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논설고문
hht1123@ajunews.com
- 아주경제 논설고문
-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前 동아일보 논설주간(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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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의 시선] 러·우크라이나 전쟁, 올 여름 '크림반도'로 결판난다 1932~1933년 소비에트연방 공화국이던 우크라이나를 현지 취재해 대기근을 서방에 최초로 알린 가레스 존스(1905~1935) 기자의 생애를 담은 《미스터 존스》를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한 맺힌 역사와 이번 전쟁에서 항전(抗戰) 의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 감정이 되돌릴 수 없이 악화한 것은 1932~1933년에 벌어진 소련의 대기근(홀로도모르) 때였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가장 너른 곡창지대였지만 굶어 죽은 사람은 소련에서 가장 많았다. 다른 공화국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게 곡물 수확량을 할당받았기 때문이다. 1933년 1~4월 소련 당국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감추고 내놓지 않는 곡물을 수색해 압류했다. 심지어 봄에 뿌릴 씨앗까지 빼앗아 갔다. 곡물을 은닉한 농부들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졌다. 이렇게 수탈당한 우크라이나 곡물이 다른 공화국으로 수송되는 바람에 정작 곡창지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 것이다. 2003년 유엔 기구는 홀로도모르 조사를 통해 우크라이나인 700만~1000만명이 사망했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최근 학계의 연구 결과로는 350만~500만명이 희생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나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 밑에서 외교 고문으로 일한 가레스 존스 기자는 연합국 기자 최초로 아돌프 히틀러를 인터뷰했다. 이에 고무된 그는 이오시프 스탈린을 인터뷰하겠다며 소련으로 갔으나 인터뷰가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소련 당국의 감시를 피해 우크라이나를 탐방한 존스 기자는 대기근을 취재하던 중 한 소녀에게 고깃국물을 얻어먹는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밖에 나가보니 눈밭에 있는 오빠의 시신에 훼손된 흔적이 보였다. 그냥 굶어 죽느냐, 눈 속에 냉동된 시신이라도 먹어야 하느냐? 육체적 생존의 투쟁이자 중대한 모럴의 문제였다. 결국 인육(人肉)을 못 먹은 순한 사람들이 먼저 죽었다. 소련의 식량 징발로 1933년 우크라인 500만명 아사 홀로도모르 때 인육을 먹은 카니발리즘의 증거는 많이 남아 있다. 소련 당국은 ‘자녀를 먹는 것은 야만인의 행동’이라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2500명 이상이 카니발리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자연재해와 인간의 실패가 최악으로 합쳐진 결과였다. 급속한 산업화와 집단농장 정책의 실패, 계획경제의 오류로 빚어진 인간이 만든 대기근이었다.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들은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을 말살하기 위해 스탈린이 홀로도모르 대기근을 악화시킨 것으로 본다. 소련은 1932년까지 우크라이나어 교육기관들을 모두 폐쇄했다. 우크라이나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체포되고 추방되었다. 스탈린 치하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반소비에트’ ‘반혁명’이라는 낙인이 찍혀 체포돼 사형을 당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스탈린은 기근이 발생하자 우크라이나인들을 말살하려고 기획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곡물 수탈을 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벌이면서 홀로도모르와 비슷한 전략을 썼다. 학교와 병원, 아파트에 포격을 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생존에 필요한 발전소 등 인프라를 파괴했다. 러시아 군대는 전쟁 개시 직후 우크라이나 농부들에게서 곡물 50만톤을 약탈했다. 민간인 구호물자 공급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선대들이 겪은 홀로도모르를 떠올리며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독일과 싸우는 데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기근의 참상을 알리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진실은 하나뿐”이라며 홀로도모르 대기근을 보도한 존스 기자는 1935년 8월 네이멍구에서 산적들에게 납치됐다. 그와 동행한 가이드는 소련 비밀경찰과 연루돼 있음이 밝혀졌다. 존스는 30세 생일 하루 전 총에 맞아 살해됐다. 소련 당국이 필사적으로 숨기고자 했던 홀로도모르의 진실을 알린 데 대한 보복으로 추정된다. 소련 체제에서 홀로도모르 대기근에 대한 토론이나 보도는 금지됐다. 