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작가iohcsj@gmail.com
- (전) 주간조선 편집장
- 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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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의 시선] 윤석열 대선운세 잠룡관상 뉴스 판치는 까닭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전시실을 돌아다니는데 가장 많이 들려온 말은 “엄마”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들린 말은 “아빠”였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인 서울 서대문구가 만들었다.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지난 4월 2일 찾아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예약을 하고 가야 했고, 가보니 어린이들 목소리만이 들렸다. 자연사박물관에 가본 건, 전시보다는 다른 걸 더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이 말고, 어른은 자연사박물관에 얼마나 오는지가 궁금했다. 창구직원은 “어른도 많이 온다”라고 말해줬으나,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거대한 공룡 화석 ‘아크로칸토사우루스’ 주변에는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이 절대 다수였다. 성인은 보였으나, 그들은 아이들과 동행한 부모들이었다.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성인은 딱 두 사람 보았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20대 중반 여성들이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어린이 박물관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실상 어린이와 학생이 주요 이용자다. 어른들은 어디에 갔을까? 자연사박물관이라는 곳은 어릴 때 가는 곳이지, 일정한 나이가 넘으면 발을 끊는 곳이라고 우리 머릿속에는 입력이 되어 있다. 아이가 10대 중반이 되면 자연사박물관이나 과학관은 졸업하고 다른 데로 간다. 문화 예술 전시장과 공연장이 새로운 관심의 공간이다. 미술전시를 보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조성진과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를 보러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빠른 사람일수록 과학관을 일찍 졸업한다. 그렇지 않으면 덜떨어진 사람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공룡 이름)를 뒤로 하고 ’오이디푸스 렉스‘(고대 그리스 희곡 작가 소포클레스 작품)를 찾아가는 건 이 시대 문화 현상이다(<원더풀 사이언스> 책 인용)라는 말이 있는 걸 보니, 서양도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어른도 ’자연사박물관‘을 찾고 전시물을 즐길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동네 주민 몇 명과 어울릴 기회를 가졌다. 서울 북악산 뒤편의 산동네에 이사 온 지 5년 이상 지나서 만들어진 첫 자리다. 수십년 전, 그러니까 1968년 김신조 등 북한의 무장 공비 일당이 청와대 공격을 위해 이 동네를 지나갔을 때부터 산 사람이 있어, 동네의 옛 얘기를 들었다. 세검정 쪽에서 보면 국민대 쪽과 불광역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있고, 이 중에서 국민대로 가려면 북악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러니까 북악터널이 뚫리기 전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평창동 주택가가 자리 잡은 이 지역은 서울 도심에서 가까우나, 터널이 없으니 외진 곳이었다. 북악터널이 뚫린 후에야 평창동은 오늘날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1971년 북악터널을 뚫을 때 얘기다. 주민 한 사람에 따르면 당시 평창동에는 무속인이 많이 살았다. 북악터널을 뚫는다고 하니, 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북악터널 쪽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데, 거기에 구멍(穴)을 낸다는 건 아니 될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부는 터널 공사를 했고, 공사비 조달을 위해 평창동 개발 사업을 했다. 당시에는 주택은행이라는 정부 소유 은행이 있었는데, 주택은행이 나서 평창동 땅들을 큰 덩어리로 잘라 분양을 했다. 그 자리에 오늘날 큰 단독주택가가 자리 잡았다. 그 자리에 살던 무속인들은 미아리 고개로 옮겨갔다고 한다. 북악터널과 평창동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 얘기를 듣던 동네 사람 일부의 반응 때문이다. 무속인들이 ‘용의 머리’ 운운하면서 터널 공사에 반대했다는 얘기를 듣던 일부 사람이 무속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평창동이 기가 센 곳이다. 사업하는 사람은 이곳이 좋지 않다. 대신 예술가들이 살기에는 좋다. 평창동에 예술가가 많이 사는 건 그 때문이다.” ‘기’라는 건 따져보면 근거가 없다. 동아시아의 옛 전통이 세상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설의 하나이나, 과학적이지 않다. 장삼이사(張三李四)만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먹물들도 그렇다. 요즘 웃기는 건 언론들의 ‘○○○ 후보 운세’ 운운하는 보도다.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되고, 다음 대통령 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1년도 남지 않으면서, 후보들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사주와 선영의 풍수 관련한 기사가 계속 보인다. 최근 읽은 신문에서 기사를 보았으나, 이런 보도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기 위해 구글에 들어가서 확인해봤다. 가령 ‘윤석열 사주 운세‘란 키워드를 검색해 보았다. 그 일부 기사의 제목을 보면 이렇다. “윤석열 선영은 ‘세종’시 ‘장군’면… 대선 운세는?”(조선일보) “관상으로 보는 대권 잠룡 10인의 운명”(월간중앙) “윤석열 검찰총장, 믿을 사람은 띠동갑 아내“(경기일보) “21년 운세 분석 야권 잠룡, 대통령 누가 될까? 윤석열, 홍준표, 안철수”(뉴스1) “[우호성의 사주 사랑(舍廊)]- 윤석열 검찰총장은 왜 윗선과 충돌하는가“(영남일보) “사주팔자로 살펴본 윤석열:국민뉴스“(국민일보) 신문과 잡지는 명색이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만드는 지식 상품이다. 그런데도 이렇다. 개념 없이 혹세무민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할 때는 ‘무궁화(槿) 피는 동산에 학이 나네’라고 했던 역술인 말이 풍미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요즘은 또 ‘박근혜 대통령 석방 시기 예측‘이라는 게 유튜브에 굴러다닌다. 한국인이 비과학적이다, 과학적 사고가 부족하다라는 말을 듣는 건, 이런 것 때문이다. 사주와 관상은 재미로 보는 건데, 뭘 그걸 갖고 그러냐고 할지 모르겠다. 많은 이는 재미로, 웃자고 말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명당 찾아 아버지 어머니 묫자리를 옮기고 옮긴 정치인 사례가 기억나지 않는가? 심지어는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일한 사람이 ‘유사과학’을 떠드는 일도 있었다. L모씨는 지난해 10월 15일자 한 신문 기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자신만의 과학적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삼국지의) 조조와 손권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의 천적 미생물이 서로 싸우는 소위 ‘미생물 적벽대전’을 일으키자. 인류는 음이온과 원적외선 등 자연계 에너지를 동남풍처럼 활용해서 천적 바이러스를 도와주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음이온, 원적외선, 미생물 적벽대전이라니, 어처구니없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이며, 원적외선 효과 운운은 엉터리 과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생물 적벽대전’은 역사소설을 많이 읽은 탓이다. 과학적인 사고란, 회의적인 사고다.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사고다. 과학자가 말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그냥 믿으면 과학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래서 ‘과학’과 거리가 먼 ‘종교’를 보면 과학이 잘 보인다. 종교는 뭐라고 하느냐? 먼저 믿으라고 말한다. “믿습니다”를 강조한다. 과학은 다르다. 믿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믿지 않는다. 이런 회의적 사고를 잘 설명하는 책들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마이클 셔머) <스켑틱>(〃)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 유명한 책들이며,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과학이라는 헛소리>(박재용) <유사과학 탐구영역>(계란계란)이 좋다. 책이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을 찾아보길 권한다. 어려서 가본 자연사박물관, 혹은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박물관과는 다른 차원에서 전시물들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고 본다. ‘기’와 ‘명당’과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이곳에 없다. 우리의 삶과, 자연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가 이곳에는 빼곡히 있다. 과학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에 근거해서 수집한 증거들이다. 특히 50대 이상은 다시 자연사박물관(과학관)을 찾을 때다. 이들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어, 과학적 사고에 취약하다. 전통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내가 가본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생각보다 훨씬 콘텐츠가 좋았다. 깊이 들여다볼 게 많았다. 가령 1층의 공룡 골격 화석을 보면, 공룡과 ‘유사 공룡’ 구별법이 나와 있다. 공룡 비슷하다고 다 공룡이 아니다. 예컨대 악어처럼 어기적어기적 걷는 건 공룡이 아니다. 공룡은 사람처럼 무릎 관절이 펴져 있다. 