주당의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념’ 발언을 소환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1월 26일)에서다. 당이 강성 지지층에 줄곧 끌려 다니다가 정권을 빼앗겼는데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양념’ 발언도 한몫을 했다는 거다. 윤 전 총장은 ‘양념’이 “문의 어록 중 제일 아팠던 부분”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들에게 문자폭탄과 댓글테러를 가해 논란이 되자, “경쟁(경선)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했다. 왜곡, 과열된 팬덤 정치의 비민주성을 걱정하기보다는 ‘해프닝’ 정도로 여긴 것이다. 그 ‘양념’이 증오의 씨앗이 돼 우리 정치를 극심한 대립과 반목 속으로 몰아넣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文 정권 5년, 증오의 굿판이 된 정치 문 정권 5년 내내 정치판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막말과 저주의 굿판이 됐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수 국민을 “토착왜구”로 몰아도 대통령은 물론 책임 있는 여권 인사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증오는 정권이 바뀌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듯하다. 새 정권에 비판적인 일부 성직자들은 “해외순방 중인 대통령의 전용기가 추락해버렸으면 좋겠다”는 경악할 만한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지독한 증오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증오상업주의>(2013년)를 쓴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악마화’라는 말을 썼다. 신간 <퇴마정치>에서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윤석열을 악마화 한 탓”이라고 했다. “윤석열을 미워하는 수준을 넘어 2년7개월간 계속 악마화 했고 이런 민주당의 자해(自害) 탓”에 졌다는 것이다. 증오가 넘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위험한 사회다. 증오는 이성을 마비시켜 합리적 소통과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증오는 증오를 먹고 자란다. 내가 상대를 증오하면 상대는 더한 증오로 되갚음 한다. 그 끝은 공멸(共滅)이다. “견해가 다르면 결혼도 안 해” 문 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김부겸 전 의원은 “한국정치는 견해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결혼도 안 하겠다는 ‘정서적 내전상태.’에 있다”면서 “다음 단계는 ‘싹 쓸어 없앴으면 좋겠다.’는 사회심리 위에 등장했던 나치와 파시스트로, 우리는 그만큼 위험하다(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했다.(1월 29일 ‘정치학교 반전’ 강연, 경향신문) ‘증오’는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이어서 해소도, 치유도 어렵다. 우리만 해도 근대 이후 일제의 주권침탈, 식민체제, 전쟁과 분단,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압축 성장만큼 압축된 증오가 도처에 쌓여왔다. 불공정, 차별, 특권, 내로남불이 증오를 낳는 원인이라면 대한민국처럼 적합한 토양도 없다. 미국의 반(反)명예훼손연맹(ADL · Anti-Defamation League)은 증오가 심화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눈다. 증오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샐리 콘(Sally Kohn) 박사는 저서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The Opposite of Hate, 2018년, 에포케, 장선하 역)에서 이를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증오의 피라미드’ 맨 아래쪽인 1단계는 ‘어떤 집단은 본래 우월하다’는 고정관념 등이 형성되는 단계다. 2단계는 왕따나 욕설 같은 편견을 바탕으로 행동과 말은 안 해도 은근히 이뤄지는 사회적 따돌림처럼 남에게 해를 입히는 단계다. 3단계는 취업이나 주택 정책, 혹은 정치적 시스템 안에서 제도적 형태의 차별이 일어나는 단계다. 4단계에선 테러나 증오범죄처럼 편견에 치우친 폭력이 발생하고, 맨 꼭대기인 5단계에선 대학살로 발전한다. ‘증오의 3단계’로 넘어가선 안 돼 우리는 이 중 2단계의 정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SNS를 통해 이뤄지는 상대에 대한 멸시와 조롱, 집회와 시위 등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3단계는,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노골적인 배척이나 채용 기피, 성(性)소수자에 대한 겁박 등이 벌어지는 단계다. 다행히 아직 3단계로 넘어가지는 않고 있다.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들, 예컨대 위헌심사제도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증오의 파고 앞에서 방어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울 때가 많다. 증오는 이른바 증오상업주의(hatred commercialism)에 의해 조장되는 경향이 있다. 증오상인들(hatred mongers)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해 ‘증오’를 만들어 판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북한의 대응을 그런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북은 남한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겨 체제의 결속과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을 확보해왔다. 한국의 두 거대 양당 체제에 대해서도 그런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公敵 1호, 증오상인들(hatred mongers) 증오를 파는 건 결국 언론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맷 타이비(Matt Taibbi)는 저서 <증오주식회사>』(Hate Inc., 필로소픽, 2021년)에서 이를 시니컬하게 파헤친다. “…(기자들을) 우리(cage) 안에 전부 몰아넣는다. 이렇게 해서 안전하게 포획되면 우리는 스포츠팬들이 하는 방식대로 뉴스를 소비하도록 훈련받는다. 우리 팀은 응원하고 나머지 팀은 모두 증오한다.… 증오는 무지의 파트너이며, 미디어 종사자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판매하는 전문가 됐다.” 증오는 SNS를 타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국내 유튜브 중 광고수익을 내는 채널수만 5만이 넘는다고 한다. ‘증오’는 익명성으로 무장한 채 ‘가짜 뉴스’에 얹혀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파괴적이고 선동적이다. 미디어 소비자는 이중으로 피해를 보는 셈이다. 증오는 정치의 가십화(化)를 초래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상대를 증오하다보니 기사의 경중(輕重)은 제쳐두고, 반대편에게 망신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들만 찾느라 혈안이 된다. 침소봉대와 ‘기사 비틀기’는 일상이 됐다. 