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경희대 교수
jwc@khu.ac.kr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이며 국내 최초의 미중관계사 책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와 베스트셀러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전략』의 저자가 실타래와 같은 동북아 국제관계를
팩트로 풀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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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中 '정찰풍선'에 상승기류 탄 美의 대중 압박 전략 미국이 자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정찰풍선'을 격추하자 중국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이 최근 짜기 시작한 중국 압박 프레임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미국은 지난 2년 동안 중국 압박 전략의 명분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시나리오 착수 작업에 나선 정계, 학계, 관계 모두 행보를 같이해왔다. 가닥을 가까스로 잡아가던 미국에 호재가 발생했다. 이는 중국의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입 사건이다. 지난 2일 미 당국은 중국의 정찰풍선이 자국 영공을 침입해 비행하는 것을 포착하게 된다. 중국은 이를 민수용 기상관측 비행선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측은 이런 중국의 주장을 부정하며 중국이 정찰 목적으로 띄운 것으로 판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5일로 예정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을 전격 취소했다. 미국은 4일에 급기야 이를 격추시켰다. 이에 중국은 과잉 대응이라며 강한 외교적 반발을 표출했다. 이 사건으로 미·중 양국 간 전략경쟁적인 관계를 전환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조성하기는 당분간 더 어려워져 보인다. 이번 사건은 미국에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명분만 더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미국의 대중국 강경 정책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 영공이 얼마큼 무방비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미국에 2001년 9·11 테러 사태의 악몽을 다시 기억하게 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중국의 주장 역시 설득력 없는 이유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행풍선이 민수용이라 해도 민간 측에서 풍선의 비행 항로를 관측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탈하면서 타국의 영공에 침입할 경우 정부 당국에 보고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에 정부 당국은 타국의 관련 당국에 이 같은 상황을 역시 전달했어야 한다. 이런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은 여러 나라와 이른바 ‘핫라인’을 최고지도자에서부터 군당국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런 ‘핫라인’을 가동하지 않은 게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해명이 설득력 없어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 명분은 더욱 강화되었다. 안 그래도 우린 최근 대중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미국 정·관·학계의 발 빠른 행보를 목도해왔다. 그 첫발은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4연임 가능성을 예단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를 그 명분의 프레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27년에는 그의 4연임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가 4임에 선출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그중 최선의 명분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앞으로 4년 동안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다. 시 주석에겐 괄목할 만한 경제 성과를 등에 업고 다시 선출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이겠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대중국 공급망 재편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 중국 경제에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현재 미국 내에는 미·중 경쟁의 심화로 중국 경제가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관측이 만연해 있다. 이런 예측에 근거해 미국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이 4임을 달성하기 위한 명분으로 대만 통일을 내다보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합참의장,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도 이 같은 전망에 가세했다. 더욱이 2027년이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인 해라는 사실이 이들의 명분 설계에 기초가 되었다. 이 같은 군사적인 명분이 시 주석으로 하여금 대만의 무력통일을 꿈꾸게 하는 요소로 미국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따라서 중국 경제가 호전되지 못하면 시진핑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즉, 대만 통일이라는 과업을 달성해 4임의 정당성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풀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은 2027년을 그야말로 대만해협 위기의 D-데이로 사실상 정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만의 국방과 방어 능력을 증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2021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미국 하원에서는 대만의 군사력 강화와 미국의 대만 방위에 관한 법안 8개를 상정했다. 