아랫다리뼈와 윗다리 뼈가 일자다. 일반 파충류는 무릎이 펴지질 않는다. 그리고 땅이 아니라 바다에 살면 공룡이 아니다. 바다에 살았던 어룡은 공룡이 아니라고 한다. 공룡과 ‘일반파충류’를 구별할 줄 알아서 뭐하느냐? 가령 이런 거 아닐까? 인류가 나중에 멸종한 뒤에 후대의 고생물학자가 우리와 동시대에 살았던 침팬지 화석을 보았을 때 ‘인간’과 ‘침팬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어떨까? 우리가 죽어서도 속이 쓰리지 않을까. 서대문자연사박물관 2층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들도 있다. 경산에서 나온 대형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아름다웠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에 산소를 최초로 뿜어낸 식물(시아노박테리아)이 남긴 화석이다. 내가 둘러보고 있을 때, 어린 딸을 데려온 아빠는 그걸 보더니 “스트“라고만 이름을 읽어보고, 낯선 화석 이름을 끝까지 발음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그런 건,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이 있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오래전 이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얘기 들을 수 있었다면, 그 화석에서 그렇게 빨리 등을 돌릴 수는 없었을 거다. 이런 게 무수히 많다. 장수에 관심이 있다면 실러캔스라는 물고기를 보고 그 비결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한번에 전시콘텐츠를 모두 보려는 건 내가 해보니, 어리석은 방법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고 가서 전시물의 이야기와 나를 연결해 보는 게 필요하다. 중년, 자연사박물관을 다시 찾을 때다. [서울서대문자연사박물관 1층의 공룡 골격화석] [경북 경산에서 나온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2021-04-07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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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의 시선] 제6의 대멸종 임박說과 '나쁜 인간'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기후 변화 위기를 다룬 영화를 너무 많이 봤고, 다큐도 많았다. ‘투모로우’(2004년) ‘불편한 진실’(2006년) ‘산호초를 따라서’(2017년) ‘우리의 지구’(2019년)…. 기후 위기라는 토픽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익숙해져서, 우리는 무덤덤하다. 그렇게 크게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기후 변화는 영화의 흥행을 위한 소재가 된 느낌이고, 다큐는 일부 기후 운동가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다가오는 위험’을 SF로 생각한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당장에 닥칠 폭풍우가 아니고 걱정할 게 없고,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라고 본다. 그들의 마음은 다가오는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에서 누가 이길까에 온통 가 있다. 음~. 문제는 이대로 우리는 괜찮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우리는 ‘경고’를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후 변화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시민의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기후 변화 경고’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오고 있어요’라는 잘못된 경고와 비슷한 결과로 향하고 있다. 사람들이 ‘늑대’가 온다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 예일대학교에 가면 피바디(Peabody)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피바디 박물관은 화석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화석이 많기로는 뉴욕의 미국 자연사박물관, 시카고의 필즈 박물관이 더하다. 피바디 자연사박물관이 독특한 건, 가장 아름다운 고생물학 벽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점 중 하나는 파충류 진화관에 있는 ‘파충류 시대’이고, 다른 하나는 포유류 진화관에 있는 ‘포유류 시대’라는 벽화다. 작품들은 대작이어서, 가령 '포유류 시대'는 18.3m×1.7m다. 작품에 들인 공력은 완성까지 걸린 시간에서도 확인된다. 파충류 시대는 4년 반(1943~1947년)에 걸쳐서, 포유류 시대‘는 6년간(1961~1967년) 작업을 했다(<새로운 생명의 역사> 책에서 인용). ‘파충류 시대’ 그림은 고생대 데본기의 어두운 늪지에서 시작하여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 저편 뒤로 멀리 있는 화산들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실제로 시베리아 화산이 뿜어낸 이산화탄소로 인해 급격한 지구 온난화가 왔고, 중생대 생태계는 짧은 시간 안에 끝장 났다. ‘포유류 시대’ 벽화는 밀림에서 시작한다. 6500만년 전 공룡이 거꾸러지자 숨을 좀 돌리게 된 포유류의 조상인 키 작은 네발 짐승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리고 그 포유류 시대 벽화의 끝 장면은 지금은 사라진 매머드들이 장식한다. ‘파충류 시대’, ‘포유류 시대’는 생명의 역사에 단절이 있음을 알린다. 파충류에 앞서서는 양서류의 시대가, 양서류에 앞서서는 어류의 시대가 있었다. 생명이 한 시대를 가로질러 다음 시대까지 나아가기는 힘들었다. 중간에 있었던 재앙 때문이다. 동식물 생태계를 싹 밀어버리고, 거의 빈 서판으로 만들어버린 환경 재앙이 발생했다. 그 주범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이산화탄소다. 지금까지 생명의 역사에서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흔히 말한다. 5번의 대멸종 중 4번은 주범이 이산화탄소다. 나머지 한 번은 지구 밖에서 날아온 소행성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생명이 등장하기 전에도 지구 환경은 요동쳤다.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가설은 지금으로부터 6억5000만년 전 이전에 몇 차례 지구가 온통 얼음으로 뒤덮였다라고 주장한다. 적도까지 꽁꽁 얼어붙었다는 게 <새로운 생명의 역사>의 저자 중 한 명인 조 커슈빙크 캘리포니아공대 지구물리학 교수가 1992년에 내놓은 가설이다. 이런 주장을 접하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지구 기후는 요동치는구나, 생태계는 속수무책이고”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온화한 지구 기후가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겠구나 였다. 그러면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야 괜찮겠지만, 나의 후손은 어떨까 라고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공연한 생각이었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먼 미래 일이 아니었다. 지구 생태계는 탄소의 자연스런 순환에 따라 이뤄지는 대재앙이 아니더라고, 인간의 손에 의해 망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걸 지금 사람들은 ‘제6의 대멸종’이라고 부르고 있다. 6번째 멸종이 일어나 인류가 멸종한다면 어떨까? 고생대 뒤에 중생대가 열렸고, 중생대 공룡이 멸종한 뒤에 포유류가 빈 자리를 메꿨듯이, 새로운 생명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비운 생태계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 생명체는 그리고, 신생대는 왜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았을까를 연구할 것이다. 기후가 요동치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나온 농담반 진담반 얘기가 ‘닭들이 뭔가 사고를 쳤다‘는 가설이다. 현재 인류는 닭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고, 닭의 수는 인간보다 훨씬 많다. 어느 시점에 지구상에는 230억 마리의 닭이 있다. 그리고 전체 인류는 해마다 닭 650억 마리를 먹고 있다(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2019년 책 <우리가 날씨다>). 그러니 지구 도처에는 닭 뼈가 뒹굴고 있고, 생명의 역사가 단절돼 우리 시대를 후대의 어떤 존재가 표현하려할 때 ’닭의 시대‘라고 할 것이라는 농반 진반 주장이다. 닭 뼈가 지층에 많이 남은 건, 그걸 소비한 동물이 있었고 그 동물이 인간이라는 게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닭의 시대 즉 ’치킨세‘(Chickencene)가 아니라, ’인간세‘(Holocene)였다는 거 논란 끝에 밝혀질 거다. 또한 ’인간세‘ 이후의 지구과학자는 인간세 말의 대멸종의 원인 역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 과다로 인한 급격한 기후 변동이라는 점에서 이전 대멸종과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인간세에 앞선 대멸종들이 화산이 뿜어낸 이산화탄소가 원인이었다면, 인간세에 닥친 재앙은 인간 스스로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문제였다는 것도 규명하게 된다. 인간세 말 지구 곳곳의 화산 활동을 보아도, 고생대말과 같은 대규모 분출이 보이질 않으니까. 결국 인류는 후대 생명체에 의해 탐욕스런 생명체로 평가받고, 생명의 역사에서 불명예스런 동물로 남을 거다. 예상되는 기후 격변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그러면 뭘 해야 하나? 정부나 기관이 해야 할 일은 있지만, 개인은 개인대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지구에 기후재앙이 닥칠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후대가 물을 때 내놓을 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세대가 막 살았던 사람들로 규정될 수는 없지 않은가?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자, 승용차 대신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하자, 탄소발자국을 줄이자 하는 얘기는 무수히 이미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동 하지 않는다. 핵무기가 터져 지구에 핵 겨울이 온다고 했을 때는 공포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지구환경재앙 폭탄이 터지는 때를 향해 시계가 째깍대며 가고 있는데, 왜 우리는 남일이라고 생각할까? 