한국 신문의 정치면에서 ‘가십난’이 사라진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권위주의 시절, 언론자유의 위축 속에서 정치판의 짤막한 뒷얘기, 속칭 ‘가십’을 통해 정치 뉴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지만, 정치의 경박화(輕薄化), 희화화, 저질화를 초래한다는 논란이 있어 대다수 언론사가 이를 없앴다. 증오가 죽은 가십난을 되살려내고 있다. 정치와 정치기사의 퇴행이라고 할 만하다. 누가 죽은 가십난을 불러내나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한 진영(陣營·block)이 도사리고 있다. 진영을 감싸고 도는 것은 끝 모를 증오다. 진영은 제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주지만 그 대가로 상응하는 충성을 요구한다. ‘보호’와 ‘충성’을 맞바꾸는 셈이다. 충성심을 어떻게 보여줄 건가. 증오를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공천 시즌이면 돌출하는 일부 의원들의 막말과 기행(奇行)은 그래서 나온다. 증오의 정치가 한국사회를 더 갈라놓기 전에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떤 모임에서도 정치 얘기는 안 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안다. 친구들끼리는 물론 가족 간에도 정치 얘기는 금물이다. 필자는 설을 쇠러 고향에 갔다가 죽마고우 친구들끼리도 격렬한 언쟁 끝에 사이가 틀어져 돌아온 경우를 흔하게 봤다. 정치판이 깨끗해야 증오가 사라져 정치를 주제로 한 논쟁이야 어디에서나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전통적으로 정치를 도덕적 선악(善惡)의 문제로 포장해온 데다가, 실제로 현실 정치인들이 불법과 비리의 주범인 경우가 많아서 더 거칠고 위선적이다. 한국정치는 우선 정치판이 깨끗해져야 증오가 사라진다. 증오를 유발하는 모든 모순과 불합리를 없애야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우리의 근, 현대사부터 다시 써야 한다. 결국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함께 민주적 합의와 협치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도 여야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여기에다 나는 샐리 콘 박사가 말한 ‘정서적 올바름’(emotional correctness)을 하나 추가하고 싶다. ‘정서적 올바름’이야말로 증오를 완화시키는 실천 가능한 첫째 덕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쉽게 말하면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거라면 “‘정서적 올바름’은 ‘극과 극으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예의를 갖춰 대화하고, 상대와 공감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에 거는 기대 콘 박사는 “입 밖으로 나오는 말뿐만 아니라 말을 할 때의 의도와 표현방법을 통해 상호존중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 효과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수많은 악플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필요하면 가서 만났다. 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온라인에서 내게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놀라우리 만큼 심오한 경험이었다.” 역시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것은 태도(attitude)다. 증오라는 거대 담론의 철옹성 앞에 작고 왜소해 보이겠지만 ‘증오 줄이기’의 첫걸음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마침 여야 의원 121명이 참여하는 초당적인 정치개혁 모임이 출범했다. 전체 의원 40%에 해당하는, 전례가 없는 큰 규모다. 승자독식의 한국정치의 폐해를 바로잡는 게 목표라고 한다. ‘정서적 올바름’으로 내부규율을 삼아 부디 소기의 성과가 있기를 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2-0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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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방탄' 민주 정당 …표류하는 한국 민주주의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걸 보면서 책 한 권을 다시 꺼내들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읽었을 책이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브로드웨이 북스, 2018년).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의 공저인 이 책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그중 인상적인 대목이 정당에 관한 언급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당’이라고 말한다. 흔히 국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과도한 기대라는 거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인 대중선동가, 잠재적 독재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튼튼한 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당이 없거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악마와 거래라도 하듯이 선동가, 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populist outsiders)을 영입하게 되고, 결국 그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죽는다는 것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차베스의 집권이 그런 경우였다는 것. 192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치와 파시스트가 집권에 성공했을 때 그들의 당원 수는 전체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집권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정권을 잡았다. 기성 정치세력 내의 내부자들(insiders)의 방조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히틀러를 영입하려는 자신들의 야망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선 눈을 감았고, 히틀러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보다 치명적인 착각은 없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제어해야” 두 차례의 쿠데타 실패로 수감 중이던 차베스(1954~2013년)를 불러낸 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두 번이나 지낸 원로정치인 라파엘 칼데라(Rafael Caldera 1916~2009)였다. 차베스는 칼데라와의 연합 덕분에 1998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했고, 14년간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차베스는 독재와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되었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붕괴됐다. 