이들 중 '대만정책법(Taiwan Policy Act)'만 입법되었다. 나머지 법안은 이후 11월 중간선거로 입법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에서 제기된 대만 군사와 미국의 방위 능력 제고에 관한 내용은 미국 의회가 12월에 채택된 국방수권법(NDAA)에 대부분 반영되었다.(본지 2022년 12월 28일자 “美 ‘4不1無' 약속한 것 아니었어?···日과 中공세 본격화” 참조). 이런 미국의 움직임 속에서 한·미 동맹과 대만 문제도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제기되고 있다. 대만 유사시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부터 한·미 동맹의 가동성까지 민감한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지력 강화에 있다. 미국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를 증강하는 의지와 결의를 수 없이 비쳤다. 그리고 실제로 한·미 국방당국은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31일 한·미 국방장관은 회담 공동성명에도 확장억지력을 증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날로 증강하는 북한의 핵위협에 우리 국민은 불안하다. 최근 실시된 대국민 여론조사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 1월 29일 설문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76.6%가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시카고 국제문제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68%의 국민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다시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석가들은 우리 국민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미국의 확장억지력에 대한 불신이 날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들 눈에 미국의 억지력 수단과 방법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의 위협에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달 19일 CSIS 산하 한반도위원회가 공개한 ‘대북정책과 확장억제(North Korea Policy and Extended Deterrence)’ 보고서가 우리 국민의 인식과 결을 같이했다. 보고서는 “미래 어느 시점에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 기초 작업과 관련한 모의 계획 훈련을 동맹국들이 검토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런 보고서를 두고 미국 내에 한국에 대한 핵억지력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진단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성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과연 미국의 연구기관이 전술핵 배치 문제를 제기한 저의가 무엇일까 말이다. 특히 미국의 중국 전략이 2027년 프레임에 짜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 대북 압박용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전략적 함의를 내포하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첫째, 북한의 핵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전술핵이 재배치되어야 한다면 얼마만큼의 핵무기가 필요한가. 냉전시대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상당히 많은 양이 배치되었다. 1958년부터 배치되었던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1963년에 600기를 넘었다. 이듬해에는 640기가 배치되었다. 이 시기 역시 북한과 중국을 겨냥할 목적으로 배치되었는데 이들은 당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이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한 후 1974년에 약 740개의 전술핵무기가 남한 미군기지에 배치되었다. 중국은 2030년에 1000개, 2035년에 약 15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도 수백 개에 이를 것이다. 이런 북·중의 핵무기를 억제하기 위해 도대체 몇 개의 핵무기가 적당한지 물어야 한다. 핵으로 핵억지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격능력(second-strike capability)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한다. 둘째,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전술핵무기가 한국에 재배치되면 이에 대한 비용 지불 문제가 대두될 것이 자명하다. 미국도 경제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유지·관리하는 데 그 비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드 배치 이후 2년 차부터 우리에게 유지관리 비용을 공동 분담 또는 우리가 부담하는 것을 고려한 것도 이의 방증이다. 국방수권법에서도 대만에 애당초 제공하고 지원하기로 한 무기들이 입법 과정에서 대만의 구매와 대만 구매 지원 등으로 전환되었다. 핵무기는 개발 비용이 제일 적게 들고 관리유지 비용이 그다음으로 비싸다. 핵 폐기는 이들을 더한 비용보다 더 들어간다. 셋째, 미국이 중국 전략을 2027년 프레임에 맞춰 짜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전술핵 배치의 저의와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과연 북한에 대해서만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적용되는 것인지를 말이다. 대만 유사시에 미국은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역할을 고민한다. 즉 한국의 주한미군 전력자산의 운영을 검토한다는 뜻이다. 그럼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된 전술핵무기가 대만 유사시에 가동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일본의 주일미군기지에 미군의 전술핵무기 배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말이다. 일본은 1971년 오키나와 관할권이 주일미군에서 일본 정부로 이양된 이후 모든 핵무기를 철수했다. 이어서 같은 해 일본 정부는 비핵화 3원칙을 공표했다. 일본 참의원에서 이 결의안은 채택되었다. 