우크라이나의 한 역사학자는 소련 정부가 학자들에게 대기근에 대해 ‘피할 수 없었던 자연재해’로 서술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공산당과 스탈린의 유산을 지키는 길이라는 지시였다. 2024 대선 앞두고 갈수록 푸틴에 불리한 전쟁 홀로도모르에 대한 토론과 연구의 문을 연 것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 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가계의 혼혈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어린 시절에 대기근을 경험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1933년 고향 마을에서 거의 절반의 인구가 굶어 죽었다. 그중에는 고르바초프의 두 누나와 아버지의 형제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과연 핵무기 사용 위협은 러시아의 말폭탄에 그칠 것인가. 러시아가 2014년 전쟁 때처럼 우크라이나가 쉽게 손을 들리라고 판단한 것은 결정적인 착오였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도 골치 아픈 존재였다. 러시아는 체첸이나 조지아처럼 작은 나라들이 대들면 탱크로 밀어 초토화해 버리다시피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다음으로 영토가 넓은 나라이고 인구도 4100만명에 이른다. 이번 전쟁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벌인 10년 전쟁보다 더 많은 병사가 죽었다. 외국으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온 러시아 신병들은 똘똘 뭉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전투력과 서방이 지원한 디지털 신무기 앞에서 맥을 못 쓰고 있다. 러시아 군인들의 군기도 엉망이다. 러시아 병사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러시아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나 친지들과 통화하다 위치를 노출시켜 우크라이나 포탄에 몰살당하는 참극도 벌어졌다. 러시아군은 포탄이 바닥나 북한산·이란산을 수입해 전쟁을 치르는 판이다. 미국은 러시아 폭격기와 미사일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훈련을 시키고 있다. 소련이 우세를 보이는 공군력과 미사일이 힘을 못 쓰게 될 판이다. 러시아는 핵전쟁을 위협하고 있지만 정작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소련이 전술핵을 쓰면 미국과 유럽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전술핵을 사용한다면 잃는 게 훨씬 크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선박에 대해 지중해와 흑해 진출을 막아 러시아를 내륙국가로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크림반도 양보로 러시아에 퇴로 열어줘야” 올 하반기로 접어들어 2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면 러시아 재정이 전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러시아가 작년엔 그럭저럭 버텼지만 기름값·가스값도 떨어져 가고 러시아 경제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때쯤에는 서방에서도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가 동부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를 되찾더라도 크림반도에 대해 러시아 영유권을 인정하는 정도에서 휴전안이 성립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우크라이나도 서방의 지원 없이는 전쟁을 끌고갈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불법적인 국민투표를 시행해 러시아 영토로 합병했다. 크림반도는 원래 러시아 영토였다. 스탈린이 죽고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고 나서 1954년 크림반도 영유권이 러시아 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 공화국으로 넘어갔다. 큰형 러시아가 동생에게 주는 선물 형식이었지만 크림반도에서 터키계 타타르족과 우크라이나를 대립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러시아로서는 흑해함대 때문에도 크림반도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협상에서 흑해함대 모항인 세바스토폴 군항을 러시아가 계속 사용하게 하는 제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사업인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공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천군만마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우크라이나를 도왔던 머스크는 "크림반도는 원래 러시아의 영토였다. 전쟁을 끝내려면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4년에 러시아 대선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와 푸틴에게 유리한 것은 없다. 전황이 계속 밀리면 푸틴은 재출마를 포기하고 후계자를 내세우는 방안도 고민할 것이다. 러시아 권력층 내부에서 전쟁의 출구를 찾자는 실용주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용병집단인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 군부의 갈등으로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여지도 있다. 이번 전쟁은 올여름이나 가을을 고비로 크림반도를 놓고 결판이 날 가능성이 높다.