훗날 칼데라는 차베스를 영입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이 권력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당의 주류가 협력해 이들을 당에서 고립시키거나, 경선에서 패배시켜야 한다는 거다. 저자들은 이를 당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적인 게이트키퍼(gatekeeper‧문지기) 기능으로 보았다. 게이트키핑이 잘 되는 정당은 차베스 같은 인물들이 정권을 잡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당이 성공한 민주주의 게이트키퍼가 되려면 행태주의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Nancy Bermeo)가 말한 ‘거리두기’(distancing)도 잘 해야 한다. 선동가나 극단주의자(전제주의자)들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데 능하다. 그들은 지금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집단에 의해 부패한 가짜 민주주의이므로, 정권을 잡으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이런 식의 선동을 차단하려면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당내 경선에서 배제하거나 제명, 또는 고립시켜야 한다. 그들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민주세력끼리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영국, 코스타리카, 핀란드 등은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잘 막아냈지만 베네수엘라 등 다수의 남미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민주정당의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 그들은 물론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담론 차원에서의 해법도 제시한다. '상호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절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는 이 두 개의 가드 레일(guard‧rail)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가 출마했던 2016년 대선 전까지는. 저자들은 이 가드 레일을 다시 세워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원론적인 얘기보다 ‘게이트키핑’과 ‘거리두기’를 콕 집어서 제시한 데 주목했다.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들을 식별해서 격리시키고(isolate), 경선에서 패배토록(defeat) 해야 한다는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에 더 끌렸던 것이다. 거기에서 정당정치의 엄중함, 단호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정당은 느슨하고 허술한 조직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보루’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던 것이다. 노웅래 의원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민주당이 그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자 여권에선 즉각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노 의원 건을 부결시켜야, 곧 국회로 넘어올 이 대표 체포동의안도 부결시킬 수 있어서 그랬다는 거다. 민주당이 임시국회 종료(1월 8일) 직후 새 임시국회를 소집할 걸로 알려졌을 때도 1년 내내 이 대표 방탄 국회를 열어두겠다는 거라고들 했다. 방탄, 방탄, 방탄, 왜 이리 관대한가 실제로 대선 이후, 이 대표와 민주당의 관심은 오로지 ‘방탄’에 쏠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헌 80조를 고쳐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라도 정치보복일 경우엔 구제할 수 있도록 한 게 단적인 예다. 최근엔 ‘탁란(托卵)’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 원로 언론인은 “한국 민주화의 적통인 민주당을 종북 좌파세력과 586, 부정·비리 의혹의 당대표가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 낳듯(탁란) 접수했다”고 했다. “어찌해서 169석의 거대 야당이 대표 한 사람의 방탄놀이에 올인해 그의 부정‧비리 사건에 당의 명줄을 건다는 것이냐”고 그는 개탄했다.(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11월 29일) 송영길 전 대표는 이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자신이 5번이나 당선됐던 지역구(인천 계양을)를 선뜻 내주었다. 이 대표는 이 선거구의 보궐선거(6월 1일)에서 당선됨으로써 확실하게 ‘방탄조끼’를 챙겨 입었다. 대체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해 왜 이렇게 관대할까.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어떤 확신이라도 있어서일까. 아니면 드러나지 않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민주당은 대장동 비리의혹과 이로 인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대목은 앞서 소개한 레비츠키와 지블랫 교수의 지적과는 대조적이다. 두 저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권력 중심부 진출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게이트키퍼(문지기)의 중요성과 이들 선동세력과의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당은 ‘거리두기’는커녕 이 대표 중심의 ‘단일대오’ 유지에 올인했다. 필자 눈에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라고 하기에 충분한 한 야심가를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비쳤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2019년 한 논문에서 이 대표를 ‘아웃사이더 기질과 카리스마 성향 등을 가진 좌파 포퓰리스트로’ 규정한 바 있다. 월간 신동아 2022년 10월호) “대표직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해가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고 있다. 연초 5선의 이상민 의원과 문희상 상임고문은 ‘이 대표의 유고에 대비해 플랜2, 플랜3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고문은 ’영리한 토끼는 굴을 3개 판다‘는 교토삼굴(狡免三窟)과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거론하기도 했다. 사법 리스크로 당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으니 대비하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야권의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도 “측근 비리가 확인되면 이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동아일보는 4일 당내 핵심 친명(친이재명) 이라는 한 의원의 말을 익명으로 보도했다. 