일본의 비핵화 3원칙은 일본이 핵무기를 생산하지도 않고 보유하지도 않고 이의 자국 내 배치도 불허한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만 유사시 중국에 핵억지력을 즉각적이고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괌에도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을 조속히 강구하는 모양새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술핵 배치든, 자체 핵무기 보유든 우리의 현실적 문제를 타진해야 한다. 즉, 북한·중국과의 핵 경쟁에서 우리에겐 상당한 정치·군사·외교적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으면 핵무장하면서 이들과 공존하는 방안을 외교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군사적으로 대칭하면서도 공존하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핵억지 능력을 갖추면 때로는 공존하는 데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대등한 군사력 수준에서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긴장이나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핵보유국 간 양보 없는 치킨게임의 시작은 자명하다. 즉, 외교적인 타협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이 구비된 이후에야 핵무장이 가능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무기 보유라는 타이틀만을 가지고 우리가 모든 위험 부담을 떠안을 용의가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싶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3-02-06 20: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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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美 "4不1無' 약속한 것 아니었어? …日과 中공세 본격화 2023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월 대만의 총통 대선이 예정되어 있고, 미국도 2024년이면 대선 정국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내의 정치 논쟁이 한층 더 격화될 것이다. 대만 문제에 대해 미국이 초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미 의회와 행정부는 서로 더 강경하고 강력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는 이를 두고 두 당과 입법부와 행정부 간에 ‘누가 더 매파인지를 입증(outhawkish)’하는 공세적인 정치 싸움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또한 중국을 겨냥해 대만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미국이 더욱 배가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런 근거로 지난 두 해 동안 대만 관련 법안이 미 의회에서 약 10개가 소개되었다. 이들 중 '대만정책법(Taiwan Policy Act'만 입법되었다. 나머지 법안의 내용은 지난 12월 6일에 미 의회가 통과시킨 '국방수권법(NDAA)'에 고스란히 담았다. 4408쪽 분량의 국방수권법에서 대만 문제에만 3108쪽이 할애되었다. 미국의 대만 방위 및 방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책략을 이번 국방수권법에서 세부적으로,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담아냈다. 물론 지난 11월 14일 발리 G20 정상회의에서 가진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 내용에 비춰보면 미·중 양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하는 면모를 보였다. 중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른바 ‘4불(不)1무의(無意)’를 제안한 데 근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게 하지 않을 것 네 가지와 의도가 없는 한 가지를 축약한 것이었다. 우선 미국이 중국의 체제를 존중하기 때문에 중국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 셋째, 반(反)중국을 위한 동맹관계를 강화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충돌의 가능성으로 바이든은 중국과의 디커플링, 중국 경제발전의 훼방과 중국 포위의 결과를 예로 들었다(본지 11월 30일, “시진핑이 달라졌다? …3년 만에 빗장 열고 유화 제스처” 참조).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미 백악관과 국무부에서 제공한 회담 결과 내용 자료에는 찾아 볼 수 없다. 미국 전문가들의 이야기처럼 “누군가 말은 했지만, 듣고 있지 않았을(They hear each other, but didn’t listen)” 개연성이 많은 대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이든의 ‘4불, 1무의’는 중국 외교부의 발표 자료이기 때문에 허튼소리는 아니었을 가능성도 높다. 아마도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축약·정리해 중국인이 좋아하는 방식, 즉 숫자로 이를 정리·요약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 전문가들의 말처럼 미국이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입장 표명한 것이라 우리가 현혹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지지한 바 없었고, 중국을 포위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긴 하다. 그리고 중국과 충돌 방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도 미국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국의 국방수권법이 존재한다. 이번에 통과된 국방수권법에는 미국의 대만정책이 대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기정사실화(a fait accompli)’된 상황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법안의 중대한 목적 중 하나라고 명시했다. 여기서 ‘기정사실화’의 의미는 미국이 반응하기 이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대만을 선제공격하여 정복하는 상황이다. 이런 대비태세를 미국 혼자만이 갖추겠다는 것이 아니다. 