나는 과학자를 만나 얘기 듣고, 과학책을 읽고, 과학 관련 글을 쓴다.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기후 위기를 느낀다. 지식을 새로 습득한 데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의 행동변화로 끌어내려고 한다. 그중 일부를 보면, ‘육식의 종말‘이 그 첫 번째다. 식구들과 주위에 ‘채식주의자’라고 선언했다. 전에는 서울 여의도 IFC 몰에 있는 스테이크 집에 가는 게 나를 위한 고가 소비의 하나였다. 그러나 더 이상 가지 않는다. 문어와 낙지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한때는 서울 서촌의 낙지집 단골이었으나, 그 집도 발걸음을 끊었다. 문어와 낙지가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다. 전골 냄비 안에서 삶기어 죽을 때는 큰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식구들의 동참을 얻어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아내는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는 아이가 모처럼 집에 온다고 예고한 날이면, 쇠고기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영양 보충을 위해 사골을 불 위에서 몇 시간을 끓인다.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페이스북에는 불판 위에 올라가 있는 쇠고기 사진을 찍어올리는 게 자랑이고,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으며 나눈 우정을 널리 알리는 게 일이다. 고기 소비는 반 기후 행동인데도, 이들은 무신경하다. 1990년대 한국인은 대대적인 환경 보호 운동을 벌였고, 성공했다. 그때부터 재활용 문화가 자리 잡았고, 산업화 시대에 망가진 크고 작은 하천이 되살아났다. 그때 4대강과 샛강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사람들이 열성을 보였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1990년대의 환경 보호 운동 성공을 어떻게 하면 ‘기후 변화’에서도 재연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건 무엇보다 뚜렷한 행동 목표를 만들어내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플라스틱 소비 줄이기, 승용차 타지 않고 대중교통 이용하기, 나무 심기, 재활용 등 기후행동 리스트는 길다. 리스트가 너무 길다는 게 기후변화 행동의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도 ‘기후변화 행동‘ 관련 시민 단체가 있으나, 이들 역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그걸 발견할 때까지 우선 나는 동물성 식품을 덜 먹기를 실천하고 있으려고 한다. 나중에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라는 매서운 질책을 후손들로부터 받게 될 때, 그 얘기라도 변명으로 댈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 [예일대 피바디자연사박물관의 '파충류 시대' 벽화 (이미지 출처: 스튜디오 조지프)] 2021-03-19 04: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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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의 시선] 중고교때 배운 우주관이 뒤집히고 있다 ..중장년층은 아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1787년] [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한때 자연을 탐구했다. 플라톤이 쓴 책 <파이돈>을 보면, 인문학자가 되기 전 자연철학자의 길을 걸으려던 소크라테스 이야기가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젊었을 때 나는 자연 탐구라고 불리는 지혜에 몹시 열중한 적이 있네”라면서 그 이유는 “개개의 사물이 생성하고 소멸하고 존속하는 원인을 안다는 것이 대단한 일로 보였기 때문이지”라고 말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고 죽기 직전에 감옥으로 찾아온 지인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록을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자연탐구에 매료된 건, 아낙사고라스라는 사람이 쓴 책을 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낙사고라스는 오늘날 터키 땅에 있던 이오니아 사람이며, 이오니아는 과학적 사고와 철학의 출발지라고 얘기된다.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의 과학을 아테네에 전해줬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아낙사고라스에 이내 실망한다. ‘놀라운 희망’이 금세 사라진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소크라테스 자신의 착각 탓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지구가 평평한지 둥근지”, “지구가 (우주의) 중앙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뭐, 이런 점은 놀랍다. 동아시아인은 당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소크라테스는 막상 아낙사고라스 책을 보니,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아낙사고라스는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지성의 소관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 아낙사고라스는 “대기, 에테르, 물, 그 밖의 이상한 것을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원인”으로 내세웠다. 아낙사고라스 얘기가 내게는 더 그럴듯해 보이는데, 소크라테스는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걸까?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아테네 시민들의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내가 죽기로 한 건, 내 지성의 결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도 무엇이 자신에게 좋은지, 즉 무엇이 선(善)인지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아낙사고라스는 그런 식으로 자연을 설명하지 않는다. 또 팔을 움직이는 건 내 지성의 결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낙사고라스는 팔 움직임은 뼈와 뼈에 붙어 있는 근육의 움직임이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이건 잘못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탐구의 방향을 바꿔 ‘두 번째 항해’에 나섰다. 두 번째 항해는 ‘도덕 철학자’가 되는 길이었으며, 그는 자연 대신, 인간을 탐구했다. 소크라테스가 그 탐구 행로에서 남긴 위대한 유산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오늘날 인문학자가 금과옥조로 삼는 말이기도 하다.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너 자신과 만나야 한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도록 강조한다. 내가 보기에는 ‘인문학적 소양’ 운운은 진부하다. 그보다는 ‘과학적 소양’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더 요긴한 것으로 보인다. ‘좋은 말’로 가득 찬 인문학적 소양도 좋지만, ‘과학적 소양‘을 충전하면 인간을 더 깊고 더 넓게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조건을 둘러싼 전체 그림이 보인다. “지난 1세기 동안 이룩한 과학 발전은 더 없이 웅장하고 폭발적이었으며 혁명적이라는 다소 진부한 수식어가 완벽하게 어울렸다. 과학자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언어처럼 복잡한 원자의 침실을 발견했고, 사실상 탄생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우주의 자서전을 읽어냈고, 꼬여 있는 DNA를 풀어냈고….”(나탈리 앤지어의 책 <원더풀 사이언스>) 그런데 한국인 상당수는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란 과학의 최전선에서 알려온 땅이 흔들리는 소식에 귀를 닫고 있다. 그리고는 중고교 때 배운 수십년 이상 낡은 지식에 근거해 여전히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카드’ 배포 시도 사건과 같은 황당무계한 일이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는 코로나바이러스 퇴치 효과가 있다는 한 신자의 근거 없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슨 카드인가를 신자들에게 배포하려 했다가 망신살을 사고, 철회한 바 있다. 과학자가 치열하게 검증한 지식에 근거해 사고하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큰 질문에 대한 보다 나은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의 유사과학적 헛소리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가령 개인적으로 며칠 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서강대 화학과 조규봉 교수를 만나러 갔다가 지도를 하나 보았다. ‘빙하시대 동아시아의 해안선‘이라고 영어로 써 있었다. 빙하시대라니, 몇 만년 전 이야기인가 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지도를 보니, 중국과 한반도가 땅으로 이어져 있고, 일본과 한반도는 아주 좁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바싹 붙어 있었다. 조 교수가 보여준 지도는 나중에 확인해 보니 2만1000년 전 동아시아 해안선 모습이었다. 빙하시대가 끝나면서 기온이 올라가 거대한 대륙 빙하들이 녹았고, 녹은 물이 바다로 유입되었다. 그 결과 전세계적으로 해안선이 올라갔으며, 동아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동아시아 대륙의 해안선이 만들어졌고, 옛 해안 지역은 바다 밑에 잠겼다. 2만년 전 선조들의 생활 모습은 모두 수장되었다. 내가 본 지도는 기후학자-인류학자 등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걸로 보인다. 어느 업체나 기관이 만들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으나, 말로만 듣던 빙하시대 동아시아의 모습을 보니 놀라웠다. 빙하시대 지도에서,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는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해는 없다. 동아시아인의 생활공간은 동쪽으로는 한반도, 서쪽으로는 티벳 고원 사이의 드넓은 지역이었다. 