그는 “이 대표가 당은 당이고, 사법 리스크는 내 문제라고 당당히 말하고, …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결과에 따르겠다, 수사엔 언제든지 응하겠다고 의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는 것이다.(최근엔 이 대표도 그런 쪽으로 마음이 바뀐 듯하다. 그는 4일 기자들에게 “소환조사 받겠다는 것인데 뭘 방탄이냐”고 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도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방탄’ 이미지로 내년 총선을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대표는 ‘방탄’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수사에 응함으로써 당을 ‘방탄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방탄’ 뒤에서 ‘정치보복’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적대적 의존관계’ 해소에 밀알 되어야 올 한 해가 우리 정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대표가 더 잘 알 터이다. 승자독식의 한국정치를 바꾸기 위한 제도적 개혁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도 그중 하나다. 결과에 따라서는 기존 여야 관계가 허물어지고 정치판이 재편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이 대표가 지금과 같은 ‘방탄’에, 좌파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 이미지로 그 논의와 작업에서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부하기는 해도 한국정치가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은 틀리지 않는다. 여야가 서로 증오하고, 그 증오에 기대어 공존하는 관계 말이다. 그만큼 편 가르기와 증오(악마화)가 일상이 됐다. 문재인 정권에서 유독 심했다. 다수 국민이 ‘친일 토착왜구’로 낙인찍혀도 대통령이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까. 이 대표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 대표는 큰 틀에서, 한국정치의 적대적 의존관계의 해소를 위해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를 몸을 낮춰 고민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3-01-0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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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김정은 딸의 등장 …30년 햇볕정책 결말 '4대 세습'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9살 난 딸을 데리고 나타나다니,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8일과 26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화성-17형) 발사 현장과 자축 행사장에 딸 김주애를 데리고 나왔다. 김주애는 엄마(리설주)와 함께 발사 순간을 지켜보았고 아버지 손을 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진 속 부녀(父女)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바람에 공포의 미사일은 어디로 가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소녀의 이미지만 오래 남았다. 딸이 엄마를 많이 닮아 관심도 그쪽으로 쏠렸다. '판박이' '붕어빵'이라고들 했다. 그 틈새에서 비핵화 논의는 잠시 실종됐다. 김정은이 노리는 게 이거라면 성공한 셈이다. '후계자 수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김주애 위로는 세 살 많은 오빠가 있다. 북의 남아선호(男兒選好) 현상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 발사 현장의 군 관계자들이 김주애를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부르고, 줄지어 그에게 ‘폴더 인사’를 했다고 후계 운운하는 건 성급하다. 김정은도 어릴 때는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미사일 공포는 사라지고 소녀의 미소만 김 위원장은 1남 2녀로 알려진 자녀 중에 왜 김주애만 데리고 나타났을까. 오빠(12세)나 막내 여동생(5세)을 데리고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김주애가 김정은이 원하는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김주애는 백두혈통이다. 김일성 왕조의 직계 핏줄이다. 백두혈통은 김씨 왕조를 떠받치는 정통성(legitimacy)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백두혈통이라야 주민들에게 먹힌다. 김주애가 미사일 발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북한 당국이 즉시 “백두산 정신의 핵은 다름 아닌 수령 결사옹위 정신”이라며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백두산 행군을 독려하고 나선 것은 그래서다. 둘째, 김주애는 북의 미래 세대다. 미래의 주역이 될 그를 핵·미사일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핵·미사일도 그리고 북한 체제도 영원하리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김주애는 북한의 미래와 안전을 담보하는 상징인 것이다. (물론 김주애의 오빠와 여동생도 백두혈통이고 미래 세대다. 그러나 십중팔구 유학 중일 오빠는 공식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아직 공개하지 못했을 것이고, 여동생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리설주 우상화’ 시작되다 마지막으로 김주애는 엄마 리설주(33)와 닮았다. 이 대목이 핵심이다. 딸이 엄마를 안 닮고 누구를 닮겠는가마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에 머리 스타일(긴 머리 반묶음)과 옷차림까지도 닮았다. 꾸미다 보니 같아진 게 아니다. 세심하게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두 사람 사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리설주의 위상 제고, 곧 우상화를 위해서다, 리설주는 백두혈통이 아니다.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김정숙(1917~1949) 같은 ‘여성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김정숙은 1941년 소련군 극동88정찰여단에서 활약했고 지금도 북에선 국모 대접을 받는다.) 리설주는 평범한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한때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로 활동했다. 2009년 김정은과 만나 세 아이를 낳긴 했지만 북한판 영부인으로서 아우라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김정은은 이런 리설주의 위상을 높여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리설주가 어린 자식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려면 격(格)부터 달라져야 했다. 특히 자신의 여동생이자 리설주에게는 시누이가 되는 김여정(34·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게다. 