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2023-01-18 15: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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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 地政學에서 技政學의 시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러시아 국민들은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매우 싫어한다. 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연방을 해체함으로써 자국 영토의 일부였거나 소련의 지배를 받던 위성국가들이 독립해 국가안보를 결정적으로 훼손했다는 이유다. 한 세기 전만 해도 미군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군대가 폴란드나 발트 3국에 주둔하는 사태는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 가운데 러시아만 빼고 나토와 유럽연합(EU)에 모두 가입했다. 이렇게 러시아가 나토 군대와 미군에 둘러싸인 지정학(地政學)적 압박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역사상 어떤 위대한 왕이나 장군들도 지리적 환경의 구속(拘束)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군사외교 전략을 펼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전쟁, 권력, 정치, 사회 발전을 통제한다는 것이 지정학(geo-politics)의 기본적 개념이다(팀 마셜 저 《지리학의 죄수·prisoners of geography》). 지정학은 지리적인 위치나 형태가 국가 이익이나 국가 간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분단도 중국·소련·일본과 인접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놓고 다툰 미국과 소련의 세계 전략 속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냉전시대에 지정학적으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방파제로 기능했다. 2015년부터 미래 전략을 계속해서 펴낸 카이스트가 발간한 9번째 보고서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은 강대국 패권경쟁에서 국가안보의 중심 도구가 정치외교나 국방과 같은 전통적 안보 개념에서 식량·자원·산업에 이르는 비전통적 안보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지원한 첨단무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이 주요 표적을 정밀 타격하면서 러시아군은 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디지털과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무기들이 겨루는 하이테크 전쟁이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더라면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깅렬한 전투 의지와 미국이 지원하는 첨단 무기 앞에서 맥을 쓰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하이테크 전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EU와 미국이 발 빠르게 첨단 기술에 대해 러시아 수출을 통제한 것도 범대서양 기술 동맹의 효과다. 과학기술이 이처럼 글로벌 패권경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 되면서 기존 지정학 대신 기정학(技政學·techno-politics)에 기반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포착해 ‘기정학의 시대, 누가 21세기 기술패권을 차지할 것인가’를 주제로 잡았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서문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면서 반도체·배터리·통신 분야에서 첨단 기술력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기술 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7대 게임 체인저 기술로 첨단 바이오 기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 초대형 인공지능과 AI 반도체 기술, 6G 이통통신 기술, 차세대 이차전지 기술, 우주탐사 기술, 양자정보 기술을 꼽았다. 미국은 중국 기술의 급속한 부상과 확산에 대한 자국의 대응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로 규정한다. 첨단기술을 이용한 권위주의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와 중국을 첨단 기술에서 따돌리는 탈동조화(decoupling)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미국의 확고한 인식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냉전 시대에는 희귀 금속이나 희토류 같은 전략 물자 확보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있었지만 기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경제에 편입되고 중국 시장을 선점하려는 서구 기업들의 대중(對中) 기술 이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국이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도체·AI(인공지능)·전기차·첨단 무기·우주항공 등 안보와 직결되고 미래 산업의 우열을 가를 산업에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거의 노골적이다. 미국의 강력한 대응에는 첨단 기술을 훔쳐가는 중국에 대한 반감도 기본으로 깔려 있다. ‘칩4’는 미국이 설계한 반도체 공급망 동맹이다. 미국은 원천 기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일본은 소재와 장비 분야를 분담하는 전략 공동체다. 