특히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많은 사람이 살지 않았을까 싶다. 1만5000년 전 서해에 바다가 들어오기 전에는 이곳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 있었을 것이고, 큰 강 주변이 빙하시대 동아시아인의 생활 터전을 이뤘을 것이다. 빙하시대 동아시아 해안선 지도가 내 눈을 잡아 끈 건, 다른 시야를 제공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 더 알려주기 때문이다. 빙하시대 동아시아에 중국이 어디 있으며, 한국이 어디 있는가? 너와 나를 구분하던 경계가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대륙에서 현생 인류가 기원했음을 이 말은 전한다. 지구에 사는 인간 모두가 하나의 유전자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인이다“라는 생각을, 한·중·일 3개국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동아시아인이다“가 된다. 한국, 중국, 일본인이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걸 말한다. 삼국인의 조상은 이웃 마을 사람이었거나, 한 마을 주민이었다. 그러니 한·중·일이라는 구분은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아무 의미도 없다. 2만1000년이라는 시간은 ‘인문학’자에게는 선사시대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아득한 옛날 얘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오래전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를 떠나 중앙아시아 혹은 인도 해안선 루트를 거쳐 동아시아까지 온 선조를 둔 후예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지금은 ‘탈(脫) 아프리카 동지들’끼리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며 때로 으르렁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과학의 장점 중 하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걸 가르쳐주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신이 장년 혹은 중년이라면 ‘과학적 소양’과 담을 싼 지 수십년 되었을 거다. 학교를 졸업하면 과학은 멀리하니까. “머리 아픈 과학을 왜 다시 공부해”라는 식이다. 내가 보기에 과학이 어렵게 보이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낯설기 때문이다. 과학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과학의 언어가 낯선 건 외국어가 낯선 것과 마찬가지다. 낯설면 그 언어는 외계어나 다름없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 언어를 잘 모르기에 과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괜찮은 소식이 있다. 학교에서 배운 과학은 어려웠다. 교육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교양과학서는 그렇지 않다. 수식이 없다. 이야기 책들이다. 그리고 과학은 재밌지 않은가? 어린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과학을 싫어하는 어린이가 있던가? 당신이 손을 잡고 과학관에 데려갔던 어린 자녀는 어땠는지? 과학의 세계에 매료되었을 거다. 당신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어른이라면 교양과학서는 재밌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조건과 현상에 집중하는 인문학은 구태의연하다. 과학적 소양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건 손만 뻗으면 주변에 있다. 빅뱅 직후의 우주와 세포, 삼엽충, 시아노박테리아, DNA와 같은 광대한 우주와 미소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자연에 관한 이해를 넓힐 때 역으로 인간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또 지구라는 행성에서 오래 살 수 있다. 2021-03-02 18: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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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은 화성까지 ..한국은 뭡니까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중국의 옛 시인 굴원은 ‘하늘에 묻다’(天問)라는 시도 남겼다. 굴원(기원전 340~278년)은 ‘어부사’ ‘이소’라는 시로 유명한데, ‘하늘에 묻다’라는 시에서는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낸다. 자연과학에 무관심했던 중국 고대 지식인이 자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하늘에 묻다’는 독특하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흥미롭다. ‘하늘에 묻다’는 매우 길지만, 일부 구절을 옮기면 이렇다. “태양은 탕곡(湯谷)에서 나와서/ 몽수(蒙汜)의 지류에 머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리나 가는 건가? 달빛은 어떻게 얻어지며/ 이지러졌다가 또 자라나는가? 그 달이 좋은 게 무엇이길래/ 토끼가 기웃거리며 그 가운데에 있는 건가? 무엇이 하늘을 닫아서 어둡게 하는 건가?/ 무엇이 하늘을 열어서 밝게 하는 건가? 동방성이 밝기 전에/ 해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건가?“ 굴원이 위에서 던진 질문은 이런 거다. 해의 하루 이동거리는 얼마이고, 달은 왜 빛나며, 밤에 해를 가리는 건 무엇이기에 세상이 어두워지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명료한 것들이나, 2500년 전 굴원이 지구의 자전과 태양의 공전을 알리 없으니,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이해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하늘에 묻다’라는 시를 알게 된 건 최근 일이다. 중국이 화성탐사 프로그램에 ‘하늘에 묻다’(天問)라는 이름을 붙인 걸 뒤늦게 알았다. 天問의 현대 중국어 발음은 ‘톈원’이며, 중국 국가항천국(CNSA)은 화성 탐사선인 ‘톈원 1호’를 지난 2월 10일 화성 궤도에 진입시킨 바 있다. 톈원1호는 화성 상공을 돌다가 몇 달 뒤 화성에 착륙하고, 탐사차량(rover)으로 화성 표면을 돌아다니며 연구활동을 하게 된다. 중국이 달에 우주선을 보낸 건 알고 있었다. 달의 뒷면에 처음으로 탐사선을 착륙시켰다거나 하는 뉴스를 계속 접해왔다. 그때는 중국이 열심히 하네,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화성에 성공적으로 우주선을 도착시켰다는 소식을 접하니 느낌이 좀 다르다. 더구나 아랍에미리트연방 때문에 충격은 더했다. 아랍에미리트가 보낸 우주선은 ‘톈원 1호’에 하루 앞서 화성 궤도에 도착한 바 있다. 그 소식을 듣고, 중동의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화성 탐사에 도전했나 해서 감탄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자료를 확인하니, 일본도 내년에 화성을 향해 탐사선을 다시 쏠 예정이다. 1998년 화성으로 보낸 우주선이 화성에 도착하지 못한 실패를 경험한 일본으로서는, 24년 만의 재도전이다. 한국은 이웃나라들의 화성 도전을 구경만 하고 그 성공에 박수만 치고 있을 건가? 한국인은 화성과 달은커녕, 지구 궤도에 올라가 지구를 내려다본 적도 없다. 한국은 뭘 하고 있는 건가 해서,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그렇다 치고, 중국의 우주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찾아보니 마침 얼마 전에 나온 <중국의 우주 굴기>(지성사 간)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이춘근 박사(서울대 공학 박사). 그는 중국 연변과학기술대(부총장)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책을 보면서 약간은 위안을 받았다. 저자는 중국의 우주 개발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중국 우주 굴기의 디테일을 어떻게 이렇게 알고 있나 해서 나는 놀랐다. 서쪽 이웃나라의 우주 굴기를 지켜보고 있는 한국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춘근 박사를 2월 16일 아주경제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라고 표현했다. 중국과 북한의 핵-미사일 분야에 지난 수십년 동안 관심을 갖고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 왔다. 이 박사 얘기를 들어보니, 톈진(天津)이 중국 우주항공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우주항공산업 사이트는 전국에 흩어져 있으나, 그중에서도 톈진은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면, 베이지 외곽의 항구 도시인 톈진에서 ‘톈원 1호’ 등 화성탐사체를 쏘아올리기 위한 로켓 발사체를 조립했다. 이춘근 박사는 “중국 우주항공산업을 이끄는 두 개의 국영기업은 중국항천과기(航天科技)집단공사와 중국항천과공(航天科工)집단공사다. 항천과기집단은 우주발사체, 지대지미사일 등 우주항공 쪽에, 항천과공집단은 우주분야연구도 하나 무기 개발을 주로 한다”라고 말했다. 톈진의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인 ‘국가항공우주산업기지’에 항천과기집단 산하의 기업들이 모여 있고, 그들이 톈원을 실었던 로켓발사체를 조립했다는 것이다. 화성탐사선인 톈원1호는 베이징에 있는 공간기술연구원(China Academy of Space Technology)에서 조립했다. 톈진에서 화성 탐사 프로젝트 관련 발사체를 조립했다면, 이걸 쏘아 올리는 발사장은 중국 남쪽의 하이난 섬 원창(文昌)에 있다. 원창(文昌) 항천발사장은 중국의 4대 우주발사기지 중 하나다. 알다시피 로켓 발사체는 크다. 더구나 중량이 5t(톤)인 화성 탐사선을 실어 올리려면 발사체의 힘이 좋아야 한다. 톈원 1호를 운반하는 로켓 발사체는 ‘창정(長征) 5’이다. 장정 5는 중국이 만든 가장 힘이 좋은 로켓 발사체다. 미국의 팰콘(Falcon Heavy)과 델타 4(Delta Ⅳ Heavy)에 이어 세 번째로 강력하다는 얘기가 있다. 덩치가 크다 보니 ‘장정 5‘ 로켓은 기차 편으로 실어 운반할 수 없다. 그래서 철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바닷길을 통해 톈진에서 하이난 섬 원창으로 실어간다. 중국의 로켓을 수송하는 특수 화물선도 몇 개가 보인다. ‘遠望 21‘ ’遠望 22‘ ’Xu Yang 16’과 같은 선박들이 톈진과 하이난 섬 사이를 오간다. 선박 위치를 알려주는 사이트(marine traffic)에 따르면 Xu Yang 16호는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 24일 현재, 하이난 섬 원창 우주발사장 인근 항구에 정박 중이다. 이춘근 박사에 따르면, 중국 우주개발의 중장기 목표는 1단계 지구궤도 위성, 2단계 유인 우주실현, 3단계 심(深)우주(deep space) 탐사다. 