김여정은 누가 뭐래도 정통 백두혈통이 아닌가. 올케와 시누이에게 맡겨진 北 리설주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딸 김주애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백두혈통인 김여정에는 못 미치지만 리설주도 백두혈통(김주애)을 낳은 엄마다. 따라서 리설주를 차제에 사실상의 백두혈통에 ‘편입’시킴으로써 시누이인 김여정과 힘의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려면 엄마 김주애가 리설주와 닮아야 했다. 누구든 김주애를 보면 리설주를 떠올릴 정도가 되어야 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발사 현장에 나온 모녀의 사진을 보면 당 선전선동부에서 세심하게 터치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했다. 이 또한 김정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은 자신도 집권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김정은의 개인적 경험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생모 고용희(1953~2004)와 여성 편력이 극심했던 아버지 김정일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을 보면서 자랐다. 고용희는 재일동포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북에 들어와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네 번째 부인이 됐다. 김정일과 사이에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세 자녀를 낳았지만 2004년 지병으로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도 김씨 왕조의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김정은은 스무 살이었다. 生母 고용희와 같은 운명은 NO! 고용희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상화 시도가 있었다. 김정일(2011년 사망)의 ‘10·8 유훈’에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데에는 모친(고용희)의 뛰어난 노력과 공적 덕분”이라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용희는 2000년대 초와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 한때 ‘평양의 어머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신분이 낮은 무용수 출신인 그를 누구도 영부인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생모에 이어 아내인 리설주까지도 그런 운명으로 떨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리설주도 고용희와 같은 연예인(가수) 출신이다. 리설주가 남편이 내민 그 줄을 잡고 ‘백두혈통’의 성(城)에 무난히 입성할 수 있을까. 부모를 따라 자식의 신분을 바꾸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자식을 따라 부모의 신분을 바꾸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진짜 백두혈통인 시누이 김여정과 관계에는 문제가 없을까. 올케와 시누이 관계라는 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고 보면 향후 북한을 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리설주와 김여정은 한 살 차이다.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보게 될 수도 권력은 부자(父子) 간에도 나눠 갖지 못한다. 하물며 올케와 시누이 사이에서야. 김정은의 힘이 조금만 빠져도 두 여자는 치열한 권력 쟁패로 치달을 수 있다. 리설주의 아이들에게 김여정은 고모다. 북한에서 ‘고모’란 어떤 존재일까.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반역죄로 몰아 고사총으로 잔인하게 처형한 바 있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한 편의 리얼 드라마, ‘궁중 잔혹사’를 시청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예고편은 오래전 김일성 시대에 아들 김정일과 그의 계모 김성애(1924~2014·여맹위원장)가 이미 보여준 바 있다. 김정일은 계모에 맞서기 위해 계모와 아버지 김일성의 사이를 끈질기게 이간질했고 마침내 1974년 자신을 중심으로 한 후계 체제를 굳힘으로써 김성애를 밀어냈다. 세습 왕조의 행로와 운명이 대개 그러하다. 忍耐하며 ‘레짐 체인지’의 순간 기다려야 어떤 경우나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이다. 9살 난 어린 딸을 통해 대대손손 핵과 미사일로 인민을 지켜주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핵을 포기하겠는가. 비핵화는커녕 남북 관계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진정한 관계 개선보다는 이런 식의 핵·미사일 이벤트나 쇼에 치중할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언제든 국지 도발로 긴장도 조성하고 내부 결속도 도모할 것이다. 크게 보면 이게 30년 햇볕정책의 결말이다. 햇볕정책의 양탄자 위에서 현대사에 전무후무한 4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리설주 우상화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햇볕정책에 대한 총체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뒤틀린 남북 관계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그렇다고 책임 논쟁을 벌이자는 것은 아니다. 책임 논쟁은 거대한 블랙홀이 돼 한국 사회를 집어삼킬 것이고 그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다만 햇볕정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얻자는 얘기다. 다시 ‘인내와 관리의 시간’인 듯하다. 섣부른 대화도, 대결도 자제하면서 상황을 관리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과욕은 피해야 한다. 역대 진보‧좌파 정권이 ‘임기 중 남북 정상회담 개최’라는 욕심을 버렸다면 대북 정책에서 시행착오를 그만큼 줄였을 것이다. 관리하면서 인내하다 보면 누가 아는가, ‘궁중 잔혹사’의 결과로 왕이 바뀌듯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의 순간이 다가와 있을지도.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12-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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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南 참사 애도기간에 北은 '막무가내' 미사일 도발 이태원 참사에 대해 북한은 끝내 어떤 애도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도 위로의 말을 전해왔지만 북은 침묵했다. 대신 미사일만 쏘았다. 애도기간인데도 개의치 않았다. 같은 민족의 비극적 참사에 미사일 세례로 대응한 꼴이다. 도중에라도 잠시 멈추고 애도를 표했어야 하지 않을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위협하더니, 곧바로 조전을 보냈다. “희생자 유족과 친구들, 다친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보내며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 북의 미사일 공세는 대한민국에 대한 ‘2차 가해’였다. 