올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산 미군기지에 도착한 후 바로 평택 삼성반도체 공장으로 갔고 다음날 양국 정상이 반도체 동맹을 약속했다. 미국과 아시아 3국으로 이루어진 반도체 동맹에 ASML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를 끌어들였다. ASML은 극자외선(EUV)으로 웨이퍼에 전자회로를 새기는 반도체 장비의 독점 공급 업체다. ASML은 미국의 보조금을 받고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을 세웠다. 네덜란드는 미국의 요구에 처음에는 반발했으나 최근 태도를 바꾸어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규제를 추진 중이라고 네덜란드 언론들이 보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대만·일본의 반도체 업체들도 미국의 노선에 도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미국에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동맹으로 ‘중국 고립화’ 전략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가치와 안보를 공유하는 우호 진영 구축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기술은 국력과 자주권 그리고 생존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대만에서는 반도체 산업이 일자리와 경제 발전과 함께 안보를 보장하는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고 부른다. 반도체 없이는 대만이 중국 본토의 공격을 받을 때 동맹국들의 지원 의지가 약화할 우려마저 있다는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은 반도체를 ‘민주주의 칩’이라고 명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대만에서 생산하는 반도체의 60%를 중국이 수입한다. 대만은 미·중 사이에서 고민이 있겠지만 종국적으로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고 미국의 무기 판매와 안보 지원 없이는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디지털 실크로드(DSR) 전략을 통해 인접국과 우호국들의 중국 기술 의존도를 높여 기술 블록화하는 전략이다. 소련과 중국은 내국인들을 외부 세계의 정보가 자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디지털 철의 장막을 구축하고 디지털 기술로 불만 세력을 통제해 권력 장악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정부의 행동을 숨기고 국민의 항의를 막는 수단으로 인터넷 폐쇄(shutdown)를 활용한다. 러시아가 디지털 플랫트폼에 침투해 미국의 대통령선거와 영국의 EU 탈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개입한 것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기술 문제, 국제정치와 연결시켜 바라봐야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을 촉발한 것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중국 화웨이 장비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세계 1위의 기지국 장비업체로 도약한 화웨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2021년 3월 반도체·안테나·배터리 등을 화웨이에 수출하는 것을 제한했다. 낮은 가격에 5G 통신장비를 공급함으로써 통신망을 장악하고 기술표준을 만들려던 화웨이는 대만의 TSMC가 시스템반도체 납품을 중단함으로써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달 시진핑 주석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와 투자협정을 체결하면서 화웨이를 포함했다. 사우디는 막강한 원유 생산량을 무기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려는 듯하다. 아이폰을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이 미국의 대중 규제 조치를 어떻게 비켜갈지도 주목된다. 그런 면에서 삼성이 베트남에 스마트폰 주력 생산기지를 마련한 것은 기정학적으로 볼 때 미래를 내다본 선택이었다.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3》은 ‘기술 문제를 단순히 경제 분야에 국한해 바라보기보다 국제정치의 구조와 질서, 안보, 가치·규범 등 요소와 연계해 분석하는 융합적 접근과 복합적 외교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2022-12-19 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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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5공비리 한복판에서 폭풍을 맞다 거대한 민주화의 폭풍을 맞아 독재정권이 무대 뒤로 사라지고 5공화국 비리 청산이 휘몰아치던 시기에 이진강 검사는 검찰 수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는 4개 과가 있었고 부장검사들이 각기 과장을 맡았다. 가장 선임(先任)인 이진강 1과장이 나중에 수사기획관 범죄정보정책관 과학수사담당관 공보관 등으로 분화한 자리를 모두 혼자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이 검사가 그 시절의 비화와 진실, 그리고 과로로 쓰러졌다가 5년 투병 끝에 이겨내고 검찰을 떠나 이모작 인생을 살아간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80년 한결같이>(나남출판사)를 펴냈다. 