중국은 1년에 수십개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위성 강국이니 1단계 목표는 도달했다. 그리고 2단계인 유인 우주 실현은 2003년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쏜 데 이어, 우주정거장 구축을 내년에 하는 걸 목표로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올해 우주정거장 톈궁(天宮)의 핵심 모듈을 쏘아올리고, 2022년 우주정거장 가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3단계인 ‘심우주 탐사’는 화성 탐사 프로그램인 톈원 1호의 성공적인 화성 도착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의 화성 탐사는 지난 2007년 러시아와 협정을 체결하면서 시작되었다. 탐사선은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만들고, 탐사선들을 러시아 발사체에 실어 올리며, 이후 발사체에서 분리된 양국의 탐사선은 화성을 향해 7개월이라는 여행을 시작한다는 그림이었다. 중국은 러시아 기술 지원을 받아 2년 만에 탐사선 ‘잉훠(螢火, 반딧불)1호’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1년 11월 중앙아시아의 러시아 우주발사장에서 발사했다. 그런데 로켓에서 먼저 분리되어야 할 러시아 화성탐사선이 분리에 실패하면서 중국의 잉훠 1호는 불타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중국은 독자적인 화성 탐사로 방향을 전환했다. 화성 탐사 프로그램에 쓰던 ‘잉훠’란 이름을 버리고 ‘톈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며 심기일전했다. 중국이 우주굴기에 힘을 쏟아붓는 건 미국 및 러시아와의 경쟁의 산물이다. 미국으로부터 한국전쟁 당시 핵폭탄 공격 위협을 받았고, 1960년대 중소 국경 분쟁 당시에는 러시아의 핵 공격 가능성에 떨어야 했다. 이런 국가안보상 필요로 인해 중국은 ‘양탄일성(兩彈一星)’을 획득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 양탄일성은 두 개의 폭탄(원자탄과 수소탄)과, 하나의 별(인공위성)을 가리킨다. 인공위성은 위성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을 말한다. 그리고 중국은 이제 군사용 미사일을 로켓발사체로 변형해 심우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박근혜 정부 때 달에 우주선을 보낸다고 했었다. 지금 그 프로그램은 어떻게 됐는지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박근혜는 정치적 목적에서 그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그 프로그램을 지원했는지는 모르나, 그걸 정치적인 행위였다는 이유로 비판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게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우주 굴기’를 쓴 이춘근 박사가 중국의 과학기술 관련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지도자의 정치적 행위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그는 “장쩌민 국가주석 시절(1993~2003년) 중국 정부는 ’애국주의‘ 교육을 많이 했다. 천안문 사건(1989년) 이후에 집권했기에 ’애국주의‘를 정치적으로 내세웠고, ’양탄일성‘ 관련 유공자를 위한 훈장을 만들기도 했다. 양탄일성 관련 인사들이 쓴 수기, 전기, 역사 관련 책 수십권이 당시 베이징에 쏟아졌다”라고 말했다. 이춘근 박사가 베이징에서 이런 자료를 모으며, ’사회주의 과학기술 전문가‘가 되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중국 정치인은 어쨌거나 ‘중국 몽(夢)’을 얘기하며 중국인에게 같은 꿈을 꿔보자고 말한다. 나는 이런 게 좀 부럽다. 중국몽 이야기를 들으면, 이 시대 한국인이 같이 꾸고 있는 꿈이 뭐가 있나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한국 몽(夢)은 없고,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원전 4세기 굴원의 시 ‘하늘에 묻다’를 화성 탐사선 이름으로 정한 중국이 그런 면에서는 부럽다 이춘근 박사 인터뷰[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중국 하이난 섬의 원창발사장에서 지난 2020년 7월 23일 중국의 화성탐사선이 창정5 로켓에 실려 발사되고 있 다./이미지 중국국가우주국(CNSA)] 2021-02-26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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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의 시선] “노벨상 예고편' 賞부터 챙겨라 [노밸상 메달] ] 서울대 현택환 교수(화학생명공학부)는 지난해 10월 7일 아이돌 그룹 BTS의 ‘Not Today’라는 곡을 강의 시간에 들려줬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그는 연구실에 앉아 비대면 수업을 했다. 이날 “오늘은 아니야”라는 뜻의 음악을 튼 건 노벨화학상 발표가 오후 6시 45분에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대 제2공학관(302동) 8층에 있는 현 교수 연구실 앞에는 기자들 20여명이 진 치고 있었다. 혹시라도 현 교수 이름이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재단의 발표에서 나올까 해서다. 지난해 10월 노벨상 과학부문 수상자 이름이 연일 나올 때 현택환 교수가 한국에서 혼자 주목받았다. 미국의 학술정보 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현 교수가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이 유력한 과학자 3명 중 한 명이라고 발표한 게 원인이었다. 현 교수는 나노화학자이며, 나노입자를 균일하게 대량 합성하는 법을 개발했다. 지난 1월 11일 서울대에서 만났을 때 현 교수는 내게 “우리는 세계 정상급이 아니라, 세계 정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나는 말한다”라며 “그러나 지난해 노벨화학상은 내 차례가 아니었다. 상은 화학의 여러 분야를 돌아가면서 준다. 나의 분야인 나노화학은 순서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현택환 서울대 교수에게 노벨상에 앞서 받아야 할 상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 상이냐 라고 질문했다. 현 교수는 울프상(Wolf Prize)과 래스커 상(Lasker Award)을 얘기했다. 현 교수는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자 중에는 울프상 수상자가 특히 많다”며 “노벨화학상을 받으려면 울프상을 받는 게 유리하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지난해 12월 초 포항공대 화학자 김기문 교수를 만났을 때도 노벨상으로 가는 상이 어떤 게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이 받은 ‘아이잣-크리스텐슨 상’ 상패를 보여줬다. 아이잣-크리스텐슨 상(Izatt-Christensen Award)은 초분자화학-거대고리화학 분야에 권위 있는 상이다. 201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이 상을 받았다. 장 피에르 소바주 교수(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는 1991년, 프레이저 스토더트(영국 노팅엄대학) 교수가 1993년에 수상했다. 김기문 교수는 “이분들의 추천으로 나는 2012년에 수상했다. 그건 이 분야에 내가 그들보다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다”면서 “노벨상, 노벨상 하는데, 그에 앞서 한국 연구자들이 받아야 할 상들이 있다. 한국인은 그것도 거의 못 받고 있다. 그것부터 받아야 한다. 노벨상은 그 다음이다”라고 말했다. 과학부문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의 갈증은 심하다. 그래서 정부는 돈을 들여 연구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2019년 10월에 만든 ‘노벨과학상 종합분석 보고서: 수상 현황과 트렌드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가 그중의 하나다. 이 보고서도 김기문 교수나 현택환 교수와 같은 얘기를 한다. 보고서는 “노벨과학상 수상 전에 수상 징조를 알리는 현상도 다수 존재한다”면서 “울프상, 래스커상, 게이드너상,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상, 카블리상 수상이 이에 속하며 피인용 수를 바탕으로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예측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한국 과학자는 울프상, 래스커상, 게이드너상,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상, 카블리상을 받고 있을까? 노벨과학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한 이들 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 이들 관련 자료와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확인해 봤다. 먼저, 울프상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스라엘의 울프 재단이 1978년 만들었고, 설립자는 독일 출생의 이스라엘 발명가 리카르도 울프(1887–1981)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의회(크네셋)에서 매년 5월 시상식을 연다. 시상 분야는 과학과 예술이며, 과학의 경우 의학, 농업, 수학, 화학, 물리학 5개 부문을 대상으로 한다. 예술 분야는 건축, 음악, 회화, 조각 부문을 돌아가며 매년 1명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상금은 10만 달러. 지금까지 345명이 수상했다. 생긴 지 43년 된 울프상이 국제적으로 권위를 어떻게 해서 그리 얻었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울프상 사이트는 역대 수상자를 찾는 한 방법으로, 국가별 검색이 가능하다. 한국(Korea, Republic of)을 검색해 보았다. 울프상을 받은 한국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없음”(Nothing)이라고 나왔다. 역시나였다. 이럴 때 그 다음 검색하는 건 이웃나라다. 일본 수상자는 몇 명이나 있을까 궁금하다. 일본인 10명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화면에 떴다. 물리학자 1명, 화학자 2명, 의학자 3명, 수학자 3명, 그리고 건축가 1명이다. 한 부분에 쏠리지 않고, 과학의 모든 분야에 고루 수상자를 일본은 배출했다. 역시 과학 강국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일본이 꾸준히 내는 저력을 다시 확인한다. 중국인 수상자는 몇 명이나 있는지 찾아봤다. 중국인 수상자는 1명(농업 부문)이다. ‘하이브리드 쌀의 아버지’로 불린다는 위안룽핑(袁隆平)씨가 2004년에 받았다. 