이태원 참사로 패닉상태에 빠진 우리에게 애도의 성명 한 장 없이 미사일을 퍼부었다. 저들이 입만 열면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던 그 동족인가 싶을 정도다. ‘참사와 미사일’ 사이에서 우리는 북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대응을 재점검하도록 요구받는다.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미사일 세례 북은 갈수록 막무가내다. 지난 2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는 등 10시간 동안 25발의 미사일과 대포 100발을 쏘았다. 3일에도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과 단거리탄도미사일 5발을 날렸다. 한-미가 연합공중훈련(비질런트 스톰)을 연장키로 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북의 박정천 당 군사위 부위원장은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겁박했다. 무엇이 북을 이처럼 천방지축 오만불손하게 만들었을까. 원래 ‘버릇없는 아이’(spoiled son)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갈수록 커지는 남북 간 격차 앞에서 느꼈을 초조함이 핵(核)과 결합하면서―더 정확히는 핵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과거와는 사뭇 다른 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북이 마구 쏘아댄 미사일은 초조함의 표시이자 자신감의 과시로 보인다. 한 세대 가까이 북을 선의(善意)로 대하면 북도 달라질 거라는 착각이 남북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고착시키고, 끝없는 대북 굴종을 낳았다. ‘햇볕을 쪼여야 북이 외투를 벗을 것’이라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생각은 말 그대로 우화(寓話)에 그쳤어야 했다. 그게 절대시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햇볕정책은 질이 나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의 하나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북의 핵 보유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됐다. 햇볕정책이 갖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취지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마저도 북핵과 미사일 앞에서 휴지가 됐다. 문재인 정권 때, ‘김여정 하명법’으로 조롱당했던 대북전단금지법이나, 북이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했던 입에 옮길 수도 없는 막말을 생각해보라. 국민의 피 같은 세금 235억원을 들여 개성에 세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이 일방적으로 폭파했을 때 우리는 응징은커녕 항의다운 항의 한번 못했다. 그 대가가 북의 핵무장이고 미사일 세례다. 이게 정상적인 남북관계인가. 햇볕정책 30년, ‘설거지’는 누가? 북한은 2003년 대구 지하철,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애도를 표했다. 1984년 우리가 수해를 입었을 때는 쌀, 시멘트, 옷감(포플린)을 보내오기도 했다. 북은 당시 전두환 정부가 자신들의 수해지원 제의를 전격 수용하자 내심 당황했다고 한다. 그때도 형편이 어려웠던 북은 구호물자 마련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그 성의(誠意) 덕분에 그해 11월 남북 경제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관계가 풀렸다. 이제는 이런 공존 공생의 남북관계를 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핵폭탄과 미사일을 머리에 인 북과 무슨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햇볕정책 30년, 누구는 즐겼고, 누구는 감격했다. 하지만 부(負)의 유산은 오롯이 남았다. 설거지는 늘 보수정권의 몫이었다. 햇볕잔치는 끝났고, 윤석열 정부도 그 어깨가 무거워졌다. 북의 NLL 이남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실질적 영토 침해”로 규정하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한 대응이다. 핵 공론화도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핵 공론화는 확장억지의 강화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제는 전술핵 재배치는 물론 독자 핵무장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북으로서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북이 도발하면 할수록 한·미동맹은 굳건해진다. 핵억지(핵우산)도 강화된다. 이 ‘안보 딜레마’가 몰고 올 군비 상승을 북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북, 미사일 비용 감당하다 內破될라 북이 지난 2일 하루에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25발을 돈으로 환산하면 7500만 달러(약 1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미사일 1발에 200만~300만 달러 꼴이다(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3일 자유아시아방송). 이 정도 비용이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걱정하기에 앞서 국가부도로 인한 내파(內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암호화폐 해킹으로 그 비용을 댄다지만 서방 국가들이 보고만 있겠는가. 핵 공론화 중 확장억지, 곧 기존의 핵우산을 더 넓고 두텁게 펴야 한다는 데 대해선 한·미부터가 이론이 없다.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한 자체 핵보유에 대해선 한·미는 물론 우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반대하는 쪽은 북의 핵보유를 정당화시킴으로써 한반도의 비핵화를 어렵게 만들고,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시킬 거라고 우려한다. 미국의 반대를 꺾기도 어렵거니와 중국과 러시아도 이를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전술핵 재배치도 어려운데 자체 핵무장이라니, 현실성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독자 핵무장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핵 개발이 임계점을 넘었고, 이제 완전한 비핵화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고 지적하고 “새로운 전략목표는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핵 억지’의 제공으로 (이를 위해) 모든 핵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고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북이 핵무기로 미 본토를 위협할 때 과연 미 대통령이 북한과의 핵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핵 보복을 결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독자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4일 국방안보포럼). 