중요 사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과 함께 가슴을 찡 울리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가 중앙수사부 1과장으로 있던 1986년 5월~1988년 8월, 2년 3개월 동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여파로 6월항쟁이 불 붙었다. 전두환 정부가 물러가고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5공 비리 수사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이 심판을 받았다. 이 격동의 시기에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보를 알린 중앙일보의 특종을 확인해준 사람이다. 당시 대검에서는 매일 아침 검찰총장, 대검차장, 중앙수사부장, 공안부장 등 검찰의 ‘빅4’가 모여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이진강 중앙수사부 1과장과 공안부 1과장이 보고를 했다. 1987년 1월 15일 아침 9시 회의에 들어온 쪽지를 보고 공안 1과장이 “서울대 학생 한 명이 경찰에서 조사받다 사망했다”라고 보고했다. 박종철 사망 1보 확인과 재수사 지휘 회의를 마치고 이 검사가 방에 돌아왔을 때 중앙일보 기자가 찾아와 “오늘 보고 중에 서울대생 한 명이 죽었다는 내용이 없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기자에게 “공안 1과장이 회의 중 쪽지를 받아 보고하더라”고 말해줬다. 중앙일보는 돌아가고 있던 윤전기를 세우고 박종철 사망기사를 2단 크기로 돌판(突版)으로 집어넣었다. 6월항쟁의 폭풍 속에서 고문치사 사건의 초동수사가 경찰로 넘어가자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조작이 시작됐다. 경찰은 고문에 가담한 경관 5명을 2명으로 축소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안기부 등이 주도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손발이 묶여 경찰에서 넘어온 대로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해 5월 김승훈 신부가 “고문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하면서 민심이 다시 요동치자 장세동 안전기획부장, 정호용 내무부장관, 김성기 법무부장관, 서동권 검찰총장이 경질됐다. 신임 이종남 검찰총장은 박종철 사건의 재수사를 중앙수사부에 배당했고 이진강 검사는 고문치사사건 재수사와 범인은폐 조작사건 수사까지 지휘하게 되었다. 1월 경찰 수사 때 구속된 조한경 경위가 성동구치소에서 성경의 여백에 깨알같이 은폐조작 내용을 적은 것을 찾아내 박처원 치안감 등을 구속했다. 이진강 검사는 수사 발표를 마친 뒤 함세웅 김승훈 신부에게 전화해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미진한 점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라고 했다. 두 신부는 “잘됐습니다.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조작을 폭로한 가톨릭계의 검증과 승인을 받은 셈이다. 동아일보는 1보를 놓쳤지만 속보 경쟁에서는 계속 앞서나갔다(졸저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 참고). 그 다음해 박종철 사건 1주기에는 동아일보가 안상수 변호사를 인터뷰하고, 황적준 박사의 일기를 압수해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축소조작에 관여한 사실을 밝혀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치안본부장을 구속하는 일도 이 검사의 소관이었다. 5공 비리 전경환 염보현 구속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국회와 여론에 밀려 5공 비리 청산이 시작됐다. 대검 중수부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 비리 수사를 시작했다. 그는 1과장으로 총괄 지휘를 하고 주임검사는 이명재 3과장이 맡았다. 전씨를 구속하고 배후수사로 확대됐는데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씨와 염보현 서울시장 등이 거론되다 염 시장만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중수부 이 검사 밑에서 과장을 하던 심재륜(전 부산고검장) 박순용(전 검찰총장) 강신욱(전 대법관) 이명재(전 검찰총장) 이종찬(전 서울고검장) 등은 모두 검찰 요직으로 뻗어 나갔지만 그는 과로 끝에 덮친 병마로 검찰을 떠나야 했다. 전경환 염보현씨 사건 수사를 마치고 나서 커피잔을 잡을 때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쓰려져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심장에서 부정맥, 뇌에서 혈관기형이 발견됐다. 그리고 길고 긴 5년 동안의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병을 치료하고 나서 어렵사리 발령받아 나간 성남지청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났다. 김영삼 정부 탄생에 기여한 민주산악회 간부를 올곧게 처리해 상부에 밉보인 것이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결정적 이유였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게 “그동안 몸이 불편했던 것은 공무 수행을 하다 과로한 것 때문이 아니냐”며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을 떠난 후에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장관급) 등을 하면서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을 할 때 <시민과 변호사(1997년 11월호)>에 쓴 ‘검찰총장님 힘을 빼십시오’라는 글은 법조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대검차장, 중앙수사부장, 중앙수사부 과장 전원을 배석시키고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김대중(DJ) 비자금 수사 유보를 직접 발표했다. 