물리학과 화학 부문 중국인 수상자는 없다. 울프상 수상이 노벨상 수상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예컨대 일본 물리학자 고시바 마사토시(중성미자 연구자)는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에 앞서 2년 전에 울프상을 받았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인 야마나카 신야(교토대학의 줄기세포 연구자)는 바로 전해에 의학부문 울프상을 수상했다. 노벨생리의학 부문 수상자의 예고편에 해당한다는 ‘래스커 상’(Lasker Award) 사이트에 가봤다. 래스커 상은 미국의 래스커 재단이 주관, 1945년 이후 매년 의학자를 대상으로 시상한다. 재단은 미국 사업가인 앨버트 래스커와 그의 부인이자 건강 활동가(health activist)이었던 메리 래스커가 함께 설립했다. 래스커상은 의학부문의 경우 3개 분야(기초의학연구상, 임상의학연구상, 특별상)를 대상으로 하며, 상금은 25만 달러. 3개 분야 중 기초의학 연구상 수상자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줄줄이 받는 걸로 명성이 높다. 2016년 래스커상(기초의학) 수상자 세 명이 3년 뒤 그대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게 최근의 좋은 사례다. 역대 래스커 수상자에 한국인 이름이 있나 해서 찾았다.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은 세 사람, 중국인은 두 사람이 보인다. 일본인 세 사람 중 두 사람(1989년 수상자 니시즈카 야스토미 고베의대 교수, 2009년 수상자 야마니카 신야 교토대학 교수)이 기초의학분야 수상자이고, 다른 한 사람(2008년 엔도 아키라, ㈜바이오팜 연구소)은 임상의학 분야 수상자다. 게이드너 상은 캐나다에 있는 게이드너 재단이 주관한다. 게이드너 상 역시 노벨상으로 가는 통로다. 사이트에 보면 게이드너 상을 받은 사람 중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눈에 띄게 표시해놓았다. 세어 보니, 역대 수상자 중 102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한국연구재단 보고서는 “게이드너 상 수상자의 25%정도가 의학 관련 노벨상을 수상했다“라고 말한다. 1959년 이후 수상자를 살펴보았다. 일본인은 적지 않게 보이나, 한국인 수상자는 없는 듯하다. [카블리 상 메달] ] 한국연구재단의 보고서는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 상’과 ‘카블리 상’도 유력한 노벨과학상의 사전 징후라고 했다. 이 두 상을 받은 한국인이 있을까?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상을 시상한 1989년 이후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일본인 이름은 세 명 보았다. 카블리상은 카블리재단과 노르웨이 과학아카데미가 주관한다. 상금은 무려 100만 달러. 천체물리학, 나노과학, 신경과학 세 분야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며 2008년 첫 수상자를 냈다. 검색해 보았으나, 한국인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약간은 지루할 정도로 권위 있는, 노벨상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얘기되는 상 네 개를 살펴보았다. 한국인 수상자는 한 명도 없음을 확인했다. 한국 과학자는 노벨상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한국의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 정상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매년 10월 스톡홀름의 노벨재단 발표에서 한국인 이름이 나오길 귀를 세우고 듣는 건 지금으로서는 허망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인에게 노벨상 수상이라는 기대를 품 게 해준 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예측이다. 이건 논문이 얼마나 인용되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여기에 이름이 들어간 한국인 연구자는 현택환 서울대 화학자 외에도 몇 명 있었다. 유룡 카이스트 교수(2014년),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2017년)가 그들이다. 유룡, 박남규, 현택환 교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혹시 눈치 채셨는지? 이들은 모두 화학자다. 노벨 과학상 수상으로 가는 길에는 화학자가 한국에서는 다른 과학 분야보다 앞서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노벨상’ 보고서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보고서 내의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 업적에 근접한 한국 연구자 목록’에 오른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분야 연구자는 17명이다. 이 중 화학자가 9명으로 가장 많다. 생리의학 부문 연구자는 5명, 물리학자는 3명이다. 노벨상을 받고 싶다면, 한국의 기초과학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뭘 할 것인가?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그중의 하나는 좋은 과학상을 만드는 것이다. ‘호암상’ ‘포스코청암상’과 같은 좋은 상이 있으나, 국내용이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갖지 않는다. 일본에는 교토상이라는 권위있는 국제상이 있다. 과학과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다. 또 자료를 뒤지다 보니 ‘나고야 유기화학 메달’이라는 상이 있다. 나고야 대학의 노벨화학상 수상자(2001년)인 노요리 료지 교수가 제안해 1995년부터 매년 시상하며, 시상자는 일본인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 상이 얼마나 지명도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이 이 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화학이 잘하고 있으니, 화학 분야에 좋은 국제적인 상을 만드는 것이다. 권위 있는 상 제정은 한국 화학을 응원하는 전략적인 접근일 수 있다. ‘서울 평화상’ 같은 데 돈 낭비하는 대신, 과학 상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낫다. [레스커 상 트로피] 2021-01-25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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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추억 '反수소'...한국 물리학도 도전중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GBAR라는 이름의 실험을 한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물리학과 김선기 교수(입자물리학-실험)가 이끄는 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CERN은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 LHC(거대강입자충돌기)를 갖고 있고 있는, 세계 고에너지 물리학의 중심지다. 크고 작은 실험을 많이 하며, GBAR실험은 그중에서 아주 작은 실험에 속한다. GBAR실험이 흥미롭게 보이는 건 반물질(Anti-matter)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반물질‘은 ’물질‘(Matter)과 전기 부호만 다르고 나머지 물리적 특징은 똑같다. 가령 전자(Electron)는 물질인데, 전자의 반물질은 양전자(Positron)이다. 전자는 음전기를 가지나, 양전자는 양전기를 띤다. 질량, 스핀 등 나머지는 두 개가 똑같아 구분할 수 없다. 전자 말고도 모든 입자는 반물질 쌍을 갖고 있다. 즉 반입자가 있다. 수소의 반물질은 반수소, 양성자의 반물질은 반양성자 하는 식이다. GBAR실험의 목표는 ‘반(反)수소‘의 중력 가속도 정밀 측정이다. 한국 그룹은 GBAR(Gravitational Behaviour of Anti hydrogen at Rest) 실험을 위해 두 가지 실험 장비를 만들었다. 반양성자(anti-proton)를 모아놓은 장치(반양성자 트랩)와 TOF(Time of Flight) 카운터라는 장치다. 김 교수는 지난해 여름, 이들 장비를 갖고 제자들과 제네바로 떠났다. 장비를 그곳에 설치하고, 데이터가 나오는 걸 볼 거라고 했다. GBAR실험에는 모두 9개국 그룹이 참여한다. 인류는 중력가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려고 애를 써왔다. 중력이 자연에 있는 기본 힘 4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궁극적인 중력이론으로 얘기되는 양자 중력 이론(Quantum Gravity Theory)을 갖고 있지 않다. CERN이 반수소를 갖고 중력가속도를 측정해보는 것도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반수소를 극저온에서 공중에 가둬뒀다가, 자유낙하 시키면서 ‘중력가속도’를 재보겠다는 구상이 GBAR실험이다. 반수소의 중력가속도는 수소와 같은 걸로 추정된다. 하지만 재보기 전에는 100%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해보는 거다. 반물질은 태초에는 물질과 똑같은 양이 존재했다고 물리학자는 믿고 있다. 빅뱅 직후의 우주는 대단히 뜨겁고 큰 에너지로 가득 찼고,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방정식 E=mc^2에 따르면 에너지(E)와 물질(m)은 모습을 바꾼다. 그래서 빅뱅 직후 높은 에너지는 순간적으로 물질과 반물질 쌍으로 바꾼다(쌍생성). 그리고 물질과 반물질은 서로 만나는 순간 에너지로 바뀌면서 폭발한다(쌍소멸). 이때 물질에 갇혀 있던 에너지는 감마선 형태로 나온다. 감마선은 대단히 에너지가 높은 광자다. 그러니 빅뱅 직후에는 쌍생성과 쌍소멸이 끝없이 일어났고, 물질과 반물질은 똑같은 양이 만들어지고, 똑같이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물리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건 반물질은 다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빅뱅 이후 138억년이 지난 지금, 우주에는 반물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주에는 물질이 가득할 뿐, 반물질은 모두 사라졌다. 반물질은 CERN의 LHC(거대강입자충돌기)와 같은 인공적인 시설에서 만들어지거나, 자연에서 순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물질로 된 별이 있으면, 반물질로 된 별도 있어야 하는데, 천문학자는 반물질 별이 빛나는 건 관측하지 못했다. 태초에 무수히 많았던 반물질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중성미자(Neutrino)가 ‘반물질 실종’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물리학자들은 보고 있다. 다시 얘기하면 우주에 물질만 존재하고, 반물질은 왜 사라졌는가 하는 궁금증은 중성미자를 파고들면 이해할 수 있을 걸로 추정되고 있다. 