국방수권법안은 군사적 협력 의미에서 협력 대상의 파트너를 또한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일동맹, 한·미동맹, 호주·뉴질랜드와의 동맹(ANZUS), 미국의 중대한 안보협력파트너인 싱가포르(a Major Security Cooperation Partner of the United States), 오세아니아지역의 미크로네시아, 마셜제도, 팔라우 등을 포함한 남태평양지역의 열도(The 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the Republic of the Marshall Islands, the Republic of Palau, and other Pacific Island countries),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을 포함한 유럽연합국가와 나토(NATO) 회원국 등이 포함됐다. 특히 나토 회원국과는 대응계획을 마련하는 데 공조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사실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국방수권법의 대외관계 분야에서는 대만과 관련하여 '대만 회복성 제고 법안(Taiwan Enhanced Resilience Act)'을 소제목으로 하는 대목을 주목해야한다. 대만의 방어와 방위 능력 향상을 골자로 하는 미 의회의 지원을 정당화하는 법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 강화로 인해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고 불정당한 불이익을 받았을 때를 대비하겠다는 미 의회와 국방 당국의 의지도 강조되었다. 여기에는 대만을 겨냥하여 영향력 발휘와 정보활동에 대해 미국이 대응하는 전략(Sec. 5513),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 보복에 맞대응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Sec. 5514)과 중국 센서십(언론 검열)과 행동 그룹(Sec. 5515)의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즉, 대만이 중국에 비군사적인 수단으로 보복이나 불이익을 받을 경우에 미국이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대목이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대응방안도 모색할 것을 미 의회가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만이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와 권한 또한 강화시켜나갈 의지를 이번 국방수권법에서 명확히 했다. 이런 의미에서 국방수권법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이 유의미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에도 대만이 유의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전략 마련도 요구했다. 특히 팬데믹 유행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상황에서 인구 2200만명의 대만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참여하는 것은 인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보편적 인류가치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중국의 반대로 대만은 2017년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에 초청받지 못했다. 대만 상공과 근처 영공을 비행한 민간항공기의 편수만 해도 2018년 기준 175만 편이었다. 이에 탑승한 탑승객만 해도 6890만명 이상이다.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보편적 인류 가치의 관점에서도 대만의 국제민간항공기구 참여는 반드시 관철되어야하는 부분이다. 특히 중국이 방공식별구역(ADIZ)을 법적 효력과 구속력이 없는 규범으로 치부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군사적 행위를 일삼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연 7000만명의 목숨을 담보하는 중국의 군사적 도발과 도박을 국제사회가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국방수권법으로 미 국무부의 대만해외군사재정(Department of State for Taiwan Foreign Military Finance) 지원금을 대폭 확대했다. 미국은 1961년의 해외원조법에 따라 대만에도 지원할 수 있는 상한선을 연 20억 달러로 책정했다. 그럼에도 미 의회는 대만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앞으로 3년 동안 예외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동 해외원조법을 일부 수정했다. 이번 개정을 통해 국방수권법은 2023, 2024, 2025년 어느 한 해를 미 국무부가 선택하면 연 50억 달러로 지원금을 확대·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SEC. 5503). 이 외에 미 국무장관에게 상기한 지원금의 부족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권한을 제공했다. 미 국무장관은 동 재정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은, 가령 대만 방어를 위한 훈련(training program)의 운영을 위해 연간 200만 달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국방수권법은 또한 미 대통령이 연 100억 달러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의 무기 재고를 임의대로 대만에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SEC. 5505)를 제공했다. 또한 긴급상황에서 미국의 재고물품과 자원 중 미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대만에 즉시 공급할 수 있는 수준도 연간 2500만 달러로 획정했다(SEC. 5505). 대만을 둘러싼 미·중 경쟁관계에서 우리에 대한 참여와 지지 요청도 자명하다. 왜냐면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대응 전략과 함께 미군 및 동맹국 군사자산 조달 계획을 보고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국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대비해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의 군 가용성과 기동성 등에 대한 조사도 병행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가진 우리나라와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평가 작업도 수반될 것이다. 이런 의미로 일본은 지난 12월 16일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 방위력 정비계획을 채택했다. 여기에 핵심은 군사안보 방면에서 미국과 모든 것을 합체(integrated)하는 구조로 군사전략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기체계에서부터 작전체계까지 다 포함된다. 일본이 미국과 군사안보에서 같은 마음과 몸으로 합체해 움직이는 데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협뿐이 아니다. 