수사 결과도 아닌 수사 유보를 검찰총장이 직접 발표한 일은 유례가 없었다. “김태정 총장 힘을 빼십시오” 고언 이회창씨를 후보로 내세운 한나라당은 인맥을 총동원해 “DJ 비자금 수사를 개시해 투표일 전에 DJ를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워달라”는 로비를 집요하게 벌였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와 등을 돌렸을 때였다. 김태정 총장도 대선 기간에 선거 결과를 바꿔놓을지도 모를 비자금 수사를 벌일 뜻이 없었다. 이 변호사의 글은 수사 유보의 적절성 여부를 논한 게 아니라 검찰총장이 검찰의 수사 간부들을 배석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모양새를 따진 것이었다. 검찰총장이 힘을 빼고 부하들에게 권한을 나눠주라는 의견으로 너른 공감을 샀다. 김 총장은 비자금 수사 유보의 공으로 DJ 정부에서 계속 검찰총장을 하다 법무부장관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옷 로비’ 사건이 터졌다. ‘재벌은 형제가 원수고, 권력은 측근이 원수’라고 하던가. 김 총장은 권력 내부의 총질로 현직 법무부장관으로서 사표를 내고 구속되는 수모를 당했다가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23년 동안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내심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겨서 어려움을 겪은 세월’이라고 진단했다. 일 욕심이 쌓이고 쌓여서 몸과 마음에 부담이 되고 몸의 균형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병과 동행하다 보니 욕심을 버리고 평상심으로 돌아가 그 병도 슬그머니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회고했다. 병과 동행하는 길에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고려대 법학과 동기생인 아내 나길자와 불심(佛心)이었다. 그는 2011년 법무연수원 초임검사 특강에서 검사들이 갖추어야 할 덕성으로 책임, 용기, 외로움을 들었다. 이 셋 중에서도 어쩌면 외로움이 검사들에게 가장 실천하기 힘든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머리말(들어가며)에서 ‘이 자서전은 자신과 진솔하게 대화를 하지 못했던 내가 내면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며 이 세상을 마치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갈 때 나의 보고서’라고 술회한다. 저자는 ‘오늘 현재 이 시간을 열심히 살다 보니 어언 80이 되었다’면서 책의 처음과 중간과 끝에 일관되게 흐르는 무엇인가를 느껴줬으면 고맙겠다고 독자들에게 부탁을 드린다. 2022-12-05 15: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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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의 시선) 청춘과 핼러윈은 죄가 아니다 해밀톤호텔 옆 골목 압사 사고 소식을 듣고 내가 오래 근무한 동아일보에서 전설로 내려오던 서울역 압사 사고가 떠올랐다.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수습기자 교육시간에 귀가 아프게 ‘서울역 압사 사고를 기억하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했을 때 편집국장은 서울역 압사 사고를 낙종하는 바람에 중징계를 당했던 선배였다. 1960년 설을 이틀 앞둔 1월 26일 밤 11시 귀성객들로 초만원을 이룬 서울역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고속도로와 고속버스도 없고 비행기는 언감생심. 고향에 가려면 열차가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다. 철도청은 원래 8량인 목포행 완행열차를 18량으로 늘렸다. 계획에 없던 증차로 개찰이 늦어지는 바람에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달리던 승객들이 좁은 계단에 몰리며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목포행 열차가 서 있던 계단과 통로에서 발생한 이 사고로 31명이 압사하고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안전 치안 부재가 부른 후진국형 사고 당시 한 신문이 조간과 석간을 함께 발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날 저녁 경찰과 사건 사고를 담당하는 1·2진 기자는 밤 12시가 다 돼 조간신문을 찍는 윤전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술자리를 가졌다. 휴대폰도 없었고 SNS도 없을 때였다. 두 기자는 아침에 다른 조간신문을 받아 보고서야 서울역 압사 사고를 알았다. 둘 다 중징계를 받았다. 154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는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폭 3.2m인 내리막 골목길에서 벌어졌다. 62년 전에는 설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가려던 귀성객들이 희생자였지만 이번에는 주말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 이태원 압사 사고로 출퇴근 시간대에 혼잡한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안도 커졌다. 서울에서 이용 승객이 많아 극심한 혼잡을 이루는 역은 대부분 2호선 환승역이다. 신분당선과 2호선 환승역인 강남역은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이 가장 많은 곳이다. 31일 아침 강남역에서는 반듯하게 명찰을 단 안전실 역무원 김광범씨가 마이크를 들고 “열차가 많이 혼잡합니다. 