어느 쪽이 우리의 안보와 미래에 더 적실성을 갖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미국 등 국제체제로부터의 반대 압력 때문에 핵무장을 못하는 거지, 할 수만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후(戰後) 70년이 넘도록 세계가 인류사에 드물게 긴 평화의 시대를 누려온 것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아닌 핵무기에 기초한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확장억지 속에서 NCND의 핵 옵션을 그럼에도 북의 미사일 사태로 한층 강화된 확장억지가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굳이 핵무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미는 3일 끝난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확장억지의 일환으로 미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에 준하는 효과가 있도록 운용하기로 합의했다. 확장억지 제공 과정에서 한국의 관여도 보장키로 하는 등 미국은 독자 핵무장만 빼고는 뭐든지 다 들어줄 태세였다. SCM 공동성명에 “김정은 정권이 핵공격을 하면 종말을 맞을 것”이란 경고를 처음 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공동성명에는 (핵 억지에 관한) 선언적 말만 있을 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면서 “미국의 어떤 강한 말도 ‘핵 있는 북한과 핵 없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달라진 안보환경 아래서 독자 핵무장 외에 믿을 만한 무슨 방책이 있느냐는 얘기다. 결론은 분명하다. 양측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든 접점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강화된 확장억지를 더 강화하고, 그 아래서 독자 핵무장은 NCND의 전략적 기술적 옵션으로 놔두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어떻든 지난한 일이다. 햇볕에 취해, 이대로 가면 북이 핵보유국이 되고, 조국의 안보와 미래, 그리고 운명까지 그 하위변수가 되고 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의 가책 소리가 크다. 실로 기이한 시절이었다. 구차한 대북 굴종주의자들은 ‘평화세력’이고, 원칙을 지키고, 남북 간 형편에 맞는 융통성 있는 상호주의로 가자는 사람들은 ‘전쟁세력’으로 몰렸다. 이에 복무했던 그 많은 구루(guru)들은 오늘 북의 미사일 세례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11-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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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낡은 '친일타령'으로 핵 게임 이길 수 없다 박근혜 정권 때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한·일관계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2013년 7월 도쿄 국제도서전에 참석했을 때였다. “과거의 한·일관계는 위(상층부)는 좋았으나, 아래(민초 수준)는 나빴다. 요즘은 거꾸로다. 위는 안 좋고, 아래는 좋다.” 한·일관계를 이처럼 쉽게 압축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흘렀다. 그의 인식과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국 간 바닥 정서는 우호적이고 활기가 넘친다(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기반 위에서 피어난 문화교류와 한류도 한몫 했을 터다). 반면 정부, 정치, 정상(頂上) 수준에선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문재인 정권에서 특히 그랬다. 그 사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 여파로 아직 제대로 된 정상회담 한번 못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미·일 3국의 동해 합동훈련에 대해 “일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인 것은 자충수, 극단적 친일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위기를 핑계로 일본을 끌어들이다간 한반도에 욱일기가 다시 걸릴 수 있다”고도 했다. 전에 없이 사나워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앞에서 다시 ‘친일’을 꺼내든 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규탄도 빼놓지 않았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미사일을 쏘고 7차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는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의 일체의 행위를 규탄한다”고 했다. 앞뒤가 안 맞는다. 북의 위협이 그렇게 심각하다면 한-미 공조에 더해 한-미-일 3국 공조로 가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게 상식이다. 같은 당의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한·미·일 3국간 안보협력이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다”고 했다. 태극기가 일본열도를 뒤덮으면 안 되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겹친다. 그런대도 일본은 빼라는 얘기는 현실성이 없다. ‘오늘 동해훈련에 일본이 끼게 되면 미래의 한반도에 욱일기가 나부끼게 될 거라’는 논리인데 정체된 낡은 반일(反日) 인식의 소산이다. 이 대표는 거꾸로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 모르겠다. 첫째,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우리가 싫다고 어디로든 보내버릴 수 있는 이웃이 아니다. 둘째, 중국은 계속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셋째, 미국은 언젠가는 우리와 헤어질 수 있다. 동북아의 국제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속단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욱일기가 나부낄 거라고? 거꾸로 태극기가 일본열도를 뒤덮으면 안 되나. 나는 이 대표에게 유럽의 7년 전쟁(1756~1763년)을 심도 있게 연구해보기를 권한다. 어제의 적(敵)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적이 되는 국제전쟁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욱일기’ 발언으로 배일(排日)은 했을지 몰라도 미래 지향의 용일(用日)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욱일기’를 걱정할 게 아니라 북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친일 선동 노름에만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고장난 축음기처럼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오라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해 이제 북핵문제는 남북 간 ‘핵 균형’을 유지하는 문제로 성격이 바뀌었다. 