대만에 있는 일본 주재원이 더 강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2022년 9월 30일 기준, 대만에 주재하는 일본인의 수는 1만5956명으로 미국인(1만1462)과 한국인(4843명) 등보다 많다. 미국인도 적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미·일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미·일 양국은 이른바 ‘비전투 병력을 통한 탈출(non-combatant evacuation)’ 작전 수립을 착수한 지 오래다. 오늘(28일)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다고 한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행보를 어느 정도 고려해 작성되었는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우리의 참여 목표와 취지를 무슨 명분으로 정당화했는지 국민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명분이 설득력이 없다고 국민이 느끼면 이는 중국을 두려워하는 우리 국민의 불안 심리를 또다시 자극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과 올 한해에만 6차례 이상의 3국 회담을 가졌다. 따라서 이들의 것과 보다 조율되고 맥락을 같이하는 우리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나오길 기대한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2-12-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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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시진핑이 달라졌다? …3년만에 빗장 열고 유화 제스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3년 동안 걸어 잠근 빗장을 풀고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2019년 1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창궐하고 2020년 1월 미얀마를 방문한 이후 이후 첫 외출을 지난 9월 15일에 했다. 그의 첫 행선지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였다. 그곳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두 달 뒤 11월 16일 G20 정상회의에 대면 참석을 위해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했다. 또 18-19일에 태국을 공식 방문하고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근 3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외교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미국과의 갈등이 지난 8월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최고조에 이른 이후 미·중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이밖에 그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G20의 수장들 대부분 그와의 약식회담(a pull-aside meeting)을 갖기 위한 외교 쟁탈전을 벌여야만 했다. 15일 G20 정상회의 종료 후 그는 8개국 정상과의 약식회담 일정을 소화해야했다. 쉴틈 없는 일정에 그가 각 회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약 30분에 지나지 않았다. 한·중회담이 예외가 아닌 이유였다. 그리고 이튿날(16일) 저녁 시진핑은 유엔 사무총장과 이탈리아 총리를 만난 후 태국으로 출국했다. 다음날에도 그는 못 다한 회담을 이어나갔다. 여기에는 일본과의 정상회담도 포함됐다. 이 중 세계의 관심사는 단연 미국과의 정상회담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2021년 취임 이후 두 정상이 처음으로 대면 회담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간 두 정상은 화상회의만 1회, 영상통화 1회, 그리고 전화통화만 3회 가졌다. 총 5번 대화를 했지만 만남만 못하다는 것은 우리가 공감할 수 있겠다. 두 정상이 만나서 이야기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는지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G20 정상회의가 개최되기 전날인 14일에 회담을 가졌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가진 시진핑의 약식회담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지난 3년간 회담국가와의 관계를 악화시킨 요인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불과 작년 7월만 하더라도 시진핑은 대만문제를 건드리면 ‘(미국의) 머리를 깨부순다’ ‘(미국이) 불에 타죽는다’ 등 강한 수사로 미국을 겁박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대만문제를 중국의 내정문제라며 이에 대한 미국의 존중을 ‘점잖게’ 요구했다.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어떠한 발언도 가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약식회담에서도 시진핑은 사드를 암시하는 발언을 삼갔다. 예전의 정상회담뿐 아니라 장관급 회담에서 모든 중국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양국의 중대 관심 사항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것으로 회담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 내용에서 이와 같은 언급이 전혀 없었다. 중·일회담에서도 역시 지난 6월 현역 자위대를 정보관으로 대만대표부에 파견하는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당시에 중국 관영매체 사설은 일본의 행각을 도발이라며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릴 것’이라는 문구를 머리기사로 올렸다. 이처럼 중국이 지난 3년 동안 은둔생활하며 내뱉었던 과격한 발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런 연유에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중국의 국익에 중요한 나라들과 대척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면모는 그가 회담국과의 관계 회복과 대화, 그리고 협력을 강조한 데서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둘째 공통점은 관계 개선의 의사를 분명히 전한 데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궤도에 오를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과도 분리할 수 없는 협력파트너로서 세계의 번영에서 중요한 책임이 있기에 중국과도 이런 국익 부분에서 광범위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소통의 강화를 통해 ‘정치적 신뢰’를 쌓자고 전했다. 