다음 열차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는 방송을 거듭했다. 김씨는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지하철역 혼잡과 안전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했다. 내 옆을 지나가던 부부가 혼잡한 지하철역 계단에서 누가 밀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 나는 것 아니냐고 말을 나누는 것이 내게 들려왔다. 서울시가 2021년 서울시민의 선후불 교통카드와 일회용 교통카드 사용건수를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강남역 이용 건수가 하루 평균 6만6693건이었고 잠실역(5만6137건), 신림역(5만2716건), 구로디지털단지역(4만8010건), 홍대입구역(4만5253건)이 뒤를 이었다. 출근 시간인 오전 8~9시 하차 승객이 많은 역은 강남역을 필두로 서울역·종각역·교대역·구로디지털단지역, 퇴근 시간인 오후 6~7시에 승객이 많이 타는 역은 강남역·구로디지털단지역·서울역·교대역·시청역이었다. 강남역은 학원가와 유흥가를 찾는 사람이 많아 오후 7~9시에도 붐빈다. 강남역이 승하차 인원은 1등이지만 혼잡도 1등은 2호선과 3호선 환승역인 교대역이다. 나이 든 세대는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설과 추석 때 귀성열차 혼잡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혼잡이 교대역에서는 거의 매일처럼 벌어진다. 교대역에서는 걸음을 떼지 못하고 군중에게 조금씩 밀려서 나아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환승자들이 몰리는 길에 통로가 좁아지는 병목 구간이 여러 곳 있어서 교대역이 가장 혼잡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교통체증이 심한 서울에서 약속 시간을 지키려면 지하철을 타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 말도 무색하게 됐다. 특히 열차 고장으로 차량이 계속 늦게 도착하거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가 있는 날이면 20~30분씩 지각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승강장이 너무 혼잡해 열차가 늦게 출발하는 일도 잦다. 전장연 시위가 있던 날 2호선 방배역 대합실이 너무 혼잡하고 열차도 계속 오지 않자 탑승을 포기하고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열차가 혼잡하오니 다음 열차를 이용하기 바랍니다”는 안내방송에도 출근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이 차량 안으로 어깨를 구겨 넣으며 밀고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이 덜 닫혀 문이 다시 열리고 “열차 문 닫습니다”는 방송을 하는 일이 서너 차례씩 되풀이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서울에 콩나물 버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콩나물 지하철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문을 닫고 사고 없이 열차가 달리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만원 승강장에 콩나물 지하철 겁나 장애인을 위한 권리 예산 등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오던 전장연은 이태원 참사 추모를 위해 일주일간 시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전장연은 30일 성명에서 “이태원에서 일어난 비극적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추모 기간을 갖기로 했다”면서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하철 선전전과 삭발 투쟁을 31일부터 일주일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각지역은 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 현장과 불과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이다. 출근시간대 시위로 지하철이 지연되고 역내 혼잡도가 높아지는 데 따른 비판을 고려한 결정이다. 해밀톤호텔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불과 40m가량 내리막 골목에서 154명이 숨졌다니 믿기지 않는다. 지난달 15~16일 열린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도 인파가 몰렸다. 이태원은 구도심이라 인도와 골목길은 좁은데 해가 기울면 이태원 문화와 음식을 찾아오는 국내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축제도 좋지만 좁아터진 곳에서 인파가 몰리는 대규모 축제를 계속 벌일 일이 아니었다. 세월호 사태를 겪고도 안전불감증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것인가. 오전에 외출했다가 6호선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역에서 내려 사고가 난 골목으로 나가는 1번 출구에서 내려봤다. 출구 앞에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있었다. 보존된 현장에는 피해자들의 각종 유실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젊음이 죄가 될 수 없고 핼러윈을 탓해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안전 인프라가 부재한 곳이 널려 있다. 후진국형 사고에 안전행정도 안전치안도 없었다. 2022-10-31 17: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