중성미자는 전기를 띠지 않고(중성) 질량은 아주 가벼운 입자다. 현재까지 물리학자는 세 종류가 있다는 걸 확인했고, 네 번째 중성미자가 있을 걸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중성미자의 질량을 알아내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중성미자는 미지의 입자이고, 새로운 물리학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때문에 21세기 초 입자물리학은 물론이고, 천체물리학에서도 뜨거운 토픽 중 하나다. 한국의 입자물리학자와 천문학자 100명은 지난해 11월 한국에도 중성미자 망원경(KNO, Korean Neutrino Obsevatory)를 만들자고 정부에 제안해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다. KNO를 갖고 물리학자가 탐구할 제 1목표가 ‘반물질 실종’ 사건 이유 규명이다. KNO는 중성미자 천문학과 중성미자 물리학을 위한 도구가 되며, 이번 보고서 작성 책임자인 유인태 성균관대 교수(입자물리학 실험)는 “KNO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면, 한국의 기초과학이 아주 크게 도약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유인태 교수는 중성미자 물리학 실험에 참여해왔으며, 현재 한국물리학회 부회장으로 일한다. 유인태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우주는 왜 물질로 가득 찼는가 하는 건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의 진동 확률이라는 걸 각각 조사해 비교하면 된다. 두 개가 다르다면, 분명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 단서가 일본의 중성미자 실험에서 일부 나왔다. 그리고 이를 정밀하게 측정하려고 하는 게 한국의 KNO이고, 일본의 차세대 실험인 ‘하이퍼-가미오칸데’다”라고 말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고에너지 물리를 하기 위한 입자가속기를 갖고 있는 일본의 국립연구소인 J-PARC는 중성미자 세 개 중의 하나인 뮤온중성미자를 만들어 300㎞ 떨어진 슈퍼-가미오칸데 지하실험장으로 쏜다. 그런데 때로 J-PARC는 뮤온중성미자 대신 뮤온중성미자의 반물질인 반뮤온중성미자를 만들어 보낸다. 일본의 중성미자 관측소인 슈퍼-가미오칸데는 뮤온중성미자(물질)를 보내올 때와, 반 뮤온중성미자(반물질)를 보내올 때의 진동 확률을 비교 측정했다. 두 개의 진동 확률이 똑같으면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 두 개가 다르면 크게 새로운 일이 된다. 물질-반물질 비대칭의 증거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일본의 실험에서 일부 단서는 나왔지만 단정적으로 말할 정도는 아니다. 측정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도 기존의 ‘슈퍼-가미오칸데 실험’을 업그레이드해서 감도를 높이려고 한다. 그게 ‘하이퍼-가미오칸데’실험을 지난해 착공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중성미자에 ‘물질-반물질 비대칭’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시선을 돌리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강신규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중성미자 물리학 이론가 중 한 명이다. 강신규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중성미자는 현재 세 종류가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질량이 대단히 무거운 중성미자가 있지 않을까 하고 물리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그 대단히 무거운 중성미자가 우주가 진화하면서 ‘경입자’와 ‘반(反)경입자’로 붕괴했다는 이론이 있다. 경입자는 전자, 뮤온, 타우입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반 경입자는 ‘양전자’ ‘반 뮤온’ ‘반 타우입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대단히 무거운 중성미자의 특정한 대칭성(CP대칭성=전하거울대칭)이 깨져 있으면 ‘경입자‘가 ’반 경입자‘보다 약간 많이 생긴다. 강신규 교수는 그 비율은 물질인 ‘경입자’가 100만1개 만들어질 때, 반물질인 ‘반 경입자‘가 100만개 만들어지는 정도라고 했다. 이 경우, 백만 개의 물질과 반물질은 서로 만나 사라지나, 나머지 한 개의 물질은 만날 반물질이 없으므로 사라지지 않고 우주에 남게 된다. 그리고 빅뱅 이후 우주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그 온도가 100 GeV(1 기가전자볼트=10억 전자볼트) 아래로 내려갔을 때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으로 남은 ‘물질’이 보존되게 된다. 즉 만들어진 물질은 더 이상 반물질을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해서 물질(경입자)은 우주에 무수히 많이 남게 되었고, 반물질은 모두 사라졌다는 게 이론가들의 아이디어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손에 경입자를 갖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더 있다. 경입자만으로는 현재 우주에 있는 물질을 만들 수 없다. 우주에는 경입자(전자, 뮤온, 타우입자) 외에, 중입자(Baryon)가 있다. 중입자는 세 개의 쿼크(Quark)로 이뤄진 양성자와 중성자를 가리킨다. 양성자와 중성자와 같은 중입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강신규 교수는 “초기 우주에서 온도가 매우 높을 때에, 경입자가 중입자로 변신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시한 이론이 나와 있다. 이를 ‘스팔레론 과정’(Sphaleron Process)이라고 한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는 스팔레론 과정에 따라 경입자가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수봉 전 서울대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중성미자 물리학(실험) 연구자이다. 김수봉 교수에 따르면, 한국이 KNO를 만들면 일본의 중성미자 관측소보다 더 성능이 좋다. 일본 J-PARC가 쏜 중성미자를 갖고 한다는 면에서 일본 가미오칸데 실험과 같으나, J-PARC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가 가미오칸데 실험장(300㎞)보다 한반도 남부의 대구 인근 비슬산(1000㎞)이 더 멀다. 그 때문에 중성미자의 진동 변환 특성을 보기에 낫다. 그리고 KNO는 ‘하이퍼-가미오칸데’보다 더 크게 지으려하기에 감도가 더 뛰어나다. 김수봉 교수나, 유인태 교수는 일본에서 하는 중성미자 실험에 참여하면서 중성미자 연구자로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후 한국의 독자적인 중성미자 실험인 르노 실험(2011년 이후)을 수행하면서 자신들의 능력이 세계 수준임을 증명한 바 있다. 일본에서 배웠으나, 일본 못지않은 실력을 쌓은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KNO를 통해 중성미자 물리학 분야에서는 일본과 적어도 나란히 서고 싶어 한다. 일본은 중성미자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미국보다 앞서 있다. KNO 실험을 준비하는 데는 3500억 원이 든다. 그런데 지하 1000m 속에 시설을 한번 만들어놓으면 운영비는 별로 들 게 없다. 3500억원, 돈 액수로 보면 작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력으로 보아 그리 부담스런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고, 과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21-01-08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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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중성미자 삼국지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러시아 핵물리학의 중심도시는 두브나(Dubna)다. 두브나는 모스크바 북쪽으로 112㎞ 떨어진, 볼가 강변에 있다. 러시아 최고의 핵물리학연구소인 합동원자핵연구소(JINR)가 이곳에 있다. 북한 핵물리학자들이 JINR에서 공부했다고도 전해진다. 2017년 9월 19일 한-중-일의 중성미자 물리학자 세 사람이 JINR에서 상을 받았다. 서울대 김수봉 교수, 중국 고에너지물리연구소의 왕이팡 박사, 그리고 일본 KEK(고에너지물리연구기구)의 니시가와 고이치로(西川 公一郎) 박사다. 이들이 받은 상은 브루노 폰테코르보 상. 중성미자 물리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흰색 대리석 기둥과 빨간색 벽의 건물 전면이 아름다운 JINR 건물에서 빅토르 마트비프(Matveev)소장이 시상했다. [러시아 두브나에 있는 JINR 건물] 브루노 폰테코르보는 러시아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물리학자다. 중성미자 연구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 합동원자핵연구소가 1995년 상을 만들었고, 입자물리학 분야의 중성미자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다. 동아시아 삼국의 물리학자 세 사람이 나란히 이 상을 받은 건 이례적이다. 이들의 공적은 거칠게 얘기하면 중성미자의 질량을 측정하는 데 한 걸음 더 내디뎠다는 거다. 중성미자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아주 작은 입자이다. 질량이 아주 작기에 ‘미자’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가 있다. 중성미자는 질량도 모르고, 몇 종류가 있는지도 모른다. 좀 어려운 용어가 되겠지만, 중성미자의 CP(전하-패리티)대칭성이라는 게 깨져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성미자는 다음 세대 입자물리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래서 중성미자 물리학은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중성미자 물리학의 선두는 일본이다. 일본은 미국보다 앞서 있다. 일본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의 물리학자들은 노벨물리학상 두 개를 받은 바 있다. 2002년 노벨상은 ‘중성미자 천문학’ 시대를 열었다는 공로로 받았고, 2015년 노벨상은 ‘중성미자 진동’(neutrino oscillation)이라는 현상 확인을 평가받았다. 특히 중성미자 진동 현상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다는 증거여서, 파문이 컸다. 기존의 입자물리학 교과서에 따르면 중성미자는 질량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교과서 내용(‘표준모형‘)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니, 충격파는 거셌다. 