일본과의 관계도 그 중요성이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의를 다해 서로 대하며 신뢰를 가지고 교류할 것을 요구했다. 중·일 양국이 서로 협력 파트너로 서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공통된 정치의식에서 정책 입안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일 양국이 상호존중하며 신뢰를 증진시키고 의구심을 희석시키며 이견이 있는 현안을 공동 관리할 것을 전했다. 이런 시진핑의 서두 발언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것이 보였다. 우리에게 정치적 신뢰를 구축하자고 요구한 대목이다. 우리와의 역대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의식한 이유 때문에 우리와 ‘정치적’ 신뢰를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우리와의 정치적 신뢰를 발언한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입장의 문제를 ‘공동 관리(管控)’하자는 것은 미국에나 할 법한 발언이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그만큼 중시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다. 물론 일본을 미국과 동격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일 양국이 당면한 도전과제가 미·중 양국의 것과 유사한 수준의 이해관계의 속성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셋째 공통점은 소통과 협력을 강조한 점이다. 미국과 한국에 대해 시진핑은 경제현안의 ‘정치화(politicization)와 안보화(securitization)’를 피할 것을 유독 강조했다. 경제현안이 시진핑의 말대로 정치화, 안보화되는 순간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전례 때문이다. 세계는 이와 같은 결과를 수없이 경험했다. 인류가 당면한 비군사적이고 비정치적인 분야에서의 위협 요소의 해결, 즉 이른바 ‘비전통안보’ 현안의 해답은 다국 간의 협력에 있다. 가령, 석유와 같은 전략물자의 안정된 공급 확보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석유야말로 비전통 안보분야에서 국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 중 하나다. 세계가 1970년대 초 ‘오일 쇼크’를 경험하면서 산유국은 석유를 무기화했고, 산유 수입국은 더 많은 물량 확보를 위해 평소에 강조한 이타적인 협력 태도에서 이기적으로 변했다. 석유가 민감한 국익문제이기 때문에 이의 확보문제는 정치화되고 안보화되었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석유에 대한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들 간의 한때 성행했던 ‘공동구매’의 꿈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이렇듯, 국익 현안이 비록 전통적인 안보요소가 아닐지언정 정치화, 안보화되는 순간 협력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 같은 역사적 교훈을 시진핑은 앞으로 미·중, 한·중 관계의 발전에 초석이 되어야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것이다. 시진핑의 약식회담에서 눈여겨볼 만한 다른 점도 풍성했다. 미국과의 회담에서 그는 미·중관계가 ‘제로섬’이 아닌 점을 누차 강조했다. 서로를 거울삼아 협심하여 같이 발전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이기고 네가 지는’, 즉 ‘너 죽고 나 사는’ 식의 관계는 서로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잠식시킬 뿐 아니라 인류 발전에도 불행만 가져다줌을 상기시켰다. 그는 더 나아가 대만문제와 관련해서도 내정이라며 미·중 양국 간에 넘지 말아야 할 선임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대만의 독립문제와 대만해협의 안정문제가 물과 기름과 같이 분명히 차별되고 융합될 수 없는 속성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점과 관련하여 시진핑은 바이든 발언에 고무된 것 같아 보였다. 바이든이 시진핑에 전한 미국의 입장, 이른바 ‘4불(不)1무의(無意)’ 제안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게 하지 않을 것 네 가지와 의도가 없는 한 가지를 뜻한 것이었다. 우선 미국이 중국의 체제를 존중하기 때문에 중국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 셋째, 반(反)중국을 위한 동맹관계를 강화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충돌의 가능성으로 바이든은 중국과의 디커플링, 중국 경제발전의 훼방과 중국 포위의 결과를 예로 들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특이점은 우리에 대한 인식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와의 정치적 신뢰를 강조한 사실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만큼 미·중 경쟁시대에 한·중관계의 발전 토대가 정치적 신뢰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중국이 앞으로 어느 정도 견지하느냐가 한·중관계의 결정적 요소라는 점을 자각한 결과다. 이런 발언으로 우리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전화되었다고 예단하기에는 이르겠다. 그러나 한·중 수교 30년을 맞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최소한 한·중관계에서 제일 취약점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할 의사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를 중국과 정치적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적극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약식회담 분위기에 도취되면 안 될 것이다. 외교는 외교에서 끝내야 한다. 외교의 장을 떠나는 순간 바깥 세상은 생존과 국익을 위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미·중 양국 정상이 3시간 넘는 회담을 가지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 종료 불과 열흘 만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5일 미국 내에서 중국 화웨이(華爲)와 중싱(中興, ZTE) 정보통신기업 제품의 수입과 판매 전면 금지를 선포했다.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현타’(현실자각타임)이 오는 순간이다. 