핵 균형은 왜 필요한가. 억지(抑止·deterrence)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북은 핵무기를 가졌고, 우리는 못 가졌다’는 말은 쉽게 풀면 북은 억지력이 있고, 우리는 없거나 부족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갭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전술핵 재배치, 韓美 입장 달라 원론적으로 4가지 방법이 있다. ⓵자체 핵무장 ⓶전술핵 배치 ⓷핵 공유 ⓸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핵우산)가 그것이다. 이 중 자체 핵무장은 지금과 같은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아래선 어렵다. 미국을 비롯한 기존 핵보유국들이 핵무기 확산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술핵 배치는 1991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 때 미국이 가져간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것인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선 한·미 양국 전문가들의 생각도 다르다. 박원곤 교수(이화여대)는 12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당초 반대에서 지금은 입장이 조금 바뀌었다”면서 “전술핵이 한반도에 와 있고,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의 전투기를 활용한 투하가 북의 전술핵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방송에서 유성옥(전 국정원 안보전략원장), 김태우(건양대 교수)도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면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본부장(전 이재명후보 선대위 실용외교위원장)은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미국 측 전문가들은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13일 6명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의견을 물었더니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의 수량이 많지 않은데다,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될 위험 때문에 한반도에 배치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전술핵 배치 없이도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로 한국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확장억지 말고는 다른 대안 없나 핵 공유에 대해서도 미측은 부정적이다. 클링너 연구원은 “자체 핵무장, 전술핵배치, 핵 공유 중, 핵 공유가 차악(least bad)”이라면서도 미국이 한국에 핵통제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핵무기가 어떤 목표물에 대해 어떻게, 몇 개 사용될지는 한·미 확장억제전략회의(EDSCG)에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확장억지(핵우산)뿐이다. 미국은 1978년 제11차 한·미 SCM(연례 안보협의회)에서 한국에 대한 핵우산 보장을 천명한 이래 확장억지를 일관되게 유지, 강화해 왔다. 2013년 10월 북의 제3차 핵실험 이후 열린 제45차 SCM에선 이른바 ‘맞춤형 억제전략’(Tailored Deterrence Strategy)에 합의하기도 했다. 미국의 양자 동맹국들 중 이런 억지전략에 합의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핵무기,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9월에는 EDSCG 논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신범철 국방차관 일행에게 전략자산인 B-52 전략폭격기에 탑재된 핵탄두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확장억제를 믿으라는 일종의 현시였다. 이쯤 해서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걸로 충분한가. 가짓수가 많은 현란한 비핵억제조치들보다 전술핵 같은 똘똘한 대응수단 하나가 더 절실한 것 아닌가. 억지 논의는 결국 전술핵 재배치 여부로 다시 돌아오고 만다. 윤 대통령, “여러 의견 경청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측 당국자들의 말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부터가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지난 12일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했다. 조태용 주미대사도 워싱턴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확장억지 실행력 강화가 정부의 입장”이라면서도 “북핵이 현실적인 위협이 된 상황발전에 따라 창의적인 해법도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창의적 해법’이란 표현을 썼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작년 9월에 내놓은 ‘한국인의 외교안보 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3%가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했다. 독자 핵무장에 대한 지지율은 69.3%였다. 이는 2010년의 55.6%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수치였다.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응답은 93.3%. 유사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을 이길 수 없다’는 응답도 67%에 달했다. 달라진 안보의 성격과 수요, 달라진 국민의 인식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윤석열 정부의 최대 과제가 됐다. 북은 앞으로도 고도화된 핵무기를 기반으로 더 공세적으로 나올 게 분명하다. 이근욱 교수(서강대)는 2014년 지역 핵 국가들의 문제를 연구해온 비핀 나랑(Vipin Narang· MIT대) 교수의 이론을 기초로 북의 핵 행보를 예측했다. 결론은 이러했다. “북은 파키스탄과 유사하게, 핵무기 보유 덕분에 만들어진 전략적 공간과 안정성을 악용하여 전술적 도발을 반복하고, 제한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함으로써 반복적으로 위기가 발생하는 ‘안정-불안정의 역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북의 국지도발이 반복될 거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이근욱, 「비핀 나랑의 현대 핵전략」, 『전략연구』 2014년) 억지 경쟁의 핵심은 신뢰다. 상대방이 우리 측의 의도와 결심을 의심하지 않아야 억지력이 생기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핵보유국 북한을 상대로 핵 균형을 이루려면 확장억지든 전술핵 배치든 이게 관건이다. 이재명 대표의 ‘친일국방’ 주장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핵 게임이 시작됐다.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낡은 ‘친일타령’으로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2022-10-16 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