입자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 너머의 새로운 물리학’을 찾아 나서야 했다. 김수봉, 왕이팡, 니시가와 고이치로 세 사람이 한 일은,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두 사람이 한 일의 후속 작업이다. 중성미자 종류는 현재 최소 세 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세 종류는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다. 중성미자 세 개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중성미자로 변한다(‘경입자 섞임’ mixing).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도쿄대학의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는, 세 개의 중성미자 중 전자중성미자가 뮤온중성미자로 바뀌는 ‘변환상수’를 측정했다. 그와 같은 해 노벨상을 받은 아서 맥도널드 교수(캐나다 퀸즈대학)는 뮤온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는 변환상수를 측정했다. 두 노벨상 수상자가 하고 남은 연구는, 타우중성미자가 전자중성미자로 바뀌는 변환상수 측정이다. 이 측정 작업은 쉽지 않았다. 타우중성미자가 전자중성미자로 바뀌는 정도는 유달리 작았기 때문이다. [중국 다야 베이 실험 시설 내부의 광센서들]. 왕이팡 중국 고에너지물리연구소(IHEP) 박사가 이끄는 다야 베이(Daya Bay) 실험은 2005년 시작했다. 중국 남부의 홍콩에서 동북쪽으로 58㎞ 떨어진 광둥성 다야(大亞)만에 있는 핵 발전소들 인근에 지하실험장을 만들었다. 서울대 김수봉 교수 그룹은 왕이팡 그룹보다 1, 2년 늦게 실험을 시작했다. 과학기술부로부터 2006년 3월 연구비 116억원을 지원받아, 12개 대학의 연구자 34명이 참여하는 르노 실험(RENO, Reactor Experiment for Neutrino Oscillations, 원전중성미자실험) 그룹을 만들었다. 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 인근의 지하에 실험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사 착수는 중국 다야 베이 실험보다 훨씬 늦었지만, ‘빨리 빨리’를 잘하는 한국인의 특장 때문인지, 검출기 설치를 중국보다 먼저 마쳤다. 르노 그룹은 2011년 11월 건설공사를 마치고, 검출기를 가동해 데이터를 얻기 시작한다는 걸 알리는 국제 세미나를 서울대에서 열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의 왕이팡 그룹은 “우리는 2012년 6월쯤 공사를 마무리하고, 검출기 가동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그룹은 이 말을 듣고 좀 뿌듯했다. 중국의 다야 베이 실험과 한국의 르노 중성미자 실험은 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자리잡은 게 특징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서는 중성미자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또 중성미자는 입자가속기에서도 만들 수 있고, 우주에서 날아오기도 하며, 지구 깊숙한 땅속에서도 나온다. 르노 그룹은 2012년 초 원하는 ‘변환상수’ 값을 얻었다. 발표하기 전에 데이터를 보며 논문을 다듬었다. 그런데 아뿔싸, 다야 베이 실험이 예상치 못하게 3월 8일에 논문을 내놓았다. 6월이 되어야 가동한다고 했던 중국 그룹이 어떻게 데이터를 얻었단 말인가, 충격이었다. 르노 그룹은 부랴부랴 작업을 해서 다야 베이의 발표 3주 뒤에 논문을 내놓았다.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날짜를 기준으로 하면 중국 그룹보다 1주일 늦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 측은 2011년 11월 서울대에서 열린 르노 실험 워크솝에 참석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귀국해서 비상을 걸었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일부 시설 가동에 들어갔다. 검출기가 모두 8개였는데, 그중에 되는 걸 먼저 가동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얻어, 마지막으로 남은 중성미자 변환상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16년 브루노 폰테코르보 상 수상자들...왼쪽 두 번째가 김수봉 전 서울대 교수]. 이로부터 5년 뒤 러시아 두브나에서 한-중-일의 경쟁 그룹 대표들은 브루노 코르보 상을 받기 위해 만났다. 이때 찍은 기념 사진이 온라인에 있어, 찾아볼 수 있었다. 수상자 세 사람과, 연구소 소장 해서 모두 네 사람이 나란히 서 있다. 사진을 보면서, 미묘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김수봉 교수의 뒤통수를 친 왕이팡 박사나, 뒤통수를 맞은 당사자나 표정이 밝지 않아 보인다. 내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중성미자 선진국인 일본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 중국이 바짝 추격해 오는듯해서 마음이 약간 급해질 것 같다. 특히 중국 고에너지 물리학의 급부상에 민감해 하지 않나 싶다. 한국물리학자들이 작성한 한 보고서는 중국 다야 베이 실험의 결과를 이렇게 평가한다. “중국에서 진행된 대형 국제공동연구 중 처음으로 세계적인 성과를 거둔 실험이었다. 중국 기초과학의 수준을 여러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중성미자 실험을 이끈 왕이팡 박사는 실적을 인정받아 중국고에너지물리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중성미자 연구자가 중국 고에너지물리학계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중성미자 연구가 세계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현재 비중이 어떤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성미자 연구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성미자 분야에는 미스터리가 많다. 메달이 많이 남아 있다.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더 성능이 좋은 장비를 구축해야 한다. 차세대 중성미자 실험으로 왕이팡의 중국 그룹은 ‘주노’(JUNO)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건설 공사에 들어갔고 2021년 데이터를 얻는 걸 목표로 한다. 왕이팡 그룹은 중국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JUNO실험의 목표는 세 개의 중성미자 가운데 어느 게 가장 무겁고, 어느 게 가장 가벼운지를 확인하는 거다. 한-중-일 삼국 중 중성미자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일본은 3세대 가미오칸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3세대 실험에는 ‘하이퍼-가미오칸데’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1세대 실험 ‘가미오칸데’와 2세대 실험 ‘슈퍼-가미오칸데’가 노벨상을 따냈고, 하이퍼-가미오칸데 실험도 노벨상을 목표로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9년 12월 건설이 승인되었고, 2027년 데이터를 얻는 걸 목표로 한다. ‘하이퍼-가미오칸데’실험의 목표는 중성미자의 CP대칭성 붕괴 여부 확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물질-반물질 대칭 파괴다. 물질-반물질 대칭 파괴를 달리 표현하면, 우주에 왜 물질만 있고, 반물질은 없는가 하는 문제이고, 이걸 확인하는 수단 중 하나가 중성미자의 CP대칭성 붕괴 여부 확인이다. 물질은 알 것 같은데, 반물질은 무엇인가? 두 개는 전하의 부호가 서로 다르고, 나머지 성질은 똑같다. 가령, 전자는 물질이고, 양전자(Positron)는 반물질이다. 전자는 음의 전기를 띠고, 양전자는 양의 전기를 갖고 있다. 우주의 아주 이른 시기, 즉 빅뱅 직후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우주에 똑같은 양으로 존재했다. 예컨대 전자와 양전자가 똑같은 숫자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가 진화하면서 물질만 남고 반물질은 사라졌다. 이건 큰 미스터리라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한국의 르노 실험은 후속 실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김수봉 교수는 동분서주했으나, 후속실험인 르노-50실험 연구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르노 실험 연구비는 작년으로 끊겼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르노 실험은 한국의 중성미자 물리학이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음을 알린 바 있다. 어렵게 마련한 120억원의 연구비로, 한국 고에너지 물리학사에서 돌출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해 바쁜 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연구에 참여했던 중성미자 연구자는 흩어졌고, 장비는 영광의 지하에서 곧 녹슬기 시작할 것이다. 입자가속기가 없는 나라에서 중성미자 연구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고에너지물리학을 키울 수 있는 수단이다. 중성미자 연구는 분야가 많아, 한국에는 르노실험 말고 AMoRE실험(IBS지하실험연구단 김영덕 단장이 대표)이 있다. 하지만 AMoRE실험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행스러운 건 새로운 중성미자 실험이 모색되고 있다는 거다. 한국의 입자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 100명이 KNO(한국 중성미자 관측소)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35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학계가 구상한, 최초의 빅 사이언스 실험이다. 이 정도 규모는 한국에서 해본 적이 없다. 현재 이들은 정부의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KNO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모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자기들끼리 모여 토론을 해왔고, 그 결과를 지난달 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KNO가 어떻게 되는지를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유럽도 지켜보고 있다. 다야 베이 실험이 중국 기초과학을 도약시켰듯이, KNO는 한국 물리-천문학을 비상하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면 한국의 젊은 중성미자 연구자가 또다시 러시아 두브나로 상을 받으러 가게 된다. 두브나로 가는 길은, 노벨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2016년 브루노 폰테코르보 상 수상자들...왼쪽 두 번째가 김수봉 전 서울대 교수]. 2020-12-16 04:39:31