우리 또한 이런 외교 현실을 보면서 자아도취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중국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영화를 각각 한 편씩 상영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한한령’의 해제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오판하면 안 된다. ‘한한령’에도 구체적인 기준과 항목이 있다. 이의 해제에서도 순서가 있다. 가령, 우리 방송의 수신 해제에서부터 우리 드라마의 방영은 물론 우리 연예인 출현의 광고 방송까지 허용돼야 한다. 한·중관계가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사사건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때론 우리도 긴 호흡을 가지고 중국식 표현으로 ‘만만디(慢慢得, 천천히)’하게 한·중 양국관계를 견인하고 중국의 언행에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포커 페이스(poker face)’의 유지가 한·중관계에서는 필요하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2-11-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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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 프리즘] 시진핑 1인 통치시대 .. 미·중 '치킨게임'에서 우리의 외교 전략은 지난달 중국 공산당은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와 제1차 중전회(‘1중전회’)를 개최했다. 당대회는 지난 5년 동안 당의 성과와 미래 계획을 공표하는 자리다. 이를 통해 중국은 당대회 보고와 더불어 당장(黨障·당헌) 개정안과 결의안을 발표했다. 이번에 개정된 당장에는 사상 처음으로 ‘대만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 표명의 문구를 삽입했다. 시진핑 사상을 마오쩌둥과 레닌·마르크스의 것과 같은 반열에 올렸다. 23일 1중전회에서는 시진핑 3기가 확정되고 당의 최고 의사결정 조직인 중앙정치국 상임위원을 포함한 중앙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과 중앙기율위원회까지 총 509명의 인사를 확정했다. 이번 당대회 보고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앞으로 5년을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에 '관건적인 시기’로 명명한 것이다. 둘째, 시진핑의 집권이 3연임을 넘어서 4연임까지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시진핑의 집권 기간을 3연임으로 국한하려는 그 어떠한 정치적 행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 중국 공산당이 차기 후계자를 고려했다면 이는 매 5년 주기로 개최되는 당대회에서 드러난다. 과거의 전례에서 보면 차기 후계자는 중앙정치국 상임위원회(‘상임위’)에 포함되기 마련이다. 이때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50~55세 정도였다. 후진타오의 경우 50세였고, 시진핑은 55세였다. 이들이 발탁된 나이는 중앙정치무대에서 예상되는 정치 수업 기간을 고려해 결정되었다. 차기 후계자는 상임위원회에 발탁이 되는 동시에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의 제1서기관에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들은 당의 서기로 경험을 축적하면서 또 다른 경험을 통해 정치 경험을 축적한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중앙당교(黨校)의 교장직이다. 즉, 당의 전문 간부를 배양하는 당 대학교의 총장직을 의미한다. 당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그 또한 당의 교리와 사회주의 이념과 사상으로 재무장하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또 하나의 관건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職)이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 역시 전후 세대로서 군 경험이 미천하다. 이들은 군사훈련 또한 거의 대부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의 최고지도자는 당권, 정권(국가주석)과 군권 등 이른바 ‘3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군 경험의 전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중국의 군이 당의 군이고 당의 지휘를 받는 구조에서 중국 공산당의 최고지도자는 군의 최고통수권자이다. 따라서 차기 지도자는 군을 지휘할 수 있는 역량과 지식을 구비하기 위해서라도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겸직해야 만 한다. 결국 시진핑의 3연임 이상이 가능하다는 징후는 상기한 '3권' 중 두 개의 인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중앙서기처의 1서기는 베이징시 시장 출신이자 이번 당대회에서 상임위 서열 5위인 차이치(蔡奇)가 임명되었다. 1955년 12월생인 그의 나이는 올해 67세이다. 중국 공산당 인선의 연령 기준이 유효하다면 5년 뒤 72세의 나이로 차기 당대회에서 또다시 당의 지도자로 등용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곧 발표될 중앙당교의 교장이 되어도 이번 인선을 끝으로 차기 당대회에서는 연령 기준(67세 이하)을 초과하기 때문에 또다시 발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앙군사위 부주석직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차기 지도자를 암시하는 어떠한 의사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두 부주석은 장유샤(张又侠·72) 제1부주석과 허웨이둥(何衛東·65) 제2부주석이다. 장유샤는 연령 제한 기준을 초과했지만 발탁되어 연령 제한이 무의미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욱 불러일으킨 사례라 할 수 있다. 허웨이둥도 5년 뒤를 생각하면 연령 기준을 초과하기 때문에 장유샤의 사례로 장담할 수 없지만 이론적으로 다시 등용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시진핑의 후계자를 염두에 두었다면 당은 제2부주석 자리에 후계자를 임명하는 것이 전례였다. 이번 당대회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특징은 중국 공산당이 느끼는 불확실성 시대에 대한 불안감이다. 세계가 우크라이나전쟁과 코로나 사태 등이 지속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한 데 대해 중국 또한 명확하고 확고한 정책 입장을 내세우지 못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 주장하는 기존 정책의 방식을 견지하겠다는 결의를 내세우면서도 다른 한편 출구전략을 염두에 둔 발언도 종종 나타났다. 그리하여 당대회 보고서에 제기된 주장 속에는 상호 모순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가령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과학기술과 산업의 자립자강을 강화하기 위해 2020년에 발표된 쌍순환(雙循環·이중순환) 성장전략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쌍순환 전략 목표 달성을 위해 과학기술, 인재와 교육 등의 수단을 강조했고 자립자강을 위해 내수시장과 자국 산업의 발달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인 경제협력을 강조한 대목에서 독자적인 발전 전략에 대한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대만에 대한 보고서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대만 유사시에 무력 동원도 마다하지 않겠다면서 이런 의지의 대상은 외부 세력이나 대만의 독립분자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다음 문장에서 ‘대만동포’를 겨냥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력을 대만에 동원하고 사용할 경우 어떻게 대만동포를 겨냥하지 않을 수 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무력 동원은 대만동포의 희생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대만의 독립 시도와 같은 유사 사태에 무력 동원이 쉽지만은 않다는 중국의 내적 우려를 이런 모순적인 발언에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출구전략 발언의 사례는 ‘제도형 개방’을 강조한 데 있다. 제도형 개방은 두 가지 의미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대외적인 개방의 형식으로 중국이 추구하는 중국 기술표준에 중국의 개방 관련 제도의 요구 사항을 해외 투자자와 기업이 맞춰야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중국도 국제기준과 국제제도 및 규범을 준수하면서 대외 개방 정책을 견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2020년에 '중국표준2035'를 발표하면서 국제기술표준에 대한 중국화를 2035년까지 완성하려는 야심을 밝혔다. 즉, 해외 기술이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중국 기준에 부합하라는 전제조건을 내건 것이다. 쉽게 말해 일부 국가에서 220V(볼트)가 아닌 110V의 전압을 사용하는 사례로 이해하면 된다. 중국은 자국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강함에도 기존의 질서와 제도 및 규범을 아직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는 단계임을 분명하게 의식함을 보여주고 있다. ·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초를 닦기 위한 첫 5년을 관건적인 시기로 정의하면서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도 지난 10월 12일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과의 전략 경쟁의 시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탈냉전의 종결로 강대국 정치의 시대가 열렸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최대 위협 국가라는 인식을 공식화했다. 미국이 자국의 전략이익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결의를 보인 대목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 경쟁은 최소한 2024년까지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며 이어질 것이다. 2024년 1월 대만의 총통(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중 양국은 대만해협 지역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을 경쟁적으로 둘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은 2023년 하반기부터 대선 정국에 들어간다. 현재 미국의 초당적인 반(反)중국 정서를 감안하면 대통령 후보자 경선에 참여하는 이들은 중국에 강경한 입장과 태도로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관계 또한 녹록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대만해협 지역에서 전략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한·미·일 군사관계의 강화뿐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기 위한 정책과 법안을 연속적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겐 미국의 이런 행보를 미리 내다보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반도체법안(Chip4)’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일명 ‘배터리보조법’)’ ‘바이오법’의 사례와 같이 미국에 뒤통수를 맞아서는 안 된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과학기술의 도약을 견제하기 위한 일련의 법안을 구상 중이다. 정보통신기술에서부터 희토류·광물자원의 확보, 식량·에너지 자원까지 다양한 법안을 논의 중이다. 또한 대만을 군사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법안도 다수 논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미국의 법안과 전략 구상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입장과 목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국익의 손실을 최소화할 있는 전략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에겐 미국 측 전략 구상 참여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신경 쓰기에 앞서 미국의 전략 의도, 취지와 목표를 먼저 간파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노력이 선행되어야 우리가 중국 반응에 독자적으로나 미국과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시 주석 1인 통치 시대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겐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와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2022-10-31 16:5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